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1 성령의 사명
사도행전 20:22-24
추수감사절이에요. 감사해야 되겠는데 말씀으로 이렇게 생각을 안 하면 무서운 열심과 자기 열심으로 지옥을 사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결국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은 감사가 안되고 너무나 비리가 만연하는 영국의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절망해서 성령의 작정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죠. 결국 그것은 목숨을 버릴 만큼 사명의 길이었어요. 그래서 도착해서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사명 그랬는데, 회사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명 선언문을 찾을 수가 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회사 사명 선언문은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요. 또 세계 최고 전기차 회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입니다.가 사명이고요. 우리 나라 대표 전자 회사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 사회에 공언하는 것이 경영 목표라고 합니다. 어떤가요? 회사 크기 만큼이나 사명들도 대단하죠? 오늘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도 저마다 목적을 향해 열심히 살아오셨을 것이에요.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의 사명은 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성령의 안아 주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성도는 성령의 작정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우리는 전도 주일이라고 특별한 선교를 하지 않고 지난 주일에 이어서 사도 행전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정한 사명을 따라 가다가 이제는 성령님이 주시는 사명을 따라가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사명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해보겠어요.
1. 성령에 매이는 것입니다. (22절)
그런데 바울이 성령이 매이기 전 다른 사람들을 매는 자로 살 때는 과연 자유로웠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기 열심에 단단히 매여 있었어요. 그 무서운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매였습니다. 율법에 매이고, 전통에 매이고, 고정관념에 매였기 때문에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주님을 박해했습니다. 그게 우리가 다 자기가 자기를 몰라요. 사람들이. 그게 자기가 정한 자기 사명이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사는데 누가 뭐라고 말해 이게 우리 주제가예요. 바울만 특히 죄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죠. 인간은 누군가 어딘가에 다 매여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환경이 성령의 매임이 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환경이 각자 저마다 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 죄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려면 돌고 돌아야 합니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예요. 우리가 19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실 헬라나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에서 배만 타면 로마로 갈수 있어요. 그런데 고린도에서 로마가 너무 가까워요. 예루살렘 가는 거리의 3분의 1도 안 돼요. 배만 타면 가는데, 그런데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주 로마의 반대 방향으로, 너무나 많은 섬을 거치고 거치고 반대로 정반대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거예요. 돌고 돌아 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인 것 같습니다.
이 매여의 시제가 완료예요. 그러니까 지금 매였다는 게 아니고 이미 성령에 매여 지금까지 쭉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복음을 증언한 것이나 이제 에베소에 들리지도 않을 만큼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나 동일하게 성령에 매여 감당하고 있는 사이라는 것이죠. 그가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물론 기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나 궁핍해졌어요. 헌금 전달이 목적이 아니예요. 그런데 얼마든지 다른 사람 보낼 수 있었지만 돈을 가져다준다니까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면 거기 말씀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데 바울을 절대로 말씀 전하지 못하게 하죠. 그런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은 너희들의 목적도 복음 전파 아니냐? 그런데 내가 교회 개척을 해서 1, 2, 3차 동안에 이렇게 많이 개척을 했다. 선교 보고를 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깨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어요. 선교의 시작과 끝은 예루살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안 통하는 식구, 땅끝 선교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예루살렘에 가야 로마로 갈 수가 있는 거예요. 성경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했어요.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내 형제 친척에게 가는 것이 먼저 가야할 길이죠. 물론 바울이 아무리 가도 바울 생애에서는 동족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도 늘 바울은 예루살렘을 가고자 합니다. 전도 여행 때마다 들리고자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배신했어요.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하면 늘 두려워요. 늘 어떤 일을 당할런지 몰라요. 예를 들어서 내가 죄를 크게 지었는데 그 문제는 해결 안 하고 다른 곳에 가서 아무리 열매가 많다고 한 들 잊을 수가 있겠어요? 내 죄가 없어지지는 않자나요. 그래서 1, 2, 3차 전도 여행을 해도 늘 예루살렘은 부담되는 곳, 가야하는 곳이었어요. 이런 심령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 지난주에 유두고가 살아나도 자기가 한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독대하며 더욱 사명을 위해 기도하고, 또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내일 일을 알아서가 아니고 무슨 일을 당할런지 몰라요. 그래도 예루살렘은 가야해요. 이게 성령의 매임이에요.
