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격분
사도행전 17:16-23
이런 글이 있더라구요 화가나면 열까지세고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라고 결국 화는 다스려야 하는 감정이며 화가 더해지면 파괴적으로 변할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로는 엥거에다가 위험이라는 단어는 데인저인데 거기 글자하나가 빠진 단어가 엥거죠.
성령의 신사인 바울이 오늘 아덴에서 격분했다고 해요.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에서 쫓겨나고 지금 아덴에 와있습니다. 르네상스 화가 라페엘로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이제 꽃피는 아테네학당이라는 그림이 있는데요 상상속에서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예술가 작가를 한장소에 모아두고 그 이름을 복숭아학당이 아니고 아테네학당이라고 했는데요 아덴이 바로 이런곳입니다. 바울은 이 대단한 아덴에서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바울의 격분은 어떤것인지 오늘은 성령의 격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영혼을 향한 애타는 관심입니다.
16절 17절 입니다.
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의 안내로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베뢰아에 잠깐 남겨둔 신라와 디모데에게 빨리 아덴에 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덴에서 혼자 사역을 먼저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빨리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립니다. 여기 쓰인 단어가 이런 간절한 기다림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왜 바울은 신라와 디모데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을까요? 물론 바울이 독불장군이 아니였기 때문이죠. 베뢰아를 위해 신라와 디모데를 남겨두었지만 이제 아덴에 도착해서 사역을 하려니까 동역자가 필요했던거에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신라와 디모데를 사랑해서 양육을 하려고 했던것 같아요. 바울도 지금 아덴에는 처음왔잖아요? 그런데 로마제국때 아덴은 세가 많이 기울어가지고 일류도시가 아니였거든요? 그래서 바울도 혼자와도 괜찮을거다 그렇게 예상했던것 같은데 막상 도착하니까 아덴이 생각보다 너무 대단한거에요. 문화적으로 여전히 헬라문화 전체를 대표하는곳임을 직접보았습니다. 아시아나 마게도냐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문화적 선진 도시였던것이에요. 그래서 따라서 아덴에서의 사역이 앞으로 이어질 아가야 사역을 위해서 신라와 디모데를 훈련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것 같아요. 너무 대단하니까 디모데하고 신라에게 여길 보여주고 싶었고 여기서 어떻게 양육하는지 같이 양육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바울은 동역자를 도구가 아니라 한사람의 귀한 영혼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사역에 보태는 도움도 중요했지만 훨씬 더 중요한것은 그들을 한명의 온전한 사역자로 양육하는 것이였죠. 거기에 가장 필요한것이 기다림이에요. 그들이 올때까지 기다리고 성장할때까지 기다리고 함께하고 배울수 있을때까지 기다리는것이죠. 이런 기다림은 한 영혼을 향한 애타는 관심에서만 나올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들이 누군줄 알고 그들을 어떻게 쓸지 아는것이 목적이였다면 그들이 말씀의 사역자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사명앞에 어떻게 서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을것이에요. 한 영혼을 살리는것이 최고의 목적임을 알기때문에 그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애타는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분별하며 기다릴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다리라고 그 당시 돌로치는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면서 기다리라는거하고는 달라요. 이런말이 여러분들 참 해깔릴것같애
'어머 다 차별하지 말라면서요 왜 이사람은 왜 차별하는데요' 그건 차별이 아닙니다. 택자가 지금 아닌거에요 이사람들은 신라와 디모데를 향한 관심으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바울은 아덴을 조사하며 사역을 준비하려고 했을것이에요. 이제 그래서 도시곳곳을 살폈는데 아덴, 아테네 하면 아까도 말했듯이 철학과 예술의 고향으로 유명하죠.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이 여기서 다 활동을 했고 민주주의도 여기서 시작을 했구요. 신화와 문학이 다 아덴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오늘날까지 음악과 미술에 근간을 이루는 이론과 기법들이 모두 이 아덴에서 나왔어요. 일류문명에 품격을 감당하는 도시라 할수 있겠습니다. 일류품격의 본고장 아덴사람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겠지요. 로마에 정복된 이후 세력이 크게 약해졌던 바울당시에도 이 자부심이 여전했는데요. 이 품격있는 자부심의 열매는 바울이 딱 보니까 온도시가 그냥 우상밭 우상숲 우상뿐이였어요. 우상이 판을 치는거에요. 너무나 안 믿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암직하고 탐나는 예술품이였지만은 그냥 우상신들을 숭배하는 온 도시가 테노페인이라는 역사가는 이 아테네를 한마디로 전부가 하나의 제단이다 곳곳에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라고 했어요. 상상이 안되는 그것을 보고 바울이 마음에 격분했어요. 우리가 분노가 일어나면 다 때려부시고 화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격분했다는 말은 단순히 화가 났다는 말이 아니에요. 신약에서는 조금 쓰였는데 구약에 헬라어 70인 번역에서 보면 이 격분했다는 단어는 거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쓰였어요. 그것도 대부분 금송아지 숭배나 백성들의 우상숭배 반역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막 진노하셨음을 표현할때 이말이 쓰였어요.
