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그에게 이르라' (겔 32:1-12) 최대규 목사님
선교지 10년 있다가 추방당해 한국 온 친구 목사님. 갑자기 한국 오게 되어 어려웠을 텐데 설상가상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수술도 잘못되어 두번의 수술과 일년 넘게 목발을 하면서 여러 힘든 시간을 보낸 친구가 있다. 올해 상반기 목회자 세미나도 왔었다.
그 친구가 마치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 중 소명 받은 것 처럼 교회개척이라는 소명을 받았다. 돈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연고 없는 곳에서 교회 개척하기로 했다. 성전 찾는데 상가도 비싸서 고민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임대가 되지 않았던 상가를 아주 싼 값에 계약하게 되었다. 시작했으나 아무것도 없어서 기도하면서 보내주시고 섬겨주시는 기적이 있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제가 요즘 무엇이 힘드냐 했더니 돈이 아니라 설교 하려고 앉아있으면 자기 아이와 아내만 있는데 그러다 아이가 화장실 간다고 아내와 함께 나가면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설교를 멈춰야 하는지 계속해야 하는지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큰 교회도 역할이 있듯이 작은 개척교회도 역할이 있다고, 열심히 전도하고 사역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저도 부족하지만 제가 설교하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 있다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고 싶다.
에스겔 1-3장 까지는 에스겔이 소명 받는 말씀, 4-24장은 남유다의 멸망, 25-32장은 남유다를 괴롭힌 주변 열국이 망한다가 주제이다. 암몬 두로 등의 나라가 다 망하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유독 애굽 멸망에 대해서는 길게 나온다 무려 4장에 걸쳐 나온다. 왜냐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애굽이 너무 질기기 때문이다. 애굽의 죄가 참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애굽을 동경하고 의지하는 이스라엘 때문이다.
33장이 시작되면 에스겔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 회복의 메시지가 들린다. 포로귀환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심판 메시지에서 회복 메시지로 바뀐다. 그 기로에 애굽의 멸망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회복이 있으려면 반드시 애굽이 멸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회복이 있으려면 내가 그토록 동경하는 애굽이 멸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불러야 할 것, 이를 것이 무엇인지 보겠다.
1. 말씀하신 애가를 이르라고 하신다.
1-2절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이 날짜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 때가 남유다 여호야긴과 에스겔이 포로로 사로잡힌 그 날이다. 그 날부터 12년 12월 1일째 되는 날에 하나님 말씀이 임한 것이다.
에스겔은 힘든 포로생활 중에도 언제 주의 말씀이 임할지 몰라 늘 말씀 듣는자리에 나왔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에 큐티가 몸에 배지 않는다. 나눔 들어보니 사건이 와야 큐티하고 어떤 분은 사건이 없어야 큐티한다고 한다. 사건과 상관없이 큐티하는 것이 포로생활 중 에스겔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애굽이 망해도 하나님 말씀은 에스겔에게, 나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집이 망하고 회사가 망하고 다 망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기 때문이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도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해석이 들리는 것이다. 모든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사실 예수믿는 내가 그 말씀을 통해 해석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무시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약소국인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이 임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는 처가가 애굽 같이 도와주겠다 하길 바라며 결혼했다. 근데 에스겔처럼 기도만 해 주셨다. 참 많은 무시와 조롱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가를 불러주고 기도해주신 처가 덕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4장 동안 나오는 애굽의 멸망은 7번 나온다.
29장은 낯을 향해 외쳐라, 30장은 통곡하여 외치라, 32장에서는 애굽왕 바로를 향해 슬픈 노래를 불러라 하신다. 애굽이 망하려면 바로가 꺾여야 한다고 하신다.
바로는 원어로 큰 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큰 집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동생 부모가 다 돌아오는데, 오히려 큰 집이 막아서는 것이 있다. 저희도 큰 집이 애굽 같다. 아버지가 막내시고 형 누나들이 아버지에게 너나 잘 믿으라며 바라본다. 가정마다 큰집역할 하는 바로 위해서 애가를 불러 이르라 하신다.
