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08월 22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19장1절~7절
제목 : 성령의 임하심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절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절 -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절 -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절 -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절 -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절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절 -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김양재 목사님 인사말씀
네. 회사에서 여러분들도 이런 일 많이 겪죠? 그랬는데 그 회사에서도 그 군 중속에 고독이라고 한사람
말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그 말할 사람 한사람이 없는 거예요. 가정에서도 그 말할 사람
한사람이 없는 거예요. 나라도 마찬가지라서 그 대단한 사람이 한 사람이 없어서 다 자결을 했잖아요.
정말 한사람이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정말 우리들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이러네요.
만세전부터 모두가 성경이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에 교회도 우리들 교회라고 그렇게 지었는데,
예.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 이다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가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지금 성령이 임하여 주시옵소서. 듣겠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씨앗을 뿌리면 이제 생명을 맺죠. 과학자들이 생명의 색깔과 또 크기 모양 수분 단백질 무기질 등의 성분을
예. 아주 100% 똑같이 만들어서 땅에 심었어요. 그리고 이제 물을 줬더니 자라났을까요?
예. 썩어서 악취만 낼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양육을 해도 조건을 똑같이 해도 예. 생명이 자라질 않습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예. 생명은 진짜 좁쌀만한거 하나라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밝혀 낼 수 없는 비밀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그 은혜는 가르친다고 되지 않습니다. 제자양육과 성령을 받는 것. 어떤 것이 선생 되어야 하는지
시간적 순서로는 말할 수 없지만요. 어, 분명한 것은 성령의 제자양육은
그 출발이 성령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니까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땅에서 정말 개미처럼
수고하고 썩어질 뿐인 것인 거예요. 어, 예수님 승천 이후에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본토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님 이었고요.
이제 이방선교를 하면서 또 이제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 에베소에서 이제 성령 강림이 또 일어나 야해요.
성령이 중요하니까 예. 18장 마지막에 제자양육과 이어지는 본문이
예. 이제 오늘 본문인데, 제자양육은 성령의 임하심이 절대적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은 또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임하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첫째로,
첫 번째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1절)
1절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18장 마지막에 아볼로가 브리스길라 천만 만드는 그 브리스길리와 아굴라의 천막에 제자양육을 받고 파송
받아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아볼로가 성령의 격려를 받으며
고린도에 가서 힘입게 전도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와 부르기아와 그 험준한 그 지방에 교회들을 심방한 후에
에베소에 도착했다고 해요. 19장 1절에 맨 처음에 아볼로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이 바울에게 아볼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조금 이제 어려우시겠지만 이 아볼로에 대해서 다시 안 나오기 때문에 제가 다시 아볼로에 대한
설명을 오늘 좀 하려고해요. 오늘 바울은요 이 아시아의 에베소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막으셔서 이제 마게도냐로 갔는데, 그때 분별했던 것이 거기가 베드로의 나와 바리다
그래서 안 갔다는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또 2차 여행 마지막에 잠시 들려서 회당에서 강론했더니
사람들이 다 붙잡았는데 또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가겠다고 하고 다시 또 떠났어요.
바울은 이 에베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여기 반드시 이렇게 전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자꾸 분별해서 또 이제 성령의 작별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이 에베소에 오게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듯을 이렇게 분별하고 이렇게 여기를 왔을까요?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보면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근심 사망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이 바울은 아볼로에 대해서 살짝 근심을 한 것 같아요.
이 아볼로는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에요. 대단한 출신이에요.
사실은 바울이 따라갈 수도 없는 출신이에요. 너무 탁월해요.
히브리서가 저자 미상이라고 하지만은 루터시대 이후에는 이제 아볼로 저자설 이 아주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정말 히브리서를 쓸 정도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바울과 문체가 완전히 달라요.
그냥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의 주석 뿐만 아니라 특별히 레위기에 주소라고 하고, 구약을 전체로 통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아볼로의 이름을 안 남겨주셨어요.
하다못해 베드로전서는 마가가 썼는데도 베드로전서라고 붙여주었고,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이 썼는데도,
디모데 이름을 남겨주셨는데, 아볼로가 바울이 이제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친 후에 떠나서
아볼로를 거기 후임으로 보냈잖아요? 그런데 갔는데 잘 가르치고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고린도교인들이 퍽이 갔어요.
그래서 바울보고 졸하다고, 바울보고 약하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잘 가르쳤는데, 고린도 교회에 파당을 가지고 왔어요.
그니까 파당이 생기다 보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 나는 심었고 바울은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는 이 하나님이다.
그런데 왜 비교를 하나? 어우, 이런 이야기를 썼는데 결국 바울은요.
아볼로를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그릇 다뤘다고저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가 관계가 안 되나 봐요.
그래서 그렇게 고린도교회를 이렇게 넘기는 그 엄청난 후임으로 동역을 했음에도 이 아볼로 이름이
바울의 로마서 16장 마지막 문안하는 쫙 그 사람들 가운데 이름이 안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똑똑하고 기독론과 구속사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도,
우리가 말하는 그 구속사를 너무나 잘 아는데도 바울과 한마음 이 안 된 부분이 있는 거예요.
이 사람이 분명히 브리스길라 아굴라에게 성령의 양육을 받았는데 제자양육을 받았는데 은혜가 있는데
그 아볼로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고 넘어가지 못하는 이 본인의 지식 때문에 거기까지 인 사람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랬을 것 같아요.
예. 진짜 아볼로는 히브리서 하나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땅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은
그냥 아우, 히브리서를 너무 잘 쓴 거를 봐서 그 바울이 정말 무시가 됐을 것 같아요.
아볼로가 진짜 이렇게 문체가 다르고, 그래서 물론 여러분들은 제 인생 전체를 통해서 묵상한 것을 들려 드리는 거예요.
이게 금세 이해가 안 되겠지마는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에는 또 여러분들이 이걸 또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누구도 아볼로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못 들어 보았기 때문에 제 인생 전체 통틀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왜 저렇게 아볼로 이야기를 하나? 성경에 나왔으니까,
예. 그래서 이 이후에 아볼로에 대한 결론이지만 그러면 왜 이때가 에베소에 올 때일까요?
