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사도행전 19:21-22
성령이 세력이 쌓이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세상에서도 무엇이든 쌓이면 유지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경영을 잘 해야 해요. 경영하다는 사전에서 보면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 나가다 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경영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자나요. 그런데 성령의 세력은 쌓일수록 이윤 창출을 넘어서 생각 못한 경영을 하네요. 오늘 바울은 쌓인 그 세력으로 마게도냐와 예루살렘과 로마를 가기를 경영합니다. 바울이 오늘 21절에서 작정했다고 했는데 예전 개역 한글은 경영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경영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1. 성령으로 인도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는 무슨 일이 있는 후에 죠? 바울이 성령의 세력을 얻어 에베소에서 2년 3개월째 말씀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있게 흥왕하는 부흥을 경험하고 있어요. 은 5만을 불태우는 개혁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자복의 위력을 보면서, 그러면 에베소 교회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오늘만 같아라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아요. 안디옥에서 시작한 선교가 수많은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거쳐서 오매 불망하던 에베소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과연 에베소였습니다. 바울의 예감과 성령의 인도는 정확히 맞았습니다. 은 5만을 불태우는 개혁이면 천지가 개벽할 일 아닙니까? 사회 구원까지 이루어진 개혁을 보며 복음의 위력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리틀 로마로 불리는 이 에베소에서 자신이 생기니까 세계의 심장부 로마에 갈 비전을 보았습니다.
오늘 여기서 거처라는 표현은 통과하여 지나가다, 두루 두루 방문하다라는 뜻을 지니는데요. 이 동사는 예수님의 제자나 초대교회 성도, 또는 바울의 전도여행을 묘사하는데 자주 사용된 단어예요. 발칸 반도의 북쪽인 그 마게도냐와 남쪽인 아가야 지방까지 전도 여행을 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다시 로마까지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이 단어 하나로 바울의 그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나아가려는 것이 바울의 계획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정말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인대요. 여기서 누가는 방문할 계획을 작정하여라고 해요. 예전엔 경영이라고 했죠? 그런데 그걸 원어로 보면 작정이나 경영을 그 영 안에 두었다고 해요. 여기서 우리가 그 유명한 프뉴마라는 단어를 씁니다. 영이죠. 그러니까 경영을 바울의 영 안에 두었다는 말인데요. 그러면 이 영은 바울의 영을 뜻할 수도 있고 성령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스스로 자기 생각으로 작정을 했을까요? 성령의 거절까지 겪으며 인도함을 받아 여기까지 온 바울이자나요. 바울은 아시아인 에베소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 16장 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자나요. 아무리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박해이고 전도를 막는 것이에요. 그런데 성령이 그것을 막았다는 거예요.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랐지만 결국 마게도냐로 이끄신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계획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결국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뜻이 성령님의 뜻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에베소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작정은 성령의 작정이었겠죠. 성령 안에서 작정하고 결심하여 경영한 것 맞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든 로마든 바울이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가야만 하는 사명지를 찾는 것이 성령의 경영입니다.