애가는 무엇인가? 장례식때 부르는 장송곡이다. 바로가 죽을 것이다 망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애굽은 아직 망하지 않았고 건재했는데 왜 장송곡 부르라 하는가?
그것은 바로가 자신이 신이라 하며 다닐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망선고를 받은 자와다름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꽃이다. 뿌리에서 잘려나간 꽃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시들고 죽는다. 지금은 화려하게 보여도 죽은 꽃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그 누구라도 멀쩡해보이고 멋있어 보여도 죽은자와 같다. 그래서 바로에게 애가 부르라는 것은 기복적 가치관이 깨지지 않으면 참 어렵다. 여전히 바로와 그의 권세가 너무 부럽고 동경이 되니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쉽지 않다. 오히려 내 인상이 폐허 같은 예루살렘 같아서 자기 연민의 괴로움의 한탄의 애가를 부르게 될 때가 많다.
성경에서 바로왕에게 항상 붙는 수식어가 있다. 완악함 이다. 그 완악함은 항상 그가 듣지 않았다는 말씀과 연결된다. 성경을 많이 봐도 바로보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표징을 많이 본 사람이 없다. 하나님이 정말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마음이 완악해져서 듣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듣지 아니하였다. 항상 완악한 마음으로 듣는 귀를 닫는 자였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르러야 할 바로는 그런 사람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그 애가를 불러야 한다. 이르지 않으면 그 애굽 가치관에 삼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큐티하고 말씀 볼 때 꽂히는 것이 있다. 저도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애굽의 멸망을 위해 왜 노래를 부르라 하셨을까 싶었다. 묵상하다가 이런생각이 났다. 그 노래만 들으면 그때 일이 생각이 난다 하는 것이 있다. 노래와 음악이 기억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순간에 제품 팔때도 음악을 계속 사용하여 마케팅에 활용한다고 한다. (손이가요 손이가, 짜라짜짜짜짜짜짜짜)
음악이라는 것이 무의식적인 기록을 담아두는 것 같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쭉 외우라 하면 어려운데 이걸 노래로 부르게 하면 쉬워진다. 미취학에서 불신결혼 안돼요 노래를 부른다. 애들이 불신결혼이 무엇인지 알고 부르겠는가? 근데 그런 노래 듣다가 장성하여 청년의 때에 결혼하려 할 때 애굽 같은 남자가 나타나 흔들릴 때 그 노래가 생각나고 담임목사님 얼굴이 나타나고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축복이 된다.
이 바로가 멸망한다는 애가가 그발강가에서 힘든 노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울려펴진다. 근데 그 포로생활하는 자들에게는 이 노래가 위로로 들린다. 내가 애굽 안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의 포로생활이 힘들어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포로생활 하게 하시는거라고, 노래 부르며 일하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 노래 부르면 그 노래가 바벨론 그발강가에 울려퍼지다가 남유다와 애굽까지 바로까지 들려질 것이다. 근데 하나님이 이것을 왜 바로까지 이르라 하시는가 생각해보면, 지금 바로왕 옆에서 애굽을 끊지 못하는 남유다 백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것을 들으라고, 바로에게까지 이르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말인가? 에스겔이 이 말씀을 받을 때 남유다에 사건이 일어난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하고 난 이후에 그 땅에 남은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다랴 라는 총독을 세운다. 거기서 그다랴 통치 하에서 잘 있었으면 아마 이스라엘의 회복의 씨앗이 될것 같았는데 이스마엘이라는 자가 충동질 해서 그다랴를 죽이게 된다. 그러니 바벨론이 세운 사람을 죽이니 반드시 보복당할거라고 죽게될거라는 두려움에 군대장군 요하난이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에 도망가자고 한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렸다. 그들이 그 땅에 잘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부 애굽으로 도망치게 된다. 결국 그들이 나중에 한번에 죽임당하게 된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누구를 따라야 할지 선명하지 않다. 한번 잘못 따르면 나라가 멸망할 수 있게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애굽으로 도망친 남유다 백성을 통해 애가가 계속 울려퍼진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듣고 큐티하고 자기죄 보는 귀한 나눔들을 교회 안 뿐 아니라 교회를 떠난분들을 위해 끊임없이 불러야 할 것이다.
