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1 성령의 찬송
사도행전 16:16-25
여러분은 언제 찬송을 하세요? 바울이 성령의 거절을 맛보고 사명의 돛을 달고 성령의 직행하시고 순풍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찬송이 막 저절로 나왔을까요? 그런데 바울 사도가 등장하면서 바울 사도가 찬송했다는 얘기가 오늘 처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기쁘면 이렇게 찬송을 할까요? 그래서 바울이 어떤 때 찬송을 했는지 오늘은 성령의 찬송을 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1.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 (16-18절)
무리가 루디아 가정에 며칠 유했죠. 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에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찾아가서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도 기도할 곳 찾다가 만났자나요. 그러니 우리가 예배 드리고 큐티하고 기도하면서 생기는 모든 일은 우연히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들을 그 여종과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말씀과 공동체를 신뢰하면 그 생기는 모든 일들은 역풍이거나 순풍이거나 하나님이 모두 직행으로, 사명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이 여종은 단순히 귀신이 들려 힘들어하는 여종이 아니었어요. 그 여종의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는데, 귀신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점을 쳐 미래를 예언하는 자였고, 이런 능력으로 주인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여종은 주인들에게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재산적 가치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며, 종속된 재산이고 소유였으며 그저 돈 버는 기계, 소득의 원천이었습니다. 어떤 자유도 의지도 없는 그냥 정말 매여 있는 그의 삶은 정말 불행 그 자체였어요.
이 여종은 주인들이 모든 걸 다 가로채어 갑니다. 이 여종의 생각과 감정과 계획은 전부 짓밟히고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기도하러 나온 사도 바울 일행을 봅니다. 수많은 미래를 점치며 사람의 심령을 꿰뚫어 보면서 예언했기 때문에 바울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식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십니까? 정말 말씀에 대해 자구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대하면 상대가 안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탁월한 거예요. 그런데 지식으로 믿는 건 아니죠? 그런데 이 점치는 귀신은 퓌톤의 영이라고 하는데요. 뱀의 영이다 뭐 이런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유명한 네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사실 델포이 신전 입구에 적혀 있던 말인데, 델포이 신전이 앞날을 점쳐 주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이 델포이 신전의 주인공은 철학과 예술의 신 아폴론이었어요. 그러니까 당시 최고 문화였던 헬라 문화의 상징인 셈인데, 퓌톤은 이 신전을 지키는 뱀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퓌톤의 영, 곧 점치는 귀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미신적이라기 보다는 당시 로마 시민을 포함해서 온 세상 사람이 우러러보는 헬라의 지성과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유럽을 도착을 해서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엄청난 영적인 힘을 대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데우스인데, 데우스는 이 빌립보에서는 제우스를 의미했어요. 그리스 신화의.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면 빌립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제우스의 종이다 이렇게 들을 수 있죠.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 그러는데 우리 하나님은 또 네 죄를 알라 비슷해 보이자나요. 그러니까 사모드라게에 아리스토파네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이 거기 있어서 다들 너무 존경하고 하나님 보다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해요. 이 시대가. 그런데 이 여인은 사람들이 어떻게 듣던 어쨌든 바울 일행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복음을 들어서 안 것이 아니라 타락한 영으로 하나님에 대해, 귀신들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아요. 그런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귀신에게 사로잡힌 까닭에 바울을 이렇게 분별을 했습니다. 믿음하고는 다르지만.
