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진정
본문: 사도행전 19:32-41
설교:김양재목사님
1.(성령의 진정은)무리의 분란 때문에 필요합니다.
32절, 당시에 에베소 야외 극장은 약 2만 5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시의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로도 쓰였습니다. 지난 주에 데메드리오의 선동을 듣고 바울을 따르는 세력에게 에베소 우상 아데미가 무시 당했다고 시민들이 분노하여, 바울에 동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처벌하고자 연극장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늘 성경이 아주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며 모인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온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인민 재판의 현장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내용도 모른 체 각자 자기 소리로 떠들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에클레시아라고 부릅니다. 원래 이 단어는 특정 목적으로 모인 군중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나라 일을 시민들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모인 민회를 가리켰습니다. 오늘 날 의회나 국회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교회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이 구절입니다. 에클레시아의 원래 뜻인 시민의 무리 군중으로 쓰였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믿는 무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화합과 일치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인데, 연극장같이 럭셔리한 곳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집에 모여도 교회에는 화합과 일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에베소 극장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화합과 일치가 없습니다. 이름은 똑같이 에클레시아인데, 교회같이 모였지만, 극장에 모인 군중은 서로 하나가 되지 않고, 각자 다 자기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외칩니다. 당시 연극장은 연극 공연 뿐만 아니라 연설, 강연을 했습니다. 오늘 연극장에 모였다고 했는데, 인생은 연극 같지 않습니까? 맡겨진 역할을 하면서 살겠죠. 누구는 생업을 위해 일생 시간을 쓰다 가겠죠. 모두 남의 인생 살다가 막이 내리면 허무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쇼팽국제콩클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피아니스트들이 5백명이 지원을 하고, 결선에 12명이 뽑혔는데, 거기에 한국 청년이 한 명 들어갔습니다. 몇 일에 걸쳐서 연주를 했는데, 저 한번에 연주를 위해 피를 말렸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입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저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이 없이 막이 내릴 것입니다. 2000년도에 이 대단한 콩클에 중국의 최연소.18살 우승자 리윈리가 어제 성매매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8억 뷰를 달성했습니다.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다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극입니다. 최고가 되면 결국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다 끝에는 돈이 있다고 했는데, 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 누리지 못하면 내가 왜 이렇게 피아노를 치지?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잠깐인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죽어라 자기 필요를 외칩니다. 내가 왜 못 누리나, 내가 왜 떨어지나, 경제를 살려내라, 입시에서 건져내라, 보수다. 진보다., 경상도다. 전라도다. 등등 관심 있는 자기 이해 타산으로 다 외치는 것입니다. 데메드리오에게 선동 당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다 자기 이해 타산으로 가서 외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군중의 특징은 한마디로 분란입니다. 분란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지난 주 29절에 요란하다는 단어와 같은 어근의 단어입니다. 서로 다른 여러 소리가 섞여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가 없는, 어지러운 소동을 말합니다. 바벨탑에 혼란과 분란입니다.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 있는 이름으로 모였더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납니다. 결국 자기들이 왜 모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백프로 죄인인 인간이 어찌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불륜을 행해도 내 소견에 옳으면 그까짓 것이 요즘 세상에 무슨 죄냐라고 하고,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내 소견에 틀렸으면 죽어라 죄라고 합니다. 구원 때문에 생각해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죄의 바로메타가 자기 소견인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부부나 교회나 어떤 회사나 다 자기 소견대로 사니까... 바울은 청년 시절 용감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잔멸 하는데에 앞장 섰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후에 그리스도를 안 뒤에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 만난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에베소에서 죽이고자 해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여 하나님 나라에 증인 된 삶을 결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연극 배우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고난을 당해도 내가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하여 걸어가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증인의 길을 뚜벅뚜벅 갔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 무대에서 떠들며 외치다가 속절 없이 이 땅에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하며 막이 내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를 얻고 서도 스스로 실패했다는 슬픈 유언과 함께 세상을 떠난 남자, 그는 바로 미국 최대의 양판점인 월마트의 창업자인 쌤 월튼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는 실패했다고 하며 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군중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니, 한 사람 두 사람 하나님 나라로 입성을 합니다. 그래서 아시아 관리가 돌아오고 아르스다고도 돌아오고, 가이오도 돌아오고, 그런데 이 소수에 사람이 바울을 돕고 일꾼이 되어 2천 년 동안 인류를 변화 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변화 시키는 한 사람이 앞으로 오는 세대의 주역이 되어서 변화 시킬 줄 믿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연극 무대에서 암, 부도 등으로 막이 내려도 갈 곳이 없는 가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갈 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까?
