일시 : 2021년 12월 26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1장 7절~14절
제목 : 성령의 각오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절 ampndash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2절 ampndash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3절 ampndash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4절 -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5절-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6절 ampndash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7절 ampndash 바울이 대답하되 여려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8절 ampndash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김양재 목사님 말씀
네, 저분 그냥 우리나라 제일 대기업 S기업에 임원으로 그런데 그렇게 총각이 말이죠.
이혼녀하고 결혼하고 재혼하고 또 다시 이혼하고 이렇게 복잡한 가정사인데 워낙 성품이 착하신가봐요? 이집사님? 그렇죠?
착한데 왜 또 이혼을 했겠어요? 사람은 다 똑같애 이혼을 했는데 아내가 와서 우리들교회에서 예수를 영접해서 다시 재결합을 한것이죠.
가정이 다시 회복되는 모델 보여 주시고 아내 적용하고 회사에서도 짤렸지만 다른곳 가실수 있지만
이 기간 양육 받는 기간으로 하셔서 잘 되실 거예요. 영적인 일을 하나님게 드리고 있으니까 안 변할 것 같은 사람이 다 변화되는 놀랍죠?
은혜의 말씀을 부탁하노니 파라티테미 내려 놓는 성령의 부탁이 되기를 바래요.
이번주 금요일 송구영신예배는 7시 휘문에서 11시 판교에서 해요. 주일학교 자녀들도 신청하실수 있겠습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각오를 많이 합니까 그런데 우리의 내 각오와 성령의 각오가 무엇이 다른지
오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나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저는 이제 항상 오늘 한 영혼에게 말씀이 들리기를 원하는데 한 영혼이 처음 오시는 분이 들었을 때 내 설교가 얼마나 어려울까 우리는 이제 쭉 성경 강해를 하니까 듣지만은 그래서 정말 오늘 한 영혼에게 말씀이 들리기를 원하고처음 오신 분이 오늘 우리들교회가 얼마나 추울까? 이게 정말 평소보다 훨씬 춥네요. 오바를 입고 오라고 좀 부탁을 드릴걸. 각오는 오늘 본문의 원어로 언제든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있음을 준비하는것 이예요. 어떤 준비라고요? 내 본향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준비 입니다. 2021년 마지막 주일이예요. 이제 사도바울도 마지막 여정의 오릅니다. 이제 성령의 전송을 받고 닷새 남은 이 마지막 주일에 이 각오를 하라고 해요. 각오는 새해 첫날에 하는 거잖아요? 오늘은 성령의 각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볼게요.
첫번째 복음 때문에 영적 화해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7절)
7절 -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우리가 지도 좀 보겠습니다.

저기 두로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제 두로에서 돌레마이로 갔어요. 이제 돌레마이하고 가이사랴 까지 보셨습니까? 오늘의 배경은 돌레마이하고 가이사랴 예요. 바울이 저쪽 이제 아시아 대륙에서 쫙 배를 타고 지금 이제 그 옆에 왼편 구브로를 두고 이제 3차 전도 여행의 이제 마지막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들어가기 직전의 여정이 오늘의 여정이예요 두로, 돌레마이, 가이사랴 다 보이시죠? 오늘의 설교의 배경입니다. 이제 우리가 참 인생은 정말 이게 결정 하기가 어려워요. 그렇죠? 그런데 이 결정이 분별이 되는가? 내 고집인가? 세상에 분별이 정말 어려운데, 비판인지 고집인지 분별 해야 하는데 그렇죠? 또 이제 비판을 하는 건가? 그러니까 이게 분별을 잘해야 하는데 이 분별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21장 들어와서 사도바울도 너무너무 분별하기 어려운 점입가경으로 분별이 지금 어렵습니다. 정말 오늘 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 우리가 결박당한 예루살렘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도착했다는 거예요. 바울의 우리공동체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뭉클 합니다. 오늘 이 7절을 여기 앞에 지역을 하면 그리고 우리들이 그 여행을 마쳤을 때이다 그러니까 원문에는 우리가 1인칭 복수 대명사를 썼어요. 그러니까 드디어 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인 우리가 1,2,3차 기나긴 전도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이제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이제 거기 들어가기기로 했잖아요.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에 도착을 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울의 우리 공동체가 도착을 햇다는 거예요. 우리 듣기만 해도 마음이 뭉클한 우리 입니다. 지난주 오직 이 예루살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가 유대인이었을 때 그 시절에 핍박했던 이방인인 이 두로의 제자들에게 화해를 청하죠. 그리고는 오늘 이제 돌레마이에 도착을 합니다. 근데 돌레마이 교회에도 예전에 자기에게 박해를 받은 피해자가 당연히 있었겠죠. 그래서 오늘 안부를 전했다는 거는 형제들에게 일일이 포옹을 하고, 진심으로 안부를 물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돌레마이에서는 하루 만에 또 화해가 이루어 지게 해주셨어요. 감사하게도 하루만의 화해도 있게 하시네요. 그래서 바울은 이제 늦지 않게 예루살렘을 향한 육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그것으로 끝이 아니예요. 가장 어려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다음 목적지 가이사랴가 있는 거예요. 8절입니다. 8절 ampndash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절 ampndash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자, 가이사랴는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에 이어 두 번째로 자주 언급되는 황제의 도시고요. 전략적으로 아주 가이사랴는 중요한 요새 도시인데요. 유대와= 사마리아와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예요. 따라서 이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로마 총독부도 여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 집사가 여기서 전도해서 교회를 세워 돌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뭅니다. 근데 누가는 바울이 이빌립의 집에 들어갔다고 강조를 해요.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무엇입니까? 바울이 뭔가 들어가는 적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기를 핍박했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듯, 또 이제 살려주라고 루디아 집에 들어가듯 그렇게 자기를 죽이겠다고 소동이 난 에베소 극장에 들어가려고 하듯 이 바울은 빌립 집사의 집에 이제 들어가고자 합니다. 