저희 목장에도 이혼이라는 애굽으로 떠나신 분이 있다. 그 분은 이혼하니 돌아오기가 부끄러워 못 돌아오신다. 돌아오시라 만나고 찾아가는데도 카톡 보내면 안읽씹 당한다.
제가 왜 설교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그분이 예배를 드릴 것 같아서 하는 마음에 그 분 때문에 이 말씀을 하지 않을까 한다. 집사님 뿐 아니라 목장 떠나계신 많은 분들, 목장에 가기 힘들어하는 분들, 공동체에 돌아오시기를 바란다.
애굽으로 피하면 살 것 같다 말하지만 사실 애굽으로 피한 그들은 주님이 망할거라고 하신다.
저에게 수년간 에스겔처럼 끝없이 경고해 주신 분이 어머니인데, 항상 해준 말이 살 안빼면 죽는다 고혈압온다 이다. 10년간 그렇게 말 하셨다. 이런 예언을 수없이 했는데 하나도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다. 왜냐면 아무리 이야기 들어도 나와는 상관없다 생각했다. 제가 바로와 같이 완악함의 끝판왕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 들으면 제가 어릴 때부터 심방가는걸 좋아했다고 한다. 항상 심방 끝나면 푸짐한 다과들을 보며 제가 심방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가 끝나면 사탕과 과자를 입안에 넣고 들고왔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제가 어릴때부터 식탐이 많았다.
담임목사님께서 한 부목사에게 살이 좀 찌니 좋아보인다 하는 것을 듣고 저도 살찌니 좋아보이지 않냐 했더니 목사님께서 에스겔 같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목사는 뚱뚱하니 믿음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 말에 현타가 와서 살을 빼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골로새서 3:6 에 탐심이 우상숭배라 했다.
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먹는 것으로 나의 만족을 찾으려 하는 나의 마음의 근본이 나를 우상으로 삼고 있구나 했다. 저는 제가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제가 기분 좋은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나를 끊임없이 기쁘게 하려는 내 삶의 목적이 나를 우상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우상삼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했다. 너희도 나를 우상삼게 만들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족들이 저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다. 나를 우상삼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 없고 애통과 눈물이 없다.
늘 나의 주제가는 왜 나를 힘들게 하냐 였다. 나는 힘들면 안된다는 생각 속에 갇혀서 나를 힘들게 하는 네가 문제라는 말을 했던것 같다.
적용) 여러분이 동경하는 애굽은 누구이며, 어디인가? 그곳이 멸망한다는 것이 속이 쓰린가 위로가 되는가? 거절을 당해도 10번이고 100번이고 찾아가야 할 애가를 불러줘야 할 바로는 누구인가 여러분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시는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에스겔, 저를 통해 부르라고 하시는 애가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겠다.
2. 자기 생각과 자기 실상이 다르다는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2-3절
애가의 첫째 내용은 바로의 실체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말씀이시다. 애굽은 스스로 자신을 사자라 생각했지만 바로의 실상은 악어라 하신다. 이집트 스핑크스 보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바로는 자기가 공정하고 열국을 잘 통치하는 사자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흙탕물을 일으키는 악어에 불과하다고, 너는 뭍에 던져질 것이라 이야기 하신다.
