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임하심
본문: 사도행전 19:1-7
설교: 김양재 목사님
우리가 땅에 씨앗을 뿌리면 자라나 생명을 맺습니다. 과학자들이 씨앗의 색깔과 크기, 모양, 수분, 단백질, 무기질 등의 성분을 100% 똑같이 만들어서 땅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주었더니 썩어서 악취만 낼 뿐이었습니다.아무리 양육을 해도, 조건을 똑같이 해도 생명이 자라질 않습니다. 생명은 좁쌀만 한 것 하나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밝혀낼 수 없는 비밀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그 은혜는 가르친다고 되지 않습니다. 제자양육과 성령을 받는 것-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시간적 순서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의 제자양육은 그 출발이 성령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땅에서 개미처럼 수고하고 썩어질 뿐입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에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것은 이제 본토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님이었고, 이제 이방선교를 하면서 또 가장 중요한 거점 도시 에베소에서 성령 강림이 일어나야 합니다. 18장 마지막에 제자양육과 이어지는 본문이 오늘 본문인데, 제자양육은 성령의 임하심이 절대적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은 또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1.(성령의 임하심은)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18장 마지막에 아볼로가 천막 만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성령의 제자양육을 받고 파송 받아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게 되었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 아볼로가 성령의 격려를 받으며 고린도에 가서 힘 있게 전도 합니다.그 사이 바울이 갈라디아와 부루기아 그 험준한 지방의 교회들을 심방한 후에 지금 에베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장 1절에 맨 처음을 아볼로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이 아볼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원래 바울은 아시아 에베소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막아서 마게도니아로 갔습니다. 그 때 분별했던 것이 거기가 베드로의 나와바리다 그래서 안갔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마지막에잠시 들려서 회당에서 강론을 했더니, 사람들이 다 붙잡았지만, 또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에베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드시 전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찾고 분별해서 또 성령의 작별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에베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여기로 왔을까요?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했는데, 바울은 아볼로에 대해서 살짝 근심을 한 것 같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대단한 출신이고 바울이 따라갈 수 없는 출신이고, 너무 탁월합니다. 히브리서가 저자 미상이긴 하지만, 루터 시대 이후에는 아볼로 저자설이 아주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쓸 정도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바울과는 완전히 문체가 다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주석 뿐만 아니라 특별히 레위기의 주석이라고 하고 구약 전체를 통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볼로의 이름을 안 남겨주셨습니다. 하다못해 베드로전서는 마가가 썼는데 베드로전서라고 붙여졌고,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이 썼는데도 디모데 이름을 남겨 주셨는데,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친 후에 떠나서 아볼로를 후임으로 보냈는데, 가서 얼마나 말을 잘하고 잘 가르쳤는지 고린도 교인들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울보고 졸하다고, 바울보고 약하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잘 가르쳤는데 고린도교회에 파당을 가지고 왔습니다. 파당이 생기니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에 '나는 심었고, 바울은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는 이는 하나님인데, 왜 비교를 하냐' 라고 썼는데, 결국바울은 아볼로를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 그릇처럼 다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넘기는 동역을 했음에도 아볼로의 이름이 바울의 로마서 16장 마지막 문안하는 그 사람들 가운데 이름이 안 나옵니다. 이렇게 똑똑하고 기독론과 구속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바울과 한 마음이 안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분명히 브리스길라에게 성령의 제자양육을 받았는데, 은혜가 있는데, 아볼로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고, 넘어가지 못하는 본인의 지식 때문에 거기까지인 사람도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볼로는 히브리서 하나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땅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이 히브리서를 너무 잘 쓴 것으로 봐서 바울이 무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이 때가 에베소에 올 때일까요? 에베소가 황금어장이긴 하지만, 항상 바울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십자가와 지혜의 타이밍을 분별합니다.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치다 보니까 고린도하고 에베소가 비슷하고 돈 많고 교만하고 곳곳에서 모여드는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양육의 시간을 내니까 은혜가 많았습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것 맞습니다. 의로운 아덴에서는 열매가 없기에 금세 떠났습니다. 그러니 에베소에도 바른 복음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바울이오랫동안 양육한 후에 후임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떠난 '에베소는 아볼로가 예수의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더라' 라고 했습니다.그러니까 근심이 되어서 아볼로가 떠나고 갈라디아 지방을 다니는 중에 그렇게 오래 못 갔던 고향 다소도 못 가보고 급히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또 분별한 것은 바울은 가고 싶은 에베소가 베도로 사도 구역이라고 안 갔었는데, 한 참 시간이 지나도 에베소가 전도가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볼로가 전할 때에도 사람들이 아볼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남의 터 위에 건축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 안 갔습니다. 모든 목자들이 이 원리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은 서로 만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볼로가 인도함을 받고 추천서를 써줘서 격려해서 고린도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가 아볼로가 떠나고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서, 이 때가 이제 전할 때라고, 이 때가 떠날 때라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누구 마음도안 다치며 온 것입니다. 에베소가 너무 좋은 거점지라는 것을 알고도. 에베소가 굉장한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알고도 자기가 여기를 꼭 가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분별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에베소 모두 성령의 작별로 윈윈하게 하셨습니다. 황금어장이라고 내가 무조건 무턱대고 가는 것이 선교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끝없이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면 분별이 안됩니다.