왜일까요? 바울에게 너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예요. 그 이방인인 두로의 제자들과 차원이 다른 전도자 빌립이었어요. 자 빌립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 중 순교한 그 스데반에 버금가는 일꾼이예요. 예수님의 사도인 빌립도 있잖아요. 그 열두 사도 중에 하나인 그 빌립과 구별하기 위해서 일곱 집사는 이때는 전도자가 가장 명예로운 명칭이었어용. 그러니까 그 전도자 빌립은 그 당시에 아주 최고의 칭호였습니다. 기록된 유일한 집사 인데요. 그래서 스데반 순교 후에 그 전도사역이 기록된 유일한 집사인데요. 스데반이랑 너무 가깝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스데반을 죽였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지 않았겠습니까? 빌립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러니까 그때 그 사역하는 곳곳에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끌어가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그가 그래서 빌립을 볼 면목이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미 두 차례 가이사랴를 지금 방문한 적이 있어요.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피신하면서 중간에 가이사랴로 들렸어요. 그런데 그때 빌립을 만났다는 기록이 없어요. 만났더라면 아마 누가가 반드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무리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고 뚜렷한 바울도 화해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화해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데 그 타이밍이 안왔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제 인생의 여정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둘은 성령의 메이기를 작정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정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유대인에게는 바울이 배신자리고, 기독교인에게는 잔멸자, 바울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배신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잔멸자 예.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거는 생각만 해도 지금 오리는 저리는 곳이예요. 그러나 목적지가 너무 분명하고 게다가 예루살렘으로 지나는 길에 가이사랴가 있어요. 피할길이 없어요. 대 사도바울도 힘든 여정이 있어요. 사도바울도 이렇게 힘든 만남이 있네요. 예. 그러니까 이제 두로와 돌레마이에서의 화해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왔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예루살렘 교회의 전설적인 전도자 빌립과 화해를 해야 하는 거예요. 예. 전 정말 성경은 경영학 교과서고, 정말 정치 교과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두가 이 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9절-10절에 보니까 9절 ampndash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절 ampndash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그 빌립과 화해를 해야해요. 그 빌립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누가가 빌립의 네 딸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신앙으로 잘 양육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근데 그 딸들이 다 예언자래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설교했던 요엘서의 말씀 빌립의 가정에도 요엘서의 말씀 내가 내 영을 내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이루어진것들 강조하는것이죠. 그러니까 빌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바울 자신을 보니까 배신자 잔멸자로 알려진 바울은 자신을 지지해주는 자 가족 하나 없이 지금 홀로 다니는데 가는데 빌립은 전도도 잘하고 온 가족이 이엃게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더 위축 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이 위축 되었을 것 같아요. 예, 그래서 바울에게 환경을 이렇게 끝없이 겸손하게 하시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컨셉인 것 같아요. 10절에 보니까 여러날 머물렀다고 해요. 지금 예루살렘에 가느라고 시간이 없어요. 일각이 여삼추인데 여기서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일각이 여삼추 인데 충분한 시간 함께 보냈어요. 두로에서 일주일 이었잖아요. 여기에서는 몇일인지 모르게 머물렀어요. 스데반 사건때 어떻게 머물렀는지, 왜 입니까? 빌립과의 화해는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여러날 머무르면서 그래도 서로 전도자잖아요? 스데반 사건 때부터 쇠심했던 일, 다소로 피할 수 밖에 없었던일, 광야에서의 훈련, 바나바가 성령의 소개를 해주어서 안디옥 교회를 섬기게 된 일, 세 차례 전도여행 다녀온거 이방인들이 어덯게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는지 그래서 20년 이상 어떻게 치열하게 달려왔는지 그 사명의 인생을 빌립에게 간증을 했겠죠. 우리는 성경의 행간을 읽어야 되잖아요. 빌립도 마찬가지겠죠. 스데반 순교 후에 어떤 박해를 겪으며 가이사랴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동안 어떻게 이 지역의 교회를 돌보며 지켰는지, 유대인고 이방인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고 잇는지 이제 목회 현장에서 겪은 여러 사건과 기적들들 간증햇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서로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으면서 살아낸 이야기를 나누니까 한 성령임을 느끼며 저절로 마음이 이제 녹아 내렸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해석이 돼야 해셜이 되는데 해석된 인생을 서로 나누니까 서로를 향해 쌓인 모든 부정적인 마음들도 다 해석이 되어서 이제 풀어졌어요. 성령의 화해가 이우러졌을 거예요. 그래서 빌립의 집이 화해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 한 해 동안 가족이나 지체들에게 서운함이 쌓여 힘드세요? 닷새 남았는데 화해의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을 말씀으로 해석하기 바래요. 오죽하면 우리가 쭉 읽어오는 본문이 오늘 성령의 각오 겠습니까? 그리고 진솔하게 나누세요. 그 나눔 가운데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언 마음이 녹아내리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힘들다고 헤어질 생각 마시고요. 같이 들어가서 머무세요. 적용 질문 드릴게요.
