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4 성령의 의견
사도행전 15:19-21
구원이 중요하니까 의논을 하고 찾아가는 돌보심을 통해서 심방을 하고 또 받을 때 얼마나 각자의 믿음대로 의견이 많겠습니까? 모두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또 말하지 않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 많은 의견들 중에 성령의 의견을 도출해내는 목장과 가정과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일년 그런 성령의 의견이 계속 도출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의 의견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해요.
1.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절)
여기서 그러므로는 무슨 내용이죠? 지난주에 들은 것처럼 또 그 전부터 유대인과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를 듣고 야고보가 말씀으로 정리를 했자나요. 이방인도 오직 성령의 선물로 구원받는다는 그 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한다는 것이죠. 그로므로 내 의견에는 하고 나오는 거죠. 그러므로 전에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들었어요.
안디옥 교회의 문제는 교리 문제였자나요. 예수를 믿어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사실이었어요. 교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나의 견해이자 내가 선택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면에서 약간 다를 수가 있는 거예요.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가 약간 관점들이 다르고, 초신자, 성숙자가 다르고, 나의 믿음의 시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죠. 그래서 사도들은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궁극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성령의 사람은 듣는 은사가 있습니다. 의장이 처음부터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주장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다리며 들을 수 있는 말들을 다 이렇게 들은 게 성령의 의논을 한 것이죠. 뭘 알아야 성령의 의논을 하자나요. 그런데 단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고 해서 성령의 의논은 아니에요. 판단의 기준이 문자 그대로 야고보의 내 의견이 되면 안 되죠. 그 교리가 결코 진리에 가까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와 바울의 놀라운 선교 보고도, 베드로의 진심 어린 간증도, 야고보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가졌던 생각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이 회의의 의장이라는 역할도 야고보의 의견을 성령의 의견이 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그가 그 순간 기억한 아모스 9장 11-12절이라는 구체적인 말씀에 의거해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한낱 사건이 아니라 성령의 의견이 되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야고보가 내 의견에는 그랬지만 원어를 보면 의장으로써 나는 이렇게 판결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는 모두의 입장을 들어보고 야고보는 이 회의의 의장으로써 말씀에 근거하여 최종의견을 개진하겠다 이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인내와 말씀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적용] 여러분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지식이나 정보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유튜브입니까? 그러므로 하며 모두의 말을 잘 듣고 말씀대로 분별하는 것입니까?
목장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러므로인 거예요.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마다 그러므로하고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들으셔야 되는 거예요. 이 말, 저 말 할 때마다 그러므로하고. 야고보는 이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잘 들었으니까 목장에서는 이렇게 말을 잘 들어줘야 하는 거예요.
야고보는 양쪽의 의견을 다 듣고 양쪽을 아우르는 메시지를 내놓습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유대인에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거고, 이방인에게는 구원 받았으면 그리스도인으로써 잘 살아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 얘기인 거예요. 물론 우리는 두가지 다 들어야 되는 것이죠.
2.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거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달려간 유대인들이나 예루살렘에서 바울의 보고를 듣고 벌떡 일어난 유대인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이방인들도 구원 얻으려면 율법적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할례도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 받는다는 그 고정관념이 뿌리 깊이 유대인에게 있었죠. 말하자면 율법 제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방인 입장에서는 할례와 율법에 대한 이런 요구가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괴롭게 말라고 그랬는데 이 괴롭게가 뭔가 하면 곁에서 성가시게 하고 대항하여 괴롭히다는 이런 문자적 의미를 지니는 파레노클레노의 현재 부정사예요. 헬라어에서 이런 현재 부정사는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괴롭힌다는 뜻인데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가까이에서 이렇게 습관적으로 괴롭혀 왔는데 이제 이걸 좀 그만두라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베드로는 율법준수와 할례를 요구하는 것을 멍에를 지우는 일로 봤는데, 야고보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걸로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 신자들을 율법 준수하고 상관없이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자신들과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괴롭혔으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혔다고 야고보가 알아준 거자나요.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인데 유대인이자나요. 그런데 그걸 알아줬어요.
