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1.11.21.
본문: 사도행전 20:22~24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제목: 성령의 사명
각자 사명인 줄 알고 살지만, 그것이 성령의 사명이 되지 않아 힘듦니다. 각자 성령의 사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해야겠는데 각자 감사하지 않으면 지옥을 살게된다. 청교도인들은 결국 신앙 자유 찾아 떠났다. 감사 안되며 비리 만연한 영국 기독교인들 보며 성령의 작정으로 신앙 자유 찾아 떠났다. 목숨 내놓는 길이였다. 사명 선언문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도착해서 감사예배 드린 게 추수감사의 유례이다. 사명 그랬는데 회사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명 선언문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을 유명한 커피회사 사명 선언문은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구요. 또 세계 최소 전기차 회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계 전환을 가속화한다. 고요. 우리나라 최고 회사는 최고의 인재와 서비스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가 사명이다. 회사 사명들이 대단하지 않나요?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도 저마다 사명이 있을 것이다. 각자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사명은 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자기가 정한 사명을 따라가다 이제 성령님이 성령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가는 것이다. 우리들교회는 요즘 사도행전 강해한다. 조금 어려우시겠지만, 이렇게 같이 합니다. 성령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성령에 매이는 것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이 성령에 매이기 전, 다른 사람을 매는 사랑일 때 과연 자유로웠을까? 아니다. 그는 자기 열심에 단단히 매여있었다. 율법, 전통, 고정관념 매여서 주님 섬긴다 생각하면서 실제로 주님을 박해했다. 그게 자기가 자기를 다 모른다. 우리가. 내가 열심히 사는데 누가 우리보고 그래? 그게 우리 주제가이다. 그게 자기가 정한 자기 사명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 인간은 누군가 어딘가에 다 매여있다. 예외 없다. 모든 환경이 성령에 매이지 않으면 각자 죄에 매여 있다. 이 죄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려면, 돌고 돌아야한다. 바울의 궁극적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다. 로마도 보아야한다고 했다. 로마는 고린도에서 너무 가깝다. 배만타면 도착하는 것이 로마다. 고린도에서 로마가 너무 가깝다. 헬라나 아가야에서 배만 타면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 로마에서 반대 방향으로 많은 섬을 거치고 간다. 돌고 돌아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이다. 매임의 시제가 완료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매여있다는 것이다. 에베소에서 눈물과 인내로 복음을 전한 것이나, 이제 에베소에 지체하지 않고 가는 것이나 동일하게 성령에 매여 감당하는 사명인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물론 기근으로 너무 궁핍해졌다. 헌금 전달이 목적이 아니였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 갈 수 있었지만, 돈을 준다니 바울의 여행을 막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절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다. 말씀 전문가들이 있는 예루살렘에 어찌 명함을 디밀었을까. 그런데 내가 1,2,3차 전도 여행 통해 교회 개척 많이 했다 하며 예루살렘 교회 꺠우치고자 하였다. 선교의 시작과 끝은 예루살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안 통하는 식구이다. 예루살렘에 가야 로마로 갈 수 있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사람이 내 형제, 가족, 친척이다. 바울도 동족(유대인)의 구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지금도 안 이뤄지고 있다. 이천년 지난 지금도 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늘 바울은 예루살렘을 가고자 한다. 바울은 유대인은 배신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인을 잔멸하고자 한다. 그러니 예루살렘 하면 늘 두렵다. 예를 들어 죄 크게 지었는데 그거 해결안하고 다른 곳에 가서 열매 맺는다고 해서 그게 좋겠는가? 겉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늘 두렵다. 다른 곳에서 열매가 하도 많아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열매가 없으면 늘 생각이 난다. 