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05월 16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17장10절~15절
제목 : 성령의 신사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0절 -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절 - 베뢰아가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절 -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절 -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가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절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김양재 목사님 인사말씀
대단하시죠?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중한 것인지 저렇게 이상해도
다 아이들은 새 아버지 새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게 있는 거예요. 왠만하지 않으면은 지금 우리 집사님이 그럴 수
있다는 게 너무 이해가 되는데 아이들은 양가의 집안에 많잖아요.오늘 이후로 교회에 가서 목장에도 나오고,
그것도 뭐, 할 수 있는 게 아닌게, 그럴 수 밖에 하나님이 환경을 허락하셔서 우리들 교회는 별 인생이 없어서,
전부다 받아들이고다 자녀분들이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를 졌으니까,
그리고 들어보면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어요.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 해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다 떠내려가요. 이 세상 어떤 가정이라도 거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가정이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최악의 남편이지만 살아온 게기가 막혀서 우리들 교회에서 보내신 것 같아요.
상 받았어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이 간증으로 모든 자녀들은 목장에 들어가셔서,
믿음의 선가정 섬기기를 추권합니다. 하나님은 고품격 신사 되기를 믿습니다.
다음 주일 부 터는 미루어왔던 세례를 하려고 해요. 1부 예배에는 유아세례2부 예배에는 장년 세례 3부 예배에는
청년부 세례 및 입교식을 합니다. 축하객들은 5명으로 제한 하겠습니다.
신교제의 세계 신청 기간은 5월 16일 주일 ~ 5월 23일 주일 까지 목장을 통해 공지하고,
신청서 된 사람에게는 개별 연락을 드리겠어요. 내어놓고 하려고 합니다. 청년들이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예배 드리러 와야지. 여기가 텅텅 비어있으면 안 되는데 뭐 하는 거야?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커피 마시니?
다음번에는 교회에서 꼭 만납시다. 자리가 텅텅 비었어요. 우리들 교회는 그러면 안 되잖아 그렇죠?
돌아오는 이번 주 수요일 5월 19일은 공휴일의 관계로 판교 채플에서 저녁 예배를 시작합니다.
시간은 저녁 7시 30분에 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전국에 신학대학 총장님들 16명분께서 논문을 헌정했어요.
강에서 바다로 우리들 교회 같지 않아요? 전직 현직 신대원 총장님들 열여섯 분께서 저한테 헌정을 했기 때문에
헌정사도 들어가 있고 제 사진도 여기 이렇게 있고 김소엽 시인이 축시도 있고요.
수요일날은 그걸 한번 들려 드릴까 해요. 은혜 많이 받았어요. 어록이 3페이지에 들어가 있어요.
총 500페이지 까지 있습니다. 언제 읽으시겠어요? 횃불의 이정숙 총장님은 우리들 교회도 담으셨어요.
우리들 교회 관련된 이야기 썼어요. 헌정사를 몇 페이지 쓰고 사진이 딱 나와 있어요.
저의 30권 양력 경력 어록이 몇 페이지에 걸쳐서 어록이 나와 있어요.
3-4페이지에는 시가 있고 그냥 이거는 논문을 읽어도 좋겠는데, 길지 않으니까 읽어도 좋겠고,
집에서 하나씩 비치해두고 우리들 교회 뭐라고 하면 이렇다 자랑질 하면서 교수님도 아니고 완전히 총장님들이
썼다는 거에 대해서 값을 매겨서 나왔는데, 저한테 준거니까 종이값만 받으시고, 여러분들은 집에다가 하나씩
가져다가 놓고 우리들 교회 이런 교회라고 하나씩 자랑하라고, 25000원 이라고 합니다.
종이값만 받으시라고 10000원 부과세 1000원 총 11000원에 판교 1000권 휘문 1000권 가져다 놓았으니까
대대손손 우리들 교회이런 교회 였다고 자랑질 좀 하시라고, 구입 좀 하시기 바랍니다. 네.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신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 성령의 신사가 있다고 하오니,
성령의 신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여러 가지 부족해도 믿음만 있으면 된다가 우리들 교회 슬로건인데, 우리는 믿음이 있으면 뭐해 정말 안 믿어도
상식과 인격이 있는 게 백번 낫아 결혼도 성품이 좋아야지 믿음은 나중에 다 생기게 하면되,
살아보니 이거 너무 공감되시죠?이것이 너무 맞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듣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부족해도 믿음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쉬운 이야기를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만 하다가 하직할 것 같습니다.
이 너무 쉬운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하지 말라. 불신 결혼 하지 말라 다 똑같은 맥락입니다.
아주 돌로 칠 태세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돌로 맞는 것이 체휼이 됩니다. 지금도 힘든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당시에 정말 안 들렸을 것 같아요. 바울의 이야기가 데살로니가 전도를 한 후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이라며,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고 등장합니다.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매우 독특한 무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 개혁 성경에서는 복음에 대하여 모두 신사적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여기서 2000년 동안 알려진 베뢰아의 신사들입니다. 오늘은 베뢰아교회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신사 물론
여기에 숙녀도 포함되겠죠? 성령의 신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독불장군이 아닙니다. (10절)
10절 -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는 지난주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소도시로 그다지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도시 가운데에서 바울에 대해서 소동이 나자 바울을 밤중에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합니다. 밤중 여행이 위험하잖아요. 요새 이렇게 밤중에 반포에서 청년이 죽은 것처럼 밤중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밤중 요인이 위험하지 않아요? 그래도 밤에 나가는 게 덜 위험하겠다고 생각했겠죠.
빌립보에서 이렇게 당한 일을 다시 당하는 것보다는 밤중에 나가는 게 낫겠다.
또 감옥에 갇혀서 정말 매를 맞는 것보다는 야반도주는 정말 비겁하게 보일 수 있죠.
그런데 바울은 이제 성령의 전략에 따라서 수치를 무릎쓰고 이제 데살로니가에서 탈출을 합니다.
여기서 보낸다는 단어는 신약에서 2번 쓰였는데 사도행전 13장 4절에는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할 때 두 사람이 선교사로 파송할 때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
그 단어를 썼는데요. 이거 사도행전 누가가 썼잖아요? 누가는 사실상 성령의 전략에 따른 파송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같은 단어를 썼어요. 그러나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이 여전한 방식으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 것으로 볼 때
유대인로부터 피하는 것이 바울의 전략이 아닌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피해야 될 상황에서는 수치를 무릎쓰고서도 피하였지만 관례의 따라 전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 사람이었어요. 그는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기 전까지는 아시아하고,
유럽에는 올 생각조차 못했어요. 순종하고 마게도냐에는 왔지만 지리도 잘 모르고 문화 풍토풍습도 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요. 그런데 모른다는 것을 바울이 인정을 하고 성도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걸 보게 됩니다.
우리는 바울이 항상 주도적이라 바울의 이런 모습이 약간 생소하기도 해요.
성령의 신사는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밑에 형제들에게 제자 동무들에게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반도주해야 하는 밤과 말이죠. 시골인 베뢰아의 순종을 하는 이 바울을 보면서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할 때는 그렇게 심히 다투었는데 그래서 바울은 바나바가 더 낫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이 더 낫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여기서 바울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디까지 나가는가 하면은 바울이,
그 유대인들과 협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왕따를 당하고 바울이 관계가 안 되잖아요 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니 가는 곳곳 돌에 맞고 핍박을 당하니 바울이 독불장군 아니예요? 어떻게 한결같이 유대인들이 미워하겠어요?