2.(성령의 진정은)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33-34절, 아마 무리 중에 아데미를 모욕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분란하는 중에도 유대인들은 위협을 느꼈겠죠? 불과 몇 해 전에만 해도 로마에서 쫓겨난 일이여기서 반복 될까 두려웠겠죠. 그런데 에베소인들은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이 봅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이나.. 지금 바울이 변해서 기독교인이 됐는데, 이 둘을 똑같이 보는 것입니다. 똑같은 분 파에서 나온 하나의 마이너 종교로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다르다!를 알리기 위해 단결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구리장색 알렉산더를 앞 세워서 이 사람은 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심지어 이슬람교도 유일신교입니다. 그러면 아데미 여신과 우상에 대해서는 유대교도 같은 의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바울과 일행을 그 에베소 사람보다도 에베소 사람을 위에다 놓고 다른 부류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비겁한 것입니다. 아주 기회주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군중은 알렉산더가 우리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한 거지, 유대인이 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을 너무 미워하고 있다. 이 얘기를 지금 하려고 했는데, 알렉산더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손짓까지 해가며 뭔가를 말하려는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일치 단결해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외치기 시작합니다. 알렉산더든 유대인의 말이든 필요 없고,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오직 에베소, 오직 아데미가 제일이라고 외칩니다. 무려 2시간이나 구호를 외칩니다. 누가 여러분을 핍박할 때 우리들교회 입장에서 크다 우리들이여! 크다 큐티여!하면서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외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군중이나 유대인 군중이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유대인 군중은 동족 바울은 미워하고, 에베소 시민은 두려워합니다. 에베소 군중은 유대인은 미워하고, 아데미는 두려워합니다. 거기 모인 개개인들이 서로 생각이나 태도나 익권이 각자 다 달라서, 미워하는 게 다르고, 두려워 하는 게 다르고, 그런데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 각자 고요한 판단이 마비가 되고,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또 누구를 무조건 위하는 맹목적인 호불호만 표출합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미워하고, 이유 없이 두려워합니다. 이럴 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큰 일 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얘기 하니까 크다 아데미여! 크다 에베소! 이러면서 관용어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외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군중심리입니다. 군중심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의미 있게 분석한 구스타불루봉은 군중은 그 안에 있는 개인들과는 전혀 다른 군중만의 심리를 가지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군중 안에 있는 개인은 아무리 주관이 뚜렷하고 배운 것이 많아도 군중 심리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군중이 나타내는 태도나 감정이나 판단은 그 안에 있는 개인에게 거스를 수 없는 본능을 자극하고 피할 수 없도록 하는 전염성을 가지며, 반대할 수 없는 귄위로 다가오기 때문에 군중 속 개인들을 지배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군중은 태도나 감정이나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라도 잘했다고 우기고 그것을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계속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다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게 되지만, 이 믿음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또 그리로 금방 옮겨 갑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죄인과 천 사람의 죄인이 얼마나 의가 무섭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무리든 요란과 분란이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힙니다.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불란으로 끝납니다. 이익이 있을 때는 유유상종.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건이 생기면 분란하고 맙니다. 다 자기 소견이 죄인의 소견이니까, 부른대로 늘 네편 내편 갈라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게 가족도 그렇고교회도 공동체도 회사도 나라도 늘 죄인의 각자 소견이 다 있기 때문에 성령의 진정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진정 시켜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든 분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차이입니다. 나는, 또 우리 무리 군중은 분란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주님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를 믿으라! 다 자기를 믿으라 합니다. 내게는 절대 분란이 생기지 않을 거야. 우리 모임, 우리 가족, 우리 무리에는 절대 분란이 없을 거야.이렇게 착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임을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분란이 된다는 것을 안 믿으니, 여친.남친의 말을 듣고 결혼 했더니 분란이 생기면 전부 다 죽으려고 하고 이혼하려고 하고.. 그래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결혼은 서로를 믿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한 것 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고 결혼했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요 벌레라는 다윗의 고백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이지 잘나서, 내가 의로워서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여러분은 말초적인 행복을 원해서 이혼하는데, 내가 믿음이 안되면 맨날 똑같습니다. 지금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의지해라.라고 부르시는 싸인입니다.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싸인입니다. 분란을 당할 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분을 내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 다민주주의시대라고 합니다. 민주주의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이 시대에는 절대적인 원칙.