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신사
김양재목사
행17:10-15
여러가지 부족해도 믿음만 있으면 된다가 우리들교회 슬로건인데 우리는 믿음이 있으면 뭐해 정말 안믿어도 인격과 상식이 있는것이 백번나아 결혼도 성품이 좋아야지 믿음은 다 나중에 생기게 하면되 살아보니 너무 공감되시죠?
이것이 너무 많은 이야기같이 들립니다. 교회다니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너무자연스럽게 듣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족해도 믿음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교회다니면서 이 쉬운얘기를 하기가 이렇게 힘든줄 몰랐습니다. 저는 이 얘기만 하다가 하직할것 같습니다. 이 너무 쉬운이야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하지말라 불신결혼하지말라 다똑같은 맥락입니다 아주 다 돌로칠 태세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도바울이 돌로 맞는것이 너무 막 체휼이 됩니다. 지금도 힘든데 그 당시에 정말 안들렸을것 같아요 바울의 얘기가.. 데살로니가 전도를 한후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바울을 감탄하게 하며 독특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름도 기억되어있지않은 무명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곳 베뢰아에 유대인들은 개혁한걸 성경에보면 복음에 대하여 매우 신사적이란 표현을 합니다. 이들이 2천년동안 알려진 베뢰아에 신사들입니다. 오늘은 베뢰아 교회 모습들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신사 물론 여기에 숙녀도 포함되겠죠? 이 성령의 신사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1.독불장군이 아닙니다.
10절이에요
10.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는 지난주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소도시로 그다지 중요한 도시가 아니였어요. 그런데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은 바울에 대해서 막 소동이 나자 바울을 밤중에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합니다. 밤중 여인이 위험하잖아요 요세 반포에서 청년이 죽은것처럼 빌립보에서 이렇게 당한일을 다시 당하는것보다는 이 밤중에 나가는게 낫겠다 이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는것 보다는 야반도주는 되게 비겁하게 보일수있죠 바울은 성령의 전략에 따라서 수치를 무릎쓰고 데살로니가에서 탈출을 합니다. 여기서 보내다는 단어는 신약에서 두번쓰였는데 사도행전 13장 4절에서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할때 쓴 두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 그 단어로 썼는데요, 이거 사도행전 누가가 썼잖아요 누가는 야반도주가 사실상 성령의 전략에 따른 파송임을 표시하기위해서 같은 단어를 썼어요. 그러나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이 여전한 방식으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것을 볼때 유대인으로부터 피하는것이 바울의 전략은 아니였다는거죠.
그는 피해야할 상황에 수치를 무릎쓰고서라도 피했지만 관례에따라 전도하는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에 다수 사람이였어요. 그는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기전까지는 아시아의 전도만 생각하고 유럽에는 올생각조차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순종하고 마게도냐는 왔지만 지리도 잘모르고 풍습 문화도 다 모르는것 투성이였어요. 그런데 모른다는것을 바울이 인정을하고 성도들이 시키는것을 하는것을 보게됩니다. 우리는 바울이 주도적이라 이런모습이 약간 생소하기도 하거든요 성령의 신사는 모르는것은 인정하고 그 밑에 제자동무들에게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반도주해야하는 이 밤과말이죠 시골인 베뢰아에 순종을 하는 바울을 보면서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할때는 그렇게 심히 다투었는데 여기서 바울은 '아니 바나바가 더낫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더나아?' 이렇게 생각할수있죠? 이해가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나가냐하면 바울이 그 유대인들과 협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왕따를 당하고 그래서 바울이 관계가 안되잖아요 하는분도 있어요. 아니 가는곳곳 돌을맞고 핍박을 당하니 바울이 독불장군 아니에요? 문제가 많아요 어떻게 한결같이 유대인들이 미워하겠어요 이럴수있죠? 이게 구속사와 세속사의 차이이기때문에 설명이 안되는부분입니다. 지난번에도 행위구원을 얘기했는데 우리중에는 직분자들도 그걸 잘모르는분들이 여기껏계세요. 이렇게 바나바와도 심히 다투어서 갈라섰던 그가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에게는 지금 순종을 하는거에요.
이게 어떻게 설명이 되겠습니까? 바울이 바나바를 설득해서 끝까지 같이 가려고 했던건 기억하시죠? 떠났던 사람은 바나바지 바울이 아니에요. 바울이 어린 혼혈인 디모데를 배려하고 베드로를 생각해서 아시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것도 저희는 살펴보았어요. 이게 똑같아 보이지만 복음의 본질과 비본질을 잘 구별해서 대처하는것이 진짜 신사입니다.
