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소동 본문: 사도행전 19:21-31
설교:김양재목사님
요새 뉴스를 보면, 마음을 소동케 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코로나 소동, 정치 소동, 집값 소동, 비리 소동 등 소동의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경영을 하는 우리는 어떤 소동도 성령의 소동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소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성령의 소동은) 세상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21-23절, 이 일 후에는 지난 본문에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에서 계속된 양육으로 전무후무한 회개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죄를 자복하고, 신주단지였던 마술 책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우는 적용을 한 이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회심만 하면, 깨끗한 그 곳에 더한 음란과 욕심이 채워져서 처음보다 형편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태워진 그 곳에 사명이 채워져야 합니다. 바울의 사명이 채워집니다. 구체적인 사명을 선포합니다. 작정 즉 경영은 헬라어 푸뉴마를 써서 성령 안에서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매일 듣는 말씀 안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경영을 하고, 작정을 하고, 사명을 받으니 그 다음으로 따라 오는 게 소동입니다. 특별히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하는데 로마는 내 가족을 죽인 원수입니다.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내 조상- 기독교인들을 사자 밥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시체를 등불로 사용해 거리를 밝히고,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또 우리가 믿는 우리 주님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 달게 했던 로마입니다. 복수해도, 짓밟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성령의 경영으로 용서하고, 품고, 반드시 보아야 하리라는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니, 세상 사람은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력을 한번 맛 본 사탄은 에베소도 이렇게 변화되는데 큰 일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겠다 하니, 로마도 변하겠구나. 회심이 일어난 이 일 후에, 사명이 선포된 그때즘에 , 이 일 후에, 그 때즘에 되어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치 못하게 하기 위해 모든 세력을 동원해서 사탄의 부흥회를 하여 큰 소동을 지금 일으킵니다. 바울은 바로 이 곳 에베소에서 고린도서를 기록하였는데, 고린도전서16장8-9절, 8절: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광대하고 유효한 문 - 이 문이 지금 에베소에 열렸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소동을 일으켜 대적하는 자도 동시에 지금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대적이 많아 소동이 일어난 것은 지금 내 삶에 사명이 주어졌고, 생명이 태동하여 자라는 것이고, 이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동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천하를 소동케 하는 가장 큰 소동은 바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여자의 자궁 속으로 점과 같이 낮아진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점 같이 온 예수님 때문에 천하가 소동 했습니다. 복음이 가면 소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왕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아기들을 죽이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믿는 자에게 끝없이 일어나는 소동은 나를 죽이려는 소동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있기에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어떤 소동 가운데 있습니까? 사명 때문에 온 소동입니까? 욕심 때문에 온 소동입니까?
2. (성령의 소동은) 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23-26절, 21절에 이 일 후에, 그때쯤 되어, 이 기간이 에베소에서 복음 전한 지 2년 3개월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 도는 복음이고, the way를 말합니다. (a way가 아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유일한 길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a way가 많습니다. 그래서 the way를 못 만납니다. 복음을 듣고 에베소에 일어난 대대적인 복음 운동으로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매년 5월이 되면, 에베소에서 큰 예배가 드려지고, 큰 축제가 열리는데 바로 아데미여신 축제입니다. 풍요와 다산, 축복을 상징하여, 아데미여신에게 12개의 유방이 달려 있고, 제우스가 하늘에서 돌을 떨어 뜨렸는데 그것으로 지은 정각이 아데미 정각이라고 신성시하면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아데미신전은 아덴의 파르테논신전도 건축학적으로 대단한데 거기의 무려 4배가 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 신전에 5월달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버리는데, 여기서 아데미신의 모형을 조각으로 만들어 참배객들에게 팝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일상의 예배가 이 아데미신상 앞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전쟁이나 여행시에도 아데미신상을 들고 갑니다. 그 곳에서 매일 예배를 드립니다. 1년에 한번 축제가 열릴 때, 에베소로 와서 아데미 모형의 신을 다 갱신해 갑니다. 이 신상을 파는 은장색들은 망할 수가 없는 장사고, 한 철 장사라고, 5월이면 1년 벌이를 다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어마어마한 돈이 에베소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 당시 에베소 인구가 지금으로 따지면 천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전 세계에서 에베소로 몰려드니, 돈이 몰려 들고, 사람이 돈 생기고, 시간이 나면 자연스레 음란한 문화도 발달하게 되는, 굉장히 타락한 도시가 됩니다. 