진리보다는 다수의 여론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게 보통입니다. 검은 것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희다고 하면 그리고 거기에 다수가 동조하면, 그것이 곧 법이요 진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이 없다면 민주주의, 공산주의가 다 똑같습니다. 인간이 행복하라고 민주주의- 만든 게 아닙니다. 출 애굽 할 때, 가나안 땅에 거의 다 와서 12 정탐꾼을 보낼 때 10명의 정탐꾼은 이 가나안을 부정적으로 보고 우리가 꼭 메뚜기 같다고 보고를 했고, 여호수아.갈렙은 긍정적으로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10명을 선택하고, 소수인 여호수아.갈렙을 돌로 치우자 했고, 결국 400년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다수결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다 와서, 다시 돌아가서 40년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훈련 때문에 다수결도 허락하시고, 우리가 아직 거룩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군중심리를 경계 해야 합니다. 컴벨 몰가는 군중심리로 그러므로 떠드는 말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그런 군중심리로 하나님의 교회에 전진을 막지 못한다. 그런 것은 교회에 위험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정치적으로 도움 받는 것이 교회 위기의 시작이다. 이 시대는 군중심리가 왕 노릇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살아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군중심리라고 할 자체가 약했습니다. 너무 못 살아서 모든 것이 감사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배가 부르니, 조금만 내 비위를 건드려도 대모하고 고소하고 고발하고 이혼하고 자살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보니 이혼률이 아시아에서 1위이고, OECD국가 중에서는 9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9위가 인구대비 상황에서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도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1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0대 여성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핵가족 시대에 아이도 안 낳고, 집집마다 자녀가 하나 내지 둘 밖에 없으니, 다 자녀가 우상이 되다 보니 아이들이 인내를 모르게 되었고, 원하는 것 요구하다가 안되면 쉽게 이혼하고 쉽게 자살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군중심리는 실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적용] 내가 지금 외치는 소리가 군중심리에 현혹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군중심리에 현혹되어 지금 외치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지역감정, 진영논리, 주식, 입시, 경제 등등에서 한 마디만 하면 못 들어주는 말이 있나요?
3.(성령의 진정은)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35-36절/ 40-41절,진정시키다의 헬라어는 제 자리를 떠나 무질서하게 마구 튀어나온 것들을 잡아서 제 자리에 다시 잘 넣어 둔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 시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단어가 35-36절에서 한번씩 쓰였는데, 36절에도 가만히 있어서도 진정이 되어서란 말입니다. 진정은 질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자의 머리가 남편, 남편의 머리가 그리스도- 이 역할.질서가 소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질서입니다.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마지막에 십자가로 끝났습니다. 성경은 어디나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도 그렇지만 정부 관리들의 가장 큰 임무는 질서 유지입니다. 당시 로마는 민회같은 지방 민주주의 요소를 줄이고,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민회가 일으킨 소란을 가만 나둘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기장은 시정부와 로마정부 사이를 오가는 연락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진정 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보고 순종하라 하면 다들 뻗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왕 노릇을 해서 구속사로 깨달아야겠는데, 이것을 억지로 순종하라 하니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도 억지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극장을 혼란에 빠뜨렸던 그 무리의 외침이 서기장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수그려 뜨렸는데, 서기장이 시민에게 한 연설 내용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가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 신전지기라는 것을 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들이여!라고 계속 외치는데,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다. 아데미 신전을 높이면서, 다 아니까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 둘째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대표하는 사람들, 두란노 서원에 날마다 모이는 사람들 때문에 너희들은 흥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37-39절. 그런데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거짓말하고 도둑질 하면, 그 사람은 전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일행은 남들이 하는 흔한 일을 행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데메드리오가 대표하는 직공 조합이 피해 보상을 청구하려면, 정식으로 민회에 고발 절차를 밟으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에 민회가 행정적인 시 의회에 안건을 등록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시 의회를 소집할 권리와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집회를 가질 경우 처벌이 아주 엄격했습니다. 그런데 서기장은 이 사건을 소요사건이자 불법집회라고 규정하고, 이 모임은 흩어져야 할 모임이라고 규절을 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했습니다. 이 단어가 민회-에클레시아라는 교회라는 단어와 같은데 아이러니컬합니다. 교회도 불법적으로 하지 말고, 소동이 나도 성령의 소동이 되면, 성령의 진정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해야 하는데, 늘 잘못한 사람한테는 잘못했다고 하는데,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 자꾸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주면 돈도 생길 것이고, 기도해보세요. 몇 일 금식하면 돈이 생기고, 감옥도 안 가고 등 이런 얘기를 자꾸 합니다. 