적용
올해가 가기 전 복음 때문에 화해의 자리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포옹하며 진심을 다해 안무만 물어도 시작됐다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 받아주지 않아도 그냥 안부만 묻는거 그것만 해도 성령의 역사 입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화해가 될 수 도 여러 날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거 인정하셨으면 좋겠어요.
포옹하며 진심을 다해 물어도 화해를 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마음이 먹는 것 중요해요. 자 이제 성령의 각오는 이 복음 때문에 화해하는건데
두번째 환경에 장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0절~11절)
환경에 장사가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제 빌립의 집에 머무는 동안 선지자 아가보가 그 집을 방문합니다. 10절~12절이예요.
10절 ampndash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1절 ampndash 바울이 대답하되 여려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쑤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21장 전체에 모두 바울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래요. 너 왜 죽으러 가냐고 지금 이럽니다.
아 그래서 바울이 빌립의 집에 머무는 동안 아가보가 머물렀어요. 이아가보는 아는 바와 같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 천하의 큰 흉년이 들 걸 예언한 유명한 선지자 사람이죠. 그런 훌륭한 선지자가 너무도 생생하게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이 띠 임자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니까 누가를 포함한 이 바울의 동행자들도 다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했다는 것이 파라칼레오 입니다. 누가를 포함한 이 바울의 동행자들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함께 권했다고 합니다. 12절의 이 권하니가 그 유명한 파라칼레오 인거예요. 같이 외쳐 주는 거예요. 제발 가지 말라는것이죠. 지금 그냥 내 편이 돼서 막 외쳐주는 거예요. 바울을 둘러싸고 가절한 마음으로 제발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지금 함께 외쳐 주었다는 것이예요. 이게 전부 사랑 아니겠어요? 그러니 정말 21장 전체를 보면 바울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자기가 양육 시켰던 에베소 교회 장로들도 눈물로 막 만류했겠죠. 제자들도 만류했잖아요. 그리고 이제 자기가 정말 잔멸했던 사람들이 피해가지고 이방의 두로에 가서 교회를 세웠는데 그 화해를 해야 하는 두로의 제자들도 겨우겨우 일주일 만에 화해를 하고 나니까 그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다 만류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래도 이방 지역에 있는 교회 잖아요. 그런데 이제 이방인하고 예루살렘 교회하고 이제 합쳐야 복임이 하나가 될 것인데 이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데 거물급 출신의 빌립과 화해를 했잖아요. 그곳 출신의 거물급의 전도자 빌립과 화해를 했는데 그런데 이 빌립이 만류를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어려운 것 아니예요? 그리고 빌립에게는 네 딸이 있는데 모두 예언자예요. 또 처녀래요. 우리는 이제 큐티를 하니까 늘 이렇게 생각해야 되잖아요. 왜그럴까? 그런데 특별히 이런 이야기 나오면 넘어가지를 못해서 고린도전사 7장 34절 ampndash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환난날에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를 구별해서 설명 하더라구요. 시집가지 않은자 노처녀 과부 독신주의 이겠죠? 처녀는 결혼을 하건 안하건 주님께 받쳐진 몸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빌립의 딸들이 다 처녀 라고 하네요. 저는 시집 가지 않은자 이죠? 결혼을 햇지만 온전히 주를 위해 드렸기 때문에 남편과 같이 약속 하에 나는 부부 관계를 안한다 그런 처녀도 있다는 거예요. 같이 살면서 그래서 네딸이 처녀로 예언자로 자리 매김 했다는 것 대단하지만 약간 이상하죠? 초대교회에서는 그때 워낙 믿는 사람이 없으니까 뭐 이런 걸 다 인정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 당시 빌립의 딸들의 명성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결혼했는데 오늘부터 빌립이 자녀를 너무 잘 키워서 이렇게 사명을 감당했는데 세상에 이 딸들이 눈물로 예언을 해주면서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는 거예요. 또 아가보는 모두가 몸을 사릴 때 천하의 큰 흉년이 들리라 하고 이 하기 어려운 흉한 예언을 했던 아주 이 정통 유대인 선지자예요. 결박과 환난을 당한다고 생생하게 알려주었어요. 그는 바울을 보려고 온게 아니예요. 바울과는 초면이예요. 예언하러 온 아가보가 예언을 하는 딸들을 만나러 온 거죠. 한마디로 예언자 동호회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가 와서 빌립의 집에서 바울을 만난거예요. 이제 말뿐만 아니라 막 손과 발을 묶는 행위를 보이면서 막 생생하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결박과 환란을 보여주는 거예요. 근데 이제 말로도 듣다가 눈으로 보니까 그 대단한 선지자가 결박당한다고 그러니까 강도가 확실하게 느껴졌겠죠. 그러니까 이 딸뜰이 에베소 장로들 처럼 예언의 은사가 없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텐데 지금 빌립과 처음 만나서 여러 날 회포를 풀며 화해가 다 이루어졌는데요. 