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2021.02.21 이은혜 목장보고서
[[주일예배 : 은혜의 경륜 (에베소서 3:1-13)]]
[김성우 목사님 설교]
입살롬 김성우 목사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 은혜의 경륜인데 사실 처음에 지은 제목은 성령의 경륜이었다. 행정목사님께 보내니 감당이 되겠냐 하셨다. 목사님 설교가 좋아서 따라한다고 했다가 한번 더 생각해보고 당장 바꾸었다. 은혜의 경륜을 통해 7년 전 입살롬이라고 치리를 받고 청년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아브람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사울이 바울이 되듯이 입살롬에서 입샬롬으로 변해가고있다. 그래도 여전히 혼이 난다.
얼마 전 사역자들 나눔시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마사지좀 받고오고 싶다 나눔을 했었다. 왜 그런 나눔을 했는지. 입살롬이 맞다. 구원때문에 걱정이다, 심방 가서 울고왔다 하는 나눔을 했어야했는데. 목사님은 제 나눔을 들으시고 크게 걱정하셨다. 다른 사역자들은 큐페온에서 고생하는데. 넌 할일이 없지? 하시더니 주일 강단에 서게 되었다. 저도 목사님 설교를 기다리는 한 사람인데 죄송하게 됐다.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중압감에 목사님 설교가 많이 났다. 사부님 소천 후에도 시집살이에도 한번도 말씀을 놓지 않으시고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설교하시고 사람 살리신 목사님이 한번 더 묵상이 되었다. 목사님은 암 수술 직전에도 초원모임에 들어오셨었다. 저희 초원이었는데 다음 날 암수술 하셔야하는데도 밤늦게까지 목자님들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라. 화두가 기술이었는데 저를 보시며 김성우 목사는 얼굴이 사역에 방해가 되니 기술이나 배워라 하시더라. 다행스럽게 기술 배우기 전에 점점 못생겨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저희 권찰이 제 코를 보고 아침마다 한라봉이라고 한다. 아랍사람 같다고, 멕시코인 같다고. 이제 사역을 해도 될 것 같다.
목사들에게 설교가 가장 큰 고난인 동시에 가장 큰 영광이다. 그리고 설교가 정말 십자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는 은혜의 경륜은 목사에게는 설교, 사역으로. 성도들에게는 이런 저런 환경과 고난으로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신다. 이런 환경과 사건들이 우리에게는 영광인 것이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가만히 놔두면 떠내려가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은혜의 경륜이다.
경륜이라는 단어는 세상을 다스리는 힘, 세상을 움직이는, 만물과 역사를 움직이는 목적이라는 뜻이다. 역사와 만물을 움직여가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경륜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은혜의 경륜이 무엇인지 묵상해보도록 하겠다.
(1. 옥에 갇힌 환경입니다.)
1-2절
바울은 옥에 갇혀있다. 왜 갇혀있는지 설명하면,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끝났다. 2차는 유럽으로 3차는 다시 아시아로 가서 에베소에서. 그런데 3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혼자 간 것이 아니라 헬라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갔다. 헬라사람인데 에베소 출신. 바울이 이자와 같이 다리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다. 이방사람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고. 그래서 바울이 잡히고 갇히고 로마까지 압송이 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이다. 실제로 드리비모와 성전에 같이 들어가지 않았다. 같이 다닌 것 밖에 없었는데 와전되어서 드로비모로 인한 오해 때문에 갇힌 것이다. 에베소 교인들은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우리때문에. 이 오해 때문에 바울이 갇힌 것을 알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게 된다. 그 때 바울은 낙심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질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내가 옥에 갇힌 이 일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다 너희 이방인들을 위하여라고 말한다. 내가 옥에 갇힌 이 기막힌 일을 너희를 위한 예수의 일이라고 말한다.
