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14일
사도행전 16장
1절 ~ 5절
'성령의 동역자'
'김양재 목사님 '
1절 -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절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절 -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앎이러라
4절 -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절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누군가와 동역하는것이 힘이드는데 오늘 성령의 동역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정말 성령의 동역자가 되고 싶습니다.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차 전도 여행에서 수행원의 사명을 중도 포기한 마가를 다시 데리고 다닐수 없다면서 거절한 바울이 인정으로 생각하면
너무매몰찬것 같고, 독불장군처럼 볼수 있지만 그러나 성령 전체를 놓고보면 바울은 늘 동역자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신약성경에 '동역자' 라는 단어가13번 나오는데도 그 중에 바울서신만 사도행전에 12번 나옵니다.
동역자라는 자체가 바울의 단어라고 까지 할수 있을 정도죠.
하나님도 혼자 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아시죠?
나아가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 같이 일하십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을 아무리 사람을 의지 하지 않는다 해도 같이갈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해서 같이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 그래도, 이제 일은 동역자가 필요한거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듯 앞으로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디모데를 발탁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동역자에 대해서 생각을 해겠습니다.
첫번째. 수행원 이어야 합니다.(1절 상반절)
2차 전도 여행은 사도행전 15장 41절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여러교회들을
심방하면서 여러교회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16장 4절에는 여러성으로 다녀갈때라고 했는데, 41절에도 다니며 4절에도 다녀갈때에
이 모두가 미완료로 바울이지방을 쉴새없이 다녔다는 것입니다.
지도를 잠시 보시겠습니다.

떠난곳은 수리아 안디옥입니다. 위쪽으로 가면서 수리아, 길리기아, 루스드라 까지 갔습니다.
안디옥이 수리아 지방있고,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리기아 지방에서, 루스드라 더베까지는 갈라디아 지방입니다,
북쪽으로 이렇게 올라가는 거예요.
길리기아,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 있는 길리기아 지방이 있는 1차전도 여행때 더베가 갈라디아 지방입니다.
여기를 계속 다녔다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이때 구브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울과 심함 다툼으로 갈라섰을때이며.
그러나 바울은 길리기아 위에 바로 고향 다소가 있지만 고향으로 갔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바울의 친척들은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성경전체를 보면 가족 하면은 바울은 기뻐하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가족 이야기를 안합니다.
영육간에 스펙이 강해서 가족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픈해도 가족이 무서우면 안합니다.
바울도 산헤드립 공헤원이어서 유대가문에서 영육간 가말리엘 문화생 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다소를 지나면서 가족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다고 했는데 바울에게는 애통한 마음으로 잠시도 쉴려는 마음이 없게하셨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유대인 전체가 바울을 대적하니 바울은 정말 외로울것 같을 것 같습니다.
저절로 이땅에 소망 둘것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생명을 내놓는 수고로 힘쓰게 하십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길리기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해발 2000km가 넘는 아마누스 산맥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길리기아에서 심방을 마치고갈라디아 지방으로 갈때에 토로스 산맥의 끝자락을 넘어가야 했고.
높고 험한 산맥 두 개를 넘어서 바울은 1차 여행지의 종착지인 더베에 도착합니다.
수리아 안디옥으로부터 더베까지 380km 이상을 걸어온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100km 더 가서 루스드라에 도착합니다.
바울이 긴 여행을 하면서 옆에 실라가 있지만, 정말 얼마나 바나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겠습니까.
바울의 마음이 첫사랑입니다. 헤어지고 나서 생각할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헛것입니다. 말짱꽝이며. 이럴때, 바나바는 생각 안해야될 생각입니다.
사람 의지 하지 않아도 실연 했잖아. 비슷한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동역자가 필요한데,
우리는 의지 하지 않아도 일을 할때 필요한 동역자 필요합니다.
루스드라는 어떤곳 입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나바와 바울의 팀워크가 빛을 발했던 곳입니다.
거기에서 나면서 걷지 못했던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보았잖아요,
그리고 또 바울을 돌에잡아 죽이겠다고 하는,
영광과 죽음(비난) 이 두 개를 겪었고, 보았습니다.
사명이 아니라면 380km 지나서 다시 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의식으로 갔잖아요.
또한, 사명이 아니면 누가 가겠습니까,
그러나 강도의 위험과 모든 어려움 속에서 여기를 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디모데 어떻게 만났겠습니까,
디모데는 여기서 넘어서는 열매입니다.
16장부터 이어지는 누가의 표현을 보면 실라의 위치는
바나바처럼 바울과 대등한 위치의 동역자가 아니라 마가같은 대단한 수행원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라고 '두 사도' 라는 호칭도 없고, 1차 여행 때는 바울과 바나바,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 라고 늘 함께 기록했습니다.
2차 여행때는 바울만 단독으로의 기록입니다.
동역자를 향한 생긴바울의 마음 변화를 말하는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바울과 바나바를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하신것 같아서 오늘 다시 언급합니다.
이전에 바울은 정말 바나바를 의존했습니다.
1차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도 바나바가 설교 한번 했다는 기록 없습니다.
