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임하심
본문: 사도행전 19:1 ~ 7
설교: 김양재 목사
1.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아볼로가 성령의 격려를 받으며 고린도에 가서 힘 있게 전도한다.
그 사이 바울이 갈라디아와 부루기아 그 험준한 지방의 교회들을 심방한 후에 지금 에베소에 도착했다고 한다다.
19장 1절에 맨 처음을 아볼로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이 아볼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원래 바울은 아시아 에베소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막아서 마게도니아로 갔다.
그 때 분별했던 것이 거기가 베드로의 나와바리다 그래서 안갔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마지막에잠시 들려서 회당에서 강론을 했더니, 사람들이 다 붙잡았지만, 또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하고 떠났다.
그런데 바울은 이 에베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드시 전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찾고 분별해서 또 성령의 작별을 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에베소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여기로 왔을까요?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했는데,
바울은 아볼로에 대해서 살짝 근심을 한 것 같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대단한 출신이고 바울이 따라갈 수 없는 출신이고, 너무 탁월하다.
히브리서가 저자 미상이긴 하지만, 루터 시대 이후에는 아볼로 저자설이 아주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다.히브리서를 쓸 정도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바울과는 완전히 문체가 다르다.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주석 뿐만 아니라 특별히 레위기의 주석이라고 하고 구약 전체를 통달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볼로의 이름을 안 남겨주셨다. 하다못해 베드로전서는 마가가 썼는데 베드로전서라고 붙여졌고,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이 썼는데도 디모데 이름을 남겨 주셨는데,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친 후에 떠나서 아볼로를 후임으로 보냈는데, 가서 얼마나 말을 잘하고 잘 가르쳤는지 고린도 교인들이 빠졌다.
그래서 바울보고 졸하다고, 바울보고 약하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잘 가르쳤는데 고린도교회에 파당을 가지고 왔다. 파당이 생기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
'나는 심었고, 바울은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는 이는 하나님인데, 왜 비교를 하냐' 라고 썼는데, 결국바울은 아볼로를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 그릇처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고린도교회를 넘기는 동역을 했음에도 아볼로의 이름이 바울의 로마서 16장 마지막 문안하는 그 사람들 가운데 이름이 안 나온다.
이렇게 똑똑하고 기독론과 구속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바울과 한 마음이 안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이 분명히 브리스길라에게 성령의 제자양육을 받았는데, 은혜가 있는데, 아볼로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고,
넘어가지 못하는 본인의 지식 때문에 거기까지인 사람도 있는 것을 보여준다.
진짜 아볼로는 히브리서 하나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땅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이 히브리서를 너무 잘 쓴 것으로 봐서 바울이 무시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러면 왜 이 때가 에베소에 올 때일까?
에베소가 황금어장이긴 하지만, 항상 바울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십자가와 지혜의 타이밍을 분별한다.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치다 보니까 고린도하고 에베소가 비슷하고 돈 많고 음란하고 곳곳에서 모여드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양육의 시간을 내니까 열매가 많았다.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것 맞다.
의로운 아덴에서는 열매가 없기에 금세 떠났다. 그러니 에베소에도 바른 복음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아볼로는 바울이오랫동안 양육한 후에 후임으로 보냈다.
그가 떠난 '에베소는 아볼로가 예수의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더라'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근심이 되어서 아볼로가 떠나고 갈라디아 지방을 다니는 중에 그렇게 오래 못 갔던 고향 다소도 못 가보고 급히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또 분별한 것은 바울은 그 가고 싶은 에베소가 베도로 사도 구역이라고 안 갔었는데, 한 참 시간이 지나도 에베소가 전도가 안되었다.
그리고 이제 아볼로가 전할 때에도 사람들이 아볼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남의 터 위에 건축 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안 갔다.
둘은 서로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이볼로가 인도함을 받고 추천서를 에베소 형제들이 써줘서 격려해서 고린도로 떠났다.