그래서 멸망할수 밖에 없게 되었을때 하나님이 너무도 애통한 마음으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격분을 했다는 거에요. 마음이 불붙은 바울은 주일에는 회당에서 주중엔 매일 장터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강론을 했는데 17절에 변론이라는 말은 우리가 2절에 강론이라는 말과 같아요. 아덴에서는 들리지가 않는 사람들이 거의에요. 교양이 있잖아요 그죠 안들려요 근데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것은 할수만 있으면 내게서 이 잔을 치워달라는 예수님의 자기부인의 고백처럼 힘든 일이였을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격분은요 제자들은 사랑으로 기다리며 또 아덴에 영혼들을 향한 애타는 관심으로 그래서 격분이니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거에요. 하여튼 이 격분이라는 단어는 아덴사람한테만 썼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 어떻게 돌로 치는 뭐 이고니온이나 빌립보나 이런데서도 안썼던 가장 교양있는 아덴에서 격분했다고 해요. 부자가 하늘나라 못 간다는게 진짜 맞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목장에서 한 사람을 양육하기위해 얼마나 기다려주나요? 겉으로는 품격의 도시 아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상밭인 내안의, 내 가정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한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현재 산부인과 의사로 분만 전문병원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어요. 낙태죄가 폐지되면서 낙태를 해도 법적처벌이 없어졌습니다. 아직 세부사항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아서 이제 그동안에 낙태시술을 시행하진 않았지만 임신부가 원하는경우 제한없이 시행하라는 지시사항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면 저의 선택지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낙태시술은 명백히 죄니까 분명하게 거절하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세상법상 범법행위가 아니니까 말없이 수행하면서 그냥 회개하면서 가야 할까요? 저는 병원에서 월급을 받다보니까 원장님 지시사항을 거절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낙태시술을 못하겠다고 하는것이 한 생명 한 영혼을 구원하지 못해서 애통해서 그러는건지 저의 영육간에 안위를 위해서 그러는건지 이것도 좀 의구심이 들고 그럽니다. 사실 이거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제가 짊어져야할 십자가라는 생각은 듭니다. 목장에서 얘기를 나누었더니 산부인과니까 목사님께 메일을 드려보라 그래서 저한테 메일이 왔는데 저는 그냥 이분은 정말 리얼 크리스찬 같구요. 이분은 애통하면서 이미 성령의 격분을 하고 계신다고 제가 정말 격려를 해드리고 싶고 이런거에 있어서 문제의식을 가졌다는것만 해도 저는그냥 너무정말 같이 천국에 갈거같아요. 이분이 굉장히 아덴출신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격분을 할수 있지? 하고 히스토리를 봤더니 역시 우리들교회 음행으로 오셨다네요. 그러니까 믿어져요 이게 음행이 없었으면 약간 경건주의가 아닌가 했었는데 지금 이런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는게 너무 감사하고 우리들교회 의사가 이런 질문을 해줘서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자 성령의 격분은 영혼을 향한 애통하는 관심인데
2. 세상의 정신 앞에 격분해야 합니다.
18절이에요.
18.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강론을 하고 복음을 전하러 삶의 현장으로 나가니까 그 시대의 세상정신이 바울을 맞이하잖아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딱 나뉘어졌어요. 다들 이 둘은 아주 라이벌 관계라는걸 아시죠? 쾌락과 금욕에 라이벌관계가 서로 옳다고 하면서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니까 딱 그 둘이 한패가 되가지고 바울과 쟁론을 합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인들이 완전히 적인데 예수님 죽이는데는 한패가 되요. 여기도 바울죽이고자 한패가 됩니다. 세상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예나 지금이나 사상과 종교의 목적은 다 행복이에요.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 역시 다 행복이 목적이지만 행복으로 가는길이 달라요.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이 탐욕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구요 여기도 이제 철학이니까 아주 고차원적인 쾌락을 가르쳐요. 낮은 수준의 욕망은 억제하고 유혹을 이겨내서 그래서 즐거운 상태가 되라 내가 많이 가지는게 아니라 내욕심을 버리고 작은것에도 행복을 느끼는거 이거 우리 사회가 가르치잖아요? 이거 왜이렇게 행복을 추구하냐하면 이들의 출발이 원자론이고 유물론 즉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거에요. 그러니까 살아있을때 행복하자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고난과 가르침을 너무 싫어해요.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의 철학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만 살면 되는거에요. 이에 비해 스토아학파는 쉽게 설명하면 이성주의자들인데 금욕주의 경건주의라고도 하고요 스토아는 기둥이라는 뜻이죠 기둥에서 거닐면서 이 가르침을 전했다고 해서 스토아 철학이라고 합니다. 이성이 최고의 판단기준이고 냉철한 이성적 생각끝에 마음에 평화에 도달해가지고 운명적으로 주어진 일에 더욱더 능동적으로 편해야한다. 그러면 다 비슷해보여요. 그런데 이성을 따라서 생각하면서 모든걸 충족하고 이 사상이 발전해서 영지주의가 되는데 아주그냥 아덴의 전체가 거대한 신의 이성에 하나가 된다고 해서 신이 만천하에 범신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은 한마디로 이성이 왕노릇하는 슈퍼맨 또는 슈퍼히어로가 되기를 추구하는 철학이에요. 그래서 로마의 지도층과 황제들이 이 스토아 철학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육체를 부정하니까 육체는 더러운거니까 이성만 있으니까 물질을 부정하니까 그래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자살을 아주 선한 것이라고 가르쳤어요. 자살 또한 이성적으로 심사숙고한 뒤에 행할수 있는거에요. 이성이 중요하니까 그런데 그사람의 삶이 고통스러울때는 정당한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에 실제로 이 스토아 학파 창설한 제논이 자살을 했어요. 두번째 후계자 클레안테스도 자살을 했어요. 네로의 스승인 유명한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노년이 되어 육체적쇠락이 와서 자살하는것은 옳은 일이라고 주장을 했어요. 이 세네카도 자살을 했어요. 그 제자인 네로황제도 자살을 했습니다. 그러한 논리에 따라 로마의 스토아 학파는 이성적으로 심사숙고한 사람이 자살을 원할때면 정맥을 자르는데 능숙한 기술자를 보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이 스토아 학파라서 자살들을 할까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자살들이 너무나 쉽게 행해집니다. 우리나라가 예전보다 아덴이 되었잖아요. 황제들이 좋아하는 자살 동성애 쾌락의 끝판왕이고 나중에 딱 육체를 부정하니까 나의 이성과 명성에 맞지 않으면 딱 자살하는 이게 얼마나 매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떤분은 지난주 제 설교에 대해서 목사님은 상관없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시기질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하면 용납할수가 없다고 그러대요? 그러니까 요세 연예인들 자기가 좋아하는 팬 요세 중년의 팬카페가 많아가지고 서로 싸우고 그러더라구요. 그러고 그사람이 광고나오면 다 산대요. 그사람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그런다고 하더라구요.
