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찬송
사도행전 16장 16-25절
바울이 성령의 거절을 맛보고, 사명의 돛을 달고 성령의 직행을 하는데, 순풍이 부니 감사해서 찬송이 나왔을까? 그런데, 바울이 등장한 뒤로 바울이 찬송했다는 말이 오늘 처음 나온다.
- 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
기도할 곳을 찾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만난다. 기도하는 곳을 찾다가 루디아를 만났듯이 이 또한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큐티하고 말씀의 공동체를 찾다가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은 좋아보이는 일이든 나빠보이는 일이든 우연이 아니고 성령의 의도하심이다.
그 여종은 귀신의 능력으로 점을 치고, 그 주인에게 소득을 주는 불행의 삶 그 자체. 그저 이용을 당했을 뿐이다. 돈을 벌어다주기 위해서. 신 내림 같은 것. 그 이후의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귀신의 명령을 받으니까.
이 여종은 그 벌은 것을 주인들이 모두 가로채가고 무시당하고 짓밟힘 당한다. 그런데 이 이 여종이 기도하러 나오는 사도바울 일행을 본다. 수많은 미래를 점치며 사람의 수명을 꿰뚫어보기 때문에, 바울 일행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지른다.
이단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탁월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 지식이 믿음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종이 말하길, '이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
당시 헬라어로 하나님은 떼오스. 제우스랑 비슷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제우스의 종이다 라고 들었을까? 유럽 지성의 가르침인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너의 죄를 알라'는 것과 어쩌면 비슷하게 들린다. 그것을 헷갈리게 들은 이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그녀의 소리침을 사도 바울은 꿰뚫어 듣고 불쌍하게 들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하지만 사도 바울 일행은 애써 무시했다. 앞으로 해야 할 사명의 일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곳에 수 일 유하면서 그곳의 법과 관행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여종을 자유케하면 그곳의 부자들 소유물을 가로채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로마는 소유물을 중시하므로 이 일로 감옥에 가면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없게 될테니.
남의 재산 문제로 복음 사역이 중단되고 감옥에 갇히느냐? 귀신과 이용하는 유력자들에게 이용받는 여종을 구해주느냐?
이게 그냥 지나쳤으면 좋겠는데 자꾸 와서 그러니까 (이 같이 여러날을 행하니라)
바울은 이 여종, 보잘 것 없는 귀신들린 여종을 위해 마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같이,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고 한 영혼을 위해 외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한 영혼의 외침이 너무 두렵고 떨리게 들려 지나치고 싶지만 그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 상상도 못할 상황에서도 그들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
전승에 의하면 이 여종이 빌립보 교회의 두 번째 성도가 되었다고. 유럽의 교회는 이처럼 아프고 불안하고 영적으로 유혹받는 이들, 아픈 이들,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믿음을 흔드는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로 지가된 것이다. 우리는 이 괴롭힘을 이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 때,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누구도 예수님만이 해답임을 알 때 까지 전적무능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우리를 괴롭히는 그런 모든 생각과 불안이 떠날 것이다.
여종과 그 주인 둘다 어쩌면 귀신 들려있다. 돈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귀신.
우리는 다 귀신들려있다, 예수가 없다면. 하지만 누군가는 이 여종처럼 겉으로 나타나며 고통받고 누구는 그 귀신 들림을 세상적으로 이용해서 아무 문제없이 부자가 되기도 한다.
분명히 말한다. 드러나는 것이 낫다. 예수없음으로 티 안나지만 귀신같이 돈 버는 것보다 귀신들린 미친사람 같이 고통받게 되는 것이 낫다.
- 대신 값을 치루게 하실 때입니다
고발당한 사도 바울. 즉시 옥에 갇히고 구원해준 값을 치르게 된다. 누군가를 구원해주려면 값을 치뤄야한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다. 주인들은 자신의 여종의 인격이 온전해졌는지, 제정신이 돌아와서 나았는지 이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냥 이해관계만을 떠올릴 뿐.
그들에게 그 여종은 그저 귀신들려 돈 버는 기계인데. 전라도 경상도가 중요하고 돈과 자존심이 중요하고 그게 하나님보다 중요한 이들. 그러니까 십일조가 하나님 vs.돈 이 된다.
교묘한 고발 - 네명 중 바울과 실라만 유대인 이라며 고발.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갈등이 있고 감정이 안 좋았음. 게다가 죄목이 '우리 성을 요란하게 한다'. 헬라어로 '폭동을 선동하다 흔들어놓다'
정치적으로 선동하면서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로 고발한다. 이렇게 지역감정, 정치, 폭동, 생활을 흔들것만 같은 것, 인종차별로 고발을 하면 다들 눈이 뒤집어져서..