내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1,2,3차 전도 여행해도 예루살렘은 늘 가야하는 곳이였다. 유두고가 살아나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독대하고 홀로 사명 감당했다.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감사 찬송이 나온다. 그러니 내일 일을 알아서가 아니고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른다. 그래도 예루살렘은 가야한다. 이게 성령의 매임이다. 나도 결국 목회가 종착지였다면 로마로 가는 가장 효율적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아노 전공자인 제게 걸레질로 매이게 하셨다. 매임은 어떻게 풀어야하나? 말씀 묵상과 순종으로 풀어야한다. 저는 지나고보니 수치와 연약함을 공중 앞에서 회개와 믿음을 증거했다. 회개와 믿음을 증거하고 그것이 성령에 매여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부모, 자식, 일 중독에게 매여있다. 그 상황 속에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의 매임이 된다. 별 인생이 없다. 그래서 내 사건에서 성령으로 매여서 사명으로 가야한다. 사건마다 은혜로 증거하는 복음을 내 사명과 간증으로 매여있음이 바로 성령의 사명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내 사명입니까? 성령의 사명입니까? 돌고 돌아 가야하는 성령의 매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성령에 매여 가야 할 내 사명지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2. 죽어지는 영성입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매여지는 게 결국 죽어지는 영성이다. 여기서 증언한다는 것이 23,24절 두 번 나온다. 바울도 성령께 듣고 순종한다. 성령에 매이라고 하면 상을 주셔야할 것 같은데,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끝없는 부담으로 가는 이 길이 바울을 로마로 데려가는 최고의 지름길이 된다. 마게도냐에서 위로 받고, 가야할 예루살렘이고 비전은 로마다. 이 길이, 이 결박과 환난이 로마로 데려가는 최고의 지름길이 된다. 물론 죄수의 몸으로 가게 하시지만. 그게 고통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그게 성령의 매임이 되면 성령님과 같이 통과하는 것이다. 사명이 되어 주님이 지켜주신다. CS루이스의 스쿠루 테이프라는 책에서 고참 마귀가 아래 마귀에게 말한다. 인간에게 절대 주면 안 되는 것이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고통 주면 인간은 길을 수정한다. 그러니 고통을 주지 말고 내버려 둬. 그럼 한 방에 간단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면 건강하려고 돈 벌고, 그걸 찾으려하다 죽는다. 기뻐하렴.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아주 많단다. 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지 않게 여기는 단 한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은혜의 복음 증거를 마치려한다 한다. 중간에 완수하는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사명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닌 섬기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마치려 했나요? 첫째는 내가 달려갈 길, 최종 목적지 분명하니 엉뚱한 곳에서 지체지 않는다. 두 번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디아코니아(섬김)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 높이는 것보다 섬기며 수종 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뜻은 음식 대접(식탁 섬김)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섬김을 하찮게 여긴다. 이게 몸에 배야한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지 않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몸에 익어야 한다. 머리털 나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만 보다 가셨다. 그래서 내가 목사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는 것이다. 섬긴다고 무조건 굽신거리는 것 아니다. 말로 전하고 삶에서는 손과 발을 움직여서 주님처럼 십자가 적용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간증과 적용이다. 간증한 것을 적용한다. 적용을 간증한다. 이 순환 속에서 메시지도 키우고 사람도 키운다. 이 성령의 사명을 하려면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바울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리다. 가정에 가면 병든 남편, 어머니, 시어머니가 있는데 거기서 죽어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이다. 