이럴 수 있죠? 예. 이게 구속사와 세속사의 차이 이기 때문에 설명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지난번에도 행위 구원을 이야기 했는데 우리 중에는 직분 자를 모르는 분이 여전히 계세요.
이렇게 바나바라도 심히 다투어서 심히 갈라섰던 그가 아무것도 없는 데살로니가에 형제들에게는 순종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그렇겠습니까? 바울이 바나바를 설득해서 끝까지 같이 가려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떠나려고 했던 것은 바나바지 바울이 아니예요. 데살로니가에 초신자들 무명의 형제들에게는 순종을 하는 거예요.
바울이 어린 혼혈인 디모데를 배려하고 베드로를 생각해서 아시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저희들은 살펴보았습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복음의 본질과 비본질을 잘 구분해서 대처하는 것이 진짜 신사입니다.
복음의 신사는 복음의 유익하다면 즉시 순종합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결코 독불장군처럼 하지 않았어요. 늘 다른 성도들과 협력했습니다.
그런데 딱풀 성도라고 자기들끼리 딱 달라붙는 것이 아니구요.
주님께 딱 달라붙어 있는 딱풀 성도는 주님의 뜻대로 이타적인 협력을 합니다.
그런데 이 협력을 누구에게 배웠어요? 다 바울에게 배웠죠. 협력을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동역자라는 단어를 중시한 사람이 없어요.
동역자라는 자체가 바울의 단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잘 들으셔야 해요.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베뢰아 성도들이 바로 이것을 알았어요. 바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사도바울을 막 도운 거예요. 유대인들은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데 바울을 돕는 사람들이 그냥 곳곳에
있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 협력하는 신사 숙녀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어디 가든지 또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고품격 신사숙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 곳 인 줄 믿습니다.
예배와 목장 협력하는 고품격 신사 숙녀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적용
여러분은 구원을 빙자하여 매사에 독불장군입니까?
순종이고 협력하는 센스가 있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미음이 이럴 때는 갈 때 안 갈 때아는 것 믿음 구원 센스 십자가 지혜 지혜는 타이밍 이기 때문이예요.
우리는 독불장군보다도 남녀 간에 센스가 있었음 좋겠어요. 미련해서 다 놓치지 말구요. 센스다 있는가?
독불장군이가? 나누어 보아요. 이럴 때 믿음은요 갈 때 안 갈 때 아는 것 센스인 것입니다.
십자가 지혜고 타이밍이기 때문에 어제 제가 어떤 아들 한테 편지 하나 받았어요.
저희 어머니는 3대째 크리스찬 집안으로 믿음이 확고하십니다. 하지만 교회에너무 매달려 있어요.
집안일에 너무 소홀하시고 교회만 너무 매달려있는데 어머니께서 교회에만 목장 예배 양육과정 등 숙제 해야 한다면서
매일 몇 시간씩 그것도 저녁에 하시면서 저녁밥 청소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저와 먹으라고 해보고 제가
이제 암으로 이상 되는 증상이 있어서 병원 가야 되겠다고 초기증상인 거 같다고 하니까 어머니께서는 죽게 되면 죽어야지
호흡 있는 만물은 죄로 인해 끝이 있는데 죽어야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엄마 김 양재 목사님이 이런 행동을 가르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엄마 행동 이상하게 생각할꺼야 사연을
올려야 하겠어 라고 말했습니다.어머니께서는 올려 그러셨습니다. 제발 우리 엄마 고쳐주세요 길게 길게 왔어요.
집사님 너무 이해해요.온라인예배 드리면서 남편과 아드님 이해가 되어요.
남편과 아드님과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말씀이 들리면이해가 될 텐데안 들리는 게있나 봐요.
그러면 안 들리는 식구들에게는 성령의 숙녀가 되어서이 센스장이처럼 독불장군이 되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도 저 목장에 들어가셔서 같이 신앙생황을해보고 그렇게 나눔을 좀 해보시면 너무 좋겠어요.
아예, 정말 다음 주 일에 이 엄마를 부르는 수가 있어요.
예, 아들이 유학생인데 한국에 온 동안인데 줌 예배로 같이 드리시고 그래야 할텐데 날마다 설교를 듣는데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집사님도 이것을 뭐라고 하는 말씀이 안 들리는 식구들에게 성령의 숙녀가 되어서 센스 있게
독불장군 되시면 안 됩니다. 남편 목장 들어가셔서 같이 신앙생활 하셔서 목장에 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끝이 없는 거예요. 구원 때문에 유대인들한테 돌 맞는 것 하라고 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두 번째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11절~12절)
11절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여기서 너그럽다는 개혁 한글로 신사적이라는 말로 원뜻으로 하면요 잘났다 입니다.
아주 좋은 태생의 고상한 마음을 가진 관대한 것을 뜻하는 어떤 비교급의 단어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정관념에는 덜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의 생각에는 더 열려 있는 생각입니다.
내 생각에는 고정관념에는 덜 사로잡히고 다른 사람 생각에는 더 열려있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좋은 태 성과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잘 자라는 고품격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고품격 사람은 헨리 나우 웬이 아닐까 싶어요.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고 명문대 교수고 어렸을 때부터 헌신하며,
카톨릭 신 부사제로 명석한 작가에 탁월한 작가이며 연사예요. 연사 아주 못하는 게 없어요.
얼마나 헨리 나우 웬의 책이 유명합니까?상처 입은 치유자 라고 불린 그는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유출하는
노출시키는 공감대 형성 감정에 공감대 형성이 뛰어났어요.
예일과 하버드 교수 라는 것도 고품격인데 마지막에 죽기 10년 전부터는 다 내려놓고 라르 쉬 라는 정신 장애우 공동체에
가서 낮추어 살다가 갔기 때문에 신사 중에 신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11절에 보면 우리 번역으로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더 너그럽기 때문에 간절한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원문의 구조를 보면 그 반대가 맞는 것 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이 그런지
날마다 그 성도들이 말씀을 꼼꼼히 묵상 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너그러웠다. 더 고품격 신사요.
더 숙녀 다웠다고 하는 거예요. 이제 이게 무슨 뜻인가요? 베뢰아 사람들이 더 신사적이기 때문에 말씀을 간절히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성경을 상고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사모함으로이기 때문에
신사적 인 거예요. 잘남의 기준과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것 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신사적이라서 간절히 말씀의 사모함이 아니고 간절히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에 신사적이라는 거예요.
아시죠? 이런 구속 사적 가치관에서 잘남의 구조 출발점은 오직 말씀 묵상에 있어요.
태생과 성품이 어떻든 배움이 어떻든 자격이 무엇이든 어떤 환경에 살고 있던 등 얼마든 자격이 무엇이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던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신사적이고 잘난 인생이라 이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보는 것도 붙잡는 것도 으뜸이었지만 더욱더 눈여겨 보는 말씀은 날마다 눈으로 상고하므로 의
구절이예요. 여기서 상고 하다의 헬라어로 단어가 아나크리노인데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는것은 열정적이고
반복적이고 으뜸 이었지만 더 으뜸가는 말씀은 상고하므로 말씀을 아나 크리노라는 단어인데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반복하는 접두어 아나라는 단어와 또 접속사로 위에라는 단어인데 아나에다가 크리노는 구별하여서 판결 결정하다는
동사 크리노가 합쳐진 단어예요. 그러니까 이 상고하다에는 판결하다 가 들어갔잖아요?