재작년 4월 쯤 월요일 아침에 예전 부목자님을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다급한 목소리와 고함소리, 경찰관이 아버님 성함을 대시며 아들이 맞냐고 물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 때 아버지를 또 설득했다. 화를 내며 아들이 이렇게 사역하는데 아빠가 왜 방해가 되냐며 병원가시라고 했다. 급하게 지방으로 내려갔다. 골절이 되고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걷지도 못하고 신음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휠체어도 없고 근처 항문외과에 입원하셨더라. 모셔오려고 부축했더니 아프다고 고함을 치신다. 감당이 안되어 다음 날 준비를 하고 다시 내려갔다. 부활절 주일설교를 몇번씩이나 듣고 새벽설교를 들으며 내려갔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안계시더라. 병원이 텅 비어있고 아버지 옷이 가지런히 개어져있었다. 평소 술을 마시던 시장통 거리에 기어가서 술을 드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화가 났다. 그 날 큐티 본문이 주의 종을 후대하소서 그리하면 주의 말씀을 지키겠나이다. 주여 저를 후대하소서 읊조리며 분노를 가라앉히고 아버지를 차에 태웠다. 태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차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와 제일 큰 병원에 갔다. 고함을 지르고 수술 안하겠다 욕설을 하고 협조하지 않으셨다. 엑스레이 피검사 다 해도 이 병원에서는 수술하지 못하겠다 쫓겨났다. 그 때가 5시였다. 갈 데가 없었다. 저는 데릴사위를 하고있으니 집도 없다. 누나에게 전화했더니 놀러갔다고 한다. 이리저리 소문을 해서 작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려고 들어갔는데 또 소동을 피우시고 네번을 쫓겨나 다섯번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아프다고 소동, 휠체어에서 대소변을 보시고.. 늘 술과 폭력으로 가정을 깨트렸던 주범이라고 생각한 아버지였다. 제가 중1때 감옥에 다녀오신 이후로 지금까지 무직으로 노숙자처럼 사시던 아버지였고 연을 끊으며 살았기때문에 같이 있는것도 힘들었다.
이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헤프닝이 아니였다. 저에게 주신 은혜의 경륜이였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이끄시는 경륜이었던 것이다. 저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깨닫고나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경륜인것이 깨달아졌다. 수년 전 목사님이 말씀하실 때 요셉이 늙은 야곱을 모시러 가는데 수레를 보내고 올라오더라. 화해 라는 설교를 들으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시니 천천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침삼킬 기력도 없는 이 사건을 통해 한번도 생각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집 근처로 오게 되셨다. 한번도 기도한적도 꿈꿔본적도 없는 아버지가 휘문채플에 오셔서 성도들의 박수도 받으셨다. 영접기도 때 일어나 영접기도를 하셨다.
아버지를 모시러 갈때도 헤프닝이 있었다. 주일에 제가 갈 수 없어 권찰이 갔는데 절대 안간다고 하셨다더라. 너무 완강하니 무서워서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안간다 안간다 하면서 옷을 입으셨다고 하더라. 이 모든 일이 이방인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나에게 닥친 예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본문을 묵상하며 과연 바울이 나였을까? 이방인이 누구였을까? 생각했다. 담임목사님이 절 위해 아버지가 수고하셨다는 목사님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수고했지 라고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며 내가 이방인이었구나를 깨달았다.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나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수고하셨구나 라는 것이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우리들교회 2012년에 면접보러 왔었는데 질문 중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 때 이방인을 적었다. 그 단어가 저에게는 낯설지 않는다. 그 때 면접을 보며 에스겔 31장 설교를 하고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 질문:그래서 적용이 뭐에요? 라고 물으시더라. 적용은 구체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구체적으로 아침 저녁으로 읽는것입니다 했다. 말씀이 안들리는 이방인은 제가 맞다. 얼마나 답답하면 목사님이 말 금지 치리까지 주셨다. 치리를 받아도 변화가 없었다. 저 목사 안하겠다,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간사 시켜달라고 메일을 보냈었다. 목사를 안하더라도 고쳐야한다고 하시더라. 그래도 안고쳐지니 또 은혜의 경륜으로 절 유아부로 보내셨다. 유아부는 신세계였다. 아이들이 막 듣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하나.. 설교를 열심히 끝내고 아이 한 명을 불러 적용질문을 한다. 너의 염려는 무엇이니? 천천히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 아이들도 귀가 트이고 저도 귀가 트이고. 같은 수준으로 유아부를 보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때는 왜 나같은 대단한 목사를 주차시키고 어린이부서를 보내나 했는데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말이 안통하는 자가 이방인이다. 그런 이방인인 저를 위해 아버지께서 옥에 갇히신 것이 예수의 일이다.
