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8 성령의 문제
사도행전 18:12-17
성령의 권면으로 성령의 백성이 되었디만 성도에게 문제는 참 끝없이 일어나네요.
여러분들도 많이 아시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새로 썼어요. 책의 내용을 쉽게 요약하자면 학력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똑똑한데 재수없는 놈이 되지 말고 돈과 상관없이 서로의 직업에 대해 너는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태도를 가지자는 거예요.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이런 태도의 문제는 이미 정치, 권력을 바꿀 정도로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죠. 공정이 요즘 화두입니다만 그는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이론을 표방하는 정치 철학자인데요. 중요한 이런 공정의 문제를 우리는 성령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문제가 되는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요?
1. 일제히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12-13절)
공정에는 지도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갈리오는 로마 정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어요. 그의 부친도 유명한 연설가였고 동생은 네로의 개인 교사로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였습니다. 로마의 여러 속주 중에서 아가야는 총독들이 가고싶어했던 지역으로 손꼽혔는데요.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아주 발달되고 안정적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족으로 갈리오는 남부러울 게 없었겠죠. 그런데 전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정치가와 장군들은 어떤 직책을 맡든 그것을 끝으로 여기지 않았어요. 거기서 다음 지위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여겼습니다. 아주 계속 높아져야 한다는 세속적 가치관을 가졌죠.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벌 부부가 얼마 전 이혼을 했자나요. 그런데 그 이혼 사유가 뭐가 하니 그들의 결혼에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목적이니까 결혼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이 더 높아지고 나아지고 좋아지기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한 갈리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이 1년 임기 동안 아가야를 아무 문제 없이 잘 관리하여 그 다음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싶었을 거예요. AD 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자나요. 그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유대인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돈을 잘 벌어요. 똑똑해요. 그래서 로마 정가에서는 늘 경계심이 있었는데, 그런데 늘 유대인들이 자기들끼리 그렇게 싸워서 문제를 일으키니까 총독의 성공가도에 골치가 아픈 거예요. 그런데도 이번에도 유대인들이 로마 총독의 힘을 입어서 또 일제히 들고 일어나 동족인 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싸우자고 지금 이렇게 법정으로 데려온 거예요.
갈리오가 유대 총독 되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 유대인이 아니고 바로 이거는 하나님이 기다리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격려 받고 사역을 했지만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셔야 나타내시기 위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성령의 문제입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비방하고 대적했던 유대인들이 한마음 한 뜻이 일제히 한 일이 사도행전에 단 두 번 나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죽일 때이고 하나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대적해서 법정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스데반과 바울은 하나님가 나라가 당장 이루어질 것 같은 최고의 제자와 사도이니까 사단이 일제히 달려든 거예요.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가 강한 것이 맞습니다. 일제히로 번역된 헬라어 뜻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장소와 시간과 마음과 뜻과 모든 요소들이 하나가 되어서 동일한 열정과 분노로 바울을 대적했다는 뜻이에요. 고린도에 거주하던 유대인 무리들도 결코 하나가 될 수가 없는데요. 그런 그들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과 재능과, 그리고 로마의 법까지 이용해서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서 바울을 대덕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 세상은 모두가 한쪽은 총독이고 한쪽은 유대인 부류에 속했죠. 약육강식이라고 하죠. 그런데 또 유대인들끼리도 엘리트와 저학력자로 나뉘어서 서로를 비난하면서 정말 징하게 싸웁니다. 이거를 능력주의라고 해요. 여기에는 공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어디나 능력이 왕노릇하면 다 망하는 거예요. 집도 가정도 이혼들 하고. 유대인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자나요. 그런데 이들이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러니 안 믿는 세상 사람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 성도의 길은 정말 좁은 길이죠.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예수님을 죽이고자 할 때 하나될 수 없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일제히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지금 바울에게도 일제히 달려드는 거예요.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떻게 바울 한사람 때문에 이렇게 다 한마음이 돼가지고, 일심동체가 되어서 달려들죠? 이거는 바울이 답이라는 얘기예요. 넘사벽이라는 얘기예요. 그럼 왜 넘사벽일까요? 인간이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 음란을 못하게 하는, 악하고 음란하게 살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되는 것의 가장 강력한 바로메타가 예수님이고 바울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들은 그걸 못하게 하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도 안 죽였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도 죽였고 스데반도 죽였고, 지금 바울도 죽이고자 하는 것이죠. 그럼 성경의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적용이 되어서 나타날까요? 오늘 조금 어렵고 딱딱하지만 그래도 좀 들어보세요.