설교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매사에 그런데도 바울은 바나바를 계속 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 바나바가 압도적이었는데, 이제 설교 해야죠. 이방인들 전도 해야죠.
배척하는 유대인들 섬겨야죠.
바빴지만은바나바가 마가처럼 수행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는것이 어려울것입니다. 도리어 바나바까지 섬겨야 하는것이 바울의 일입니다.
게다가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고쳐도 영광은 인물 좋은 바나바가 받아서 사람들은
그를 '제우스'라고 하면서 루스드라 백성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그런것이 문제는 안됐지만 점점 자연히 바울은 바나바를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리더십은 맨처음부터 그렇게 안되었는데.
안디옥에서는 둘이 같이 성경을 가르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섬겨주니까 드러나지가 않았는데.
바울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선교여행을 떠나서 구브로에 도착해서 바울의 복음전하는 능력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저절로바울에게 리더쉽이 저절로 갔다고
했습니다.구브로 섬을 떠나서는 저절로 갔다고 했습니다.
근데 바나바가 그정도는 인정하는거예요.
말만하면 바울은 회개를 시키는거예요.
사람들이 변화가 되는 거예요. 지금 이제 1차전도여행때..
바나바 때문에 변화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분은 설교 하나 없고,
달래 열등감이 아니고 바나바가 말하면 사람이 하나도 안변하는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열등감이 생겨 졌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바나바도 전하긴 했겠죠.
바울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선교여행을 바울이 전하는것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바나바는 입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한사람만 전도를 했는데도 서기오 바울 총독, 일당 백 일을 하는 사람이 전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박수무당 엘루마의 눈을 멀게도 했습니다.
바나바 눈이 똥그래 졌습니다. 저절로 바울에게 리더십이 갔습니다.
마가가 구브로 섬을 떠나서는 저절로 갔습니다. 마가가 갔으니까 마가 역할 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나바가 했겠습니까,
안했습니다.
바울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나바에게 사람들이 그정도로 인정한 말만 하면은,
바울은 사람들을 회개 시키며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영적인 열등감이 저절로 생겼을 것입니다.
1차 전도여행때 바나바는 변화됨이 없고, 설교도 없고, 달
래야 하고, 열등감 있고, 바나바가 사람이 변화가 안됩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영적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이로인해 돌아와서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이방인과 밥 안먹는 척 하는 외식 사건이 일어납니다.
외식 하는 사람들은 열등감이 있을때 유혹을 받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유대총회에 같이 갔지만,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신뢰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서서 확신있게 '할례와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것이 아닙니다'
라고 확실히 외쳐 주었다면, 미리 일이 끝났을 수도 있어요.
예루살렘교회 까지 가서 말 한마디 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말 한마디 안합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전폭적으로 지지 했다면 자기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차이 일까요?
바울은 이미 10년이상풀무망대에서 수고를했습니다.
자기의 열심과 성경적 지식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쪽 저쪽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무너졌습니다.
아무에게도 쓰임을 받지 못한 시간이 13년이나 흘렀습니다.
자기는 자기를 죽일려고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중에 가장 큰 고난이 나를 죽이려는 고난을 당하는것입니다.
나를 누가 맨날 죽일려고 하면 하나님께 의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절박한 마음으로 전도를 하니까 그러면서 바울에게는 사람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줄 서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해야 구원과 연결이 되는걸 생각해야 하는데
외모, 직장, 학교, 집안이 구원과 연결이 되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고난을 거치지 않으면 결정적일때 분별이 안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늘 말을 하지만 그런일을 박사학위로 아는것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애초에 돈도 많고, 고난고 없고, 성품이 좋고, 인정을 받으니까
구원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것은 바울과 비교할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람들이 일을해야 성공을 합니다.
바울은 끊임없이 구원 때문에 할 일이 생각이 난 사람이예요.
그래서 전도한것도 다시 돌아보자 하고, 예루살렘은 가기 싫어도 가고,
안디옥에는 머물고 싶어도 떠났습니다. 구원의 열정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무서운 열심과 다른거예요.
윤여정씨 어떻게 연기를 잘하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이혼하고 너무 아이들과 살기 힘들고 싫으니까
온몸에 절박하면 살아있는 연기를 한다고' 너무 안타까우니까..했습니다. 쥐새끼를 흔들면서 연기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쥐새끼를 흔들었습니다.
너무 힘드니까 절박한 연기 리얼한 연기로 나옵니다.
절박함은 리얼한 처방입니다.
공감이 되는것입니다. 절박하지 않는 사람은 '그러냐?' 그러는것입니다.
절박한 사람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라는 반응이 나오는데,
아닌 사람은 '그런데?' 반응하며 말하기가 싫습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이 바나바를 동역자로 모시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지금 동역자가 아니고 바나바를 때마다 신경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의 결정도 계속 둘이 다르고, 바나바가 외식도 하고 여러 가지로 바나바는 사도이지 수행원이 아닙니다.
바울에게는 전적으로 수행원 제자가 필요한 시대인것이 너무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바나바하고 헤어진다 는것이 아닙니다.