그 환경에 성령님이 딱 들어가면 그건 성령의 매임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살면 좋을 것 같지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가정이라는 것을 본성이라해서 섬기지 않으면 비참해진다. 결혼은 원칙을 지켜야한다. 그래서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다. 집안에서 죽어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이라 한다. 그 지겨운 것이 성령의 매임이라 한다. 그게 죽어지는 성령의 영성이다. 힘들면 이혼해야지 당신 살아봤어? 라고 한다. 결혼 원칙을 지켜야한다. 원칙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뭘 해보고 싶으면, 결혼하고 아이 낳아보기를 추천한다. 아이는 배반 당하기 위해 낳는 것이다. 결코 나의 원칙대로 할 수가 없다.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배반당해봐야지 원칙이 무엇인지 좀 알게 된다. 사람이 살기 위한 구원은 위한 원칙이여야지, 원칙을 위한 원칙은 유대인의 간계에 눌려 있는 것이다. 상식이 안 통하는 게 아이다. 자녀에게는 옳고 그름이 안 통한다. 자식은 상식이 없다. 상식 없는 게 내 뱃속에서 나왔다. 주님이 죽어주신 십자가의 그 원칙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아내와 남편이 들어오는 게 성령의 매임이다. 옳고 그름이 인권이다. 동성애자를 사랑해라 하는 건 죽이는 얘기다. 동성애자는 사랑하지만, 동성애는 죄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는 내 새끼다. 다른 데서 열매 많으면 뭐하나. 늘 돌아가야하는 곳이 내 새끼다. 이 깊은 구속사의 얘기가 어찌 알겠나. 예수 씨가 있다면 이 깊은 얘기를 이해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만 있다면 평생에 무시를 당해도 환난과 결박있는 가정으로 반드시 들어가게 돼 있다. 당장은 환경 하나도 안 달라져도 사명 그 매임 때문에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가는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게 로또다. 이 세상과 하나님의 원리는 비교할 수가 없다. 조금 전에 면접 잘 해서 취직이 됐다 한다. 회사에서 언제 거짓말 해도 된다 생각하냐? 라고 했다. 거짓말은 모두의 신뢰를 깨는 일이기 때문에, 거짓말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해서 도저히 붙을 수 없는 회사에 붙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진실되기 원한다. 다 거짓이기에 교회는 진실을 원한다. 반대 급부로 나가야한다. 하나님 때문에 죽기로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이다. 저도 항상 그런 맘이 있다. 이것만 전하면, 이혼하지 않을텐데 날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장례식, 결혼식에서 어떻게든 한번만 복음 전하면 누가 와서 예수 믿을텐데 늘 그 생각 있다. 심지어 결혼식도 이 복음 들으면 이혼하지 않을텐데 그런 생각이 있다. 한 집사님이 청년을 처음 데려왔다는데, 주례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교회를 나오겠다고 했다고 인사를 했다. 요즘 결혼식이 밥을 못 먹으니 갈 데가 없으니 부흥회 같다. 아무도 다른 곳으로 안 간다. 청년이 그랬으니 대단한 것이다. 나는 이제 목회를 그만두고 결혼식 목사로 그만 할때도 됐는데, 천국갈 때까지 할 일이 많다. 날마다 이런 맘이 들고 그 때 이 결혼식에서 주례사 듣고 이혼 안했다 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런 맘에 저한테 있다. 바울이 심령의 매임으로 성령의 매임으로 띠 띄우고 간다. 제가 어찌 교회 할 줄 알았겠습니까. 십자가 진 환난이 있다해도 내가 복음을 위해 갈 성이 있다. 알콜중독, 분노의 성이 있다.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간다 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갖춘 게 많아서 더 감당할 게 많은 것이다. 친정과 시댁에서는 아무도 안 온다. 목사님 교회에 아무도 안 온다. 남은 자가 반드시 있다.
[적용질문]앞날에 대해 너무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내 앞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말씀이 화가 납니까? 무섭습니까?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지나고 보니 내 사명으로 가난, 결혼을 극복하자고 했다. 성경에는 극복하자는 말이 없다.
극복은 내가 하는 것, 통과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바울 사도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제자들이 이천년 넘도록 아직 안 돌아오고 있다. 복음을 전할 때 되었다함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대하는 가가 중요하다. 상황을 해석할 수 있으면 사명이다. 남편의 생명을 거둬가셔도 좋으니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달라고 했다. 장례식 유가족을 보면 그 사람이 구원 받고 갔는지 알 수 있다. 저도 남편이 구원받고 천국 가서 사명의 날을 살게 하셨다. 남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구원의 선물이다. 최고의 유산이다.