복음 전파를 하지만 되었다 함이 없습니다. 내가 미리 전파한 마게도냐는 이렇게 다시 살펴봐야 하고, 늘 내 친척 고향 예루살렘은 신경이 쓰이는 곳이라 가야만 하고, 그리고 반드시 봐야 하는 로마가 있습니다. 또 처음부터 로마를 가야겠다는 것, 그것도 아니예요. 그냥 이렇게 전하다 보니까, 돌아보고 가기 싫은 곳 가다 보니까 로마까지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매일 같이 하는 일을 잘해야 로마고 미국이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경영을 잘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소아시아 지역은 이미 복음이 많이 전파되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했던 까닭에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는 원리에 의해서 바울은 그쪽은 갈 계획을 안 세워요. 이렇게 성령 안에서 날마다 세밀하게 인도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갈 곳, 안 갈 곳, 거쳐가야 될 곳, 가야할 곳, 반드시 봐야할 곳, 이거 말씀 안 보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원칙이요? 빌립보서 3장 12-14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니까 바울은 이러한 원칙 아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선교 전략을 경영했어요. 바울의 경험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교훈이었고 선교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선교나 전도의 과정과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의 경영의 목적은 효과적인 선교를 통한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청춘입니까? 늙어도 너무 늙었어요. 바울의 열정이 있을 만해서 있는 게 아니예요. 이때 바울은 57세로 2천년 전의 그 나이는 그냥 환갑, 진갑 다 지난 8-90쯤 되는 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사역을 마무리할 시점이 지나도 한참 지났죠. 게다가 바울은 무슨 질병이 있는지 모르지만 고쳐주지 않으시면서 네게 네 은혜가 족하다는 가시가 있었어요. 3차 전도 여행 후반부 때 기록한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는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할 정도입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서 27절까지를 읽어보면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받은 고난을 생색이 나서가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분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것을 열거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렇게까지 얘기 안 하자나요. 이거를 들으면 그냥 말문이 딱 막히는 고난입니다. 23절입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우리가 토로스 산맥을 생각하면 알 거예요.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육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괴로움 힘들게 골고루 지속적으로 받았어요. 그렇게 고난 받으면서 서울에서 뉴욕보다 더 먼 거리를 도보로 또는 배 타고 이렇게 다녔어요. 이제는 안식하고 마무리 잘하고 전도한 곳 유지만해도 따라갈 자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결정도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즉 말씀 안에서 해야 되는 거예요. 날마다 듣는 강론과 큐티와 나눔은 인도받는 큰 원칙이 돼요. 두란노에서 날마다 강론하고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 이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또 무엇을 결정해도 흔들리지 않고 거치고, 경영도 잘 하고 통과도 잘 합니다.
[적용] 여러분의 경영은 성령의 인도가 원칙입니까, 내 실력이 원칙입니까? 여러분에게 말문이 딱 막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요동됩니까? 사명으로 인식됩니까?
2. 전파한 곳은 후속 관리를 합니다. (21-22절)
여기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방문을 말하죠. 여기는 보고 싶은 곳이에요. 다시 읽습니다.
먼저 3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며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었던 동안 못 가본 1, 2, 3차 여행 때 전도해 놓은 교회들을 다시 찾아보고자 한 것이죠. 왜 방문합니까? 자신이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거의 5년 동안 날마다 강론하면서 제자 훈련을 시켜보니까 열매가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동안 거쳐왔던 교회를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걱정이 되는 거예요. 바울은 늘 자신이 전도한 곳의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늘 돌아보고자 합니다. 잘 자라는지 악한 마귀가 틈타고 있지 않은 지 가라지가 와서 악한 씨를 뿌리고 있지 않은 지 염려합니다. 모든 서신서가 그래서 이단에 대한 염려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찾아가고자 한 곳이 특별히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회들인 거예요. 지도를 좀 보여주세요. 빌립보가 있고, 데살로니가가 있고, 베뢰아가 있고, 또 이제 위에는 이렇게 마게도냐 지방의 그곳이 있고 밑에 아가야 지방으로 내려가면 고린도가 있고, 또 아덴이 있고, 겐그레아가 있고. 그래서 위쪽이 마게도냐고 밑에가 아가야고. 여기를 지금 돌아보겠다는 거예요. 늘 마게도냐, 마게도냐 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빌립보, 데살로니가 이런 지역을, 교회를 말한다는 것. 늘 이렇게 지도까지 알아야지 여러분들이 이해가 빨리 됩니다. 그래서 이 마게도냐에서는 자주장사 루디아를 전도하고, 우리가 한 번 복습해 보겠어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매 맞고, 그 다음에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해서 옥문이 열린 빌립보가 있고요. 성령의 강론을 3주일만 하고 쫓겨난 데살로니가교회가 있자나요. 또 날마다 간절히 성경을 상고한 신사적인 베뢰아교회가 있고, 이 아가야에서는 새것을 좋아해서 성령의 격분을 한 아덴이 있고,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아서 1년 6개월 동안 가르친 고린도교회가 있고, 또 좋아서 하는 자발적인 서원하면서 머리를 깎은 겐그레아가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 사역 중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4파로 분열이 되었다고 해서 급히 에베소에서 양육하는 동안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절에 보면 돌아온 뒤에도 항상 교회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의 아까 27절까지 열거했던 그 모든 고난보다도 내가 교회를 인하여서 눌린다고 바울이 그러네요. 얼마나 눌리는지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다고 해요. 그래도 복음으로 낳은 자녀들과 그 교회들 때문에 당연히 염려하지 않겠어요? 제가 정말 앉으나 서나 교회 염려를 해요. 정말 큐티 운동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런데 그냥 저도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하고 내가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맨날 근심을 하나. 그런데 그냥 바울이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는데도 근심을 한다는 것을 보니까 너무 위로 가 되더라고요. 그러더라고요. 제가 교회 생각에 24시간 정말 근심이 그치질 않아요.
