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8 성령의 열림
사도행전 16:26-34
지난주에 성령의 찬송 잘 부르셨어요? 굳게 닫힌 감옥 문이 바울과 실라의 몸은 막고 있어도 그들이 부르는 찬송은 막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찬송은 감옥 문을 열고, 간수의 마음을 열고, 간수의 가정을 여는 성령의 열림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성령의 열림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옥터를 움직여 감옥 문을 여십니다. (26절)
이에는 깊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성령의 찬송을 함으로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지금 움직인다는 것이에요.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와 화답을 상징합니다. 이 일은 귀신 들린 여종을 위하여 옥에 갇히기로 결정하고 온갖 매를 맞고 살점이 뜯겨져 나간 바울과 실라를 향한 하나님의 기쁨을 이기지 못한 찬송의 화답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죄인 된 우리가 죽어야 할 그 현장에 대신 당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마태는 27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로 인해 원수 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죠. 마찬가지로 한 영혼을 위해 값을 지불하고 깊은 옥에 갇힌 바울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곳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여기서 나를 부르셔서 여기서 내 생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나는 감사와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바라볼 때 이건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내 상급이 되심을 찬송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온 천지만물을 악기 삼아서 화답하시며 노래하시는 거예요. 바울아, 바울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바울아, 바울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함께 있다. 따라서 우리 삶에 갑자기 일어나는 큰 지진과 같은 사건과 삶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지진을 통해 우리를 흔들어 깨워 회개하게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옥터가 움직이듯 내 존재의 기초까지 말씀으로 뒤흔드는 깊은 회개를 할 때 우리 삶의 모든 닫힌 문들이 구원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옥토가 움직였다는 것은 감옥의 기반, 기초가 흔들렸다는 것이죠. 기초가 흔들리자 거기에 박혀 있던 감옥 문들도 모두 즉시 열립니다. 단단히 매여 있던 차꼬도 벗어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문제들의 기초, 그 모든 문제 밑에 깔려 있는 근본 문제는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 22-23절은 이렇게 말해요.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주님은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갇혔다고 알려주시네요. 그렇습니다. 죄가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예요. 우리 삶을 가두고 있는 수많은 옥문들과 결박들이 뿌리박고 있는 옥터는 바로 우리의 죄악입니다. 따라서 감옥 문처럼 우리 삶을 가두는 문제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그 옥터인 우리 죄악인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죄를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죄를 인정해야 해석이 되어 해결로 나가는데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늘 괴롭습니다. 큰 지진이 옥터를 흔들어 옥문을 열 듯 우리 삶에도 주님이 일으켜 주시는 큰 지진 같은 사건이 우리 죄를 흔들어 놓습니다. 드러나지 않던 죄가 드러나고 깨닫지 못하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감옥의 돌바닥처럼 우리 안에 단단하게 깔려 있는 이 죄악들이 큰 지진 같은 사건으로 움직여 다 드러납니다. 드러나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내 삶을 읽고 지나갈 때에만 내가 기초부터 타락한 100% 죄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죄로 막힌 내 삶을 열어 주시는 성령의 열림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갑자기 옵니다. 늘 안되는 것 같고 늘 기다리는 것 같지만 갑자기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매인 것이 벗어진지라에 해당하는 이 동사들은 모두 심적인 수동태 동사들이에요. 내가 열 수가 없어요. 내가 벗어질 수가 없어요. 하나님만이 구원의 길을 내십니다. 내가 자꾸 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옥에서 잘 기다리면 바울같이 자기 죄를 더 보면서 내가 옥에 잇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고 늘 바울이 구속사를 말을 해요. 실라하고 같이 나눴자나요. 그런데 바울이 무슨 죄가 있어요. 바람이 남편이 폈는데 본처가 무슨 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다 그렇게 자기 죄를 보니까 갑자기 움직이고 열리고 벗어지게 되는 날이 오는 거죠. 영적 시각이 생기는 거예요. 인간이 영물이자나요.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게 됩니다. 큰 지진이 오기 전에는 가치관이 안 바뀌어요. 우리들교회는 이런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유함이 생기니까 그곳이 옥이 아니고, 또 옥에 잘 붙어 있으니까 갑자기 온 남편의 죽음은 큰 지진 같은 사건이었지만 죽음의 권세까지도 죽음을 깨뜨리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노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찬양의 현장이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적용] 내 죄를 흔들어 드러내신 큰 지진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삶의 닫힌 문제가 내 죄의 기초에서 비롯된 결론임을 얼마나 인정하십니까? (몇 % 인정하십니까?)