각자 처한 죄와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정말 한줄기 빛처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너무 좋아서 교회에 나갔는데 할례 받으라고, 막 음식, 의복, 시간 등 모든 생활 양식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하니까 이방인들이 이거 뭐지? 숨이 막혔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모세의 율법 특히 할례가 너무 부담이 됐는데, 유대인들은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니까 자기네들은 지나서 그거 모르자나요. 그러니까 할례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이 안되요. 그런데 나이 많은 어른들 보고 할례를 받으라고 하면 그때 무슨 마취가 제대로 됐고 칼은 또 식칼 같은 거를 들고 할례를 행하라고 그러니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어요. 그런데 그걸 받아야만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계속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혔다는 거예요. 너 그거 안 받으면 구원 못 받아. 그러니까 이방인들도 복 받고 천국 가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유대인들하고 이방인들하고 교회에서 한 지체가 되지를 못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저마다 율법같이 신봉하는 이런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그 성품, 능력, 자격, 돈, 관계에 대해서 각자 자신이 세운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어요. 그래서 창업자들은 정말 예수 못 믿는다는 거예요. 자기의 옳음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하면 사람으로 여기지를 않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되라고 지체로 불러 주셨는데 예수 믿는 믿음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여전히 복음 위에다 두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옳은 기준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보다 높이 올리는 순간에 남을 죽이는 무기가 되자나요. 맨날 교회를 나가도 하나님의 은혜보다 위에 있으니까. 그게 은혜보다 위에 있는 건 아무리 좋은 율법이라고 그래도 복음 위에 놓으면 부부간에, 공동체에 하나됨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옳다고, 내가 답이다 이건 장벽이, 장애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고 처음 왔는데 방언에, 헌금에, 금식에 이런 규례만 가르치고 봉사만 강요하면, 하나님을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꾸 율법을 강요하자나요. 방언이 율법이 되는 거죠. 금식이 율법이 되는 거죠. 헌금이 율법이 되는 거죠. 그러면 그거 지속적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게 되는 거예요. 율법 제일주의에 갇혀가지고.
제가 어려서는 교회가 복음 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윤리적, 도덕적 설교가 주를 이루었죠. 우리나라가 유교국가이기 때문에 또 그게 먹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가면 날마다 이런 거 가르치죠. 주일에 밥 사 먹지 마라, 차 타지 마라, 공부하지 마라., 주일에 교회만 가면 공부 1등 한다. 뭐 이런 거. 성경 100독 해라, 새벽 기도 가라 맨날 이런 거 있자나요. 그래서 그런 거를 하다 보니까 다 인과응보의 예수님처럼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말씀이 없던 시기고 가난했기 때문에 사회나 교회나 다 잘 살아보세가 주제인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우리들을 품에 품으시고 하나님은 그 기도도 응답하셔서, 우리가 이방인처럼 어리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CCC라든가 거기에서 이런 구원에 대해서 가르치니까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가게 됐습니다. 요즘에는 성화의 시기가 맞는 거 같아요. 교회 갔는데 구원 받았냐? 뭐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는데, 구원파에서 맨날 구원 이러니까 구원파가 또 이단인데 난리를 쳤자나요. 구원에 대해서는 잘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상이 없는 거죠. 이걸 잘 알아야 되는데 그러나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적으로 매여 있다 보니까 그게 어려서는 말을 잘 들었자나요. 그런데 이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중2병이 생겨가지고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들이 많아졌어요. 어렸을 때 다 말 잘 듣다가 헐크가 됐어요. 건드리지마 이렇게 된 거예요.