복음의 신사는 복음이 유익하다면 즉시 순종합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결코 독불장군처럼 하지 않았어요. 늘 다른사람들과 협력했습니다. 그런데 딱풀성도라고 자기들끼리만 딱달라붙는게 아니구요 주님께 딱달라붙어있는 딱풀성도는 주님의 뜻대로 이타적인 협력을 합니다. 그런데 이 협력 누구에게 배웠어요? 그거다 바울에게 배웠지요. 바울만큼 동역자를 중시하는 사람이 없어요. 동역자라는 단어 자체가 바울의 단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잘 들으셔야 해요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베뢰아 성도들이 바로 이걸 알았어요. 바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사도바울을 도운거에요. 유대인들을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데 바울을 돕는 사람들이 그냥 곳곳에 이렇게 있는거에요. 이렇게 서로 협력하는 신사와 숙녀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지 또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배와 목장이 이런 협력의 기운을 받는 협력하는 고품격 신사숙녀가 될수있는 이런 능력을 공급받는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1. 여러분은 구원을 빙자하여 매사에 독불장군입니까?
순종하고 협력하는 센스(믿음)가 있습니까?
이럴때의 믿음은요 갈때 안갈때를 아는게 이게 센스라서 센스라는 단어를 썼어요. 구원은 센스 믿음은 센스에요
자 어젓께 제가 어떤 아들한테 편지를 하나 받았어요. 저희 엄마는 3대째 크리스찬 집안으로 믿음이 확고하십니다.
하지만 교회에 너무 매달려 있어요 집안일에 너무 소홀하시고 교회에만 너무 매달려있는데 목장예배 무슨 양육과정 숙제해야 된다면서 매일 몇시간씩 그것도 저녁에 하시면서 저녁밥 청소 안하시고 아버지와 저보고는 알아서 먹으라 그러고 제가 이제 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어서 병원가야겠다고 초기증상인것 같다 하니까 '죽게되면 죽어야지 호흡이 있는 만물은 죄로인해 끝이있는데 어쩌겠니?' 이렇게 카톡이 왔습니다. 엄마 김양재 목사님이 이런 삶을 가르치는걸까?
다른사람들은 엄마행동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사연올려야 알겠어? 그러니까 올려 제발 우리엄마 고쳐주세요ㅎㅎ
저도 제발 집사님, 집사님 너무 이해해요 온라인예배 남편과 같이 드린다고 하는데 , 같이 드렸으면 이 말씀이 들리면 이렇게좀 이해가 될텐데 안들리는게 있나봐요 그러면 안들리는 식구들에게는 성령의 숙녀가 되셔서 이 센스장이처럼 독불장군이 되시면 아니되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도 목장에 좀 들어가셔서 같이 신앙생활을 좀 해보고 그렇게 나눔을 해보시면 너무 좋겠어요. 정말 다음주일에 엄마를 부르는수가 있어요?ㅎ
자 성령의 신사 두번째는
2.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11절 12절 이에요
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너그럽다 개역한글로 신사적이라는 말은 원뜻으로하면 잘났다 이런뜻이에요. 아주 좋은 태생의 고상한 마음을 가진 관대한을 뜻하는 비교급 단어입니다. 이 얘기는 고정관념에 덜 사로잡혀서 다른사람의 생각에 더 열려있는 이런 태도를 가르키는거에요. 한마디로 좋은태생과 좋은배경을 가지고 잘 자랐다는 뜻이고 고품격인간을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이렇게 고품격인 사람의 대표는 헬리나우웬이 아닐까 싶어요. 네덜란드 출신에 석학이고 명문대 교수고 어렸을때부터 헌신해서 카톨릭에 신부사제였고 아주 명석한 사고에 아주 탁월한 작가고 탁월한 연사에요 못하는게 없어요 얼마나 헬리나우웬 책이 유명합니까 말도 너무잘하고 상처입은 치유자 라고 불린그는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이입내지 공감대 형성이 아주 뛰어났어요. 명문도 예의와 하버드교수라는것도 고품격인데 마지막에 죽기 10년전부터 다 내려놓고 라르쉬라는 정신장애우 공동체에 가서 그렇게 살다가 갔기때문에 신사중에 신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11절에 보면 우리번역으로 베뢰아 사람들이 더 너그럽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원문에 구조로 보면 그 반대가 맞는거에요. 베뢰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이 그런지 날마다 성경을 꼼꼼히 묵상했기 때문에 그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다 더 신사적이였다 더 고품격신사용 숙녀다웠다고 하는거에요. 이거 무슨뜻인가요? 베뢰아 사람들이 더 신사적이기때문에 말씀을 간절히 받았다는게 아니구요 반대로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성경을 상고했기때문에 그런 간절함과 사모함때문에 더 신사적이라는것입니다. 한마디로 잘남의 기준과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신사적이여서 간절히 말씀을 사모한게 아니고 간절히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에 신사적이였다 아시죠? 그렇단말이죠 그런데 이런 그 구속사적 가치관에서 잘남의 기준과 출발점은 오직 말씀묵상에 있어요. 태생과 성품이 어떻든 배움이 얼마든 자격이 무엇이든 어떤환경에서 살고있던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그것이 진짜 신사적이고 잘난인생이라 이겁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대하는것도 열정도 으뜸이였지만 더욱더 눈여겨 보게하는 말씀을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의 구절이에요. 