그런데 여러분은 이 여인의 외침이 어떻게 들립니까? 나 좀 살려줘요! 영적으로는 귀신에게, 육적으로는 악한 주인에게 매여 있는 나에게 구원을 베풀어줘!라고 들립니까? 귀신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당연히 그렇게 들었어요. 그녀를 불쌍히 여겼어요. 그러나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지나쳤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은 사명이 있고 앞으로 계속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 감옥에 갇힐 게 뻔하기 때문에. 수일을 유하면서 빌립보 문화를 깨달은 것이 로마는 재산과 사유에 대해 엄격한데 그 여종은 재산이자나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문화와 민족을 그들이 다스릴 수 있는 원동력은 강력한 법인 거예요. 그런데 이 여종의 주인이 한둘이 아니고 여럿이에요. 그리고 빌립보 성의 유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복채를 잘 맞출수록 굉장히 갖다 내고 이 빌립보 성이 또 부자 동네자나요. 가만히 있어도 일분에, 오분에 예언 하나씩 하면 돈이 콸콸 들어오는데 그 주인들의 소유인 이 여종을 자유케 하면 큰 소동이 일어나고 강력한 법으로 다스리는 이곳에서 당연히 감옥에 갇힐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바울은 계속 지나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여종이 계속 여러 날을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외치는 거예요. 이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니까 오늘 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했어요. 이것도 여러 날을 했다고 했어요. 여러 날. 심히 괴로워하다라는 말이 뭐냐 하면 아주 괴로워하는 게 부풀어올랐어요. 그리고 마음이 심히 아프다는 거예요. 아니 왜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는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 주인 된 인간들의 불의를 보고도 묵인해야 되는 아픔이 있고, 한 인격이 무너지고 귀신과 주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그 여종의 모습이 너무 또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므로 이 여종의 고쳐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복음을 전하다 죽는 건 괜찮은데 남의 재산 문재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여기서 이 선교가 중단되고 그러니까. 그런데도 그 여종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하는 그 갈등에 마음이 아팠고 영원이 저 귀신에 매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여러 날 묵상을 하면서 한 영혼에 집중을 하게 된 거죠. 예수님이 죽음과 중독과 장애와 가난과 미움과 원망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매여 신음하고 있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한 영혼을 위해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그 예수님 때문에 지금 이 길을 가는 거자나요.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버리고. 예수님 전하려고 이 길을 가는데 예수님의 길을 가야 하니까. 그래서 드디어 한 사람, 그것도 귀신 들린 사람, 그것도 여자, 그것도 종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죽기로 결단을 내렸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과 같은 원리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가 여기서 끝나도 좋다. 한 여종을 위하여서 자신이 죽기까지 각오하고 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명령했더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할렐루야
전승에 의하면 이 귀신 들린 여자가 빌립보 교회의 두번째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 있어요. 첫째는 과부 루디아, 두번째는 귀신 들린 여종. 이렇게 유럽의 첫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그때도 지금도 세상은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들교회도 성경대로인지 문자 그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돈 귀신, 음란 귀신 수많은 각종 귀신들린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불안함을 부추겨서 세상의 것을 의지하게 하는 모든 유혹들이 영적으로는 귀신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 믿음을 흔드는 이런 괴롭힘을 당할 때 우리는 피할 일도 아니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나는 이 괴롭힘을 이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죄인임이 인정될 때까지 괴로움을 인내하며 지나가야 합니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가족, 이웃에 대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을 깨닫고 그들을 구원의 관점으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처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인 거예요.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구하실 수 있습니다. 괴롭힘을 통과하면서 전적 무능을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3장 11절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자나요. 18년을 거기 묶여 있었지만 여기는 귀신 들려서 예언을 하고 돈을 벌어주는 여종이 있네요. 똑같이 귀신 들렸는데 한쪽은 꼬부라져 있고 한쪽은 돈을 버네요. 어디가 좋아요? 아무리 귀신 들려도 돈 벌면 그것 때문에 심각하지 않자나요.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안 믿으면 우리 모두 귀신들려 있어요. 귀신 들려서 돈을 벌고 있으면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아요. 주인들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지금 역사하시는 거죠.
[적용] 그러므로 점을 쳐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불안은 무엇입니까? 귀신 들린 사람의 외침이 나 좀 살려달라고 들립니까?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으십니까?