에베소가 아주 황금 어장 이기는 이지만 항상 이 바울은 십자가와 지혜와 타이밍을 분별해요.
그런데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치다보니까 고린도 하고 에베소가 참 비슷하고, 돈 많고,
음란하고 비슷하고 그래서 곳곳에서 모여드는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예.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하는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예.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양육의 시간을 내니까 열매가 많았습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게 맞습니다. 의로운 아덴에서는 열매가 없기에 금세 떠났잖아요.
예. 그러니 그 에베소에도 바울복음이 들어가야 되는것 이예요.
그런데 아볼로하고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랑 오랫동안 양육한 후에 후임으로 보냈어요.
그리고 그가 떠난 에베소는 아볼로가 예수에 관한 것 것을 자세히 하여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뿐이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근심이 되어서 아볼로가 떠나고 갈라디아 지방을 다니던 중에 그렇게 오래 못 갔던 고향
다소도 못가보고 급히 그냥 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또 분별한 것은 바울은 그 가고 싶은 장소가 베드로가 안가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에베소에서 전도가 안 된 거예요.
그리고 이제 아볼로가 전할 때도 사람들이 아볼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남의 터 위에 또 건축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또 안 갔습니다. 여러분들 목자를 하고 여러분들 이 사도행전이 교회가 세워지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목사들이 그리고 또 모든 성도들이 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이런 원리를 모든 목자들이
이런 원리를 좀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둘은 서로 만난 적이 거의 없어요.
이 아볼로가 에베소로 이제 추천을 써줘서 격려해서 자발적으로 아볼로가 고린도를 떠났어요.
바울은 그 에베소가 이제 그 아볼로가 떠나고,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서 이때가 이제 전할 때라고,
이제 이때가 예. 떠날 때라고 아무런 모든 사람들의 마름을 잃고 누구 마음도 안 다치고
어, 이러면서 이제 온 것예요. 에베소가 너무 좋은 거점지라는 것을 알고도 에베소가 그 후에 굉장한 역할을
한 교회가 되었잖아요? 에베소서도 있잖아요. 성경에. 중요한 교회입니다.
그렇게 알고도 자기가 여기를 오기도 하겠지만 때마다 오랫동안 때마다 분별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에베소 모두 성령의 잣별로 모두를 윈윈 하게 하셨어요.
황금어장이라고 내가 무조건 무턱대고 가고 이렇게 하는 게 선교의 도움이 되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예. 그래서 끝없이 분별해야 해요. 그런데 이것이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면 이렇게 분별이 안 돼요.
또 하나 분별해봐야 할 것은 바울을 그렇게 죽이고자 한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말은 듣고 좋다고 하니까,
이 살짝 걱정되는 이 마음이 이해되십니까?
아볼로는 모두가 좋아하고 잘 가르치는데 바울처럼 박해 받았다는 언급이 없어요.
그리고 이런 성경 박사가 그 후에 고린도교회를 떠맡았다는 언급도 없어요.
어, 정말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라면 너무 놀랄 일 아닌가요?
분명히 바울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예. 정말 아볼로는 하버드, 바울은 서울대학 뭐 이정도?
그런 차이가 아주 글로벌한 예. 그런데 뭔가 정말 2% 부족한 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구원과 바로 직결되기에 바울은 이걸 분별을 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아볼로의 서론 볼론 결론을 아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 바울의 정확한 분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성령이 임하신 구원에 예. 분별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순간의 판단이 내 순간의 판단이 영원을 좌우할 수 있어요.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합니까, 내 생각으로 판단합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합니까, 어려워합니까?
나는 뒤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아프간 철수의 바이든의 결정이 분별일지, 판단일지는 역사가 증언을 해주겠죠?
이 한사람의 분별이 이렇게 세계를 좌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우리가 얼마나 한사람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뭐, 나라도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도 아니고 한사람, 너무 중요합니다.
너무 아볼로 때문에 묵상하다가 아오, 하나님도 뒤끝 있으시네.
어떻게 아볼로 이름 하나를 안 써주지?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히브리서를 썼다면 존경 받아 마땅할 것인데,
20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이 이름을 안 써주시네. 이것만 쓰면 뭐해요?
사람들하고 잘 지내고, 영혼 구원에 대해 애통하고 그래야지. 한사람의 분별이 세계를 좌우합니다.
집안을 좌우합니다. 교회를 좌우합니다. 한사람의 분별이 살리고 죽이고 하는 거예요.
정말 분별하는 한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바로 죄인 이 죄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거죠.
그래서 성령의 임하심은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이라고 했잖아요. 두 번째는 자, 성령의 임하신 두 번째,
두 번째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2절)
2절 -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 가운데 이제 그 어, 1절에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늘 정관사 the 가 붙어요.
그런데 여기 the가 안 붙은걸 봐서 이 제자들은 베드로의 구역에 있었던 제자인가?
아볼로의 구역에 있었던 제자였나? 누구의 제자를 말하는지 모르는 제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맞았다는 말은 찾았다는 말인데요.
예. 우연히 마주친 만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났어요.
예. 반기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 모르겠지만 은 찾아가서 자기가 의도적으로 만난 어떤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 당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르친 사람이 아볼로잖아요.
그니까 분명히 아볼로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볼로 의 제자가 아닐까 바울의 제자인지 모르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찾아가 만난 것이죠. 관심을 가져다가 살펴 만난 어떤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자기를 반기는 사람보다는 목적을 가지고 예. 그 당시에 가장 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볼로의 제자가 많죠.
그러면 또 살짝 근심이 되어서 찾아가서 말했어요.
그래서 이제 근심이 되니까 2절은 -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예. 그니까 어떤 도시를 방문 했을 때도 이런 기록의 사실이 기록이 나오죠?