상고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아나크리노라는 단어인데 아주 이 단어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반복하는 접두어 아나와 접속사로는 위에라는 단어인데 구별하여 판결 결정하다는 동사 크리노가 합쳐진 단어에요. 이 상고하다에는 판결하다가 들어가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나크리노는 판사가 재판을 하기위해 증거물들을 꼼꼼하게 반복적으로 살피어 판결할때 사용했어요. 자 다시 생각해보면 말씀에 비추어 나를 자세히 살피고 내 삶의 티를 골라낸다는 뜻인데 티를 골라내려면 막 조사하고 검토하고 먹고 씹어보고 적용해서 행하는데까지 가야하는것이 상고하는것입니다. 이런 인생이 잘난인생입니다. 자꾸 반복합니다. 그러면은 베뢰아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지금 이 바울의 강론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분별해서 판단했을까요?
13절에 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와가지고 또 바울을 놓고 소동을 했잖아요 그러면 저 바울의 말씀이 진짜인가? 분별해야되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날마다 상고했다는것이 이런뜻이 들어가서 이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유대인들의 거짓 가르침을 구별하는 이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는것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는것을 고민했다는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이것이 진짜인가? 그래서 존스타트는 베뢰아 성도들이 수용성과 비판적인 질문을 겸비했다는거죠. 다 받아들이면서도 비판적인 그렇게 티를 골라내기위해서 조사하고 검토하고 씹어보고 해보니까 삶의 그거를 가져와서 분별을 해보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거를 골라낸거에요. 우리가 성경을 유대주의의 틀로 외곡해 받아들여서 문제지 사심없이 정밀히 상고하게 되면 다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할수있어요. 저도 혼자서 예수가 그리스도인걸 발견했잖아요? 이런 인생이 하나님보시기에 진짜 성경을 자세히 상고할때에 확실한 신앙을 소유하게되면 확실한 신앙이 가장 하나님보시기에 잘난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이 간절함으로 상고했다는거는 반드시 간절함은 상고함과 분별과 판단이 따라야합니다. 그랬더니 베뢰아에 믿는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제가 권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그걸 삶으로 가져와서 내게주시는 음성으로 삶에서 들어보세요 그러면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납니다. 요즘 온라인 예배를 드리니까 아주 갈급함이 최고조에 달할수도 있죠. 그렇다고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듣고보고해서는 안되죠. 그런데 우리는 주일예배도 말씀 수요예배도 말씀 목장도 말씀 큐티도 말씀 간절함과 갈급함으로 상고해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데요. 목장에 들어가보면 주일예배도 안들어보고 목장에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에대해서 이러고 저러고 참 말하는것도 좋은데 말씀을 들어보고 얘기하셔야 해요.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삶의현장에 그 말씀을 가지고 와봐서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그러한가 하여 그런데 저보고 뭐라고 하는사람들은 말씀 안들어요. 주일에 저한테 무슨말을 하려면은 일주일에 날마다 제 설교 하루에 한번씩은 들어보고 그러고 얘기하시라고 그럼 또 여러분들은 아니 자기설교가 뭐라고 또 날마다 들으래, 아니 그러니까 저한테 대해서 여러분들이 비판을 해야 되니까 꼭 들어보시라고 하루에 한번씩 , 책도 말이죠 쉽게 읽히는책을 읽어야 할때도 있지만 조금 생각을 해야 될 책을 읽으면 여러분들에게 굉장히 유익이 많아요. 굉장히 피가되고 살이되는 그래서 이제 남미에서는 몇시간씩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예배시간이 기본이 2시간 미국에서도 성장하는 교회는 설교시간이 1시간 그래서 저는 이제 설교시간이 긴거 가지고 미안해하지 않기로 결단을 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두세시간씩했어요. 그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왜냐하면 정말 제가 하고싶은 얘기 다했거든요 그때가 정말 양육이 된거 같아요
지금은 제가 얼마나 마음대로 하는거 같지만 마음대로 안해요 원고써가지고 골라낼거 골라내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날것을 못먹어요 익은것만 먹어요. 그랬더니만 오늘 믿는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꼭 우리들교회를 말하는것 같아요 믿는사람들이 많지요? 귀부인과 세상적으로 엘리트인분들도 적지 않아요 그 표현이 또 맞지않아요? 우리가 꼭 베뢰아교회같지 않습니까? 이런 인생이 성령의 신사요 성령의숙녀입니다.