처음 만나서 여러날 회포를 풀며 어렵게 바울과 화해가 이루어 졌는데 이거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 빌립과 딸들이 만류를 한 거예요. 성경이 예언하는 자라고 인정하는거 보면 이거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바울과 그 일당들 바울과 우리 다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는 동행들도 다 같이 술렁거리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이 어찌해야 합니까? 이거 분별해야 합니까?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다 막아요. 지금 에베소 장로도 막고, 두로도 막고, 그냥 빌립도 막고, 딸도 막고, 아가보도 막고 지금 다 막아요. 거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정말 우리는 그래서 큐티를 해햐 하는 거예요. 행간을 읽어야 되잖아요. 사람 마음을 그러니까 이렇게 잘 읽어야지 전도도하고 사업도하고 연애도 하고 다 할거 아니예요? 왜 그렇게 다 막았을까? 빌립의 사역은 사도행전 8장에서 우리가 자세히 봤어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리라 했잖아요. 그렇게 말씀을 들었는데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아주 너무 무시하는거예요. 혼혈족이라고 이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어휴 이거는 그냥 따라갈 자가 없어요 그래서 사마리아를 취급도 안하는데 이 사마리아에 빌립이 복음을 전했어요. 기억나시죠? 그래서 그곳이 다 복음화 돼가지고 이제 잘 살 수 있었어요. 거기서 정착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또 광야로 가게 하셨어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서 이사야 43장으로 전도를 했었죠. 그러니까 이 빌립은 최초의 이방인 최초자 전도인이예요. 대단한 전도자예요. 이 전도자의 칭호가 노벨상이예요. 그런데 그 빌립이 8장 가장 마지막에 보면은 가이사랴의 이르니라 하고 사라졌어요. 그리고 오늘 21장에 등장하는 거예요. 8장에 나오고 그러니까 무려 30년을 지나도록 빌립에 대해서 소문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 think를 또 해봐야 되잖아요. 생각을 해봤어요. 빌립은요. 딸이 넷이 살 만큼 집이 컸나 봐요. 게다가 바울과 일행이 한 열 명쯤 되는데 그 사람들도 다 묵을 정도고, 아가보까지 와서 묵을 정도니까 예, 여기 가이사랴가 황제의 도시잖아요. 그래서 이 30년동안 딸 넷 키우면서 굉장히 그 풍족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큰 집이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전도자 칭호를 가지고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나 봐요. 예 그래서 이렇게 빌립 집은 유명한 예언가 딸 아가보 바울의 동행들까지 가지 말라고 파라 칼레오 함께 소리치며 하면서 말렸어요. 그런데 에베소 장로나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을 사실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중에서 빌립 한 사람은 좀 바울을 알아줘야 되지 않아요? 빌립이 못 알아주면 그거 누가 알아줍니까?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만류와는 너무 차원이 다른 기가 막힌 만류인 거예요. 그러니까 환경에 장사가 없다고 빌립도 가이사랴의 이 안정된 삶에 익숙해서 도리어 이 십자가의 복음 전함이 싫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딸뜰에게 있는 이 예언의 은사는 이 맡길 예 미리 예 자 말씀 언자로 말씀을 맡겼는데 지금 그 말씀의 해박한 지식으로 고난을 피하라는 예언을 한 거잖아요. 구속사로 예언을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안온한 환경에서 어제 우리 성탄에 초등학교 출신 성탄예배 안오셨죠? 아덴의 이 기가 막힌 엘리트들은 말씀이 안 들린다고 그랬잖아요. 안온한 환경에서 특별한 고난 없이 처음부터 예언하는 딸들로 길러졌다면 그럴 수 도 있겠어요. 예. 저는 어저께 우리 취학부 성탄 뮤지컬에 너무 은혜받아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걔가 5학년인데 어떻게 그렇게 카리스마 있게 사도행전을 좔좔 외우면서 예. 그런데 이들이 다 바울 사랑하니까 죽을 거니까 가지 말라 그러잖아요. 그러나 빌립 정도 이 딸들 정도면 바울을 따라나서든지 하는 사람이 한 명은 나와야 되는게 아닌가? 바울을 격려해야 되잖아요. 근데 가장 믿었던 바나바도 바울을 떠났잖아요. 그래서 지금 여행하면서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했는데 이 전도자 빌립 역시 함게하지 못하네요. 이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처음에는 다 열심이었는데 다섯 교회가 변질됐어요. 변질되지 않은 교회는 너무나 옥에 갇힌 서머나 교회하고, 너무 마이크로 작은 빌라델피아 교회만 칭찬을 받았어요. 우리의 말씀 묵상의 꽃은 십자가를 지는 적용이예요. 그래야 영혼 구원이 따라 오는 것이예요.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없고 환경이 겸손한 사람만 겸손하다 이 말이 맞아요 그래서 우린 정말 끝없이 안주하지 말고 깨어 있어야 되는데 인간은 그렇게 있기가 어려워요. 자, 우리들교회 엄마들은 이런 자녀를 돌봐요. 우리 아들은 하루종일 밥 한 그릇 먹고는 그것도 다 토하고 음식 냄새도 싫다고 창문을 열고 자기 방 전신 거울을 주먹으로 쳐서 산산조각을 냈다고 해요. 왜 그랬냐고 했더니 거울 속에 자기가 보고 있길래 보기 싫어 그랬다고 화가났다고 또 한 엄마는 우리 딸이 전화해서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아빠랑 이혼하라고 아이들을 분노와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네요. 여러분 빌립의 딸들이 예언한다고 했는데 이런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와 처녀가 예언하는 거는 큰 차이가 있지 않겠어요? 큰 차이가 있지 않겠어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나는 어떤 호칭이 듣고 싶고 익숙해 있습니까?