저도 결국 목회를 하는 것이 저의 종착역이었다면 처음부터 신학을 하고 목사, 박사를 하면서 로마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평생에 저를 피아노를 전공을 해서 손을 가장 아껴야 할 저에게 걸레질을 하게 하시고 핍박으로 묶여 있게 하신 것이 성령의 매임이었습니다. 지금 성령의 매임은 어떻게 풀어야 되나요? 그야말로 진리의 성령이죠. 말씀 묵상과 순종으로 풀어야 하는데 저도 지나고 보니 늘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수치와 연약함을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전하고 지금 내게 허락한 자리에 잘 매여 있고 13개의 모임뿐만 아니라 허락한 어디서든 저의 회개와 믿음을 증거한 것, 그것이 성령에 매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사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일에게, 중독에게 인생 자체가 매여 있습니다. 그 모든 인생의 상황 속에 진리의 성령님이 딱 들어오시면 똑같은 상황이 성령의 매임이 됩니다. 남편에게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되고, 상사에게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됩니다. 별 인생이 없습니다. 내 상황에 성령님을 모셔 드리면 성령의 매임이 되어서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는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사건마다 내게 은혜로 증언하시는 복음을 내가 가족과 이웃에게 내 삶으로 내 간증으로 매여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명입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적용]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내 사명입니까, 성령의 사명입니까? 돌고 돌아 가야하는 성령의 매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성령에 매여 가야 할 내 사명지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2. 죽어지는 영성입니다. (23-24절)
성령에 매인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증언하다라는 말이 23절, 24절에서 두번이나 나오는데요. 성령의 매인 바울도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러면 증언하신 내용이 무엇인가요? 아니 성령에 매이라고 그랬으면 상을 주셔야 되는데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알려줍니다. 우리 같으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성령님 행로를 변경할게요. 이러겠죠. 하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그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한 끝없는 부담으로 가는 이 길이 후에 이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로마로 데려가는 최고의 환경, 최고의 지름길이 되는 거예요. 물론 죄수의 몸으로 가지만요. 그 지름길을 가장 먼 길을 통해서 step by step 이렇게 가게 하십니다. 그것을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요. 그런데 그것이 성령의 매임이 되면 성령님과 같이 통과하는 거예요. 나의 결정이 성령의 작정이 되면 사명이 되어서 주님이 지켜 주시는 거죠.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서 고참 마귀가 졸개 마귀에게 양육을 시켜요. 얘,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주는 것이란다.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 자기의 방향을 확인하고 수정해버리지. 그러니 인간이 원하는대로 잘 나가게 해죠. 잘 나가게 내버려두다가 한 방에 보내버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면 돈 벌려고 해친 건강을 되찾으려고 번 돈을 다시 쓴단다. 찾을 때가 되면 죽을 때가 돼지. 기뻐하렴.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단다. 이렇게 마귀가 서로 양육을 해주고 받고 그래요.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한가지 일이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무엇이죠? 마치려 함에는마치려 함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예요. 다 이루는 거예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는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여러분들 이 사명은 뭔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예요. 섬기는 거예요. 가정에서 가족을 섬기고, 교회에서 지체를 섬기고, 세상에 나가 이웃을 섬기는 것이 바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마치려 했나요? 무엇을 완수하고자 했나요? 세 가지로 표현을 했는데 첫째는 내가 달려 갈 길. 최종 목적지가 분명하니까 엉뚱한데서 시간을 그렇게 비비고 문질러서 닳아빠지게 지체하지 않아요. 달려갈 길, 달려가야 되는 거예요. 성령의 사명은. 둘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 사명이 우리가 잘 아는 그 디아코니아, 섬김이라는 거예요. 수종 든다는 거죠.