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사명 [추수감사*전도축제주일]
본문: 사도행전20:22-24
설교: 김양재목사님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해야 되겠는데, 말씀으로 생각을 안하면, 무서운 열심과 자기 연민으로 지옥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결국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영국의 청교도들은 감사가 안되고, 너무나 비리가 만연하는 영국의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절망해서, 성령의 작정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목숨을 버릴만큼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해서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회사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명 선언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회사 사명 선언문은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 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이고, 세계 최고 전기차 회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 하는 것입니다.이고, 우리나라 대표 전자 회사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경영 목표라고 합니다.오늘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도 저마다 목적을 향해 열심히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이 시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성령의 안아주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성도는 성령의 작정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자기가 정한 사명을 따라 가다가 이제는 성령님이 주시는 사명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오늘은 성령의 사명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성령의 사명은)성령에 매이는 것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2절,바울이 성령에 매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매는 자로 살 때는 과연 자유로웠을까요? 그는 자기 열심에 단단히 매여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매였습니다. 율법에 매이고, 전통에 매이고, 고정관념에 매였기 때문에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주님을 박해했습니다. 우리는 다 자기가 자기를 모릅니다. 그것은 자기가 정한 자기 사명이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사는데, 누가 뭐라고 말해? 이것이 우리 주제가입니다. 바울만 특히 죄인이라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어딘가에 다 매여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환경이 성령의 매임이 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환경이 각자 저마다 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 죄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려면, 돌고 돌아야 합니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우리가 19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이 헬라나 아가야 지방에 고린도에서 배만 타면 로마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 로마가 너무 가깝습니다. 예루살렘 가는 거리의 삼분의 일도 안됩니다. 배만 타면 가는데, 그런데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주 그 로마의 반대 방향으로 너무 많은 섬을 거치고 거치고 정 반대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돌고 돌아가는 것이 성령의 매임인 것 같습니다. 이 매여의 시제가 완료입니다. 지금 매였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성령에 매여 지금까지 쭉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에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복음을 증언한 것이나 이제 에베소에 들리지도 않을만큼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나 동일하게 성령에 매여 감당하고 있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물론 기근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나 궁핍해졌습니다. 헌금 전달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었지만, 돈을 가져다 준다하니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면 거기에 말씀의 전문가들이 있는데 바울을 절대로 말씀 전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려 한 것은 너희들의 목적도 복음전파 아니니? 그런데 내가 교회 개척을 해서 이렇게 1,2,3차 동안에 많이 개척을 했다. 선교 보고를 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깨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선교의 시작과 끝은 예루살렘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안 통하는 식구, 땅끝 선교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야 로마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내 친척에게 가는 것이 먼저 가야 할 길입니다.물론 바울이 아무리 가도 바울 생애에서는 동족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늘 바울은 예루살렘을 가고자 합니다. 전도 여행 때마다 들리고자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습니다. 예루살렘 하면 늘 두렵습니다. 늘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죄를 크게 지었는데 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서 아무리 열매가 많다고 한들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죄가 없어지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1,2,3차 여행을 해도 늘 예루살렘은 부담되는 곳,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심령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지난 주에 유두고가 살아나도 자기가 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독대하며 더욱 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일을 알아서가 아니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매임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매임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그야말로 진리의 성령, 말씀 묵상과 순종으로 풀어야 하는데, 저도 지나고 보니 늘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수치와 연약함을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전하고 지금 내게 허락한 자리에 잘 매여 있고, 그래서 13개의 모임뿐 아니라 허락한 어디서든 저의 회개와 믿음을증거한 것, 그것이 성령에 매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사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일에게, 중독에게 인생 자체가 매여 있습니다. 그 모든 인생의 상황 속에 진리의 성령님이 들어오시면 똑같은 상황이 성령의 매임이 됩니다. 남편에게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되고, 상사에게 매임이 성령의 매임이 됩니다. 별 인생이 없습니다. 내 상황에 성령님을 모셔 들이면, 성령의 매임이 되어서 사명으로 나가는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사건마다내게 은혜로 증언하시는 복음을 가족과 이웃에게 내 삶으로, 내 간증으로 매여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명입니다.