성경에서 사자가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잠 29:1에서는 사자를 의인이라 표현했고 겔 19:5 에서 사자는 젊고 패기있고 용감한 지도자를 의미한다. 여러분 중에서도 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자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물론 착각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어떤 한 청년의 나눔을 들었는데, 어릴 적 왕따, 가스라이팅을 당했었다. 그러나 자기가 심하게 왕따 당해도 그런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런 착각 때문에 오히려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렇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착각 때문에 우리의 삶은 불행해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이 인간론이라 한다. 그래서 큐티하면 할수록 백프로 죄인이기에 객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취학 취학 청소년부는 주일말씀이 모두 큐티에 있는 본문으로 설교가 된다. 모든 부서가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한다는 것이다. 딸이 초등 5학년때 오늘 전도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저도 그 때 그 본문으로 청소년부 설교를 했다. 그래서 아빠도 그 본문으로 설교했다고, 아빠 설교 들어볼래 하면서 딸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설교를 했다. 그러고 딸에게 아빠 설교가 더 좋아 전도사님 설교가 더 좋아 하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인정중독이냐 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큐티한다는 것은 사람으 객관적으로 본다는 시각이 길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인정중독이라는 말이 없다. 그런데도 말씀을 볼수록 죄와 중독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는 자기중심적이기에 곧 자기 생각이 법이다. 자기가 사자로 생각하면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착각에 빠져 살아가니 자신이 일으킨 수많은 흙탕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 당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우리도 그렇다. 집에서는 부모의 권세로 악어처럼 자녀에게 두려움과 차별의 흙탕물을 일으키고, 교회에서는 기복의 흙탕물로 사람들을 흩트릴 때가 있다. 우리가 이렇게 회개할 것이 많다.
어제밤에도 중학생 아이의 심방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싸우는데 두 마리의 악어 같았다. 아이에게 부모님이 많이 싸우냐고 물어봤더니 늘 싸우신다 했다. 그래서 혹시 엄마 아빠의 싸움 때문에 너의 마음이나 생각 속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나 모습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부모님의 싸움의 강도가 더욱 심해지기에 그 생각이 업그레이드 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싸우셔도 저와 상관없다고, 저에게 피해안주면 상관 없다고 한다. 이미 부모님의 싸움에 마음 닫고 회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네가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웃으며 따뜻한 분위기 즐거운 분위기에서 밥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자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며 눌렀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엄마아빠에 대해 다 쏟아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이런 기도를 하셨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니 주변국이 다 망하게 되었는데 제가 회개하지 않아서 제 자녀가 망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런 회개를 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은 회개할 마음이 전혀 없고 공동체에 아이를 던져주면 공동체에서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랬다고, 근데 그 마음이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이었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그렇게 회개 기도를 통해 심방 마쳤다.
오늘 본문 뒤에 14절 보면 그때에 그 물을 맑게 하여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흙탕물 일으킨 애굽을 하나님이 망하게 한 이후 그 물을 맑게 하겠다는 의미시다. 그 회개를 통해 가정이 맑은물이 되는 안정감을 찾은 것이 너무 감사했다.
청소년부는 1년 한번씩 서약예배를 드린다. 혼전순결 서약예배이거나 신결혼 서약예배이다. 성과 결혼에 대해 세상의 흙탕물 같은 가치관으로 시야와 생각이 흐려지지 않도록 성경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서약예배를 드린다. 그러면서 꼭 물어본다. 만약 어떤 여자애가 라면먹고 갈래 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그러면 서약예배를 드렸지만 먹고 간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성과 결혼에 대해 세상의 흙탕물 같은 가치관에 노출되어 있구나 하며 애통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의 가치관, 말씀의 맑은 물이 아이들의 삶 가운데 흐르도록 애가를 끊임없이 부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악어는 물속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가 가장 두렵다. 그러나 뭍에 던져진 악어는 자기 생명도 부지하기 어려운 나약한 존재가 된다. 바로는 자신의 업적과 자랑을 마음껏 자랑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진 환경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때때로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그 애굽땅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신 환경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니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악어는 타닌이라고 한다. 다른 성경 보면 용이나 뱀 바다괴물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쓰인다. 이것을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높여주고 있는 환경 낮춰주게 하는 환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무시하는 것이 얼마든지 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는 촘촘히 매인 그물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운명이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바벨론에게 크게 패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완전히 지게 된다. 점점 말씀대로 바로의 힘이 빠지는 사건이 찾아 오게 되었다.