마가사건으로 헤어집니다.
바나바 본인이 떠난것입니다.
바울이 먼저 떠나라고 안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바나바가 좋습니다.
동역 하려면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하는데, 동업 하지 말라고 합니다.
목장에서 말하면은 들어야 합니다.
공동목회 하다가 실패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자존적인 교만이 있어서 머리가 하나여야 하는데
머리가 둘이라서 다같이 죽습니다.
머리가 둘인 뱀이 금새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부족해도 머리가 하나여야 합니다.
부부간 공동체에 집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는 남편입니다.
남편이 머리어야 합니다.
인격이 아니고 역할입니다.
인격에 순종할 때 온집안 살아납니다.
능력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여자가 머리가 되면 둘다 죽는것입니다.
지혜롭게 머리로 세워야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조언을 해줘도 남편이 직접 결정하게 하고.
우리 남편 한 사람 구원 시키기 위해서 여러 종류 사건들 거치는것입니다.
가고 싶어도 안가는 것이고. 구원에 도움이되기 위해. 목회하는데.. 적용하는것입니다.
고생 안해본 사람은 '미쳤어? 왜살아?' 이렇게 반응이 나옵니다.
바나바 바울 생각이 다릅니다.
원어를 보면 바울을 구원의 초점으로 마가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으로 구원을 생각하며 데려갔지만
역부족이라는 자기 주제를 압니다. 구원을 위해 바울이 단번에 거절합니다. 마가를 위한 사랑입니다.
거절할때도 있어야 합니다. 매몰차다고 하면 안됩니다.
바나바는 사역을 책임 지지 않고 무조건 데리고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분별 하겠습니까... 사람은 잠시뒤 일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지금 욕먹는거 싫어하고, 지금 당장 돈 생기는것을 좋아합니다.
책임지는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알기도 싫고 책임지기도 싫어합니다.
바나바가 바울 사도의 말을 들었다면 다투지 않았겠지만 중요한것은
바나바가 바울을 나도 너와 같은 레벨의 사도 라고 생각해서 다투고 갈라서게 된것입니다.
절대로 바나바는 수행원이 아닙니다.
바울이 두머리가 있어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는 너무 착해보이지만 구원의 일을 생각 안해서 우리들교회 어록에 '착한것이 악한것이다' 가 바로 이것입니다.
가장 악한것입니다. 착한 사람 대상 아니고 구원 받은 사람이 대상입니다.
착한 사람이 구원의 일을 결정적으로 막습니다.
바울이 못되보이지만 가장 선한 선택 한것은 구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이후로 사도행전에서 구원의 일에서 사라집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바울이 너무 매몰차다고 생각합니까, 바나바처럼 한사람 품고 가야지...
라고 생각합니까.하나님이 바울편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넘어가는 인도를 받을려고 합니다.
바울이 절대적 수행원이 필요했습니다.
저절로 바나바가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마가가 먼저 떠났고, 바울은 바나바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해석 조차 안들릴수 있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시작이 중요하고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바나바가 유대인이라서 구속사가 아니면 말씀을 듣기가 어려워합니다.
알러지 반응을 보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싸웁니다. 제가 우리 대학교때 서집사님께 '너는 정말 큐티해라. 여기저기 반항하지마라.
그만 반항하고 큐티해라. '라고 말했더니,
그랬더니 상처받고 공동체 떠났다고 하잖아요정답만 말해서 싫습니다.
'구속사말씀' 안들린다는 것입니다.
유교적인 우리 문화에서 심경적으로 바나바편을 듣습니다.구속사가 어렵습니다.
한사람 계속 품고가야됩니다. 구속사가 아렵습니다. 구속사가 1더하기1은 2 라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영적인 거라 깨닫기 어렵고 안깨달아 지는데 바나바가 바울과 다녀도....
사도행전 여러번 묵상하면서 적용은 다르지만 깨달음은 달랐습니다.
근본은 구속사로 보기 때문에 몇십년전에 묵상한것과 지금이 똑같습니다.
적용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서 다시 나눠보세요. 얼만큼 이해를 했는지...
여러분은 어디서나 수행원 입니까?
대접 받으려는 사도입니까?
본래 사도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자 입니다.
물론 본래 사도의 의미를 입장에서 말하는거 아닙니다.
내 입장에서 사도인지, 수행원인지 나눠 보라는것입니다.
한 목자님이 부목자님께서 양육 훈련을 받으시는데 양육숙제에 목보까지
힘들다는 생각에 목원들께 부목자님께서 양육 받으시는 동안에는 목원들께서 돌아가면서 목보를 쓰자고
했더니 전부 오케이 했습니다. 현재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목자님께서는 형제의식에 감사하면서
양육과정이 잘 마칠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나눔을 하셨습니다.
양육을 잘 받을때까지 유연하게 도와줄수 있는것이 동역자가 아닌가요..
그러나 양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부목자님 중에서는 보고서를 쓰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목장 보고서를 쓰는것은 회사에 가서 기획안, 리포터같이 잘쓰는 것입니다.