그런데 이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서는 책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베뢰아서는 없잖아요 왜 없을까요? 베뢰아 교회는 너무 잘하고 있기때문에 편지도 안쓰고 파송도 안했어요 사역자를 그럼 대체 베뢰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할수 있었을까요? 이런것들을 좀 생각해보시라구요. 그저 예수님 믿으면 복받는다 이런쉬운얘기말고
이 생각을 해야지요 뇌도 운동을 하잖아요 베뢰아는요 빌립보나 데살로니가보다 더 오래된 도시에요 그래서 알렉산더대왕시절에는 마게도냐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는데 주전 168년에 로마가 마게도냐 지역을 점령할때 제일먼저 로마에 항복했어요. 자존심이 좀 없죠? 그런데 그 이후에 아주 이류도시로 내려갔어요. 빌립보가 뉴욕이라면
데살로니가는 워싱턴DC쯤 되요. 근데 빌립보와 데살로니가가 마게도냐를 관통하는 에그나티아 도로가 있는데 빌립보하고 데살로니가가 도로에 다 연결이 되어있는거에요 그런데 베뢰아는 이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부고속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거에요. 그러니까 베뢰아 사람들이 지역적 소외감을 가졌을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뒤쳐지지는 않은데 지금 말하면 그 텍사스 이런데가 굉장히 복음의 벨트라인이에요 근데 저기모야 켄터키 시골마음쯤 된다고 할수있는데 아주 키케로는 도로에서 떨어진 마을이라고 하죠 만년 이류도시라는 피해의식이 그들의 마음을 딱사로잡고 있는 고난인데 진짜 이 켄터키 이런데가요 여자는요 바지안입고 치마만입고 경건하고 그리고 그 텍사스이 도시사람들이 굉장히 너그럽구요 믿음이 있고 그렀대요 지금 우리가 저기 캘리포니아 이런데 가면 신앙생활이 안된다 그래요. 그래서 이쪽 베뢰아가 비교급을 써서 더 너그럽다고 합니다. 결국 이 고난이 구속사의 말씀을 들을때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만년 이류니까 늘 눈치를보고 남의시선을 늘 의식할수 밖에없고 그런데 그런 약점이 바울의 증언을 편견없이 내가 정답이라는 권위의식없이 객관적으로 들을수있게 하는 바탕이 된것이죠. 제가 늘 이렇게 보니까 진짜 여러분들이 힘들때는 다 간절하게 사모하는데 좀 환경이 좋으면 정말 목자하기도 힘들어하고 그러더라구요. 정말 예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늘 고난이 오라고 기도할수도없고.. 저도 이제 사명이 없으면은 진짜 이길을 못가는게 진짜 이게 맞는것같아요. 베뢰아의 열매가 훨씬 많은거에요 지금 이 두 도시보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잘난사람이 말씀을 간절하게 받는게 아니에요.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인생이 고품격 신사인데요. 이 간절한 마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아요 정말 여러분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여러고난을 겪으면서 이땅에서 소망이 하나씩 끊어지는것 만큼 그 간절함이 하나씩 생기는거에요. 이 땅에서 소망이 그득그득 차있는데 간절함이 안생겨요.
간절한 마음은 고난에 비례합니다. 구원의 관점에서는 그래서 우리인생에서 버릴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사적이고 너그럽다는것은 정말 고정관념이 없는거에요. 내가 육이 무너질수록 내속에 고정관념이 하나씩 벨트가 끊어지는거에요. 간절함이라는건 좋은게 좋은게 아니고 반드시 상고함과 분별함과 판단이 따라야 하는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2. 신사적이라 말씀을 찾습니까? 말씀을 찾다보니 신사적으로 되었나요? 고난중에 하나님만 간절히 찾습니까?
오늘도 무사히만 빌며 하나님을 찾습니까?
고품격 신사처럼 보였던 헬리나우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이고 비공개적 동성애자였어요.
단적으로 마이클포드가쓴 전기 헬리나우웬의 초상에 명기되어있는데요. 그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믿고 있었어요. 평생 동성애적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는데 그래서 외적인 선행과 인고로써 극복해나갔다는거죠.