아나크리노는 판사가 재판을 하기 위해 증거물들을 꼼꼼하게 반복적으로 살피어 판결할 때 사용했어요.
말씀에 비추어 나를 자세히 살피고 내 삶의 티를 골라낸다는 뜻인데 티를 골라 내기 위해서는 조사하고 검토하고
먹고 씹어보고 적용해서 행하는데까지 가야하는것이 상고 하는것입니다. 이런 인생이 진짜 잘난인생이고 신사답고
너그러운 인생입니다. 자꾸 반복합니다.
그러면은 베뢰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씀, 강단에서 외쳐지는 바울의 강론을 듣고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가?
를 분별하여 판단했을까요? 13절에 또 유대인의 성도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와서 마을을 소동했잖아요.
또 바울을 놓고 소동했잖아요. 그러면 바울의 말씀이 진짜인가? 분별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서 유대인의 거짓 가르침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잣대로
사용했다는 거예요. 분별해야 되잖아요. 날마다 상고 했다는것이 이 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래서 그 유대인들의 거짓 가르침을 구별하는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는 것이죠.
고민했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삶의 현장으로 가져갔다는것 그리고 고민했다는거죠. 그러한가 하여 진짜인가?
그러한가? 이것이 진짜인가? 이뜻이예요. 하여 그래서 존스토트는 베뢰아 사람들이 수용성과 비판적인 질문을
겸비하였습니다. 다 받아 들이면서도 이렇게 비판적인 그래서 구약성경의 결론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아 그래서 티를 골라내기 위하여 조사하고 검토하고 먹고 씹어보니까 삶의 그것을 가져와서 분별하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 성경을 보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것을 골라낸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유대주의의 틀로 받아주어서 문제이지. 사심없이 정밀히 상고하게 되면다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요. 저도 혼자서 예수가 그리스도 인것을 발견했잖아요
예, 그러니까 이제 그래서 이런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성경을 자세히 상고할 때에 확실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면
확실한 신앙이 가장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가장 잘난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이 간절함으로 상고했다는것이 간절함이
상고함과 분별과 판단이 따라야 합니다. 그랬더니 베뢰아에 진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그것을 삶으로 가져와서 내게로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보세요.
그러면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 드러납니다.
진짜 다 받아들이고 베뢰아에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어요. 열매가 많아졌다고 했어요.
우리는 요즘 온라인 예배를 드리니까 이렇게 갈급함의 최고조에 다를수 있죠.
그렇다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듣고 보면 안되죠. 그러나 우리는 주일예배도 말씀 수요예배도 말씀 목장도
말씀 큐티도 말씀 그러니까 간절함과 갈급함으로 말씀을 상고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대요. 주일예배도 안들어보고
목장에 들어가는 분들 있어요. 주일에는 예배도 드리지않고 목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간절함으로 했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가는것은 이단 교주라고 해요. 판단 분별하고 성경을 상고한다는 거예요.
큐티로 예수가 그리스도 입니다. 이단들은 교주를 묵상하고 이만희 묵상해요.
이상한 교회는 목사를 다 그리스도라고 하고 여기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는거예요.
삶의 현장으로 말씀을 가져와야 해요. 큐티를 하면 내게 주신 말씀 삶에서 들어보지 않으면 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할 수 없어요. 열왕기상 할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우리들교회 예배 여기서 합니다.
온라인 예배 하니까 굉장히 흘려 떠내려 가게 생겼지만 아무거나 닥치고 보고 듣고 해서는 안되요.
수요예배 큐티 목장 양육도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간절 갈급함으로 말씀 상고하게되는 작업이 좋은 환경이예요.
목장에 들어가면 주일예배에도 안들어보고 목장에 들어오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제 설교가 쉽지 않아요.
저에 대해서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말하는 것도 좋은데 말씀을 들어보시고 말씀하세요.
이 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가지고 와서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그러한가?하여
그런데 저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말씀 안들어요. 주일예배때 저한테 뭐라고 하실꺼면은 일주일에 날마다
제 설교 하루에 한번씩 들어보고 말씀 해보시라구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은 자기 설교가 뭐라고 또 날마다 들으래?
아니 그러니까 저한테 대해서 여러분들이 비판을 해야되니까 꼭 하루에 한번씩 들어보시라구요.
책도 말이죠. 쉽게 익히는 책도 읽어보지만 그러는 반면에 생각을 해야 되는 책을 읽으면
여러분들에게 굉장히 유익이 많아요. 뇌에 활동이 활발해지니까 피가 되고 살이되는 그래서 이제 남미에서는
몇시간씩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일주일에 몇 번씩 드려요.
안들리는 사람에게는 더 판단 분별 상고해주시고 날마다 들어보시기를 바래요.
피상적으로 목사님을 틀렸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계속 Think 해서 생각하는것 여러분 고품격이 되는거예요.
동창회 가면 해주겠어요? 어디 S 대학 동아리 가면 해주겠어요?
남미에서는 몇시간씩 예배 드리는 교회가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기본적으로 2시간 설교하구요.
미국에서 성장하는 교회는 설교시간이 1시간 설교한대요.
저는 이제 설교시간이 긴 것으로 미안해 하지 않기로 결단했어요.
예전에는 2시간~3시간씩 했어요. 그때가 너무 좋았어요. 참 좋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왜냐하면 진짜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했어요. 그때는 진짜 양육을 한것 같아요.
그 대신에 녹음 하나도 않했어요. 내 마음대로 했어요. 요즘에는 내 마음대로 안해요.
다 원고 써가지고 골라내고 골라내고 녹음을 해서 걸러서 해요. 여러분들이 손해가 막심해요.
뭐 어쩌겠어요?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지금은 마음대로 하는것 같지만 마음대로 않해요.
그래서 여러분들 날것은 못먹어요. 익은것만 먹어요.
그랬더니 베뢰아 처럼 했더니 그랬더니만 믿는 사람이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들 교회를 말하는것 같아요. 믿는 사람들이 많죠? 귀부인과 이 세상적으로 엘리트인 분들도 적지 않아요.
그 표현이 또 맞지 않아요? 우리가 베뢰아 교회 같지 않습니까?
예. 이런 인생 성령의 신사 성령의 숙녀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 후서는 책이 있는데
이 베뢰아서는 책이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베뢰아 교회는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에
편지도 않쓰고 사역자 파송도 안했어요. 우리들 교회도 이렇게 되기를 추권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베뢰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한 간절함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것들을 좀 생각해 보시라구요. 무조건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말구요. 아니고요. 생각을 해야죠.
뇌도 운동을 하잖아요.베뢰아는요 빌립보나 데살로니가 보다도 더 오래된 일류 도시예요.
빌립보서는 뉴욕이라면 데살로니가는 워싱턴 D.C 정도예요.
그래서 알렉산더 시절에는 마게도냐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는데,
주전 168년에 로마가 마게도냐 지역을 정복할 때 제일먼저 로마에 항복했어요. 자존심이 좀 없죠?
그런데 그 이후에 아주 이류도시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빌립보다 뉴욕이라면 데살로니가는 워싱턴 D.C쯤 되어요.
그런데 이 베뢰아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가 마게도냐를 관통하는 에그나티아 동서를 관통하는
에그나티아 도로가 있는데, 빌립보하고 데살로니가는 이 도로에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나 베뢰아는 이 지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제 경부고속도로 옆에 있어야 잘되는데 베뢰아는 경부고속도로에서 거기서
한참 떨어져 있는거예요. 김부선이 강남을 통과 하려고 하다가 그것을 못해서 굉장히 속상해 하잖아요.