그러니까 늘 예. 다른 곳에서는 회당을 찾고, 성경을 펼쳐 강론했어요.
그런데 이곳 에베소에서는 예. 그 아볼로 제자 같으면 은 얼마나 잘난 척을 또 하겠어요?
예. 그러니까 성령을 받았는지 먼저 묻는 말로 사역이 시작이 됩니다. 너희가 도대체 누구 제자냐?
너희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니? 그런데 그들이 대답하기를 아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 바울의 근심이 맞았죠? 맞은 거죠. 예. 바울이 만난 사람들을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제자였어요.
그런데 바울이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니까 성령을 받지 않은 거예요.
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 아녜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거예요.
명목상 제자일수 있어도 실제로 제자는 아닌 거예요.
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힘든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에베소가 힘든 곳이에요 힘든 곳이기 때문에 그냥 오자마자 확인을 했어요.
성령이 없이는 결코 에베소 같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러면 에베소 같은 사람이 누구예요? 에베소 같은 교회는 어떤 교회예요?
돈 많고, 예쁘고, 쭉쭉 빵빵 인물 좋고 모든 것 갖춘 그리고 금 그릇으로 똘똘 뭉친 그런 에베소 같은
내 아내, 남편, 자녀 식구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성령이 없이는 그 금 그릇을 깰 수가 없어.
그 의인이 좋지만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안 깨지는 거예요. 어떻게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들어오겠습니까? 도무지 내가 할 수 없는 저 사람 에베소 같은 저 인간의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성령을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하니까 성령을 받음으로 알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마술사 시몬이 이 성령을 받으려고 너무나 간절히 원했지만 받지 못했어요.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책망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헌금내면 성령 받나요? 간절히 원해도 받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교회 와서 열심히 내 열심히 섬기고 돈 내면 성령이 오나요?
더 무서워요 돈으로 살수도 돈으로 원해도 받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헌금은 신앙고백이라고 늘 말하잖아요. 그렇죠?
이 성령은 오늘 본문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로 믿을 때에 받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믿을 때는 어떤 조건이 아녜요. 믿음이 조건이 되어서 성령 받는다면 믿음조차 행위가 되어버릴 수 있어요.
그니까 여기서 믿을 때라는 말은 부정과거 분사로 주동사로 동작과 동시적 동작을 가리키는 문법이에요.
즉 이 말은 만일 너희가 믿었다면, 성령을 받았을 텐데 왜 너희 모습에서 왜 성령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느냐?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왜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그 모습이 왜 안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리 탁월한 교회와 탁월한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 어떤 아볼로의 제자로 살아갈 뿐인 거예요.
이 어떤 제자들이 이 어떤 제자들이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하잖아요.
우리들 교회에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이 말을 듣지도 못했다 하잖아요.
한 집사님이 이혼하려고 한 달 전에 왔어요.
성령의 문제 설교를 듣고 일제히 달려드는 그 사건 앞에 언어와 명칭과 법으로 피투성이가 될 때 일 때
처음으로 내가 죄인일수 있겠구나를 처음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니까 믿기 때문에 우리는 죽기보다 싫은 어떤 수치도 당할 수도 있고,
믿기 때문에 죽기보다 싫은 적용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남편은 내가 죽어서 아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자주 든다는 거예요.
정말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처럼 기도와 전도와 성경필사에 전념하시는 열중하시는 제자에 반열에 있는 분이예요.
그니까 실제로 이 거룩한 남편에게 아내가 마지막 왔을 때 아내가 정신과를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내에게 내가 왜 그곳에 가야하냐며 3시간을 따지고, 반박하고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나를 용서해야 되고
아내를 향해 용서와 사랑을 외치니까 아내가 그 이후로 모든 연락을 끊고 이혼서류를 딱 보내왔다는 거죠.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죠. 그니까 이분을 볼 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죠.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도대체 누구 제자냐?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의 수치를 인정하고, 내 수치를 인정하고 그냥 죽어지는 적용을 하는 이 성령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이분은 아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조용히 목숨을 끊고 싶다고 이 고백을 했는데,
정말 그니까 죽기보다 싫은 것이 인정 이예요. 죽기보다 싫은 이 정신과 가는 거예요.
나 자신과 직면하는 거예요. 죽기보다 싫은 아내에게 사과하는 것. 자녀에게 사과하는 것.
남편에게 사과하는 것. 공동체에 내 수치를 자백하는 것. 이것은 믿을 때에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제자들이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한 것처럼 이 집사님도 아내와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죄인임을 한 번도 듣지도 생각해보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평생에 교회를 다녔는데, 그렇게 기도와 성경필사하고 기도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성경을 필사하는데 왜. 내가 왜 죄인인가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것이죠.
무엇을 믿습니까? 내가 무엇을 믿어야 되요?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했는데,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그 한 말씀을 듣는 거 믿는 거예요. 긴 것도 아니에요.
큐티할 때 오늘 그 한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큐티 하는 게 작은 일이 아니에요.
이는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말씀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 거예요.
이 한 말씀을 믿고 붙들고 적용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이에요.
지금 이 시대는 에베소보다 더 악한 시대입니다.
어떤 제자로 성령을 모른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바울이 이것을 간파한 것이죠.
험한 전도여행을 다니며 온갖 수모와 핍박을 당했잖아요.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세상에 그 아볼로를 분별했어요. 그리고 1절에 어떤 제자도 분별했어요.
교회를 하거나, 양육을 하거나, 회사를 하려면 이렇게 분별을 해야 돼요.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예. 이 성령님이 임하셔야 되요. 그니까 죄인은 로또 예요. 로또 죄인은 분별을 해요.
의인은 분별 못해서 지금 좋으나 나중에 망하리라 그래서 신 결혼 해야 돼요.
예수 믿는 제자로써 성도로써 무서운 열심 뒤에 감춰진 그 큰 빈자리 영적 공허함을 보았어요.
예. 그래서 에베소에 와서 어떤 도시에서도 던져지지 않은 첫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실존적인 질문이고, 그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쉽게 말하면 목사에게 구원을 받으셨어요? 라는 질문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습니까?