[적용] 여러분은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내 사명입니까, 성령의 사명입니까? 돌고 돌아 가야하는 성령의 매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성령에 매여 가야 할 내 사명지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2.(성령의 사명은)죽어지는 영성입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3-24절,성령에 매인 곳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증언하다는 말이 23,24절에서 두 번이나 나오는데, 성령에 매인 바울도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러면 증언하신 내용이 무엇인가요? 성령에 매여 있으면 상을 주셔야 되는데,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알려 줍니다. 우리 같으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성령님. 행로를 변경할게요~ 이럴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끝없는 부담으로 가는 이 길이 후에 이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로마로 데려가는 최고의 환경, 최고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수의 몸으로 가지만요. 그 지름길을, 가장 먼 길을 통해서 스텝 바이 스텝 가게 하십니다. 그것을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령의 매임이 되면 성령님과 같이 통과하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이 성령의 작정이 되면, 사명이 되어서 주님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스쿠르 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서 고참 마귀가 졸게 마귀에게 양육을 시킵니다. '얘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주는 것이란다.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 자기의 방향을 확인하고 수정을 해버리지. 그러니 인간이 원하는 대로 그냥 잘나가게 내버려 두다가 한 방에 보내버려~!사람이 얼마나 어리석냐면 돈 벌려 해친 건강을 되찾으려고 번 돌을 다시 쓴다. 찾을 때가 되면 죽을 때가 되지. 기뻐하렴.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단다.' 이렇게 마귀가 서로 양육을 해주고 받고 그럽니다.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한 가지 일이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마치려 함에는이라고 합니다. 마치려 함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다 이루는 것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는 일이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명은 무언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섬기고, 교회에서 지체를 섬기고, 세상에 나가 이웃을 섬기는 것이 바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마치려 했나요? 무엇을 완수하고자 했나요? 세 가지로 표현하는데, 첫째는 내가 달려갈 길, 최종 목적지가 분명하니, 엉뚱한 데서 시간을 비비고 문질러서 달아빠지게 지체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 사명이 우리가 잘 아는 디아코니아-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수종 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일과는 무관하게 주님과 말씀을 수종 든다는 뜻인데 기본적인 뜻은 음식 대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섬김을 하찮게 여깁니다. 다스리는 것만 대단하게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몸에 베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 엄마가 태어나면서 부터머리털 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이상한 섬김과 똥내나는 몸베바지를 입고 날마다 새벽기도 가서 변소 청소하고 오셨기 때문에 제가 몸에 벤 것이 있습니다. 엄마 따라가지 못하는 것,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받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라고 무조건 굽신거리고 네네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전하고, 삶에서는 손과 발을 움직여서 주님처럼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간증과 적용인데, 적용한 것을 간증하고, 간증한 대로 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 순환 속에서 메세지도 키워 가고, 또 사람도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데, 집에는 돈도 생기지 않고, 병든 남편, 병든 아내, 병든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죽어지는 것이 성령의 매이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 성령님이 들어가면, 그 지겨운 시어머니의 매임이 성령의 매임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죽음의 영성입니다. 순교의 영성입니다. 그래서 이것 다 버리고 다른 사람하고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이미 성령의 매임을 한번 맛본 사람은 이 성경이 인정하는 가장 가치있는 가정이라는 본성을 중수하지 못하면 사람이 비참해지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힘들면 이혼을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해. 당신이 살아 봤어? 이렇게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치만 결혼할 때 약속했던 원칙을 우리는 지켜야 하는데, 결혼을 해보고 아이를 낳아 보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릅니다. 원칙은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하려고 하면, 결혼을 해보고 아이를 낳아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자식은 배반 당하기 위해서 키우는 것입니다. 