전도자입니까? 풍족한 가장입니까?
이성령의 각오 이제 세번째는 내이름이 아니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13절입니다. 다 말렸잖아요.
세번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각오해야 합니다.(13절)
13절ampndash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막는 것을 이제 그쳤대요. 이제 정말 여러분 이거 누가 분별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믿음은 분별이예요. 똑똑함은 이 분별이예요. 근데 박사를 한다고 분별하겠습니까? 정말 정말 분별이 어렵겠다 나 같아도 이거 어떻게 분별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지 말라고 다 그러는데 바울은 단호하게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내 마음이 분쇄되듯 완전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지금 아프다는 거예요. 나를 격려는 못할 망정 너무 그래서 그냥 올라갈 의지까지 너희들이 어떻게 이렇게 뺏을 수 있느냐? 지금 바울이 마음이 상했다고 그래요. 자 이거는요. 질타한 거예요. 질타 이때라도 빌립과 딸들 중에 이 고백을 듣고 돌이켜얐어야 돼요. 전도가 추억으로 남아 있으면 안돼요. 전도자의 칭호는 가지고, 바울과 같이 떠나는 것은 귀찮고 싫을 수가 있죠. 사단은 한 가지 포기하면 두가지 요구합니다. 주일 예배에 한 번만 나가지 말라고 하는 걸 들어주면 그 다음 주에는 놀러가자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식이다 뭐다 주일 날마다 만들어 냅니다. 결국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바울이라고 익숙하고 편한 환경이 왜 싫겠어요? 하지만 바울은 내 이름과 풍족한 환경을 위하여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 한다고 해요. 마음을 굳게 먹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바울이 굳세고 잘나서 그래요? 바울은 원래부터 믿음이 좋아요?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은 누구보다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그러니까 자기 죄를 보는 거는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힘들다고 그랬기 때문에 이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 그냥 이 모든 것의 리더십을 갖게 되는 거예요. 즉 바울이 인간적인 대단함과 의지를 가지고 희생하며 일사각오를 했던 시절이 있어요. 언제입니까? 바울이 그냥 자기의 학식과, 힘과 의지와, 열정으로 교회 열심히 다녔죠.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잔멸할 때 아주 일사각오를 했던 그러니까 이제 지금 그때는 바울이 결박당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그 사람 바울이 결박했죠.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묶고, 가두고, 핍박하며, 심지어 살해까지 했어요. 이처럼 자기 생각이 일사각오는 무서운 거예요. 하지만 바울이 변화된 시점이 있죠. 언제입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예쑤님을 만났을 때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잔멸하려고 공문까지 받아가지고 가는 그 길에 사도행전 9장은 기록해요. 그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둘러 비춤에 소리가 있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바울이 뭐라 그럽니까 주여 누구시오니까? 주여 당신이 누굽니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러니 대답하되 나는 네가 박해하느 ㄴ예수라 이때부터 바울이 변화되기 시작했죠. 언제부터요? 그 이름을 묻고 그 이름을 안 시점부터 나의 이름을 위해 살다가 예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그때부터 그 이름을 알던 그때부터 그 이름을 알던 그때부터 바울이 변했어요. 어떻게 변화 됩니까? 핍박을 하던 자가 핍박으 당합니다. 논쟁하던 자가 간증을 합니다. 결박하던 자가 결박을 당합니다. 죽이던 자가 몇 번이고 죽임의 위협을 당합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위해 죽기로 각오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이것이 나의 각오에서 성령의 각오로 변화되는 것이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당하고 죽기까지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고백은 그때부터 달라졌어요. 나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저로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그러니 성령의 사명을 나 같은 죄인에게 맡겨주셨는데 내가 죽기를 각오하는 것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렇게 자기 죄를 보는 한 사람이 좀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 그런데 자기 죄를 보는게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어려워요. 바울을 보세요. 그러니까 21장에 벌써 이 말이 몇번 나오는지 몰라요.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합니다. 에베소에서도 이 말을 햇고 두로에서도 가이사랴에서도 이것이 바울의 한결 같은 답이예요. 그러나 빌립과 딸들은 바울의 이런 고백에도 따라나서지 않아요. 빌립은 이제 노년이예요. 바울도 노년입니다. 같은 복음이라면 지금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무섭습니까? 근데 바울의 목적이 뭐예요 지금 이타적인 거잖아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거잖아요. 