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과는 무관하게 주님과 말씀을 수종 든다는 뜻인데 기본적인 뜻은 음식 대접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이런 섬김을 하찮게 여기자나요. 다스리는 것만 대단하게 봅니다. 그런데 이게 몸에 배야 되자나요. 저희 엄마가 태어나면서부터 머리털 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이상한 섬김과 똥내나는 몸빼 바지를 입고 날마다 새벽기도 가서 변소 청소하고 오셨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몸에 밴 그게 있어요. 엄마 따라가지 못하는 거.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받아 섬기는 게 아니고. 그래서 이런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이런 게 아닌가.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죠. 섬기는 것이라고 무조건 굽신거리고 네네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전하고 삶에서는 손과 발을 움직여서 주님처럼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한다 이런 뜻입니다. 한마디로 간증과 적용인데, 적용한 것을 간증하고 간증한대로 또 적용하는 거예요. 이 순환 속에서 메세지도 키워가고, 또 사람도 키워가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에요. 그런데 반드시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데 집에는 돈도 생기지 않고 병든 남편, 또 병든 아내, 시어머니가 있어요. 그러나 거기서 죽어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이에요. 그 환경에 성령님이 딱 들어가면 그 지겨운 시어머니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죽음의 영성이에요. 순교의 영성이에요. 그래서 이거 다 버리고 다른 사람하고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이미 성령의 매임을 한 번 맛본 사람은 이 성경이 인정하는 가장 가치 있는 가정이라는 본성을 중수하지 못하면 이게 굉장히 사람이 참 비참해지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힘들면 이혼을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해. 당신이 살아봤어? 이렇게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결혼할 때 약속했던 원칙을 우리는 지켜야 하는데, 이 원칙이라는 게 말이죠 결혼을 해 보고 아이를 낳아 보면 이 원칙을 지키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요. 원칙은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뭘 하려고 하면은 반드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보길 추천 드려요. 자식은 배반당하기 위해서 키우는 거거든요. 자식이 속을 썩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절대 내 원칙의 옳고 그름을 지킬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러니까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남편, 자녀에게 배반을 당해 봐야 지 원칙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쬐끔 알게 돼요. 사람이 살기 위한 구원을 위한 원칙이어야지 원칙을 위한 원칙은 유대인의 간계에 눌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바람 폈으면, 그거 옳지 않은 거자나요. 그러니까 그 원칙으로 이혼을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고, 부도나면 이혼하고, 암 걸리면 이혼하고 이러면 이거 내 원칙으로는 맞죠. 어떻게 바람을 필 수가 있어. 틀렸죠. 인간이 죄인이라는 거, 이걸 모르니까, 구속사라는 걸 전혀 모르니까. 그래서 그걸 알기 위해서는 꼭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봐야 한다는 거예요. 상식이 안 통하는 게 아이거든요. 모든 사람은 상식적인 관계에서 옳고 그름으로 정죄를 하지만 자녀에게는 옳고 그름 그 상식이 안 통하거든요. 이 깊은 구속사의 깊은 얘기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씨가 있으면 오늘 이 말을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만 있다면, 회개를 경험한 사람은 평생에 무시를 당한다고 해도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반드시 들어갑니다. 당장은 환경이 하나도 안 달라져도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가는 인생임을 깨닫게 되는 큰 것을 건지게 돼요. 그러니까 유대인의 간계 때문에 사울이 바울이 되었어요. 하나님 때문에 죽기로 결심한 군사가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고 예수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 대해 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고통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가게 하는 거예요. 저도 항상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만 전하면 이것만 저 사람이 들으면 이혼하지 않을텐데. 날마다 하루도 안 빠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장례식, 결혼식에서 어떻게든 한 번만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여기 누군가가 와서 예수 믿을텐데. 