아버지는 참 잘생기셨다. 똑똑하시고 직장도 좋으셨다. 집도 새아파트를 분양해 넓은 집에 사셨다. 좋은 직장, 넓은 아파트, 예쁜 아내를 한순간에 잃어버리시고 자녀까지 외면했던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전화만 하면 늘 죽고싶다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너무 싫어 칼로 자기 코를 베어 깊은 상처가 있다. 그 아버지께서 이방인인 절 위해서 사명을 다하실때까지 살아주셨구나 깨달아지고 이것이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이방인인 날 위함이구나 깨달아졌다. 문자 그대로 이방인은 저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저였고 아버지께서 이방인인 날 위해 갇혀계셨던 것이다.
옥에 갇힌 사건, 감당이 되지 않는 사건은 드로비모때문도, 로마 황제때문도, 날 모함하는 유대인때문도 아니다. 지금 당장 원인을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틀림 없는 것 하나는 그리스도가 주인인,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이방인인 나와 너를 위한 예수의 일인 것이다. 이 땅에서 형통하고 평안할때나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나 우리는 사건을 보는 눈, 우리는 사건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야한다. 해석이 되고 말씀이 들리면 피가 마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말씀을 붙들고 바울처럼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어떻게 이 고난을 바라보고 해석하는가? 바울은 감옥에 갇힌 그냥 죄수가 아니다. 뭔가를 잘못해서 갇힌 자가 아닌 것이다. 왕의 주권이 아닌 그리스도의 주권 안에 있는. 황제의 죄수가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죄수라 말한다. 이는 이방인을 향한 예수의 일이다, 사명을 위해 갇혀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옥에 갇힌 수많은 사건들은 해석되지 않는 수많은 환경들은 이방인인 나와 널 위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경륜이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선하신 뜻을 가지고 날 이끄시는 경륜인 것이다.
((적용질문))
어디에 갇혀있는가?
이 환경에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가?
이것이 말슴이 들리지 않는 이방인인 나를 향한 예수의 일임이 인정되는가?
날 위해 가장 수고하는 사람이나 환경은 무엇인가?
(2. 함께 입니다.)
6절
목사님께 반복되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함께가 세번 반복된다.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사도바울은 3절에는 비밀이라고 표현한다.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은 숨겨져있고 모호하고 감춰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밝히 드러난 일을 사도바울은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비밀이 부지런히 읽고 들으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비밀이 6절에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참여하는 자라고 말한다.
여행을 다니며 우리가 이방인일 때 모르면 계속 읽고 안들리면 계속 들어야한다. 바울은 이방인인 너희가 이 비밀을 깨닫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들으면 된다고 말한다. 담임목사님 설교를 처음에 들으면 잘 안들린다. 초원모임때 듣고 목장에서 또 들으며그렇게 우리가 점점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고 이 복음의 비밀이 함께 이다.
저는 사실 함께가 안됐다.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왔는데 이 설교를 하면서 많은 성도님들이 위로해줌에도 부끄러웠다. 아버지를 섬기기는 하지만 함께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만 보면 어렸을 때의 상처, 분노가 올라왔다. 아버지의 혈기, 욕설, 폭력, 가족과 어머니를 괴롭히며 난장판이 되고 피해서 덜덜 떨던 생각때문에. 아버지가 미웠고 원망됐고 힘이 생기니 무시가 되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왔지만 뵈러 가면 모든 것이 무시되었다. 섬기면서도 생색이 가득했고 형제의식 없이 늘 가르치려고 들었다. 바나바처럼 바울에게 나도 너와 같은 사도다 말한것처럼. 바나바도 바울을 보며 무시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책임지는 사랑을 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하기도 싫어한다. 책임지기 싫어하니 함께가 안되고 바른 말도 안되고 처방도 안나간다. 사랑이 없으니 처방이 상대방에게는 가르침으로 들리는 것이다. 바울처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와야 깨달아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늘 이방인이었고 나와 우리들이 아니라 늘 타자였다. 그러니 늘 아버지는 틀렸다며 가르치기만 했다.