이 전도자 빌립이 따라만 가주어도 얼마나 격려가 되겠습니까? 이게 막 제가 체휼이 되는 거예용. 그러니까 바울이 마음이 무너져 내리듯 절규하면서 나는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막 질타에 가까운 것인데 마음이 상했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울면서 말리면 뭐해요? 따라나서야지 예루살렘행은 보통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빌립과 딸들은 따라나서지는 못해도 막을 일은 아니예요. 딸들이 뭐라고요? 엄청난 성경 실력으로 이 고난을 피하는 길을 예언해주니까 바울은 그냥 마음이 찢어집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 가면서 이 큐티 사역이 좀 이제 그냥 좀 그 베델 교회가 이 큐티인을 쓰신다고 할까? 그럼 너무 좋겠다 했는데 거기서 쓴다고 그래서 제가 제일 큰 교회 아니예요? 너무 진짜 격려를 받았어요. 예. 이게 바울하고는 비교가 안되지만은 그냥 쓰신다는거 말씀 묵상 교재로 쓰신다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바울의 마음이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예. 빌립 한 사람 정도는 그때까지 늙었는데 뭘 더 이상 바랄게 있어요? 노후보장하려고 거기 가이사랴에 남아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바울은 빌립과 화해한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뭘 빌립한테 더 바라겠어요? 그래도 실낱 같은 마음으로 빌립은 좀 내 편이 돼줘서 같이 간다고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아무리 사라져도 빌립은 초대교회에서 불세출의 전도자예요. 여러분 지금 빌립을 욕하는게 아니예요. 어쨌든 바울 편에서 보면 자기는 생명을 버리기로 했지만 지금 마음이 상한다고 했짢아용. 그래서 오늘 그러면 빌립 때문에 누구 때문에 시험이 들 수도 있찌요 그런데 이게 빌립 때문에 시험이 들어서 그러면 영ㅇ적으로 다운됐습니까? 바울에게 주신 은혜는요. 그런 싸구려의 은혜가 아니예요. 미워서 마음 상한 게 아니예요. 복음 때문에 애통한 것이죠. 근데 우리는 정말 바울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은 믿으면서도 정말 별것도 아닌 말에 그냥 시험이 들어요. 그래서 이제 목장 바뀌고, 이제 연말 연시에 그래서 여러분들 너무나 시험이 들어서 떠나려고 그래요? 별것 아닌 일에 시험이 들면 우리가 받은 은혜도 별 것 아닌 이 싸구려 은혜로 여러분이 전락시키ㅣ는 거예요. 내가 이런 은혜를 바울이 받은 그 은혜를 생각하면 어떻게 사람 말에 시험이 들어서 그렇게 넘어질수 가 있어요. 내가 죄인인데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쓰러지고 그냥 아 놀라 이래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음까지 각오한 바울은 이런 인간적인 호소에 설득당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바울은 혼자고 우리는 여럿이니까 우리 듯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바울을 붙잡아두겠습니까? 세상 방법은 그렇게 할걱예요. 다수결 이니까 들으라고 내 주위의 어떤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이 성령의 각오가 내각오로 희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드디어 우리가 그 막는 거를 그쳤다고 해요. 그리고 바울은 이제 떠나는 거죠. 어, 그래서 이렇게 막 제 마음이 참 이게 복음을 전하고 그러니까 이제 이 결혼은 절대로 헤어지면 안돼요. 정말 아까 뭐 별의 별 그러니까 헤어졌다가도 우리들교회는 다 오면 이제 합치잖아요. 그러면은 다들 이제 막지요. 니가 왜 그렇게 하고 사냐? 헤어져라 헤어져라 이걸 혼자서 막으려고 그러면 이건 또 거꾸로잖아요 영적인 적용을 지금 하셔야 되는게 그게 있잖아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는 각오는 손해보는게 아니고 내 본향 천국에 들어갈 최고의 준비가 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의 각오예요. 우리가 묶일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고 내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이 땅이 끝이 아니예요. 나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음은 저 천국에서 시작하는 최고의 준비이기에 이것이 성령의 각오예용. 끝이 시작인 거예요. 그래서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잘 결박 당해가야 합니다. 부모가 싫다고 부모의 결박을 자르고, 자식의 결박을 자르고, 결혼 생활이 환란과 핍박이라고 그 묶인 끈을 잘라내서는 안됩니다. 직장 생활이 결박과 죽음이라고 묶인 끈을 잘라서도 안됩니다 옛날에는 내가 자르고 선택했다면 이제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잘 묶여가야 합니다. 이것이 음란하고 악한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최고의 준비이고 잘 결박당하고 잘 죽어지는 것이 성령의 각오예요. 그러니까 결혼 생활에 잘 묶여 있으라고 그런데 요새 이렇게 결혼하는 핵가족 시대에서 아픈 배우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은 잘 묶여 있으라고 그렇게 지혜롭게 그러지 말고 아픈 사람은요. 병원도 가고 약도 먹는 것이 이 믿음으로 예루살렘 올라가는 거예요. 믿음 없으면 병원도 안가고 약도 안먹어요. 제발 일반은총도 귀하게 여기시도 병원 가서 약 좀 먹어요. 근데 서로서로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예 그래서 그거는요 어리석은 거예요. 믿음으로 다 된다 그런거 아니예요 내가 잘 순종하고 여자의 머리가 남자,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지만은 그러나 내가 할 일은 또 해야 되지 않겠어요?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
나의 믿음이 과거의 추억입니까, 현재진행형입니까?