그리하여 마침내 에베소 사역을 마감하면서 다시금 전도했던 그 보고 싶은 이방 교회로 AS하러 GO GO했던 것이죠. 보고 싶은, 그리고 이제 그 단어를 잘 보면 마게도냐, 아가야는 너무 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안주할 곳이 아니라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하자나요. 보고 싶은 곳은 이렇게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해요. 바울은 떠날 이 결심을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동역자이자 비서였던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냅니다. 마게도냐에 도착해서 바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가서 준비하라는 것이죠. 두 사람을 보내고 바울은 얼마 동안 더 머물며 아시아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뭐 작정했다고 해서 시간적으로 서두르라는 것은 아니예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최선의 사명이 있나를 늘 살펴야 합니다. 한 곳이 싫고 다른 곳이 좋아서 떠나는 것은 성령의 경영이 아니예요. 여기서든 저기서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성령의 경영이에요. 여기서 돕는 사람 디아코네오는 전치사 디아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어로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집사를 디아코노스 하는데요. 디모데와 에라스도가 바로 이런 집사 같은 일꾼이었고, 바로 스데반 같은 사람. 이런 표현으로 볼 때 당시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그냥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도왔어요. 사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라서 바울로부터 양육을 받고 있었지만 이제는 동역자가 되어서 단독으로 파견을 받을 만큼 성숙하게 된 모양이에요. 에라스도는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대요. 같은 이름이 디모데후서 4장에 나오는데, 그가 이곳의 에라스도와 동일한 사람이라면 그는 고린도시의 재무를 맡은 사람으로 바울에 의해 회심하여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에베소까지 함께 온 사람이에요. 생각해봤어요. 왜 에라스도를 데리고 가고, 보냈을까?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가져가야 하니까 재무 담당을 보내지 않았나 싶은데요. 정말 이것이 성령의 경영인 거예요. 바울이 아무리 말씀을 잘 전하고 교회가 다 섰다고 해도 헌금 관리 한 번 잘못하면 모든 사역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바울은 다시 후속 관리로 그곳을 돌아보면서 계속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했지만 그러나 본인은 헌금을 들고 간 적이 없어요. 그러니 사람을 잘 세워야 되는 거예요. 맨 끝에 가서 돈 때문에 모든 게 망해요. 그래서 우리들교회에 아주 이게 핵심 가치가 돈은 꾸지도 꾸어 주지도 말아야 하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강조해도 공동체에 묻지도 않고 돈 거래를 하면 무조건 서로를 망치는 일이에요. 액수가 문제가 아니예요. 이건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그딴 얘기하시면 안 돼요. 그냥 그 사람 망치려면 꾸어 주시고, 또 이제 꿔달라고 하시는 거고. 꾸어도 꾸어줘도 다 치리해요. 우리들교회가. 그래서 신고해서 광명 찾길 바라요. 목자도 치리하고 다 치리합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가 여기까지 왔어요. 왜냐하면 그 분 망치는 거기 때문에 그래. 꾸어줘도 꾸임 받아도 다 망치는 거예요. 보세요. 다 흘러 떠내려가요. 돈 거래 한 번 잘못하면 서로 서로 다 망쳐요. 지금. 우리들교회가 힘든 교회기 때문에 이걸 너무 절대 제1원칙으로 지켜야 돼요.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가 왔는데 돈 거래하다가는 다 망하는 거. 그런데 말씀이 안 들리면 뭐 괜찮더라 이러는 거예요. 직분을 가지고 그렇게 꿔달라 이런 얘기도 절대 하면 안 돼요. 목자가 꿔달라 이것도 안 돼요. 초원지기가 꿔달라 이거 안돼요.