수술이 끝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매일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탈출을 한다고. 조금 회복되니 뛰기도 하고 잡으면 때리고 꼬집으면서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너무 속상해 전화를 드렸다. 어디 가시냐니까 집으로 가신다더라. 여기는 서울이고 아버지 집이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조금만 걸어가도 집이 있다고 하시더라. 아버지께 단단히 가르쳐줘야겠다. 틀린 것을 증명해드려야겠다 생각했다. 더운 여름 날 작정을 하고 가니 집에 다녀오셨다더라. 권찰이 아버지를 부축하고 집에 가자고 하며 밖으로 나왔다. 저는 멀찍이 차를 몰고 따라갔다. 그 더운 여름에 산길을 걷고 걸었다. 점점 가도 안보이고 수십분을 더운 여름을 걸으시더니 권찰에게 돌아가자 하셨다. 그러면서 네가 미친 개에 물려 너도 미치고싶냐고 화를 내시더라.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왜 미친 사람 말을 듣고 너도 이렇게 하냐고 말을 하신 것이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알고계셨던게 아닌가. 외로우셨고, 관심 받고 싶으셨고, 아들과 대화하고 싶었는데 옳고그름으로 당신은 틀렸다를 시원한 차 안에서 에어컨을 맞으며 아버지 뒤를 따라갔던 저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참여하는 자가 되는 이 마음이 없었다. 아들아 내가 틀렸다 한마디 듣고싶었던 것이다. 당신의 삶을 틀렸다를 증명해 내가 옳으니 내 말을 들어라. 아버지를 대한 이 태도가 얼마나 악한 것이었는지 함께가 안되는 것이다. 그 날도 권찰과 대화를 주고받고 아버지가 이제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꺼야!만 말했었는데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남을 섬기는 아름다운 순간에도 100% 죽어있는 것이다. 훌륭한 내가 모자란 너를 섬겨주고 그런 나는 얼마나 훌륭한가. 선을 행하는 그 아름다운 순간조차 제 속에 함께가 되지 못했다. 내가 진리이니 너는 틀렸다 라는 태도는 유대인이 이방인을 향한 태도이다. 형제의식이 없는 것이죠. 이것은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의 방식이고 유대인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 분이 우리와 같이 죄의 옷을 입으시고 우리가 죄로 신음할 때 저 먼 천국에서 에어컨을 맞으며 율법으로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당하셨다. 우리가 힘들어 할 때 함께 눈물 흘리셨다. 예수님이 받아야 할 모든 권세, 권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이다.
2인3각이라는 경기가 있다. 두명이 짝이 되어 발을 묶고 달리는 것이다. 제 소원이 달리기를 해서 3등안에 들어 손목에 도장을 받고 그것으로 공책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다. 뚱뚱해서 항상 6등 7등을 했다. 그런데 그 경기때 처음으로 공책을 받았다. 엄마와 함께.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발을 묶으셨다. 누구도 끊지 못하는 언약으로 발을 묶으시고 죄인인 우리가 넘어지면 하나님도 넘어지신다. 우리가 멈춰서면 하나님도 멈춰서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가시는 것이다. 내가 못달린다고 가르치며 닦달하시는것이 아니라 기다리신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경륜인 것이다.
