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죄수 (사도행전16:25-34) _김양재 목사님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성경은 구원의 책이기 때문에 개인 구원이 사회 구원으로 가게하고, 성경이 나를 읽고 가게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자는 나라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리잖아요. 그래서 청년부 수련회 주제인 'All Here' 중, 금요일 내가 여기 있습니다(I am Here), 토요일 하나님이 여기 계십니다(God is Here)에 이어 주일설교는 성령의 죄수가 되어서 우리가 모두 여기 있습니다(We are All Here)에 대해서 본문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오늘 <성령의 죄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1. 성령의 죄수는 잘 듣습니다. (25-26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굳게 닫힌 감옥문이 바울과 실라의 몸을 막고 있는 한밤중이라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오늘 이 죄수들이 들었다고 해요. 들은 이가 참 중요한데, 누가 들었다고요?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죠. 귀신들린 여종 고쳐주고, 매 맞고 착고에 갇히고, 살점이 뜯겨져 나가도 같은 방의 죄수들이 듣는 데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죠. 이건 성령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바울이 기도하고 찬송해도 죄수들이 아니면 그것이 본질적으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저는 늘 성가대의 찬양과 이 대표기도의 기도를 들으며 컸지요. 저는 심지어 여학교 때 종교부장까지 하면서 제가 반주를 하고 대표기도도 했어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들리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빌립보 감옥에는 이 육적인 죄인들이 모여 있으니까 낮아진 마음으로 듣는 것이 도리어 쉬울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간증을 해도 오픈할 수 있는 죄는 쉽습니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없는 오픈들이 있어요. 집집마다 유대인 같은 의인 식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오픈 못하는 얘기도 있어요. 바울도 식구들 얘기는 못하더라고요. 아덴 같이 갖춘 집의 구원은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들리지가 않기 때문이에요. 참 고난도 가지가지인데요. 그래서 오히려 죄수들이 이 바울의 말을 들어줬었을 것 같으니까 그 환경은 아주 그냥 하나님이 세팅하신 환경인 거예요.
자, 우리 청년들 때문에 결혼에 대해서 한번 다시 생각해 봤어요. '신결혼하라'는 말은 '죄인들의 공동체를 꾸리라'는 것이죠. 결혼의 조건에서 죄인들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에요. 그 다음에는 죄인과 의인의 만남이 있겠죠. 이 만남은 힘들지만 그 용광로를 통해서 소망을 이룰 확률이 반쯤 있겠죠. 그런데 의인들끼리 만나면 이 개구리가 처음에는 뜨뜻한 비커에 기분 좋게 들어갔다가 물이 끓는지도 모르게 죽어가는 것처럼, 행복을 부르짖다가 구원을 놓치니까 의인들의 만남은 최악의 만남인 것입니다.
(1) 서로 죄인들의 만남
죄수들의 만남이 이 세상에서는 감옥이기에 결혼은 감옥 생활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같이 죄인이면은 이 감옥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감당을 하죠. 서로 선한 것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싸워도 '나 같은 죄인의 은혜로' 이 돌아가는 태도가 서로 죄인들의 만남이에요.
(2) 죄인과 의인의 만남
한쪽은 죄인이고, 한쪽은 의인이면 죄인 쪽에서 너무 많이 기다려야 되요. 감옥에까지 와서도 '내가 죄 없다'고 부르짖는 죄수가 그렇게 많대요. 교회 다녀서 다들 입으로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기도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전부 다 '나는 죄 없다'가 대부분이죠. 그러면서 다 속았다고 합니다. 가치관이 한쪽은 죄인, 다른 쪽은 의인이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영적 전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옥에 가두고 발을 차꼬에 채우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빌립보 감옥에서 영적 죄인인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하니까, 죄수들이 지금 들었어요. 왜 듣나요? 갇혀 있으니까 듣죠. 식구들도 망하고 갇혀 있을 때는 이 기도와 찬송을 들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환경이 겸손한 것만 겸손한 것이라고 했어요. 사람한테 자꾸 점수를 주지 마세요. 그런데 영적 죄인들이 성도들이잖아요. 영적 죄인인 성도들은 감옥에 갇혀서 죄를 모르는 진짜 죄인들에게 기도와 찬송을 들려줘야되는 사명이 있어요. 적어도 가정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릴 때가 오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있고 권세가 있으면 '내가 왜 참아!' 하고 다 뛰쳐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알려주는 이 성경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지킬 수가 없어요. 지금 이혼율 최고인데 망해도, 외도를 해도, 병들어도 같이 감옥에 있어야 하는 것이 죄인들에게 주신 은혜겠죠. 물론 이것을 율법으로 지키면 그건 더 무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은혜로 살아도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 땅은 사단의 나라이기에 100%에서 시작한 사단의 나라는 점점 줄어들고, 내가 가야할 하나님 나라는 0.1%에서 시작해 점점 커지는 겁니다. 그렇게 내가 기도와 찬송을 하며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아버지!'를 부르짖으면, 내게서 죄수의 모습이 보이는 게 이게 죄인의 은혜예요. 돈 없고, 갈 데도 없으면 이 기도와 찬송을 듣게 되지요. 그래서 망할 때 도리어 말씀이 들릴 때라고 기뻐하는 것이에요.
