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쓸모 있습니다
본문: 에스겔 47:1-12
설교: 신승윤목사님
지금부터 약 2600여년 전에 그 아버지를 따라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사모하며 착실하게 준비했던 25살의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레위인은 20살 때 성전에 들어가서 맨 처음에 허드렛일부터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성전과 예배에 대한 일을 배웁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으로 취임해서 자신의 직무를 감당합니다. 그런데 스무 살에 성전에 들어가서 5년이 지나던 주전 597년에 그청년은 갑자기 한 순간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과 함께 끌려가게 됩니다. 포로로 끌고 가는 상대는 야만인 중에 야만인으로 불리는 바벨론입니다. 상하의 탈의는 기본이고,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어서 100명 정도를 단위로 끌고 가는데, 이렇게 16000km를 이동합니다. 이읏고 이스라엘의 포로들은 그발강을 끼고 있는 바벨론의 도시 릿불에 도착해서 나무를 패고 수로를 개관하는 일에 투입됩니다. 에스겔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성전을 돌보는 것, 성전에서 수종 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포로가 되어서 삽을 잡고, 나무를 패고, 땅을 파고, 노예로 살아갑니다. 한 때 거룩한 성전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이 되리라 믿었던 청년 에스겔이 이 힘들고 억울한 노예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실 일이 없다. 반드시 나를 고향으로 되돌려 넣어 주시고, 바벨론의 포로를 끝내주시고, 나를 제사장 되게 해주실 것이다. 그 소망으로 5년을 버팁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포로가 된 지 6년이 지났을 때에스겔은 고향인 유다왕국이 멸망 되었으며 오매불망 돌아가기 만을바랐던 그 성전은 완전히 훼파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때 에스겔 마음이 어땠을까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학수고대하며 만발의 준비를 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되었습니다. 버틸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힘들고 어려운 포로 생황이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남의 포로가 되어 일평생 고생만 하다가 남긴 것 없이 죽겠구나..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내게 이제는 없구나..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타국에서 이름 없이 살다가 죽게 되리라는 가난한 마음, 바로 그 상한 심령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 들며 봉사하는 제사장이 아니라 거친 들에서 비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많은 선지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유독 에스겔은 참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명령을 내리셔도 마다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내가 제사장인데 더러운 것 옆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인분을 구워 먹으라니.. 그 말에 순종합니다. 당시 죽은 사람 옆에서 울지 않는 것은 그 망자를 경멸하고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내의 죽음 앞에 울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대우 받아야 할 제사장이 교양도 없이'너희 그러면 죽는다!' 울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수가 있겠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되고 싶었던 기대도, 열심히 준비한 노력도, 미래의 대한 소망도 사라진 체 힘들고 모진 포로 생활을 견딘 에스겔입니다.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으며 깊은 좌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포기와 좌절을 경험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명하실 때 모든 명령을 단 한 마디의 군소리 없이 순종합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이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었던 그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성전을 그의 눈 앞에 환상으로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나의 기대와 소망은 사라졌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을 알리시며,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십니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 가는데,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무엇을 한 것 같은데..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나를 기대할 수 없어서, 온 갖 기대를 걸었던 나의 자녀, 배우자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이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회사에 다니고, 주어진 일을 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도.. 예상되는 것이 있다면,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는 미래라는 우리 지체들의 한탄을 듣습니다. 이러다 보니, 언제부터 인가 올해보다 내년은 더 나을 거야! 이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성품이 달라졌다 거나 믿음이 깊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고 스스로 믿는데, 스스로 믿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겠지... 그런데 여전히 그만둬야 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며, 돌이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능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은 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대한 실망, 변하지 않는 환경, 씻겨지지 않는 상처 그리고 달라질 것 없는 미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고 오늘을 삽니다. 지금까지 나는 뭐하고 살았나.. 혹시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대할 것이 없고, 쓸만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망을 경험하고 포기를 해야 비로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어떤 분은 많이 깨닫고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이제 출발점에 서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가다가 멈춰 서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우리에게도 알려주십니다. 환상이 공상이랑 망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서 어떤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 어떤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지를 하나 하나 세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이렇게 자세히 보여 주시는 첫 번째 이유는 너희가 성전에서 예배하게 될 그날이 분명히 오리라는 약속의 말씀, 두 번째 이유는 성전에 그 사명과 역할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 안에는 주님이 계시며, 나에게는 구원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지은 죄가 얼마나 되던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본문을 통해 함께 묵상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그 성전이 되기를 소망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쓰임 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하나님이 쓰시는 성전이 되기를 소원할 때 한 때의 나처럼 죽어가는 인생을 살리는 약재료의 인생이 될 줄을 믿습니다.