그냥 그런 마음이 늘 있어요. 그리고 심지어 결혼식에서 조차도 이 복음을 한 번 들으면 왔던 사람들 중에서 이혼하지 않을텐데. 그런 마음이 저한테 있어요. 제가 어제 이 자리에서 주례를 했는데 한 집사님이 아들을 처음 데리고 왔다는 거예요. 청년을. 그런데 이 청년이, 잘도 생긴 청년이 끝나고 저한테 와가지고 너무 주례사가 재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교회를 나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 한사람 때문에 오늘 나는 성공했다. 아유 내가 한 영혼 때문에 오는데 항상 그 한 사람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요즘 결혼식이 밥을 못 먹자나요. 갈 데가 없으니까 다 와서 들으세요. 요새. 그래서 부흥회 같아요. 부흥회. 말씀도 길게 전하자나요.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안 졸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청년이 와서 그랬으면 이거 굉장한 거 아니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그냥 나는 이제 목회를 그만두고 결혼식 목사로, 장례 목사로, 그만 둘 때도 됐는데. 그래서 나는 천국 갈 때까지 할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정말 안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앉아있자나요. 이게 황금어장이지 뭐예요. 날마다 이런 마음이 들고. 또 어디서 만나면 그때 결혼식에서 내 주례사를 듣고 이혼하지 않았다. 너무 감명 깊었다. 막 이런 사람들이 생겨서 결혼식마다, 특히 결혼식에 많이 모이시니까 그런 마음이 저한테 있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했고요.
바울이 심령의 매임을 가지고 성령의 매임으로 인도하셔서 원치 않는 길을 띠 띠우고 지금 가는 거예요. 저는 원치 않는 결혼이지만 끝까지 성령의 매임을 받아서 사명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어찌 교회할 줄 알았겠습니까?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고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내가 복음을 위해 가야할 성이 있어요. 21절에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전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갖춘 것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죽을 일이 기다리게 있겠죠. 주님이 이사야 6장에서 주님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시니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하니 이 백성이 니 말을 안 들을거다. 그러나 남은 자가 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지만 그러나 죽어지는 영성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남은 자가 반드시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적용] 앞날에 대해 너무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내 앞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말씀이 화가 납니까, 무섭습니까,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이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 이해가 안 되실 거 같아요. 지나고 보니 시기마다 내 사명에 매여서 제가 가난을 막 극복하고자 했고, 또 결혼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성령의 사명이 되어서 성령님과 함께 통과하게 하십니다. 성경에 극복이라는 단어는 없어요. 극복은 내가 하는 거고 통과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거예요. 이거를 잘 기억하시기 바래요.
동족의 구원을 위해 바울에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주셨어요. 구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 지 유대인들은 2천년이 넘도록 안 돌아오고 있네요.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때에 되었다 함이 없고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대학에 붙고 안 붙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늘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있으면 그 상황이 사명입니다. 할렐루야. 저 또한 사명의 인생을 살게 하셔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 저도 내 생명을 거둬가셔도 좋으니 남편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매임을 알게 되니까 하루 하루가 사명의 날이었어요.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유가족의 태도를 보면 그분이 구원받고 갔는지 아닌지를 딱 알게 돼요. 저는 남편이 확실히 구원받고 천국 갔기 때문에 계속 사명의 날을 살게 하셔서 30대에 과부가 된 제가 지금 이제 34년을 사명 감당하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어요. 자녀들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그러므로 구원의 선물이에요. 이거보다 최고의 유산은 없습니다.