바울은 에베소가 아볼로가 떠나고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서, 이 때가 이제 전할 때라고, 이 때가 떠날 때라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누구 마음도안 다치며 온 것이다.
에베소가 너무 좋은 거점지라는 것을 알고도. 에베소가 굉장한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알고도 자기가 여기를 꼭 가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분별을 한다.그래서 고린도, 에베소 모두 성령의 작별로 winwin 하게 하셨다.
황금어장이라고 내가 무조건 무턱대고 가는 것이 선교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그래서 끝없이 분별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면 분별이 안된다.
또 하나 분별해볼 것은 바울을 죽이고자 한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말은 듣고 좋다고 하니까 살짝 걱정되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볼로는 모두가 좋아하고 잘 가르치는데, 바울처럼 박해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 이런 성경 박사가 그 후에 고린도 교회를 떠나서 어떤 교회를 맡았다는 언급도 없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라면 너무 놀랄 일이다. 분명히 바울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바울은 분별해야 되는 것이다.
적용
-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합니까? 내 생각으로 판단합니까?
-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한다고 합니까, 어려워합니까?
- 나는 뒤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2.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사람이 아볼로인데, 분명히 아볼로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볼로 제자가 아닐까 그러면 살짝 근심이 되는 게 맞다.
그래서 근심이 되니 2절에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도 이런 기록이 사실 안 나온다.
늘 다른 곳에서는 회당을 찾고, 성경을 펼쳐 강론했다.그런데 이곳 에베소에서는 아볼로 제자일 것 같으면 얼마나 잘난 척을 또 하겠는가
그러니까 성령을 받았는지 먼저 묻는 말로 사역이 시작이 된다.너희가 누구 제자냐 너희 믿을 때 성령을 받았냐 그들이 대답한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바울의 근심이 맞은 것이다.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제자였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을 유심히 보니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이다.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이다.
명목 상 제자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제자가 아닌 것이다.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힘든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에베소가 힘든 곳이기 때문에, 오자마자 확인을 했다.
성령이 없이는 결국 에베소 같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다.그러면 에베소같은 사람이 누구인가? 돈 많고, 인물 좋고, 몸매 좋은 다 갖춘 내 남편, 아내, 자녀를 감당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들에게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들어오겠는가?도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저 사람, 에베소 같은 저 사람의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을 받으면서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마술사 시몬이 성령을 받고 싶어서 간절히 원했지만 받지 못했다.
성령을 돈으로 사려 했다가 책망을 받기까지 했다.돈으로 살 수도, 간절히 원해도 받는 것이 아니다.
헌금은 신앙고백이다. 이 성령은 오늘 본문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로 믿을 때에 받는 것이다.
여기서 믿을 때에라는 말은 어떤 조건이 아니다. 믿음이 조건이 되어서 성령을 받는다면 믿음조차 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말은 만일 너희가 믿었다면 성령을 받았을텐데 왜 너희 모습에 성령이 나타나지 않느냐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교회와 탁월한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성령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 어떤 제자로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했는데,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그 한 말씀을 믿는 것이다.
큐티할 때 오늘 한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이는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 이 한 말씀을 믿고, 붙들고, 적용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시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에베소보다 더 악한 시대이다. 어떤 제자로 성령을 모른 체 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이 이것을 간파했다.
험한 전도여행을 다니며 온갖 수모와 핍박을 당했다.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아볼로를 분별했다. 그리고 1절에 어떤 제자도 분별했다. 교회를 하거나 양육을 하거나 회사를 하거나 하려면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렇게 분별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적용
ampndash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습니까?
- 지금 나에게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입니까?
-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맞다고 말하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내가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3.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하니까 바울의 근심이 맞았던 것이다.
삶의 능력도, 적용도, 자신의 수치를 드러냄도 없는어떤 제자들을 향해 바울이 또 묻는다.