살기 좋으면 타락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즉 신전 용품을 만드는 은 세공업자라고 할 수 있는 상인 조합 길드에 회장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의 도가 아닌 세상의 도의 대변자로 나섭니다. 두란노 서원에 바울이 있다면, 아데미신전에 데메드리오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동은 주동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종교성 가득한 시민들을 통해 많은 벌이를 한 기득권 층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 만들어 파는 사업가인데, 큰 재산을 모아 풍족한 생활을 했고, 더 큰 번성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축제가 되었는데, 수입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면서, 아데미여신은 신이 아니고 우상이다! 적지 않은 소동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적지 않은 재물 때문입니다. 아데미가 풍요와 다산의 신이니, 우리도 직장을 위해서 날마다 빕니다. 또 아이를 낳기 위해서 빌고, 자녀 성공을 위해서 비는 게 믿는 우리와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우리 가운데 풍족한 생활을 싫어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영업하고, 생업하고, 팔고 그럽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고 큰 가치들을 지금 데메드리오가 열심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성실하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이였을 뿐인데...입니다. 근면, 성실, 부지런- 이러한 가치들은 아주 좋은 것인데, 이런 선한 가치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를 못합니다. 근면해도 죄인이고, 성실해도 죄인이고, 부지런해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오히려 그러한 선한 가치들 뒤에 감춰진 자기 실체,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의 실체를 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면한 사람들은 사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 심각한 죄악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칭찬과 인정으로 더 두텁게 포장해줍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더 못 듣게 합니다. 에베소의 은장색과 직공들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 필요한 신상을 정성껏 만들어 주니, 얼머나 대단해 보였겠습니까. 하루 종일 작업실을 지키며 만드는 모습이 신을 위해,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심을 포기한 사람들로 비춰지기 까지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은장색들과 직공들을 근면하게,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움직이게 했던 동기는 돈입니다. 뭔가 대단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두껍게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포장을 뚫고 들어가서, 에베소 사람들 안에 감춰진 돈 우상을 드러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가 없었다면,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겠습니까. 신으로 섬길 만큼 많은 돈을 벌었고, 그만큼 돈 욕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벌이가 적어지자 마음에 소동이 일어났고, 소동 사람들끼리 모여 도시 전체가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욕심을 드러내기 위해 성품과 노력 아래 감춰진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의 소동이 오는 것입니다. 신이 무너지고,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소동입니다.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큰 지진 같은 사건입니다. 27-29절, 이 소동의 원인을 아데미여신이 무시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엄도 떨어지는,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대단한 소동 중심에 있는 그 원인은 매우 감동스럽게 보이기 까지 합니다. 나라를 위하고, 믿음을 위하고, 구원을 위해, 공정을 위해 우리는 분노하고 소동한다고 데메드리오가 나가서 연설을 합니다. 애국심과 믿음과 명분의 포장 뒤에는, 내가 무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을 가보니 돈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일으키는 세상 소동이 돈에 있는데, 인정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고상한 종교적 가치 때문이라고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자기들의 영업이 천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포장을 합니다. 나아가 온 지역이 섬기는 큰 여신 아데미여신의 위엄이훼손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포장 위에 포장을 또 합니다. 포장이 세상 경영의 특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동을 일으키는 데는 포장을 잘 하는 주동자 한 사람, 천재같은 주동자 한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런 주동자가 없으면 소동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다 죄인이기 때문에,이 포장 전략이 적중합니다. 익권을 공유하는 그 군중들이 다 돈에 끝이 있으니, 익권을 공유하는 군중에게 이 선동의 말이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오징어게임 이기고 이기는 죄성에 전 세계가 공감합니다. 마찬가지로 데메드리오에게도 모두가 공감해서, 직공들, 영업하는 자들이 듣자마자 백프로 동의가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의 있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사이다 같은 발언에 마음을 뺐겼습니다. 