작년 임종 직전, 아버지 마지막 소천 바로 몇시간 전에 아버지의 볼에 내 볼을 비비고 그 손에 내 손을 붙잡았다. 한번도 평생 안아본적이 없었는데 그 몸에 내 몸을 포갰다. 주여 아버지의 죄가 저의 죄입니다 주여 모든 것을 잃은 우리를 용서해주시옵소서 기도했다. 항상 아버지의 죄는 당신의 죄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며 예수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드렸다. 진짜 들었다는 듯이 그 말이 끝나자 마자 고개를 두번 끄덕이시고 바로 소천하셨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처럼 아버지의 입관예배 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17절로 말씀을 주셨다.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됨을 데살로니가 부활의 말씀으로 확증해주셨다. 너때문이야, 갈라서 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으니 당신의 잘못이 나의 잘못이고 당신의 바람이 내 잘못이고 이 십자가는 우리 부부의 죄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의 잘못만, 자녀의 잘못만 말하며 네 십자가니 당해봐가 아닌 것이다. 그 사람에게 우리 예수님도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적용질문))
목장에서 목원의 아픔을 함께 지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책임지는 사랑으로 처방하고 있는가?
외면하고 있는 내가 함께 져야 할 내 지체의 아픔은 무엇인가?
1차 2차 3차로 전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저의 1차 선교여행이 아버지였던 것 같다. 2차는 피가 안섞인 이방인. 권찰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신 장인어른. 그리고 3차는 다시 돌아와 저희 어머니에게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은 교회입니다.)
함께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에게
7절
그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은혜의 선물을 허락하신다고 하신다. 왜 이런 비밀을 부어주시는가?
8절
이방인과 함께하기 위해서. 그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를 힘이 닿도록 부어주신다. 그러니 생색낼것도 자랑할것도 없다. 나도 너와 같은 사도다, 너와 같은 목자다, 목사다, 주의 종님이다... 이것이 진리다, 너는 틀렸다 라는 태도로 나아가는 사람은 십자가의 비밀도 능력도 없다. 모든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인식. 바울은 어떤 현장에 가서 능력을 봐도 한 쪽에는 각인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다. 작은 자보다 더 작은자.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현장이 늘 그려지며 핍박자, 훼방자, 포악자라는 끊임없는 자기 죄에 대한 인식을 사도바울을 사도바울답게 은혜가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함께 교회를 세우신다. 교회의 영광이 얼마나 크냐면 에베소서 1장 말미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아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함이다 라고 하셨다. 무슨 말이냐면 만물을 충만케 하신 모든 충만함이 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비밀의 경륜이 천사들도 흠모하는 그 놀라운 비밀의 진리가 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교회를 세우신다.
9-10절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일꾼을 통해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영원 전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그 비밀의 경륜, 그 비밀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낸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해 드러난 비밀의 경륜을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이 지혜를 알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랑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욥을 자랑했듯이.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누구인가? 수많은 권세를 입은 천사들이다. 이 땅에 기초를 놓을 때도 있었고 천지를 유에서 무를 창조할때도 있었던 그 존재들이다. 그리고 역사의 흥망성쇠, 하나님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본 천사들에게 교회를 통해서. 그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놀란다는 것이다.
제가 권찰과 데이트를 할 때 불만이 있었다. 제가 아무리 맛있는 곳에 데려가도 안놀란다. 이전에 다 해봤기 때문이다. 6살 연하하고도 사귀어봤는데 그 친구는 아웃백에만 데려가도 깜짝깜짝 놀랬었는데. 저희 권찰은 홍콩에서 호텔에서 살다보니 최고급 마블링 꽃등심을 사줘도 안놀란다. 창조를 봤던 천사들이 뭘 보고 놀라겠는가. 세련된 예배당을 보고 놀라겠는가 서울대 나왔대 하며 놀라겠는가. 스펙보고 안놀란다. 그런 천사들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환경과 뼛속까지 죄인인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서 적용하고, 그 죄악된 단단한 심령에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고 질서가 부여되고 죄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말씀이 들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갈 때 놀라는 것이다. 더 큰 새로운 창조가 우리 중심에 일어나고 이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성전이 그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성전보다 귀한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구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십자가에 달리며 부활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함께 부활하는 놀라운 일을 보며 놀라는 것이다. 결혼해서 결코 죽어질 수 없는 한사람이 남편때문이 아니라 말씀, 우리 구주때문에 내 새 살을 깎아내 절반을 비우고 질서와 복종에 들어가게 되는 것. 여기에 놀라는 것이다. 이것들이 혼자서는 절대 되지 않는다. 공동체를 통해서 가능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이 교회이고 땅을 향한 최고의 모략이 교회인 것이다. 교회를 통해 공동체를 통해 저 역시 아버지를 만나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만날 때마다 식사하고 예배드렸다. 늘 분을 쏟아내고 가르쳤던 제가 이제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예배할 수 있었다. 내가 더 가해자임이 깨달아지니 이제는 아버지와 만날 때마다 예배드리는 것이 기다려졌다. 그래서 제 차에는 늘 한쪽 눈이 안보이시는 아버지를 위해 큰 글로 뽑아놓은 찬송가와 성경이 있었다. 그렇다고 늘 예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목장 가기전에 가기 싫을 때가 있지 않은가. 저도 그랬다. 그날도 설날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근처 송추가마골에 식사를 하러 갔다. 한우 가격에 놀라고 맛에 놀라는. 2인분만 시키고 아버지만 드시라했는데 너무 잘 드시더라.