근데 여러분, 이 땅은 어쩔 수 없는 감옥이에요. 감옥에서 잘 살면 얼마나 잘 살겠어요. 감옥에서 가장 잘 사는 것은 기도와 찬송하는 것인데, 거기서 힘들다고 탈옥을 하면, 그 기도와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잘 믿는 배우자를 버리고 탈출을 하면 이 감옥에서 천상의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망할 때가 구원의 때임을 아는 성도는구원을 위해서 옥중 찬송을 늘 해야해요. 그렇게 성령의 죄수가 되어 하나님을 찬송한 끝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날이 갑자기 옵니다. 늘 기다리는 것 같지만 갑자기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이는 이 사건 과정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어떻게 움직여서 구원의 길을 내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옥에서 잘 기다리면서 바울같이 자기 죄를 더 보며 '내가 옥에 있는 것은 스데반을 죽인 내 삶의 결론'이라고 실라와 나누었겠죠. 그러니까 갑자기 움직이고, 열리고, 벗어지게 된 것이에요. 영적 시각이 생기게 됩니다.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게 됩니다.
(3)둘 다 의인의 만남
그러나 둘 다 의인이면, 최악의 만남입니다. 기도와 찬송이 들리지가 않아요. 육이 질그릇이 아니고 금그릇이기 때문에 깨어지지를 않아요. 질그릇에 보배를 가져야 깨어져서 내 속의 보배가 보일 텐데. 남녀 둘 다 의인인 금그릇이기 때문에 영원히 안 깨어져서 안 들리다가 하루살이의 행복을 불안하게 맛보면서 영원한 심판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산책하다가 개미가 죽은 지렁이를 개미집으로 가지고 쏙 들어가는 걸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 개미 한 번 밟으면 끝이잖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고 그렇게 부지런히 열심히 의롭게 먹을 것을 모으는 모습이 세상 의인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세상의 의인들은 그걸 모르고 이렇게 듣지를 않아요. 또한,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의인들은 유대인처럼 이 감옥을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에는 여러 군상이 있잖아요. 로마의 고위 관료부터 잡범까지 지진이 오면 그야말로 지진으로 죽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죠.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환경이 다르겠지만 결국 죄수가 아닌 자들의 공동체는 그냥 사건 하나 터지면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뛰쳐나가니까 찬송을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죽음 앞에서 별 인생이 없습니다.
Q. 내 인생의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나요, 뛰쳐나갔나요? 여러분의 결혼생활은 죄인들의 만남인가요, 죄인과 의인의 만남인가요, 의인들의 만남인가요?
(청년들은) 죄인과의 만남을 기다리나요, 의인과의 만남을 기다리나요? 죄인과 만나려면 먼저 자신부터 죄인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죠. 죄인들의 겉모습이 다 지질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에 로또예요. 그 질그릇은 겉은 지질해 보이나 속에 보배를 가지고 있고 또 깨어지기 쉬워요. 그러니까 청년들은 진짜 죄인 만나기 위해 기도하세요. 성령의 죄수는 첫째는 잘 들어요. 둘째는 잘 물어요.
