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알리심
▷행 17:23-34
▷김양재 목사님
▷본문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현장예배 판교,휘문 많이 나오면 결혼이 될 줄 믿습니다. 얼굴을 봐야지 뭔가 이렇게 되는거에요.
쾌락주의 경건주의가 이땅에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기에, 이땅에서 예수 없으면 전부다 악한 거에요,. 이 두 철학은 아덴에서 우상으로 만든 거였다. 아덴 사람들은 앎에 목말라했다. 홍수속 가뭄. 안다고 해도 불안해하고, 알지 못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심이 되었고, 이 세계의 지성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이 한 일은 결국 돌과 신상을 세워 숭배한 일이었다. 바울이 전쟁터같은 곳에 끌려거 너희를 알게하라 라고 한다.
1.바른 앎을 알게합니다.
23-24절) 주전 3세기 헬라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왕으로 부터 어려운 문제를 받았다. 새로 제작한 왕관이 순금인지 불순물이 섞였는지 알게 하라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고, 녹일 수도 없고, 무게를 재도 알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머리를 식히러 목욕탕에 가서 몸을 담겄는데, 물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밀도가 다른 물체를 물로 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 찾았다, 알았다! 라고 외친 아르키메데스. 늘 새로운 것을 알고자 했던 아덴 사람들이야 말로 이런 발견의 기쁨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 조차 죄로 이끌기 때문에, 우리는 더 자극적인 발견을 추구하는 것에 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대부분 이기고 이기려고 알기를 소원합니다. 이타적으로 알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늘 알고 싶은 게 내가 어떤 직장을 얼마나 다닐 수 있는지, 자녀가 성공할 지, 코로나 백신에 부작용이 없을지 이 땅의 삶의 목적, 사후 세계, 그때, 그시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우상을 의지합니다. 돈, 자녀, 등 우상들을 세워놓고 그들의 치리를 받게 된다. 우리도 우상들과 다름이 없다. 나무와 돌에 우상을 새겨놓고 그를 의지하고 숭배하고 절하는 행위를 합니다. 사도바울의 위대한 아데오바고 설교가 선포됩니다. 너희에게 알게하리라 ~ 는 지식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랴 너희르 ㄹ옭아매는 앎에서 벗어나게 하는 깨달음을 주겠다. 두려움에서 평안을 주는 바른 앎을 주겠다고 합니다.
적용) 여러분의 앎은 두렵게 하는 앎입니까 편안하게 하는 바른 앎입니까? 내일 일을 위해 죽어라고 위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2.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알리십니다.
24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26절에 연대를 정하시고 경계를 한 정하셔서 여인의 자궁 속 점으로 오셔서 hidden이 revealed will of God이되는 낮아짐을 경험하셨다. 감춰진 하나님이 결코 멀리 계시지 않지만 인생은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신다는 것이에요. 옆에 있는데도 눈이 멀어서 몰라요. 고난으로 우리로 하여금 찾게 하세요. 멀리 계시지 않는데 다 더듬어 찾는다고 합니다. 삼위일체를 알면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너무 되요. 근데 이를 얼마나 어렵게 설명하는지 몰라요. (이성훈 목사님 피셜: 담목님 삼위일체 설명이 최고다 ㅋㅋ)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나서 effective power성령님이 도우시는 거에요. 바울의 설교는 아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 사람을 소개했어요.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거에요. 25절이 세네카의 말인 거에요. 신이 인간들을 섬기려하기ㅏ 때문에, 신은 섬기는 자들을 원하지 않는다. 26절도 세네카의 말과 거의 같다고 알려졌다. 바울은 무신론자인 에피쿠로스 학파보다, 신의 존재를 인정했던 스토아 학파의 말을 인용해서 설명을 합니다. 지식인들도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한거에요. 이땅의 모든 정치도 예수님이 없으면 결국에는 예수 믿는 사람 잡으려고 하는. 그래서 이땅에 어디에 뜻을 둘게 없고 복음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도를 하려면 귀신들린 여자 한테도 가서 공감 해야겠지만, 아덴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공부도 해야하는 거에요. 언어를 여기저기서 쓸 수 있으니까. 바울은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여기저기 복음을 전합니다. 각자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인생에서 쓰는 언어를 공부를 해야하잖아요. 에수님도 어부, 세리 등등 언어를 사용하셨다. 상인, 농사, 이혼의 언어가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똑똑하지 않은데 구원 때문에 안타까우니까 그 사람의 언어를 쓰게 되는 것이 다있다. 무릎도 꿇고 별거 못할 게 없으니까 사장님이면 사장님, 변호사 랄랄라라. 그사람 언어로 낮아지는 것은 자기부인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언어가 되려면 여기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야 하는데 자기가 죄인인 걸 모르면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26절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가는게 그렇게 쉬운거에요. 유대와 요셉의 이야기가 구속사의 정수에요. 누가 유다를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하고 싶겠어요. 요셉이 아버지를 혼낸다. 유다는 시아머니 며느리 동침한 베데스. 야곱도 잊어버리고 싶어 사랑하는 요셉을 팔아먹은 자식인데, 과거를 못 있고 유다한테 계속 뭐라고 하는거에요. 끝에가서 형제들 화해시키는 건 결국 유다였다. 그렇게 우리는 요셉만 있다면, 경계를 허물고 요셉을 데리고 아프리카라도 가서 살고싶은게 있어요. 우리는 모두 요셉처럼 꿈꾸는자가 되길 원하는 설교를 듣는데, 유다 설교를 하는게 쉽지가 않아요. 내가 그만큼 늙었으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한 사람(유다)이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이 쉬울 수 있겠어요.