그래서 더욱 반사적으로 신부 사목생활에 침참했다는거죠. 어렸을때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와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그러다 보니까 카톨릭에만 구원이 있다고 했다가 말년에는 보편 구원론내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면서 모든인간들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다 구원받을수있다 정말 이단사설을 읆었어요. 코드는 나우웬에 동성애적 바탕을 염두해두지 않고는 그의 인간됨에 복잡미묘함과 고뇌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할 이 십자가인 동성애적 성향과 그냥 씨름을 해야했는데 그럼에도 하바드에서는 동성애학생들을 또 엄격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상태라고 일러줬어요. 근데 본인은 너무나 애욕에서 벗어나지를 못한거죠. 그러니까 복잡한거에요 우정에 모든걸 걸고 있는거에요 이성이 아니고 , 지속되지 못했을때는 많은 경우에 아주 정말적이 되버렸다는거죠. 그래서 나우웬의 우정은 동성애로 대입될수 있다고 봐지는데요. 그래서 굉장히 동성애자라는거는 그렇게 살았다는 의미가 되고 길고 짧은것은 조금 시간이 10년 20년지나니까 나오잖아요? 우리가운데도 말과 글을 잘쓰고 할수 있지만 삶하고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그러한가하여 평가하는거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아니면 또 모르잖아요 동성애는 오픈하지는 못하고 동성애가 지속되고 있으니까 그런 상처입은치유자라는 그런글들을 쓰지않았나 싶기되 해요. 그래서 로마서 1장 27절에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이점에서 그가 상처받은것이 있다면 그가 누구한테 받았겠어요 상처를, 이 사탄과 졸개에게 받은거죠 그건 주님에 의해서 치유받았어야 하는 부분인데 일생을 두고 끼고 있었다는거죠. 받을 필요가 없는 상처를 받았는데
그러니까 저는 나우웬이 왜 이랬을까를 생각하면 이분이야 말로 행위가 완전한거에요 그죠? 그러고 고난이 없는거에요 어려서부터 동성애자인거에요. 동성애자를 다 너무 나이스해요. 공부도 잘하고 그러고 또그냥 어렸을적부터 가톨릭사재로 헌신을 하고 학교도 하버드예일교수고 신학부교수니까 성경을 평생 연구를 하고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연구하는걸 간절한 상구라 그러지않아요 삶에서 성경말씀이 죄라고 하면은 적용을 해야 되잖아요 적용을 못하잖아요 지금 동성애를 끊어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복잡 미묘하겠습니까? 우리 이런걸 구속사라 그래요 그런데 그에 비해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죄와벌을 쓴 도스프예프스키는 사형받기 직전에 구출이 되어가지고 엄청난 책을 썼습니다. 그는 날마다 1달라 2달라가 없고 먹을것이 없어요. 순전히 먹고 살것이 없어서 처절하게 가난하게 살아서 생계형 작가가 되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하죠 요세 윤여정씨도 자기가 생계형배우가 되서 간절해서 연기를 잘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한 철학 그저 먹고살게없는 이런 한계적인 상황이 우리를 간절하게 상고하게 하는게 맞아요 베뢰아처럼 갖춘것이 없는 사람들이 더 간절하게 상고를 한다구요. 그러니까 이 돌을 보면 예수믿어 천국가는게 최고의 고품격 인생인데 이걸 인정하는게 구속사적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이 구속사를 지난주일에도 얘기를 했지만 가장 고품격으로 느끼는 사람이 사실을 정말 매력적이고 멋진사람인거에요.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거에요. 가장 품격있는 신사와 숙녀인거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적용해보세요.
적용3. 헨리나우엔과 도스토예프스키중 누가 말씀을 간절히 상고하여 분별하고 판단한 성령의 신사일까요?
이 설교는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가치관이 좀 바뀌어야 되니까 반복해서 상고했다잖아요 아나크리노!
강력한 반복의 단어에요. 여러분들이 모르겠으면 들어요 판단좀 하지 마시구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지도 않아야할걸 매주 생각하고 씽크하는 훈련을 하니까 고품격이 지금 되는거에요 저품격이였다가 중품격이였다가 고품격이 되는거에요. 나는 저 인가 중 인가 고인가 그것도 좀 얘기해봐요.
여기까지 이해됐어요?
성령의신사는 세번째는
3.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13절부터에요
13.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베뢰아에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바울의 구속사적 강론을 듣고 믿었다는 소식이 데살로니가에 전해지니까 이 유대인들의 시기심이 여기까지 또가서 막 소동을 일으키는거에요 하여튼 바울한명 잡으려고 참으로 무서운 시기와 무서운 열심을 내면서 또 우르르 몰려왔어요. 데살로니가에서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베뢰아 시민들을 선동합니다.