2. 성령의 죄수는 잘 묻습니다. (27-29절)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옥터가 열리는 것은 멸망의 사건이 아닌데 의인들은 다 조그만 사건이 나면 그게 멸망의 사건이라고 그러잖아요. 이게 구원의 사건인데 드러난 수치 때문에 자신을 직면하기가 힘들어요. 우리의 열린 오픈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옥터가 열렸는데 간수에게는 죽을 일이 생겼어요. 늘 성도들이 간증을 하지만, 그 식구들 중에서는 그 간증이 가문의 수치라고 말하는 식구들도 너무 많아요. 똑같이 감옥에 있어도 이 질그릇의 낮은 입장인 죄수는 기도와 찬송을 듣고 매어진 것이 풀리지만, 거기서 조금 높은 놋그릇 간수는 자기가 질그릇보다 조금 높다고 감시는 했으나, 벽 하나 사이로 기도와 찬송을 듣지 않고 잤지요. 우리들의 집에도 벽 하나 사이로 평생 안 듣는 부모.자녀.식구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옥문이 열려도 기쁨에 동참하기는커녕 살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가 안 됩니다. 그래서 죄인끼리 하는 믿음의 결혼이 너무 중요합니다. 의인은 당장 눈앞에 지진과 열린 문만 보고 할 수 있는 것이 자결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요.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이 전혀 안 보입니다. 자결은 100% 죄인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의인인데 억울해서 하는 게 자결이에요.
지진의 사건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줄 뿐 아니라 자고있던 간수도 깨우는 사건이에요. 바울의 목적은 자유케 되어서 이 옥을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 자유로 스스로 갇힌 자가 되고 종이 되어 이 사건을 해석하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자결하려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여 복음의 종이 되는 것이죠. 자유를 부르짖다가 자유를 반납했어요. 누구를 위해서요? 바울을 가두고 지킨 간수의 구원을 위해서요! 이게 놀라운 기적 아니에요? 세상에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하는 적용을 길로 놓아야 성령의 죄수인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고 마음이 열리니 옥문이 열렸는데... 진짜 옆에 있던 그 죄수들이 은혜를 받고 아무도 안 나갔다는 거예요. 아무도 안 나갔다는 거예요. 한 명이라도 나갔으면 간수가 죽었죠. 자기를 차꼬에 가두고 든든히 지켰던 그 간수를 위해서 안 나왔어요. 자기가 양육한 모든 제자 동무 죄수들이 다 안 나갔어요. 죄수들이 옥에서 나가기를 얼마나 소원했겠습니까? 그런데 옥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안 움직인 것은, 매를 맞고 성령의 찬송을 한 바울 사도의 결론인 거예요. 하나님이 인정하심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간수는 이런 고통을 물을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아냐고요? 지금 간수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부하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죄수들이 달아난 사건에 대해서 의논하고, 조치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 아니겠어요? 그런데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다 뒤집어쓰고 자결하려고 해요. 왜 그럴까요? 그게 더 편한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혼자 속으로 삭히고,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주 의로운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외로운 사람의 전형이에요. 그러니 삶의 무게를 홀로 지려했고, 결국 의인의 그 끝은 자살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였어도, 실라와 둘이 있었어도 죄인 공동체이기에 세계적인 대안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니 옥문이 열리고 또 수많은 사람을 구원까지 했잖아요. 제가 갇혀 있었어도 죄인이 되고부터는 나가지 못해도 제겐 물을 공동체가 있었어요. 그런데 의인들은 이 세상 권력을 다 거머쥐고도 만나는 사람들이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삶의 낭떠러지에서 한 사람도 물을 사람이 없고, 답해 줄 사람이 없고, 구원해 줄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을 이 시대에 너무나 안타깝게 지금 보고 있어요. 누가 책임집니까? 믿는 우리가 책임져야지!