인간이 추구하는 삶은 결국 이 두종류의 삶이 적당히 섞인것 아니겠습니까? 에피쿠로스 학파처럼 무사안위를 추구하는 학파도 있고 스토아 학파처럼 군계일학을 추구하는 부분도 있어요. 상황에 맞게 이 두 부분을 잘 조합해서 대처하는게 인간의 지략이라고 하는거에요. 결국 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본적인 노력이 되겠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다 이렇게 살아가는거죠.
여러분은 쾌락주의입니까 금욕주의입니까 경건주의입니까 그런데 결국은 겉으로 쾌락 겉으로 경건해도 뒤로가면 다 똑같다구요 결국은 다 끝에 가보면 음란의 문제가 있던지 인간의 한계인거죠. 그러니까 이런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르침을 듣고 바울이 어떻게 격분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이성과 쾌락이 아닌 복음을 가지고 현장에 나아가서 이 시대 정신과 싸워야 되는게 성령의 격분인거에요. 이 시대정신 쾌락과 금욕주의의 정신앞에 격분하고 신앙을 적립해서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것이 성령의 격분인거에요.
그래서 이제 가르치니까 오늘 18절에 바울보고 말쟁이라고 해요 말쟁이
이거는 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정신없이 쪼아먹는 참새를 보며 만든 표현인데요 그런 참새처럼 여기저기서 단편적인 지식을 주워다 짜깁기해서 그럴듯한 썰을 만들어 풀어대는 거리의 철학자들을 폄하하는말인데 그걸 바울에다가 딱 하면서 이 말쟁이가.. 바울이 비아냥을 몰랐을리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멈추지 않고 전했어요. 수치와 조롱을 당해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신사에요. 날마다 장터에 나가서 예수와 부활을 전하고 또 전했어요. 왜냐 빌립보서 3장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 어떤 지식보다도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뛰어난 지식이고 최고의 지식임을 확실히 알았기때문에 이런 사람은 성령의 격분을 하지 않을수가 없는것입니다.
19절~20절에
19.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그래도 있잖아요 아덴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처럼 시기심에 때리고 가두고 매질하고 그러지않고 선동도 하지않으면서 이 새로운 가르침이 이상하지만 그 뜻을 알고싶네~ 굉장히 멋있어보이죠? 그렇지만 이 아덴 사람이 제일 안믿었어요. 도리어 항상 때리고 이런사람들이 진도가 빨라요. 자고로 때리는 사람들은 이혼안해요 안 때리는사람들이 이혼해요. 말한마디 안하고 이렇게 있다가 내일 이혼해요 그래요. 교양있는사람이 제일무서운거에요. 그래서 이제 더 안변하는 사람이 아덴사람인거에요. 아레오바고로 끌고갔어요 아레오스파고스는 옛부터 이어진 아테네의 최고법정인데요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레오라는 말은 전쟁이구요 바고는 언덕이라는 말이에요 의미상 전쟁의언덕으로 바울은 이 시대정신앞에 붙들려 갔어요. 말쟁이라고해서 옥에 갇힌 빌립보에서도 소동이 일어난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강론할때 늘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한사람도 믿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아덴에 현재 지금까지 아무도 알아 듣지도 못하고 말쟁이라고 조롱하고 이 아레오바고 이 전쟁터에 우리는 붙들려가야 합니다. 전쟁터로 나가야합니다.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사이에 일생전쟁이 있어요. 왜냐하면 전쟁을 통해서만 나의 단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깨지기 때문이에요. 이땅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추구하는것이 복음이 아니에요.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손에는 신문을 보면서 우리의 거대한 시대정신앞에 격분하면서 싸워야되요. 그 세력이 너무너무 강력한 짐승과 용의 세력이라고 계시록할때 들었잖아요. 싸우다 보니까 내가 싸울상대가 배우자, 자녀, 돈인줄 알았는데 이 전쟁을 통해 바로 내 자아가 나의 옳음이 내 생각이 이 전쟁가운데 죽어져야할 대상임을 깨닫고 바로 내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최고의 원수임을 깨닫고 우린 맨날 상대방보고 뭐라그래요 내 죄를 보고 깨달아야하는데 날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상고하면서 이제 판단하고 분별을 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져야만 부활의 승리를 경험할수가 있는데 날마다 상대방보고 잘못했대 아직도 해결이 안된대요. 