목보를 쓰면서 배우는 거니까 교회에서 하라는것을 하면은 매사에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인데도,
아무도 안하고 목장 보고서를 안쓰고 게으르게 하면은 인생도 게으르게 갈수가 있어요.
취합해서 내셔요.
부목자때는 양육이기 때문에 부목자가 목보를 쓰는것이 가장 큰 양육이라서 넘기시면 안되십니다.
성령의 동역자가 되어서 쓰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제자여야 합니다.(1절 중반절)
이제 지난번 15장41절~16장4절까지 바울이 열심히 다녔대요.
미완료입니다.
그랬더니 5절에 교회가 부흥했다는 전체 스토리입니다.
이 이야기가 계속 수리아 길리기아 지방 갈라디아 지방을 다녔는데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1절~3절까지 디모데 이야기 딱 하나만합니다.
수많은 방문을 능가해서 한사람 제자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로 있으니 미완료로 제자로 있었습니다.
바울을 배척해도 한사람을 만나서 지금까지 신약이 전해져 옵니다.
동역자 한사람 찾았기 때문에 동역자, 제자, 그 한사람이 없어서 그 교회가 망하는 교회입니다.
제자가 있으니,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 전부터 1차 선교여행 때부터 이미 제자가 되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계속 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라는 의미로써 복음을 가르치고 받는자,
복음을 따라 적극적 순종하며 살아가고 따라가는자 를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이런 제자가 필요했습니다.
사도보다는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받고, 제자로 살아가는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
즉 수행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14:20 제자들 중에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모든 환난을 겪은일을 봤습니다.
바울이 후에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 3장11절에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 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디모데전서 3장12절에는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수많은 박해를 봤다는것.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것을 본 바울이 '주님의 수행원' 이 된것처럼 박해
충만한 스데반처럼 바울이 스데반이 돌에 맞은것을 보면서 죽어가는 스데반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본것처럼.
디모데도 삶으로 변론하는 바울을 보면서 바울이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뻔 했을때,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제자가 맞습니다.
세번째. 가정에서부터 말씀으로양육되어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1절 하반부)
디모데는 다음세대 말씀으로 양육받아서 칭찬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 어머니는 믿는 유대인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뜻이죠.
바울의 1차여행때 예수를 믿게되었습니다. 이름은 유니게입니다.
유대여자 인데 헬라인 이방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당시 흩어진 디아스포라사람으로 유대인을 배우자로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불신결혼을 많이했고. 불신결혼은 죄입니다. 죄가 아닌게 아닙니다.
안믿는 여친, 남친을 데려다가 전도해야 한다는 말이 맞지만은 전도해서 일단은 기초양육 받고,
think 양육까지 받은자를 신자로 쳐줄게요. 데리고 와서 전도해요.
그러나 이런것들 합리화 하면 안됩니다.
아들 디모데에게는 유대인의 할례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난지 8일만에 행해야 하는데 안믿는 헬라인 아버지가 애한테 무슨 짓이냐고 무슨 할례냐고 했습니다.
할례를 못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어렸을때부터 성경을 가르칩니다.
디모데전서 3장15절에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어머니 유니게는 성경을 가르쳤을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 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이방인 남편과 살면서 삶으로 보여주는것 뿐입니다.
구원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늘 가르쳤기 때문에 삶따로 믿음 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불신자 아빠 신자 엄마랑 사는것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남편에게 어떻게 하는것인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봤습니다.
엄마 한사람의 순종으로 믿음으로 온식구 서게되었습니다.
여자가 안믿을 경우에는 정말 자녀가 믿기가 어렵습니다.
한사람 좋은 어머니는 백사람의 학교 선생님과 비길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교육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디모데는 엄마의 교육을 잘받은 사람이다.
아마도 아버지하고 같이 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속이 빌수밖에 없습니다. 외모가 갖춰질수록 사람이 교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모를 보고 얼마나 다들 땅을 치고 후회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바나바가 당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엄마의 교육이 특히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2절에보면 칭찬을 받는다고 합니다. 믿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디모데의 태생은 혼혈족입니다.
유대인이 혼혈족을 이방인보다 더 무시합니다.
혼혈족을 제일 무시합니다. 디모데가 이방인도 아니고 혼혈아입니다.
굉장히 유대인 지도자로써 동역을 해야 하는데 핸디캡입니다.
여기 동역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디모데가 주변에 칭찬을 받는자니 대단한것입니다.
미완료가 되어서 디모데가 어쩌다 칭찬받는것이 아니고 계속 칭찬을 받는것이라고 합니다.
젊은 청년이 계속 칭찬을 받는거에 있어서 삶이 어렵습니다.
거룩하고 깨끗하게 사는것이 얼마나 힘이 들겠나싶고,
어머니가 성경대로 살도록 양육을 잘했다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전방위 적으로 칭찬을 계속해서 받아왔다는 엄마의 양육이 성공적 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만 알아주면 됬지. 사람에게 칭찬 받는것은 인간적이야'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되는 거예요.
이것이 성경보다 넘어가는 것이다. 디모데가 칭찬만 받겠습니까..
욕도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모두가 칭찬합니다.