왜 이렇게 구원구원 하는지? 여호수아로 남편과 저의 간증을 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하루에 한번 돌고, 칠일째는 일곱 번 돌라 하셨다. 참 이상한 명령이다. 이게 성도의 삶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완전수 칠일이 온다. 칠일은 더 애통한 마음으로 더 힘들게 돌아야한다. 하루에 한번도 돌기 힘든데 일곱 번 채우라 하니, 마지막에 13은 내 힘으로 감당 못하는 엄청난 세력을 상징한다. 저도 남편이 구원받던 해에는 생명을 내놓게 하셨다. 그러면서 더 잠잠히 애통하게 하셨다. 남편 쓰러지던 날, 남편 구원 안됐어도 말세에 이리 기쁜 인생이 어딨는가 썼다. 이래도 돌래? 이래도 돌래? 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내 인생이 오늘 죽으면 예수로 결론 나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강퍅한 일들이 생겼다. 에스겔 큐티도 너는 침묵하라 하셨다. 벙어리 되라 했다. 칠년 반 정도 지나서 잠잠하지 말라고 사명 전하라고 하더니 딱 남편을 데려가셨다. 에스겔처럼. 신기하다. 벙어리 되어 침묵했던 일들을 지금까지 은혜의 복음으로 전하고 있다. 제게도 바울 사도가 당했던 일들이 있었다. 남편 가기 일주일 전에 새로 산 옷에 샴푸 들이붓는 사건이 있었다. 마지막 일곱 번 돌라할만큼 힘든 날이었다. 아마겟돈 전쟁처럼 곳과 마곡의 전쟁처럼 마귀가 총출동하는 날이었다. 남편이 소주를 3병 마시고 그 몸에 독이 되니 술 그만 마시라 했는데 그게 밤새도록 나를 고문했다. 술을 마실 때면 술 마시지 말라는 그 말을 해야하는지, 안 해야하는지 끝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침묵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안 하는 것이 침묵이다. 그렇다고 술 마시는 것을 두고보는 것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인가하는 끝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회개한만큼 자유함을 주시고, 회개의 특징은 예배가 회복됐다. 도저히 교만할 수 없었다. 내가 버러지라 생각됐다.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이 이해가 딱 됐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매여있는 사람에게 죄 깨달았다하고 그게 결국 사명되게 하셨다. 어느 상황에서도 성령 집어 넣으면 사명이 되었다. 무리가 같이 침묵하며 돈다. 어떤어떤 이유로 교회 못 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에스겔 3장에서 벙어리되면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 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책망하지 못하고 죄 보게 해 주셨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니 날마다 회개할 것 밖에 없었다. 여전한 방식의 큐티는 암초를 넘게 해 주셨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겠구나 천국 사모하였다. 욥기 7장에서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19장 주께서 내게서 눈ㅇ을 돌 분초마다 날 단련시키는 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서울대 간다한들 분초마다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겠는가? 마지막 일곱바퀴 돌라는 힘든 명령 주셨는데, 온 옷에다 샴푸 부어댄 날이다. 아침에 정신 차리고 교회 다녀왔고, 아직도 술이 안깨서 샴푸를 부은 것이다. 최악의 날인데, 그 날에 말씀이 다 기억난다. 그 말 안 듣는 교인들을 향하여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혼미케 한 것이다. 제가 너무 깨달아진 것이다. 남편의 종인데 종이라 말 못했구나. 난 남편 중인의 종인데 생각하니 기쁨이 내게 왔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다. 왜 난 밟혀야만 말씀이 깨달아지나? 그래서 무릎 꿇고 남편에게 적용했다. 여전히 소파 누워 티비보고 있는 남편이다. 