그러니까 어떤경우에도 내가 하나님앞에서 죽어져야될 죄인중의 괴수가 나인데 자꾸 상대방 나는 그것만은 용서못해 그것만은 안되 그게 어딨어 아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학교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자녀들에게 그냥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성은 니가 선택하는거다 남성과 여성도 니가 선택하는거야 생명까지도 니가 선택할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 시대의현장 우리나라의 현장이죠. 더나아가 가정도 이성적으로 선택해서 이혼하고 또 선택해서 재혼하고 또 선택해서 이혼하고 니 삶을 니 이성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이 스토아의 이 철학적인 현실앞에 우리는 삶의 치열한 터전인 이 시장으로 들어가서 변론을 할때 바울처럼 말쟁이다 고리타분하다 배타적이다 조롱을 받을수 있어야 하는것이죠. 이게 성령의 격분이라는거에요. 애통하면서 니가 죽게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교양있게 얘기를 할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21절에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레오바고에 끌려가서 계속 전쟁을 하다보니까 거기서 이제 그 사람들 연구하다 보니까 아덴사람들이 오직 새것에만 관심을 쏟는게 보였어요. 아덴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고 가진게 많아가지고 어제 들은 철학에도 식상을 합니다. 모든것은 새것만 이제 가치를 두는거에요. 사실 하나님이 만든 태양은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어요 우리는 날마다 새롭지 않습니까 ?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운거에요. 그래서 불신결혼은 하면 안되요. 헌거라고 자꾸 갈아치우니까 그래서 근데 그들은 너무 똑똑해서 태양까지 가보겠다고 날마다 천음을 아끼며 연구를 하는거에요. 우주선을 뭐 날리고 인공위성을 날리고 새로되는 학설로 말하고 듣기 위하여 그렇게 시간을 씁니다. 아덴이 아마 나사본부고 실리콘밸리인것 같아요 그래서 그곳에 유학간자도 많았습니다 나그네도 외국인도 많았어요. 항상 성경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얘기로 읽어야 되는거에요. 늘 새로운것에 깨치는 박사들만 모여있는 소위 세계지성인들이 모인 이곳이 여러분들 다인간이 별 인간이 없어요 별인생이 없어요 그렇게 새걸 좋아해요 그래서 그냥 지성인들이 반복을 싫어해요 반복되는 말을 듣기도 싫어하고 같은말을 반복하는거는 더 싫어하고 자기는 늘 새로운것을 말하고 들어야 하는데 반복하면 자존심이 딱 상한다는거에요. 그래서 이걸 물어볼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우리 이성은목사한테 밖에 이걸 더 물어보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반복하는게 싫으냐고 그랬더니 정말 제가 싫었어요 그러더라구요 같은말을 두번하기가 싫었다고 그런데 이제 아내가 속을 썩여줘서 달라졌다고 요세 같은말을 반복한다고 이제ㅎㅎ 모든것은 교육은 반복에서부터 시작되잖아요 그죠? 늘 그러니까 새로운 얘기만 하니까 계속 새로운걸 더 만들어야 내니까 새로운걸 깨치는거 같습니다. 게다가 이제 이 지성으로 탐구만으로도 생계를 해결할수 있는 대단한 능력자처럼 보이니까 너무 그럴듯해 보여요. 이사람들이 새거를 좋아하니까 거룩해보이지만 자기네가 추구하는게 다를뿐이지 여자도 집도 차도 학문도 늘 새것에 목말라있어요.
세상은 그런사람을 또 부지런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새것이 좋은것이 연애나 여행이 대표적이에요. 여러분 연애는요 10년을 만나도 늘 새옷을 입고 만나는거 아시죠? 여행도 늘 새로운 시트에서 눈을 뜹니다. 근데 10년을 20년을 연애해도 결혼을 하면 그날부터 헌옷을 입잖아요. 그러니까 딱 싫은거에요 헌옷입고 만나니까 그러니까 삶은 헌것이에요. 새것의 한계는 너무 얄팍해요 새옷입고 만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서 너무나 얄팍하게 알수밖에없어요. 생각 사고도 깊을수가 없습니다. 미인은 3년 행복하고 요리를 잘하면 30년을 행복한데 예수 잘믿는 사람을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뭘 택하시겠어요?