지금 나에게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입니까?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맞다고 말하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내가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자, 성령의 임하심은 이제 그 구원에 분별에 절대적이라고 했잖아요. 중요하고,
그리고 사람의 어떤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세 번째는,
세 번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입니다.(3절~5절)
3절 -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절 -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절 -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예수 믿는다고 제자라고 하는 사람이 성령이 계심도 듣지도 못했다고 하니까 바울의 근심이 맞았죠.
바울이 분별 잘했죠? 사람의 능력도 적용도 자신의 수치 드러내지도 않는 어떤 제자들을 향해 바울이 또 묻습니다.
예.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양육한 것처럼 바울은 어떤 제자들을 질문을 해가고 양육을 해가고 있어요.
이렇게 양육은 답을 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돼요.
정답을 들이밀지 말고 목장에서도 우리가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렇게 질문을 해줘야 돼요.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는 것이죠.
바울은 다시 어떤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합니다. 너희는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니까 글쎄, 그 어떤 제자들이 너무 자랑스럽게 요한의 세례요.
이것은요 우리 하버드 마이큰 샌들의 제자인데요? 이렇게 딱 이야기한 것이죠. 무슨 말인지 몰라요?
예. 그니까 아볼로도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굉장히 자랑 예. 했는데,
그 아볼로의 제자라면 이게 너무 자랑스러운 거야. 자격증이야.
예수의 제자라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부끄러운 이름 예.
지금 요새는 우리들 교회 다니는 게 자랑일수가 있겠는가?
맨 처음 여자목사 다니는 교회니까 여러분들 말 잘 안 나와.
요즘 잘 나와? 잘나와? 그러니까 그것만 봐도 적용이 되지요.
아볼로 제자 요한의 세례 와우, 아볼로두 요한의 세례라 하면 아주 자격증의 큰 이야기 하는 거예요.
너무 의로운 거예요. 메뚜기 먹고, 이 석청에 광야에 너무 의로운 거예요.
예. 그 대답을 듣고 바울이 그 요한이 세례를 베풀면 어떤 말을 했는지?
그들이 믿는 요한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 해줍니다.
바울이 인용한 이 본문을 정확히 살펴보면 마태복음 3장 11절에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계를 베푸실 것이요.
보는 사람의 부류도 달라집니다. 서울에서 인류를 위하여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나왔지만
제가 지금 함께하는 분은 여러분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저절로 우리가 된 여러분 이 여러분들이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가 한번 생각해봐요.
그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의 여러분들의 믿음이 있을 것이예요.
물세례, 성령세례는 동시에 올 수도 있고, 순서가 뒤 바뀔수도 있어요.
예. 더 본문을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면 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은
우리는 요한이 어떤 인물인지 요한의 세례가 어떠한지 지난번 설교에서 다 함께 묵상했어요.
예. 예수님의 세례는요.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합니다.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예. 그런데 요한의 메시지는 이제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니까 오지 않은 소리.
예비 하지 않은 소리라면, 예수님의 설교는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 자체가 이미 임한 메시지잖아요.
그니까 그 능력의 차이는 예비하는 사람과 이미 임한 사람 비교할 수가 없어요.
장차올 것과 내게 임한 것.
세례 요한의 설교가 듣기에 의롭고 멋있어서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 많아도 그 속사람의 죄 보기는 너무 어렵죠.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더러운 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들으면 찔리는 것 찔리니까
그니까 도전이 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사람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변해야 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인거예요. 불은 심판이예요.
즉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입니다. 무슨말입니까?
내가 예수 믿으면 잘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 믿어 심판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합니다.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깨달아집니다 하는것이 예수님의 세례에요. 그니까 깨끗하게 씻겨주는 회개의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인거예요.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독사의 자식입니다.
그니까 용서받아서 제가 이혼을 안당하는게 문제인데, 이혼이 당하지 않게 되는것이 아니라,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이예요. 제가 이혼을 당해도 사업이 망해도 이 할말없는 인생입니다.
심판 가운데에서도 이 심판이 저의 죄보다 가벼운것을 깨닫는 세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례에요. 그런데 우리는 심판을 싫어해요. 맨날 용서, 물, 깨끗함만 원해요.
그런데 내 속의 쭉정이가 끝없는 죄악이 이땅에서 주님 불의 심판을 받는것이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그 은혜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내가 알기 때문에 주님 저는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죄인입니다.
그 고백을하는 사람에게는 이혼이 막아져도, 이혼을 당해도 은혜인거예요. 내가 성령세례 받았잖아요.
그래서 이런게 깨달아졌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다 들어낸거죠.
남편의 주사를 다 받아낼 수 있었죠.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혼이 막아져도 은혜고, 이혼을 당해도 안당해도 은혜고,
이제 그 환경이 아니라, 그 불의 심판을 통해 구원을 하나님의 상급으로 받았기 때문에
이 환경의 어떠함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예수의 세례,
이 불세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므로 지금 현 시국에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가정이라면, 깨지고,
돌보고 끝없이 눈물을 흘려야 되는거예요. 왜냐하면 나로인해 저 영혼까지 함께 불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이 심판 속에 나를 살린 예수를 전한 마음이 불 붙듯 일어나면서 갈급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게 예수의 세례예요.
내 죄 때문에 깨어질 가정이라면, 이것을 돌보며,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깨어진 후에 만났어도 나 때매 깨어졌구나. 이혼 후에도 나 때문에 깨어지겠구나.
나로인해 저 영혼까지 불의 심판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주 예수를 전하고 싶은 이 마음이 불 붙듯 붙여지는게
이것이 성령세례인 거예요. 하지만 요한의 세례는 내가 용서를 받았고 성경도 필사하고 예수안에서 용서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어?가 주제가입니다. 이게 요한의 세례인거예요.
이는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불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것을 자신임을 절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로 모르는것이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서 아내에게 복수를 하겠다.