자기 소견으로 얘기를 하니까, 이런 것을 불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칙이라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우리는 서기장이 믿는 사람이었는지 안 믿는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밝히기 곤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점은 그가 연극장에서 일어난 분란 사건을 진정 시켜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에 충실해서 분란을 진정 시켰습니다. 잠언 16장 4절: 여화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는니라 우리는 서기장 때문에 너무 기쁘고 좋은 것도 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었다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셋팅은 여호와께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 선동 당한 군중심리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도 사회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고, 그 경험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정말 선동 당한 군중을 막는 일은 아주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선동만 해 놓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이것이 선동꾼의 실체입니다. 교매한 말로 무리를 선동해서 큰 분란을 일으켜 놓고, 책임 소재가 생긴다 싶으면 자취를 싹 감춰버립니다. 선동꾼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대로.옳은대로 하는 사람은 믿으면 안됩니다. 남은 것은 선동 된 무리인데, 잠시 후에 일을 모르고, 적어도 지금은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알렉산더가 나서려고 했는데 절대로 안 듣습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왜 그 말을 했을까?이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어 하나가 꽂히면 크다 아데미여! 크다 에베소여! 그런데 민회의 책임자인 서기관의 말은 아무리 성난 군중이라도 끝까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끝까지 무시했다가는 자기들도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서기장이 로마정부에 권세를 대표하니, 그렇게 모르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다가도 로마가 와서 자기들을 덮치면 끝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또 세상 권세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 한 사람의 권세자가 전체를 바꿀 수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아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권세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권세자가 되어야 된다는 아니지만, 악인도 악한 날에 쓰일 때가 있기 때문에 또 권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 권세가 두려워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진정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소동할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마음 자체가, 사건이 없어도 마음 자체가 죄의 파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이 소동을 가라 앉히기 위해 사람을 찾고, 술과 담배를 찾고, 여자.남자를 찾고, 돈을 찾고, 권력을 찾고..무엇이든 나를 진정 시켜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동을 일으킵니까. 하지만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납니다.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는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 진정이 됩니다.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야 진짜 해결이 됩니다. 따라서 소란스런 소동을 당할수록 하나님 앞에 가만히 있는 시간, 내 외침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시간, 음성을 듣는 시간, 큐티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게, 하나님의 원칙을 알아야 인간의 원칙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본적인 고정관념은 소동은 너무 싫고, 진정은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소동이 있어야 내 실체를 감추고 있는 포장이 벗겨져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진정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서 안주해서는 안되고, 또 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 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게 성령의 진정과 성령의 소동입니다.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동과 진정도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과 거룩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근데 이 소동이 왔는데, 소동을 소동으로 여기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진정이 되도, 절대 성령의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원칙을 지키려면 영적으로 큐티를 하고, 육적으로 공동체에 들어가서 날마다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영육 간에 원칙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목자가 아무리 이상해도 여러분이 물어봤다는 자체 만으로 하나님은 긍휼을 배푸십니다. 반드시 이것이 유익을 구하는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하지만 서기관은 이 모임을 해산 시키는 것이 한계입니다. 성령의 진정은 소동을 잠재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낳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적용] 소동을 진정 시키기 위해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얼마나 이해되십니까? 지금 흩어져야 할 모임에 있는 모임은 무엇입니까?
*나눔
문에스더: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얼마나 이해되십니까?
요즘도 그렇지만 항상 그때 그때마다 정죄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어렵다. 그런데 그럴 때 만약에 내가 목장을 안 나간다거나 교회에서 하는 모임을 안 한다면, 점점 더 그 사람이 미워지고 해결책은 없을 것 같다. 그저 내 의로 옳고 그름만 쌓일텐데.. 그래도 일단은 그 자리를 싫어도 지켰을 때 내 죄를 보게 해주시는 것 같다. 그러면 또 소동이 잠잠해지고, 바로 단번에 잠잠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어떤 말씀이나 공동체에서 나에게 해준 처방이 들리게 되긴 한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살면서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소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매일같이 큐티와 기도를 마음으로 하지 못한다. 마음에 소동이 커진 날에는 그저 행위로는 큐티.기도를 해도 정말 듣겠습니다라는 태도로는 하지 못한다. 그래서 큐티.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귄희경:한 마디만 하면 못 들어주는 말이 있나요?