2. 스스로 갇힌 자가 될 때 간수의 마음을 여십니다. (27-29절)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사건,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지진의 사건이 바울 일행에게는 하나님의 화답이었는데, 정말 묶었던 결박이 풀어지는 자유케 되는 사건이었지만 간수에게는 자결할 사건인 거예요. 멸망할 사건인 거예요. 죽을 사건인 거예요. 똑같은 사건이 여기는 구원의 사건인데 여기는 심판의 사건이에요. 내가 남편이 갔어도 내가 믿음이 없었다면 이거는 심판의 사건이자나요. 그런데 저에게는 찬송의 사건이 됐자나요. 당시 로마 시대에는 죄수들을 도망치게 하면 그 죄수 대신에 자기가 죽어야 돼요. 우리가 베드로도 감옥에서 나가서 그 파수꾼 헤롯이 죽였던 것 기억나시죠? 그러니까 절망 속에 자기는 죽은 목숨이니까 그렇게 죽기 전에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했어요. 일촉즉발의, 자살이라는 게 초, 2초 사이에 일어나는 거예요.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외쳤어요. 여러분 여기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감옥문이 열렸는데 죄수들이 다 함께 모여가지고 아무도 안 나갔어요. 우리가 다는 문자적으로 전체, 모두를 의미하는 형용사가 쓰인 것을 보면 모든 죄수가 다같이 남아 있었던 거예요.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죄수들이 옥에서 나가기를 얼마나 소원했겠습니까? 그런데 옥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안 움직인 것은 매를 맞고 성령의 찬송을 한 바울 사도의 결론이겠죠. 하나님의 인정하심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구원을 위해 갇혔어요. 성령의 열림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고 마음이 열리니까 옥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안 나갔다는 거예요. 자유를 부르짖다가 자유가 주어졌는데 자유를 반납했어요. 그러니까 베드로하고 바울하고 좀 다른데, 베드로는 환상을 보는 가운데 옥중광채로 정신없이 따라 나섰는데 바울은 쓰임이 각자 다르죠.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 간수 한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온 죄수들이 아무도 안 움직였어요. 왜냐하면 죄수들은 이미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이미 공동체가 됐어요. 바울과 우리 공동체가 됐습니다. 성도들은 삶의 소망이 없는 자를 살려야 합니다. 어디나 대가지불이 있어야 되는데 바울의 목적은 자유케 되서 이 감옥을 나가는 것이 아니었어요. 나를 자유케 해 주셨다면 그 자유로 스스로 갇힌 자가 되고 종이 되어서 이 낯선 땅에서 나와 함께 이 찬송을 부를 가장 힘든 또 한사람의 마음을 성령의 열어 주시는 것이 목적인 거예요. 이미 여기는 다 믿었어, 감옥에.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풀림을 받았다면 방문 열고 나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방문을 닫고 여전히 지진 가운데 떨고 있는 내 옆의 한 지체를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줘야 합니다. 뭐라고 전해줘야 할까요? 간수가 자고 있었자나요. 자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들려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진의 사건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자고 있던 간수도 깨우는 사건인 거예요. 내 삶을 흔드는 지진은 그 사람 귓가에, 또 하나님이 우리 귓가에 대고 깨어라, 일어나라 외치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인 거예요. 이게 나팔소리라고. 내 평생 만날 수 없는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의 사건이라고 알려줘야 되는 거예요. 이건 죽을 사건이 아닌 거예요. 그러기에 이 때를 바울은 결코 놓칠 수 없기 때문에 감옥을 나가지 않고 여전히 지키고 있어요. 누구를 구해야 될 지 우리 아침마다 큐티하면 그걸 하나님이 타이밍을 가르쳐주세요. 내가 신접해서. 그런 타이밍이 비록, 주로 하나님께서 많이 맞춰 주시더라고요. 사건을 해석 못해서 절망 가운데 자결하려는 한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복음의 종이 되는 거죠.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자기를 그리스도의 종된 바울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내가 학교를 잘 가고, 돈이 벌리고, 원하는 거를 다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그 지독한 가난의 옥에서 풀려났어요. 그 질병의 옥에서 풀려났어요. 그래서 아프리카 선교를 가는 것보다는 내 옆의 한사람, 내 눈 앞에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그 한사람을 찾아가서 크게 소리질러서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우리가 있다자나요. 공동체.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넌 결코 혼자가 아니야 이게 목장 모임이죠. 니 몸을 상하게 하지마. 외쳐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을 그 한사람은 반드시 내 옆에 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엄청난 전도를 향해서 유럽으로 건너왔지만, 바울이 만난 사람은 과부 루디아, 귀신 들린 여종, 오늘은 완전히 이방인 간수 한사람. 항상 한사람에게 초점을 둘 때, 유럽이 열리는 거예요. 전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내가 한사람에게 초점을 둬 보세요.