내게 묶어주신 환경에 잘 묶여 가는 것이 천국을 향한 최고의 준비임을 아십니까?
자, 이분은 목사님 인데요. 평신도로 우리들교회에 오셔서 11년을 섬기신 목자님이에요. 목장나눔인데요. 목장 보고서에서 부목자님의 직장 문제로 처방하신 내용을 제가 읽었어요. 그런데 이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죠. 이제 목사인데 여기 와서 평신도로 지금 11년을 계셨으니까 그런데 이제 살짝 말하면 학벌도 최고고 잘 나가다가 할아버지한테 10억을 받았어요. 이분이 그때부터 망햇어요. 그걸로 주식하다가 다 망하고 그래서 왔어요. 목회도 해보시고 다 잘하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예외가 없더라고요. 이제 빌립하고 똑같잖아요? 그죠? 안온해지면은 그렇게 학생운동하고 하려다가도 이 돈이 생기고 이렇게 되니까 할아버지가 글쎄 유산을 아들한테 안 주고 이 손자한테 줘 가지고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받는게 이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예요. 그래서 정체성 혼란을 겪어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못하냐? 제자냐? 라는 딜레마에서 목사라는 직분보다 제자가 먼저인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은 이 목회자의 계급 의식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있었는데
이게 제자로서의 삶으로 환원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거예요. 고집스럽게 나는 목회자니까 가르치고, 양육, 선도하고 근데 우리들교회 11년 동안 아주 초기 절반의 ㄱ간은 해석보다는 해결을 끊임없이 바랐던 것 같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제서야 이 정체성부터 새로이 세팅이 되면서 일상에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먼저 임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고 그래서 계속된 큐티와 성경 읽기를 통해서 내 안에 정돈이 이루어지며 이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자유함이 아닌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자유를 버리게 된 것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분 직장 다니세요.직장에서도 임원이기는 하지만 최고위직이 아니기에 질서에 매여가는 삶을 살고 있는데 직장에서 직무의 십자가, 가정에서 가장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제 사명인 것을 깨닫는다고 금주의 아내의 생일이 있었는데 그냥 이 이벤트 가지고 늘 22년을 싸웠따는 거예요. 그 생일날 이벤트 결혼 기념일 이벤트 그런데 22년 만에 드물게 평안하고 은혜롭게 이를 기념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신기한데 왜냐하면 그건 목사로서 고집스럽게 간직하던 내 욕망이 많이 힘을 잃고 질서 가운데 붙어 가는 삶을 통해 부부관계가 안정감을 누리게 되었다. 종말의식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에서 문화보다느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데 사람들마다 좋은 관계라고 해서 그게 좋은 결과로 연결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조직 자체가 어던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우리들교회 그리고 이 목장이라는 구조가 너무 좋은 구조라는 거죠. 이 관계보다는 이런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이 날마다 물어보고 공동체에서 물어보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이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란 생각이 이제 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뭔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 기복적으로 묻는게 아니라 이타적으로 팔복적으로 물어봐야 되는데 그것이 이제 우리들교회가 아주 좋은 시스템이 돼있다는 거죠. 부목자님의 이 직장 문제의 조바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흔들리는 내 마음이나 감정을 말씀 듣고 기도하고 나누는 이 구조 속에 있다 보면 결국 사명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끼 이 목장 보고서 이거 다 올려서 제가 읽었잖아요. 누가 이 목장 보고서를 읽고 복을받을지보다 이 보고서를 올리는 부목자님께서 가장 큰 복을 누리고 계신 것이다. 이제 그 돈으로 후원하는 거는 가장 간단하다. 직장에서 잘릴 때까지 버텨가며 일상을 살아가고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 내 사명을 발견하는 문제는 별개이니까 억지로 이직을 하려고 들기보다는 있는 동안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다른 부분으로 에너지를 쏟으면 어떨까 한다. 오히려 직장 보다는 부부관계의 정성화, 주일성수, 봉사가 필요한 것 같다.