바울은 죽도록 욕먹지만 한쪽에서는 모두가 죽일려고 하고 한쪽에서는 살아난 사람이 많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사람이었다고 볼때 사실, 그곳으로 30km 떨어진 이고니온까지 좋은 평판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동역자로써
아주 좋은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자고로 지도자는 평판이 좋아야 합니다.
너무 칭찬만 받는것은 안좋습니다.
그런데 맨처음에 예수 믿을때 칭찬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렇다고 모두에게 욕 먹은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두를 택할 때 신,불신 교인,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은자가 장로의 자격이라고
디모데전서 3장7절에는'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의 빠질까 함이요'
나옵니다. 평판이 중요합니다. 두루두루 칭찬받는 제자, 수행원이면서 다음세대로써 말씀 양육 잘받고 칭찬받고 자라는것 입니다.
바나바 평판, 바울 평판 있습니다.바나바는 바울을 섬기는 것까지 그때까지가 은사입니다.
더 복음의 그릇이 넓어 지는것에 감당을 못합니다. 바나바가 성경을 보면 됩니다.
적용
명절을 지나며 불신자나 가족에게칭찬받은 일이 있었나요?
이번주 목자님이 간헐적 목자모임에 빠지는 이유가 건설사 임원이 현장으로 오라는 말에 안갈수 없어서 빠진것입니다.
이분이 교회에 다니는것을 핍팍했는데 ... 하는말이 지난주에 그렇게 핍팍을 해도 교회에 빠지지 않는 이유 무엇인지 물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는거예요. 이분이 우리들교회 목자아닙니까,
우리들교회에서 들은 구원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 했더니 너무 놀랍다면서
다시는 주일날 당신을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외인에게 칭찬 받는일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준비된 사람은 어디서나 살아 남을수 있습니다.
큐티인도 보냈고, 교회에 초청하기로했고. 서로 간에 관계가 더 돈독해집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렇게 칭찬을 받으면
그렇게 전도의 접촉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작년이 최악의 상태였지만,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관행과 리베이트 없이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 줄서는게 아니라 항상 말씀대로 하면 흥할것은 흥하게 하고 망할 것은 망하게 해주고
전부 예수 없이 타협하고 가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질 것입니다.
우리의 적용은 이땅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안보이는 영의것을 전도하는것입니다.
항상 돈에 초점을 두니 돈이 많이 벌리게 되면 좋은 목장이고,
뭐가 망하게 되면 나쁜 목장이고, 돈으로 밀려오게 됩니다.
나에게 지금 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훈련 때문에 늦추시는것입니다.
이세상 돈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목적이면 물러난 돈도 들어옵니다. 지금은 흥하나 예수가 없다면 망합니다.
적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면 열매가 있고, 핍박 받는다고 하면 인내 하는 시간입니다.
네번째. 부르심에 순종하여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3절-4절)
예수믿는 사람은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아프리카 선교에 가는것이 아니고,유명한 디모데가 나옵니다.
유니게 어머니의 좋은 양육을 받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디모데가 바울 마음에 쏙 마음 들었습니다,
같이 가길 원하십니다.
이런 질문 생깁니다. 바나바도 마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데리고 가길 원했습니다.
그럼 바울은 되고 바나바는 안되나요? 라는 질문이 생긴나요 아님 말구요.
이 둘의 차이는 마가가 중간에 한번 배신하고 떠난것이 결정적 차이 이지만 여기서 데리고 원어에 표현 보면은
바나바와 바울의 태도를 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데리고 떠나 부정과거 지속적으로 가고자 미완료를 고집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나 스스로가 자신이 바울을 따라 나서는 딱 한번 표현하였습니다.
부정과거로 바나바가 자기 뜻대로 한 반면에, 바울은 디모데 선택을 맡깁니다.
바나바는 마가가 가야한다는 정답 정하고 고집부리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부르지만 결정은 디모데에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것입니다.
큰 차이 아닙니까 목장에서 목자님께 물을때 목자님께서 '이사가라, 말라, 주식하지 말라' 구체적인것 을 가르쳐주면 안됩니다.
결정은 너 자신이 해야합니다.
목자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목자님 빵집에 왔는데, '파운드케익 살까요?
아니면 아몬드 케익 살까요? 꽃은 수선화 살까요? ' 이딴거 가르치는것 목자아닙니다.
결정은 내 자신이 해야합니다. 직접적으로 항상 결정은 여러분들이 하셔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결정을 맡깁니다. 디모데가 이제 결정을 맡깁니다.
바울과 바나바 심히 다퉈서 왜 갈라섰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십니까?
아직도 안됩니까? 되시길 바랍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순종의 과정은 루스드라 교회에 공식적인 파송도 포함이 됩니다.
바울도 처음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고 떠납니다.
디모데전서 4장14절에는'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장로회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1차 전도여행 마치고 귀환 하면서 루스드라포함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것 기억 하시나요?
얼마전에 했는데요.
우리는 오늘 이번주 주일설교를 듣기전에, 그 전날 지난주 설교 를 듣거나,
이번주 설교 성경본문만 읽고 와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도행전이 머리에 들어와있고, 소도 말도 잡을수 있고, 성경말씀을 입에 달고있으면
사회에가서도 상담과 말을 잘합니다.