이만큼 인생이 짧은거에요. 그래서 200년된 간장은 상상을 불허하는 맛이라고 하잖아요. 여러분은 새거를 좋아하세요 헌거를 좋아하세요? 그런 말도 안되는 질문은 하지를 마세요 이렇게..ㅋㅋ 이질문조차도 뭔뜻인지를 몰라 여러분들이 이렇게 나눔질문만 가지고 하시면 완전 도덕적인 나눔이에요. 제발 그냥 헬리나우웬하고 도스프예프스키는 목사님이 왜 그 질문을 주셨을까? 한번 이제 생각을 좀 해보고 이 설교를 한번씩 요약을 하면서 질문을 던져야지 남자들 나눔보면 완전히 그냥뭐 질문만 제가 준 적용질문만 가지고 하니까 참 전체적으로 사고의 폭이 넓어지지 않는것 같아요. 결국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는 하나에요 생각해보세요 이게 인간이 이해를 해야하는데 성적인 성욕과 식욕이 인간의 2대본능이에요 근데 이 성적인 그 기쁨을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그거를 끊을수가 없는데 쾌락이 경건하다고 하니까 육은 부정적이고 여긴 아무거나 쏟아부어도 된다고 하니까 얼마나 에피쿠로스파 학파에 또 표를 주고싶고 또한 그게 또 스토아학파도 마찬가지인거죠. 이쪽은 쾌락이고 이쪽은 경건을 가장했지만 사실은 똑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죽고 싶은데 자살이 정당하다고 하니까 옳소이다 하는거죠. 그러나 바울의 새로운 가르침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거에요. 고난이 축복이다 가정은 지킬만한 최고의 가치다 생명은 지키고 낳아야 한다. 이렇게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우리는 계속 변론을하고 적극적으로 전하고 격분을 해야되는거에요. 바로 어제 그제 그룹간의 세기의 결혼인 선남선녀가 결혼8개월만에 이혼을 했다는거에요. 너무 안타깝지요? 얼굴 뭐 이뻐 공부많이했어 돈많아 그럼 행복해야되잖아요. 모든걸 갖추었는데 아우 근데 이럴땐 정말 한마디만 해주면 이혼안할텐데 하는 마음이 늘 있지만은 여기가 아덴사람들이니까 모든걸 너무 갖추었기때문에 이게 들리지가 않는거죠. 또 독일의 슈레드 전총리가 다섯번째 결혼을 하고 한국인 아내하고는 두번째 결혼을 해서 한국인 남편한테 소송을 당해서 3천만원 판결이 나왔다니까 그게 일부 책임이 있는거죠. 지도자들이잖아요? 근데 통역한번의 만남으로 양쪽가정이 다 깨진거에요. 그러니까 여자나 남자나 남자의 동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수 밖에없는게 한번의 만남에 양쪽가정이 다깨졌어요.
그러니까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가 감시를 해야되겠어요 안해야 되겠어요? 한번의 만남이 역사를 바꾸니까 그만큼 이제 남자는 흙이고 티끌이고 먼지가 되서 돌아다니니까 참 피곤하죠 빌게이츠는 전 세계의 존경을 받다가 더이상 부부로서 성장할수없다면서 이혼을 했어요. 이시대의 정신이에요 여기에 격분을 해야되는데 격분하는사람 하나도없죠. 이혼이 너무 요세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재벌사람들도 이렇게 하는거에요. 그만큼 우리때보다 너무 자유로워졌어요. 인권이 왕노릇하니까.. 내가 너무 이혼하고 싶고 그런데 에피쿠로스 학파 이론이 얼마나 가뭄의 단비같습니까 동성애자들에게 헬리나우웬이 예수안믿어도 구원받을수있다 자꾸 내가 죄를 지으면 진리를 자꾸 왜곡시켜요. 맨 처음에는 카톨릭에게만 구원이 있다 그러더니 본인이 못 끊으니까 아무나 예수 믿을수 있다 천국갈수있다 이렇게 만인구원론은 모두가 쾌락과 금욕의 원리를 갔다붙이니까 그들에게 우상이 되는거죠. 너무 이해가되는거에요. 나는 돈 많아 그런 환경이 있어 마음대로 만날수있어 내가 그 짜릿한 기쁨을 아는데 내가 왜 끊겠어요. 돈 많고 환경이 되는데 그걸 뭐라고 할수가 없어요.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걸 끊을자가 없어요 자기가 생각하는 우상이 조금 다를뿐이에요. 이사람은 게임이고 이사람은 성적중독이고 그런데 여기서 가정을 깨도좋고 죽고싶은데 자살을 합리화 시켜주고 그러니까 다 맞다고 하는거죠. 이세상의 특징은 주님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어요. 근데 이 세상의 악을 합리화 시켜주는 정신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철학이라는거에요. 양쪽의 주장이 다르지만 똑같은거에요.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것이 죽는 멸망하는 길이라는거죠. 그러니까 이 새로운 가르침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려야 하는 가르침인거에요. 악하고 음란한 본성을 거스러야 하는 가르침에 바울은 격분을 했잖아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좁은 길이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걸 하지말라고 하니까 우리들교회는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돌로치고 싶은 사람도 많은 교회에요. 본성을 자꾸 거스르는 가르침을 하니까
이것때문에 살아나잖아요? 살아나니까 한쪽에서 너무 싫은거지요. 읽으면 읽을수록 아덴사람이 이해가 되고 그러고 내옆에 사람들이 돈 많고 환경이 되는데 못끊는거에 대해서 정죄할수가 없어,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그럴수가있어요. 지금봐요 이 세기의 선남선녀도 모든걸 갖추고 이혼을 해버리잖아요. 얼마나 이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기가 이게 힘든길이겠냐고.. 격분을 안하면 전할수가 없어, 어떻게 이 지도자동무들한테 가서 이 얘기를 할수가 있겠어요 주눅이 팍 드는데.. 펄스트 맨한테가서 뭘하지말라 이런말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죠? 진짜 보니까 이길을 가는게 힘든일이구나 바울에 대해서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나는 이혼.낙태.동성애 앞에 말쟁이 행동쟁이가 되어 조롱받으며 격분하고 있습니까? 이성적으로 그럴수 있다고 존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새차,새집,새여자,새남자,새학문,새목장,새여행 어디에 우상을 삼고 있습니까?
성령의 격분은
3.범사에 종교심이 많음을 보고 격분해야합니다.
22절~23절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이종교심이 많다고 하면은 훌륭해보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이 종교심은요 미신이라는 뜻이에요.