맞아요 이 예언보다는 일상의 삶이 십자가예요. 바울이 지금 십자가를 부르짖는데 딸들처럼 예언만 하면 어떡하냐고요. 목사지만은 이걸 깨달았다고 일상을 잘 살려고 노력하자 가정도 회복되고 부부관계도 회복되었다는 것이죠. 이 목사님 부부 엄청 참 싸웠어요. 목사님이 너무 잘 나가지고 서로 선남 선녀가 만나다 보니까 저는 이것이 빌립처럼 살다가 아주 이제 이 전도자 칭호 내려 놓고 지금 바울을 따라나섰다고 할 수 있는 적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되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각오는 복음 때문에 영적 화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근데 환경에 장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믿음 좋은 사람들이 다 들러붙어서 지금 바울을 말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우리는 늘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각오를 해야 하는데 정말 바울처럼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든 내 소망이 없다면 이렇게 분별을 하겠어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니까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찬양합니다
하늘 소망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 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 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곳
내 아버지 넓은품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 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기도제목 드릴게요. 올해가 가기 전, 복음 때문에 화해의 자리에 들어갈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풍족한 가정보다 전도자로 각오를 하게 해달라고 내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의 각오를 하게 해달라고
내게 묶어주신 환경에 잘 묶어가는 것이 천국을 향한 최고의 준비임을 알게 해달라고 결혼이나 직장에 잘 묶어가게 해달라고
나의 믿음이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통과 되지 않고
태아 생명법이 제정되며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선량과 정말 한 사람의 지도자를 허락해 주시라고
우리가 오늘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묵상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끝없이 화해하고 죄인됨을 밝히며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 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모두가 눈물로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이엄청난 사랑의 만류를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도리어 저는 그런 사랑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주님, 정말 이 분별이 너무 중요한데 가정이나 회사나 나라나 이 분별이 중요한데 주님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참으로 마음이 제가 상한 일이 있습니다. 주님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 제가 아직 분별이 안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독사의 자식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주여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주여 저를 용서해 주시옵시고 용서해주시옵시고 제가 한 사람 서 있어야 아버지 하나님 제가 서 있어야 교회가 서 있을 터인데 주님 이 분별을 할 수 있도록 그런데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주님 저의 마음 상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는 사랑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내 감정, 내 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각오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감정 내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각오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이 해가 저물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당한 분들 많고 아버지 하나님 이 자리에 나올 수도 없을 만큼 기도도 안될 만큼 마음이 너무 상하고 고통 가운데 일어날 수도 없는 분들 너무나 많습니다. 주여 찾아가 주시옵소서. 정말 안아 주시옵소. 안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기도해 온 이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또 낙태법이 통과되었사오니 태아생명법이 제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일을 위한 아버지 이 일을 위한 한 사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한사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 기도제목
임수빈 박재은
- 예배와 목장 꼭 참석할 수 있도록
김이나
- 같은 상황이 생길까 제가 물어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입을 열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애리
- 자가격리동안에 무기력해지지않고 큐티로 기본을 다질 수 있게
- 이직 첫 출근을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 목장 식구들 각자의 어려움에서 말씀으로 잘 살펴가도록 기도합니다
이은실
-목장식구들 신결혼을위해 기도합니다
-수요일 있을 면접 통번역 테스트 믿음으로 열심으로 잘 준비하도록
- 추운데 목장식구들 건강지켜주시기를
- 신결혼을 위해 만남 준비중인데 성품좋은 믿음의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오찬미
-진로에 대해서 붙회떨감 할수있도록
-부서탐방을 통해 부서섬김을 인도해주시도록
-낮아지고 죽어져서 파라테티미하는 그한사람이 될수있도록
김자영
- 발령이 집 가까운 곳으로 나도록
- 동생의 진로를 이끌어 주시도록
- 성령의 각오를 하는 삶을 살도록
김성은
-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 잘 받고 일반은총 귀하게 여기며 영적 육적 정신적으로 믿음으로 약 잘 먹고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 이번주 가서 하는 검사 주님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세요
-모든 돈을 하나님의 돈으로 여기고 돈을 아껴쓰는 성령의 각오를 할수 있도록 해주세요
윤지혜
- 예수 이름을 위하여 잘 결박 당하고 죽어지는 성령의 각오로 일상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 가정에서 해석된 것 잘 나누고 성령의 화해의 자리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십자가 지혜의 타이밍을 허락해주세요 마음 문을 열어주세요
- 인간적인 호소에 설득당하지 않도록 주님께 날마다 은혜구하며 분별해가기 원해요
- 계속해서 무릎 기도로 중보할 수 있도록
- 선교팀으로 묶어주셨으니 앞으로 모든 사역 주님 뜻대로 이루어 주세요
**목장 공통기도제목**
❤우리는 분별할 수 없으니 공동체에 묻고 또 묻고가는 성령의 각오하도록
❤신교제 신결혼 성령님 인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