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 '성령의 소동' (행19:21-31) 김양재 담임목사님
요새 뉴스 보면 소동케 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소동의 시절을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성령의 경영을 하는 우리는 어떤 소동도 성령의 소동이 되는 줄 믿는다.
성령의 소동은
1. 세상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21-23절
이 일이 있은 후에는 무슨 일인가? 지난 본문의 바울에 에베소 두란노에서 계속된 양육으로 전무 후무한 회개의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모든 죄를 자복하고 신주단지였던 마술책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운 적용한 일을 말한다. 근데 회심만 하면 깨끗한 그곳에 음란과 욕심이 채워져서 처음보다 더 형편이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불태워진 그곳에 사명이 채워져야 한다. 어떤 사명인가?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며 구체적 사명을 선포한다.
작정, 경영은 성령 안에서 내게 주신 사명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어떻게 나에게 사명 주시는가? 매일 듣는 말씀 안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사명이 성령이 주시는 사명이다.
성령의 경영을 하고 작정하고 사명을 받으니 소동이 따라온다. 내 복음이 확실하면 소동 없는 것이 이상하다. 잘 믿으면 소동이 따라온다.
특별히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는데, 로마는 내 가족을 죽인 원수이다. 조상들을 그냥 죽인 게 아니라 사자 밥 되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시체 등불로 사용해서 거리 밝히고 핍박하고 죽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다. 복수해도 짓밟아도 시원찮을 판에 성령의 경영으로 용서하고 품고 반드시 보아야 하리라 하고 복음 전하겠다 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해가 안간다.
그러나 성령의 세력을 맛본 사단은 예루살렘도 변화되었는데 큰일이라고, 사도바울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니 로마도 변화되겠다고 할 것이다. 회심이 일어난 이 일 후에, 사명 선포된 그때쯤 되어 우리의 대적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사단의 부흥회를 하며 큰 소동 일으킨다.
바울은 바로 이곳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다.
고전 16:8-9
광대하고 유용한 문, 이 문이 에베소에 열렸다 한다. 그와 동시에 소동 일으켜 대적하는 자도 동시에 일어난다. 지금 나에게 대적이 많아 소동 일어난 것은 지금 내 삶의 사명이 주어졌고 생명의 태동하여 자라는 것이고 이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소동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천하를 소동케 하는 가장 큰 소동은 언제인가?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이다. 예수께서 이땅에 여자의 자궁속에서 점과 같이 낮아져 이땅에 오셨을 때 그 점같이 온 예수님 때문에 천하가 소동했다. 복음이 가면 소동하게 되어있다. 세상 왕인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든 아기들을 죽이며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끝없이 일어나는 소동은 나를 죽이려는 소동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있기에 일어나는 소동이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 이라는 시가 있다. 대추 한알이 저절로 붉어질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벼락 등 상상할 수 없는 소동이 그 생명속에 깃들여 있다는 말이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소동 가운데 있습니까? 그 소동이 사명 때문에 왔습니까 욕심때문에 왔습니까?
엊 그제 큐티 기도회 제목
저희 가정의 칼이 임하는 사건으로 큰딸이 무슬림과 교제한다 오픈했다. 근데 30년간 불신으로 우상숭배하는 남편, 이단 빠진 작은 딸, 하나님도 믿음도 없는 곤고한 삶을 산 아들까지, 가슴 치며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 오호라를 부르짖는 손쓸 수 없는 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의 소동이 되어 주님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이 기도 때문에 살려주실 줄 믿는다.
한 목자님 가정 나눔
딸들 싸움에 아내가 개입하고 싸움 커지고 말려달라 해서 아빠가 말리는데 딸이 아빠 무시하고 욕하니 혈기가 나서 탁자 엎고 딸 핸드폰을 집어던졌는데 딸이 경찰 신고하고 아빠는 딸 핸드폰을 박살냈다. 소동이 징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나누는 집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싶지만 저는 소동이 일어난 우리들교회를 사랑한다. 소동이 일어났기에 오늘 말씀이 사모될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소동이다.
기도제목 읽으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 분들이 말씀이 들렸으면 좋겠다. 해석이 잘 되어야 해결이 된다.