마이클 샌델은 이것은 능력주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해요. 엘리트들에게는 니가 성공한 것은 니 능력 때문이 아니야 막 너무 극심한 반발을 해요. 그런 말에. 또 저학력자나 중산층들에게 니가 성공 못한 것은 니가 능력이 없어서야 그러면 또 역시 극심한 반발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능력주의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은 실패를 오로지 내가 못난 탓으로 돌리는 모욕까지 떠 안는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좌절과 분노가 승자의 오만과 충돌하면 민주주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가 깨지는 것이라는 거예요.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에 아주 주된 핵심이 된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부러워하고 무시하고가 똑같은 죄인이라는 거예요. 가난은 선이고 부자는 악인 거예요. 여기에는 옳고 그름밖에 없어요. 공정이라는 거 없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환호하는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 균등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임금과 부를 가져야 된다는 사회주의에서 맹신하는 결과의 평등도 아닌 조건의 평등을 추구해야한다고 해요. 센델이 말하는 조건의 평등은 부자와 가난한 자 여러 계층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된대요. 공론의 장을 확보하고 시민들이 거기에서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을 배우라는 거예요. 그것이 공동 선을 기르는 방법이고 계층과 상관없이 부딪힐 수 있는 그런 공간인 대중교통, 광장, 공립학교 같은 곳이 많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와 반대되는 사립학교나 전용 VIP 룸 같이 부자는 부자들만 갈 수 있는 공간에서 살다 보면 빈자에 대한 문제 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를 부르짖죠. 그런데 제가 이분 거를 인용하는 거는 이분이 너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고, 한국에서도 굉장히 열광을 하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악하고 음란한 죄인들이 차별없이 모여서 지금 토론하라는 게 가능할까요?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요, 그런데 그런 토론을 대중교통, 광장, 공립학교 같은 곳, 직업 훈련소, 노조에서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토론은 뭐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분의 책이 세계적인 정치 철학이라고 정치인들도 다들 그거 하나씩 들고 나 읽었다 그러더라고요. 세계적인 정치 철학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마이클 샌델은 맞는 거 같고요. 이분은 유대인이예요. 유대인. 성경을 사실 굉장히, 구약 이런 걸 잘 알텐데 이분은 종교란에 무종교라고 썼어요. 그러니까 이분은 정말 666처럼 7에 근사한, 어떻게 연구를 해서 이런 걸 이렇게 알 수 있을까?, 이것 때문에 너무 놀라지만 자기 죄를 모르면 이 차별없는 나눔이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봅니다. 능력주의의 차별과 폭정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원한 것은 모두에게 돈을 나눠주는 분배적 정의,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존중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망하고, 흥하고, 아프고, 실연당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쓰임받고 있다는 이런 자존감이 있습니까? 샌델은 정의와 공정의 화두로 세계적인 정치 철학자가 되었지만 저는 그가 공동체를 언급한 것만도 너무 반가워가지고 제가 지금 언급합니다만 그가 이거를 자기가 살아보지 아니하고 자건거를 이론으로 너무 너무 공부했지만 자전거를 한번이라도 타보는 사람이 알지, 아무리 이론으로 공부해도 딱 넘어지자나요. 이론으로 말했다면, 저는 이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나누는 우리들교회 목장이 진짜 실행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 부자, 배운 자, 못 배운 자에게 끝없는 문제가 일어나죠. 그렇지만 같이 모여서 서로를 체휼하는 것은 죄인의 입장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죄인의 입장이니까 차별이 없는 거예요. 그런 공동체가 이 땅에 정말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우리들교회에서 이런 걸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매를 맞고 쫓겨나도 사랑 받고 사랑하며, 그냥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얼마나 당신이 기여하는 줄 아냐고, 그곳에 얼마나 당신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아냐고 끊임없이 주지시켜주는 공동체야 말로 이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가 아니라 저는 공동체주의적 복음주의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진영 논리와 지역 감정의 대안은 주 안에서 차별없이 자기 죄를 보는 공동체가 대안이에요.