2. 대신 값을 치루게 하실 때입니다. (19-24절)
그래서 이제 사도 바울이 외치니까 귀신이 즉각 나왔지만, 사도 바울은 생각한 것처럼 깊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여종의 주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빌립보성의 유력한 자들이었고 돈이 많았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들에게 즉시 끌고 갔어요. 주인들은 자신들의 여종이 귀신이 나가서 건강해지고 온전해지고 하나도 관심 없어요. 그냥 오직 한 사람의 고통의 문제보다 우선되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냐, 이 자매를 전도하는 게 우리 교회에 유익이냐 아니냐 이런 걸 따지겠죠. 다 이게 이익인가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말을 다 못하자나요.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는 거죠. 주인들이 심하게 손해를 봤어요. 그러니까 아주 교묘하게 고발을 합니다. 그들은 20절에 유대인이라고 죄목을 갖다 붙여요. 바울과 실라만 유대인이에요. 디모데하고 누가는 이방인이에요. 이들 가운데도 이간질하고 인종적 편견으로 자극하는 거죠. 왜냐하면 헤롯 아그립바가 충이 먹어 죽은 사건으로 황제와 유대인 관계가 악화되었고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축출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감정이 아주 나빠 있었어요. 거기다 이들을 고소한 내용은 20절에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는 거예요. 이게 폭동을 선동하다, 흔들어 놓다인데, 수많은 나라를 다스리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것이 폭동인 거예요. 즉 바울 일행을 로마 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선동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로 고발을 한 거예요. 우리 다 정치가들은 여론을 무서워하자나요. 폭동이 일어날까. 지역 감정, 인종 차별, 전쟁이나 폭동을 삼아서 고발하면 사람들은 사리 분별을 잃어버리게 되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선동이 됩니다. 이럴 때 복음을 유지하기가 어럽죠. 결국 온 무리가 선동이 되어서 일제히 일어나 고발을 하니까 바울 일행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이들을 즉시 매로 치게 됩니다. 그 때의 관리는 허리춤에 다양한 몽둥이와 채찍을 여러 개 달고 다녔는데 그 몽둥이와 채찍 중에서도, 예수님 채찍으로 칠 때도 그 채찍 끝에는 쇠붙이인데 그냥 쇠붙이도 아니고 나비 모양의 갈고리 같은 쇠붙이가 요 만한 것도 아니고 한 2m정도 되는 긴 채찍이 되어서 이렇게 있으면 여기서 이렇게 돌려 가지고 촥 하면 그게 얼굴에 촥 맞으면 다 없어진다는 거죠. 그 다음에 갈비뼈를 하면 갈비가 다 없어지고. 그래서 십자가까지 데리고 가려면 거의 반쯤 다 죽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채찍질을 했고 한 번 내리치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있는 거죠. 유대인의 법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하라고 법으로 정해 놨는데 로마법은 그런 것도 없어요. 무제한으로 때리게 돼 있는 거예요. 폭동을 일으키고 정치적 선동을 했다는 거예요. 죄명이. 바울과 실라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왜 잡혀왔냐 묻는다면 대답이라도 할 텐데 죄목이 유대인이에요. 유대인. 상대방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일제히 달려들어 옷을 찢고 기절할 때까지 매를 때리는데, 레위기에서도 그 제물을 보면 가죽을 다 벗기자나요. 벗기고 각을 뜨고 이러 자나요. 이게 전부 거룩으로 가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는 이거하고 똑같아요. 바울과 실라는 대답할 경황도, 변명할 틈도 순식간에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매질과 매질로 인해서 떨어져 나가는 그 살점에 대해서 어떤 말도 지금 할 수 없는 거예요.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 셀 수도 없이 많이 친 후에 깊은 옥에 가둡니다. 일층은 경범죄들을 가뒀다면, 지하의 감옥에는 아주 중범죄자들, 사형 앞둔 자들 가두는 곳이에요.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나올 수 없는 곳. 그것도 그냥 가두는 것도 아니고 차꼬를 채워서. 기댈 수도 없고 온 몸이 피투성이라서 누울 수도 없고, 진짜 손과 발이 다 묶여 있고,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그리고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하고 깊은 옥에 떨어졌어요. 여러분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귀신 들린 한 여종 살려 주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을 살려주려면 우리는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한 영혼에 대해서. 너무 중요합니다. 바울이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거절당하고 거절당하고 이어 순풍을 만나 여기까지 왔는데 사방을 돌아보니 햇볕 하나 비치지 않는 깊은 옥에 있는 거예요. 