아이가 속을 썩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으면, 절대 내 원칙의 옳고 그름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장 사랑하는 자녀, 남편아내에게 배반을 당해봐야지 원칙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쬐끔 알게 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한 구원을 위한 원칙이어야지, 원칙을 위한 원칙은 유대인의 간계에 눌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바람 폈으면, 옳지 않은 거잖아요? 그 원칙으로 이혼을 하면, 살아 남을 사람이 없고, 부도나면 이혼하고, 암 걸리면 이혼하고.. 이렇게 하면 내 원칙으로는 맞죠. 어떻게 바람을 필 수가 있어? 틀렸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그것을 모르니, 구속사라는 것을 전혀 모르니, 그래서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꼭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식이 안 통하는 게 아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상식적인 관계에서 옳고 그름으로 정죄를 하지만, 자녀에게는 옳고 그름이, 상식이 안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씨가 있다면, 이 말을 알아 듣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만 있다면, 회개를 경험한 사람은 평생의 무시를 당한다고 해도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반드시 들어갑니다. 당장은 환경이 하나도 안 달라져도,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왔다 가는 인생임을 깨닫게 되는- 큰 것을 건지게 됩니다. 유대인의 간계 때문에 사울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죽기로 결심한 군사가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고통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가지고 성령의 매임으로 인도하셔서 원치 않는 길을 띠 띄우고 지금가는 것입니다. 저는 원치 않는 결혼이지만 끝까지 성령의 매임을 받아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어찌 교회를 할 줄 알았겠습니까.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고,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내가 복음을 위해 갈 성이 있습니다. 21절에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전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갖춘 것이 많기 때문에 더욱 죽을 일이 기다리고 있겠죠. 주님이 이사야 6장에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하니, '이 백성이 네 말을 안 들을거다. 그러나 남은 자가 있다' 그랬습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지만, 그러나 죽어지는 영성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남은 자가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적용] 앞날에 대해 너무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내 앞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말씀이 화가 납니까, 무섭습니까, 슬픕니까, 감사합니까?
3.(성령의 사명은)말씀묵상과 순종을 통해 침묵할 때와 외칠 때를 알아야 합니다.
동족의 구원을 위해 바울에게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주셨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유대인들은 이천 년이 넘도록 안 돌아오고 있네요. 그러니 복음을 전할 때에 되었다함이 없고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대학에 붙고 안 붙고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늘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있으면 그 상황이 사명입니다. 저 또한 사명의 인생을 살게 하셔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 저도 내 생명을 걷어 가셔도 좋으니 남편을 구원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매임을 알게 되니 하루 하루가 사명의 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유가족의 태도를 보면 구원 받고 갔는지 아닌 지를 딱 알게 됩니다. 저는 남편이 확실히 구원 받고 천국 갔기 때문에 계속 사명의 날을 살게 하셔서 30대에 과부가 된 제가 지금이제 34년을 사명 감당하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그러므로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것보다 최고의 유산은 없습니다. 왜 이렇게 구원 구원 하는지 오늘 여호수아 6장으로 남편의 구원과 저의 사명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6일간 침묵하면서 하루에 한번씩 돌아라 그리고 7일째는 일곱번을 돌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명령을 많이 하십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끝이 안 보이는 성을 그냥 순종하며 도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고 있으면, 드디어 나의 7일(완전수) 새벽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일째는 일곱번을 돌라고 했으니, 더 말씀에 따라 돌면서 더 애통하는 마음으로 일곱번을 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섯 번 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그날에 한번을 더 채워서 일곱 번을 채우라고 하니까 이 마지막에 6+7=13인데, 이 13이라는 숫자는 내 힘으로 감당 못하는 아주 엄청난 세력을 상징한다고 보면 됩니다. 하루에 한번 돌기도 힘들었는데, 일곱 째날에는 일곱 번을 돌라는 것입니다. 저도 남편이 구원 받던 해에는 성령님이 더 기도하게 하시고, 생명을 내놓게 하시고, 그러면서도 더 잠잠히 애통하게 하셨습니다. 