적용) 내가 넘고싶은 경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지켜야할 혈통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부모, 자식, 남편, 아내의 자리? 거기가 아덴 땅입니까 너무 편안해서 지키고 싶어요?
요셉 족속이 유다족속을 제일 무시한거에요. 끝까지. 이방인들도 아니고. 교회에서 가장 추앙받고, 가진게 있었던 요셉인데. 교회 안에서 요셉 족속이 유다 족속을 그렇게 무시했다.
3.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것이다.
28절,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헬라 시인의 글을 인용했다. 나는 하나님의 힘을 입어서 사는 사람이지, 남편, 아내, 돈에게 힘 입어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근데 내 경계를 잘 지킬때. 내가 자살도 이혼도 하려고 했는데 내 경계를 잘 지키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 경계를 잘 지키니까 성령님이 알게해주시니까. 고난이 무슨 의미가 있나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줄 아는 것. 자꾸 여러분은 고난 받고 끝이다라고 생각하니까. 우리는 연구하고 앎이 아니라 하나님께 힘잆어 의존하고 살아야하는 존재라는 걸 그들에게 계속 가르쳐주는 거에요.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4.회개한 바울의 삶 자체가 성령의 알리심 입니다.
성령의 알리심의 결론은 회개라는 거에요.
30절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바울은 뼈저리게 알고있다. 근데 하나님이 간과하셨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못했던 죄를 십자가로 구속하셨다. 이를 알게 된 사람은 회개하게 되고.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만,알고나서도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따. 그래서 바울은 목숨걸고 예수 믿으면 이러면 안돼라고 선포할 수 밖에 없었다.
복음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악하고 음란한데 그것이 나쁘다고 하니까.
적용) 알지 못했던 시기에 행했던 죄악은 무엇입니까? 나의 회개한 삶 자체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성령의 알리심이 되고 있습니까?
*근황 나눔
A: 공부도 많이 못하고, 오늘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부모님께 서운한 생각도 조금 들었었다.여러모로 컨디션도 안 좋고 생각이 많은 최근이었다.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니까 어느정도 해야하는 루틴이 정해져 있는데, 주말이 되니까 조금 우울이 몰려오는 것 같다. 오늘도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것 부터 시작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설교를 못 들었다. 그래도 목장에 오니까 조금이나마 끌려서 가는 게 있어서 좋다.
B: 오늘 설교를 듣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왜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까? 생각이 들면서, 복음이 나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임이 공감이 안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장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거나, 목장 인도도 해야하니까 하는데막상 나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정확히 답하기 어려웠다.그걸 깨닫고 나니 종교심으로만 섬겨왔던 거 같아슬펐다. 복음이 나에게 진심으로 좋은 소식이 되게 해달라 기도했다.
* 나눔
A: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워 하고 알려고 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떤 카페를 가더라도 꼭 검색을 많이 해보고 내 기준에 맘에 딱드는 곳을 고르려고 검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또한 나중에 내 자녀에게 좋은 가정을 물려주고, 선순환이 되는 가정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서 육아 전문가 영상 같은 걸 유튜브에서 볼 때도 있다. 지금 하는 공부도 설교를 듣다보면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공부인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럼 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게 맞는건지 생각도 들고 잘 모르겠다. 경계에 대해서는 나눔을 들어봐야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B: 한때 국내가 아닌 어디든 가고 싶었다. 목적이 분명해서 해외에 가기 보다는, 우선 국내에만 안 있으면 돼. 라는 생각이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한국에 태어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경계일텐데, 맹목적으로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목사님이 돈이 없어서 못 나가는 거지, 돈만 있으면 다 산으로 들로 갔을 거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기도제목
성은:
- 음식으로 스트레스 풀면서 폭식 하지 않도록
- 자기 전이나 이동 시간에 자기 계발 영상 보는 시간 줄이기
명은:
- 주어진 물질적 경계안에서 한 달 잘 살 수 있도록
- 말씀에서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느끼는 한 주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