또 하나 분별해볼 것은 바울을 죽이고자 한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말은 듣고 좋다고 하니까 살짝 걱정되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아볼로는 모두가 좋아하고 잘 가르치는데, 바울처럼 박해 받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경 박사가 그 후에 고린도 교회를 떠나서 어떤 교회를 맡았다는 언급도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라면 너무 놀랄 일입니다. 분명히 바울을 넘어서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아볼로는 하바드, 바울은 서울대학 정도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바울은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아볼로의 서론, 본론, 결론을 아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 바울의 정확한 분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성령이 임하신 구원의 분별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순간의 나의 판단이, 내 생각의 판단이 영혼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적용]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합니까, 내 생각으로 판단합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합니까, 어려워합니까? 나는 뒤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2.(성령의 임하심은)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 가운데 1절에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늘 정관사 the가 붙습니다.그런데 여기에 the가 안 붙은 걸로 봐서 이 어떤 제자들은 베드로의 구역에 있었던 제자였나 아볼로의 제자였나 누구의 제자인지 모르는 제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났다는 말은 찾았다는 말인데, 우연히 마주친 만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반기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찾아가서 자기가 의도적으로 만난 어떤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당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사람이 아볼로인데, 분명히 아볼로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볼로 제자가 아닐까... 그러면 살짝 근심이 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근심이 되니 2절에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도 이런 기록이 사실 안 나옵니다. 늘 다른 곳에서는 회당을 찾고, 성경을 펼쳐 강론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에베소에서는 아볼로 제자일 것 같으면 얼마나 잘난 척을 또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성령을 받았는지 먼저 묻는 말로 사역이 시작이 됩니다. 너희가 누구 제자냐.. 너희 믿을 때 성령을 받았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바울의 근심이 맞은 것입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을 유심히 보니 성령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명목 상 제자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힘든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에베소가 힘든 곳이기 때문에, 오자마자 확인을 했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결국 에베소 같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에베소같은 사람이 누구인가요? 돈 많고, 인물 좋고, 몸매 좋은 다 갖춘 내 남편, 아내, 자녀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들어오겠습니까?도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저 사람, 에베소 같은 저 사람의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을 받으면서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마술사 시몬이 성령을 받고 싶어서 간절히 원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돈으로 사려 했다가 책망을 받기 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헌금 내면 성령 받나요? 내가 열심히 섬기면 성령 받나요? 돈으로 살 수도, 간절히 원해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신앙고백입니다. 이 성령은 오늘 본문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로 믿을 때에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을 때에라는 말은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믿음이 조건이 되어서 성령을 받는다면 믿음 조차 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믿을 때 라는 말은 부정 과거 분사로 주동사의 동작과 동시적 동작을 가르키는 용법입니다. 즉 이 말은 만일 너희가 믿었다면 성령을 받았을 텐데.. 왜 너희 모습에 성령이 나타나지 않느냐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교회와 탁월한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성령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 어떤 제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습니까?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했는데,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그 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큐티할 때 오늘 한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이는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습니다. 이 한 말씀을 믿고, 붙들고, 적용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에베소보다 더 악한 시대입니다. 어떤 제자로 성령을 모른 체 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이 이것을 간파했습니다. 험한 전도여행을 다니며 온갖 수모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 때문에 아볼로를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1절에 어떤 제자도 분별했습니다. 교회를 하거나 양육을 하거나 회사를 하거나 하려면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렇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예수 믿는 제자로서, 성도로서 무서운 열심 뒤에 감춰진 그 큰 빈자리, 영적 공허함을 보았습니다.그래서 에베소에 와서 어떤 도시에서도 던져지지 않았던 첫 질문을 던진 겁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실전적인 질문이고, 그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쉽게 말하면 목사에게 '구원은 받으셨어요?' 라고 묻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질문입니다.