왜 이렇게 구원, 구원하는지 오늘 오늘 여호수아 6장으로 남편의 구원과 저의 사명 간증을 좀 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6일간 침묵하면서 하루에 한 번씩 돌아라. 그리고 7일째는 일곱번을 돌라.고 명령을 하셨어요. 참 이상한 명령 많이 하세요. 여전한 방식으로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끝이 안보이는 성을 그냥 순종하며 도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고 있으면 드디어 나의 7일, 완전수 자나요. 7일째 새벽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7일째는 일곱번을 돌라고 했으니까 더 말씀에 따라 기도하면서 더 애통하는 마음으로, 아주 힘든 날이죠. 일곱번을 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섯 번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그 날에 한번을 더 채워서 일곱번을 채우라고 하니까 이 마지막에, 6+7는 13이자나요. 이 13이라는 숫자는 내 힘으로 감당 못하는 아주 엄청난 세력을 상징한다고 보면 됩니다. 하루에 한 번씩도 돌기가 힘든데 일곱째 날은 일곱번을 돌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남편이 구원받던 해에는 성령님이 더 기도하게 하시고 생명을 내놓게 하시고 그러면서도 더 잠잠히 더 애통하게 하셨습니다. 남편이 쓰러지던날 아침에도 눈물로 기도하면서 그날 큐티 노트에 우리 남편이 구원이 안 됐어도 말세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인생보다 더 기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썼어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침묵하며 여리고를 돌고 있는데 니가 이래도 돌래? 이래도 돌래? 할 사건들이 막 많았어요.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면서, 내 인생이 오늘 죽는다면 예수로 결론이 나야 하는 것을 날마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큐티하면서 기도해도 더 각박한 일이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은 저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에스겔 3장 큐티할 때도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침묵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에스겔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가신 후에, 그렇게 침묵할 동안에 7년 반의 일을 증거하라고, 그때부터는 잠잠하지 말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게 날짜까지 기가 막혀서, 저는 4대째 모태 신앙이고, 어려서부터 교회 반주 10년 하고 그랬는데, 제가 결혼하고 5년만에 성령이 임했어요. 그때 거듭났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안 내보내고 저를 집에 벙어리가 되고 있으래요. 그래서 에스겔처럼 진짜 딱 저도 7년 반 정도 지나서 남편을 하루아침에 데려가셨어요. 에스겔하고 너무 똑 같은 거예요. 너무 놀랍죠? 그러니 구원을 받으면 다 만세 전부터 성령의 매임인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과 살 때에 이 벙어리 되어서 순종하며 침묵했던 그 일들을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은혜의 복음 전함으로, 사명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바울 사도가 당했던 일들이 조금이나마 있었죠. 남편이 가기 일주일 전에 샴푸를 그냥 제 옷에, 새로 산 옷에 들이붓는 사건이 있었어요. 정말 여호수아 6장의 여리고 사건에서 그 마지막 일곱번 돌라고 한 것만큼 힘든 일이었어요. 아마겟돈 공격처럼, 곡과 마곡의 전쟁처럼 사단이 총 공격한 날이었는데요. 그 전날 밤 소주를 3병이나 마시고, 또 그 한 밤중에 한 병을 사오라고 그래서 제가 몸에 독이 되니까 그만 마시라.고 했다가 제가 밤새도록 고문을 당했어요. 이게 술주사가 있자나요. 우리 남편이. 그러니까 참 모르죠.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면 내가 이렇게 술 마시지 말라.는 그 한마디를 해야 하는지, 안 해야 하는지 끝없이 제가 생각하는 거예요. 침묵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한 마디라도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저절로 침묵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지나고 보니까 또 침묵 훈련시키신 것을 압니다. 마시지 말라고 하면 너무 난리를 치고 제정신이 아니고 때리기까지 하니까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했죠. 믿음이 아니예요. 무서워서 말을 못했어요. 그렇다고 술 마시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면 내가 생명 내놓고 기도한다면서 이게 니가 남편을 사랑하는 거냐? 이런 자괴감이 끝없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말을 한 번 하고 안 하고의 이 훈련은 저에게는 칼날 위의 물방울 훈련 같았어요. 그러니까 이래도 저래도 저는 밤낮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제가 버러지 만도 못한 것 같아서,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지 되는가 때문에 얼마나 생각했는지 그때 진짜 머리가 다 빠졌어요. 얼마나 제가 말도 안 된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 고학생이 서울대학교 피아노과를 가는 그만큼의 천만배의 노력을 해서, 그 서울대학교 가는 건 비교도 안 되게. 제가 완전히 소녀 가장이자나요. 이런 사람이 엄마의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아노를, 그것도 서울대학교를 갔는데 얼마나 제가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거의 천만배의 노력을 해서 제가 가정을 지켰다고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제가 큐티를 하니까 계속 수모당하는 일이 날마다 와도 제가 눈치 보고, 그리고 사랑 없음을 회개할 수밖에 없었고, 회개한만큼 조금씩 자유함을 주셨고, 그리고 회개의 특징이 뭔가 하면 예배가 회복됐어요. 제가 거듭나기 전에는 시댁에서 죽고 싶고, 자살하고 싶고 이 생각을 했는데 제가 혼자 있어도 예배가 회복됐어요. 그리고 도저히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남편이 난리쳤는데 그냥 그 상황에서 사랑 못하고 두려워하는 제 죄가 보이는 거예요. 