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주 예수의 은혜로 - 심한섭 목사님
사도행전 15:1~11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얻으며 구원 받은 자라는 확신 가짐과 동시에 여전히 되었다 함없는 인생 속에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계속되는 우리 인생의 구원 여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거룩하게 되어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여전히 구원의 길을 걸어 가야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일하러 교회 다닌 것이 아니라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자기 일처럼 헌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들교회였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찾아온 교회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경험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쓸모없는 나의 인생을 사람 살리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키시는 예수의 은혜인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살아난 흔적과 열매와 간증이 있었습니다. 구원을 목적으로 구속사 가치관으로 양육하시는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회개했지 상대방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은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움 섬김의 흔적과 생명의 간증을 나눈 우리들에게 아직도 양육이 필요함을 얘기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걸어가야할 성화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제자로서 양육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양육되어지고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고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양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1.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위와 율법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행위와 은혜를 이해할 때 순서가 중요합니다. 은혜가 먼저고 행위는 은혜 뒤에 따라옵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과 행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를 고백할 때 행위로 지은 죄를 생각하게 되고, 행위를 고치는 것에 집중합니다. 행위가 끊어지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말합니다.
행위가 변화되면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행위만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은혜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떠난 모든 것이 죄였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없이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행위가 변화 된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 설교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은혜 받은 것이 아니고 은혜 받은자이기 때문에 이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배우자 구원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는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할례 받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으면 할례 받은 자의 삶을 소망하게 됩니다.
무엇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 부르고 세상은 합리적이라 합니다. 세상은 이러한 기브 앤 테이크의 원리로 작동합니다.
내가 주었으면 받아야 하는 것 언뜻보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것이 기복신앙이고 율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로부터 받은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가족을 대할 때 율법으로 대하고 기복으로 대하며 그것을 논리와 합리라고 표현하며 들이댑니다.
율법은 논리를 가지고 이기려 들지만 은혜는 절대로 이기지 않고 죽어짐으로 승리합니다.
적용질문)
타인의 겉으로 보여지는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의 행위의 문제가 고쳐지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아니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생색과 기복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 것을 자랑합니까? 그것이 율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2. 우리가 기쁨 중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를 결코 넘어서지 못합니다. 항상 따지느라고 공동체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김양재 담임목사님이 제게 환경이 교만하면 장사 없다고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은 명확히 있어야 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가 성립되고 사회도 유지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같은 죄인을 값없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옳은 것입니다.
제자들(베드로, 야곱, 유다, 다윗)의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옳은 것이였습니다. 마땅하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마땅한 일은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공동체가 구원의 기쁨으로 즐거워 할 때 함께 즐거워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고 계십니까?
적용질문)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지 아닌지를 내 기준과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의 은혜로 얻은 구원만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3. 우리가 끊임없이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은 여전히 되었담 없이 계속해서 구원과 양육의 길을 걸어가야할 이유 입니다.
베드로가 바울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처방하고 책망하던 바울을 베드로가 변호합니다. 자신에게 싫은 소리 쓴소리 하던 바울 편에 섰습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차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분리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한량없는 주의 은혜로 목자가 되고 부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무서운 순간입니다. 제가 살면서 은혜 받은 순간은 제가 가장 아픈 사람이였을 때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프고 힘든 순간에 그 때 받아주시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에 차별이 없다는 뜻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원에 차별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깨끗이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별없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관계회복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은혜로 내 마음을 그들보다 먼저 깨끗이 해주셨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믿음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형제들을 향한 베드로의 차별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차별없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상처주고 상처 받아서 이제 안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시기에 사람되기는 글러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나한테 이따위 밖에 안해?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죽는 날까지 안보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습니까?
목장모임할 때 이 사람은 안왔으면 좋겠다고 생각드시는 분이 있습니까?
내가 차별하고 무시하는 그 한사람, 이방인 같다고 여겨지는 그 한사람, 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적용질문)
내가 차별하고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가 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싶지 않고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까?
내가 그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주안에서 생명을 경험했던 사람들 였지만, 어쩌면 이전의 사랑과 회개의 감동을 잊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믿음은 있지만, 사도와 장로들처럼 이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분도 계실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양육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주변사람이 변하기를 바랄 뿐 예수를 만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포기해버린 분들도 계실겁니다.
예전에 경험했던 은혜를 다 잊은 체, 옳고 그름만 따지며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들어서인지 옆에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며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생각 없이 지내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저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들교회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생명을 경험하고 죽음에서 살아난 한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내가 더 아픈 사람이였다고, 차별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관계회복을 위해서 먼저 손내미는 주 예수의 은혜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든든한 우리들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우리가 함께 구원을 경험했던 그시간을 기억하시고 더 힘차게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제목]
A.
1. 이제 무더위가 풀리는데 지난 한 주간 무더위에 건강히 지냄을 감사하고 이번주도 건강히 지내길
2. 주식 끊으면서 손실난 금액 잘 감당하길
3. 상대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내 죄 보며 사명의 길 가길
4. 하나님 두려워 피하지 말고 따르는 백성이길
5. 오늘 백신 맞았는데 내몸에 잘 흡수되길
B.
1. 출장 기간동안 말씀 묵상과 기도 잊지 않도록
2. 출장 기간동안 주어진 역할 잘 감당하고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도록
3. 수련회를 통해서 목장 식구들 은혜 받도록
C.
1. 독서를 매일 함으로써 지식과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2. 모든 일을 할 때 깔끔하게 마무리 잘 될 수있도록
3. 운전 하는데 있어서 안전운전 될 수 있도록.
4. 9월 초에 백신 맞는데 흡수가 잘 되길.
5. 나의 진정한 배우자가 생겨서 신결혼 잘 되길.
6. 10년이 걸릴 것을 1년으로 줄일 것.
7. 나의 죄 보면서 회개할 수 있도록.
D.
1. 로또 1등 당첨과 경제적, 물리적 독립
2.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물질적 축복 허락
3. 월초 100만 이상 매월 달성하기
E.
1. 양의사가 이제 수술할 때가 넘었다는 말. 그러나 결과는 보장 못한다는 얘기.. 굴하지 않고 치료 잘 받고 하루를 버티길
2. 구원의 기쁨과 감격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한 주, 수련회에서 은혜 받기를
3. 내일 회사 대표님께 인사 드리는데 잘 하고 주어진 블로그 운영할 수 있도록 눈이 좋아지기를
4.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 들을 수 있을까? 사무엘의 귀를 주시기를
5. 내 안에 예수로 인해 기쁨이 넘치길
6. 지난 주 사고 후 몸이 안 좋은데 잘 쉬고, 내일 무사히 아침에 일어나 대표님께 인사하기를
7. 병원비와 계속 되는 불안감에서 재정의 회복과 채워주심이 있기를
8. 우리 목원들 수련회를 통해서 은혜 받고, 다음에 목장에서 다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