[적용] 옥문이 열렸는데 한 영혼을 위해서 스스로 갇히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손해가 겨우 만회됐는데 자청해서 손해를 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3. 주 예수를 믿으라 입니다. (30-32절)
이것이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인데 이걸 바울이 얻어냈습니다.
간수가 드디어 스스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바울이 먼저 말한 게 아니예요. 지진의 사건이 간수를 깨우고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한 가지 사건이 기억나지 않았을까요? 무엇입니까? 자기가 잠들기 전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매맞고 들어왔는데 내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여기 안 들어왔으면 내가 마땅히 지금 기독교인들 죽이고 있었을거야. 이러면서 구속사를 고백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고 찬송을 하니까 죄수들이 들었다 그랬자나요. 그런데 그때 죄수만 들었겠습니까? 간수도 듣죠. 들었겠지만 자기하고 상관이 없으니까. 자기하고 상관이 있으면 이게 딱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거 바로 그거예요. 바울이 자기를 도와줬는데 바로 이 사람이 옥에서 찬송하던 사람이구나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구나. 구원받은 사람들이구나. 나도 저 구원 좀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이 뭘 먹을지, 입을지, 어디를 갈지 이런 질문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바울과 같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그 바울 사도가 얻은 구원, 내가 어떻게 하여야 당신이 받은 그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 거죠. 그래서 바울의 이런 삶으로 인해서 인생 최고의 질문을 하게 한 거예요. 바울의 대답은 질문만큼이나 간단하게 최고의 대답을 했어요. 회개하란 말도 하지 않았어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자신들 보고 선생이라고 퀴리온, 복수니까 퀴리오이 이러는데, 우리가 퀴리온이 아니라 예수님이 퀴리온이다. 주님이다. 나를 주목하지 말라. 내가 간밤에 얘기했던, 내가 죽였던 그 예수님. 내가 살인자. 나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렇게 얘기를 했겠죠. 복음이 그렇게 신, 구약 66권 이렇게 해서 말해서 예수를 믿겠어요? 예수를 믿으면 복이 옵니다. 이렇게 하면 전도를 하나요? 많은 말, 변론, 이런 걸로 전하는 게 아니예요. 이미 바울은 옥에 갇힌 환경에서 삶으로 복음을 다 전했어요. 그래서 간수는 복음을 이미 바울의 삶으로 다 들었어요. 어떻게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이 저렇게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를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해 놓고도 옥문이 열렸는데 지금 안 나가고 있자나요. 그리고는 가만히 있다가 간수 옆에 있어줬자나요. 이게 큰 복음이죠. 있어주고 간수가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주 예수를 믿으라 하니까 이게 폭발력 있게 뚫고 들어가는 거죠. 복음은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임종 예배를 갈 때, 저는 굉장히 많이, 제가 갔을 때 이렇게 내 삶으로 전하니까 많이 영접을 했지만 보통 때 영접 예배 때, 임종 예배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이 제 인생에도 서너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부목사님 얘기를 들어보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의 특징이 자녀들, 또 가족들에게 한 번도 삶으로, 말씀으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런데 늘 식구들이, 자녀가, 아내가, 남편이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복음으로 삶을 살아내는 이런 모습을 보이면 거의 다 영접을 한다는 거예요. 지금 눈 앞에서 안돼서 그러니까 삶으로 본을 보이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거예요.
