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정정환 목사님
사도행전 2:14-21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나의 마음,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다. 나 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신뢰와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어떠한지 알아본다.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한다. 불과 50일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귀신에 사로잡힌 여종 앞에서도 덜덜 떨었는데 바뀌었다. 바뀌게 된 이유는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 충만해졌기 때문이었다. 성령이 임하면 담대함으로 소리를 높이고 내가 알게 된 예수님을 전하고 자신의 삶을 간증하게 된다.
이럴 때 옆에서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들이 있다. 제자들이 성령이 임하고 방언을 하자,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다. 베드로는 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부드럽고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이전의 성질 급한 다혈질의 아이콘이었던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함으로 바뀌게 되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조롱을 받더라도 혈기로 맞서기보다는 반대의 영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말씀 충만 성령 충만한 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옆에서 누가 조롱할 때 혈기로 반응하거나 정죄와 판단을 하는지를 보면 된다.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대단한 체험이 아니고 일상에서 견디기 힘든 한 마디를 받아내는 순종을 하는 것이다.
(적용) 나는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 있습니까? 혼자 서 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까?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16절.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의 성취이다. 말씀대로 이뤄진 사건 앞에서도 믿음이 없으면 구속사적이 아닌 세속적으로 받아들인다. 사건의 결과 앞에서 주변의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으며 운과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의 성취이다. 우리는 그 사건을 보며 말씀대로 되어진 사건이구나 생각하고 옷깃을 여며야 한다. 그것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조롱에도 휘둘리지 않고, 구원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베드로처럼 해야 한다.
우리는 왜 부정적인 말과 조롱에 요동할까?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말씀따라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 따로 사건 따로이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사건을 해석하면 결과가 좋게 나왔더라도 교만하지 않는다. 반대로 잘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이 일을 통해 주님을 만났다면 감사한 것이다. 그래서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이다.
베드로는 평소에 구약을 읽고 묵상했기 때문에, 이 사건 앞에서도 해석이 된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사건의 결과에 우연의 일치이거나 노력의 성취 결과라고 하면서 자신을 높이곤 한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그 어떤 일이 와도 하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만을 높이게 된다.
(적용) 지금 나에게 일어난 사건 가운데 말씀대로 되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17절. 18절 말세는 종말의 때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이다. 나에게 말세는 언제일까.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이다. 우린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다. 고난을 겪을 때 나의 한계를 보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말세를 모르고 살게 된다. 우리는 이 말세의 때에 자아가 죽어진다. 그때 하나님은 육체에 영을 부어주신다. 말씀으로 예언을 받게 된다.
아이들도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게 된다.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비전을 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 환상을 보며 살게 된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된다. 과거만 회상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 때에 꿈을 꾼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 공동체에서 믿음의 본이 되게 하신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종들이 예언하게 하신다.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신다. 성령 충만은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말씀 쫓아 살아가는 것이다. 성령을 부어주시면 나의 부족함과 고정관념 편견을 넘어 서게 되는 것이다.
(적용) 나는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고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내 안에 깨어져야할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19절. 피와 불과 연기라는 것은 심판으로 인해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내가 우상으로 삼고 의지하던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시간이 된다. 택자에게는 구원이 이르게 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셨다. 나에게도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흑암이 온다.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고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게 된다. 이제 곧 주의 크고 영화로운 일이 이르겠구나 하고 받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면 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전적인 믿음과 온전한 신뢰를 의미한다.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며 말씀 듣는 구조 속에 거할 때 흑암중에 있는 나를 붙잡아 주실 것이다. 이 성중의 주의 백성이 많음을 깨닫게 되고 나 뿐만 아니라 주변의 구원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 구원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이 주의 이름을 주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다.
목사님도 아버지의 자살 사건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회개의 영이 이르고 구원을 받게 되는 사건으로 해석이 되게 하셨다. 주의 말씀을 부르는 공동체로 불러 주셨고 말씀의 구조 안에서 살게 하셨다.
세상에 알려진 명품에 세상 사람들은 열광을 한다. 비싼 돈을 주고서도 줄을 서서 구입하고자 한다. 그 이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름이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 여기 내 안에 살아 계신다. 우리가 평생에 사모하고 불러야 할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구원의 은혜가 부어지길 소원합니다.
(적용) 나에게 찾아온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열광합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제가 적은 건 아니고 전달 받았어요..!ㅎㅎ)
기도제목
사라
- 현재 병설유치원 봉사 하는 중인데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언니, 형부, 제가 돌아가며 애기 봐주는 중인데 지치지 않는 체력 허락해주세요
- 언니의 산후 우울증이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 요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올라오고 눈치보게 되는 데 묵상하며 잘 지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 할아버지 소천 후 할머니의 우울증세가 아직 남아 있는데빨리 회복되게 해주세요
- 엄마의 갱년기 시기가 찾아왔는데 안정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은선
- 자취 하게되어 이번주에 이사를 하는데 장마라 걱정이 많이 됩니다 잘 마칠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 퇴사 후 쉬는시간 잘 누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 동생의 불신교제가 빨리 끊어지고 신앙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점점 기력이 쇠약해지는 게 보이는 데 기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월요일에 월급날인데 허튼 소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 허튼 소비 하지 않기 위해 내일 신용카드 해지할 수 있도록 결단력을 주세요
- 아침에 큐티와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어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다혜
- 이번주 큐티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내 주제를 알고,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 다이어트 공동체에 물으면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안 나오는 목원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가주시고 하루 하루를잘 살아내게 도와주세요
- 신교제와 신결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