붙들려간 바울이 아덴사람을 보니까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 이 얘기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데 넌 참 미신적이야 이러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잖아요 이게 미신적이라는거에요 이게 욕이에요. 세상문언에서는 종종쓰이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여기 딱 한번 쓰였어요. 아덴사람들이 얼마나 범사에 종교심이 많은지 문자적으로는 귀신들을 두려워하는 이런뜻이에요. 최고의 지성이 귀신들을 그렇게 두려워해요 범사에 귀신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그냥 잘난척하고 대단한 철학자들인 아덴사람들인거에요 항상 가장 새로운것만 찾는 지적호기심 안에는 사실 귀신에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숨어있다는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지성이 왜이렇게 끊임없이 더 새로운것을 찾아서 방황하는줄 아세요? 성경은 그것이 두려움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수많은 신들을 섬기면서도 그럴듯해보이는 새로운 신이 등장할때마다 신상과 재단을 만들어 섬김니다. 지금 이렇게 언택트 시대가 될지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재단을 섬기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빠뜨린신이 있을까 두려워서 알지 못하는신에게 바치는 재단까지 만들어 두었어요. 미처 몰랐을까 두려운것이에요. 아는것이 나를 지켜줄 힘인데 미처 모르면 그 힘이 없는거니까 두려운것입니다. 끊임없이 탐구하는거에요. 무서운 열정으로 더 새로운 지식을 찾아서 끝없이 방황합니다. 근데 정답이 딱 생기면 오히려 두렵습니다. 그게 또 정답이 아닐수 있잖아요. 마음이 쉬질 못해요 안식을 못해요 정말 귀신들을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입니다. 그러니까 모든걸 다 잘하는건 다 귀신이에요. 피아노를 귀신같이 잘치네 그러지 하나님같이 잘치네 이러진 않잖아요? 이거 오늘 잘들어야되요. 고린도전서 8장 1절에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은 마음에 바람을 넣어서 부풀어오르게 합니다.
영혼에 후까시가 팍 들어가게 하는거에요. 마음이 높아지는거에요 지식이 인간에게 가장 고상한 힘이잖아요 지식을 가지면요 교만해질수밖에 없어요 높아지니까 떨어질까봐 두렵습니다. 높아질수록 낮아지지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많이 알면 알수록 두려움이 더 커집니다. 잃을게 더 무서워져요. 그러니까 자살을 하는거에요 높았다가 내려가면 그걸 감당을 못하는걸 여기서 예외인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교만이에요. 하나님처럼 바로 높아지려고 하는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리는 우리자리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자리에 가려고 하는거 자체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거에요. 대단한 아덴사람들의 지성안에 감춰진 두려움을 바울이 정확하게 간파를 했어요. 그러니까 저런 범사에 종교심을 가지고 구원받지 못할 그들을 보니까 애통이 되는거에요. 지옥얘기를 해줘야 천국을 갈텐데 지옥얘기를 해주는게 격분하는거잖아요. 사랑으로 그래서 애통해야되는거에요. 이 예수가 안들리는 이 똑똑한 사람들때문에 거룩한 분노가 생겨야하는데 데살로니가전서 3장 4절에 바울이 아덴에서 데살로니가에 있었을때를 기억하면서
4.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바울의 가르침은 행복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성도는 고난 받는 이를 위하여 세움받는 자들이라는거에요.
고난 당하도록 세워졌다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늘 일관되게 장차 받을 환란에 대해서 가르치니까 이들은 못 알아들을수 밖에없고 그냥 진짜 교회를 다녀도 유대인도 못알아듣는 이야기를 바울은 가르치고 전하고 늘 일관성있게 구속사를 말하고 욕을 먹는거에요. 우리는 맨날 앞날이 어디를 봐야되고 동쪽을 조심하고 꿈자리가 어쩌고 저쩌고 근데 우리는 십자가를 길러놓고 가니까 종교심을 가지는게 아니고 말씀으로 해석을 받으니까 평안한것입니다. 할렐루야 근데 오늘도 들었지만 정말 10년만에 아이가 처음 생기고 우리들교회에서 기도로 힘들게 아이를 가졌어요. 가져서도 힘든일이 너무 많았는데 7개월째 접어들었는데 큐티책을 안본답니다. 왜냐면 간증이 무서워서 애기엄마가.. 이게 믿음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말도 못하게 믿음의 집안에서 거기 종교심만 있으니까 결국 기복인거죠. 하나님보다 태교에 음악이 더 좋고 좋은얘기가 하나님보다 더 윗자리에 있으니까 지금 이제 두려움이 몰려오는거에요. 간증을 들으면 이렇게 될까봐
이게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똑같은거잖아요. 너무나 믿음의 깊이가 얄팍한거에요. 이게 귀신믿는거 아니고 뭐겠어요?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자리에 음악이 가있고 태교가 가있고 지금 그러는거죠.
적용질문 드립니다.
[적용질문] 여전한 방식으로 반복하기 지겨운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새로운것을 찾는 대단한 지성 안에 두려움이 숨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인정됩니까? 알지 못하고 위하는 헛된 우상은 무엇입니까?
아덴사람이 헛된것을 알지 못하고 위하는데 믿는사람이 기복적으로 섬기는 우상과 지금 똑같은거죠?
내가 헌금하고 봉사하고 이 모든것들이 기복을 위해서 하면 그거 귀신섬기는거라 이말입니다.