강남과 멀리 떨어져 있는것 처럼요. 똑같아요. 그러니까 베뢰아는 켄터키 정도?
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이 그곳에 사람들이지역적 소외감을 가졌을것 같아요.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뒤치지는 않는데 지금 말하면 텍사스 이런곳이 복음의 밸트라인이예요.
그런데 켄터키 시골마을쯤 이라고 될 수가 있는데 키케로는 도로에서 아주 떨어진 마을이라고,
맞어. 만년 이레도시라는 피해의식이 그들의 마음을 딱 사로잡고 있는 고난인데, 진짜 켄터키 이런데가
여자들은 바지 않입고 치마만 입고, 경건하고 그리고 켄터키 텍사스 이 도시 사람들이요 믿음이 있고
너그럽고 그렇대요. 지금 예 우리가 저쪽 켈리포니아에 가면 신앙생활이 안된다고 해요. 어렵습니까?
그래서 이쪽이 베뢰아가 아주 비교급을 써서 베뢰아 사람들이 여기서 더 너그럽다고 합니다.
결국 이 고난이 구속사의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을 갖게되는 원동력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늘 만년 이류니까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늘 의식할 수 밖에없고,
그런데 그런 약점이 바울의 증언을 편견 없이 내가 정답이라는 권위 의식 없이 객관적으로 들을수있게
들을수있게 되었어요. 바탕이 된 것이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것이 고품격 사람이예요.
간절한 말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요. 아무리 싸워도 말씀을 받아요. 그래서 성품이 아니라, 믿음이예요.
믿음으로 살아요. 성품으로 한계가 있어요. 매력 딱지가 없어요.아무리 착해도 매력 없어요.
믿음 있어야 매력있는거예요.제가 진짜 늘 보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힘들때는 간절하게 사모하는데
환경이 좀 좋으면은 목자하기도 힘들어 하고 그러더라고요. 정말 예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늘 고난이 오라고 참 기도 할수도 없고, 저도 그래서 진짜 사명이 없으면 이 길을 못가는데
진짜 이 길이 맞는것 같아요. 베뢰아의 열매가 훨씬 더 많은 것이예요.이 두도시보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잘난사람이 말씀을 더 간절하게 받는것이 아니예요. 아주 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인생이 고품격 신사인데요.
이 간절한 마음은 저절로 생기기 않아요. 정말 여러분들이 너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이땅에서 소망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 만큼 그 간절함이 하나씩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땅에서 소망이 그득드그 찾는데 간절함이 안생겨요. 간절한 마음은 고난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관점에서는 이 고난은 버릴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신사적이고 너그러웁다는것은 정말 고정관념이 없는거예요.
내가 육이 무너질수록 내 속에 고정관념이 하나씩 밸트가 없어지는 것이예요.
그래서 간절함이이라는것은 좋은게 좋은게 아니고, 반드시 상고함과 분별함과 판단이 이제 따라야 하는것 입니다.
판단이 따라야 하는것 입니다. 신사적이다 너그럽다라는 것은 고정관념이 없는것입니다.
좋은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상고하고 분별하고, 판단이 따라야 해요.
착한 사람은 매력이 없어요 열심있는 사람도 매력이 없어요. 분별과 판단이 따라야 하는거예요.
나는 정말 몰랐어그런 사람 매력 없어요.적용 질문드릴게요.
적용
신사적이라 말씀을 찾습니까?
말씀을 찾다 보니 신사적으로 되었나요?
고난 중에 하나님만 간절히 찾습니까?
오늘도 무사히 만 빌며 하나님을 찾습니까?
위에는 신사 밑에는 미꾸라지 예요. 그래도 오늘 한번 읊프면서 Think 를 해보시는거예요.
아 내가 신사적이라서 말씀을 찾나? 말씀을 열심히 찾다 보니까 신사적이 되었나? 자기를 한번 분석을 해보세요.
자, 이렇게 고품격 신사처럼 보였던 헨리나우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이고 비공개적 동성애자 였어요.
단적으로 마이클포드가 쓴 전기 헨리 나우웬의 초상화에 명기 되어 있는대요.
그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평생 이 동성애적 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어서 이렇게 외적인 갈등을 선행과 인고로서 극복해 나갔다는 거죠.
그래서 더욱 반사적으로 사제와 신부 사회 생활의 아주 이제 친절 했다는 거죠.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였고,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카톨릭에만 구원있다고 하다가
말년에는 보편구원론 만인 구원설을 주장했고, 내리막길 내려갔어요.
모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알던 모르던 모두 구원 받을수 있다고 정말 이단 사설을 읊었어요.
포드는 나우웬의 동성애적 바탕을 염려해 두지않고는 그의 복잡 미묘함과 고뇌를 이해 하기가 불가한다 하였어요.
하게되든 뭐든 바꿔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 할 십자가의 동성애적 성향과 그냥 견해와 씨름을 해야했는데,
그런데도 반면에 하버드에서는 동성애 학생들을 엄격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 상태라고 일러줬어요.
그런데 본인은 너무나 그냥 애욕에서 벗어나지를 못한거죠. 그러니까 복잡다난 한거예요.
본인이 최고 힘들때에는 그 우정에 모든걸 다 걸고 있는 거예요.
이성이 아니고 우정에 얼굴을 가진 동성애로 봐도 무방할것 같다는 거죠.
그리고 지속되지 못했을때에는 많은 경우에 절망적이 되버렸다는 거예요.
나우엔의 우정은 동성으로 대립 되어 일수가 있는대요.
남자끼리 여자끼리 너무 의지하면 동성애 아닌가요? 너무 집착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동성애자 라는것은 그렇게 살았다는 의미가 되고,
예. 길고 짧은것은 조금 시간이 10년, 20년이 지나니까 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우리 가운데도 말과 글을 잘쓰고 할수 있지만 삶하고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그러한가하여
평가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 아니면 또 모르잖아요.그니까 동성애를 오픈하지는 못하고,
동성애를 계속 지속되니까 그냥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이런 그런 글들을 쓰지 않았나 싶기도해요.
로마서 1장 27절에는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는니라
그니까 이점에서 그가 상처를 받은것이 있다면 그가 누구한테 상처를 받았겠어요? 예수님께 상처 받았겠어요?
이 사탄과 졸개에게 받은거죠. 큰 위로를 주님께 받아야 했어요. 일생을 두고두고 끼고 있었다는거죠.
다들 필요없는 상처를 받았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거죠. 그러니까 저는 나우웬이 왜 이랬을까? 생각하면,
이분이야 말로 우리 가운데도 말로 행위가 완전하고 그렇지만 고난이 없는거예요.
그런데 어렸을때부터 동성애자 인거예요. 동성애자들이 그렇잖아요. 너무 나이스해요.
공부도 잘하고 그리고 또 카톨릭 사제로 헌신을 하고 학교도 하버드대 예일대 교수고 신학부 교수니까,
성경을 평생 연구를 하고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연구하는것을 간절한 상고라고 하지 않아요.
삶에서 이제 성경말씀이 죄라고 하면은 적용을 해야 하잖아요 그니까 적용을 못하잖아요.
동성애를 끊어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얼마나 복잡 미묘 하겠습니까?
동성애 평생 오픈하지 못하고 동성애 지속되고 있는데, 그것이 고난이라서 글을 잘쓴게 아닌가 해요.
얼마나 복잡 미묘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이런걸 구속사라고 해요.
