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3
에스겔 28:11-26 여호와께 돌아가자 이효숙 평원지기
1.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14
11-12, 슬픈 노래 애가는 죽은 사람을 위해 장례에서 부르는 노래니 두로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의 모습도 그러하겠지만 하나님이 두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도장이라는 것은 소유자의 신분이나 위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데 유다의 도장 요셉이 사용한 바로의 도장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길로 놓는 삶으로 도장 찍는 인생이어야 하는데 요한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마음이 부유하고 교만하여 부자의 특징인 가족 신화와 우상으로 뭉쳐있으니 하나님의 애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교육자인 부모님 첫딸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모범생으로 친척 언니 오빠에게까지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중3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수련회에서 하나님 만나고 방언을 받았습니다. 두로 같은 믿지 않는 집에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교회와 예배가 좋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말씀은 꿀송이 같았고 믿지 않는 가족이 예수님을 알길 원했습니다. 말씀의 가치관이 없었기에 내 삶의 목적을 몰랐지만 학생의 삶이기에 공부하고 S대를 진학하였습니다. 대학 시절 잘해주는 하나님만 알았기에 인생의 고통의 문제에 관해서는 해석할 힘이 없었습니다. 어디에 속한지 모르는 삶을 살았기에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세상의 조리를 따라 세상 가치관을 가진 부자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 도장인 제 본분을 잊고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동네에 있던 지체들을 무시하며 조용히 교양있게 끊어내고 믿음의 공동체는 필요 없다고 했던 제가 두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건으로 부르실 수밖에 없는 것이 인정됩니다. 남편의 외도 사건 앞에서 모범생으로 자라며 욕먹은 기억이 없던 저는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내 안의 높은 교만의 죄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남편의 사건은 내 속의 온갖 감정들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수고로 내 안의 살인 분노 질투의 감정들을 보았습니다. 하루를 살아야 했기에 눈만 뜨면 큐티 책을 보며 내가 생각하던 나 내가 바라던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나와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죄 된 모습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인 나의 진짜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13-14, 에덴과 비교할 정도로 보기에 아름답고 온갖 보석으로 단장되고 소고와 비파로 찬양하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남편에서 버림받는 도장을 받는 것 같아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습관이 되어 떨리는 손으로 큐티책을 펼치니 요한계시록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말씀이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크게 들렸습니다. 나 혼자 가정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니 나의 환란을 받아들이고 고난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인 것을 절절히 느끼며 공동체 형제의식이 커져갔습니다. 남편 외도 고난을 십자가의 흔적으로 주시고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로 주어짐이라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혼돈 가운데 사는 저를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살도록 남편 외도 고난의 도장을 새겨 주셨고 반짝반짝 보석으로 닦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성전이고 내 삶이 다른 사람에게 투명하게 보여줘야 함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께서 요한계시록 설교 때 나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님을 따라 고난을 감당하며 내 고난을 오픈하고 말씀으로 닦으면 보석들처럼 빛나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고난은 금강석 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음란, 시기, 질투이니 붉은색 홍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지금 처해있는 현재의 고난을 인정하고 드러내고 보석으로 닦아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Q. 툭 치면 나오는 나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 고난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이 인정되십니까? 그래서 이 도장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2. 내가 범죄하였도다 라는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15-19
15-16, 사랑이신 하나님인데 왜 자꾸 죄 이야기를 하는지 부담스럽다고 거부반응하는 것은 말씀을 내 삶의 이야기로 듣게 되는 구속사 큐티가 되지 않아서 자기 죄를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햇빛 같은 말씀 앞에서 죄가 보이고 다른 지체의 나눔이 거울이 되니 나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나눌 때 네가 범죄하였도다가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게 됩니다. 저도 끼리끼리가 아닌 다양한 환경으로 모인 목장모임을 통해 서로가 거울이 되어 내가 범죄하였도다라는 말씀이 더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겸손한 환경뿐이라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세상 적으로 강성한 환경에서는 강포의 범위가 더 커지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지고 누리고 즐긴 만큼 심판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17-19, 행복한 결혼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가정은 남편 외도로 던져지고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감옥으로 재가 되게 하셨기에 우리 가정을 아는 사람들은 놀라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도나기 전 양육 3주차 이사야 6장 웃시야 왕이 죽고 이사야가 사명 받는 말씀 13절 부분에서 극심한 갈등을 느꼈습니다. 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부를 유지하려고 했고 어떤 불행도 나와 가족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제게 주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임을 경험을 통해 그루터기는 남아 거룩한 씨로 있는것 같이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라고 하셨습니다. 양육되었던 말씀들이 있었기에 말씀이 반감들을 이겼고 적용란에 부도가 나서 삼키움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루터기로 남기실 것을 믿습니다 라고 쓰며 회개의 눈물로 깨달음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왜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수준 안되는 나를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나와 우리 가정에 범죄함으로 벌써 망해도 망해야 함임에도 남편 고난에 숨을 헐떡이는 제 수준을 아시고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의 환란을 나는 걸어갈 수 없지만 지금까지 업고 안고 오신 주님이 걸어가 보지 않을 그 환란도 함께 걸어가 주시겠구나는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고 하나님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부도가 나서 경매로 넘어가는 사건들을 지나가게 하셨고 그렇게 교회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Q. 재물, 쾌락, 권세, 능력, 부모, 형제, 친구, 자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마땅히 여기며 없는 자를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3. 무리가 여호와를 알게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20-24
20-22, 시돈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로 왕의 호칭을 엣바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시돈왕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 숭배로 가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심판의 사건을 당할 때 거룩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본 무리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게 되는 증거가 됩니다. 이중생활 간음에도 많은 헌금을 하면서 믿음이 있다고 인정받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대적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심판을 행하며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남편 외도 사건에 어찌할 바 모를 때 하나님께 길을 인도해 주시면 저도 누군가의 길을 비추겠다고 서원기도를 했었는데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 같습니다.