또 그 선동에 이끌려 공공의 적이된 예수의 도를 향해 분기탱천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맞서 자신들이 대대로 섬기는 신인 아데미를 외칩니다. 성공과 축복과 다산의 신- 이것을 외치는 것입니다. 행복을 외칩니다. 바울은 거룩을 외칩니다. 그런데 요란하다는 것은 원어적 의미를 보면, 여러 액체를 뒤섞어 함께 뒤섞어 붙는 것을 말합니다. 대체 뭐가 뭔지 구별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쌓아 올렸는데,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온 땅에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창11:9) 거기 있던 혼잡과 같은 상태가 지금 에베소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군중이 일제히 달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도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 들었다고 했습니다. 16장 22절에도 무리라 일제히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니, 이제 옷을 찢어 벗기고 메로 치라 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소동이 일어납니다. 복음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서가신 그 길이 너무 싫습니다. 그러니 일제히 달려들어 핍박하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르지가 않습니다. 이들은 십자가가 싫고, 복음이 싫고, 부활이 싫어서 분노를 합니다. 그저 자기가 인정 받는 게 좋고, 그냥 돈이 좋습니다. 이 땅은 어딜 가나 인정이 좋고, 돈이 좋습니다. 그런데 너무 역설적입니다. 오직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도를 반대하려는 한가지 목적을 놓고, 선동한 것입니다. 데메드리오 한 사람의 말을 듣고, 그가 부추기는 대로 따라 갔더니, 결과는 한 마음 한 뜻이 아니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요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말을 들으면, 결국은 이렇게 분노와 요란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질해 보여도 목장의 말을 듣는 것은 세계적인 대안이 맞습니다. 믿음으로 내가 목장의 말을 듣기 때문에 너무 형편 없는 목자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 목장의 그 말을 책임지시는 게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용] 나는 어떨 때 무시 받았다고 생각이 드나요? 소동의 근원이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가족이나 지체에게 분함이나 야망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부추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3.(성령의 소동은)내가 죽는 것입니다.
29-31절, 온 시내를 요란하게 한 소동 가운데, 바울과 같이 다니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군중에게 붙잡힙니다. 아마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대신해서 바울을 수행하던 제자가 아닐까 합니다.그런데 바울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붙잡아서 인민 재판을 하려고 연극장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바울은 이 때 그들을 구하려고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말씀의 공동체에 붙어 있는 게 필수입니다. 에스겔처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를 반복해서 외쳐주는 지체들 곁에 있는 게 세상 소동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는 비결입니다. 바울이 늘 외로운 길을 갑니다. 데메드리오도 소동의 주동자가 되서 한 것처럼 복음도 바울을 딱 집어서 공격했습니다. 바울 한 사람 무너뜨리면 다 무너진다.그래서 온 시내가 그의 선동을 받아서 바울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회당의 유대인에게도 배척을 받고, 광장의 이방인에게도 박해를 당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배척을 받고, 이방인에게도 박해를 당하고, 성령으로 경영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불 같은 분노와 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같이 맞서 싸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죽고자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만류하고, 아시아의 관원들이 만류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 소동 속으로 들어간다면 로마를 볼 수 없습니다. 사명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 때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소동을 일으키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물론 물건 파는 상을 뒤엎기도 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 진 저 독사의 자식들아 이런 얘기도 하셨지만, 결론은 소동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은 이 때는 맞서 싸워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믿음의 분량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들은 아얘 믿음이 없습니다.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한 각자 섬기는 우상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다 끝에는 돈이 있으니 부들부들 떠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해석할 때 옳고 그름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구원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헤롯이 모든 유아들을 죽이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또 엄청난 소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몫 박아라,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넘겨라. 그러니 이 모든 소동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싫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지 않을 만큼 재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죽여서라도 소동을 일으켜 혼자 살고자 합니다. 