Q. 여러분은 간수 공동체인가요? 바울 공동체인가요? 부부(가족)라도 간수 공동체라 자살을 생각하는 부부나 공동체가 허다합니다.
3. 성령의 죄수는 잘 듣고 잘 물으면, 저절로 우리가 됩니다. We are all here. (28-34절)
저절로 우리가 되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바울의 찬송, 기도를 듣고 모두 진짜 죄수가 되어서! 자발적인 공동체가 되어서 간수를 살렸잖아요. 그렇죠?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자결하려는 순간 큰 지진이 옥터를 움직인 것처럼 바울의 큰 소리가 간수를 움직였습니다. 옥터가 움직여 옥문이 열렸듯이 마음이 움직인 간수는 몸을 움직여 바울이 있는 깊은 옥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간수가 무슨 소리를 들었죠? '우리가 다 여기 있다! We are all here!' 이거 너무 기가 막히지 않아요? 자기가 그렇게 무시했던 죄수들인데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정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죄수인데 이 죄수들이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여러분들, 목장에서 무슨 일이 났는데 이렇게 다 목장 식구들이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 우리가 집사님 편이에요.'하며 성령의 죄수들이 되어 구원 때문에 움직이질 않았어요. 간수가 이 소리를 들으니 그냥 알 수 없는 무서움에 떨린 거예요. 마치 지금까지 짊어졌던 삶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는 것처럼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어요. 바울 공동체의 위력입니다. 그러고 어떻게 합니까?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상관의 명령대로 깊은 옥에 차꼬까지 채워 굳게 지키던 죄수 바울과 신라를 이제 극존칭으로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또 한 명의 성령의 죄수인 간수에게 내 인생의 구원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지체를 주십니다. 말씀으로 나눌 수 있는 우리 공동체를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지금 인생이 꽉 막힌 것 같아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인생 최대의 질문도 거침없이 물을 수 있는 목장이 있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구원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장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We are here가 있잖아요. 그 목장을 향해 뛰어 들어가야 돼요. 그것이 성령의 열림을 경험하는 비결이에요. 바울의 대답은 질문만큼이나 간단했어요. 여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회개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아주 간단하게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성령의 죄수는 서로서로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을 얻어냅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의 외침인 '나 좀 살려주세요.' 간수는 인생의 절망에 빠져서 구원을 열망했죠. I am here. God is here가 이제 We are here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주님을 만난 사람이 그 We are here 이게 안되는 사람은 아직 자신이 죄수인 거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목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매 맞고 옥에 갇혀서 찬송부르는 얘기를 듣기도 싫다가 사건이 생겼을 때, 내가 그렇게 무시했던 그들이 우리가 다 여기 있다!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니까 이 간수에게도 물을 수 있는 공동체인 우리가 생긴 순간인 거예요. 우리가 생겼어요.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행전에 한 번 나오는 큰 기쁨이 빌립보 간수의 집안에 허락되었어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한 공동체인 우리가 저절로 되어서 관계가 열리고 집이 열려 성령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됩니다.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를 섬길 때 특별히 주시는 큰 기쁨은요.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마다 이 땅에 가장 큰 섬김을 위해 오신,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고. 그러기에 섬김을 받는 자, 섬기는 자가 다 함께 예수님으로 인해 함께 기뻐하는 거예요. 창조주 예수님이 나의 섬김 가운데 나타나는 거예요. 죄수들의 인생에는 그게 나타나요. 따라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죄수 공동체는 우리가 되어서 모든 것이 열리고, 벗어지고, 움직이게 되는 성령의 열림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Q. 여러분의 목장은 우리가 여기 있다고,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목장입니까?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데 어떻게 옥에서 매를 맞을 수 있느냐고, 이거는 팩트야. 진실이야 하면서 그들을 고발하기 위해서 묻습니까,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인 구원을 위해 묻습니까? '난 진실만 말해. 난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야. 나는 한 번 충성하는 사람한테는 계속 충성하는 거야.'.. 그러나 이 진실과 구원은 너무 다른 거예요. 진실과 구원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섬김이 큰 기쁨입니까, 성공이 큰 기쁨입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죄수는 잘 듣습니다. 그리고 잘 묻습니다. 저절로 우리가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열리게 됩니다. 어떻게 찬송하나요?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에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것이 죄수들의 찬양이에요.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십니다.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가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
우리의 공동체가 간수 공동체가 아니고, 바울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내 인생의 한밤중에 뛰쳐나가지 말고 찬송하게 해달라고. 정말 죄인이 되어서 잘 듣고 묻고 자발적으로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내 이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갇힌 자 되어 다른 사람 살리게 해달라고.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이 목장이 되어서 또 그 목장에 반응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성공이 아닌 섬김이 기쁨이 되게 해달라고.