그의 비해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 끼친 죄와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받기 직전에 구출을 당해서,
엄청난 이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날마다 1달라 2달라가 없고 먹고 살것이 없어요.
그냥 순전히 먹고 살것이 없어서 처절하게 이런 가난하게 살아서, 생계형 작가로 살아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하지요.죄와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등 요새 윤여정씨도 자신이 생계형 배우가
돼서 간절해서 자기가 연기를 잘했다고 하잖아요. 그니까 굉장한 철학 그저 먹고 살게 없는 한계적 상황이
우리를 간절히 상고하게 하는게 되는게 맞아요. 그니까 베뢰아처럼 갖춘것이 없는 사람들이 더 간전할게
상고를 한다고요.그러니까 이 돌을 보면 정말 예수 믿어 천국가는게 최최 최고의 고품격 인생인데
이것을 인정하는게 구속사적 가치관이예요. 그래서 이 구속사를 지난주에도 이야기 했지만 가장 고품격으로,
느끼는 사람이 사실은 정말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인 거예요.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거예요.
가장 품격있는 신사와 숙녀인거예요. 신사적으로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는것 무엇인가요? 멋진 사람입니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되는거예요. 그래서 헨리나우웬은 고난이 없는거예요. 여러분 적용해 보세요.
적용
헨리나우웬과 도스토예프스키중 누가 말씀을 간절히 상고하여 분별하고 판단한 성령의 신사일까요?
굉장히 기독교적인 이런 것으로 세계 문학에 들어간 중에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버드와 예일대 교수가 아니예요.
그냥 그 책을 썼어요. 헨리나우웬은 어렸을때부터 부자이고 하버드와 예일대의 교수예요.
신학부 교수예요. 여러분 누가 성경을 열심히 상고해서 분별하고 판단한 성령의 신사 이겠습니까?
예, 골치가 참 아픕니까? 헨리 나우 웬은 간절한 상고라고 하지 않아요. 삶에서 그게 진짜다를 증명하지 못했어요.
속에서 부글부글 하고 외로워하고, 남자가 안아주면 좋아하고,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내고 개신교에서 헨리 나우 웬을
얼마나 많이 인용을 했는지 몰라요. 불과 몇십년 안가서 전 세계에 동성애기 드러났어요.
누가 오픈 안해서 옛날에 몰랐지만 이제는 많은 이해되는게 있었어요.
판단한 누가 성령의 신사이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질문을 드리니까, 말씀을 생각하는 질문을 드리니까
어렵다고 해요. 예수 믿으면 복받아야 한다고 이렇게 쉽게 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 설교는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좀 바뀌어야 하니까, 반복해서 듣고 반복해서 상고를 했다고 하잖아요.
(아나크리노) 예. 이 강력한 반복의 이 단어예요. 여러분들이 모르겠으면 좀 들어요. 판단 좀 하시 마시구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지도 않아야 되는것들 생각하고, 매주 훈련을 하니까 고품격이 지금 되는거예요.
저품격이 되었다가 중품격이 되었다가, 고품격이 된거예요.
나는 저인가? 중인가? 고인가? 그것도 좀 이야기 해봐요. 자 여기까지 이해됬어요? 여기까지 이해됬어요?
예? 이해가 하나도 안됩니까? 이해가 안됩니까? 남자들만 대답해봐요. 이해가 됩니까?
네, 오! 할렐루야 여자들만 대답해봐요. 이해가 되십니까? 아우, 할렐루야! 그런데 내가 1부 예배 드렸는데,
누가 어우 너무 어려워요.그래가지고 지금 절망 하면서 들어와면서 정말 직분자님께서 안어렵지요?
예, 내가 답을 이야기 했지만 여러분 잘 생각하길 바라요. 그러나 이런 생각하는 훈련이 중품격 고품격으로
말도 센스있게 하게 되고, 구원 때문에 성품으로 하는말과 믿음으로 하는말은 금쟁반의 옥구슬 인거예요.
사람이 매력이 있어요. 사람이 자꾸 Think를 하게 해주는데, 이 세상에 진짜 이렇게 생각하게 해주는데는 없어요.
있어요? 여러분들 친구끼리 만나면 뭐해요? 옷 뭐샀어? 어떤 맥주 맛있는데 막걸리가 좋대지.
뭐, 우리 한번 흔들어 볼까? 그딴 이야기 하는게 더있어? 너무너무 들어야 될 이야기를 듣는거예요.
그러니까 헨리 나우 웬은 감옥에서 나와서 1달라 2달라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더한 이야기 많지만 내가 굉장히 오늘 이야기 정죄되어서 했어요. 속으면 안되요.
그래서 차별 금지법 통과되면 안되요. 건강법이 통과되면 안되요.
이 이야기를 듣고도 우리들교회 청년들 중에서도 교회를 떠나겠다는 청년들 있어요.
나를 돌로 치는거랑 똑같아요. 안들려요. 동성애자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왜 나를 미워 하냐구요.
김용옥씨도 성경 안믿는다고 해요. 믿음이나? 성품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이 돌로 다 때리는거죠.
돌로 다 치고 하는거죠. 여러분들 적용을 좀 해봐요.여기까지 이해됬어요? 이해가 하나도 안됩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구속사적인 가치관이 아니면은 다 꼬였어요. 그래서 바울이 그러니까 왕따야 유대인하고
섞이지를 못하잖아 자기를 왜 옳다고 그래? 유대인들 다 예수님 믿었던 사람들 이예요. 말을 잘해요.
헨리 나우 웬은 말 잘해요. 한계상황 마주치지 않아서 그래요. 내가 1부 예배 드렸는데,
너무 어렵다고 하셔서직분자님께서
세 번째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13절~15절)
13절 -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절 -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절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이제 베뢰아에 많은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이 바울의 구속사적 강론을 듣고, 이제 믿었다는 소식이 데살로니가에
전해지니까 유대인들의 시기심으로 거기서 소동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시기심이 거기까지 가서 소동을 일으키는
거예요. 바울 한명 잡으려고 참으로 무서운 시기와 무서운 열심을 내면서 또 우루루루 몰려왔어요.
데살로니가에서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베뢰아와 베뢰아 시민들을 선동합니다.
바울이라는 작자가 가이사 외에 다른 임금 예수가 있다며, 반역을 꾀한다.
반역죄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죠. 바울은 곳곳에 유대인들이 시기와 질투를 열등감으로 데살로니가에서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베뢰아에서 다른 임금 예수가 있다고 반역의 프레임을 씌우고 유대인들의 이런 모습을 본다는게
바울은 참 슬펐고 어려웠을것 같아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지금도 힘든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성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 이야기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여러분들이 다 성품이고 착하게 살려고 교회 오기때문에
그게 아니라고 본성을 자꾸 거스르는 이야기를 하니까 날마다 힘든거예요.
내가 착하게 살려고 그랬지. 뭐가 고난이 축복이야? 이러니까 아우 그래서 그냥 숨이 탁탁 막힙니다.
예, 하지만 바울은 이게 자기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신 사명의 길임을 확신한거죠. 바울이 견뎌냈던 이유는 자기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않고,
부르심과 사명의 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17절에는
16절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절 -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사명을 받았노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가 자랑할 것이 없어요. 내가 부득불 반드시 해야 될일인 거예요.
내가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는 거예요. 예. 내가 또 내 뜻으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겠지만 이것을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다고, 사명 때문에 와서 사명 때문에 살고 사명 때문에 가는 인생인걸 알았어요.