각 교회 장로들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로 파송하면서 루스드라 교회에서 장로들이 안수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파송을 승인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파송으로 디모데에게 예언을 주십니다.
디모데 바울의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주신 은사도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나섭니다.
바울의 동역자, 곧 하나님의 동역자로 첫 발을 딛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동역자로 따라 나서며 가장 먼저 한일은 할례를 한일입니다.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그 지역 으로 인해 할례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는다는 편지를 가지고 다니며, 유대인에게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왜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했을까요?
그것은 디모데가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 유니게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디모데를 유대인으로 보는 것이예요 .
결격 사유가 유대인에게는 고정관념과 흠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바울이 쓴 예루살렘 편지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은 이방인의 위주로 편지를 씁니다.
편지의 내용을 전하는 사람이 유대인 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바울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유대의 율법과 정체성을 무시한다고 오해를 합니다.
물론 바울이 할례가 구원과 상관없다는 것을 아는것에서는 확실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일에는 아무역할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동역자 이방인 디도의 경우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게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3절에는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은 안받아도 된다는 비본질적 원칙에 얽매여서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시험에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으로 인정되는 디모데가 할례를 안받은채 복음의 사역을 하는것 때문에 시험에 든
유대인들에게 배려 하므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유대인들이 믿음의 공동체에 붙어 있는 본질적인 사역을 위해서 비본질적인 할례문제에서 대해서 양보를 한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구원 때문에 타협하는것이 비일비재 합니다. 바울이 타협합니다.
바울이 타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타협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타협이 아니고, 고집입니다.
바울과 실라 디모데 세사람이 성령의 부르심으로 성령의 동역자가 되어 전도했던
갈라디아 남부의 여러성으로 다녀가면서
이방인은 4가지 1.)우상숭배, 2)음행, 3)목 매어 죽인고기와, 4)피를 멀리도록 가르쳤구요.
유대인들 4가지 금지외에 할례를 비롯한 다른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규례를 지키도록 가르쳐야 했으니 유대인 어머니들을 둔
디모데가 먼저 할례의 규례를 지켜서 흠이 없는 유대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유대인들에게도 가야되는 거거든요.
이방에 인정 받는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이런 디도가 필요하고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디모데가 필요한것이죠.
말이 아닌 삶의 변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 본질적으로도 받지않아도 될 할례를 규례를 따라서 본질적으로 받았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서 아프리카 순종하여서 규례에 따라서 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바울의 적용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디모데죠.어른으로써 할례를 받는다는것은 굉장한 고통인데요..
그당시 진통제, 항생제 다 없었을텐데.. 근데 그 고통을 바울이 받는것이 아니고, 디모데가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이 할례를 디모데가 적용한것인데, 바울이 본질을 위해서 비본질을 양보하는 적용을 디모데가 했습니다.
할례를 안받아도 되는 그때입니다. 엄마가 유대인 이라는 이유 때문에 할례를 받은것입니다.
디모데는 살을떼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규례를 지킨 순종으로 부르심의 응답하여 교회를 말씀으로 양육하며 가는
바울의 최고의 동역자가 된셈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부름에 응하므로 이때는 바울이 형편 없었잖아요.
그쵸? 모두가 무시하고 그런데 세속적인 장래를 포기했습니다.
이런 동역자가 계산하고 자기 육신의 해서 재고 이런것이 없습니다.
정말 성령의 동역자는 무조건입니다. 아무것도 살것도 계산을 안합니다.
빌립보서 2장 20절에는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립보서 2장 22절에는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가 이해타산을 따졌겠습니까..
바울이 사역하는 동안 언제나 따라다닌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은 13통의 서신서를 썼는데 2통이 디모데에게 쓴것입니다.
디모데는 자기가 그런거 쓰지않고, 디모데전서를 남겼습니다.
디모데전후서 남기고.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쓰면서
서두마다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라고 쓴것 기억나시죠?
형제나 아들이란 표현을 계속 써줍니다.
디모데에게 나이차이가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구요.
실제적으로 디모데는 전도여행때마다 디모데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마지막 감옥에서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야 외투와 성경을 가져오라' 라고 말하며 그때에는
언제나 바울 주변에서 끝까지 도왔고, 사역을 같이했습니다.
그러니 디모데를 만나것이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지방 전도
모든사역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맞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러니까 이 모든 것중에 사람 한사람을 찾아내는것이 시작이요 마지막입니다.
디모데는 진실과 거짓없는 청결의 양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써줍니다.
모든 것 중 사람 그 한사람 찾아낸것 사역의 시작과 마지막입니다.
거짓없는 믿음이 성령의 동역자가 된것입니다.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지방 2차 전도 여행중에서 가장 선한것은 디모데를 만난것입니다.
중요한 만남입니다.
교회가 망하는것은 한사람의 수행원이 없어서입니다.
모두가 바나바가 있으면 전부다 구원의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절 - 이에는 이런 결과로 15:40절부터 쭉 다니면서 비롯 되는 결과를 다녔습니다.