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예요. 즉,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지금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대적해요. 그냥 육적, 정신적 문제로, 육해공군 모두가 산전, 수전 다 일어나서,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대적하는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성령의 문제라는 거죠. 어설픈 문제로서는 내 자신의 죄성을 결코 알 수 없기에 모든 문제가 일제히 일어나야만 완악한 내 죄가 깨달아지고 내가 예수께 항복하여 예수의 말씀이 어떻게 내 삶에 적용되어져 생명을 낳게 하는지가 경험되어지기에 이것을 성령의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대적하는 문제가 성령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나라의 문제가 심각하고 진영 문제, 지역 감정도 심각해도 이거는 날마다 일어나는 부부 문제, 자식 문제에서 내 죄부터 보는 걸 시작하지 않으면 결단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뼛속까지 죄인인 우리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풍요로워질수록, 망할수록, 또 자유가 클수록, 잘 살수록, 못 살수록 문제가 많아지는 거예요. 다. 그런데 제가 늘 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다.라고 하자나요. 그래서 여기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뭔가하면 똑같은 심판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사건이 되듯이 똑같은 문제 속에 말씀이 들리면 그 문제는 성령의 문제가 됩니다. 결코 환경이 아니예요. 못 살고, 잘 살고 환경의 문제가 아니예요. 그런데 진영, 지역, 나라 모두 환경가지고 난리를 치는 거죠. 돈이 있다, 없다., 우리한테 잘했다, 못했다. 문제는 나인 거예요. 문제는 나라고, 이것을 그 누가 계속 가르쳐 주겠습니까? 말씀으로 죄를 보는 공동체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발한 내용이 굉장히 허술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고발한 내용이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 권한대요. 아니,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하는 것이 무슨 율법을 어기는 문제입니까? 자신들도 가르치는 내용인데요.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듯 일제히 덤비는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허술한 것들이 많아요. 이처럼 나를 죽이려고 일제히 덤벼드는 수많은 문제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도 별 거 아닌 문제들이에요. 자, 예를 들어요. 2억을 빚을 져서 나는 죽고 싶은데 목장에 가보니까 20억, 70억 빚진 사람들이 웃으면서 목자를 하고 있어요. 남편의 이상한 문자 하나를 보고 죽고 싶은데 목장을 가보니까 23번 바람 핀 목자님이 또 웃으면서 목자를 하고 있어요. 이 얘기는 이 얘기는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예수를 만났냐, 안 만났느냐의 문제인 것이에요. 이 모든 사건을 통해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성령의 문제가 되고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면 유대인들의 고발이 얼마나 유치하고 허술하고 아이러니 한지, 그리고 그게 무슨 공정이에요. 이게 고발한 내용 자체가 불공정한 거예요. 예수가 없으면 죄를 모르고 그러면 맨날 불공정 사회에서 우리는 사는 거죠. 그러니까 정치, 사회에서도 날마다 고발, 고소가 난무하는데 정말 도덕의 유치원 시대에 다 살고 있는 거를 우리가 지금 봅니다. 얼마나 허술하고 아이러니한지를 날마다 가슴을 통탄하면서 보고 있어요.
[적용] 세상이 일제히 달려들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제가 있었나요? 나는 거기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자기 죄를 보는 목장이 세계적인 대안이며 기가 막인 답이라는 것을 인정하나요?
2. 의외의 도움으로 풀리게 하십니다. (14절)
기습적으로 잡혀온 바울이 법정에 섰습니다. 이때 바울은 입을 열고자 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 고린도에서 이제 막 믿게 된 지체들, 그리고 아가야와 마게도냐에 세웠던 교회들을 위해서 이제 입을 열 때인가보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바울을 대신하여 갈리오가 대답을 합니다. 이처럼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내 가족, 내 자녀가 아니라 정말 구원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대신 말할 사람을 준비해 주시기도 합니다. 오늘 누가 도와주죠? 12절에도 보았지만 아가야의 총독이에요. 그럼 여러분 아가야가 닿지 않겠는데 고린도를 품고있는 더 큰 행정구역인 거죠. 우리 교회가 판교면 판교는 성남시 소속이고 더 크게 성남시는 경기도 소속이라 뭐 이런거죠. 우리 교회 문제를 내가 변론하려고 하는데 성남 시장, 경기도 지사가 대신 일어나서 지금 얘기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되겠어요.