성령의 신사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불러주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니까 사명의 자리를 비비고 닦고 문지르다보면 의지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어서 내 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지게 되는거예요. 의지의 성이 일어나요.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살다가 사명때문에 가는것 입니다.
직분이 주었을때 목자 부목자 그 자리에서 상고에서 너무 싫은데 내 원이 아니고 말씀을 계속 듣다보면
하나님의 원으로 갈수 있는 시스템이 되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억지로 부인이 믿음이 좋으면 이렇게 남편이 믿음이 약간 연약해도 목자가 되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내가 왜 되었나? 그런 포지션이 중요해서 거기 찾고 있다보면, 내 원이 하나님의 원의 맞춰지는게 있어요.
날마다 말씀을 묵상을 하다 보면 우리들 교회의 직분은 정말 구속사를 깨닫게 하는 좋은 포지션인것 같아요.
그런데 예. 그래서 내 원을 하나님의 원에 합쳐질수 있는 이런 양육과 훈련을 이제 받으셔야 되는거죠.
교회에서 무슨회 월례회. 청년모임이 있으면은 맨날 보면 놀러다녀요.
문학의 밤 이런거 하고 그런데 우리들 교회 치열하게 말씀을 보게 해주기 때문에 자꾸 내가 그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에서 비비고 닦고 문지르고 있었더니 하나님의 원을 아는것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 교회 변한것 이예요.
말씀을 모르고는 인도를 받지를 못해요. 양육을 모르면은 말씀을 모르면은 인도를 못해요.
전 세계에서 지금 말씀있는 공동체가 또 있을까요? 생각해봐요. 이런 이야기 하는데가 없는 거예요.
말씀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의 선동으로 도시가 시끄럽게 되자 이제 베뢰아 성도들은 데살로니가의
성도처럼 또, 이제 바울을 탈출 시키는 거예요. 내보내는 거예요. 이 단어 역시 10절에 아까 보내니처럼
사명의 길로 여기도 파송했다는 뜻이예요. 떠나 보낸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론에서 처럼 지금 베뢰아 사람들이 더 신사적으로 말씀을 상고하니까, 말씀을 더 좋아하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보다 바울을 더 보내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싫었을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성령의 신사들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않고, 성령의 보내심의 협력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이번에는 혼자가네요. 점점 위험하니까 혼자갑니다. 실라와 디모데를 배려하여 지금 남겨둡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갈 때, 데살로니가 갈때에는 바울하고 실라만 들어왔잖아요.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그때는 디모데하고 누가는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더니 자기네들 몰래 그냥 지금 이제 베뢰아에 왔나봐요.
그럼 디모데는 어디갔다 나타났어요? 성경 열심히 본 사람이나 그러겠지?
빌립보에서 매맞고, 그런데 데살로니가 갈 때 실라 바울만 갔어요.
그런데 디모데하고 누가가 베뢰아에 슬쩍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실라하고 디모데를 베뢰아의 남겨 둔대요.
그냥 하루하루가 일촉즉발의 긴장속에서 사역을 하는 거예요. 사명 감당할 때 힘들어요.
홀로 떠나는 바울도 실라하고, 디모데 만나서 배려했습니다. 유대인의 박해가 시작되는 베뢰아와 남은 실라와
디모데도 각자 자기에게 자리에서 사명을 지키는 모습이예요.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자기 역할을 다합니다.
정말 다들 고품격 신사 맞습니다. 이런 사람이 고품격 신사예요. 맡은 자리에서 목자 찬양팀. 곳곳에서 섬길때,
그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보면 매력 넘쳐서 결혼이 잘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구원의 일 열심히하는 사람 매력이있게 되 있어요.
그런데 각각 따로 있지만 베뢰아 성도들 은혜 많이 받았잖아요. 하지만 베뢰아 성도들은 이 초신자잖아요.
무명의 초신자들은 바울이 이 마게도냐에서 아가야 여기저기 아덴까지 가는 길이 한 320km 정도 되거든요?
거기서부터 쭉 내려오면은 그런데 거기를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행해서 동역자가 되어서 바울 모시고,
그리고 자기네들은 그냥 오는 거예요. 아가야 지방으로 가는데, 아덴까지 320km를 가는데 무명의 초신자 성도들이
함께 하는거예요. 그때는 비행기도 없고차도 없는데 믿은지 얼마도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 길을 동행합니다.
이것은 뭐 참 육로가 있지만은 그들을 따돌리고, 해상으로 갔다고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말만 바다로 갔다고 하고 사실은 육로로 갔다. 그렇게 그때가 위험한 여행 이었어요.
도로 다시 돌아가면 640km 되는데, 얼마나 거기가 이제 그 무서운지 바다까지 가게하는 바다로 갈일없고,
육로고 가면 되는데, 이 사람들을 흐트리게 하려고 정말 위험해서 바다로 갔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무리가 되고 형제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고
이제 걸어 갑니다. 질릴 만큼 집요한 방해와 괴롭힘에도 그 길을 멈추지 않게 하시는 분은 오직
우리 예수님 이십니다. 집요하게 공격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죠. 따라서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말씀과 가정 중수의 사명의 길에 가정 중수와
말씀 묵상의 그 사명의 길에 마침표를 찍지않고 그 길을 완주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고품격 인생 성령의 신사 숙녀로 사는것이예요.
이것은 영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이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지혜가 생기는 거예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예요.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 감당에 대한것은 오직 영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생기는것으로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사역의 영성이 건강하지 못하면 이게 직분에만 탐하고 허다한 무리에만 관심이 있고
직분의 관심을 두고 구원의 말을 안듣습니다.대단한 석학 이라도 말실수가 나오고, 이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말실수가 되어서 천냥빚을 갚는게 됩니다. 도리어 얻게 됩니다.정말 성령의 신사들은 말조심을 해야되요.
믿음은 보이는게 아니예요. 또 물질이 아니라 인격적인 거예요. 인격이예요 인격.그래서 정말 영혼 구원 정말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긴박한 말 가운데에서도십자가도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 이니까,
그 말을 이때 이렇게 잘못해서 데살로니가가 날아갈수가 있고베뢰아가 날아갈수가 있잖아요.
내 말 하나 잘못해서 이 집안의 구원이 날아갈수가 있어요.그냥 말 실수를 작은 것으로 여기면은 안되는거예요.
목장이고 어디에서도 수도꼭지처럼 하고싶은말 다 하시면 안되는거예요. 참아야 되는거예요.
말 참는게 제일 어려워요. 최고의 덕목은 말입니다. 쟁반 위에 옥구슬처럼 인격입니다. 성품이 아닙니다.
긴박한 경우 지혜가 떠올라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긴박하지 않아요.이때 최고로 조심해야 할 것 은 말 실수예요.
말을 잘못하면 이간질이 되고 모두에게 고발이 되고 나는 그런뜻으로 하는것 아닌데.
구원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아무리 여러분들이 배운것이 없고 가진것이 없어도, 구원 받은 사람은 따라갈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원 받아야 되요. 구원 양육 받아야되요. 언젠간 생각이 나겠지. 인간의 힘으로 되는것 아닌데,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내게 맡기신 사명의 길을 멈추게 하려는 사람들을 원망합니까?
정죄합니까? 불쌍히 여깁니까?
성령의 신사가 되고자 할 때 형제와 무리가 되어 잘 따라가야 할 지체는누구입니까?
답을 다 알아도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이것 늘 다 아는것 같아도 생각을 해보는거예요. Think를 해보는거예요적용 질문을 생각하는것이 이런것이
고품격 언어이타적인 언어인거예요. 세상에서는 용서하고 사랑하라 이런 단어 안씁니다. 이기라고 늘 이야기 하죠.