죄의 직면함이 점점 달라져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런 간증을 전화로 하든지 하면, 이 부끄러운 간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미 버러지 같고 벌레 같은 인생이니까 사도 바울 배설물로 여겼다고 하는 그 말이 딱 이해가 되고, 그래서 나가지는 못해도 이렇게 연결 연결이 되어서 저 나름대로 오늘 여섯 바퀴를 공동체와 같이 돌았자나요. 이렇게 회개를 하니까 공동체를 주어졌어요. 제가 아무데도 못 나가도 이 전화로 공동체가 주어졌어요. 제가 이렇게 간절하게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못 나가서 아무도 친구도 없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회개를 하면 공동체를 주제요 그래서 저절로 성령의 매임이 저절로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게 하시더라고요. 내가 버러지 같은 거를 알게 되니까 그때부터 저절로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게 됐어요. 그러니까 모든 환경은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때부터 사명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내가 남편 때문에, 또 무슨 시어머니 때문에 그거를 못한다. 못한다. 이러시는데 그게 이제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3장에 성령이 나를 일으켜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벙어리가 되며 책망자가 되지 못하리라 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의 말씀은 정말 죽지 않고 살게 해 주셨고, 그 다음에 어떤 경우도 남편의 책망자가 되지 않고 내 죄를 보게 하시는데 내 마음을 강타했어요. 내가 일부러 죄를 볼라고 어떻게 봐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죄를 본 게 여러분들 너무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으세요? 제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바보같은 거예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러니까 날마다 회개할 것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전한 방식의 큐티는 남편 암초를 넘어서 은혜의 바다를 항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깨닫는 게 감사해서 천국이 있다면 이렇겠구나 하면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는 그런 똑 같은 일이 엿새동안 날마다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똑같이 난리 쳤는데 나는 자꾸 회개를 하고. 욥기 7장 17절에 보면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처럼 분초마다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여호수아 6장 16절에 하루 한 번씩 성을 돌다가 마지막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를 돌라는 힘든 명령을 주셨는데 그 적용이 저로써는 남편이 저에게 온 옷에가 샴푸를 부어 댄 날인데, 밤새 술을 먹고 저에게 고문을 하다가 그래도 저는 아침에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교회를 다녀왔어요. 그런데 아직도 남편은 덜 깨어서 저한테 샴푸를 부어 댄 거죠. 그야말로 최악의 날인데 그날 말씀이 에스겔 14장이고, 그 다음에 고린도후서 4장, 에스겔 3장 이 말씀으로 너무도 큰 은혜를 경험한 후에 제가 고린도후서 4장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도 전파한다고 그 말 안 듣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할 일은 바울 사도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도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한다고 그러니까 제가 너무 그냥 깨달아져서 내가 남편의 종인데 아직 종이라는 소리를 못했구나. 주인이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종에게 샴푸를 쏟든지 말든지, 성경을 찢든지, 폭력을 행하든지 무슨 상관인가. 난 남편 주인의 종인데. 그걸 깨닫자 기쁨이 몰려왔어요. 말씀으로 금세 제 마음을 바꿔 주신 주님, 이것이야 말로 기적인 거예요.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밟혀야 말씀이 깨달아지나. 나 때문에 남편이 너무 수고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좀 빨리 깨달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서 그 저녁 예배 갔다가 오면서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 찬송을 부르면서 집에 올라왔어요. 그리고 깨달았으면 적용을 해야 하자나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 고린도후서 4장 말씀대로 남편에게 적용했어요. 우리 남편은 여전히 지금 이제 소파에 누워서 TV 보고 있습니다. 무릎을 딱 꿇고 나 같은 거 하고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난 정말 당신의 종이에요. 저는 남편의 태도가 변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말을 한 게 아니예요. 그냥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했기 때문에 남편의 변화와 상관없이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남편의 마음을 체휼하려고 너무 너무 애썼지만 저는 침묵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 여호수아 6장을 보면서 6일 동안의 침묵 기도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를 본 증인들이 여기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너무 충만하니까, 제가 너무 바보같고, 두려워하고 사랑이 없는 것을 알게 되니까 남편을 미워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이렇게 여전한 방식대로 말씀대로 적용하고 간증을 하니까 그 샴푸 사건 후에 일주일동안 너무 성령이 충만해서 일주일간 전화로 상담을 해도 막 이혼을 철회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그때 일어났어요. 그때 그런데 문자적으로 샴푸 사건 후 7일 째에 남편의 육적 여리고가 무너지는 사건이 온 거예요. 정말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쓰러졌어요.