이 갈리오는 친아버지도 원로원이 되어 있고 자기가 실질적으로 성장한 양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고, 철학자고, 수사학자입니다. 그 형제인 세네카는 로마 황제의 철학 스승이라 그랬어요. 얼마나 모든 걸 다 갖췄어요. 지금 갈리오가. 그런데 이 갈리오가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고발을 한 것이죠. 갈리오라는 총독이 재판권을 접수했는데 가만히 들어가보니까 자기 로마 정부에서 시행하는 종교법에 위배되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두가지를 지적해요. 이 사람들아 바울이라는 사람이 사회를 어지럽혔냐? 그가 전한 내용이 비윤리적이냐? 그런 내용이었으면 내가 재판하지듣고보니 그 문제가 아니지 않냐? 그러면서 이 갈리오가 놀랍게도 기각시켜버렸어요. 그 재판을. 무죄를 선언합니다. 누구에 대해서? 바울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무죄. 이건 내가 재판할 건수가 안 된다. 그래서 이것이 판례가 남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계속 바울을 매맞게 하시고 옥에 갇히게 하시고, 이번에는 무죄를 판결이 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매맞는 거는 저주인 거고 무죄는 축복인가요? 지나고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형편에 처해도 여기에 토 달지 않고 순종할 사람으로 바울을 택하신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는데 하나님은 100% 옳으시거든요. 나에게 주시는 어떤 환경도 그게 하나님이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데 맨날 좋은 거는 축복이고 나쁜 거는 저주라고. 그러니까 성령의 문제가 되지를 못하는 거예요. 모든 재판관들이 어떤 시비를 놓고 판가름할 때 그들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법전 다음으로 이 판례집인 거예요. 그래서 여기 심지어는 외국의 경우에는 어떻게 판례했지? 참조합니다. 그만큼 이 갈리오의 기각 사건과 무죄 결과는 아주 사도 바울에 대한 내용과 인물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무죄 판결 내린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갈리오라는 사람의 이 땅에서의 역할은 원로원이고 총독이고 세네카고 다 떠나서 바울 기각한 일 하나 하려고, 이 땅에 와서 그한테 의미있는 일 하나 뽑으라면 여기에 기각 판결 내린 거에요. 지금 모든 법원과 모든 판사들, 변호사들, 모든 일들 중에서 예수님 뜻대로, 하나님 뜻대로한 판결 그거 하나 천국에 가서 남을 거예요. 우리 나라의 삼권 있는 사법부와 이 모든 하나님의 뜻에 판결한 그 판결 하나가 천국에 기록될 것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갈리오의 판결이 그 다음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너무 됐어요. 아가야에서 이것이 무죄 판결이 났으니까 앞으로 전할 때 로마가 중립을 지키기가 너무 쉬워졌고 그게 그렇게 약효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전할 때는 위력적이었고 이후에 이 판례 때문에 이 사람이 로마 황제에게까지 갈 수 있는 그런 기초가 된 것입니다. 의외의 도움이 너무 큰 역활을 했습니다.
우리들교회도 이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에 정말 말씀 묵상, 가정 중수,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18년째 달려오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겠어요. 모함받는 사건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마다 생각 못한 의외의 손길들을 허락하셔서 말씀 묵상을 도우시고 가정들을 도와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억울해서 말하고 싶자나요. 그런데 그때마다 내 입을 닫는 것은 내 생각이 죽어질 때 가능하고, 내 생각이 죽어지는 것은 이 시대의 순교이고, 내 자아가 죽어지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하고, 이때 나의 모든 문제가 성령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죠. 오늘 이 문제가 변하지 않는 내 남편, 완악한 내 아내, 내 자녀에게, 그리고 가장 결코 변하지 않는 나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리고 이 고린도보다 백 배 더 힘든 로마에 복음이 전해지는 성령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내 입을 닫을 때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도움을 다 예비해 놓으십니다.