바울이라는 작자가 가이사외에 다른 임금예수가 있다며 반역을 꾀한다. 반역죄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죠. 유대인들의 이런모습을 보는게 바울도 참 어려웠을것 같아요 아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성품이 아니라 믿음이다 이얘기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여러분들이 다 성품이고 착하게 살려고 교회오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고 본성을 자꾸 거스르는 얘기를 하니까 날마다 힘든거에요. '내가 착하게 살라고 그랬지 뭐가 고난이 축복이야' 이러니까
그래서 그냥 숨이 탁탁 막힙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게 자기일을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신 사명의길임을 확신한거죠.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17절입니다.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것이로다
17.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사명때문에 와서 사명때문에 살다가 사명때문에 가는 인생임을 내가 알았어요. 성령의 신사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불러주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명의 자리를 비비고 닦고 문지르다보면 의지까지 새롭게하심을 입어서 내원이 하나님의 원에 맞춰지게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목자로 억지로 부인이 믿음이 좋으면 남편이 믿음이 약한 연약해도 목자가 되는수가 있어요. 그럼 내가 왜 됐나 포지션이 중요해서 거기 자꾸 있다보면 내 원이 하나님의 원에 맞추어지는게 있어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우리들교회가 그래서 직분은 구속사를 깨닫기에 좋은 포지션인거 같아요. 그런데 그래서 내 원을 자꾸 하나님의 원에 합쳐질수있는 양육과 훈련을 받으셔야 되는거죠. 그래서 유대인의 선동으로 도시가 시끄럽게 되자 베뢰아 성도들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했던것처럼 바울을 또 탈출을 시키는거에요. 내보내는거에요. 이 단어 역시 10절에 아까 했던 보낸이처럼 사명의길로 파송했다는 뜻이에요.ㅡ
그런데 이제 베뢰아 성도들이 더 신사적이니까 말씀을 더 좋아하니까 바울을 보내기가 싫었을것 아니에요. 그런데 성령의 신사들은 자기유익을 구하지않고 성령의 보내심에 협력을 하는거에요. 바울은 이번에는 혼자만 가네요. 아 점점 위험하니까 혼자만가 ,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둡니다. 근데 데살로니가 갈때는 바울하고 실라만 갔잖아요? 기억하십니까? 그랬는데 그때는 또 디모데하고 누가는 어디갔는지 안보이더니 자기네들 몰래그냥 베뢰아에 왔나봐요 혼자,ㅎㅎ 그랬더니 여기 실라하고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둔대요. 하루하루가 일촉즉발의 긴장속에서 사역을 하는거에요 홀로 떠나는 바울도 유대인의 박해가 시작된 베뢰아에 남은 실라와 디모데도 각자 자기에게 남겨진 사명의 자리를 잘 지키는 모습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자기 역할을 다 합니다. 정말 다들 고품격 신사 맞습니다.
하지만 베뢰아 성도들은요 초신자잖아요? 무명의 초신자들은 바울이 이 마게도냐에서 아가야,여기저기 아덴까지 가는길이 320키로정도 되거든요 거기부터 쭉내려오면 그런데 거기를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행해서 동역자가 되서 바울 모시고 자기네는 그냥 오는거에요. 그때는 비행기도 없고 차도 없는데 믿음도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여기를 동행합니다. 이거는뭐 참 육로가 있지만요 그들을 따돌리고 해상으로 갔다고도 해요 그렇게 말만 바다로 갔다그러고 사실은 육로로 갔다 그때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이였어요. 그렇게 성령의공동체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무리가 되고 형제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갑니다. 질릴만큼 집요하고 끈질긴 방해와 괴롭힘에도 그 길을 멈추지 않게 하시는분이 오직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집요하게 공격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죠 따라서 우리가 가정과 교회에서 세상에서 말씀과 가정 중수의 사명의 길에 마침표를 찍지않고 그길을 완주하는것이 주님과 동행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고품격인생 성령의 신사와 숙녀로 사는것입니다. 이것은 영혼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지 이마음이 생기는거에요 지혜가 생기는거에요.
그런데 늘 허다한 무리에만 관심이 많고 사역의 영성이 건강하지 못하면 직분에만 탐하고 이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것이 말실수가 되서 천냥빚은 값는게 아니라 도리어 얻게 됩니다. 정말 성령의 신사들은 말조심을 해야되요 믿음은 보이는게 아니에요 또 물질이 아니라 인격적인거에요. 인격이에요 인격
그래서 정말 영혼구원 사람을 사랑하게되면 긴박한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니까 말을 이때 이렇게 잘못해가지고 데살로니가가 날아갈수가 있고 베뢰아가 날아갈수가 있잖아요 내 말 하나 잘못해가지고 이 집안의 구원이 날아갈수가 있어요. 말 실수를 작은것으로 여기면 안되는거에요. 목장이고 어디에서 수도꼭지처럼 하고싶은말 다 하시면 안되는거에요. 참아야 되는거에요 말 참는게 제일 어려워요.