성령의 소동은
2. 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23-26절
21절 이 일 후에, 23절 그때쯤 되어라고 하는이 기간이 복음 전한지 2년 3개월 쯤 되었을 때이다. 이 길은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우리는 길이 많다. 그래서 유일한 길을 못 만난다.
복음을 듣고 에베소에서 대대적인 복음운동이 일어나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매년 5월 되면 큰 예배 드려지고 축제가 열린다. 바로 아데미 여신 축제이다. 이는 풍요 다산 축복을 상징하며 12개의 유방 달려있는 아데미 여신이다. 그리고 제우스가 하늘에서 돌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으로 지은 것이 아데미 전각이라 하며 대단한 자긍심으로 신격화 시킨다. 우리가 아는 파르테논 신전도 건축학적으로 대단한데 이 아데미 신전은 그보다 4배 크고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한다.
이 신전에 5월쯤 되면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축제 벌이는데, 여기서 아데미 신의 모양을 조각으로 만들어 참배객에게 판다. 근데 두당 하나씩 가족 수 대로 판다. 왜 사는가 하면 가지고 가서 매일 정한 시간에 일상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전쟁이나 여행시에도 아데미 신상을 부적처럼 들고 간다. 그러니 작은 것도 큰 것 각각의 신상을 다 사는 것이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축제 벌일 때 에베소로 와서 아데미 신의 모형을 갱신하는데 여권처럼 늘 바꾼다. 그래서 은장색들이 망할 수 없다. 한철 장사로 일년 벌이를 다 한다. 어마어마한 돈이 에베소로 들어온다.
그 당시 에베소 인구가 지금으로 따지면 천만명 된다 한다. 전세계에서 에베소로 몰려오니 돈 모이고 금융이 모인다. 사람이 돈 생기고 시간 남으면 자연스레 음란한 문화가 발달하는 타락한 도시가 된다. 살기 좋으면 타락하게 된다.
이번에 간 캘리포니아가 그랬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물도 너무 좋아서 기초화장 할 필요도 없었다. 실리콘 밸리 있고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 북 등 IT 업체가 모여있는 메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은 인권이 가장 위에 있어서 동성혼도 가장 먼저 합법화 해 준 곳이고 계속 법을 만들어 죄를 합법화 해주고 있는 곳이다. 화장실도 올 젠더라 한다.
그곳에 알카포네가 수감되었던 알카트라츠 감옥이 바다에 떠 있다. 그곳을 예정해두었다가 갔다. 갔다오니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곳 가서 반대편 샌프란시스코 보니 비도 오지 않는데 한쪽은 어두운 구름이 있고 이쪽은 하얀구름이 덮고 있었다. 어두운 구름이 덮고 있는 그곳은 정말 사단과 동성애자들이 있었었다. 가이드 목사님에 따르면 비도 안 오는데 늘 그렇다고 한다 어두운 영이 덮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끼리 부부가 되었고 아이를 입양하고자 하니 입양 아이가 자기 성을 결정하는데, 여자 엄마보다 여자 아빠가 좋아서 자기도 그렇게 결정하겠다 하니 그것을 위해 법을 만든다고 한다. 끝도 없이 인권을 빙자해 법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이 그걸 따라가는구나 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던 어느 날, 데메드리오 라는 은장색, 즉 신전용품 만드는 은 세공업자라 할 수 있다. 상인조합인 길드의 회장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예수의 도가 아닌 세상의 도의 대변자로 나선다. 두란노 서원에 바울이 있다면 아데미 신전에는 데메드리오가 있다.
소동은 주동자가 반드시 있다. 종교성 가득한 시민들을 향해 많은 벌이를 하던 기득권 층이 있다.그들은 우상 만들어 파는 사업가이다. 큰 재산을 모아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근데 풍족하니 더 끝이 없다. 더 큰 번성을 원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축제가 되었음에도 수입이 줄어들었었다. 조사 해보니 바울이 매일 강론하며 아데미 여신은 신이 아니라 우상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소동을 일으킨다. 이것은 적지 않은 재물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가? 아데미가 풍요와 다산이다. 우리도 직장을 위해서 아이 낳기 위해 자녀 성공을 위해 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생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우리 가운데 풍족한 생활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열심히 영업하고 생업하고 만든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큰 가치를 데메드리오가 열렬히 대변해 주고 있다. 이들 생각은 성실히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이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인가? 하는 것이다.