히틀러, 독재주의자들이 다 그렇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할 것 같지만 절대로 안 그렇습니다. 인간은 백프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 속에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이 소동을 멈추는 비결입니다. 성령의 경영을 막고 있는 것은 마술사도 유대인도 아닌 십자가를 거스르는 바로 나입니다. 하지만 내가 죽기 싫기에 내 속에도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내가 죽어야 되? 소동은 맞서 싸워도 안되고, 피해서도 안되고, 그 소동 속에 죄인 된 내가 죽는 것이, 그 소동 속에 생명이 탄생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기록한 고린도전서 15장 31-32절,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절: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마시자 히리라이 소동은 사람의 방법으로, 힘으로 잠재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시로 분노로 그들의 분기탱천으로 이 소동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꺾고, 옆에 제자들의 말을 듣고, 백성 가운데로 안 들어 갔습니다. 내 생각을 꺾는 것이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죽을 수 있나요?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날마다 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소동 속에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적용을 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이 소동 속에 생명이 탄생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죽기로 결단합니다. 한 사람이 죽기로 결단하면, 소동이 그칩니다. 성령의 소동이 되어서, 생명이 탄생 되어서, 복음이 편만하게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내 자아가 펄펄 살아있는 소동의 정체를 아셨나요? 그러면 죽어질 수 있겠습니까?
*나눔: 어떤 소동 안에 있습니까?
최혜신
임용의 소동 안에 있다.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았고. 요즘에 큐티 속 에스겔을 보면서, 에스겔이 매번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데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고, 망했고, 목자로서 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이렇게 사실 매일 혼날 때마다 요즘은 하나님한테 시험이 가까이 오니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확신이 있어서 소동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임용 합격을 하든 안 하든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현실 앞에서는 이것만 믿고 갈 수가 없는 것 같다. 안 되게 하실 것에 대해서 아직 많이 두렵고, 내 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달라고는 차마 기도를 하지 못하겠다. 임용 합격과 구원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고, 안되게 하시면 구원에서 놓고 보면 감사한 문제이지만.. 불합격의 시련을 달라고는 차마 못하겠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혼날 때마다 그건 차마 안된다라고 기도를 하기는 한다. 내가 참 믿음을 지켜오기 위해서 애를 쓰긴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현실 앞에서 내 원하는 바를 완전히 자유로워 지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혼나는 문제가 되고 있나.. 생각하면 안되는 한계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불쌍히 여겨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한테도 내가 이렇게 안되는 모습도 하나님은 사랑하실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다. 붙회떨감의 믿음을 요구하실까 무섭기도 하고, 다행히 들어온 말씀으로 인해서 말씀을 붙들고 가고 있다.청년부 간증에서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공감이 많이 됐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필요하시면 채워주실 것이고, 때가 아니면 안 되게 하실 것인데,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내 역할에 최선을 다 해가도 보면 하나님께서 해가실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또 그러다 보니, 합격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사고방식이 마음이 굳어져 가는 것들이 보이고, 편협한 생각을 하고, 사람들에게서 상처 받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내가 자꾸 슬퍼지려고 하고, 그래서 나는 합격을 했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서 내가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슬퍼지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시간을 주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잘 가다보면, 되어 가겠지 생각하고 있다. 결론은, 그치만 합격하고 싶다... -.,^
문에스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판단, 정죄, 미워하는 마음으로 항상 소동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주에 <사랑 받고 사랑 하고> 책을 읽는데, 내 안에 의문들을해결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남을 많이 판단하는 사람은 그만큼 나 자신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나를 너무 몰라서 이러고 있구나... 엄마도 나에게 어렸을 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말들을 많이 하셨었는데... 가정에서 부터 내려오는 죄인 것 같다. 우리 가정의 죄부터 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목자: 그 소동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오늘은 어떻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아?