1.(쓰임 받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예배와 말씀이 회복 되어야 합니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1-2절,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 곳곳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큐티하면서 아시는 바와 같이 성전의 부엌까지, 곳곳을 보여주신 후에 마지막으로 성전 앞 동쪽에 제단을 보여주십니다. 최초로 성전의 문지방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옵니다. 이 미세한 줄기의 물이 제일 처음 이 제단을 지나 닫혀있는 동쪽 문으로 흐릅니다. 동쪽 문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후에 닫혀 있었기 때문에 에스겔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북쪽문을 통과하여 동쪽문 밖으로 가서 이 장면을 목격합니다. 에스겔의 묘사처럼 처음 그 물은 문 밑으로 스며들어 흐를 정도로 얕고 작은 물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물이 처음으로 지나가는 제단은 제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그 단입니다. 그런데 이 제단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깨끗한 곳이 아닙니다. 짐승의 각을 떠서 거기에 올리고 불에 태우기 때문에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을 것입니다. 닦아도 닦아도 그 피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태우다 남은 찌꺼기도 있을 것이고, 보기에는 항상 불에 그을러져 흉했을 것입니다. 성전에 기구들이 하나같이 깨끗하고 순결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더러운 기구가 바로 제단입니다. 그러나 보기에는 흉하고 지저분하다 할지라도 제단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날마다 활활 불타오르며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을려지고 지저분한 번제단처럼 나 자신이 나를 봐도 지은 죄가 너무 흉하고 자랑할 것이 도저히 없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내 죄 때문에 애통하고 회개하며 예배하는 나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죄 사함을 받는 번제단에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번제단에 성전에서 나온 생명의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먼저 흐릅니다. 한 때는 그렇게도 활활 타올랐던 회개의 번제와 눈물의 예배가 점차 사그라져서 이제는 피와 그을만 묻어 있는 제단으로 우두커니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내 속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들어가야 동쪽문을 지나 죽어가는 가족 구원의 광야와 사명의 바다로 나갈 수 있는데, 내 속에 욕심과 분노가 막히고 쌓여서, 말씀을 흘러 보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에 타 그을러진 인생이지만, 나는 날마다 타올라야 하는 하나님의 성전에 번제단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을 받아 그것을 흘러 보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예배의 제단입니다. 아직 감염에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말씀 드리는 것이 민감한 부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의 제단에 회개의 불이 꺼지고, 예배의 감격이 사그러들고 있다면, 더욱 위생과 방역에 신경을 써주시고, 백신 접종을 받는 수고를 하셔서라도 이 자리에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진리는 원칙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입니다. 먼저 나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전에서 흘러나온 이 생명의 물, 생명의 말씀이 회개하며 예배하는 번제단에 가장 먼저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받아야 흘러 보낼 수 있습니다. 눈물의 회개와 감격의 찬양과 사명의 확신은 오직 예배를 통해 회복됩니다. 다른 방법 없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죄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올바로 드리지 못해 죄송해서.. 그래서 다시 나오기가 망설여 지십니까? 그럴수록 더욱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 다시 예배의 제단, 회개의 번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모니터와 티비 앞에서 이 제단을 쌓으실 수 없다면, 이 곳에 오셔서라도 다시 예배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감히 확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실수와 방황을 또 다시 반복하고, 여전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중독에 물들고, 노력해도 떨어지며, 무시 받았던 모든 일은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전히 그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버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너무 자책만 하지 마세요. 끊어내지 못하는 죄와 풀리지 않는 상황과 기대할 것 없는 미래를 겪고 겪으면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되고 좌절할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양을 하고서라도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타올라야 하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것을 깨달아 모두가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의 은혜를 흘러 보낼 수 있는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겠습니다.
[적용] 지금 내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습니까? 예배와 말씀의 회복을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2.(쓰임 받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하나님 보다 앞서가지 않아야 합니다.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3-5절,에스겔이작은 물줄기를확인하고, 북문으로 잠시 돌아 나가는 사이에 에스겔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처음에는 동문을 겨우 스며듭니다. 그 흐르던 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500m를 잰 후에 에스겔을 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데, 처음에는 발목까지 차 오릅니다. 4번을 측량하는데, 처음에는 발목, 다음에는 무릎, 그리고 다음에는 허리,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헤엄을 쳐도 될만큼 물이 가득 차 올라 넘치는 강이 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줄을 가지고 천 척이 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물을 건너게 하고, 다음에 에스겔이 건넙니다.이 순서가 무려 4번 반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천사인데 왜 줄을 재야 할까요? 500m라는 짧은 거리를 구지 줄을 가지고 잽니다. 그것을 일리리 다 잰 하나님의 사람이나 기다렸다가 건너라고 하면 건너는 에스겔이나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조급한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인내를 통해 지혜를 배우고,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인데.. 