온 몸은 성한 곳이 없고 숨쉴 때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는데, 저는 이걸 느꼈어요. 우리가 금식을 하면서 마지막쯤 되면 한시간, 한시간을 기다리자나요. 이 시간이 언제 가나. 쉬우면 금식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항암을 해보니까 그 6개월동안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그래서 저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 때 바울은 매질당하고 온 몸을 결박당한 우리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여기서 참 위로가 된 것이 옆에 실라가 함께 있는 거예요. 이건 어마 어마한 위로인 거예요. 우리가 알다시피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나바와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와서 돌로 쳐서 죽일 때 항상 보면 바나바는 그 자리에 없어요. 바나바는 돌에 맞았다는 얘기가 없어요. 바나바는 유대인인데 부자고 워낙 존경받고 박수 받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건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사도행전을 열심히 묵상하니까 바울은 바나바하고 다니기 참 힘들었겠다.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낯선 나라의 칠흙 같은 감옥에는 옆에 실라가 있는 거예요. 바울이 쓸 수 있는 게 입이 있자나요. 입이 결박되지 않았자나요. 함께 고통 당하는 지체가 옆에 있는 거예요. 금보다 귀한 우리 목장이죠.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해도 그 앞에는 지체가 있는 거예요. 이게 오늘 바울의 찬양이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홀로 이 아픔을 겪은 예수님 생각하면, 그 예수님이 사실 내 옆에 있지만 1차 때는 그랬지만 우리 인간이 연약한데 이 기가 막힌 고난에 옆에 실라를 허락하신 거예요. 우리들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이렇게 외쳤어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모든 자들아 다 오라 그래서 이 지체 때문에 그 밤을 지낼 수가 있어요. 어떤 억울함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아픔도 함께 나눌 지체가 있으면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하는 힘이 생기는 줄 믿습니다. 저도 시댁의 감옥에서 평생에 교회 다녔지만 옆에 말씀으로 나눌 실라 한 명이 없어서 이혼을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죠. 그래서 저는 이 실라가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겟습니다.
[적용] 억울하지만 변명도 못하고 대신 값을 치러주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절망하고 있나요? 하지만 이 고난을 함께 나눌 실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3. 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입니다. (25절)
내 모든 환경이 억울하고 깊은 옥이지만 내 옆에 지체가 있으니까 가장 복은 같이 나눔을 할 수 있는 거자나요. 같이 말씀 묵상하고 큐티하면서 나눔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THINK를 할 수가 있는 거죠. 자 Telling (고백)부터 해봅시다. 마음 열기.
Telling (마음열기) ampndash 바울이 실라에게 말했어요. 아프냐? 아이고 이게 뭔 고생이오. 낯선 땅까지 와가지고. 그 귀신 들린 여자를 우리가 끝까지 못 본체 했어야지? 아이고 바울 형님 그래도 잘 하셨소. 그러나 우리 선교 여행은 여기까지인가봐요.
Holifying (말씀 읽기) 실라야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게 어디냐. 빌립보서 3장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처럼 난 사실 내가 이들과 똑같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여서 나는 진작 죽었어야 할 목숨이라고 생각해.
Interpreting (해석하기) ampndash 바울이 또 말합니다. 그래도 우리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게 어디야. 예수님도 우리 대신 이렇게 고난 받으셨을 텐데 이 고난이 없으면 우린 예수님 안 믿을 죄인이오. 난 평생 그 기독교인들 죽이며 살았을거야. 맞습니다. 형님.
Nursing (돌아보기) ampndash 해석이 되니까 서로 돌보게 돼요. 그들의 아픔이 서로 해석이 되니까 더 이상 감옥이 감옥이 아니예요. 거기서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다는 게 거기가 천국 아니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이게 천국이에요.
Keeping (살아내기) ampndash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이렇게 서로 고백을 하니까 적용이 되어서 유지하고 반복되는, 그래서 양육이 되어서 모든 고백이 나의 입술의 묵상이 기도가 되니까 찬송이 되는 거죠.