내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내 시간, 내 물질, 내 능력, 내가 돈 벌어 내가 쓰는데 뭐가 어때. 그게 아니고요. 오직 구원을 위하여서 내 권을 쓰지 않고 스스로 갇힌 자가 되어서 먼저 내 자유를 포기하고 옥에 갇힌 환경에서 삶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정은 이미 그 한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물론 바울 가정은 안 열렸어요. 그분은 또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훈련이 있는 사람은 좀 뒤에 해주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울 때문에 온 인류가 돌아오게 생겼어요. 지금 그 가정이 안 열린 게 아니예요. 그 가정이 수고해서 온 인류가 돌아오게 된 거죠. 그래서 단순한 한마디 주 예수를 믿으라 한 마디로 예수를 믿는 이 믿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곧이어 바울은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이 기적, 옥문이 열리고 이런 거 다 잊어버리고 간수와 가족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했어요. 옥에 갇히고 한밤중에 지진을 경험해도 어떤 때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정말 지진이 오든지 풍년이 오든지, 언제나 말씀만을 전하는 삶이 본분이라는 것을 바울이 잊지 않았던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도할 때 어떤 내용을 전해야 할 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은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전해야 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뿐이에요. 구원받았다면 말씀을 읽어야 하고 성장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어땠는지, 예수 믿고나서 어땠는지. 예수자나요. 오직 그걸로 전하니까 가서 많은 사람들이 영접을 한 것 같아요.
[적용] 내가 이 세상에서 듣고 싶고, 하고 싶은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주 예수를 믿으라 입니까? 나를 믿으라 입니까?)
4. 가정이 열립니다. (33-34절)
성령의 열림의 결론은 크게 기뻐하는 거예요. 삶을 끝내려던 그 한사람의 마음이 열리니까 그 가정이 열렸어요. 그래서 날마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 오라고 그랬더니 우리는 모든 그 사람 마음이 열리니까 가정이 다 열렸어요. 그래서 목장 예배를 아주 정말 진심으로 드립니다. 집을 내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요. 복음을 듣고 드디어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처지를 살피게 된 거예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게 보였어요. 그래서 곧장 수돗가로 데려가서 씻어주면서, 또 간수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으니까, 또 영혼의 상처가 씻김을 받았겠죠? 내가 마음이 열리면 상대방의 아픔이 보여요. 그러니까 우리 아픔을 향해서 나가자나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간수와 죄수 관계였자나요. 그런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가지고 간수, 죄수가 한 지체가 됐어요. 우리들교회가 차별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열리고 세례를 받게 되니까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음식을 차려주자나요. 감방의 죄수들에게 음식 던져 주는 것을 얼마나 귀찮아했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남을 위해서 밥을 차려주겠어요. 목장에서. 그런데 우리가 다 마음이 열리고 집이 열리면 다 목장에서 음식을 차려 주기를 기뻐하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의 유턴을 했어요. 