근면 성실 부지런함 이런 가치가 좋다. 그러나 이런 선한 가치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못한다. 근면해도 성실하고 부지런해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선한 가치관 뒤의감춰진 자기 실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죄인의 실체를 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근면한 사람들은 사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세상은 이 심각한 죄악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칭찬 인정으로 더 두텁게 포장해 준다. 그래서 주님 말씀을 더 못듣게 한다.
에베소의 은장색들과 직공들이 그랬을 것 같다. 사람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 필요한 신상을 정성껏 만들어주니 얼마나 대단해 보였겠는가? 하루종일 작업실을 지키며 만드는 모습이 신과 사회를위해 개인의 욕심을 포기한 것 처럼 비춰지기 까지 했을 것 같다. 사실상 은장색과 직공들을 근면 성실 부지런하게 했던 동기는 돈이다. 그러나 무언가 대단한 가치를 위해 헌신한 것 처럼 두껍게 포장되어 있기에 나도 남도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근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포장을 뚫고 들어가 에베소 사람들 안에 감춰진 돈 우상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가 없었다면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을까? 신으로 섬길 만큼의 많은 돈을 벌었고 그만큼 돈 욕심이 컸다. 그러나 벌이가 적어지니 마음에 소동이 일어났고 소동 일어난 사람끼리 모여 도시 전체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욕심을 드러내기 위해 성품 노력 아래 감춰진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의 소동이 오는 것이다. 신이 무너지고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소동이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큰 지진 같은 사건이다.
27-29절
이 소동의 원인을 무엇이라 하는가? 아데미 여신이 무시당했다고 한다. 아데미 여신의 위엄도 떨어질까 한다고 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 천하를 진동케 하는 소동인데 이 때 이 소동이 얼마나 컸냐면 수십만명이 온 광화문 광장을 메웠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단한 소동의 중심에 있는 원인을 설명하는것이 감동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나라 믿음 구원 공정 위해 분노하고 소동한다고 한다. 애국심 믿음 명분의 포장 뒤에는 내가 무시받았다, 내 체면이 상했다 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 끝에는 돈이 있다. 자기들이 일으키는 이 세상 소동의 끝에 돈에 있는데 돈 때문에 그런 것 아니라 한다. 돈 아니라 욕심 아니라 공익을 위한 자기들의 영업이 천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포장한다. 나아가 온 지역이 섬기는 아데미의 위엄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포장하고 또 포장한다.
포장이 세상 경영의 특기이다. 이 소동을 일으키는데는 포장을 잘 하는 천재 같은 주동자 한 사람이 있다. 이런 주동자가 없으면 소동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포장 전략이 적중한다. 인생이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 끝에 돈이 있으니 이권을 공유하는 군중에게 이 선동의 말이 크게 들린다. 세상과 나는 간곳이 없어야 하는데 세상과 돈이 또아리를 틀고 있으니 하나로 딸궈진 화덕 같아 하나가 된다.
오징어게임으로 온세계가 소동이 났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게임의 내용이 너무 잔인하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있기에 죽기밖에 더하냐고 하며 참여한다. 거기에 어릴 때의 향수 자극하는 달고나도 나오고, 민주적이고 공정하다 하지만 참가자들을 빠져나갈 수 없게 궁지로 몰기도 한다.
이 드라마 만든 한국민의 근성, 이기고 이기려는 한국민의 근성으로 찍은 이것을 전세계가 한달에 1억 1천 1백만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이것은 온 인류가 이 죄성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죄성에 공감한다.
마찬가지로 데메드리오에게도 모두가 공감해서 직공들과 영업하는 자들이 듣자마자 100프로 동의했다.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사이다같은 발언에 마음을 뺏긴다. 그래서 그 선동에 이끌려 공공의 적이 된 예수의 도를 향해 분기탱천 한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에 맞서 대대로 섬기는 신인 아데미를 외친다. 행복을 외친다. 근데 바울은 거룩이 아니라 행복이라 한다.
요란한다는 것은 원어로 보면 여러 액체를 뒤섞는다는 것이다. 뭐가 무엇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상태를 뜻한다. 데메드리오에게 선동이 되어 아데미여 하고 나갔는데 왜 요란하다고 했을까? 혼란하다고 한다.