예배드리기 아주 좋은 장소가 있더라. 예배를 드리는데 그 날 본문으로 예배드린 뒤 돌아가며 기도를 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시더라.녹음을 시작했다. 제가 아들에게 죄를 범한 죄인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싶었다. 드디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것이 유언처럼 제게 남겨주신 아버지 목소리가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아들과 며느리 같이 첫 새해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 세월을 하나님 축복 속에서 사랑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충만한 마음가짐을 더욱 더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정말 하나님께 바라며 기다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 울이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공동체가 없었다면 혈기와 미움에 쌓여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늘 가르치기만 하며 비밀이 무엇인지, 경륜이 무엇인지 교회의 영광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자였다. 임종 직전 목사님 에스겔간증이 기억나 아버지께 전할 수 있었고 날마다 확신을 얻어 나아갈 수 있었다.
어떤 고난 가운데 있는가? 사도바울은 이렇게 권면하며 끝을 맺는다.
13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적용질문))
공동체의 힘을 얻어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내가 적용할 것은 무엇인가?
내 혈기와 분노를 가라앉히고 양육의 자리, 목장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가?
은혜의 경륜으로 하나님은 이방인인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한 사도로 날 부르셨다. 이것이 사명이며 날 살리신 하나님의 경륜이며 날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목장나눔 - 일주일 근황 나눔]]
목장 모두 전원 참석을 하였다.
집이라 찬양을 크게 부를 수도 없고, 다음날 회사를 가야하는 상황이라 늦게 끝나는 상황(저녁 12시~새벽1시)이라 쉽지는 않은 큐페 기간이었지만 반대로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일주일을 뜻깊게 보냈다.
작년도에 갔던지난 큐페가 생각이 나면서 코로나 상황 때문에 늘 오프라인으로 하다가 온라인 큐페를 해보았는데, 예상보다 너무 잘 진행이 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현장감은 덜 했지만, 책 읽는 사자, 라디오 등 프로그램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목장 기도제목]]
((김현지))
-가족구원과 신교제 과정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학교 낼 가는데 말씀묵상하며 담대함 얻도록
-판단과 무시가 인정과 용납으로 바뀌어지는 은혜 누리길
((조형수))
-남자친구 목장에 잘 안착하여 신교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나님 의지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김윤지))
-저에게 합당한 취업 올해 꼭 할 수 있도록!!
-쓴뿌리가 치유되고 자유할 수 있도록.
((신은비))
-한 주도 옥의 갇힌 환경에서 말씀보며 인내하며 가도록
-3/7직업상담사 2급 필기시험공부 시간관리 잘해서 하도록
-유치부 아이들이 온라인 예배 잘 드리도록
-신교제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도록
((심혜선))
-엄마가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잘 이겨낼 수 있게 체력과 용기를 주시길
-두려울 때에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번주는 꼭 큐티를 잘 할 수 있도록!
((이주영))
-미디어 떠나 건강한 습관 들이기
-신교제 신결혼 위해서!
-낙심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영광 잊지 않고 연습 학업 논문 감당하길
-구원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