성령께서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여시니까 관계가 열리고, 집이 열려서 성령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성령의 열림으로 삶이 열리는 결과는 큰 기쁨이에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그의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랬어요. 간수가 로마의 간수면 굉장히 고급 공무원인데 기쁠 일이 없는 거예요. 공무원을 해서 잘 살아도 이 세상에 기쁜일이 없어요. 그런데 온 가정이 하나가 되어서 다른 지체들을 돌보고 섬기니까 큰 기쁨이 생겼어요. 이 세상의 기쁨은 주밖에 없는데 저는 보니까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 특별히 주시는 큰 기쁨이 있는 걸 봤어요. 제가 목장을 보면서. 섬김 가운데 예수님을 보게 되니까 크게 기쁜데, 왜냐하면 이 땅의 가장 큰 섬김을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자나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겼는데, 따라서 우리가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마다 예수님께서 내 가운데,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는 거예요. 섬김의 모델이 예수님이니까. 그러니까 섬길 때마다 기쁨을 주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온 천하니까. 온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구원인데, 그 구원의 주체되시는 예수님이 섬길 때마다 나타나시니까 섬김을 받는 자는 물론이고 섬기는 자가 다 함께 예수님 때문에 크게 기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기쁨의 원동력이기 때문이죠. 마음이 열려서, 옥문이 열려서, 권을 쓰지 않으니까 스스로 갇힌 자 되어서 한사람의 마음을 여니까 그 사람이 주 예수를 믿게 되어 가정이 열렸어요. 가정이 열리니까 막 데리고 가서 대접을 하고 그러면서 맨날 박수치고 좋아하자나요. 기뻐가지고. 그런데 그런 일이, 아픈 게 매맞아서 피투성이 된 게 보였자나요. 우리도 목장에 가면 피투성이가 된 다른 분들이 보인다고요. 보여서 다 들고 일어나서 씻어주고 싸매 주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기뻐서 성령의 열림이 계속 이어져 나가는 줄 믿습니다. 그게 기뻐서 하는 거지 억지로 되겠어요?
[적용] 여러분의 집이 열려 목장 섬김이 큰 기쁨입니까? 큰 노력입니까? 여러분은 마음이 열렸습니까? 꼬였습니까? (도대체 제 설교를 들어줄 수가 없습니까? 은혜가 됩니까?)
기도제목
보련
내게 있었던 모든 아픔의 사건들이 말씀으로 해석돼서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구원 약재료 되도록
양육을 잘 받아서 인생의 규빗과 지경이 넓어지도록
앞날에 걱정하기 보다 현재를 감사하고 말씀으로 하루 살 수 있도록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직장 허락해 주시고 회복되도록
직장에서는 일만 하고 조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지화
결혼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 알고 결혼이 예배 되게 하시고 구원의 가정 이룰 수 있도록
남편 될 분 교인등록 후 말씀에 정착될 수 있도록
영육의 전신갑주 입도록
양교 받는 것이 성령의 선물인 것 알고 감사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돌발성 난청 치료받고 언니랑 조카 가족들 구원위해서 내가 먼저 회개하도록
다인
회사에서 HR과 면담을 하려고 하는데 지혜롭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잘 전달하도록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순간 순간 요동하며 뛰쳐나오고 싶지만 말씀으로 부여잡고 하루 잘 보내고 오도록
언니의 아이 지켜 주시고 가족 모두 구원의 찬송 부를 수 있도록
예선
동반자와 함께 동행하며 구원의 찬송 잘 부를 수 있도록
공동체 지체들 기도제목으로 기도하기
보내 주신 곳에서 비비고 윤 나게 디아트리보 하도록
현경
양육하면서 덮고 모른척하고 싶은 부분들 구원의 찬송으로 잘 나누며 갈 수 있도록, 위로 받도록
현재 닥친 문제가 내 죄의 기초에서 비롯된 결론임을 알고 말씀 보고 회개하도록
스스로 갇히려고 할 때 말씀과 목장에 나누도록
자격증 준비와 학업이 전도 위해 쓰이도록
은우
옥문을 열어 주신 것이 나의 구원과 지체를 위함인 것 알고 기도하도록
내 맘대로 프로젝트 아니라 말씀에 묻고 선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