저는 이 원칙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바로 보이는 것이 좋아서, 공부보다 돈 버는 일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즉각 승부를 보는 것이 좋아 빠지게 된 것이 도박이고, 결국에는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이 조급함은 사람마다 다른 성격의 하나일 뿐, 저의 신앙과 맡겨주신 사역과 사명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정말 단 한번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마무리 하십니다. 물에 측량이 시작된 그 후부터 생명의 말씀이 나를 적시는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의와 욕심이 살아 있어서 물이 발목과 무릎에 찰 때까지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허리에 이르고 강이 될 때까지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이 있고, 애통해야 할 회개가 있으며, 인내해야 할 사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혹시 저같이 인내하기가 너무 힘든 분이 이 자리에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의 조급함을 멈추고 사건 속에서 해결만을 부르짖지 않는 최고의 방법을 지난 주에 목사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공동체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을 죽이려하는 살기등등한 그 사람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과 동행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살기가 등등한 나의 조급함과 혈기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우리 공동체와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안아주심 안에서 생명의 말씀이 내 몸에 잠겨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깨닫게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고, 날마다 말씀 묵상하면서 말씀을 묻고, 공동체에서 묻고 들으며, 주신 말씀을 보며 내 죄를 보고 애통해하며, 하루 하루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잘 붙어서 잘 묻고, 잘 묻는 만큼 잘 들으며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구조 안에 머물게 되었을 때부터 이미 생명의 물을 차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해답을 이미 정한 채 묻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조급함과 그 고집이 꺾이고 공동체를 신뢰하며 성령의 안아주심을 경험하는 그 모든 과정을 지나시는 동안 생명의 물은 나의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채워 결국은 그 안에서 헤엄치는 생명의 강을 허락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억울하고 불안하고, 답답하고, 우울합니다. 여러분이절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발목까지, 무릎까지 차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나가셔서 준비해주신대로 양육을 받고, 주신 말씀 붙잡고 묻고 들으면서 이 생명의 말씀이 발목에서 무릎 그리고 허리와 온몸을 덮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적용] 해결이 되지 않아서 조급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것 같습니까?
3.(쓰임 받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약재료가 있는 인생입니다.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6-12절,처음에는 작은 물줄기로 시작되었으나 이내 발목에서 시작해 강을 이루었습니다. 메말랐던 광야에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이제 강 주변에 나무와 식물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자랄 수 없는 것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물은 강에서 바다로 나갑니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바닷물이 되살아나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강에는 어부들이 심히 큰 물고기를 낚게 될 것이며, 그 물고기로 배고프고 굶주린 누군가를 먹일 것입니다. 시들지 않는 열매 또한 맺힐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이유는 이물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물로 말미암아 맺히게 된 열매는 굶주림을 채워줄 식량이 되며, 그 잎사귀는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약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땅에서 욕심과 욕망의 포로, 비교와 열등감의 포로가 되어 기대할 것 없는 미래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입니다. 배신 당하고 버림 받으며, 보여 줄 것도 없고, 버림 받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가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모질고 힘들었던 포로 생활을 통해 순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며 비로소 내가 얼마나 죄인인 지를 깨달아 말씀 앞에 엎드리어 회개의 눈물로 고백하는 나의 간증은 살 소망을 잃어가고 눈물로 하루를 살아가는 한 영혼에게 생명을 주어 살리는 약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면서 우리 공동체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기 위해서 산산이 갈리고 부서지듯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나의 죄를 고백할 때 오히려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실패의 약재료, 수치의 약재료를 고백하시는 성도님들로 인해 오늘도 누군가는 살아나서,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먼저 고백하시며 사명을 감당하시는 우리 목사님을 따라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김은희
1.아빠의 마음건강과 육신건강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건강
2.하고있는 작품이 사고없이 무사히 잘 마무리 될수 있도록
3.남자친구 하나님 만날수 있도록
문에스더
1. 수치라고 느껴졌던 과거 나의 연약함과 죄를 지체들에게 오픈하며 약재료로 쓰여질 수 있길
2. 고상하게 나눌 것, 나누지 말 것 구별하며 이미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나누고 가는 사람 될 수 있길
3. 아버지의 성공중독, 주식중독 항상 공동체에서 나누고 가며 보호 해주시길
4. 어머니 우리들공동체에 마음이 열릴 수 있길
5. 동생에게 말씀을 찾게 되는 사건을 허락해주시길
권희경
1. 큐티에서 내 잘못으로 받은 징계 가운데 하나님 신실하심 믿으며 잘 인내하고 있냐는 질문이 크게 와닿았는데 매일 약속의 말씀들 붙잡으며 하루하루 기뻐하면서 버틸 수 있도록
2. 토요일에 예전 교회에서 같이 사역했던 언니 결혼식 축가를 하는데 축복과 기쁨이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3. 주어진 학교업무가 굉장히 많은데 불평 대신 모두 감사함으로 할 수 있도록
4. 요새 매주말마다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데 지치고 생업에 밀려 준비도 못한 채로 가지만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5. 2월 이후 집을 옮겨야 하는데 우리가족에게 가장 적당한 처소를 준비해 주시기를
최혜신
1.역류성 식도염 잘 나을 수 있도록
2.시험 보러가는 날까지 건강 지켜주시길 ㅠㅠ
3.시험보러갈 때까지 공부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4.붙회떨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