이것을 날마다 듣는거예요. 이것만 듣습니까?새벽마다 듣지 수요일마다 듣지목장에서 듣지
여러분들은 고품격신사 맞습니다.진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요. 말씀에 의거해서 다 나오는 거잖아요.
너는 베뢰아야? 빌립보야? 데살로니가야 나는 베뢰아 나는 빌립보 데살로니아 출신 간첩 접선을 하는거지
쟤는 출신이 아마 큐티하고 주일설교만 들어도 만나면 좋은친구가 되는것이죠. 자 공동체 고백이예요.
그래가지고 내가 믿음이 아니고 성품 이라는것 이라는 간증을 하나 들려 드릴게요. 이제 이번주 참 오래되셨어요.
어떤 집사님이 지방에서 오시는데 남편이 도박하고 집 다 말아먹고 외도하고 평생 속을 썩이는데
간암 말기라는 거예요. 오늘 내일 한 대요. 그랬는데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이식 하려면
간 이식비가 6000만원이 든다는 거예요. 그니까 요즘에 이제 살 길이 있다고 하니까
또 이제 그런데 너무너무너무 속을 썩이고 돈도 없는데 게다가 이식까지 해달라니까 죽기만을 바라는 마음도 있는데
살아서 괴롭히니까 아주 이 아내는 가슴이 오그라 드는거예요. 그런데 글쎄 고등학교 아들의 간 조직이 남편하고
맞는다는 거예요. 예. 아들도 힘든데 그래서 어떡하면 좋냐고 저 남편 때문에 우리 아들을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러면서 제가 이식을 해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했죠.
이식해주시면 그 분이 살아나서 이식해주시면 그분이 다시 살아나서 또 도박을 할거예요.
예. 하나도 고마워 하지 않을수 있어요. 그것 때문에 생색 내시지 마시고 그러나 그 분을 위해서 이식해 주시면은
그것 때문에 아무도 안죽잖아요. 집안식구들 영원토록 수 많은 사람 살리고 자녀에게 크게 본이 될 것이라고
자녀도 살릴거라고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얼마나 그분이 저를 껴안고 울고 갔는지 몰라요.
다들 목사님도 안해줄거면서 목사님도 어떻게 말을 그렇게 쉽게 하냐 그건 성령의 신사가 되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들이 맞으니까 돈도 안없어지고 자녀에게 너무 본이 되기 때문인데
제가 주로 이렇게 처방을 하니까 다 무서워서 오기 싫은거예요.예, 아우 바람 펴도 살라고
막 이러니까 아마 이런 처방을 기대했을지도 몰라요.
아니 돈도 하나도 없는데 무슨 6000만원이나 빚을 져요? 그냥 죽게 내버려둬요 그 도장 받으려고 왔는데,
혹 떼려다가 혹 붙였잖아요 예. 그래서 어차피 짧은 인생인데 내가 산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잖아요.
그 남편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간 떼어주었다고 남편 변하는것 절대로 아니예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돈도 꿔주고 생명도 주는겁니다. 그 사람이 고마워 할것이다 하는 생각을 안하는게 좋아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예언이 되가지고 아들이 간을 이식을 해 주었는데도 이 사람이 주님을 못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도박바람 다 계속 되었어요. 2008년도에 오셨는데 간이식까지 받으셨는데 바람 도박 계속하세요.
아직도 목자도 아니예요. 보니까 부목자도 아니예요.목원이 더라구요. 아직도 목원이세요.
그런데 이제 최근에 아내께서 뇌경색으로 아파서 요양병원에입원하게 되니까 아 이제 성실해지고
바람도 이제 끊어진것 같은데가셔서 많이 성실하셨다고 해요.
아내는 성실해진 것 같다고 해요. 이 아내는 뇌경색 인데도 요양원에서 부목 자로 목장도 참석하시고 있고,
부목자로 목보도 쓰고 있어요. 예목을 안 받게 해주냐고 이렇게 저는요 2008년도니까는 지금 한 12년, 13년 되었는데
시간이 길어요? 짧아요? 굉장히 긴 시간 같지만은 그래도 이 가족이 모두 지방에서 꼭 와요.
교회에 그래도 죽을것 같으니까 오는 거예요. 이것이 간절함 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교회에 목장에 계속
나가는 것이 너무 감사해가지고 저는 그 시간이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해요. 십 몇 년 동안 교회 온 게 어디예요?
딱풀 성도로 성령의 신사 숙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들도 싱가폴에 다 이렇게 갔는데 아들도 결혼하고 할렐루야!
저는 성령의 신사 숙녀들이 잘난 사람들이 아니고 딱풀 성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니 목자도 안하면서 몇 년
십 몇 년 동안 오는 게 더 힘들지 않아요? 다 모든 식구가 교회 온다고 안 믿어 지는걸 어떻게 간을 이식해주었어도
안 믿어져. 그거 기다려 주셔야 해요. 예. 제가 이상한 이상한 간증만 이렇게 들려 드려서 매우 죄송해요.
훌륭하게 간을 이식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인생이 별 인생이 없다. 그래서 교회에 목장에 나오는 것이
감사합니다 맨날 우리는 믿음이 없어요. 그래도 그 집안에서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이러지 말아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십몇 년이 뭐가 길으냐? 짧지 이분들 떠내려가지 않았어요.
딱풀 성도로 성령의 신사숙녀 라고 합니다. 교회를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다려야 되요. 조금 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해서 신사가 된게 아니고 성경을 상고를 했더니 신사가 되더라 아시겠죠?
이만큼 바라는 것입니다. 입이 간지러워서 생색을 자꾸 내고 싶고 성품이 아니고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래도 속상해하지 않고 교회에 오는 거예요.
큐티하고 예방 주사 맞는 거예요. 간이식 해주면 앞으로 여자 안만나고생명 주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 더 속이 상해서
이 썩을 놈아 해서 별 욕 다할 것이예요. 결혼도 기대를 하면 안되요. 결혼할 때 이 땅에 가진 기대 다 가지고 하거든?
실망할 것 뿐이고 사람은 믿음의 대상 아니에요.헨리 나우 웬이 신랑감 이라면 자다가 깨어서 꿈인가 생시인가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면은 저리 가 저리 가 싫어 저리 가 싫어 가난한 것은 싫어합니다.그렇게 우리가 죄인이예요.
환경에 장사가 없어요. 보니까 조금이라도 환경이 좋아지면 직분 감당하기 어려워합니다.
나는 무슨 죄가 많아서 여기 까지는 것 내 힘으론 온 것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입니다.
환경을 자꾸 걸어가게 시키신 것이예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의 신사는 독불장군이 아닙니다. 협력해야 되어요. 간절히 말씀을 봤습니다. 정말 사명을 멈추지 않아요.
성령의 신사는 한마디로 너그러움이예요. 말씀이 들리면 너그러워져요. 분별과 판단까지 가야 해요.
말씀이 들리는 사람은 너그러워요.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은 성품과 다른 자신을 봐야 하고 고정관념 내려놓고
사람이 편한 거에요. 성품은 한계가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요. 그리고 편해져요. 성품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영적이지 않으면 간절한게 없어요 그러면요. 매력이 없어요.
우리는 헨리 나우 웬 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중에서 지금 이제
분별을 좀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주님만을 원해야 되요. 더 원해야 되요. 가난한 사람 택해야 해요.