남편이 쓰러지던 날 아침에도 눈물로 기도하면서, 그 날 큐티 노트에 우리 남편이 구원이 안됐어도 말세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인생보다 더 기쁜 인생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침묵하며 여리고를 돌고 있는데, '네가 이래도 돌래? 이래도 돌래?'할 사건들이 많았습니다.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면서 내 인생이 오늘 죽는다면 예수로 결론이 나야 하는 것을 날마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큐티하면서 기도해도 더 강팍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에스겔 3장 큐티할 때도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침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아내를 하루 아침에 데려가신 후에 그렇게 침묵할 동안에 7년반에 일을 증거하라고 그때 부터는 잠잠하지 말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저는 4대 째 모태신앙이고, 어려서 부터 교회 반주 10년하고 그랬는데 제가 결혼하고 5년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때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저를 안 내보내고 집에 벙어리가 되고 있으랍니다. 그래서 에스겔처럼 진짜 딱 7년반 정도 지나서 남편을 하루 아침에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받으면, 만 세 전부터 성령의 매임인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과 살 때에 이 벙어리 되어서 순종하며 침묵했던 일들을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은혜의 복음 전함으로 사명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바울 사도가 당했던 일들이 조금이나마 있었습니다. 남편이 가기 바로 1주일 전에 샴푸를 제 새로 산 옷에 들이 붙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날이여호수아 6장에 여리고 사건에서 마지막에 일곱 번 돌라고 한 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탄이 총 공격한 날이었는데, 그 전 날 밤 소주를 3병이나 마시고, 한 밤 중에 소주를 또 사오라고 해서 제가 몸에 독이 되니 제발 그만 마시라고 했다가 밤새도록 고문을 당했습니다. 남편이 술 주사가 있습니다. 술을 마실 때,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을 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끝없이 제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침묵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한 마디라도 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 침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고 보니 침묵 훈련을 시키신 것을 압니다. 마시지 말라고 하면 너무 난리를 치고, 제정신이 아니니까, 때리기 까지 하니까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이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무서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술 마시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면, 생명 내놓고 기도한다면서 이게 네가 남편을 사랑하는 거냐? 이런 자괴감이 끝없이 들었습니다. 말을 한번 하고 안 하고의 훈련은 저에게는 칼날에 물방울 훈련 같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래도 저래도 밤낮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제가 정말 버러지 만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지 되는가 얼마나 생각했는지 그 때 머리가 더 빠졌습니다. 얼마나 제가 말도 안된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겠습니까. 서울대학교 가는 것보다 천 만 배의 노력을 해서 제가 가정을 지켰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를 하니까, 계속 수모 당하는 일이 날마다 와도 제가 눈치보고 사랑 없음을 회개할 수 밖에 없었고, 회개한 만큼 조금씩 자유함을 주셨고, 회개의 특징인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거듭나기 전에는 시댁에서 죽고 싶고, 자살하고 싶고.. 이 생각을 했는데, 제가 혼자 있어도 예배가 회복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남편이 난리쳤는데, 그 상황에서 사랑 못하고 두려워 하는 제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 죄의 직면함이 점점 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간증을 전화로 하면, 이 부끄러운 간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버리지 같고 벌레 같은 인생이니까 사도 바울이 배설물로 여겼다고 하는 그 말이 딱 이해가 되고 그래서 나가지는 못해도 이렇게 연결 연결이 되어 이 여섯 바퀴를 공동체와 같이 돌았습니다. 회개를 하니 저에게 공동체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아무데도 못 나가도 전화로저에게 공동체가 주어졌습니다. '나는 아무데도 못 나가서 아무도, 친구도 없다.'는 말이 안됩니다. 회개를 하면 공동체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매임이 저절로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내가 버러지 같은 것을 알게 되니까, 그 때부터 저절로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환경은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 때부터 사명입니다. 에스겔 3장에 '나를 일으켜 들어가 문을 닫고 벙어리가 되며 책망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날마다의 말씀은 정말 죽지 않고 살게 해주셨고, 그 다음 어떤 경우도 남편의 책망자가 되지 않고, 내 죄를 보게 하시는데, 내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내가 일부러 죄를 볼려고 하면 어떻게 봅니까? 그런데 제가 그 상황에서 죄를 보는 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으세요? 