적용4.
내게 맡기신 사명의 길을 멈추게 하려는 사람들을 원망합니까? 정죄합니까? 불쌍히 여깁니까? 성령의 신사가 되고자 할때 형제와 무리가 되어 잘 따라가야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답을 다 알아도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늘 씽크를 해보는거에요 이런것이 고품격 언어인거에요
세상에서는 용서하고 사랑하라 이런 단어 안씁니다. 이기라고 늘 이야기 하지요 이거 날마다 듣는거 이것만 듣습니까 새벽마다 수요일마다 목장에서 듣지 어려분들은 고품격신사 맞습니다.
자 공동체 고백이에요
남편이 도박하고 다말아먹고 외도하고 평생속을썩이는데 간암말기라는거에요 오늘 내일한데요
그랬는데 간이식하지않으면 죽는다는데 이식하려면 6천만원이 든다는거에요. 요세는 살길이 있다고 하니까
너무너무 속을 썩이고 돈도 없는데 이식까지 해달라고 하니까 죽기만을 또 바라는 마음도 있는데 살아서 괴롭히니까 아주그냥 아내는 가슴이 오그라드는거에요. 그런데 글쎄 고등학생 아들의 간조직이 남편하고 맞는다는거에요. 아들도 힘든데, 그래서 어떡하면 좋냐고 저 남편때문에 우리 아들을 또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그러면서 제가 이식을 해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죠 이식을 해주시고 그분이 살아나면 그분이 또 도박을 할거에요.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을수 있어요 그것때문에 생색내지 마시고 그분을 위해서 이식해주시면 아무도 안죽잖아요 집안식구들,
영원토록 수많은 사람 살리고 자녀에게 크게 본이 될것이라고 자녀도 살릴거라고 그얘기를 했더니 얼마나 울고껴안고 갔는지 몰라요. 다들 목사님도 안해줄거면서 어떻게 말을 그렇게 쉽게하냐 그건 최고로 성령의신사가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실 아들이 맞으니까 돈도 안없어지고 자녀에게 너무 본이 되기 때문인데 제가 주로 이렇게 처방하니까 무서워서 오기 싫은거에요. 바람펴도 살라그러고 이러니까 아마 이런 처방을 기대했을지도 몰라요 아니 돈도 하나도 없는데 무슨 또 6천만원이나 빚을져요 그냥 죽게 내버려둬요. 도장받으러 왔는데 혹때려다 혹을 붙였잖아요?
그래서 어짜피 짧은인생인데 내가 산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것은 대단한것이잖아요? 그 남편이 변하는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것이지 내가 간떼어줬다고 남편 변하는것 절대 아니에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돈도 꿔주고 생명도 주는것입니다. 그 사람이 고마워할거다라는 생각은 안하는게 좋아요 그렇게 예언을 했는데 예언이 딱되가지고 아들이 간을 이식해줬는데도 이 사람이 주님을 못만나는거에요 도박 바람 다 계속 되었어요 2008년도에 오셨는데 아직까지 목자가 아니에요 보니까 부목자도 아니더라고 그런데 이제 아내가 뇌경색으로 아파서 요양병원에 입원을하게 되니까 굉장히 성실해지고 바람도 끊어진것 같은데 이 아내는 뇌 경색인데도 요양원에서 부목자로 목장도 참석하고 목보도 쓰고 있어요. 저는요 2008년도니까 지금 10몇년 됬잖아요? 그래도 이 가족이 모두 지방에서 꼭 와요 교회, 모두 교회 목장에 나오는게 감사해가지고 저는 그 시간이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해요 교회 온게 어디에요 딱풀성도로 성령의 신사숙녀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들도 싱가폴에 갔는데 아들도 결혼하고 할렐루야 저는 성령의 신사숙녀는 잘난사람들이 아니고 딱풀성도라고 생각해요. 목자도 안하면서 10몇년 오는게 더 힘들지 않아요? 다 모든 식구가 교회온다고 안믿어지는거 어떡해 간을 이식해줘도 안믿어져 그거 기다려주셔야되요. 제가 이상한 간증만 이렇게 들려드려서 죄송해요 훌륭하게 간을 이식해준 이랬으면 좋겠는데 인생이 별인생이 없다구요 자 그러니까 신사적이라서 간절히 성경을 상고하는게 아니고 상고했더니 신사적이되더라 알으셨죠? 말씀 맺습니다.