그래서 이제 에라스도를 그래서 보냈구나. 이 두 사람을 보내고 바울은 얼마 동안 더 있으며 아시아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있으면은 여기서 지체하다, 머무르다는 뜻인데요. 그러나 이 단어는 그냥 시간을 보내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붙들고 주의 깊게 사용하여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거는 구원을 위한 시간이지 시간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거예요.
바울은 그래서 여기 아시아에 왜 남았나? 이 아까운 시간에.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해마다 5월에 모이는 아데미 여신이 있는데 그 축제를 이용해서 이 리틀 로마, 곳곳에서 모여드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요 시간 에베소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마게도냐 가기로 했자나요. 아가야 가기로 했자나요. 그리고 이제 두 제자들은 보냈자나요. 그런데 여기서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이 일어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생명의 위협이 일어날만큼. 그러면 남아 있었던 게 잘못인가요?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어도 성령의 작정으로 인도받고 가는 것이 성령의 경영이에요. 떠나는 결정을 했지만 바울은 항상 복음 전파에 마지막까지 어디가 좋은가를 생각합니다. 전도를 해야 하지만 지금 있는 이 곳도, 가는 곳도 후속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장소나 상황의 호불호로 움직이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없어요. 지금 머문 곳이 싫어서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런 마음을 집이 싫어서 결혼하고, 남편이 싫어서, 아내가 싫어서 이혼합니다. 결혼도 후속 관리가 절대로 필요해요. AS가 필요해요. 성령의 경영하심이 필요해요. 연약하면 관리가 필요하고요. 인도함을 좀 더 받는 사람이 영치기 영차 하면서 끌고 가야 돼요. 좋은 이혼이란 이 세상에 없어요. 먼지가 일어날만큼 눈썹이 날리면서 바쁘게 후속 관리해보세요.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적용해 보세요.
[적용] 여러분은 전도하고 후속 관리하십니까? 목장에서도 주중에 후속 관리하십니까? 결혼도 후속 관리합니까? 결혼했으면 끝이다라고 합니까? 좋은 이혼이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3. 뿌리를 잊으면 안 됩니다. (21절)
여기는 예루살렘 교회 방문이죠. 여기는 싫어도 가야할 곳이에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그가 전도한 결과를 보호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그 교회 다 이상하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보호하기 위해서 보고해야 돼고.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은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리고 유월절 이전에 도착해서 유월절을 또 지키고자 한 것으로 보여요. 늘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었지만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 교회를 잊지 않고 윗질서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본 교회에 선교 보고를 잊지 않습니다. 어렵고 험난한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도 이렇게 늘 예루살렘 교회 잊지 않아요. 자신이 기독교 인들을 잔멸했던 사람을 끝까지 책임을 지는 거예요.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인에게는 잔멸자로 박해와 오해를 수 없이 받아요. 자기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비결이었어요.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가서 강론하고 쫓겨나도 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자기 같은 사람이니까 이해해요. 이 두 곳에 대한 애정이 계속되는 거예요. 고향 친척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을 강론하고, 잔멸했던 기독교인들에게는 육적인 부족을 계속 채워주고자 하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는 만성적인 기근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로마 제국의 수탈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여러 제약으로 항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같은 민족인데 하나가 되지 못해요.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까 그들이 궁핍한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가 워낙 잘 살아야 되는데 이 이방인 교회가 여기를 돕자나요. 여기가 그렇게 지금 하나가 되지 못해서 그래요. 바울 본인은 자비량 선교사이지만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은 바울의 큰 미션이었어요. 그런데 이 똑같은, 여기가 훨씬 연약한 이방인인데도 복음을 들은 이방 교회는 너무 너무 헌금을 넘치도록 하는 거예요. 부자라서요? 고린도후서 8장 1절서부터 5절까지 봅니다.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 어딘지 아셨죠? 지금 마게도냐교회 성경을 이렇게 알고 보면 너무 이해가 잘 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 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복음이 최고예요.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사람은 풍성한 연보로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 넘치도록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그러니까 가난한 거 하고 풍성한 연보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주식하느라고 못하고, 빚져서 못하고, 우리는 헌금 못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 여러분들 평생 경제 생활이 하나님 기름을 부을 수가 없는 거예요. 바울은 본인도 늙었고 초로의 노인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의 고통과 박해는 몹시도 관대하고 너그러웠지만 성도의 궁핍과 가난 앞에서는 늘 마음이 급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예루살렘 방문을 계획했지만 이것도 또 일부 차질을 빚게 되었어요. 여러분 알다시피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성령의 경영이라고 늘 직진만 하는 게 아니예요. 그냥 벌써 계속 아가야, 마게도냐, 예루살렘 다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 내가 기도했는데, 말씀보고 인도받았는데 왜 이러냐고요? 여러분은 기도했으면 믿으시면 됩니다. 훗날에 이렇게 어마 어마한 결론을 가져왔자나요. 눈 앞에서 되는 게 꼭 인도함이 아니예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여러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받은 바 은혜를 잊지는 않았습니까? 부모님은 나를 태어나게 했기에 무조건 예수 믿게 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4. 계속 비전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21절)