그렇게 성경 필사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도, 왜 나에게 예수를 믿어도 이런일이 오나?
이것이 주제가가 되는것이죠. 이 땅에서 불의 세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것을 경험하는것은 축복이에요.
예. 그래서 영원한 형벌을 면할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서 무너지지 않으면 절대로 몰라요.
우리가 이땅에서 무너짐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무서운 영원한 심판을 면할수 있겠어요?
그래서 내 죄가 깨달아 지니까, 그런데 아무리 고난이와도 죄가 안깨달아 지는 사람.
요한의 세례밖에 몰라서 그러하기에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닌 그 세례 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성령세례란 정확한 복음 내 뒤에 오실 예수님을 확실하게 하는거예요.
바울은 그 예수님을 정확하게 다시 설명하고,
예, 복음을 설명한 거예요. 바울이 수없이 강론하고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대신해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다시사심과 승천하시며 이렇게 다시 오시는것을 믿는것이죠. 그분의 말씀을 그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하셨잖아요.
예수님이. 예수님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분의 그 말씀을 믿는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가기에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성경이 나를 정확하게 읽고가기에 성령세례라고 하는거예요.
이것보다 정확한 성령세례가 없습니다. 세례란 죽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이예요.
십자가 지는것. 권능이 임해서 병이 낫는것이 아니라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기뻐하면서
내 잔을 기쁘게 마시는 거예요.이들이 어떠한 제자인 이유는 아볼로의 외침보다도 아볼로의 어떤 제자도
그들이 지는 어떤 십자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십자가를 지는것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환호하는게 아니라
손가락질하고 화내고 욕하고 던져 버리고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24절에 있죠.
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지금 이렇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것 요한의 세례를 받았는데 왜 또 예수의 세례를 받냐고 이 본분은요.
교파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오늘 이 본문 굉장히 어려운 본문 이예요.
예수의 세례를 받았는데 떠 세례를 받는다는 재세례파가 등장하고 반드시 6절-7절에서 방언을 받아야지
성령세례를 받을수 있다고 한다는 오순절 교파가 나옵니다.
성령은 오순절에 처음 오신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것입니다.
이 성령 세례의 표적은 사람을 보는눈이 달라지는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도 달라집니다.
오직 저는 인류를 노래 불렀는데 저절로 우리가 된 여러분 이것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자 물세례 성령세례는 동시에 올수도 있고 순서가 뒤바뀔수도 있지만 바울이 가르친것은 정확한 복음입니다.
우리가 큐티하는것 정확한 복음이에요. 양육은 그가 대답할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양육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요한의 세례요 하버드 마이클 샌들의 제자의 대답입니다. 아볼로도 요한의 세례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의로운것입니다.
메뚜기 먹고 광야의 바울이 말한것을 인용하면 마태복음 3장 11절에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요한의 세례 물로 받았습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묵상했습니다.
오지 않는 소리 예수님의 설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한 설교입니다.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열광하는 사람이 많아도
속사람 보여주는것이 많습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이루어지는 세례다 회개합니다 독사의 자식입니다
어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세례다 내가 이혼을 당해도 사업이 망해도 인정합니다
용서 물 깨끗한것만 원함 불의 심판 멸하는 영원한것이다 주님 저는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이혼이 막아져도 이혼을 당해도 은혜고 구원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환경에 아떠함의 요동함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끊임없이 애통함으로 갈급하게 됩니다. 예수의 세례입니다.
내가 요한의 세례 받았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불의 심판을 당할 사람이 자신인걸 몰라서 요한의 세례입니다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 피할수 있을까요?
아무리 고난이 와도 말씀이 안깨달아 지는것은 요한의 세례입니다.
성령세례란 정확한 복음 예수님을 확실하게 아는것이다 바울이 수없이 말했던 죽으심 다시사심 다시오심을 믿는 것
그 말씀을 믿는것입니다. 성경은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성경이 나를 읽고 지나 가는것이 성령세례 입니다.
십자가 지는것 입니다.
마태보음 16장 24절에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성령은 오순절에 오신것이 아니고 창세전부터 계시고 사람의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부류도 달라집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가 저절로 우리가 된 여러분.
이 여러분들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가? 거기에 믿음이 있습니다.
물세례, 성령세례 순서가 뒤바뀔수 있습니다. 큐티 말씀을 듣는것이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적용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요?
사건 엎에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인정됩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지금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물세례도 안 받으신 분들은 왜 안 받으시는지요?
지금 청장년들은 왜 물세례 조차 안받으시는가, 그것은 아주 공표하는것이죠. 결혼식처럼,
성령의 임하심으로 네 번째는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네 번째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6절~7절)
6절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절 -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안수직후 사람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미완료 과거형이에요 계속 되는거예요
방언 의미는 선교를 목적으로 바벨탑 사건 저주 풀어주신 외국어 나타낼때
개인의 신앙 확신하게 주신 은사로 주신 방언 고전 13:1 외국어 사람의 방언, 라랄라라라 천사의 말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성령 성령 세례 생각할 때 방언 예언 이런것 여러 기적이나 은사로 생각해서
가시적 능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안수 직후 사람들 방언 예언함 제가 옛날 기도원에 가서 랄랄랄라로 시작하라고,
코카콜라도 있다고 하다고, 코카콜라 코카콜라 방언 나온다고,
이런 생각을 성령을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맘대로 쓸수 있는 에너지로 쓸수 있죠.
한낱 에너지나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하십니다.
방언 공감 소통의 능력이에요. 영원히 소통할수 없어요. 주님과 타락해서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알게해주세요.
얼마나 사랑하셔서, 구원 하시기 위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라는것을,
그 주님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해서 날마다 하나님한테 정주목을 들이대죠.
어떻게 통해요?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는것이 방언이에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것 방언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수 없어요.
다 말씀으로 말하는거 어렵대. 처방하는거 어렵대. 말씀으로 나눔을 못해.
금새 들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 그거 참 희안해요. 금새 성경 말슴 들었는데 기억을 하나도 못해.