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는 모두가 통했는데 이 시대는 율법으로 괴롭히는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요즘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자꾸 기피대상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그런데 들을 때는 이렇게 하면 복 받는다고 하니까 윤리적 설교가 구원 받지 않아도 듣기 쉽자나요. 윤리적 설교를 듣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윤리를 안 지키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교회에서도. 복음이 정확해야 처음에 힘들어도 건강해지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 듣다가 들으려면 너무 힘들어요. 본문의 유대인들이 너무 율법주의인데 복음을 지금 못 드러내자나요. 똑같습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어서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구속사적으로 자기 죄를 보라고 그렇게 말씀을 보라고 하면서 여러분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죠. 그런데 괴롭히는 이유가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 삶이 따라주면 여러분이 감동이 되어서 괴롭힘이 안될 텐데 제가 삶이 안 따라주고 입으로만 그러니까 괴롭히는 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도 떠나고 그러시자나요. 그럼 여러분들 기다려야 하는 게 맞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기다릴 때가 아니고 말씀 보셔야 된다고 이렇게 하면서 괴롭히고 있어요. 물론 예수님의 식구들은 예수님의 생전에는 아무도 안 돌아왔어요. 그럼 여러분들 또 똑똑하니까 여러분은 어찌하여 예수님은 식구들 눈높이도 못 맞추고 그러실 수가 있나 또 이제 그러시는 거예요. 예수님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니까. 그걸 또 평등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은 흠이 없으시자나요. 그러니까 흠이 없으신 예수님하고 우리 하고 감히 비교할 수 없으니까, 여러분들 우리는 수준이 안 높으니까 다 이제 살아생전에 돌아올 거예요. 우리는 끝까지 눈높이를 맞춰서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돼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 설교가 처음 온 신자들은 용어부터 어려운 게 많아요. 그래서 이걸 목장에서 해석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게 또 복된 소식, 굿 뉴스, 기쁜 소식이자나요. 복음은. 그래서 처음부터 택자들은 와서 들려요. 학벌과 상관없이 또 들려요. 여러분들 우리들 교회 세례 받는 분들 많은 거 보면 들리는 분들 많은 거예요. 아주 생자들도 와서 들리니까 세례를 받는 거예요. 누가 강요합니까? 다 본인들이 세례 받자나요. 그런데 막 오자마자 우리들 교회는 녹취를 해야 되요. 목장 보고서 써야 돼요. 그리고 밥을 해야 돼요. 그러면 자기집 밥도 안 해먹고 사는데 밥을 하라고 하니까 딱 장벽이 되는 거자나요. 그러니까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사람을 괴롭히는 꼴이 되는 거예요. 어디서 괴롭힘을 당할지 모르는 거야. 처음에는 조용히 놔두셔야 돼요. 처음에 오시면 본인 하고싶은 대로 놔두셔야 돼요.
유대인으로 이렇게 먼저 믿었으면 내가 예수 믿고 너무 기뻐해야 되는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자기 건강도 아주 치명적이에요. 그래서 백세 건강 비결에서 김형석 교수님은 최선의 건강은 최고의 수양으로 빚어진 인격의 산물이 최선의 건강이래요. 그 주치의 원장님이 그분의 건강 비결로 꼽을 수 있는 습관이 심호흡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그러므로가 심호흡이에요. 목장에서 너무 애꿎은 소리하고 그러면 그때마다 그러므로 이러세요. 다른 건 생각 안나도 이것만 생각나시면 돼요. 심호흡과 기도와 규칙적인 생활, 수영, 일을 사랑하는 자세, 긍정적 사고, 사색, 고른 식사, 선한 목표, 성실한 봉사 정신 이런 요소를 다 살펴보다가 원장님이 이거를 아우르는 한 단어가 있는데 이거는 그분이 보기에 참 사랑이라고. 사랑하면 이런 게 다 되는 거예요. 예수님 사랑하면 규칙적이 돼요. 예수님 사랑하면 밥도 나쁜 거 안 먹어요. 예수님 사랑하면 이타적인 사랑이, 내 자신을 사랑하는 거 같아도 주님을 사랑해야지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들고 싶어서 성전이니까 몸에다 나쁜 거 안 넣어요. 그래서 정말 참 사랑 맞습니다. 김교수님은 정서관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고 했는데 기도하면 선한 의지가 들어가니까 희망을 품게 되고 해마와 전 전두엽에 자극을 주어서 뇌의 기능을 활성화하니까 치매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거예요. 제일 큰 거는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자 제가 이거를 읽으면서 작은 도움, 우리들 교회 목장은 작은 도움이 아니고 얼마나 큰 도움인지 몰라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쩌다가도 아니고 매 주일 만나서 만져주고 들어주고, 듣는 건 성령의 사람인데 그러니 작은 도움도 아니고 큰 도움을 여러분들을 늘 주고 계시기 때문에 100세는 다 넘길 거 같아요.
[적용] 유대인처럼 원칙주의자인가요? 하나님의 은혜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옳고 그름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20절)
믿었으니까 구원받았으니까 성화로 나가야 된다 이런 뜻이에요.