결국 이 목적을 위해 잘 살아야 하는 거예요.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에 경영하심이에요. 여기는 원어에는 반드시가 있어요.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로마라고 하는 거예요. 에베소 복음화에 성공한 바울은 이제 에게해 양편 연안에 명실상부한 복음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어요. 서편에는 빌립보교회가, 또 좀 보여주세요.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요지에는 고린도교회가, 또 에게해 동편에는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 에베소교회가 자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서편에는 빌립보교회가 지중해 연안에, 거기에는 고린도 교회가, 에게해 동편에는 에베소교회가. 마게도냐 북쪽, 남쪽, 중간. 저는 이제 이번에 남가주, 북가주, 중간에 아리조나 이렇게 갑니다. 정말 말씀대로 갑니다. 정말 할렐루야예요. 이제 전 세계의 교두보가 다 확보되니까 전 세계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로마에서 전 세계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 당시 모든 나라의 권력자들은 다 로마로 몰려드는 거예요.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모여들고, 무사들도 명성을 얻기 위해서 모여들고, 노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로마로, 로마로, 로마로 몰려 들었습니다.
이제 17세기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벵겔은 헬라 제국과 헬레니즘의 창시자인 알렉산더도, 로마 제국의 창시자인 시저도 감히 이런 생각을 못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실로 이 작은 나라 팔레스타인의 작고 보잘 것 없는 할아버지인 이 베냐민 사람인 바울보다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가졌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복음의 위대한 꿈이 얼마나 세계적인 꿈인지 몰라요. 이 세계적인 꿈을 꾸기 위해서는 날마다 오늘을 잘 살아야 되는 거죠. 보기 싫은 사람 날마다 찾아봐야 되고 이런 거를 해야 지 세계적인 꿈이 이루어지죠. 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에 있는 너희에 대해서 빚진 자란 의식을 가졌죠. 따라서 오랫동안 로마로 가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그래도 바울은 좌절하지 않고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복음화 시킨 것처럼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인데요. 그게 로마가 다가 아니고 로마를 거쳐서 그 당시 자기도 모르는 땅끝나라인 스페인, 본인이 생각하기에, 거기까지 갈 것을 다짐했어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나라에 끝없이 갈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령의 작정에도 불구하고, 경영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기의 힘으로 로마로 가는 것을 또 막으셨어요. 허락치 않으셨어요. 바울의 계획이 다 막혔어요. 일시적으로 다 막혔어요. AD 58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죠. 그리고 AD 61년에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해가지고 황제에게 변론을 하고, 그 다음에 갇혔죠. 그래서 63년 석방되기까지 로마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그게 훨씬 많이, 한 사람은, 한 영혼은 차별이 없자나요. 그 죄수의 신분으로 훨씬 전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바울의 목숨을 노리는 유대인의 위협이 가공할 만하기 때문에 로마 군대를 이용해서 안전하게 보호해가지고 결국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경영이란 중단이 없어요. 지금은 일시적으로 STOP이 된 것 같아도. 그리고 이제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그 후에도 다시 로마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67년에 체포가 되가지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해요. 결국 로마행은 순교의 선물을 주신 거죠. 그러니까 바울의 이 마게도냐행, 예루살렘행, 로마행의 경영과 작정이 모두 직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만해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만 해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 작정과 경영을. 그리고 이제 그 성령님의 그 말씀의 인도함을 받고 한 경영이라면 그거 자체가 응답인 거예요. 우리는 된 것만 응답 같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안 된 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의 경영은 손해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 2천년이나 넘도록 전 세계를 변화시킨 것이라면 그 당시에 응답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린 기도했으면 돼요. 공동체에서 인도받았으면 그것으로 끝인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강론을 듣고 성령의 세력이 쌓이게 되면 우리가 너무 성숙한 해석을 하게 되니까 요동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요동함이 없어서 해결이 잘 되는 거예요. 해결이 잘 돼요. 그런데 말씀이 안 들리니까 날마다 불평불만하고, 맨날 떠난다 안 떠난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는 거죠.