하나님 나라의 말이기 때문에 불신 결혼 동성애 안된다고 말씀에 다 나라 왔는데
하나님 나라 인권이 왕노릇 하니까 절대로 알아들을수가 없어요.
고난 축복,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고 구속사는 방언중에 방언인거에요.
하나님과 소통하는 언어가 구속사의 언어 인거에요 수준 높은 이야기 해서 나도 괴로워.
얼마나 이해가 되는지 몰라서, 나 죽고 계속 들어보라고 설교 해놓는거지.
그래도 오늘 한사람이 그 한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전세계를 바꾸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면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소통이 돼서 이해하고 말하게 되니까
내가 이제 그냥 왜냐하면 세례를 통해 예수와 함께 죽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 내가 알게 되었거든요.
그럼 세상말안하죠. 하나님의 언어를 쓸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언어를 쓰라고 기도하고 필사하라고
쓴 그게 하나님의 언어가 아니고, 세상의 언어로 계속 소통을 해주잖아요.
우리가 예를 들어 이런거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주는 거예요.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 놓는거잖아요. 예언이라고 해요.
점보는것 사주팔자 관상 너무 좋아하는데 요즘 가장 유행은 개미들 사주팔자도 봐준대요.
사아야할 주식 팔아야할 자리 봐주는것이 개미들의 사주팔자래요.
아주 문전 성신 합니다. 오늘 뭐 살까요? 뭐 팔아야 할까요? 여기 예자는 미리 예자가 아니라,
맡길예 미리언 말씀언 이예요. 즉 예언이 뭐냐하면 감화력 인거예요.
내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서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키는거예요.
감화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해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것,
이것이 예언입니다. 큐티 적용을 하는것입니다. 다른것 없어. 바울을 통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변화되고,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이 아볼로가 변화되는 이것이 예언이에요.
알아들어요?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이유를 말씀으로 해석하여 나와 같은 고난이 있는
사람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그 말씀으로 그 말씀으로 변화되는것.
이것이 예언이지요. 방언과 예언도 모두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이 영혼 구원을 길로 놓고 가게
되는 이것이 성령의 임하심의 목적이죠. 7절에 모두 열두사람쯤 되더라 이라고 해요.
12는 회복의 숫자예요. 산술 숫자가 아니라, 열둘은 회복의 숫자라는 거에요.
구약의 열두지파 신약의 열두사도를 예표합니다. 하도 죄짓고 무너녔잖아요.
신약의 열두제자를 세웠어요. 즉 열둘을 말씀을 맡은 공동체를 뜻해요.
그래서 12인은 말씀을 맡은 이 공동체를 뜻합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서 무너져서 다시 또 세워졌잖아요.
아무리 무너졌던 공동체라도 우리 성령이 임하시면 회복시킵니다.
말씀을 맡은 공동체가 무엇이죠? 목장이죠. 12는 우리가 마지막 천국을 갈때도 천국을 표현하는 숫자입니다.
천국문이 열두문이예요. 그 문엔 열두보석 열두천사가 있고 생명 나구 강가에 생명나무열매가 맺혀요.
요한계시록에서 모이는것은 다 열둘 숫자이예요. 이 성령의 임하심은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에요.
목장의 마스코드 일곱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명도 빠지지 않고,
늘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 하는 목원들의 얼굴을 보면 한달동안 얼굴 못보고,
불치병에 하루하루 힘들고, 이혼을하고 싶고, 의인인 이 남편을 통해 예수와 사는것 같다는
이런 목장 이 목장 모임이 열두공동체 예요. 청년부 큐페인 조별 공동체 나눔에 일곱명이 들어왔는데,
수련회조로 들어왔는데 여섯명이 약안먹는 힘들다고 하는 한명에게 약 잘먹고 넘어가야 한다고 처방을 6명이 해줬는데
그게 다 진짜 우리가 여기 있다고 we are all here 다들 벌떼같이 달려들어 처방을 해줬는데 우리다 여기있다
We are all here 이 우리 공동체가 아니겠어요? 너무 눈물나는 공동체예요.
이 공동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제자들이 열두 사람으로 변한거예요.
이제 한사람은 아볼로 사도행전 19장 1절에는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 어떤 열두 제자로 시작된 이 요한의 세례로 시작되어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이 성령이 임하시니까
오늘 마지막절 열두 사람의 예수의 제자에 온전한 회복 공동체로 변화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소통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과 방언을 하는 열두 공동체의 나눔이예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들 교회 청년부에 다니고 있는 청년부에요.
이번 수련회때 큐페때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고,
특히 성령의 죄수 목사님 설교를 듣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조모임도 좋았고, 너무 좋았고, 사흘동안 계속 내리 조모임을 했는데 마지막날 무려 7시간 동안이나
조모임을 했어요. 저도 제가 신기해요. 너무 감사해 메일을 씁니다.
몇 년전에 저는 친했던 학교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아무리 애써 잊으려고 해도 트라우마가 저를 괴롭히고 저 스스로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도록 더럽다며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때 날마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서 실제고 3번이나 간수처럼 자해를 하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우리들 교회 와서도 이 이야기가 안나오더라구요.
그냥 때마다 괴로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큐페 때 설교를 들으면서 꼭 그 제모습이 괴로워하는
제 모습이 귀신들린 여종 같았어요.
그런데 첫날 내 존재 자체가 귀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이 설교 말씀 듣고 울었고요.
둘째날 아침에는 내가 갇혀 있는 깊은 감옥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고요.
내가 그동안 성폭행의 상처와 괴로움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것도 고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었고,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 졌어요.
이 큐페 조모임때 이 나눔을 처음 했어요.
그리고 그때 목사님이 줌으로 탐방 오셔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물어봐주시고 같이 울어주셨어요.
같이 좀 나눔을 하고 있던 언니 오빠들도 저를 위로해 주시고 같이 위로해 주셔서 저도 펑펑 울며 나눔을 했는데
아 이게 진짜 바울 공동체구나. 진짜 간수처럼 자결하려고 했던 저에게 우리가 다 여기 있다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나니 진짜 주 예수를 믿어 구원 받게된 간수의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았습니다.