유대인의 성경, 율법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 중에 딱 4가지 사항만을 의무 조항으로 지키도록 제안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방인들한테 성경 읽으라, 아니 그냥 있자나요 목장에 나와서 밥만 드시면 돼요., 주일 예배 가고, 수요 예배, 목장 예배. 그리고 목장에 와서 밥을 드시면 돼요. 요거 4가지만 알려주면 돼요. 성경 읽어라., 큐티 해야 돼. 이 얘기는 나중에 오신 다음에. 아셨어요? 목장에 와서 맛있는 밥을 드시면 돼요. 그 얘기만 해 주시면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유대인들이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아주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거예요. 우상의 제물 먹는 거,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는 것. 유대인들이 너무 너무 싫으니까 이방인들이 적어도 눈 앞에서 볼 때 이걸 삼가라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건데, 그런데 이방인들도 예수 믿기 전에는 모두 자신의 우상을 가지고 섬기고 죄책감 없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하고 그랬자나요. 그런데 이제 손 없는 날 이사 가고, 결혼, 입학 시험 볼 때 점 보고 이런 거 이제 그 문화를 다 멀리 하라는 거예요. 이건 물론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유대인과 이방인,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잘 교제를 하기 위해서 서로 너무 문화가 있으니까 눈살 찌푸릴 일은 하지 말라 그 얘기입니다. 그래서 가장 최소한으로 조건을 부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조건은 가장 큰 자유를 영적으로는 얻게 되어있는 건데요. 그러니까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요구했다는 것을 지금은 모르나 나중에는 알아요.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음행으로 이어지고 그 다음에 생명 경시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 최소한의 순종 같지만 무한대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4절을 보면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발람이 민수기부터 나오는 얘긴데 계시록까지 지금 이 얘기가 관통을 하고 있자나요. 우상의 제물을 먹다가 행음을 했다자나요. 그러니까 어디나 이렇게 똑같은 진리를 얘기하고 있는데 지금 이 얘기는 우상은 제물이라도 먹으면 그게 전염이 된다는 거예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런 뜻이 있는데 계시록 일곱 교회 중에서 버가모 교회에게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 그러니까 굉장히 약간의 일들이라는 거예요. A few things.
그러면 그 두어 가지 책망할 일들이 뭔가, 그 작은 발람의 교훈이 뭔가? 그건 요한계시록 2장 15절에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라는 건데 거기서 주님의 충성된 종 안디바가 버가모에서 순교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 순교의 그거가 가시기도 전에 이렇게 적은 일에서 시작해서 믿음을 버리는 일로 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니골라당의 교훈이 뭔가 하면 영혼은 귀한데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마음껏 행음을 해도 된다는 거예요. 혹하죠? 딴 사람들이 다 혹하는 거, 예수 믿어도 이렇게 내가 마음대로 육체적으로 행음하고 살아도 된다고 하니까 부추긴 거죠. 그런데 이게 발람의 교훈이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이게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데, 발람은 히브리인이 아니면서 선지자예요. 대단한 사람인 거죠. 그래서 모압왕한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사주를 받았어요. 그런데 가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축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모압왕한테 돈은 받았죠. 또 축복은 하고 있죠. 자기는 잘 살고 있죠. 그러니까 돈 값을 해야 되자나요. 꾀를 생각해내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지금 너무 힘든데 모압 여자들을, 화려한 여자들을 춤을 추게 하고 다 초청을 한 거예요. 거기 이스라엘 남자들이 넋이 나가가지고 전부 다 바알 숭배에 빠져가지고 드디어 그 행음이 염병이 되어 2만 4천명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방인들에게 우상, 행음 이 모든 것들이 이어지는 건데 유대인들도 이런 죄를 짓다가 그렇게 망할 수 있다 이 얘기를 준 거고, 2만 4천명이 죽었으니까 지금 이 꾀가 얼마나 대단한지 발람은 손 하나 안대고 코를 풀었자나요. 이게 참 무서운 거예요. 지도자의 타락이 국민을 망하게 한 거죠. 지도자가 올무를 놓아서 안 할 수 없게 교묘히 유혹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올무를 놓는 것도 따라가는 것도 다 모두 악이에요. 가나안을 갈 때 가장 위험한 때가 바로 이 발람의 유혹인데 이 발람을 보면 기가 막혀요. 