[적용] 나는 무조건 입을 열어 내 생각을 쏟아내야 시원한가요? 입을 열고자 할 때 구원을 위해 닫은 적이 있나요 닫았을 때 의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나요?
3.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15-17절)
여기서 갈리오가 판결문에 적은 언어와 명칭과 법에 관한 문제는 이게 법적 용어는 아니예요. 헬라어 원문에 언어는 로고스고, 명칭은 오노마고, 법은 노모스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단어와 이 단어가 함축하는 개념은 일개 행정관이 재판 석상에서 말하거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예요. 어느 재판 자리에서도, 어느 재판관도, 어느 행정관도 이 단어나 이 개념을 말할 수가 없는 이런 내용과 개념을 말한 거예요. 왜죠? 갈리오가 그렇게 철학과 수사학에 능했기 때문이에요. 자 다시 생각해 봅시다. 오늘 나에게 닥친 문제가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의 문제라면 너희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너희의 그 법으로 지금 바울을 죽이고자 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자나요. 그런데 하지만 구원의 언어와 명칭과 법에 관한 문제라면 성령께서 처리해 주신다는 거죠. 이것을 아는 것이 성령인지 나의 문제인지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그런데 이 언어와 명칭과 법에 집착합니다. 단어 하나에 이혼하고 명칭 하나에 분을 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법 하나에 분노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단어 하나에 결합하고 명칭 하나에 분이 풀리고 법 하나에 분노를 삼키게 되는 것이죠. 이 언어가 명칭이, 법이 너희 생각인지 아니면 말씀인지가 성령의 문제임을 판가름합니다. 성령의 문제라면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희의 문제라면 갈리오처럼 손을 씻게 되는 것이죠.
지난주 THINK 양육 교사 때 나온 숙제 내용이에요. 남편과 나의 구원을 위해 지난주 갑자기 일제히 달려드는 사건이 있었는데 남편의 오랜 조울증, 각종 중독, 폭언, 폭행, 노래방 도우미와의 바람 사건에 더 이상은 이제 못 참겠다며 나는 3년전 이혼 소송을 했는데 그때 남편의 정신과 선생님이 우리들교회를 소개해 주셔서 공동체로 인도되었다고 제가 3년 전에 한번 예배시간에 했던 거 기억나실 거예요. 그리고 가정이 회복되는 기적을 주셨다고 하는데요. 노래방 도우미 중독으로 수 억을 날렸기 때문에, 그런데 노래방 도우미 중독으로 왜 수 억을 날리죠?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그 여자를 보면 너무 좋은 봐요. 기분이. 그래서 돈을 막 갖다 주나봐요. 그죠? 우리 임영웅씨한테 계속 광고 효과가 많이 나는 것처럼 그런가봐요. 중독도 참 가지가지예요. 그 후에 이 집에서 노래방과 도우미는 금기어로 여기며 지낸지 2년이 되어가는 지난주, 남편은 혼자 나가서 끊었던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도우미와 거금을 쓰고 들어와서는 미안함도 안 보이면서 내가 어떻게 나를 또 배신하냐!는 나의 잔소리에 그냥 혈기를 부리고 의자를 집어던지고 선풍기를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급기야 식칼까지 들고 위협을 했다는 거예요. 참 우리 일제히 달려드는 문제네요. 너무 놀란 나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다 토했는데, 그래서 남편이 너무 놀라가지고 119에다가 신고를 했더니 경찰관이 5분이나 오셔가지고, 남편이 칼을 들었기 때문에 특수 협박으로 접수가 되었다는 거예요. 2년 동안 잘 살다가 순간적으로 하루 갔다오면 이렇게 다 깨지는 거죠. 가정 폭력은 예전에는 배우자가 처벌을 하지 않으면 그걸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는데 요즘은 그냥 일단 접수되면 가서 조사 받아야 되고. 남편이 그 문제롤 겁을 좀 먹은 듯했지만 그래도 분이 안 풀려하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난주에 성령 충만 양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 성령님이 믿음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니가 먼저 사과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감옥에 갇혀서 찬송하고 기도한 바울과 실라처럼 정말 남편에게 용기내어서 가정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사과를 했다는 거예요. 아니 공정하다는 이 사회면 이런 거 왜 사과합니까?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면 이거 왜 사과합니까? 그냥 이러면 이혼하고 이러면 회사 그만두고. 그런거는 그러니까 공정이 아니라는 거에요. 이건 진짜 공정하다는 착각이에요. 착각. 남편이 화가 풀려서 자기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그리고 경찰서 가서 진술서를 썼는데 남편은 내가 처벌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아주 고마워했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로 달라진 것이, 성령의 문제가 된 것이 처음으로 THINK 일대일 양육 과제를 하기 시작했고, 목사님의 신간 다 이유가 있습니다.