창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 기억하는가? 인간이 뭘 해보겠다고 바벨탑을 쌓아올렸는데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한다. 거기있던 혼잡과 같은 상태가 에베소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그 군중이 일제히 달려들어갔다고 한다.
사도행전 7장에서도 스데반 설교를 듣고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고 스데반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고 했다. 16:22절에도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니 옷을 찢어벗기고 매로 치라 한다. 세상은 소동이 일어난다. 복음을 들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예수님께서 앞서가신 길이 너무 싫다. 일제히 달려드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십자가 복음 부활이 싫어 분노한다. 이세상의 돈이 좋다. 그저 그러니 인정과 돈이 좋다. 너무 역설적이다.오직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도를 반대하려는 한가지 목적을 놓고 선동한 것이다.
그런데 그 데메드리오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부추기는 대로 따라가는 것 아닌가? 근데 그 끝에는 한 마음 한 뜻이 아니라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은 요란과 분노가 있다. 너 교회 나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따라가면 끝에는 온 집안식구가 말이 통하지 않는 요란이 있다. 이것이 세상의 말을 들은 결과이다. 박사 할아버지 말을 들어도 이 세상의 말을 들으면 결국은 분노와 요란으로 끝난다. 믿지 않은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면 요란과 분노로 끝난다. 무시당하면 요란으로 끝난다.
그러니 목장 말 듣는 것은 세계적 대안 맞다. 목장 말 안 듣고 세계적 박사 학자 할아버지에게 들어도 이혼 못막는다. 불신결혼 하나도 못막는다. 목장이 막는다.
믿음으로 내가 목장의 말을 듣기에 너무 형편없는 목자라 해도 하나님께서 그 말을 책임지시는 것이 있다. 형편없어도 목장에 가면 가는 사람은 산다. 우리는 목자가 훌륭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공동체기에 간다는 것 만으로도 축복하신다.
적용) 나는 어떨 때 무시 받았다고 생각이 드나요? 소동의 근원이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가족이나 지체에게 분함이나 야망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부추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목장 나눔
어느 목자님이 신혼 초에 권찰님이 뺨을 때리는 것을 나누었는데, 그랬더니 집에 와서 권찰이 왜의미 없이 그걸 나누냐고 하며 목장 후에 또 뺨을 때렸다 한다. 이것이 결혼생활이다. 이것을 목장에서 나눌 수 있어서 목장이 너무 귀엽다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 다행이다. 그런데 보통은 내가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무시 하나로 이혼하고 소동을 일으키고 체면 때문에 나누지도 못한다. 자존감이 바닥이라 그렇다. 그러니 날마다 이상한 데서 소동을 일으킨다. 소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관계가 좋아진다.
다른 나눔
한 목자님이 가족 큐티시간에 암걸렸다 이야기 하니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근데 아빠가 돈줄이니 잘못될까봐 놀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도 암의 소동이 있지만 끝에는 돈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본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나 때문에 슬프고 운다. 근데 그 끝에는 돈이 있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수도 지을 수도 없다. 다 부모자식 부부간 목장 싸우는 이유는 맨 끝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있다고 자기가 알면 그때부터 너무 좋고 나쁜 사람이 없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믿고 안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은혜로 믿었기에 모두를 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소동, 내 소동이 세상소동을 통해 근원을 드러냈으면 내 힘으로는 잠재울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이 소동이 성령의 소동으로 바뀌고 그칠까?
3.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 밖에 없다.
29-31절
온 시내를 요란하게 한 소동 가운데 바울과 같이 다니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군중에게 붙잡힌다. 같이 다니는 사람은 여행 동반자는 아니다. 제자 동역자, 아마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대신해서 바울을 수행하던 제자가 아닐까 싶다. 근데 바울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붙잡아서 인민 재판하려고 연극장으로 끌고 간다. 근데 바울은 그들을 구하려고 백성가운데 들어가고자 한다. 이런 일들을 보면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말씀의 공동체에 붙어있는 것이 필수이다. 에스겔처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반복해서 외쳐주는 지체들 곁에 있는 것이 세상 소동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는 비결이다.