우리 남편 의사자나요, 산부인과 의사. 그런데 우리는 산부인과기 때문에 그 간기능 검사를 햇어요. 신생아, 간염 보균자 이렇게 다 저기 하느라고. 그래서 신생아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너무나 신선한 시약을 갖다 쓰고, 자기는 대민봉사 한다고 한달에 한 번씩 꼭 검사했어요. 우리 집에는 간으로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급성 간암이라는 거예요. 남편이 제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날마다 벙어리로 침묵하던 저였지만 죽음을 바로 앞둔 그 날 저는 모든 교양을 내려놓고 병원에서 외쳤어요. 정말 일곱 바퀴를 돌고 외쳤다고 했는데, 사형 선고받은 가장 힘든 그날 도리어 회개하고 천국가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 데리고 살 소망이 없다. 밤새도록 외치고 부르짖었어요. 그래서 그 날 드디어 하나님은 남편의 이 대단한 육적인 여리고를 무너뜨리시고 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남편은 주님을 영접했어요. 그리고 5시간 만에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남편은 45살이었고, 그리고 장로님 아들이에요. 너무 건실해요. 병원도 잘 돼요. 죄가 없어요. 그런데 이 사형 선고를 받고 달려오신 목사님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목사님 제 직업을 아십니까? 물었어요. 진짜 경각에 달리니까. 80년대에는 가족계획 지정병원까지 있어서 낙태를 나라에서 장려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이 없어서 교회를 안 나간 게 아니고 죄가 많아서 못 나갔습니다.낙태 수술한 거를 회개하면서 회복시켜 주셔도 감사하고 회복시켜 주시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복음 제시를 듣고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저의 주인이었습니다. 그거를 목사님을 따라서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45년만에 주님을 믿고, 그리고 5시간 만에 천국에 입성을 했어요. 너무나 일촉즉발의 시간이 아니었겠습니까? 참 여전한 방식의 생활 예배의 승리였어요.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데 여리고는 한 번의 외침만으로 무너진 게 아니예요. 성령의 매임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엿새 동안의 침묵의 순종과 벙어리 기도가 이 철벽 여리고를 조금씩 무너 뜨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구절은 6장 전체에서 20절에 딱 한 번 나오는 거예요. 여리고가 무너졌다는 것보다 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입시에 붙고 떨어지고가 문제가 아니고요, 바람난 남편이 제 자리 돌아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요, 어떤 과정으로 돌아왔는가가 중요하죠. 아니면, 돌아오는 것만 중요하면 다들 도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학교 붙으면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그래서 이 과정이 6장 전체에 그렇게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는 거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한번의 결정적인 행동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은 습관이다.라고 말했어요. 하나님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날마다 과정을 보세요. 날마다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고 있나? 말씀 중심으로 살고 있나? 예배 공동체를 앞세웠나? 보시는 것입니다. 제가 남편 구원이라는 여리고 성을 13 바퀴나 돌면서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저의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기에, 착함과 순종과 네네네, 통하지 않았기에 저의 여리고를 돌면서 혼자 착하다고 했던 저는 저는 비겁해요. 사랑이 없어요. 두려워요. 주여 용서해주세요. 주님 저는 여리고를 절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여리고를 함락시킬 수 없어요. 이것이 제가 깨달은 것이에요. 직면하고 싶지 않던 저를, 그 비겁하고 두려워하고 사랑 없고 눈치보고 하는 그거 전부 다 사단의 속성이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예요. 그런데 남편이 밟아주므로 그런 저를 날마다 조금씩 보게 된 것이에요. 