유대법은 그래도 인권을 위해 한계가 정해져 있는데 로마법은 한계가 없다. 진짜 그 갈고리 채찍으로 죽을 때 까지 패다 죽게 생겼다. 옷을 찢고 기절할때까지 패는데 변론도 할 수 없다. 죄목이 유대인이라는 이유이므로.
귀신들린 여종 하나 살려주고 이런일을 당한 뒤 깊은 옥에 든든히 가두고 차꼬를 든든히 채운다.
당시 로마감옥은 경범죄자들은 적당히 가두고 사형을 앞둔 수준의 중범죄자들은 지하감옥의 깊은 곳에 가두는데, 차꼬까지 채우니 온 몸이 피투성이인데 앉을 수도 없다.
거절당하고 거절당하다 순풍을 타고 이곳에 겨우 왔는데, 한 영혼을 구하고 끔찍하게 빛도 들지 않는 감옥에 떨어진다. 시간이 안간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지옥이고 고통이고 앉을 수도 설 수도 매일이 고문같은 이 시간들. 시간을 견디는게 괴롭다. 이것이 지옥이다.
그런데 바울의 옆에는 실라가 함께 있었다. 1차 때는 바나바는 늘 바울과 다녀도 부자고 존경받고 박수받고 인정받으니 매도 잘 안맞고 바울이 죽게 생겨도 그냥 혼자 맞게 내버려두고. 하지만 이번엔 고통의 가운데 실라가 함께 있었다. 지체가 있었다. 1차 선교여행때는 아무도 없었지만 함께 고통받으신 예수님이 계셨기에 바울이 버틸 수 있었던 것. 칠흑같은 감옥이고 너무 혼자인 것 같고 내 고난에 숨도 못 쉬겠지만 우리는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지체가 있으므로 살 수가 있다. 살아갈 힘이 생긴다. 피투성이라도 숨도 못 쉬어져도 살아갈 수 있다.
- 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입니다
한밤중에 찬송하니, 죄수들이 듣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목장에서 같이 나눌 지체가 있다는 것이 성령의 찬송을 함께 할 힘이 생긴다. 빌립보서 3장 10절 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서로 감옥에서 나눈다. 이렇게 서로 나누면 더 이상 감옥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모든 고백이 가도가 되고 그래서 입술에 찬송이 된다. 한 사람의 지체라도 응답해주는 지체가 있다면 성령의 응답을 해주고 찬송이 나오는 것이다.
시편 22편에 똑같은 단어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깊은 절망의 옥에 내려가시며 찬송하며 하나님과 끊어지는 지옥의 고통의 길로 가셨다는 것, 찬송을 하셨었다고.
즉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서 찬송하는 것이지만 다시 보자면, 깊은 옥에 있으므로 찬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찬송과 나눔을 들은 이들은 죄수들. 의인들은 못 듣는다. 인생의 희망, 소망이 없는 그들이 듣는다.
여기 이렇게 갇힌 이들은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몰락한 유력자들과 정치범들과 또는 그냥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있는데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결국 복음을 전한 셈이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바울은 또 거절을 당한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겉으로는 세상기준으로는 거절 같아 보여도, 죽을 것 같은 매를 맞아도,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성령의 찬송이 절로 나오는 공동체의 나눔을 가능케 하신 상황이다. 성경에서 바울에게 처음으로 찬송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얼마나 복인가.
주 앞에 보시기엔 의인 같은 사람도 죄인 같은 사람도 결국 다 똑같은 영혼이므로, 그 하찮아 보이는 귀신들린 여종을 구하고 이런 옥에 갇히는 것은 결국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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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목장 : 장서연, 이예원, 김은성, 최원영, 안재원, 조예빈
1.귀신의 괴롭힘을 통과할 때입니다.
적용질문
점을 쳐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불안은 무엇입니까?