[적용]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습니까? 지금 나에게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입니까?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맞다고 말하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내가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3.(성령의 임하심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하니까 바울의 근심이 맞았던 것입니다. 삶의 능력도, 적용도, 자신의 수치를 드러냄도 없는어떤 제자들을 향해 바울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양육한 것처럼 바울은 이 어떤 제자들을 그래도 기다리면서 양육을 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됩니다. 정답을 들이밀지 말고, 목장에서도 그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자꾸 해줘야 합니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빛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질문합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그러니 제자들이 자신있게 '요한의 세례요' 라고 합니다. 아볼로도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랑했는데, 그 대답을 듣고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어떤 말을 했는지 그들이 믿는 요한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요한의 메세지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배하니까 아직 오지 않은 소리, 예비하는 자의 소리라면 예수님의 설교는 이미 하나님 나라 자체가 임한 메세지입니다. 그 능력 차이는 예비 하는 사람과 임한 사람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설교가 듣기에 의롭고 멋있어서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많아도, 속사람의 죄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이 더러운 내 속을 찔러 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그래서 도전이 되고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인 것입니다. 불은 심판입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어 심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합니다.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깨달아 집니다.' 하는 것이 예수님의 세례인 것입니다.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어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인 것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불의 심판을 통해 구원을 하나님의상급으로 받았기 때문에 환경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의 세례, 이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그러므로 현 시국에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가정이라면 그것을 보며 끝없이 애통하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저 영혼까지도 함께 불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이 심판 속에 나를 살린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불 붙듯 일어나면서 갈급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예수의 세례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에게는 '내가 열심히 살았고, 용서함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것이 요한의 세례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불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임이 자신임을 절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는 것입니다.이 땅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런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지 않으면 어떻게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그래서 내 죄가 깨달아지니까, 그런데 아무리 고난이 와도 내 죄가 안 깨달아지는 사람은 요한의 세례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닌 그 세례 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세례란 정확한 복음, 예수님을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예수님을 정확하게 다시 설명하고, 복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이 수없이 강론했던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다시 사심과 승천하시며 이렇게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이것보다 정확한 성령 세례가 없습니다.세례란 죽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제자인 이유는 아볼로의 가르침이기 보다 아볼로도 어떤 제자도 그들이 지는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던져버리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다 지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입니다.물세례, 성령세례는 동시에 올 수도 있고, 순서가 뒤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세례를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이 가르친 것은 정확한 복음입니다.
[적용]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요? 사건 앞에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인정됩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지금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물세례도 안 받으신 분들은 왜 안 받으시는지요?
4.(성령의 임하심으로)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바울의 안수 직후 사람들은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시제가 모두 미완료 과거형(계속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방언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선교적 의미의 바벨탑 사건의 저주를 풀어주신 외국어, 또 하나는 개인의 신앙에 확신을 주기 위하여 은사로 주어진 방언-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 이 두 가지를 각각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기적 같은 은사에만 관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시적인 능력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낮 에너지나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이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소통의 능력, 공감력입니다. 우리 영혼이 타락해서 주님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 마음을,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모든 고난과 고통이 이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허락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라고, 소통할 수 없었던 내가 우리 주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게 방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예 자는 미리 예자가 아니라 맡길 예, 말씀 언,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습니다. 즉 예언은 감화력인데, 내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해서 이곳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바울을 통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변화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로가 변화되는 것이 예언입니다.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이유를 해석해서 나와 같은 고난에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이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언입니다. 방언과 예언도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영혼 구원을 길로 놓고 가게 되는 것이 성령의 임하심의 목적입니다.
아무리 무너졌던 공동체라도 우리 성령이 임하시면 회복 시킵니다. 말씀을 맡은 공동체가 목장입니다. 12는 마지막 우리가 천국에 갈 때도 천국을 표현하는 숫자입니다. 천국문이 12문입니다. 그 문에 12보석, 12천사가 있고, 생명나무 강가에 12열매가 맺힙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모이는 것은 다 12숫자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온전한 회복의 공동체입니다.
[적용] 소통하는 방언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을 하시나요?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12공동체 목장에 가는 것임을 아시나요? 나는 무엇이 회복되고 싶나요?
대면 목장나눔
권희경:
-학생들 생활기록부는 아직 쓰고 있는 중이다.ㅠㅠ
-이번 수련회가 너무 좋았다. 다 나눌 수 있었다. 요즘에 나눔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틀 날 들어가서 나눔하며 펑펑 울었다. 여기서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쓰지 않고 나누고 싶은 것을 모두 나눴다.나누고 나니 마음에 자유함이 생겨 감사했다.
-오늘 설교에 나온 자매 이야기를다시 들으니 공감 되는 부분도 많았다.