선택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사님들은 전부다 스스로 버거웠던 버거워했던 제 삶을 강사님도 다 겪었다고 하시는데,
우리 강사들이요 다 이제 성공하기만 한게 아니라 나도 다 힘든걸 겪었다고 하시는데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괜찮다고
공동체에서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하는 말씀이 너무 위로가 되었어요.
간증 페스티발 때 또 하나같이 말도 안되게 살았던 청년들이 저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공동체에서 이야기 하고, 살아나고있는 모습을 보는데 참 많이 울었어요.
예. 이 죄수 공동체의 위력이구나 새삼깨닫고, 제가 우리들 교회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 평생 남자를 못만날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모임을
마치고 나서 같이 조모임을 했던 형제가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호감을 보여줬어요.
위로는 받았지만 아직 상처가 다 안 아물어져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 그런이야기를 다 했는데도
저에게 관심을 보여준 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큰 위로와 감격인것 같아요.
목사님 이런 공동체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제가 청년때 이런 교회를 만난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 수가 없어요. 평생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we are all here 이 말씀은 절대로 까먹지 않을것 같아요.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예. 이 말씀을 목사님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생명의 은인이시고, 우리들 교회 청년부 너무 사랑하고 목사님 너무 사랑합니다.
예. 너무 놀랍지 않아요? 오늘 말씀으로 소통되고 감화 우리에게 시켜서 방언 예언 다해주시고,
예수의 세례받고, 그저 수치를 다 드러내고, 어떤 제자도 아니고,
예수의 제자고, 성령이 임하셔서 이 모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약재료로 내어놓은줄 믿습니다.
예. 우리들 교회 청년부 파이팅 이죠? 여러분 이 열두 공동체가 세계적인 대안이 아니겠습니까?
성폭력 당해서 죽인다 고소한다 동정하고 맨날 뭐 서로가 이것도 진영논리에
저는 허, 진짜 이게 정말 성령이 임하셔야 될 것 같아요.
지금 교회도 다 진영논리로 갈라져 있고, 그니까 죄인 공동체가 최고의 바울 공동체가 맞고,
로또 이 자매가 그렇게 은혜를 받았고, 호감을 보여주시는 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라 이 말이 맞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맨날 나는 사람을 못만나난다고 하는데,
이런 수치의 고백을 할수 없는거예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내놓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의인을 자꾸 구하니까, 그니까 전도가 안되는 거예요.
정말 소통하는 방원과 말씀으로 감화를 시키나요? 들은즉슨 잊어버리나요?
그래서 결혼이 안되는 거에요. 관심도 없고 여기와서 다 조니까,
회복의 지름길이 목장에 가시는걸 아시나요? 적용질문이 금새 없어져 버렸어.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는 각각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이런 모두 기적같은 은사의 말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느곳에서는 코카콜라를 외칩니다. 세상 사람들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구속사는 방언중 방언입니다.
고난이 와도 찢어지는 하나님의 마음 이해되고 하나님의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생각과 마음입니다.
7절에 -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12는 회복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너져서 세워졌습니다. 말씀을 맡은 공동체가 무엇이죠?
목장이죠. 열두 보석 열두 천사다 성령의 임하심은 온전한 회복의 임하심 입니다.
we are all here 아닌가 19장 1절에는 어떤 제자들로 시작된 오늘 온전한 회복 공동체로 맺을줄 믿습니다.
우리들 교회 청년부 파이팅이죠? 예. 적용 질문드립니다.
적용
소통하는 방언과 감회를 시키는 예언을 하시나요?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12공동체 목장에 가는 것임을 아시나요?
나는 무엇이 회복되고 싶나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그래서 이제 절대적으로 항상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이예요.
구원에 분별할수 있는것은 정말 절대적이기 때문에 필요한 거에요.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것이 분별인것 같아요. 분별을 해야되요.
우리 인생에 판단하지 말고, 분별해야 되요. 영육간에 분별은 성령이 임하셔야 되요.
성령 받아야 되요. 큐티 열심히 하고 목장 나눔도 열심히 예수의 세례는 십자가 튼튼히 잡고
오늘 학교에서 회사에서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있으면 그게 성령 세례인거예요.
우리는 어떤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을때 성령을 받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소통과 방언과 감화의 예언을 합니다.
열두 공동체에 온전한 회복을 말합니다.
성령세례는 나는 죽고, 예수님은 살아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확한 복음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람에게 내가 성령받고 믿을때 성령 받는다고 주 예수 이름으로 세레를 받는 거예요.
소통 감화 방언 예언 말씀으로 해야 함니다. 열두 공동체 온전한 회복을 말합니다.
성령 세례는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살아나는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것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찬양합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십자가를 질 수 있나 / 주가 물어 보실 때 / 죽기까지 따르오리 / 성도 대답하였다
너는 기억하고 있나 / 구원 받은 강도를 / 그가 회개하였을때 / 낙원 허락받았다
걱정 근심 어둔 그늘 / 너를 둘러 덮을때 / 주께 네 영 맡기겠나 / 최후 승리믿으며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 주가 물어보실 때 / 용감한자 바울 처럼 / 선뜻 대답 하리라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 갈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성령의 임하심은 성령 세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항상 참으로 이 분별 구원의 분별을 위해서 성령의 임하심이 절대적인데
예. 우리는 성령이 임하지 않고, 영육간에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성령이 임해서 모든 것이 다 항상 분별하지 아니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분별해야죠.
구원을 위해서 생각하는게 분별인것 같아요.