여러성으로 다니며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녔다. '쉴새없이 여러 성을 다녀가니'
이것이 미완료이기 때문에 아주 쉴새없이 여러성을 다녀가니까
4절에 여러성을 다녀가니까, 5절에 여러교회들이 굳건해 졌다고 합니다.
여러성을 쉴새 없이 다니니까 여러성은 교회가 아니잖아요.
여러성을 다니니까 교회가 굳건해 진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만 있어서 교회가 굳건해 진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니까 교회가 굳건해지는 거예요.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건강하지 못하고. 죽은교회입니다. 일월론입니다.
전도를 잘할려면 교회가 정한 규례들을 준수 해야 합니다.
우리도 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는데 비결이 '날마다'잖아요.
날마다 말씀을 한절한절 날마다 적용하니까 믿음이 굳건해질수밖에 없고 굳어지니까 수가 날마다 더할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간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제자화가 되어야 하고 공동체에 성장이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들교회는 성장이 어려운 교회에서 날마다 큐티하고 적용하니 공동체의 성장을 하는것입니다.
성장은 규례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규례와 원칙을 잘지키는것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전국에서 우리가 본질을 붙잡고 있으니 우리들교회가 성장을 하려고 애쓴적이 없는데.
날마다 큐티를 하고 적용 하니까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성장을 보여 주십니다.
적용
가정과 일터에서 구원을 위해 양보해야 할 비본질적은 일은무엇입니까?
날마다 빼놓지 않고 반드시 하는일을 무엇입니까?
그중에 말씀 묵상은 몇 번째 입니까?
우리 모두 동역자 이기 때문에,, 지난주 목자님의 나눔 이었어요,
우리들교회에 온지 5년이 되었는데 내 열심과 의로 예배를 드리니 권태기가
와서 딸에 이어 아들까지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자녀 고난을 겪으며 나와 맞지 않는 교회구나 라고 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고난이 없어서 이일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려는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기도를 좋아하는데 우리들교회는 말씀만 강조합니다.
이런 이원론은 안들린다는 뜻이예요. 말씀만 보면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갈등이 생기고.
기도내용중 가능성 없지만 내년에 목자의 사명이 되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설교내용이 나와 맞는 목사님을 찾았고 그 교회로 나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첫주에 목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교회 규칙을 깰수가 없어서 두주만 인도했지만 기쁨이 없고,
생색만 가득차서. 시골에 계신 노부모 찾아뵈어야 하는데 목장 목자모임 주일날 참석해야 하는데, 갈등만 충만했습니다.
결국 교회를 옮길 이유가 교회를 스리 살짝 드리겠다는것이 아니겠어요,
왜 주일날에 부모님을 찾아뵐까요,
그런데 고민 끝에 목자를 내려놓고 다른 교회로 가겠다 하고 목자 모임 안나갔어요.
야고보는 변론을 통해 모든 의견을 끝으로
한마음으로 결정하였는데 나의 중심인 저는 공동체와 한마음이 못되었습니다.
이전 사건을 통해서 모든 부분을 회개하며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성령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목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동역자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평원지기님께서 처방을 했어요.아니 담임 목사님이 이곳에 꼭 남으라고 말씀을 안하셨어요.
모든 양육받고, 다른곳으로 갈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도 성령의 은사를 받고 흩어짐의 은사가 있다고 하시니,
언제일지는 몰라도 꼭 그때까지 붙어서 가시길 바래요. 오늘 말씀으로 줄줄 꿰는 은혜로 놀라와요.
성령충만이 갈등충만이라고 하지니, 자녀고난에, 목장까지 지고가시야 하니,
넘어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러나 오늘 견고케 하신다고 하시니 하나님께서 이겨낼 힘도 주실줄 믿습니다.
걱정 마시고 한걸음 한걸음 나가시면 좋겠어요. 저는 대단한 사람들이 다른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성령의 동역이고 우리들가운데 일어나는 세워짐인것 같습니다.
성령의 동역자는 한 목원이 회사에 화재가 났는데 직원보다 목장식구들이 먼저 왔습니다.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올해 저는 성령의 동역자가 된 청년부 엘더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부가 2500명 되는데 사역자가 7명이 있어서 감당 못하잖아요.
7부서 나누어서 남녀 마을님들을 각부서에 40여명이 청년 주일학교교사로
부르심을 받아서 양육과 상담에 투입이 되었는데 지금 한달 밖에 안됐는데.
놀랄만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우리들교회 마을님 목자님들 약재료가 많잖아요.
아이들한테 공감을 하는 청년부 대단합니다.
이야말로 성령의 동역자가 아닌가 싶은데 그동안에 혹시 그래도 청년들이 늘 간증하고 받아들이고 여기서 별 이야기
이혼이야기 해고 청년부들이 17년 동안 이 많은 청년부들이 이혼도 하나도 안하고 기적입니다.