그러니 지체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사람의 지체라도 해석해 줄 수 있는 지체와 응답해주는 지체가 있다면 성령의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송하다는 시편 22편에도 나오는데요. 비탄시에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한 엄청난 고난을 다 열거한 후에 22절에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깊은 옥으로 내려가는 이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절망과 원망을 하는 게 아니라 찬송을 하신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2장 12절도 같은 단어로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교회가 듣도록 찬송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성령의 찬송은 교회가 듣도록, 성도가 듣도록.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가 부르는 찬송은 깊은 옥임에도 부르는 찬송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옥이 이런 성령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정적으로 이거를 죄수들이 들었어요. 의인들은 못 듣죠. 마음이 낮아졌어요. 낮아진 그들, 살 소망까지 끊어진 그들이 듣는 거예요. 듣다로 번역한 헬라어는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만 쓰인, 아주 드문 단어예요. 평범한 단어가 아니예요. 그냥 듣는 게 아니라 귀를 쫑긋 세우고 뜻밖에 너무도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가 들려서 너무 놀라서 집중해서 기뻐서 듣는 것을 말해요. 바울 사도가 매 맞고 그 환경 가운데서 자기 죄를 보는 대화를 했자나요?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걸 다 들었어요. 이들이 얼마나 놀랐으면 이렇게 성경에 한 번밖에 안 나오는 단어로 들었겠어요. 그러니까 여기 가장 밑바닥인 죄수들, 사회적으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죄수들도 있지만 빌립보나 로마의 가장 핵심 그룹들이 전부 몰려 있는 감옥이에요. 여기에는 수많은 정치인들도, 수많은 관료들도 모여 있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바울이 찬송을 하니까 상상치도 못하게 바울의 복음을 다 들었자나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성령의 직행인 거예요. 이들을 놓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어요. 하나님이 다 모아 주셨어요. 이들이 너무 놀라가지고 저렇게 매 맞고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는데 그렇게 찬양을 하고 있으니까 눈과 귀가 크게 열려가지고. 바울과 실라의 심정은 여기서 선교를 멈춰도 감사하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고 이런 얘기를 계속하는 거죠. 자기의 죄를 알고 그 죄를 직면하는 자들은 어떤 감옥도 가두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로 인해 죽으신 예수를 만나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울은 또 거절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받는 이 거절은 매를 맞아도 찬송을 함으로 직행이 되게 하세요. 그러니 구속사를 모르면 어찌 인생을 해석하시겠습니까. 인생이 짧은데. 이런 상황에서 어찌 기뻐하여 찬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 다 지금 지나쳐서 왔는데, 게다가 과부 전도하고 귀신 들린 여종 하나 때문에 지금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서 매까지 맞았는데 바울이 처음으로 찬송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거에요. 이런 것이 구속사의 놀라운 반전입니다. 이 땅이 짧기 때문이에요. 어떤 고난 가운데 있어도 우리가 찬송할 수 있어요. 내 노래와 기도를 내 옆의 죄인들이, 내 가족이, 자녀가 다 들어요.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아 함께 옥에 갇혀 있는 그들이 다 들어요. 구속사의 노래가 내 인생의 한밤중에 이렇게 울려 퍼지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땅끝까지 내려갔을 때 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거예요.
[적용] 여러분은 고난의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있습니까? 옥에서 풀려나기만을 기도하면서 분노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들리는 죄인입니까? 상관없는 의인입니까?
기도제목
보련
저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책임져 주시고 공급해 주실 것으로 기도합니다.
다인
감정을 돌아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간들이 위로 받고 구원의 찬양되도록
팔이 저리고 아픈데 알맞은 치료와 운동 할 수 있도록
지화
큐티하면서 위로 받고 말씀을 깨닫도록
돌발성 난청 치료받고 회복되도록
결혼 준비하면서 인도하심 받고 회개하고 약속의 말씀 붙잡을 수 있도록
예선
대신 값을 치러 주신 것 기억하고, 고난 함께 나누는 지체들 위해 기도하기
보내 주신 곳에서 마르고 닳도록 비비고 윤이 나게 디아트리보 하도록
현경
가정과 회사에서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대신 값을 치러 주신 예수님을 붙잡고 귀신들린 나의 악함을 회개하며 가도록
말씀 THINK로 하루만 살도록
목장을 위해 중보하기
자격증 준비 잘 하도록
은우
나의 아픔과 구원의 소식들 목장에서 잘 나누고 가도록
옥에 갇힌 것 같은 목장 식구들 기도제목으로 한주동안 기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