바울이 늘 외로운 길을 간다. 데메드리오가 소동의 주동자가 된 것 처럼 복음도 바울을 딱 집어 공격했다. 바울 한사람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시내가 그의 선동을 받아 바울을 대적했다. 회당 유대인들에게도 배척 받고 광장 이방인에게도 박해를 받는다. 믿는 사람과 이방인 모두에게 박해를 받는다. 성령으로 경영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러나 불 같은 분노와 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같이 맞서서 안된다.
근데 오늘 바울이 죽고자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한다. 제자들이 만류하고 아시아의 관원들이 만류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 소동속에 들어가면 로마를 갈 수 없다. 즉 사명이 안끝났기 때문이다. 이때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 예수님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주님께서는 소동을 일으키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셨다. 물론 물건 파는 상을 뒤엎기도 하고 독사의 자식들이라 할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소동이 아니라 십자가 지시기 위함이었다. 그럴때도 있지만 이때는 맞써 싸워서 안된다. 이들은 믿음도 없다. 그러니 그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량을 인정해야 한다. 괜히 들어가 죽을 일이 아니다.
엊그제 수요일 평원님 설교에서 옥수수 농사 지었는데, 멧돼지들이 한 자루도 안 남기고 다 먹어치웠다고 한다. 일년 농사를 다 망쳤다고 한다. 정말 소동이다. 근데 그것을 멧돼지 입장에서 보면 일년 농사를 잘 지은 것이다. 겨울 동안 먹을 것을 찾은 것이다. 빈라덴도 이슬람 입장에서는 그들의 신을 지킨 애국자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부들부들 떤다.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한 각자 섬기는 우상이 다 다르다. 근데 미국이나 이슬람이나 평원이나 멧돼지 입장에서는 끝에는 다 돈이 있다. 다 돈 손해 보니 부들부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뭐든지 결정하고 해석할 때 옳고 그름으로 하면 안된다. 옳고 그름으로 결혼하면 남편이 무시될때가 많다. 아내가 무시하니 남편의 주먹이 날아온다. 그러면 또 이혼한다. 남자는 짐승과 재료가 같다고 했다. 미친듯이 소동 일으키고 난리를 일으켜도 이유를 살펴보면 단순하다. 자신이 무시받았다는 것이다. 체면이 상했다는 것이다.
목자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목장에서 권찰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목장에서 정답을 이야기 하긴 해야 하는데 솜씨있게 해야 한다. 너무 어렵다. 내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승진 되면 당신 너무 훌륭해 하면서 무조건 감격해줘야 하는데 정답 이야기 하면 안된다. 내가 큐티하라고 했더니 되었다고 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인데도 그렇다. 그것은 아내에게 공이 있는 것이다. 큐티는 남편이 하지 않았는가.
남편이 소동할 때는 이유가 있다. 그럴때는 밥 잘 차려주면 인정받는다 생각하고 아침에 현관에 나와서 인사 해 주면 인정받는다 생각해서 다른 소동까지 잠재워 질 수 있다. 굉장히 단순하다. 아내가 소동할 때는 힘으로 싸우지 말고 사랑의 언어로 감정을 이해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선물 백 사며 소동을 진정시키려 한다. 아내와 대화해야 한다. 믿음이 있는 아내들의 가장 큰 소원은 말씀으로 남편과 대화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아내들은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여러분의 결론이다. 여러분들이 택한 것이니 잘 당하시길 바란다. 나중에 결혼 하더라도 믿음 없는 아내 남편과 하면 당할 일 밖에 없다. 다들 자기만 쳐다보라고 하니 교회 남편 뺐겼다고 하고 세상 사랑만 갈구하기에 너무나 지혜가 필요하다. 그냥 해가떠도 이쁜것 좋아하다가 석달 좋고 삼십년 후회하는 집이 한두집 아니다. 외모보고 결혼하면 그렇다. 선물 백 이런 것만 좋아하는 아내들은 그렇게 대해줘야 하긴 하겠으나 그것도 어렵다. 선물 살 돈이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없구나 하고 회개하시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헤롯이 모든 유아들을 죽이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또 엄청난 소동이 일어났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바라바 놓아주고 예수를 못박으라 했다. 이 땅이 어떻게 공정한가? 그런 것 없다. 멧돼지가 먹을 것 다 가져가도 저 아이가 먹을 것 없어서 그렇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소동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싫기에 일어난다. 