독불장군이 아니에요 성령의 신사는
간절히 말씀을 받습니다
정말 사명을 멈추지 않아요
성령의 신사는 한마디로 너그러움이에요
말씀이 들리면 너그러워져요
고정관념을 내려놔요
편해져요 성품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영적이지않으면
간절한게 없어요 그러면요 매력이 없어요. 우리는 헬리나우엔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분별할수 있어야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중에서 분별을 좀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주님만을 원해야해요 더 원해야해요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찬양: 주께 가까이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채워주소서 주의 사랑을
진정한 찬양 드릴 수 있도록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채워주소서 주의 사랑을
진정한 찬양 드릴 수 있도록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주소서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주소서
성령의 신사가 되기위해서는 이 독불장군이 아니고 정말 좀 너그럽게 해달라고
목장마다 모두가 좀 너그러웠으면 좋겠어요 오해를 좀 하지않고 협력을 하기위해서 기도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상고해서 그 고정관념에서 벋어나서 다 받아들이도록 나의 모든일은 사명입니다
그래서 맡은 일을 잘 감당할때 여러분들은 최고의 신사고 숙녀가 될줄 믿어요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오늘은 이땅에 모든 스승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 모든 주일학교 선생님들 평초원님들 목자 부목자님들 권찰님들 내옆의 모든 선생님들 위해서 기도하시고 모두가 성령의 신사숙녀되고 그 가정을 위해서 우리가 사명잘감당하시고 축복해달라고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바울이 일평생 신사가 되기위해서 가말리엘에 문화가 되어서 최고의 문벌을 자랑했던 바울이
이렇게 지금 유대인들에게 매를맞고 돌로침을 당하면서 가는곳곳에 그야말로 핍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바울이
이 죽음을 걸고 사역을 하니 얼마나 확신이 생겼겠습니까 정말 모르는 사람들은 다 독불장군이라고 그랬을것 같습니다. 이 바울의 인생이 조금 이해가 되는걸 보니까 저도 이혼하나 말리려고 죽지 말라고 그런 말 한번 할때마다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 왜 남의일에 간섭인가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확신이 너무든 나머지 이렇게 독불장군같은 면이 생겼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다 100%죄인이라서 자꾸 넘치던지 그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면 점점더 독불장군이 되가서 예전같으면 아무리 그것이 옳지 않아도 입도 못벌렸는데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입만열면 분별을하고 판단을 합니다. 분명히 맞는것도 있을터인데 제가 말하고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주님
정말 겉으로 보이는 신사숙녀는 누구나 하고싶지만 성령의 신사가 정말 십자가의 길인거 같아요 그래서 해야 되는지 안해야 되는지 늘 날마다 갈등을해서 제 힘으로는 이길을 못가는데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누가 헬라나우엔인가 이렇게 비교를 할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를 믿어야 고품격이라는거 이게 확실한 명제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이 말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주님 우리속에 나에대해서 조금이라도 침해하는말을 할때 너무나도 듣기가 싫습니다 주님 참으로 신사적이라는것은 너그러운것이라고 했는데 나의 유익이 아니고 정말 구원을 위하여서 너그러워지고 편해지고 그런사람이 될수 있도록 은혜내려주시옵시고 부족한것 있으면 또 넘치는것 있으면 주님 알려주시고 이 사명의 길을 멈추지 않을수 있도록 주여 은혜내려주시옵소서 오늘 이땅의 모든 스승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진정한 성령의 소명을 갖게 도와주시옵시고 특별히 우리들교회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 주일학교 선생님들 평초원 목자님 권찰님 부목자님들 수많은 우리옆의 모든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참으로 성령의 신사로써 성경을 상고하고 분별하여 판단하여서 지혜롭게 아버지 하나님 말을 전할수있는 우리모두가 될수 있도록 그래서 참으로 수천대에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육간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태아생명법이 재정되며
평등법 오늘 나우웬처럼 아버지 하나님 동성애법 차별금지법 통과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목장참석 : 성화 신영 희준
기도제목
성화
1.고집이 있는데 모르는거 잘 인정하는 신사가 되길
2.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마음을 주시길
신영
1. 말씀을 구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2. 음행함과 세월을 도둑함을 경계할 수 있는 노력에 힘을 더하여 주세요.
3. 저를 공격하는 악한것들에서부터 제 심신을 보호해주세요!
병희
1.스스로를 사랑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주님 마음으로 다른사람을 사랑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희준
1.이직고민중인데 상고하여 잘분별해서 결정할수있도록
2.성품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너그러워지고 편한사람이 될수 있도록
3.모르는건 인정하고 큐티말씀 보고 상고하는 훈련 잘하며 살아낼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