그러므로 제 힘은 안되고 하나님이 해주시기 않으면 남편은, 아내는, 우리 어머니는, 내 자녀, 우리 직장 상사는 절대 편화될 수 없는 거예요. 바로 이것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고백이 여전한 방식의 성령의 매임이고 성령의 사명으로 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까지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언제가 아닌 어떻게입니다. 우리는 그 때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주님을 모르면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영접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이 너무나 잘나서, 이렇게 금그릇이라서 그냥 깨지지를 않는 거예요. 죄가 없어요. 바람도 안 펴서 죄가 없어요. 그런데 이 45년만에 정말 너무나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그래도 인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갔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줄 최고의 유산은 그러므로 주님 믿고 구원받는 거예요. 얼마나 그 여리고가 강력했는지 제가 우리 교회 개척할 때 저는 가나안의 길목을 여는 저는 천한 여리고 기생 라합 같으다고, 그런데 이 여리고가 지금 무너져서 우리 남편이 구원됐기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세워진 거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그게 힘든 전쟁이었는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전쟁이 힘들수록 더 큰 가나안이 기다리고, 정말 구원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강퍅한 배우자, 문제 많은 자녀 여리고를 여전한 방식으로 침묵할 때와 외칠 때를 알고 13바퀴를 돌면서 구원으로 취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 간증이 있기까지 내 죄를 직면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지요?
기도제목
예선
부목자 수련회 잘 참석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곳으로 병원 옮기는데 예약 잘 하고 관계 맺은 선생님과 굿바이를 잘 할 수 있도록
동생이 성령의 공동체 만나서 인생의 방황이 끝날 수 있도록
다인
손이 많이 아픈데 영육의 강건함을 주시고 알맞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양교 끝까지 잘 받도록
언니 아기의 머리가 기울어져 있는데 온전하게 고쳐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도록
지향
양육의 시간이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결혼식 13번 돌면서 회개하며 준비하도록
일어나지 않을 일에 걱정하지 않고 매일 말씀 묵상으로 기쁘게 살 수 있도록
은진
공기 바람 잘 할 수 있도록
다리가 잘 치료되고 다음주 트라우마 치료 잘 받도록
매일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 수 있도록
어머니와 건강한 영육의 거리 두도록
보련
이력서 넣어 보기
면접 잘 보고 올 수 있도록 (면접 날짜가 월요일로 변경습니다.)
양교 잘 끝내도록 (결과보다는 과정 중요시하기)
예배의 기쁨이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 수 있도록
현경
학교, 직장, 운전 면허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시작하시고 끝내 주시도록
안 되는 부분이 슬프고 괴롭고 화가 나는데 열 세 바퀴 침묵으로 잘 돌고 귀한 간증이 되어서 나의 아픔을 외칠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간호를 받지 않아서 속상하지만 주님이 치료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목장 위해서 기도합니다.
크리스틴
12월 15일 데드라인 있는데 양육 숙제와 리포트 꼭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신과 가서 좋은 선생님 찾을 수 있도록
치료 과정이 잘 지나 갈 수 있도록
은우
내일 철거 보호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시 마감, 제정, 보고서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붙여 주신 지체들 위해서 계속적으로 중보 하도록
12월에 전시가 있는데 열 세 바퀴 말씀 보며 잘 돌고 나의 여리고가 잘 무너지고 새로운 성전이 잘 세워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