간절히 주님만을 원해야 합니다. 성령의 신사는 성품이 아닌 너그러움이예요.
너그러움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편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해야지 사람이 편한 것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어요.
영적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착해도 간절한 것이 없어요. 간절한 사람이 아니면 매력이 없어요.
도스토예프스키를 택해야 해요. 우리들 교회 비교적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들 교회 지키시는 게 있어요.
청년들 다 그렇게 되면 소도 잡고 말도 다 잡고 그럴 텐데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찬양합니다
주께 가까이
주께 가까이 / 날 이끄소서 /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 채워 주소서 / 주의 사랑을 / 진정한 찬양 /드릴 수 있도록
목마른 내 영혼 /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주소서 /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 나의 맘 만져주소서
성령의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독불장군이 아니고 정말 너그럽게 해달라고
예, 정말 목장마다 모두가 너그러웠으면 좋겠어요. 이, 오해를 하지 않고 그리고 센스 있게 협력을 하시길 기도를 하시고.
센스 있게 협력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상고해서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다 받아 들이도록 그리고 나의 모든 일은 사명입니다. 그래서 맡은 일을 잘 받아들이때 최고의 신사고 숙녀가 될 줄 믿어요.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마음 열고 받아들이고 너그러운 사람 되게 해달라고 문자적으로 신사 너그러워야 해요.
매사에 토를 달고 그러시면 안되요. 신사숙녀는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사명이 되어서 맡은 일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오늘은 이 땅에 모든 스승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어제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특별히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평, 초원님들 목자, 부목자님들 권찰님들
내 옆에 모든 정말 그 선생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이 땅에 모든 성령의 신사 숙녀가 되어서 사명 잘 감당 하시고,
축복해달라고 모든 자손들이 잘 되기를 모두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바울이 일평생 신사가 되기 위해서 가말리엘의 그 문화가 되어서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그 바울이
이렇게 지금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돌로 침을 당하면서 가는 곳곳에 그야말로 핍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바울이
이 죽음을 걸고 이렇게 사역을 하니 얼마나 확신이 생겼겠습니까? 제가 참 숙녀가 되려고 많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바울을 보면서 매를 맞고 돌을 맞으니 저절로 다른 사람들이 독불장군이라고 그랬을 것같은 것이
이해가 됩니다. 예, 정말 저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독불장군이라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의 인생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을 보니까 저도 이혼하나 말리려고 또 죽지 말라고 하는 그런 말
할때 마다 수많은 공격을 이제 받으면서 왜 남의 일에 간섭인가?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확신이
든 나머지 이렇게 독불장군 같은 면이 분명 생겼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다 죄인이래서 자꾸 넘치든지
그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면 점점 더 독불장군이 되가서 예전 같으면은 아무리 그것이 옳지 않아도 입도 못 벌렸는데,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입만 열면 분별을 하고 판단을 합니다. 분명히 맞는 것도 있을 거인데 늘 저도 말하고
마음이 늘 불편합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애통한 마음 있는데 어디까지나 부족하고 지나침인지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로 인한 설교와 상처의 처방을 받을 때마다 어디가 부족했나 어디가 과했나 생각하여 일단은 상처를 받은 분들께
어찌해야 분명히 지나치면 과한 면이있는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런데 제 사랑의 깊이가 너무 얄팍해서 너무 센스가 많이
부족합니다. 주님 정말 겉으로 보이는 신사 숙녀는 누구나 다 하고 싶지만 정말 이 성령의 신사 숙녀는 정말
십자가의 길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 날마다 이렇게 갈등을 해서 제힘으로는
이 길을 못 가는데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누가 헨리나우 웬인가?
이렇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어야 고품격이라는 것 이게 확실한 명제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이 말을 듣기도 싫어합니다. 주님 우리 속에 나에 대해서 쪼금이라도 침해하는 말을 할 때 정말 듣기가 싫습니다.
주님 참으로 신사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너그러운 것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나의 유익이 아니고 정말 구원을 위하여서
너그러워지고 편해지고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시고 부족한 것 있으면 또 넘치는 것 있으면
주님 또 알려주시고 이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주여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이제 필요한 시기에 독불장군이 되지 말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정말 인격과 상식도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참으로 영혼 구원 때문에 애통하며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며 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는 성령의 신사숙녀가 될 수 있도록 이 땅의 많은 스승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진정한 숙녀의 신사로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이 땅에 모든 스승님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진정한 사명의 소명을 갖게 도와주시옵시고 특별히 우리들 교회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 주일학교 선생님들
평, 초원님 목자님들 권찰님들 또 부목자님들 수 많은 우리 옆에 정말 그 모든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참으로
성령의 신사로써 성경을 상고하고 분별하고 판단하여서 지혜롭게 아버지 하나님 말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찾아가서 그 수고를 다 갚아 주시고 그래서 수천 대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육 간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태아 생명 법 보호법이 재정되며 인구 절벽 시대가 가서 집이 남아
도는 시대가 살 때가 올것 인데 집에 사람을 채울 수 있도록 오늘 헨리 나우웬 처럼 멋있어 보여도
평등법 건강법 재정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평등법 오늘 나우웬처럼 이런 동성애 법 차별금지법
통과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기도 제목
신애리
- 자가 격리 하며 가족 들과 붙어 지내는 동안 구원을 빙자한 독불 장군이 아닌 센스 있는 구원의 말을 쓰도록
- 말씀 으로 관계 인도 받도록
김자영
- 불안한 마음을 주께서 붙잡아 주시길
오찬미
- 양교와 1학기 잘 마칠 수 있도록
- 체력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임수빈
- 아직은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 으로 다가가서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진짜 나에게 신앙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진심어린 믿음이 나에게
생길수 있도록 기도합니다.그리고 나태함과 무기력증 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제 자신이 현재 세상적인 것에 너무
물들어 있습니다. 중립 적인 자세와 이성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과감 하게 잡고있는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버려야한다면 버릴수있는 힘을 길러주세요.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탁미나
- 큐티나 설교 말씀 찾아서 꼭꼭 들을 수 있도록
- 해야할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주시길...!
김성은
- 이번 주에도 베뢰아 성도님들처럼 더 너그럽게 아버지를 대하고,
8주차 Think 양육숙제를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상고하며 분별과 판단하며 살며 성령의 숙녀답게
나의 고정관념에는 덜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의 생각에는 열려 있는 태도를 보이기를
- 착한척과 열심을 내려놓고, 목장에서도 어디에서도 수도꼭지처럼 할 말을 다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사역의 영성이 건강하지 못하고 직분에만 탐했음을 회개합니다. 허다한 무리에만 관심있고 구원보다는 잘난척을
더 하고 싶어 계속해서 중요한 말실수글 반복적으로 합니다. 영혼구원에만 관심 가지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2주 동안의 실업급여 심사기간 동안에 결과를 잘 인내하고 기다리며 100% 옳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해주세요.
- 신 교제와 신 결혼 인도해주세요.
윤지혜
- 우리 목장식구들 말씀을 간절히 상고하고 순종하고 협력하는 센스있는 성령의 숙녀들이 되도록
- 새가족 수빈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고 공동체에 딱풀성도로 붙어갈 수 있도록
- 양육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말씀을 날마다 잘 비비고 문지름으로 독불장군 같은 내 모습을 회개하고너그럽게 적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 공부할 때에 시간을 아끼게 해주시고 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 목장 식구들과 가족들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 공통 기도 제목 *
신 교제, 신 결혼 소망주시고. 인도함받도록!
모두 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