하나님자체가 제일 위에 있어야 하는데 생색이 나는거죠. 굉장히 어렵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할렐루야
자 공동체 고백은 이 남편이 막 S대를 비롯하여 명문대 경영학도의 카이스트 금융 공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유수한 NBA를 졸업하고 한때는 신문방송 라디오 등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했던 금융전문가 그런데 이 금융전문가께서 선물옵션을 해가지고 집두채를 날리고 반 지하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요세 유투버들이 그냥 나와서 해대는데 그런거 믿지마세요. 금융공학대원을 나와서 이분이 카이스트에요. 일류는 다거쳤어요. 그랬는데 강남에 집이 너무 허름한게 있는데 고치기도 너무 힘들고 세입자가 빨리나간다그래가지고 할수없이 그냥 너무 고치기도 싫어가지고 그냥 팔아버렸다는거에요. 그나마 그거 여기 이동네 그냥 계약서에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집값이 뛰고 또 뛰었는데 재건축이 되가지고 미치고 폴짝뛸일이.. 그러니까 이 그냥 돈이라는건 이타적으로 생각해야지 벌리고 성령의 전략으로 아무것도 안해야지 벌리지 내가 비트코인이 나쁜건 아니에요. 플렛폼이 그랬는데 그거 할려면 24시간을 거기에 붙들려있어야하니까 다 영이 피폐해지는거에요. 정상적으로 벌어야하는데 비트코인의 책을 세권이나 쓰신분도 계세요. 그걸 균형잡혀서 하려면 정말 하기가 어려운거에요. 그래서 망한직후에 우리들교회에 왔어요. 성령의격분으로 애통해하시는 허다한 증인들의 간증과 설교로 자신에 대해서 격분하여 애통이 되니까 미스코리아 출신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건설사 현장소장하시던분이 마트에서 청소를 하신다 하시며 육체노동을 하시란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금융맨이였던 남편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낮밤이 바뀌는 과일배달을 하고 햄버거가게 얼마전에는 편의점가게 야간근무자로 일하며 적용을 했어요. 아덴출신들이 주님을 만나려면 이정도는 되야 가능한거에요. 그렇게 열심히 전심으로 말씀을 상고하면서 이땅에서의 마지막일터를 주시기를 간구했는데 이분이 얼마나 열심이에요. 학력으로 이런 학력을 쌓을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죄를 회개하면서 목사님책 면접을 읽으며 말씀과 기도로 취업을 준비를 했는데도 계속 취업시험에 떨어지더니 4번째 이번에 주님이 합격을 허락해주셨다는거에요. 이게 마지막 일자리 이분이 60이 다되었는데 구원과 거룩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남편이 되길 원한다고 아덴사람은 믿는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이분은 특별은총을 받으셔서 구원받았네요? 이분이 목자에요 다음주일에 등장하시겠습니다.
정말 장르와 종류별로 그러니까 돈돈돈돈 하시는데 그렇게 돈이 벌리는게 아니에요. 성령의 전략으로 이타적으로 살아야지 하나님이 돈도 주고 가져가시기도 하는거에요. 할렐루야 그많은 시간을 거기에 투자하니까 돈이 안벌리는거에요. 그런사람은 돈 벌리면 더 큰일나요 할렐루야. 말씀 맺어요 성령의 격분은 첫째로 영혼의 애타는 관심인거에요. 그럴려면 이 세상의 정신앞에 격분을 해야 하는거에요. 범사에 종교심이 많은거 한마디로 기복신앙인거죠. 격분해야되요 교회내에서도 격분해야될일이 너무 많은거에요 귀신을 섬기니까 두려움이 너무너무 많은거에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데 간증을 듣고 두려워할수가 있어요 지금까지 내가 섬긴게 하나님을 빙자한 귀신이였다는거지 기복인거지 귀신이 복을 준다고 생각하니까 알지 못하는단에게까지 제사를 드리잖아요?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찬양: 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아버지여 고쳐 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아버지여 고쳐 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얼마나 한 영혼을 향한 애타는 그런 격분이 있어야 되는지 몰라요
오늘은 특별히 아덴 같은 사람들을 볼때에 정말 금그릇이잖아요
찔러도 정말 아무것도 안들어가요. 아덴의 선교는 꼭 실패한것처럼 이제 정말 그렇게 너무나 성적이 형편이 없는데 부자도 하나님의 레이다에 들어와있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바울이 어디에서도 안쓰는 이 격분을 해서 부자가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보다도 더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격분을 해야되요. 그런데 바울도 격분했으면 우리도 격분할수 있어야 되잖아요 부자하고 나하고 무슨상관인가 꼭 돈이 많아야 부자는 아니에요 이 교양이라는 거기에 그냥 정말 둘러싸여있어서 이 세상에 쾌락과 금욕주의로 모든걸 포장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이제 우리가 복음으로 우리가 격분하기 위해서 조롱을 잘받아야되요 무시를 잘받아야되요 그런데 내가 믿는것이 나도 몰랐는데 귀신을 섬기는것처럼 두려워한다그래서 그래서 이것을 미신처럼 믿기 때문에 너무 두려운게 많은것이에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자리에 귀신을 놓지 않도록 기도하시고 이제 이 시대에 내일서부터 목회자 세미나가 열리는데 정말 오신 한분의 목사님이 변하면 이런 진정한 구속사의 목회가 가능할수 있도록 여러분들 기도해주시기 바라고 이 목세에 기름을 부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모든 순서순서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는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고 낙태법 평등법 차별금지법 이건 정말 통과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국회에서 그 다음에 후속을 못해요 이걸 발의한 사람도 그렇고 통과시키는 사람도 영원히 기록에 남을거라고 생각을해요 하지만 우리는 기도로서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기도한대로 되기 위해서 더욱더 안타깝게 기도하시고 격분하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주님부르고 기도합니다.