말씀에 대해서 회피만 하지 않는다면, 내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은 것 같다. 남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소동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고, 남 때문에 생긴 소동으로만 받아 드려졌다. 일단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죽어져야 할 것 같고, 내면적으로는 들여다 보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목자: 그 소동은 너에게 사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아니면 욕심 때문에 온 소동인 것 같아?
남을 정죄하는 소동은 내 욕심에서 오는 것 같다. 나 자신은 완벽하다고 여기고 싶으니까, 나는 완벽하고 너가 문제야 라는 태도를 취하고 싶은 것이고, 나를 우상 삼고 싶은 것이니 그게 나의 큰 욕심인 것 같다.
목자: 너가 원하는 네 모습이 뭐야?
나는 일단 지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실상 지질하다.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 씩씩하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가면으로 포장하면서 그럴 듯하게 지내려고 하니,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서 다른 방법으로 발산이 된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탓을 한다거나 이런 증상으로..
목자: 요즘에는 너의 자아가 죽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죽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깨닫게 된 것들이 있지만, 내가 적용한 게 있나 싶다.. 사실 말씀 보는 게 귀찮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보려고 하는 게 예전에 비해 자아를 죽이고 있는 것 같다. 쉬고 싶을 때는 말씀 보다는 내 자아가 올라와서 내 방법으로 쉬고 싶다.
*기도제목
권희경
1. 이번 수요일 연구수업(11:00) 하는데 근심염려 내려놓고 능력 주시는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도록
2. 갑자기 집주인이 내년에 실거주하겠다 하여 새집을 구해야 하는데 전셋값과 이자가 많이 올라 급작스럽고 속상한데 그럼에도 감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시는 주님 믿고 기뻐할 수 있도록
3. 여러가지 일로 우울해져 힘이들고 두려운데 기도하고 큐티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3. 대학원 진학과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데 나아갈 길에 지혜를 주시도록
4. 우리들교회 같이 온 친구와 계속 영적 나눔하며 둘다 믿음 키워나갈 수 있도록
신은주
1. 면역력 약해져서 편도선염왔는데 컨디션이 계속 안좋고 도저히 건강할수없는 환경이라 낫지않는데 건강지켜주시도록
2. 병원에서 팀 독립해서 매일 오버타임하고 힘들게 버티며 삶의 목적? 을 잃어버린거같은데 하나님뜻대로 이끌어주시기를
김은희
1. 하고 있는 작품 남은 기간동안 누구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해나갈수 있도록 그리고 코로나로부터 지켜주시고 보호하여주세요
2. 아빠가 많이 회복되어가고 있음에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앞으로는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주님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도록 아빠의 마음을 주관하여 주세요
3. 엄마와 할머니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강건하게 하여주세요 그리고 저도 아프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주님 지켜주세요
4. 공연을 하고 있다는 핑계로 말씀과 큐티에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정신 차리고 다시 말씀앞에 나아올수 있도록 주님 붙들어주세요
최혜신
1.임용 1차 시험날까지 코로나 안 걸리도록
2.임용 1차 시험날까지 말씀에 잘 매여가도록
3.2학기 수업 및 평가 잘 마무리해가도록
4.엄마 건강 붙들어주시길
5.1차 발표날 붙회떨감할 수 있도록
문에스더
1. 내 소동의 근원을 큐티로 잘 살펴 보며, 회개할 수 있도록
2. 욕심의 소동이 성령의 소동이 될 수 있도록
3. 동생(문예나)이 남자친구와 잘 분리될 수 있도록 (동거, 담배, 술 끊을 수 있도록)
4. 아버지 목요일에 목장 모임 잘 지켜서 하게 하시고, 목장 모임을 위해 건강 지켜주시도록
5. 어머니도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 공동체에 잘 인도될 수 있도록
6. Jerry Lee 라는 국제학교 몽골 선생님을 31일 현장예배 초청할 예정인데, 약속이 취소되지 않고 마음이 열려 새가족 등록을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