우선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도 예언도 탁월하고 큐티도 잘 하고 그때 그때 포기하는 것도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말도 잘하고, 어떤 말을 하면 좋아할지 또 어떻게 하면 사람이 좋아할지 어떻게 회개를 하면 은혜스러울지. 아니 오죽하면 모압왕이 초청을 했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하는데 한가지 못하는 게 있는데 돈을 좋아하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큐티 잘 해서 남았는데 뒤로 밑져서 구원을 못 받았죠. 그래서 이 사람은 삯꾼인거죠. 한 번의 유혹에 맨 처음에 거절했자요. 발림이 저주하라니까. 그때는 믿음이 좋아서 다 속지만 집요하게 와서 돈으로 유혹할 때 대부분 넘어가죠. 그 유혹이 얼마나 센 것인가 하면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 발람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그걸 읽으면 도리어 발람이 훌륭하게 보일만큼 속아요. 돈의 유혹이 그렇게 우리에게 갖은 교묘함을 통해서 아주 집요하게 옵니다. 그래서 결국 세 장을 갈등을 했어도 25장에 음행 한 장으로 이어졌어요. 결국 음행은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돈 가지고 짓는 죄입니다. 보세요. 돈 생기면 음행으로 가자나요. 너무도 훌륭한 사람이 교묘하게 넘어지게 하는 게 바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으로 가는 거다. 그런데 나는 괜찮아 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 다 가 빠졌다는 거예요. 발람의 그 유혹에. 그러니까 유대인들도 넘어졌던 우상 숭배의 죄와 음행의 죄를 답습하지 말라고,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처음부터 조심하라고. 그러니까 4가지이지만 이게 굉장히 본질적인 죄라는 거죠. 이걸 구속사라고 해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지만 우리 세상 사람들의 죄라는 거죠.
그 다음에 나온 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같은 개념이에요.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 하라는 것은 피가 빠지지 않은 고기를 피 째 먹지 말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엄격히 지켜오던 규례였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짐승을 잡을 때마다 그 피를 가지고 대속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인간이 악에 물들어 있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너무 잘 잊어버리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가 없으면 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먹어도 마셔도 쾌락과 자기 만족을 위해서 다 먹고 마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인 거예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도 가치관이 변하지 않아요. 예를 들게요. 누가 나를 위해서 죽었대요. 그런데 내가 절박하지 않으면 내가 눈도 깜짝 안 한다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왜 죽어?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예수의 피가 나하고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십자가에 달려있고 힘들 때는 누가 나를 위해 죽어 주고, 누가 나를 위해서 뭐라도 주면 그 사람하고 평생 가자나요. 물론 그게 행함으로 가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 피가 내 마음속에 큰 증거 되는 것. 그러니까 딱 생각해 보면 예수의 피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내가 죽으리 만치 힘들어서 지금 십자가에 달려 있는데 누가 나를 위해서 정말 죽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그 기가 막힌 예수 그리스도의 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니까 먹지 말라 이렇게 얘기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이 먹고 뛰고 마시는 게 아니라 감사하고 찬양하고 의지할 대상이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울고 웃고 해요. 그게 근데 억지로 안되는 거죠. 그러니까 동성애나 낙태를 지지하는 바탕에도 이런 무조건적인 자유를 최우선으로 삼는 세속적인 고정관념이 쫙 깔려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이 성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해요. 또 생명을 자기 의사대로 파괴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거예요.
우리처럼 잘 웃고 우는 교인들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울고 있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그 누가 나를 울리고 웃길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이것은 예수의 피 밖에 없어요.
[적용]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은 사슴피도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쯤이야 하고 먹는 우상의 제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최소한의 의무는 무엇이고 최대한의 자유는 무엇입니까?