를 완독하고, 악어의 눈물이 아닌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고 회개의 은혜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런데 신간만 다 읽은 게 아니고 그냥 목사님 사무엘 1권, 2권,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말씀이 들리는 그 한사람 읽고 자기가 회개의 마음으로 밀린 양육 과제를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THINK 양육생 삼수생인데 이걸 보면서 똑같은 사건이라도 누구에게는 구원의 일이고 누구에게는 죽을 일이고. 노래방 가서 번진 부부 싸움으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몸과 마음이 다 죽을 것 같았는데 죄인임을 보게 하시니까, 이게 중요하자나요. 이 죄인임을 보게 하시니까 이게 조건의 평등이에요. 똑같은 죄인의 조건의 이 평등이 우리를 성령 충만한 문제로 가져가게 하는 거죠. 그래서 관계를 풀어주셨어요. 이 남편 집사는 갈리오 같은 가문의 자제였다고 하죠. 이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고 경찰서까지 간 것은 금기어 딱 두 단어, 노래방과 도우미. 결국 남편이 이 언어로 폭발한 것이고 이 단어로 남편을 정죄하며 탓할 때 순식간에 부서지고 파괴되고 결국 이혼까지 가는 것이죠.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이 집사님이 너희의 언어가 아닌 말씀에서 듣고 배운 언어, 구원의 언어, 아내의 머리인 남편의 질서에,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내가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아니 식칼 들고 덤비는데 무슨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했다고 사과할 사람이 이 땅에 어딨어요. 이 땅에. 이 나라가 옳고 그름의 화신이 되서 아주 진영 논리로 싸우는 거를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이 되겠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 날마다 손가락질을 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 어떻게 하겠어요. 식칼 들고 덤비는 남편에게도 이렇게 내가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했다고 성령의 언어를 썼자나요. 너희의 언어와 명칭과 법, 너희의 문제에서, 이 성령의 언어와 명칭과 법으로 말하니 성령의 문제로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절대로 책을 읽지 않던 남편이 세상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자나요. 양육 숙제를 하고, 예배 녹취를 하고. 이게 성령의 문제가 된 것이에요.
갈리오는 바울을 도우려는 착한 사람이 아니예요.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뭐 하나 도와주면 그냥 절대로 저 사람은 나를 속일 사람이 아니야. 자기 죄를 못 보는 사람은 나를 절대로 끝까지 도울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나 부부나 남편이나 자기 죄를 못보는 사람은 그냥 우리가 기도할 대상이지 나를 도울 대상이 못 돼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17절에 소스데네를 법정 앞에서 유대인들이 때려도 상관하지 않는 냉혹하고 세상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이 문제가 너희의 문제인지 우리의 문제인지를 분별할 줄은 아는 상식적인 사람이에요. 이 갈리오는. 요즘엔 상식도 안 통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지도자들 중에서도. 즉 이 문제가 로마의 문제였다면 온 힘을 다해 도왔을 거죠. 일본 사람은 일본 문제를 돕고 우리 나라는 우리 나라를 도와요. 그런데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돕겠어요. 미국이 왜 우리나라를 돕겠어요. 그런 상식을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기도를 하고 구원 때문에 기도해야 돼요. 세상은 다 이기적이라고요. 여기서 소스데네는 바울의 아픔에 함께 동참했다기 보다 그리스보 이후에 회당장이 되었자나요. 그리스보도 예수께로 이사갔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헬라인 유대인 동족들과 바울을 고소했다가 바울이 무죄가 되니까 그 동족 유대인들에게 법정에서 두들겨 맞았어요. 그래서 구원이 됐어요. 그러니까 두들겨 맞아서 성령의 문제가 되게 하셨어요. 맞았다고 나쁜게 아니예요. 맞아서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보면 바울의 최고 동역자가 되며 고린도교회 4번째 감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 맞았다고 무죄가 됐다고 좋고 나쁜 걸 여러분들이 결정하시면 안돼요. 하루 하루 말씀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 그게 하나님의 세팅의 구원의 순서에 들어 있는 한 역할일 뿐인 거예요.
