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성령의 안아주심(행20:1-12)
1. 권면의 말씀으로 위로 하십니다.
1-2절) 에베소 연극장 소요가 그친 후에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서 권했다고 한다.
권하다는 원어로 파라칼레오다. 외치다 부르짖다라는 뜻이 있는데
곁에 불러놓고 부모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다.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도 파라클레토스다.
옆에 있는 것 뿐인데 내 이름 한번 불러주고 내 현실을 들어줬을 뿐인데 손 한번 잡아주고 부르는데 이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안아주는 것이다.
그 안아주시므로 바울 자신도 파라칼레오 해서 마게도냐를 떠난다.
바울의 관심은 오로지 제자들에게 있다.
제자는 나를 부르신 분의 뜻에 자발적으로 묶여있는 사람이다.
바울도 예수님도 무리에 집중하지 않고 소수에 집중한다.
예수님 때문에 사회에 무시와 비난의 대상이 된 형제와 자매에게 바울의 간절한 말이 여러 말로 표현됐을 것이다.
세상에 기댈 곳 없는 성도에게는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이 위로가 됐을 것이다.
주님은 성도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
파라칼레오 하시며 권면의 말씀으로 옆에 계신다.
왜 소동이 일어나는지 왜 분란이 일어나는지 말씀으로 해석해야 통과할 수 있는 거다.
오늘 하루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내는 것이 파라칼레오 하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도움 받을 수 있는 성령의 안아주심이다.
암을 극복하고 부도를 극복하고가 아니라 통과해서 하나님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아주심이다.
적용) *위로 받아야 할 트라우마는 무엇인가?
*힘든 사람 옆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며 소리치나요?
보기도 힘들어 하나요?
2. 함께 가는 우리 공동체 그 자체입니다.
3-4절) 마게도냐 심방 마치고 헬라 아가야 지역으로 간 바울은 거기서 석달을 머문다.
바울이 피땀으로 고린도교회 세우고 1년6개월 선교하고 떠났는데 들리는 소식은 아비의 마음으로 낳은 그들이 고전9장에 보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여러가지 음란으로 큰 눌림과 걱정과 눈물이 있다고 했다.
배신감으로 있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곳에 3달을 머물며 양육도 하고
최대의 걸작 로마서 기록한다.
하나님은 갈 때마다 바울도 키워 가시고 메세지도 키워 가신다.
바울은 3개월 로마서 쓴 후에 절기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가고자 했는데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배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시기였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배에서 죽여 빠뜨리려는 공모가 있었다.
이것을 알고 맞서 싸우지 않고 다시 마게도냐로 향한다.
바울의 적은 유대인들이 아니다.
우리를 괴롭힌다고 해도 자녀가 부부가 형제가 적이 아니다.
바울의 적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기 때문에 싸우면 안 된다.
그들 피해서 수로가 아닌 육로로 돌아간다.
바울이 유대인의 음모를 들은 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으로 성령께서 알려주셔서 파라칼레오 하셔서 이제 바울이 늘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니 성령께서도 권면하고 위로해주셔서 위협 피하게 해주시는 거다.
성령이 임해야 한다.
순간순간 파라칼레오 해야 한다.
바울이 사역한 마게도냐, 아가야, 갈라디아, 아시아 교회 대표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다.
왜 이들이 함께 가나?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은 헌금 전달하기 위해서고, 바울과 바울의 사역을 읽는 독자인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 구원할 화평의 복음 전하고 다니는데 정작 바울 자신의 삶은 너무 외롭고 영육 간에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다.
바울이 살기등등해서 그리스도인 죽일 때는 지체가 없이 혼자였다.
늘 살기등등하고 혼자인 사람은 사명이 없다고 봐야 한다.
돈 때문에 사명에서 멀어지기 쉬운데 돈 한푼에 여기저기 옮기는데 자신과 함께 하는 자들에게 맡기는 거에 불안해 하지 않는다.
부부는 문화가 하나 되고 몸이 하나 되고 마지막에 돈이 하나 되는 게 부부라고 한다.
성령의 안아주심으로 성령의 하나 됨으로 얼마나 신뢰 관계와 믿음이 생겼는지 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죄인이며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큰 값을 지불하고 나를 구원하셨는지 아는 사람만 돈을 넘어설 수 있다.