6-8절
이 말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출애굽 10가지 재앙을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6절에 보면 악어의 피가 온 땅에 가득하게 된다는 것은 10재앙 중 첫번째 재앙인 나일강과 그 모든 땅을 피로 물들게 하겠다는 재앙과 같다. 7-8절에 나오는 애굽의 빛을 다 꺼버리겠다는 말은, 애굽이 다른 나라의 빛이라고 얼마나 교만했겠는가? 근데 이것을 모두 꺼트리면서 애굽에게 암흑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출애굽 10가지 재앙 중 흑암의 재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8절에 어둠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와 10재앙에 나오는 흑암은 동일한 단어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려고 모세를 통해 애굽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모세의 명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으니 바로의 완악함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려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애굽을 끊지 못하는 이스라엘이기에 그 양육을 위해서 이 심판을 허락하셨다. 애굽이 이스라엘 때문에 수고한 역사가 있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께서는 다시 백성들에게 또 부르게 하시는데,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것일까? 예전 출애굽 시 10가지 재앙으로 완악한 바로가 너희 조상들을 내보내줬다고, 그때 땅도 집도 아무것도 없는 광야생활 가운데 40년을 애굽의 단 한번의 도움 없이 너희 조상이 보냈다고, 너희가 먹을 것 없을 때 내가 내려주는 만나로 살았다고, 그것을 기억 못하겠냐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 조상들을 그렇게 살려왔는데 지금이라고 그렇게 못하겠냐고 애가를 계속 부르게 하시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애굽의 멸망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바로를 끊임없이 동경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애가의 노래이다. 또 바벨론 포로의 자리에서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애가의 노래이다. 예전에도 그때도 오늘도 주님이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그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그 광야생활 포로생활 가운데 우리에게 애굽의 단 한번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을 너희들이 모르냐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애굽같은 남편 자녀 회사가 여러분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9-10절
애굽의 패망의 소식은 동맹국에게도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관계는 영원하지만 이들은 자기의 유익 때문에 맺어진 관계이기에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동맹국 잘못 선택했으니 같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평안할때는 내가 무엇을 의지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바벨론을 통해 애굽을 흔드시면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았는지 드러난다.
그러나 줄줄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스라엘이 애굽을 끊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숨기고 있기에 못 끊는 것이 많다. 주식 바람 유투브 음란도 그렇다. 버림 완전히 당하고 수치 당해야 끊어낼 수 밖에 없다.
적용) 내 실체가 드러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라떼는 말이야 하며 옛날 영광과 아픔에 갇혀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합리화하며 은밀하게 동맹을 맺고 있는 여러분의 무리는 누구일까?
자기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애굽과 이스라엘의 결말은 어떠하겠는가?
3. 교만하여 칼에 베임을 당하게 됩니다.
11-12절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애굽왕에게 임한다. 우리가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세상세력은 또 다른 세상 세력으로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벨론이 이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애굽을 의지하기에 애굽 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 많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의지하면 그 사람은 나 때문에 망할 수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큐티책을 펼치면 그것이 겸손인데, 끝까지 펼치지 않겠다고 피할 길 있다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으려는 교만이 있다. 그 교만함 때문에 애굽이 결국에는 칼로 큰 베임을 당하는 사건을 맞이한다.
하나님이 그토록 애굽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애굽이 미워서 그런가? 하나님이 애굽의 교만을 잘라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교만이라는 단어는 깨온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쓰면 위엄이라는 단어가 되고 사람을 주어로 쓰면 교만으로 쓰인다고 한다. 나의 모든 환경에 주어를 나를 붙이면 그 모든 것이 교만이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의 주어에 하나님을 붙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내가 드러나는 교만이 아니라 주님이 드러나고 주님이 나를 높여주시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이태근 목사님이 아들 민산 집사님 이야기 하셨다. 제가 고등부 맡을 때 민산집사가 고3이었다. 제가 그 재판정에 함께 있었다. 처음으로 가정법원에 가게 되었고 그 맨 끝 복도에 우리가 모여 있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 집사님과 함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앞자리에 민산 집사가 있었다. 근데 갑자기 불현듯 근데 제 아들이 몇 년 후 여기 앉아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여러가지 마음이 들어 회개도 하지만 내 아들은 괜찮아 하는 여러 마음이 들었다.