최혜신:
-오늘 집에서 제사가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종손이시고 여전히 제사를 드리려 하시고,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그나마 식구들이 교회를 다니니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를 해주신다. 오빠는 교회에서 결혼하고 나니, 이런 부분을 강력하게 끊어 가려는 것이 있어서 아버지가 실망이 크시다.
-앞으로 연애 하는 사람은 그 전에 연애 한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요즘은 내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원래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건 연애에서 또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이상 그런 똑같은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였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도 내가 불안감이 많고, 내가 걱정이 많이 되면 어차피 그 실수는 반복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좀 더 멀쩡하고,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람은 단점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그 사람의 단점을 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이번 수련회 조원들이 모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위로를 많이 해줬다면, 이제는 완전한 구원의 확신으로 말해주고, 십자가 앞에서 처절한 죄인임을 확신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아 내가 요한의 세례만 알아서... 회개하라 라고만 했구나... 회개를 했고, 그 조원들을 놓고 기도하면서 나로 인해 상처 받은 게 있다면 하나님이 상처를 덮어주시길 바란다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부분들이성령의 확신을 받도록 기도를 했다. 바울 같은 분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에 그래서 처음에는 감사를 많이 하다가 오히려 큐티하면서 회개를 많이 하게 됐다. 회개를 하니 아버지가 오셨다. ㅠㅠ ㅎㅎ
문에스더:
-이제 국제학교가 개학을 해서 수업준비를 해야한다. ㅠㅠㅠ 이렇게 셋이 모이니 기독교 교사 모임 같다. ㅎㅎ
-연애를 섣불리 시작하기 보다 공동체에서 알아가면서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주에 과외 어머님께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사람을소개 받았는데, 마지막에 헤어질 때 교회를 다녀야 하고, 스스로가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정리를 했다. 그분은 돈도 잘 벌고, 잘 살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는 환경이 아직 아니신 것 같다.
-자매나 형제에게 공개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수련회 조모임 때 처음 고백을 했고 내 안에 그것을 고백하는 게 어렵지 않아서, 내가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완전히 회개가 되었구나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대면 목장은 은희 공연 보러 갈 때 함께 합시다~
기도제목:
권희경
1. 내일 1학년 2학기 첫수업인데 학교사정으로 갑자기 담당반이 몇개 바뀌고 반반씩 2반을 묶어 수업하게 돼서 조편성도 다시 해야하는 상황. 애들도 당황하고 짜증날수 있는데 평안하게 받아들일수 있도록, 3학년은 수능이 얼마 안남아 주로 자습시킬텐데 남은 학기 어떻게 끌고갈지 걱정. 수업 준비에 지혜 주셔서 학기 시작 잘 할 수 있도록
2. 내일 1학년이 학생회장선거 투표를 하는데 준비한 영상 틀고 진행하게됐는데 트러블 없이 개표와 발표까지 학생들과 협력하여 마무리할수 있길. 뒷말 나올까봐 두려움이 있음 ㅠ
3. 대학원 생각이 있지만 아직 막연한데 영어 시험(9/11) 신청해 둔 상황. 최선 다해 보고 쓰임받을 수 있도록
4. 부동산 문제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기를, 도움의 손길 주시길 소망
5. 매일 큐티하며 말씀 적용하는 연습하기
최혜신
1. 성령의 임하심이 있는 임용 공부 기간이 되길
2. 1차 시험날까지 코로나로부터 보호해주시길
3. 목장 기도제목보며 기도하도록
4. 아빠 구원받도록
5. 신교제 및 신결혼을 위해 사람을 판단이 아닌 구원의 분별을 하며, 사람을 귀히 볼 수 있도록
6. 신교제할 수 있도록
문에스더
1. 내일 국제학교 오티가 있는데, 오늘 잘 완성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필요한 플랜을 짤 수 있도록 지혜주시길
2. 아버지께서 일 때문에 24일에 오시는데, 큐페간증으로 어색하지만 하루 함께 잘 보낼 수 있길
3. 그룹수업 광고 지혜 주시길
김은희
1. 얼마 남지 않은 공연 남은기간동안 잘 준비해서 무사히 오픈하고 공연하는 긴 여정동안 사고없이 다치는사람 없이 나아갈수 있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세요.
2. 아빠의 우울증이 이전보단 회복이 되었는데 당장 하는 일이 없다보니 계속 누워만 있는 중입니다.. 주로 유튜브만 계속 보는데 그 와중에 말씀이 들리는 은혜가 임해서 좀더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될수 있도록,, 아빠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3. 남자친구 구원받을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 만날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