23-24, 깨어진 부부 관계와 생활고로 자녀들은 아프고 힘들어했습니다. 모범생으로 인정받던 저는 죄인이 되어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혼나고 비난받는 입장에 서서 사건들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어떤 것보다 제 마음이 칼로 상하고 엎드려졌던 것은 두 아이의 큰 다툼의 사건으로 가해자도 자식이고 피해자도 자식으로 혼내지도 욕하지도 마음껏 울 수도 없는 속이 찢어지는 엎드려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다 힘이 빠졌을 때 옆에 있던 공동체 식구들이 저희 가정을 위해 애타게 기도 해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두로같은 제가 내 자녀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교만이 처절히 무너졌습니다. 교회 다닌 남편이지만 사실은 불신결혼 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아들을 통제할 수 없는 무력함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편안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 죄를 깨닫게 하기위해 아들이 수고하는 것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를 받은 아이는 구름이 걷어지는 것 같다고 마음속 분노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 안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와 섬겼는데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며 큐티로 가지치기하며 말씀을 보았습니다. 두로같은 우리 가정의 심판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고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Q. 어떤 심판의 사건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심판의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애를 써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심판의 사건으로 다른 사람이 살아난 적이 있습니까?
4. 평안히 살게 됩니다. 25-26
우리들교회 목장은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믿음의 이스라엘 족속이 모인 것 같습니다. 두로의 멸망에서 경고를 받고 각자 두로의 모습에서 여호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목장에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각국에서 목장보고서를 보고 여호와를 경험하는데 더욱 지경이 넓어져서 해외에서도 온라인으로 목장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 같은 죄인의 우리의 인생 얘기를 하면서 말씀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이루어지는지 나누고 가는 것은 내가 여호와께 돌아가기 위한 양육을 위해서도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양육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본문 말씀으로 자신의 고난을 오픈하고 가는 것은 영육간에 평안히 사는 일인 것 같습니다. 목장에서 나누는 것만으로도 영적으로 해석 받고 기도 받고 육적으로도 도움을 받으니 목장은 세계적인 대안인 것 같습니다. 날마다 큐티! 날마다 예배! 날마다 목장!을 하며 날마다라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Q. 무시와 멸시를 받는 환경에 있던 나를 주님이 평안히 살 수 있게 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무엇이 찌르는 가시가 되어 나를 평안하지 못하게 합니까? 예수 믿는 나 스스로를 멸시하며 목장을 피하고 가라앉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뭐하냐고 공동체 지체들을 멸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1.전시의 바다에 빠져서 회개 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2.시작도 중간도 마무리도 제 힘으로 안되는 것을 고백하고 돕는 손길 붙여 주시도록
3.붙여 주신 지체들 영육위해 기도하며 갈 수 있도록
은진
1.영육 보호 위로하여 주시고 일반은총으로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2.예배가 회복되고 현재의 사건이 성전 건축을 위한 것임을 알고 말씀으로 해석 되도록
크리스틴
1.프로젝트 잘 끝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2.양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나의 힘을 빼고 양육을 잘 받고 올 수 있도록
예선
1.양육동안 툭 치면 나오는 고난의 간증문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2.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감사를 잘 할 수 있도록
3.프로젝트 하는 중인데 가시로 스스로를 찌르지 않고 말씀으로 평안하게 잘 지나가도록
4.엄마 같은 그분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변하도록
보련
1.양교 잘 받고 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2.피아노로 섬길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주시고 지경이 넓어지도록 기도합니다.
3.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전인격적으로 알고 천국 백성 자존감으로 거듭 날 수 있는 은총 내려 주시도록
4.아팠던 과거가 하나님 알게 하는 도장임을 알고 양교 동안 인생이 해석 되도록
다인
1.손 검사 받고 아픈 영육이 속히 치료 될 수 있도록
2.양교의 자리에 나아가 나의 힘을 빼고 인생의 방황이 끝나는 큰 은혜 받을 수 있도록
현경
1.양육하는 동안 나의 간증이 완전한 하나님의 도장이라는 것을 고백 하면서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