이태근 목사님이 여러 나눔을 하면 우리 아이들은 아니라고, 우리 일은 아니라 속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곁의 지체에게 심판의 사건이 오면 그것을 내게 주시는 경고로 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것으로 여기기에 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칼이 애굽에 임한다 하시는 것 처럼 칼이 임하는 사건이 저와 저의 가정에게 임하게 되었다.
작년 한해는 6학년인 딸로 인해 여러 소동이 있었다. 사춘기 딸의 격동을 지내며 참을만 하다 생각했다. 사춘기 딸을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생각했다.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때쯤 예배당에 앉아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가 그런적이 없었는데 흐느끼며 내 인생 너무 잘못 산 것 같다고 했다. 이 말만 몇번을 하고 무슨일이냐 하니 사진을 보내주었다. 딸 아이 팔 사진이었다. 딸의 팔에 수십 개의 칼자국이 난 사진이었다. 사진 보는데 마음이 내려앉았다. 이건 우리 집에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청소년부 하면서 그런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겠는가. 제가 입버릇처럼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기계적으로 이야기 했던 그 모든 사건이 생각나며 그것이 제 딸에게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러고 무슨 예배를 드리는 지도 모른 채 있었다.
그때 담임목사님이 말씀 본문과 상관없이 웃사 이야기를 해 주셨다. 웃사가 기세 등등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수레에 싣고 옮겼다고, 원래 어깨에 메어야 하는데 무시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가 소가 날뛰니 법궤가 떨어지려 해서 손으로 잡으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웃사가 죽는 사건을 이야기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저와 우리가족의 웃사가 죽는 사건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저의 죄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했다.
그런 일을 겪고나서 저희 딸이 애정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할 만큼 마음의 탱크가 큰 아이인데 부부가 그것을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 탱크에 구멍까지 나 있으니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말랐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쳐 오면서 올 한해 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는 25살 나이에 6살 연상과 결혼을 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른 채 결혼했다. 좋은 직장의 아내가 있었고 결혼하면 편하겠다 생각했다. 저 자신만 생각한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이기에 결혼을 그렇게 선택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른채 결혼생활을 했다. 저는 제가 우상이었다. 아내가 다 맞춰주는 결혼 생활이었다.
아내가 첫 아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너무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는데 저는 아내에게 참 잘 되었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제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저만 생각하는, 이 세상에 나만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제가 27살 때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날 때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그냥 빨리 크라고만 했다. 빨리 기저귀 떼고 밥 알아서 먹고 다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기억이 잘 안난다. 이제는 딸이 제 손이 가지 않을 만큼 성장하고 보니 딸이 많이 아파있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제 딸도 귀한 선물이라 생각 못하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성도님들 보면서 선물이라 보면서 목회한다 할 수 있는가 생각 들어 제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자괴감이 들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중요하고 우상인 사람인데 어떻게 성도들을 목회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 왜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을까 고민이 되었고 하나님이 그냥 나를 목회자로 안부르시면 안되냐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제가 바로였다는 것이 인정되고 누구의 말도 안듣는 완악한 인생이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목장 처방 따라 딸을 정신과에 가서 치료 받게 하고 아내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일년간 휴직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들교회 청소년부 목장을 통해 딸은 자기 마음의 이런 충동과 답답함이 찾아올 때 마다 컨트롤 하려고 노력하며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아내가 지난주 평원님 말씀 들으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어린 딸의 눈으로 볼 때 엄마가 어땠을까 했다고 생각해보니 늘 빚을 갚아야 하는 급급함 때문에 늘 찌들린 얼굴, 딸이 봤을 얼굴은 아내가 삼차신경통으로 몸이 아프고 힘든 직장생활 하며 연년생을 육아해야 하는 그 상황에서 늘 짜증 섞인 말을 딸에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제가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니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남편과 사이 좋지 않을 때 슬픈 눈을 가진 엄마라는 생각이 들며 엄마가 너에게 웃어주지 못한 엄마라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자 딸이 요새 엄마 인상이 좋아졌다고 했다. 우리부부는 착각하고 있었다. 좋은 부모라고, 목회자 가정이라 아이들에게 믿음까지 주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설교하면서 딸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되었다. 제 딸이 이것 때문에 상처받는건 아닐까 해서 부담이 되어 조심스레 딸에게 설교 때 네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니 딸이 아빠에게 다른 고난 없냐고, 나 없으면 어쩔 뻔 했냐고 했다. 예전에도 했는데 하라고 쿨하게 이야기 해주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이 사건이 아니었으면 제 실체도 몰랐고 제 삶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잘라내야 할 교만에 대해 베어낼 수 없는 자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적용) 칼로 베임 당하는 것 같은 아픔의 사건은 무엇인가? 그 사건으로 잘려나간 교만과 쓴 뿌리와 불신, 중독과 죄악은 무엇인가? 자녀에게 인성 좋아졌다라는 말을 듣고 있는가?