귀신들린 사람의 외침이 나 좀 살려달라고 들립니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으십니까?
b - 힘든일이 계속 있었다. 저번달에는 동업 깨지고 친구와 완전 절교하게 되고, 전남자친구와도 저번달에 헤어졌다가 며칠 전 다시 통화를 했는데 모진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저번주부터 몸이 안 좋아서 응급실을 다녀왔는데, 장염과 공황발작이 일어나 아무데도 갈 수 없고 한 번에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니 힘들었다. 그래도 다 뜻이 있음을 기도하며 조금씩 깨달아서 불안하진 않다. 전 남자친구가 귀신들린자의 외침을 나에게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
a - 시그널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 뭘 해서 이쁨 받고 위로받고 그런게 아니라 너의 존재 자체로 이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몸을 치시는 것인것 같다.사명을 확실하게 물어보고 내려놓고 기도하라는 때인것 같다.
c - 저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작년에 제일 심했을때는 끊임없이 자살 생각이 들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아무리해도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고 그 생각이 나를 죽일 수 있겠다 생각을 했다. 지금은 강박적인 생각이 많이 줄었는데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서 내가 나를 죽이게 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안이 있다. 컨트롤 잘 되는 것 같다가도 다시 심해지는 게 항상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다.
a - 혹시 완벽주의가 있니? 나랑 똑같다.
c - 완벽주의가 있다.
a - 매주 말씀을 통해 나누어 가고 내가 그런 사람임을 인정을 하면 나아지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하는건 도움이 안되고 완벽의 기준을 작게 잡아서 넓히던지 그 기준을 바꾸어 보라.
a - 귀신들린 자의 외침은 어떻게 들리니? 피해자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 것을 믿니?
c - 피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그들이 이해도 되고 도움을 줘야겠지 생각은 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지 엮이기 싫다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믿어지는데, 끝이 안나요. 조금 더 빠른 해결책인 세상 미디어에서 찾기도한다.
d - 언제쯤 행복해질까, 아는 분이 좋은 분인지 나쁜 분인지 궁금해요.
a - 사람에 대한 것은 기도해야해. 너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 너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낮추어도 괜찮다.
d -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행복한 곳인거 같아요, 해결책인것 믿어져요.
a - 그건 우리가 평생 자녀인 이상 어쩔 수 없을 거야
e - 점을 쳐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불안은, 지금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사주나 타로도 본 적 없어요. 귀신들린 사람들의 외침은 이상하게 보이지만, 계속적으로 소리친다면 나도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해할것 같아요. 나중에서야 이해할 것 같다. 주변에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해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저 자체도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 제가 여유가 있을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피해자 가해자 모두 해결책이 예수님인 것을 믿어요. 사람이 겪어야 잘 깨닫게 되잖아요. 예수님 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것을 믿는다.
a - 내가 안정적일때 들으면 돕는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사람 문제에 끌려다닐 수도 있으니 오히려 구별하는 너의 모습이 아름답다. 계속 그렇게 중심 잘 잡기를.
f - 옛날에 연애운 같은거 본적 있음. 지금 점을 쳐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것은 없어요. 앞으로는 타로카드 같은 거 안할 거에요. 귀신들린 사람의 외침을 들으면 도와달라고 보이는 것 같아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임이 확실하게 믿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a - 피해자에게 예수님만이 해결책이라 하는게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렵지만 피해자인 상황을 곱씹다보면 예수님만이 해결책임이 이해가 된다.
2.대신 값을 치루게 하실 때입니다.
적용질문
억울하지만 변명도 못하고 대신 값을 치워주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절망하고 있나요?
하지만 이 고난을 함께 나눌 실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b - 친구와 동업이 깨졌을 때 억울했고 이번에 전남자친구에게 모진 말을 들었을 때 억울했다. 근데 그냥 억울한 것이고 대신 값을 치루는 구원을 위한 억울함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차단당해서 말을 못하니 조금 답답. 이번에 공황발작이 오니 손발이 묶여 절망스러운 마음이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커피도 못마시고. 공황을 15년전 미리 겪은 우리 엄마가 저에게 실라 같은 공동체. 엄마가 없었으면 공황발작이 왔을때 너무 무서울 뻔 했다. 가족을 이렇게 만든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이번 일을 통해 내 몸을 내가 청지기로서 잘 지켜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a -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을 가족이 몰라주면 힘들 수 있어. 내 변명을 못하는 것 자체가, 입을 다무는 것 자체가 옥에 갇히는 것이고 적용일 수 있어. 나중에 아빠를 이해하고 아팠던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너에게 주신 사건인 것 같다.
c - 억울한 일은 많았는데 대신 값을 치뤄주는 일은 없었던 것은 없었어요. 지금은 큰 고비가 지나서 손과 발이 묶인 일은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실패할거야 하는 생각이 심했어서 손과 발이 묶여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새로운 도전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힘이 있고 할 수 있음을 느껴 나가는 시간이다. 올해 도전할 것이 많은데, 댄스 학원을 다니고 있다. 공동체가 저에게는 실라같은 지체에요.