그러면 '너희는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양육한 것처럼 바울은 이 어떤 제자들을 그래도 기다리면서 양육을 해가고 있다.
이렇게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된다.
정답을 들이밀지 말고, 목장에서도 그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자꾸 해줘야 한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다시 질문한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그러니 제자들이 자신있게 '요한의 세례요' 라고 한다.
아볼로도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굉장히 자랑했는데, 그 대답을 듣고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어떤 말을 했는지 그들이 믿는 요한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베푼다.
요한의 메세지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배하니까 아직 오지 않은 소리, 예비하는 자의 소리라면 예수님의 설교는 이미 하나님 나라 자체가 임한 메세지이다.
그 능력 차이는 예비하는 사람과 임한 사람 비교할 수가 없다.
세례요한의 설교가 듣기에 의롭고 멋있어서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많아도, 속사람의 죄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이 더러운 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그래서 도전이 되고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변해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인 것입니다. 불은 심판이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이다.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어 심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개합니다.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깨달아 집니다.' 하는 것이 예수님의 세례인 것이다.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어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인 것이다.
환경이 아니라 불의 심판을 통해 구원을 하나님의상급으로 받았기 때문에 환경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수의 세례, 이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그러므로 이제 현 시국에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가정이라면 그것을 보며 끝없이 애통하며 눈물을 흘려야 한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저 영혼까지도 함께 불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이 심판 속에 나를 살린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면서 갈급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예수의 세례이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에게는 '내가 열심히 살았고, 용서함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것이 요한의 세례인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불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임이 자신임을 절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이다.
이런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지 않으면 어떻게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내 죄가 깨달아지니까, 그런데 아무리 고난이 와도 내 죄가 안 깨달아지는 사람은 요한의 세례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닌 그 세례 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적용
ampndash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요?
- 사건 앞에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인정됩니까?
- 내가 왜 이런일을 당하나 지금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 물세례도 안 받으신 분들은 왜 안받으시는지요?
4.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바울의 안수 직후 사람들은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성경에서 방언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선교적 의미의 바벨탑 사건의 저주를 풀어주신 외국어,
또 하나는 개인의 신앙에 확신을 주기 위하여 은사로 주어진 방언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 이 두 가지를 각각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기적 같은 은사에만 관심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그런 가시적인 능력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낮 에너지나 자원이 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이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언은 소통의 능력, 공감력이다. 우리 영혼이 타락해서 주님과 소통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 마음을,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모든 고난과 고통이 이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허락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라고, 소통할 수 없었던 내가 우리 주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게 방언이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이다. 예언은 감화력인데, 내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해서 이곳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이다.
바울을 통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변화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로가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이유를 해석해서 나와 같은 고난에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내가 깨달은 이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방언과 예언도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영혼 구원을 길로 놓고 가게 되는 것이 성령의 임하심의 목적이다.
아무리 무너졌던 공동체라도 우리 성령이 임하시면 회복시켜주신다.
적용
ampndash 소통하는 방언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을 하시나요?
-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12공동체 목장에 가는것임을 아시나요?
- 나는 무엇이 회복되고 싶나요?
기도제목
A
1. 회사 질서에 순종해서 잘 가기!
2. 주님이 계심을 항상 보여주시는데 정말 믿음으로 살기!
3. 맡은바 사명, 회사일 다 잘해내길!
4. 신교제, 신결혼(쾌락이 아닌 거룩한 가정을 꾸릴 동역자 보내주시길)
5. 가정구원!
B
1.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2. 사업의 번창보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업될수 있도록
C
1. 회사생활 잘 감당하길
2. 신교제 신결혼
3.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쓰기
D
1. 자존감 높이기
2. 주어진 시간 소중히 쓰기
3. 비교하지 않기
4. 항상 내가 여기 있음을 하나님께 외치기
E
1. 체력관리
2. 말씀으로 하루 시작하기
3. 가정 영혼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