갈리오처럼 세상 법관도 문제를 분별하며 이 문제가 로마의 문제인지 유대인의 문제인지 분별하는데, 일본의 문제인지 중국의 문제인지 미국의 문제인지 이것도 모르고 맨날 욕만하면 되냐고요.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사랑하고 기도를 해야죠.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구원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고 성령의 문제가 되는 비결이에요. 우리의 언어가 성령의 언어가 되어 이 문제가 성령의 문제가 될 때 성령께서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도우실 것이에요. 너무 너무 억울한 것 많죠. 식칼 들고 덤비는데, 어떻게 또 노래방에 가서 거금을 쓰고. 기가 막혀 이제 이혼이다 이래야 되는데. 억울하죠. 너무 슬퍼요. 더 이상 못 살겠다. 그래서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바로 인내라고 하는 거예요. 고난의 길이가 어떠하든지 종류가 어떠하든지 기쁨으로 인내하라고 하자나요. 그죠? 주께서 신원해주시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성령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집에서 어떤 언어 명칭 법에 뒤집어 지시나요? 혹은 교회에서 이해가 안 되는 언어 명칭 법은 무엇인가요? 구속사인가요? 성령의 언어를 써서 문제가 해결됨 한마디는 무엇인지요?
기도제목
현경
괜찮을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시간임을 잘 알고 말씀에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어느 장소에서 있던지 본질에 집중하여서 해야 하는 것들 차분히 마무리 지으며 갈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운전면허 따는 것을 할 수 있는 용기 얻은 것에 감사하고 오래도록 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는 상처받은 마음 위로받고 운전면허를 무사히 딸 수 있도록
예선
화요일날 상담을 다시 가는데 선생님 앞에서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경계를 지키고 아팠던 사건들과 생각들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주시도록
주님 주신 영육의 성전을 잘 보호하고 튼튼해질 수 있도록
간증문 다시 작성하려고 하는데 지혜 주셔서 꼭 해야 할 말들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집에서 공기 바람 잘 할 수 있도록
새 마음으로 목장 식구들 위해 말씀으로 기도하기
다인
불안과 강박이 올라올 때 온전하지 않은 나와 가족들 모두 다 100% 죄인인 것을 알고 아픈 곳에 위로와 말씀에 회복 있도록
무엇이 편안하고 괜찮은 것인지 모를 때가 있는데상담 가서 나의 아팠던 마음들 솔직하게 얘기하고 말씀에 충전되는 매일을 살도록
언니와 아기가 건강하게 출산하고 여행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보련
동사무소에서 만난 자매를 위해 기도합니다. 최고의 도움이 예수가 그리스도 복음 전하는 것임을 알고 자매가 말씀 보는 공동체에 들어와서 인생과 직장의 주인이신 예수님 알 수 있도록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인 것이 인정이 되는 은혜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세상 성공의 다른 것 찾지 않고 예수님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롭게 직장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적응도 잘 할 수 있도록
크리스틴
10년을 알고 지냈던 친구가 소천하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슬픔가운데 있는데 죽음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보게 하시고 모두의 인생이 사명따라 와서 사명따라 가는 것임을 알고 구원의 소망있는 저와 우리가 되도록
속히 알맞은 상담 선생님을 찾고 일반 은총의 치료와 회복 있도록
은우
개미집 같은 전시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이 원하는 전시와 컨텐츠로 선한곳에 소망 두는 전시될 수 있도록
받은 돈이 투명하게 쓰이고 꼭 전달되야 하는 지체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붙여 준 지체의 구원위해서 중보 하고 옷깃을 잘 여미며 갈 수 있도록
가고서는 길 만나야 하는 사람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