남편 마음 체휼하려 너무 애썼지만, 침묵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회개하고 천국가지 않으면 난 살 소망이 없다고 남편이 급성 간암으로 병원 있을 때 얘기하고 남편은 예수님 영접했다. 남편은 경각이 달린 시간 앞에서 목사님 앞에서 낙태죄를 회개하고 천국 갔다. 여전한 방식의 예배의 승리였다. 여전한 방식의 생활 예배는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과정이 6장 전체에 기록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라고 하였다. 남편 구원이라는 13바퀴 돌면서 착함과 순종이 통하지 않았기에 혼자 착하다고 하였기에 비겁하고 사랑없고 두려우니 용서해주세요 저는 여리고를 함락시킬 수 없어요 라는 기도가 나왔다. 여리고성 무너졌다는 것은 딱 한 번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들이 길게 나온다.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나의 죄 된 모습이 다 나온다. 저는 여리고를 절대 무너뜨릴 수 없다. 직면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봤다. 교제할 때 날마다 반복되는 그 습관을 봐야한다. 성령님만이 고쳐줄 수 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이 자기 죄를 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중요시 하나? 예배 공동체를 중히 여기나? 날마다 나를 밟아주니 저를 조금씩 보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힌 결혼 생활에 주님을 알았기 때문에 침묵할 수 있었다. 얄팍하게 내게 잘해주는 것을 사랑이라 하면 안된다. 주님을 만나야한다. 주님을 영접해야한다. 45년 만에 장로님 아들이 부끄럽게 예수님 영접하고 갔다. 왜 불신교제 해야하지 말아야 하나? 무슨 일이 왔을 때, 주님 만난 사람은 자기를 본다. 못 만난 사람은 상대방 탓만 한다. 불신 결혼하는 것은 주님이 사랑한다면 용광로가 바로 기다리고 있다. 자녀에게 줄 최고 유산은 주님 만나게 하는 것이다. 내 주변 환경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닌, 어떻게 이다. 주님을 모르면 사랑을 지을수도 만들수도 없다. 남편이 너무 잘나서 깨지지 않는다. 죄가 없다. 그 남편의 여리고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적용질문]강퍅한 배우자, 문제 많은 자녀를 여리고를 여전한 방식으로 침묵할 때와 외칠 때를 알고 13바퀴를 돌면서 구원으로 취한 간증이 있습니까?
이번 주는 조태헌 목사님께서 목장에 와 주셔서 우리 목장의 교제, 부모님과의 관계, 일 등 관련해서 주옥같은 처방과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지혜로운 말씀과 주옥같은 처방 넘넘감사합니다! 조목사님^^
*기도제목
이지현
1. 벌레만도 못한 내 주제를 깨닫고 나라는 주체를 버리고 가난한 종의 마음이 되도록
2. 가게의 절도사건 앞에 가족이 한마음으로 문제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3. 엄마 건강검진 결과 잘 나오도록
4. 지금 허락하신 가정과 목장의 자리에서 잘 섬길 수 있는 체력도 주시길
김교희
1. 엄마 이모 문제에 대해 침묵할 때와 외칠 때를 분별하고, 성령의 매임으로 13바퀴를 돌며 통과할 수 있게 되기를
2. 가장 적절한 처소 예비해주시고 집 구하는 과정에서 급한 마음 들 때마다 잘 나누고 가도록
3. 부목자 수련회에 은혜 주시고, 알맞은 사람들과 풍성한 나눔과 은혜 있도록
4. 사람의 방법이 전부 아닌 것이 드러난 사건으로 교제/결혼이 힘든 가정을 가진 나의 주제를 알았는데, 절망과 포기로 가지 말고 신교제 신결혼을 사명으로 여기고 소망을 가지게 되도록
류가영
1. 돌고 돌아 먼 길을 가게 되는 신교제와 다리 다치는 사건 통해서 무서움을 내려놓고 감사하기
2. 다리가 예전으로 안 돌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회복해주시길 기도하며 두려움 내려놓기
3. 남자친구 구원
4. 내년 1월에 도보 20분 거리의 근무지로 인사이동 될 수 있기를
5. 어머니와 오랜만에 같이 있는 시간을 감사하며, 어머니와 말씀을 더욱 풍요롭게 나누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