근데 십자가에 언제 달리는가? 그냥 못 달린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을 만큼 재력과 권세가 있게 되면 맨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죽여서라도 소동을 일으켜 혼자 살고자 한다. 독재자들이 다 그러했다. 믿음없는 사람이 나를 위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은 100프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 속에서 내가 낢다 죽는 것이 소동을 멈추는 비결이다. 성령의 경영을 막고 있는 것은 마술사도 유대인도 아닌 십자가를 거스르는 바로 나 이다. 하지만 내가 죽기 싫기에 내 속에도 소동이 일어난다. 우리의 주제가는 잘못은 저 인간이 했는데 내가 왜 죽냐 한다.. 잘못은 멧돼지가 했는데 왜 내가 죽고 손해봐야 하나 한다. 소동은 맞서 싸워서도 안되고 피해서도 안되고 그 소동 속에서 죄인 된 나를 바라보고 죽는 것이 생명이 탄생되는 비결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기록한 고전15:31-32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고전 15:31-32
이 소동은 사람의 방법으로, 힘으로 잠재울 수 없다. 근데 바울이 무시 받아보고 매맞고 분노도 당해보고 이 소동의 정체를 알았기에 자신의 생각을 꺾고 제자들의 말을 듣고 기다리는 것이다. 내 생각을 꺾는 것이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
내가 그런데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날마다 죽을 수 있다. 이 소동 속에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적용을 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이다. 이 소동 속에서 생명이 탄생된다.
이번 주도 얼마나 싸우고 오셨는가? 근데 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 다 남편이 아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죽어지면 싸움이 소동이 끝날 텐데, 서로 잘났다고 하니 말이 안된다. 근데 바울이 죽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기로 결단하면 소동이 그친다. 성령의 소동이 되어 생명이 탄생되어 복음이 편만히 간다.
적용) 내 자아가 펄펄 살아있는 소동의 정체를 아셨나요? 내가 죽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면 죽어질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보고를 받았다. 이 설교가 모두 답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만 싸우시고 죽어지시기를 바란다. 성령의 소동이 되기를 바란다. 말씀가지고 살아나야지 누가 맞고 틀렸다고 하면 막 살아나는가? 내가 죽어지고 밀알이 되어야 한다.
한 목자님이 이혼소송 하면서 아이 엄마에게 큐티로 편지를 보냈던 것이 때마다 많았다. 회개의 큐티 묵상 답변이라는 생각으로 답변했다. 그러니 문장 하나 하나 생각할 수 있었고, 아이 엄마 변호사이든 아이 엄마가 썼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팩트만 말하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성령님의 권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답변서도 목장 채팅방에서 같이 보고 나누며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겉으로 보여지는 이혼사유가 하나도 없었던 저에게 한 대라도 맞기만 하면 폭력혐의를 넣을 수 있기에 아이 엄마가 정말 약을 많이 올렸다. 그러나 구속사 말씀 공동체가 없었다면 저도 심판자가 되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대도 때리지 않고 반대의 영을 행한 것이 능력의 능력의 손을 행한 것 같다.
이분은 정말 이혼사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계속 기각이 되었지만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 분의 죄라면 이쁜 사람과 한 것 뿐이다. 이혼사유가 무엇이냐면, 첫 번째는 결혼할 때 아버지가 돈을 꿔주었고 매달 갚아갔는데 왜 매달 아버지 돈을 갚냐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이 낳고 돌 되었는데 강남으로 이사가야 한다고 하니 남편이 말이 안 된다 하니 이혼소송을 냈다. 이 이혼소송을 하며 우리들교회 같이 왔는데, 남편에게는 말씀이 들렸는데 아내에겐 안 들렸다. 결국 그렇게 했지만 1,2심 다 이겼는데 3심 하게 되니 이혼 사유가 문화가 달라서 이혼을 허락한다고 되었다.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두 가정의 문화가 다르니 살 수 없으니 판결을 내려 주었다.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나 든다. 고난 없는 분들이 공부 잘해서 판결하는데 가정을 깨는 판결을 자꾸 하는 것 같다. 기각했으면 이 가정이 깨지지 않았을 텐데, 완전한 남편인데 내가 싫어서 이혼한다는 것을 보고 끓어오른다..