요즘에 계속 무기력하다. 너무 답답한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든 것 같다. 별로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원래 아침에 일찍 부모님댁에 갔다 오려 했는데, 옷도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도 못 가게 됐다. 정상적인 생활에 대해서 엄마랑 통화하며 듣는데도 부담이 느껴졌다.
목자: 무엇 때문에 고민이 많아?
진로-대학원, 주거문제, 직장에서 하는 업무 때문에, 생활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급한 것을 먼저 하게 되고, 중요한 것을 해야 하는데, 급한 것만 하는 느낌..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해결이 안 되는 것 같고.. 학교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 두고 싶고, 도망 가고 싶고.. 그래서 미래의 대한 걱정과 현재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까지 하게 된다.
목자: 지금 이 상황에서 성령의 진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시로 기도는 하는데, 어떨 때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 같다. 내가 힘든 것만 보여서.. 그냥 인간적으로 막아내려 하고, 이 상황을 무마 시키고 넘기려고 하는 것 같다. 큐티를 불규칙적으로. 잘 못하게 된다. 큐티는 안 하면서 열매는 바라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는 믿음이 생겨야 할 것 같다.
목자: 왜 하나님을 외면하게 돼?
자꾸 미루게 되는 것 같다. 바쁘니까 급하니깐 나중에 만나요. 이런 느낌. 기도는 매우 급하고, 당장에 도움이 필요해서 하게 된다. 하나님께 묵상하면서는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고, 전도도 하지 못한다.
*기도제목
신은주
1. 소화가안되고 속이안좋고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건강지켜주시기를
2. 큰실수없이 하루하루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김은희
1. 아빠가 많이 괜찮아져서 가족,친척들이랑 같이 캠핑도 가고 목사님 심방도 하고 점점 일상이 회복되어가는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앞으로도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말씀에 좀더 귀를 열게하여 주세요. 이번 사건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 만날수 있도록 붙들어주세요 주님.
2. 엄마 아빠 할머니의 건강 또한 지켜주시고 강건하게 하여 주세요.
3. 하고 있는 작품또한 이제껏 무사히 잘 진행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남은 기간도 누구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진행될수 있도록 지켜보호하여주시고 코로나로 부터도 지켜주세요 주님.
4. 주님의 은혜로 오디션에 합격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도 몸 건강히 잘 해나갈수 있는 체력 능력 건강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께 늘 기도로 간구하며 나아갈수 있도록 은혜 부어 주세요.
문에스더
1. 소동이 일어나도 영육간에 원칙을 잘 지킴으로 (큐티/기도/목장/기도회) 성령의 진정이 될 수 있도록
2. 소동의 근원이 항상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근원 주님께 묻고 가며, 성령의 진정이 될 수 있도록
3. 동생(문예나)에게 말씀을 찾게 되는 사건을 주시도록
4. 아빠 복음을 위해 잘 적용하며 부부관계에서 잘 죽어지실 수 있도록
5. 엄마 내면에 분노/외로움 등을 부부목장에서 나눌 수 있게 되도록
6. 31일 현장예배에 몽골친구 Jerry Lee 를 데리고 가는데, 마음이 열려 새신자반에 참여하고 갈 수 있도록
권희경
1. 남은학기 학교근무 잘하여 업무로나 수업으로나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선한 영향력 끼칠수 있도록
2. 내년 2월까지 이사갈집(할머니 계셔서 부모님집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용) 구해야 하는데 전셋값과 이자가 많이 올라 부담이 되는데 살곳 허락해 주셔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지 않도록
3. 이번주부터 다른 학교 알아보고 시험을 보려고 하는데 준비된 것이나 시간과 여력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이지만 최선다해 임하고 결과 맡겨 드리도록
4. 평택에 있는 상가에 속히 좋은 임차인 들어오도록ㅠㅠ
5. 우리들교회 같이 온 친구와 계속 영적 나눔하며 둘다 믿음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혜신
1. 시험이 얼마 안남았는데 평가업무가 많아 스트레스가 많은데, 시간배분 잘 해서 학교평가업무 잘 해내도록
2. 날이갈수록 체력이 너무 지쳐가는데 1차 시험날까지 체력과 건강 붙들어주시길
3. 임용의 소동 속에서 말씀의 원칙을 잘 지켜나가 성령의 진정이 되어가도록
4. 1차 시험날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5. 임용 합격할 수 있도록
6. 목장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