말씀 때문입니다. 아니 왜 문제가 없겠어요.. 우울증에 별것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이 말씀 때문에 가니까 바울의 결정 하니까 목장에서 구원 때문에 이혼 아니다
구원때문에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 계속해서 해서 우리는 이혼을 한번도 안했다는것,
이것이 성령의 동역을 서로 다같이 해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청년부 엘더 일곱부서 나누어 져서 사역자 한분 옆에서 전도사님 한분 했어도 2500명 되는
청년부 케어 하기 힘들어서 남녀 마을님 목자님들 해서 각각 3명씩 6명이 한부서에
그래서 40여명의 엘더님들이 청년주일학교 교사 처럼 양육과 상담에 투입이 되셨는데
놀랄만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우리 마을님들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각자 양육을 하고 받고 해보시고하니 목자를 넘어서 마을님이 되셔서 청년들에게는 오아시스입니다.
이때 우리 청년들이 열심히 양육 받으시고, 상담 받으시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청년부보면 우리 이혼도 없고, 아이도 잘 낳고, 결혼도 잘하고 했는데,
코로나로 이내 전국적으로 목장을 못하다 보니 흘러 떠내려 갈듯하여 특단의 조취를 취한것입니다.
모든 엘더님이 성령의 동역자가 되어서 돕기를 하도록 도움 받기를 상담 청해주시면 다르게 상담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동역자는 수행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여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되어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큐페온 부흥회 처음하는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것 학원 가라고 하는것, 하지 말라고 하시면 미스 하시는것 입니다.
잘 들으시고 부르심에 순종하여서 아프리카 선교 가는것이 아니고 규례를 지켜야 한다.
각자 아내의 규례, 남편의규례, 사원의규례, 사장의 규례 이것을 잘 지키고,
가정이 든든해지면 교회가 든든해지고나라가 든든 해지는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데모 안해도 너무 든든하게 자기 자리를 잘 알고 가는것입니다.
주님과 나와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될것 같습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기도제목 드립니다.
어디서나 주님의 수행원이 되게 해달라고 제자가 되어서 가르침을 잘 받고 잘 살게 해달라고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칭찬받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부르심에 순종하여서 가장 중요한 규례를 잘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규례를 잘 지키면 아프리카 선교는 저절로 가게 되있습니다.
우리 청년부가 그렇게 했어도, 동역이 필요해도, 엘더분들 많이 세워주십니다.
기름 부우시고 청소년 청년 큐페온에 기름을 부어서 말씀이 들리게 해달라고기도합시다.
태아 생명법 재정안과, 차별 금지법 통과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주님 성령의 동역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오늘 이제 바나바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지만은 참으로
그에게는 사도가 너무나 당연한 직임 이었듯이 참안당해보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부교역자 생활 안해보았기에 제가 얼마나 모르는게 많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생각하여서 주님의 수행원이 되지 못한것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한다고 하면서그러므로 무지한것 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 이러한 날마다 제가 성령의 동역자로 되기 원하지만
오늘도 말씀으로 쳐서 가르쳐 주십니다.
이만큼 회개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성을 다니면서 쉴새없이 다녀야 하는 열심까지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주님 그 많은 바나바와 헤어짐 속에 디모데 그 한사람을 골라냈습니다.
주님 이 한사람 없어서 교회가 망하고 그 한사람 때문에 살아나는 것을 알려주시니감사합니다.
그 한사람 찾기 위해서, 그 한사람이 되기 위해서 서로가 성령의 동역자 되어 서로 도와주는 가운데
사람 세우는 영혼 구원의 일에 매진하는 2021년도가 될수 있도록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청소년 청년 큐페온 기름 부어주시고, 다음세대를 살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프리카 선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규례와 원칙을 잘 지키고, 차별 금지법이 통과 되지 않고, 태아 생명 보호법이 재정 될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장 기도제목]
윤지혜
- 큐페온 은혜부어주시고 나눔과 모든과정함께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지혜주시기를
- 과제와 수업 힘든데 하루하루 성실하게공부할 수 있도록
- 안믿는 친구,가족들에게 삶으로 변론할 수있도록 구원의 선택하기를
- 성령의 동역자가 되기위해 내 자리 잘지키고 내가 먼저 수행원이 될 수 있도록
김다혜
- 가족구원
- 결혼예배를 통해 복음이 들려지기를
- 일터에서 마음이 잘 지킬 수 있도록
- 나의 애씀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 체력 증진할 수 있도록
이은실
- 회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순종하며갈수 있도록
- 아픈마음보면서 상담 받으며 치유받으며갈수 있도록
김자영
- 새로운 업무 잘 할 수 있도록
김성은
- 이번 한주도 직장과 집에서 대접받으려고하지 않고 성령의 수행원이 되어서 대접하는사람이 되도록
- 그 한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령의 동역자되어 서로 도와주는 가운데 사람을 세우고날마다 영혼 구원의 일에 매진하는
2021년도가 될수 있도록
-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하는 볼수있는 눈과들을수있는 귀, 말할수 있는입을허락해주시길
- 다른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상급 되기를..
- 아버지의 영혼구원, 손과 발이 가는 적용하도록
-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 체력주세요.
*공통기도제목
신교제 신결혼 준비되어지고인도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