f - 고1때 같이 했는데 누명 쓴 적이 있다. 억울한데 말 못했던 적 있음. 그 때 많이 힘들었었음. 요즘 슬금슬금 인간관계 틀어지고 있어서 힘들다. 꿈꾸던 대학생활도 아니고 계속 새로운 사람을 잘 못만나고 그래서 힘들다.
a - 점점 갈 수록 인간관계에 목을 매지 않게 된다.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지 말고 목장에 많이 나누어 주길.
e - 억울한 일은 있는데 값을 치루는 일은 없었다. 손과 발이 묶여 절망한 일은 지금은 없고 예전에, 아빠가 회사 그만두실때 방과후에 컴퓨터 수업 듣는거 신청하고 싶은데 못했던. 학원도 못다니고 그랬던. 그러고 중고등학교 왔는데 하고싶은데 안되니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이 들고 공부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학교다니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다. 그때가 손과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제가 불안증이 있는데, 저 혼자 있을 때 오면 괜찮은데 애들이랑 같이 있을 때 불안하면 손과 발이 묶이는 상황이 온다. 가족이 저의 공동체에요.
d - 값을 치뤄준 일 없다. 억울한 일은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묶여있는것 같다. 맨날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손발이 묶인 상황으로 만든다. 이상하다고, 개그코드가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저에게 지금 제일 큰 고난은 제가 저한테 괜찮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난인거 같아요.
a - 넌 이상하지 않아. 남들과 개그코드가 다른건 관점이 다른것이지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야.
너에게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인지를 봐야할 것 같다. 공동체랑 말씀 그리고 병원에서 그것을 점검해 보자. 그리고 너의 불안도 완벽에서 오는 것 같아. 너의 기준에서 완벽함이 행복함이 아닐지..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3.한밤중에 들려지는 찬송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고난의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옥에서 풀려나기만을 기도하면서 분노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들리는 죄인입니까, 상관없는 의인입니까?
a - 어떨 때는 죄인이었다가 어떨 때는 의인이었다.
b - 이번에 크게 아프고, 헤어지고, 친구와 절교하니 고난의 한밤중이었다. 주님이 주신 사건임이 인정이 되었다. 내가 끼니를 챙겨먹지 않고 매일매일 나가고 새벽에 자고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 회개가 되고, 예체능 쪽을 전공하면서 세상의 것들을 많이 보러다녔는데,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들이었다는 걸 응급실 침대위에서 깨달으며 눈물이 나고 회개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 혼전순결은 지켰지만 하나님 안에서 신교제 하지 않았던 것, 그 친구의 불안한 신앙심을 내가 더 북돋아 주지 못했던 것 회개가 되었다.
a - 끝에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되었다. 우리는 더더욱 어렵다. 내 눈을 믿지 말고 하나님 눈으로 잘 고르길.
c - 한밤 중 말고 새벽 쯤 깨닫고 기도와 찬송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 이 고난이, 이 닥친 상황들을 보는게 익숙하고 말씀대로 해석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한밤중에는 울부짖는다, 아프다고. 말씀을 듣는 죄인인것 같다.
a - 말씀을 집어넣어주든 떠먹여주든 말씀이 들리는 죄인이면 된다.
d - 저는 절대 한밤 중에 찬양 못해요.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엄마랑 대화가 안되는데, 엄마의 역할에 순종하고 제 역할도 해야하는데 변할 것 같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말씀이 안들리는 죄인일때도 있고 말씀에 관심이 있는 의인일 수도 있고.
a - 항상 100% 옳으시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항상 선하시진 않다. 고난의 하나님이 올때도 있음.
옥에 갇힌 것도 옥에서 풀려나는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이심. 이 사건을 왜 주셨을까 물으며 가면 된다.
e - 예전에는 기도와 찬송을 한밤중에 못했는데 요즘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말씀이 들리는 죄인이기도하면서 말씀이 안들리는 죄인이기도 해요.
<기도제목>
c - 꾸준히 우울증 약 잘 먹을 수 있기를, 큐티 아침에 일어나서 잘 할 수 있기를
e - 알바에 내 사정 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학교 잘 다닐 수 있도록
d - 생각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with 하나님!
b - 공황발작이 오지 않도록, 외로움과 공허함을 잘 채워주실수 있기를.
a - 고난과 불안속에서 공동체의 힘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찬송 잘 부를 수 있기를, 취준 지치지 않게, 건강(목장 가족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