제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바보같은 것입니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러니 날마다 회개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전한 방식의 큐티는 이남편암초를 넘어가서 은혜의 바다를 항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는게 감사해서 천국이 있다면 이렇겠구나.하면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는, 그런 똑같은 일이 엿새 동안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난리쳤는데, 나는 자꾸 회개를하는. 욥기 7장에서 보면, 17절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절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절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처럼 분 초 마다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6장 16절에 하루 한번씩 성을 돌다가 마지막 일곱 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돌라는 힘든 명령을 주셨는데, 적용이 저로서는 남편이 저에게 온 옷에 샴푸를 부어 댄 날인데, 그게 이제 밤새 술을 마시고 저에게 고문을 하다가, 저는 아침에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교회를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남편은 덜 깨서 저한테 샴푸를 부어 댄 것입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날인데, 그날 말씀이 에스겔 14장이고, 그 다음에 고린도후서 4장, 에스겔 3장 말씀으로 너무나 큰 은혜를 경험한 후에, 제가 고린도후서 4장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도 전파한다고 그 말 안듣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했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은 바울 사도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한다고 그러니, 제가 너무 깨달아져서 내가 남편의 종인데 종이라는 소리를 못했구나.. 주인이 새 한마리 갚도 안되는 종에게 샴푸를 붓든지 말든지 성경을 찢든지 폭력을 행하든지 무슨 상관인가 난 남편주인의 종인데... 이것을 깨닫자 기쁨이 밀려 왔습니다. 그 때 이 말씀으로 금새 제 마음을 바꿔주신 주님, 이것이야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밟혀야 말씀이 깨달아지나.. 나 때문에 남편이 지금 너무 수고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내가 좀 더 빨리 깨달으면 안될까요? 그러면서 이제 저녁 예배 갔다가 오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하면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 찬송을 부르면서 집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으면 적용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 고린도후서 4장 말씀대로 남편에게 적용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여전히 소파에 누워서 TV 보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 같은 거 하고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난 정말 당신의 종이에요.' 저는 남편의 태도가 변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그냥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했기 때문에 남편의 변화와 상관없이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남편의 마음을 채휼하려고 너무 너무 애썼지만 저는 침묵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6장을 보면서, 6일 동안에 침묵 기도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를 본 증인들이 여기도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너무 충만하니까, 제가 너무 바보 같고, 두려워하고, 사랑이 없는 것을 알게 되니까, 남편을 미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쌍 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이렇게 여전한 방식대로 말씀대로 적용하고 간증을 하니까 그 샴푸 사건 후에 일주일 동안 성령이 너무 충만해서 일주일 간 전화로 상담을 해도 이혼을 철회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바로 이 샴푸 사건 후 칠일 째에 남편의 육적 여리고가 무너진 사건이 온 것입니다.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저희 남편은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부인과이기 때문에 신생아간 기능 검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신생아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너무나 신선한 시약을 가져다쓰고, 자기는 봉사한다고 한 달에 한번씩 꼭 검사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간으로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급성 간암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제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날마다 벙어리로 침묵하던 저였지만, 죽음을 바로 앞둔 그날 저는 모든 교양을 내려놓고 병원에서 외쳤습니다. 일곱 바퀴를 돌고 외쳤다고 했는데, 사형선고 받은 가장 힘든 그날 회개하고 천국 가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 데리고 살 소망이 없다. 밤새도록 외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드디어 하나님은 남편의 이 대단한 육적인 여리고를 무너뜨리시고 영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남편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5시간만에 입성했습니다. 남편은 45살이었고, 그리고 장로님 아들입니다. 