이분이 최선을 다했지만 이혼당했다. 그러나 이혼 되고 안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이다. 이분이 가끔 내 안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때 내가 언제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혼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일에도 기가막힌 판결 하나를 목장에서 읽었다.
이혼조정심의 들어갔는데 판사 조정관이 다 여자였다 왜 이혼 안 하려 하냐고 물으니 가정 지키고 싶다고 했더니 본인만 지키고 싶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고, 결혼 생활 유지가 13개월, 별거가 3년이면 이미 파탄났다고, 힘들게 재판 가봤자 볼 꼴 못볼 꼴 다 보고 위자료 3천만원 줘야 하니 위자료 주지 말고 여기서 이혼하라고 했다. 근데도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 하니 판사님이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법적으로 이미 끝난 가정이라고 했다. 강제 조정받고 항소 하면 위자료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에는 이런 말이 두렵고 떨렸는데 담담하게 강제 조정문을 내려주시면 그때 고민해보겠다고 하니 아내가 위자료 안받을 테니 제발 이혼해 달라 한다. 그러니 판사가 아내가 이리 양보하는데 남편은 양보하는 것이 없냐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인권이 왕노릇 해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정립되지 않아 원하기만 하면 인권이라 하며 이혼도 낙태도 허용한다. 그러니 200개 나라 중 이 나라가 생활지수 10위권에 들어가니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자살률 1위이다. 이기고 이기려니 자살하고 이혼한다.
돌아와서 수많은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들교회 목장 식구들이 이 이야기를 다 하고 가니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공부 잘한다고 판검사 되었다고 해서 어떻게 판결할 수 있는가? 이들은 옳고 그름으로 무시 한번 당했다고 이혼 판결한다. 멀리 내다보는 분이 없다. 예수가 없으면 자기 명분에 겨워 그렇다
목자들이 나가서 이렇게 이혼 안하려고 답변서 쓰고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고 무시와 조롱 당하면서 말귀 못 알아듣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판사가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혼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
말씀맺음
성령의 소동은 세상의 소동으로 시작된다. 이런 일이 있으니 안타깝게 기도해야 한다. 소동이 시작되면 복음 전하는 광대한 문이 열렸구나 생각해야 한다. 그 소동에서 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낸다 무시 받고 체면이 손상되었다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 내가 돈 좋아하니 소동이 끝나지 않는다. 돈 욕심 내려놓으면 되는데 계속 상대 손가락질 한다. 내가 죽어져야 한다. 시체는 아무리 찔러도 안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살았기에 침 찌르면 소리지른다. 짧은 인생길인데 별 인생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죄 됨을 보지 못하면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어서 가정을 지키고 최고의 가치인 가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제목]
* 이지현
1. 2차 백신 후유증 잘 넘어가도록
2. 내 죄 보고 내가 잘 죽어질 수 있도록
3. 몸에 맞는 운동 할 수 있도록, 생활에 운동루틴 생기도록
4. 우리 목장의 이방 우상이 끊어지고 신교제 신결혼
* 김교희
1. 하나님이 진짜 나의 상급되심을 인정하는 한 주가 되도록, 소동 속에서도 잠잠해지는 평안을 주시기를, 잘 죽어지도록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보내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 시간을 감해 주시도록
3. 동생 회사 폐업사건이 동생의 구원을 위한 사건이 되도록, 적용점 보여주시도록
4. 전세 만기 이후 거취 잘 마련되도록
5. 진짜 신교제 신결혼
* 류가영
1. 화요일 남자친구 부모님 인사 조용히 소동 없이 잘 드리고 오기
2. 삶의 우선순위를 일과 돈보다 예배로 두기
3. 차로 출퇴근 시작하는데, 장거리 안전한 출퇴근 지켜주시기를
4. 결혼을 향한 펄펄 뛰는 내 자아를 누르고, 남친의 세례를 도우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기
*허유정
1. 타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쉽게 분노하지 않도록 이 좁은 마음을 넓혀주시길
2. 양육을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3. 남자친구가 목장으로 돌아오길
4. 금요일 2차 백신 후유증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