우리도 성령으로 이렇게 인도받는 원칙을 지키면 그것이 성령의 작정과 성령의 경영이 되어서 결국 자손들에게 쌓을 곳이 없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다 부자 됩니다. 왜 부자가 안 되겠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복은, 구원의 복은 천하보다도 귀한 거자나요. 그죠? 이 구원의 복이 자자손손 내려가는 거예요. 성령의 경영을 하시는 건 다른 거 아니예요. 그냥 큐티하고 공동체 들어가서 같이 나누면 돼요. 너무 미약해도 그냥 그거 하시다 보면 성령의 경영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경영을 할 무슨 힘이 있어요. 날마다 안되는 것 투성인데. 적용해보세요.
[적용]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의 경영과 작정만 해도 그 자체로 응답인 것을 믿습니까? 거쳐야 할 후속 관리할 마게도냐는 누구이고, 신경 쓰며 가야 할 예루살렘은 어디며, 반드시 봐야할 비전의 로마는 어디입니까?
기도제목
다인
허리, 손목이 안 좋아서 도수치료 중입니다. 속히 회복되고 영육 간에 강건함 주시도록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임에 감사하고 나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알고 칭찬해줄 수 있는 마음 가질 수 있도록
보련
말씀에 약속의 말씀 찾아서 하루를 잘 살도록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벌어져 있는 결핍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도록
약과 변경되는 주사 처방 잘 받을 수 있도록
현경
날마다 성령 임도함 받는 것이 원칙임을 알고 목장과 저의 구원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선
회사에서 요동칠 때 마다 주신 말씀으로 성령으로 인도 받아 분별하고 경계 지키며 나아 갈 수 있도록
외부 미팅 때 운전을 해야 하는데 오고 가는 길 지켜 주시도록
목장 식구들 위해 기도하기
상담에서 자세하게 가감 없이 나의 감정과 상황들 잘 나누고 오도록
크리스틴
상담가는 것에 나의 발과 손을 움직이는 것에 부담감이 있습니다. 나의 영과 육을 사랑하고 상담 가서 위로 받고 약 처방 받을 수 있는 의사 추천 받고 올 수 있도록
한국에 다녀 갈 계획이 있는데 지혜와 용기 주시도록
지향
양육에 대한 기대함과 염려가 있습니다. 성령의 보살핌 받을 수 있도록
왼쪽 눈 두덩이 떨림이 영양제 먹어도 계속됩니다. 최근에 왼쪽 두통도 심해져서 걱정되는데 건강에 대한 염려에서도 자유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잘 회개하고, 여전히 구원이 최고의 선물인 줄 알고 하루하루 말씀과 기도로 살도록
바울처럼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에서 말해야 할 것을 잘 말할 수 있도록
은우
전시의 경영은 주님이 주관하여 주시고 꼭 가야 하는 로마로 갈 수 있도록
진행하는 전시에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에 넉넉하신 주님께 아뢰고 빠진 인원이 충원될 수 있도록
붙여준 사람들 위해서 중보 하고 나의 처소를 잘 살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