건강가정기본법이 아직도 십만 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상정되지 않도록 낙태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기도해야 되요. 코로나 백신 수급이 잘 되도록. 아프간 함락이 눈앞에 왔는데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어 달라고 우리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죄수가 엄청난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로는 죄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 나라가 저에게 너무나도 얄팍하게 임해서 제 속에 사단에 속한 나라가 더 많음을 고백합니다. 늘 죄인과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겉으로는 망하고 찌질해 보이기에, 자꾸 의인과의 만남에 선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가셔야 하는 주님이 내 육을 무너지게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죄수의 입장에서 기도와 찬송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죄수가 너무 좋습니다. 죄수라도 주님 있는 그곳에만 간다면 감사합니다. 오늘 죄수들이 우리가 되어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외칠 때 한 사람도 안 나가는 것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뭉클했습니다. 이런 죄수가 되어서 다들 한 마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진정한 성령의 죄수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기도제목
공통:
아프칸 성도들과 국민,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아프칸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굳게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은실
1. 목장 식구들 모두 큐페때 받은 은혜 잘 누리고 다시 자기 자리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령의 죄수 잘 되길
2.목장 식구들에게 말씀이 뚫고 들어가 자신들의 삶이 해석되고 죄인임을 알고 배우자를 알아보고 신교제, 신결혼 하도록
3. 환경이 나아져도 말씀을 절대 놓지 않고 우선순위에 두고 말씀이 들리도록
4. 목사님 형부과 그 가정에 구속사의 가치관이 들어가고 목회자 세미나 꼭 참석할 수 있도록
이하눌
1. 가족 구원 위해서 , 예수님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2.진로에 있어서 돈이나 상황이 기준이 아닌, 사명 따라가서 순종하도록 , 큐티 말씀보면서, 진로와 모든 상황들이 해석되고 인도해주시도록
,성령의 죄수 공동체 함께하며 잘 붙어가는 은혜주시도록.. 일, 가정, 교회 섬길 수 있는 마음 주시도록..
3. 배우자 잘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신결혼 할 수 있는 준비되어지도록...
4. 개인 수업 가운데 그리고 어머님들과 소통에 지혜를 주시도록.. 학생들 축복해주시고 모두 예수님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5. 9월7일 백신을 맞는데 건강이상 없도록... 그 주 수업을 미리 스케쥴 잘 짜서 수업 잘 할 수 있도록.. 시간관리, 건강관리 잘 하도록..
천은영
1.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며 있어야할 자리와 경계 잘 지키도록
2. 내 안의 작별해야 할 것들과 잘 작별할 수 있도록(지기 싫은 마음, 옳고 그름의 내 기준, 각종 중독, 회피 등)
3. 목장식구들 영육 건강하고 모두 신결혼 할 수 있도록
4. 회사에서 맡겨진 역할에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시고, 윗질서 순종과 팀원들을 위하는 이타적 마음 주시기를
5. 엄마와 다시 연락을 하는데 긍휼한 마음 주시고 혈기부리지 않도록
6. 가족구원의 애통함 주시고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박진희
1.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듣고 적용하는 구조 안에 거하도록
2.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과 재능이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3. 성령으로 작별할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고 침묵해야할 때, 말해야 할 때를 알도록
4. 내 문제가 내 힘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성령께서 개입하시는 성령의 문제가 되도록
5. 성령의 효과적인 도움을 의지하고 길을 열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도록
6. 신교재 신결혼 할 수 있도록
김지혜
1. 가정과 공동체 사랑으로 섬기도록
2.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 삽화작업과 개인작업에 지혜와 영감 부어주시고, 진행과정 속에서 성령님의 제자로 양육해주시길
3. 가족건강과 구원위해 그리고 여동생부부의 마음을 살펴주시길 기도 부탁드려요.
*기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올해 봄 건강검진 중에 췌장쪽 소견이 있어서 추적검사를 하게 되었는데,결과가 좋아서 일 년 후에 의사선생님 뵙기로 했답니다.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영육의 성전관리 잘 할게요. 고마워요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