4.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21절)
유대인들은 음행을 안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모압 등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서도 주문처럼 외우는 거예요. 이거는 너무 본질이기 때문에 낭독을 하게 하셨어요. 그러나 그들이 읽는 성경대로 이방인들은 행함으로 음행을 멀리 하라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입으로만 읊으니까 그들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자나요? 그러나 그들의 낭독도 지금 중요하다고 인정해 주신 거예요. 성령의 의견은 이렇게 양쪽을, 그분이 아직 안 되니까 믿음이. 거기까지 인정해줘야 되는 거예요. 중요한 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각자 자기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으면 된다는 거예요. 우상 숭배를 끊으라고 하면 아 네, 제가 우상 숭배를 하는 죄인이에요. 내 생각과 판단을 우상처럼 저는 모시고 살아요. 이 죄를 끊기 원합니다. 그리고 음행의 죄를 끊게 원합니다. 힘써야 돼요. 음행, 생명 경시 다 마찬가지죠. 전 세계에 널리 세워진 회당에서 매주 율법이 전파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죠. 게다가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거자나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율법을 대체한 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한 거자나요. 유대인들 보고 손가락질 할 것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사랑으로 완성하면 되니까. 그 대신에 그들이 읽는 성경은 또 들으라는 거죠. 그리하여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연약한 그들을 공감하면서 끝까지 설득하여 야고보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이렇게 그러므로 야고보가 돌보고 있습니다. 양쪽의 의견을 계속 조율하면서 잘 들어주고.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도 음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어떤 주일이라고 해도 남녀가 둘이 만나서는 안 되고 같이 자동차를 타도 안 되고 이거는 사역자도 모두가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 교회도 이방인이 많은 지, 아니 유대인 이방인 다 상관이 없어요. 이거는 뭐 직분자건 아니건 다 미혹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걸 맨날 낭독하는 거예요. 돈 거래는 하면 안 되고 꾸거나 꾸어준 자 모두 치리를 한다고 날마다 낭독을 하자나요. 너무 율법적인 거 같지만 그래서 거룩이 많이 지켜졌어요. 그리고 차이점은 뭔가 하면 기본적으로 날마다 목장 가고 예배 드리고 큐티하니까 결국은 이런 것들을 나누면서 공동체에서 해결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보통 문제 생기면 다 교회를 떠나자나요. 그러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거를 날마다 낭독을 해야 돼요. 그러면 처음 들었다고 그래요. 아유 무슨 교회에서 남녀가 내외를 하고 그래요? 이거는 낭독을 해야 돼요. 4가지를 맨날 낭독을 해야 돼요. 차 타지 말고, 둘이 가지 말고 어쩌다 한 번 만났는데 썸씽뤙이 되는 거예요. 어쩌다 한 번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못 가 그러면 관둬야 돼요. 한 사람이 못 가서 그래서 갔다 이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외모가 없기 때문에 그딴 소리도 하지 말아요. 그러니까 이게 중요한 율법의 21절의 낭독인 거예요. 모세의 율법을 형식적인 거, 율법적인 것 같지만 이것 때문에 거룩이 지켜집니다. 그러니 야고보는 의장으로 양쪽에 모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자기 의견을 끝맺습니다. 너무나도 신중하게 듣고 양쪽에 꼭 맞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목장에서 이렇게 서로의 의견을 듣고 타진했으면 싶어요. 믿음에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 분량이 있고 이방인 분량이 있죠. 초신자가 있고 성숙자가 있어요. 조심 조심 두드려 가면서 잘 들어야 하는데 막무가내 목원이 있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목자도 있어요. 제 설교가 듣기 힘들어서 떠나는 분들은 목장에서도 힘들었을 것이에요. 결국 죄의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게 있어요.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의견을 듣자고 하면 인내가 9단이어야 하죠. 그래서 성령의 의견입니다. 야고보는 그런데 이 기가 막힌 상황을 정리하자나요. 여러분 모두 야고보 목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야목자, 야목자 되시길 바라요. 어떤 상황도 정리하는 목자 말입니다. 그러나 정리하지 못해도 여러분이 최선을 다했다면 정죄감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적용] 성경은 나에게 어떤 책입니까? 역사책입니까? 도덕책입니까? 경전입니까?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시나요?
기도제목
현경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말씀 보면서 하루 만 잘 살기
영육의 건강 회복되도록
상담 가는데 상담하는 것들 잘 감당하고 오도록
지화
돌발성 난청 회복, 치료 받고 해석되도록
결혼을 준비 하는데 주님의 인도함 보호 받고 기도하도록
보련
직장 문제로 마음이 불안한데 인생의 보호자, 공급자, 주인 되시는 주님의 인도함 받도록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물질적인 지원과 사명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다인
날마다 공급하시는 말씀으로 하루 잘 살아내도록
회사 관계 속에서 한계가 와서 이력서를 넣었는데 주님만이 나의 서고 가는 길을 인도하여 주시도록
예선
생활 예배 잘 드리기
회사에서 하루만 잘 살기
큐티 기도회 잘 참석하기
은우
잘 되는 것의 우상을 내려 두고 주님과 동행하고 성령 수행원 하도록
재단에서의 자신들의 규율로 시마다 때마다 괴롭힘을 당해서 숨이 막히는데 주님과 동행하여서 이 시간을 잘 보내도록
어려운 때에 늑대 같은 실체가 드러나는데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해서 부활까지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