지난 월요일 교사 단톡방에 기도제목이 올라왔다. 경찰 출동하는 격한 부부싸움이 일어나 엄마와딸이 모텔에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청소년 딸이 편지만 남기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기도제목이 올라왔다. 그 딸은 안전한 여성 청소년 쉼터로 간다고, 걱정 안하시겠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무서우니 기도만 해달라고 이야기 써놓고 간다고 했다. 많이 두려울 것 같다. 딸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친구인데 기도를 부탁했다는 말에 소망이 있긴 하지만 그런 심판 같은 삶이 얼마나 두렵겠는가.이 어머니 집사님이 큐티기도회에 기도제목을 올리셨다.
지난 월요일 남편과의 전쟁으로 딸이 놀라고 두려워 청소년 쉼터로 갔는데, 딸로부터 자신은 무서운 아빠 무력한 엄마가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거룩히 살아야 하는 인생인 것을 알지 못했기에 혼외자로 자란 상처와 연민으로 인해 남편에게만은 사랑받고 귀히 여김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남편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 꼬였다는 무시와 조롱을 받으니 저도 무시와 교만이 있었습니다. 주님 저의 교만을 용서해주세요. 주님 저는 이 사건 앞에서 너무나 무력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쉼터에 있는 딸에게 찾아주셔서 영육을 회복시켜주시고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청소년 아이들, 가정들에게 칼베임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 사건들 속에 여러분이 간절한 마음으로 애가와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말씀맺음
4장에 걸친 애굽 멸망의 메시지 중에 바로에 대한 애가를 이루라 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애가는 자기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애가를 듣지 않은 애굽과 이스라엘은 교만함 때문에 칼베임 당한다고 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동경하고 끊지 못하는 애굽이 영원히 함께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분은 우리의 상급되시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며 이 찬양을 올려드리길 원한다.
[기도제목]
*김교희
- 토요일까지 하나님께 진상 잘 부리고 잘 만나고 오도록
- 그 사람이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구원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 회사에 전세 만기 미뤄달라는 이야기 잘 되도록, 거처 잘 마련되도록
- 진짜 신교제 신결혼 하게 되도록
*류가영
- 잘 쉬고 인스턴트 대신 좋은 것 먹고 큐티 더 하도록
-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박소은
- 이번주 병원 가고 다음주도 무탈히 교회 잘 오고 지각하지 않도록
- 2월말까지 거처 잘 마련되도록
*이지현
- 내가 돈 사랑하는 것으로 베임 당한 아빠와 엄마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 엄마와 말씀으로 대화하고 나눔할 수 있도록
- 아빠가 건강으로 수고하시는데 건강 잘 챙기고 가게에서 무리하지 않도록
- 끈질긴 내 애굽 끝까지 심판 잘 당하도록
- 중보해야 할 영혼 (옛 대표님, 외사촌 동생) 생각나는데 애가를 잘 전하며 구원의 사명 감당할 수 있도록
-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