내 유익을 위해서 생각하는게 판단이고 정말 우리가 이런 분별 할수 있도록 어떤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 있도록 정말 믿을때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내가 큐티하고 그 말씀 하나 믿고,
믿을때 정말 성령세례인것을 알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십자가를 잘 지게 해달라고
소통과 감화를 시키는 이 방언과 예언을 할 수 있도록 이 열두 공동체의 목장에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예. 아프간을 위해서 우리나라가 6.25때 수많은 나라가 참전해서 이렇게 지금 기적을 이룬것처럼
아프간의 기적을 위해서 전 세계가 회개하는 여전한 방식의 건강법 또 태아 생명법 다 위해서
주님 다같이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세상에는 믿을때 성령을 받지 못해서 내가 죄인이라고 한번 이라도 들어보지 못했대요.
인간의 목적이 거룩이라고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대. 정신과에 가보라고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 한마디가 믿어지는거 그게 성령받는거니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결국 십자가 잘 지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확히 알고 십자가 지도록 방언과 예언을 할 수 있도록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아프간을 위해서 개정안 통과되지 않도록 태아 생명법에 재정을 위해서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성령의 임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이 구원을 위해서 분별하는것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습니다.
주님 참으로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을 위하여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 이렇게 그냥 전도만 다닌다고 어려운데, 바로 전세계에 구원이 되는것이 이렇게 아볼로를 분별하고 바나바도
분별하고 어떤 구원에 대해서 날마다 바울이 걸가는 길을 날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바나바도 분별해야 하고 아볼롤도 분별해야 하고 어떤 제자도 분별해야 하는 바울의 그 지독히 슬픔과 외로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나라가 바울에게 많이 임했기 때문에 그 한사람이 전세계에 선교를 가져왔습니다.
주님, 그 한사람이 아버지 우리나라에도 또 이 아프간에도 예. 또 우리 모두에게로 우리 가정에도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그 한사람이 전세계를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 아프간에 일어나는 갑자기 일어나는 그 엄청난 일을 우리가 눈앞에 보면서 우리에게 그날이 도적같이 이를줄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주여, 우리 우리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우리가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당장 우리나라의 인구가 이 생명이 없어져 가는데 아버지 낙태법이 통과되고,
아버지 하나님 이 인권이 우상이 되어서 이 건강개정법이 이제 개정원이 통과되기
아버지 하나님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님 우리 나라부터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우리가 다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하심으로 세례받는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아는 복음이고 십자가에서 죽는것이라고 하셨사오니 이세례가 죽는것이라고 하셨사오니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되고 이 죽어지는 성령의 임하심이 이루어 지고 있는,
성령의 열매를 보일수 있는 성령의 모습을 보일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지 못해서 이렇게 왔고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고
아버지 하나님 아프간이 저렇게 탈레반 취하에 들어가고 아버지 불쌍히 여겨 주시고,
아버지 탈레반 그사람들도 주님이 위하여 죽어주신 주님의 백성일 터인데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를 알만한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그런데 그것이 정말 에베소 전체의 구원이 달려있고 이세상 전체의 구원이 달려있어서 날마다 참으로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예수의 세례인데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 참으로 이런일 다 할수 있나 주님께서 물어보시는데 온전하게 내속에 은혜의
주님이 세워지는것이 내 힘으로 할수 없는데 말씀 사역을 통해서 내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무넘짐을 허락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끝까지 이 땅에서 무너질 육신에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영원한
그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아니하고 그 나라에 입성하여 이 구원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힘으로 사할수 없지만 성려이 임하시면 오늘 바울처럼 이 정확한 분별을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충성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그 땅을 보여야 하는데 우리는 아볼로처럼 열광받고 칭찬받는
그 길을 너무나 가고 싶습니다. 너무나 예수님의 길을 가기가 어려운데 성령이 임하시면 신기한 기쁨을 허락해 주시니
지금까지 그 복음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려워 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그 기쁨을 우릴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앞으로 할 일도 많고 진로도 배우자도 찾아야 하는데, 주님 죄인들의 만남이 되게 도와주시고 죄인들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을 허락해주시고 주님 지금 보지 아니하고 훗날 볼 수 있도록 성령의 임하심이 우리 가운데 임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서 이 성령세례이고 예수세례인데 권능인줄 잘 몰랐습니다.
주님 모두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날이 도적같이 갑자기 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어둠의 세력이 갑자기 임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온 사람이 회개하길 원합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우리들 우니리나라에 생명이 없어서 생명 보다
더 중요한 인권을 가지고 이 나라의 장래가 보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나가라 이 생명이 멀어지는것에 대한 인구 절벽으로 가고 지금 예수도 없고 다 없는데 이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 건강 개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낙태법이 이미 통과 되었지만 태아 생명 보호법이 제정되도록 인권에
종노릇 하지 않도록 성령님 임하게 되어주시옵소서. 성령세례받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모두모두 성령세레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사도행전을 통하여서 날마다 성령 성령 성령 하는데 주님 만나게 도와주세요.
성령님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 비같이 내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 기도제목
오찬미
-취업준비와학교한학기마무리 할수있도록
-신교제 인도해주시길
-동생구원을위해 손과발이가는적용하기를
신애리
-진로문제 말씀으로 해석하기
-말씀에 기반되어 관계 해석하기
김자영
- 원장님과 과장님이 모두 바뀌시는데 잘 적응할 수 있기를
- 불안과 두려움을 주께 맡기기를
- 잠을 잘 잘 수 있기를
김이나
- 회사일 잘 진행되도록
- 마음 문이 열리고 목장에 잘 붙어갈 수 있도록
김성은
-성령받게해주세요 성령님저에게임하여주세요
-매일 큐티하며 그 한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독사의 자식임을 인정하고 죄와 저의 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게해주세요.(쇼핑중독,온갖중독등등)
-열두 공동체에 잘 묶여서 붙어갈수 있또록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며 내려놓고 분별하며 가기를
윤지혜
- 내 유익을위한 판단만하며 의로운 척하며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매 순간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으로
구원을 위한 분별을 하도록 성령님 임하여주세요
- 말씀으로 해석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감정 또한 온전히 다 겪고 나누며 갈 때에 성령의 정돈이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공통기도****
주님과 소통하고 말씀으로 해석받는 회복의 목장 공동체가 되도록 성령님 함께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