사명의 무거움과 내가 받은 구원의 값을 아는 사람만이 돈을 다룰 수 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믿게 되는 관계, 믿어주고 내가 믿는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만큼 큰 복이 없다.
성령의 안아주심은 이해타산을 넘은 참된 지체를 내 주변에 허락해주신다.
5-6절) 바울은 소수의 동역자들과 육로로 돌아갔다.
빌립보에서 드로아로 가는데 닷새가 걸린다.
풍랑이 심했다는 뜻이다.
드로아에서 7일을 머물며 복음 전한다.
어떤 소동이 와도 말씀의 공동체가 있으면 진정이 된다.
나와 같이 고난 당하고 죄와 싸우는 우리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성령께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우리기 때문이고 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한 말씀 듣는 우리기 때문이다.
적용)
*내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지체가 있나요?
믿는다면 그 사람이 사명이 있어서 믿습니까?
내 감정으로 믿습니까? *믿음의 공동체가 그 자체로 위로가 된 경험이 있습니까?
3. 떨어지는 약함까지 안아주시는 회복입니다.
7-8절) 그 주간 첫날은 주일이고 떡을 떼려는 성찬식을 말한다.
예수께서 생명으로 오셔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찢어 떼어 깨뜨린 고난 받은 사건을 성찬식으로 묘사해서 주의 성찬 받는 거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으깨뜨린다는 거다.
우리가 이런 사랑 받았다.
이때부터 구약의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예배로 모였다는 기록이 여기 나오고 있다.
드로아교회서 모이는 다락방에서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며 설교했는데 강론이 밤 늦게까지 계속된다.
9-10절) 유두고라는 이름은 일꾼과 노예의 이름에 많았다고 한다.
노예와 일꾼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밤에 강론했다.
깊이 졸다 떨어져 죽었다.
바울우 유두고의 약함의 자리로 내려갔다.
유두고의 몸에 자신을 떨어뜨렸다.
내려가서 몸에 자신을 떨어뜨리고 죽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구속사적 공감, 성도의 교통을 한 거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말한다.
우리 주님이 안아주시니 내려갔던 인생이 올라간다.
중단되었던 예배의 자리, 아들만 먹을 수 있었던 떡상의 자리, 아들과 딸의 자리까지 우리를 올리신다.
생명 살리신 일은 바울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 통해 하게 하신 일이다.
가장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더러운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로 지고 세상이 하지 못하는 적용을 하셨다.
이것이 거룩이다.
우리의 거룩도 연약한 가족과 지체를 끌어안는 것이다.
그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을 내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으로 안아주는 거다.
이것이 성령의 안아주심이다.
12절) 비천한 유두고의 삶이 다른 사람에 약재료가 되며 다른 사람에 위로가 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예수의 마음으로 안아주면 공동체 전체가 엄청난 위로를 받게 된다.
거기에 생명의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실존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 않기에 생명보다 돈이, 명예가 쾌락이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거다.
피해의식 속에 예수 믿어도 불평이 많다.
유두고처럼 피투성이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게 세상의 생각이고 마귀가 주는 착각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령의 생각 구원의 생각이다.
힘들어도 살아만 있으면 식구들 지키는 비결이다.
성령의 안아주심은 여러분 안에 생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적용)
*이제 다 끝났다며 떠들고 절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안아주신 성령님의 은혜를 헤아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이라도 성령님의 팔을 붙잡기 위해 내려가 엎드리고 끌어안는 적용 중에 어디까지가 되고 어디까지가 안되십니까?
은지
1. 사랑하는 마음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2. 영적 육적 성전 잘 지킬 수 있도록
3. 인생에 트라우마가 말씀으로 해석되어 해결되도록
인화
1. 아빠 구원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다 맡길 수 있도록
2. 매일 기도하고 큐티하고 말씀 들을 수 있도록
3.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 막아주시고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해련
1. 약 끊고있는데 건강지켜주시고 망상장애 재발되지않길
2. 결혼예배 가운데 오시는 분들이 모두 은혜받으시고 예수씨가 뿌려질수있길.못오시는 할아버지 구원도 주님께서 책임져주시길
3. 부부목장 잘 나가고 예배 준수할수있길
서영
1.힘든상황이 오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담대하게 해결할수있도록
2. 시험준비 잘 할수있도록
3.믿지 않는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