김양재 목사님 기도
아버지하나님 성령의 격분이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애통이라고 합니다. 질투와 시기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진노로 애통하시는것이라고 합니다. 아덴사람을 보고 이렇게 격분해야 하는데 주님 저는 듣지 않는 그들의 교양에 질려서 주눅이 들고 입이 안떨어질때가 참 많습니다. 쾌락과 경건이 이 세상의 정신이라면 정말 격분해야되는데 우리 산부인과 선생님의 고민을 보며 이 시대의 이런 고민을 하는 크리스찬이 얼마나 있을까 하며 그 입장이라면 우리가 다 이렇게 격분을 할까 생각을 합니다. 주님 이 스토아와 에피쿠로스에 이 시대적인 정신에 이 본성을 거스르는 복음을 전하는것이 얼마나 좁은길인지 모릅니다. 주님 우리부터도 끊지못하는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아버지하나님 우리편을 들어준다면 그길로 가고싶지 이 좁은길을 가겠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격분하여 이 좁은길로 가지못하고 아직도 너무나 넓은길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이렇게 보입니다. 주님 정말 누구말을 할것없이 제가 안되기때문에 여러분들이 안되는거 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날마다 기도하지만 이렇게 삶이 안따라주니까 삶에서 상고를 이렇게 못하니까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참으로 우리들의 모든 간증이 성령의 격분으로 간증하는것인데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간증을해도 전혀 귀가 들리지가 않는 우리 아덴사람들 주여 찾아가서 귀를 열어주시옵소서. 들리게하여 주시옵소서. 내일부터 행해지는 목회자세미나에 주님 기름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하나님 이시대의 구속사가 들리는 교회들이 나올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며 평등법 건강법 여러가지 이름으로 행해지는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통과되지 않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느낀점
여전한 방식으로 여자친구를 만나는건 좋지만 한편으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준비하면서 데이트장소를 검색하고 새로운 맛집을 검색하고 그런 과정이 너무 힘들때가 있다.
난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게 있다 오늘 먹은건 내일 먹으면 안되고 어제 먹은건 오늘 먹으면 안된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박혀있는것같다. 그래서 엄마가 밥할때 참 힘들어하신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대단한 지성안에 두려움이 숨어있다고 하시는데 어릴때 게임중독으로 집콕으로 지내서 그런지 어딜 많이 돌아다니면서 놀아본적이 없어서 모르는 장소를 찾고 계획하는게 두려울때가 있다 모르니까 막상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서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생각했던거랑 다른곳이고 노잼이면 어쩌나 하는 이런 두려움이 항상 있었던것같다. 또 소방공무원시험을 준비했던 시절에도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을때는 시험볼때 두려움이나 긴장감 같은게 1도 없었는데 내가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내가 모르는것이 있을까봐 그것이 늘 두려웠던것 같다.
하나님자리에 내 자신을 우상으로 올려두고 내가 모든걸 다 알아야하니까 그것이 안되서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영혼에 후까시가 팍 들어가고 교만해질때로 교만해져서 1,2차시험을 합격했는데 아무도 안떨어진다는 면접시험에서 내가 딱 떨어지고 나니까 한순간에 정말 죽고싶은 마음이였는데 그만큼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는것이 좋고 세상 성공을 우상삼고 누구보다도 내자신이 교만하게 하나님자리에 앉아있었구나 라는게 깨달아졌다.
나의기도
주님 제가 모르는게 너무나 많은데 나보다 못한 사람앞에 서면 항상 아는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렇게 다떨어지고 빈털털이로 교회로 나오게되었는데도 조금만 돈이 생기고 조금만 아는게 생기면 늘 이렇게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새차 새집 새로운데이트장소를 찾고 자랑하고싶고, 조금만 돈있고 환경이 좋아지니 할줄아는거라곤 음란하고 세상쾌락을 찾으며 죄짓는것 밖엔 할줄 아는것이 없는 죄인인것을 봅니다. 오늘 성령의 격분은 이 세상의 정신앞에 복음을 들고 나가서 자기자신을 거스르는 세상 사람들에겐 정말 말도안되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는 제 행위만 보면 그저 딱 입이 다물어져서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늘 세상의 정신앞에 작아지고 쭈구러져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교회에 발만 걸치며 온전하지 못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세요.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며 말씀을 우리 삶으로 가져와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잘 듣고 갈수 있도록 영육간에 지치지 않도록 우리 목자형님과 목원형제님들 지켜보호하여주시고 무엇보다 저부터가 부목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며 제게있어 가장연약한 음란의 유혹앞에 넘어지지 않도록 내 힘이 아니라 말씀 붙잡고 하루하루 이겨낼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장참석: 성화,기훈,병희,데이비드,희준
김성화 기도제목
1. 쓸데 없이 쿠팡결제로 쾌락 즐기는 거 하지 않기
2. 내 죄를 볼 때 애통함이 생긴다고 하셨는데 한 주간 큐티 잘하고 죄 잘 보고 가길
이병희 기도제목
1. 스스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해주세요
2.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따르게 해주세요
손희준 기도제목
1.일보다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기(새벽5시기상해서 말씀묵상하기ㅋㅋ)
2.목장식구들에게 애통한 마음을 가질수있도록
3.생활예배 잘드리기
4.음란한유혹이 들때 목장에 오픈하고 잘이겨낼수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