너무 건실합니다. 병원도 잘 됩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형선고를 받고 달려오신 목사님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목사님, 제 직업을 아십니까?' 물었습니다. 진짜 경각에 달리니까, 80년도에는 가족계의 지정 병원까지 있어서 낙태를 나라에서 장려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이 없어서 안 나간 게 아니고, 죄가 많아서 못 나갔습니다. 낙태 수술을 한 것에 회개하면서 회복시켜 주셔도 감사하고, 회복 시켜주시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복음 제시를 듣고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저의 주인이었습니다. ' 이것을 목사님을 따라서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45년 만에 주님을 믿고, 5시간 만에 천국에 입성을 했습니다. 여전한 방식의 생활 예배의 힘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데, 여리고는 한번에 외침으로 무너진 게 아닙니다. 성령의 매임으로 여전한 방식의 엿새 동안에 침묵의 순종과 벙어리 기도가 철벽 여리고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구절은 6장 전체에서 20절에 딱 한번 나옵니다. 여리고가 무너졌다는 것보다는 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입시에 붙고 떨어지고가 문제가 아니고, 바람 난 남편이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어떤 과정으로 돌아왔는가가 중요합니다. 아니면 돌아오는 것만 중요하면 다들 도로 제자리로 돌아 갑니다. 학교 붙으면 세상으로 떠 내려가고. 그래서 이 과정이 6장 전체에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한번의 결정적인 행동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은 습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날마다 과정을 보십니다. 날마다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고 있나. 말씀 중심으로 살고 있나. 예배 공동체를 앞 세우나.를 보시는 것입니다. 제가 남편 구원이라는 여리고성을 13바퀴나 돌면서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저의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아의 착함과 순종과 네네네가 통하지 않았기에 저의 여리고를 돌면서 혼자 착하다고 했던 저는 비겁해요. 사랑이 없어요. 두려워요. 주여 용서해주세요. 저는 여리고를 절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여리고를 함락시킬 수 없어요. 이것이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직면하고 싶지 않던 저를 그 비겁하고 두려워하고 사랑없고 눈치보고 하는 그 전부 다 사탄의 속성이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남편이 밟아줌으로 그런 저를 날마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힘은 안되고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남편은 아내는 우리 어머니는 내 자녀 우리 아버지 우리 직장 상사는 절대로 변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여전한 방식의 성령의 매임이고, 성령의 사명으로 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까지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언제가 아닌 어떻게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때에서 자기의 고난 두셨다고 그러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모르면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영접하셔야 합니다.
*기도제목
김은희
1.아빠와 점점 소통이 안되고 어떤게 아빠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 상황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많이 속상하고 힘든데 그냥 할수있는게 기도뿐이라 더 하나님앞에 내어놓고 기도합니다. 제발 우리 아빠좀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주님. 아빠가 삶의 의지를 찾고 살아갈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아빠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2. 집에서 매일같이 아빠를 지켜보는 엄마의 힘든 마음을 위로하여주시고 버텨낼 힘을 주세요.
3. 남은 공연또한 무사히 다치지 않고 해낼수 있도록 도와주시옵고 지금 저희팀에 목이 아프고 몸이 아픈 사람 들이 많습니다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붙들어주세요.
문에스더
1.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기도회/목장보고서/주일예배 마음으로 잘 지킬 수 있도록
2. 현재 매인 부분을 성령의 매임으로 잘 해석하며 인내해 나갈 수 있도록
3. 중국어교실 학생들을 한 영혼으로 생각하고 중보하며 수업 준비할 수 있도록
4. 이번 학기 국제학교강의와 대학원수업 방학 전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5. 마음을 어렵게 한 학생분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온전히 회개하여 잘 가르칠 수 있도록
권희경
1. 여러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깜빡하는 부분이 많아 스트레스를 또 받고 가슴이 조이고 스스로 한심해하곤 하는데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2. 집주인의 번복으로 당초계약대로 올 10월까지 전셋집에 살다가 이사해야할 것 같은데, 이후 거취도 가장 적당한 곳으로 허락해 주시기를
3. 채용중인 학교에 지원해보고 있는데 붙회떨감하도록
4. 남은 수업진행과 성적처리, 생기부작성, 담당업무 예산소진 등을 평안함 가운데 감당할 수 있도록
5. 평택 상가가 정리되고 경제적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최혜신
1.내가 가르치는 반에서 코로나확진 학생이 나왔는데, 시험보기 직전이니 제발 내가 코로나 아니길 ㅠㅠㅠㅠㅠㅠㅠ 아 주여 ㅠㅠㅠ
2.이번주 시험 무사히 잘 보고 오도록
3.시험날까지 체력붙들어주시길 ㅠㅠ
4.말씀에 잘 매이는 일주일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