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성령의 제자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말씀 : 사도행전 13 : 50 ~ 14 : 7
1. 쫓겨나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과 반박 가운데서도 바울 사도는 담대하게 주의 말씀이 전했으며,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도 멀리 퍼집니다. 말씀이 널리 퍼질수록 사탄 또한 역사하게 되는데,
유대교에 개종하여 회당에 나오는 경건한 귀부인들은 이러한 사탄의 선동에 넘어가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 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경건하지 못하고 오직 경건을 겉으로만 표방한 자들이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는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진짜 어려울때에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가지고서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선 그들이 회당에 나오때면 늘 유대인 회당자들이 그들을 우대하고 넘치도록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데 반해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망한다고 경고하니, 구속사 말씀이 들리지 않는 그들에게는 바울과 바나바가 미운 존재로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지지할 세력을 부추겨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자들은 복음의 원수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공동체에서도 나의 불만을 동정하고 지지하는 사람과 선동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렇게 쫓겨나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동쪽 이고나온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 지역을 떠나야 할때도 있고, 떠나는 것이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듣는다면 믿지 않는 식구들의 문화나 가치관에서 떠나 집착을 떨어버리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여야 합니다.
적용) 성령의 제자인 복음을 위해서 떨어벼려야 할 세상 가치관의 돈과 안락함과 친절함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이방인들은 자기 전통에 빠져 시기에 사로잡힌 유대인들과는 달리 두 사도가 쫓겨 났는음에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런 상태는 말씀을 받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된 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시기가 충만한 유대인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겠지만 이미 바울로부터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거듭 권고를 받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려면 많은 환난을 견뎌야 할 것이라는 구속사를 이해했기 때문에 박해 가운데서도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일어나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영광 돌리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 바로 성령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기와 반박과 비방을 당하고 박해가 와도 주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에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적용) 어디에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십니까?
2.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하고 배척을 당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박해 가운데서도 그들의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기에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전파 사역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완악한 동족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구원을 위한 사명에 충성하면 길이 보이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여전한 방식으로 회당에 들어가니 또 다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큰 무리가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생각을 할때 유대인들이 박해를 하는 존재이고 어차피 이방인들만이 믿게 될 것이기에 회당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극장이나 광장에서 사역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하고 자기 과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미움과 자기 의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십니다.
영혼 구원의 열매는 고난가운데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길러놓는 여전한 방식으로 매일 살아갈때 주님이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여전함이며, 이 여전한 방식은 진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분없이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헬라인은 민족적 구분이 아니라 문화적 언어적 구분으로, 따라서 전체 이방인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들도 다시금 그들의 시기와 반박과 비방으로 형제들의 악감을 품게하는 또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유력자까지도 동원했습니다. 불순종의 영으로 누구로 하여금 악한 마음을 품게하는 것은 결국 그 영혼을 망가뜨리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너희들이 믿지 않기에 이방인 선교로 돌아선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기 고향 유대인을 못 버리고 회당에 들어가 먼저 찾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배우게 됩니다. 전도는 그저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할 때 영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전도, 생활전도 입니다. 형제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영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전도는 배척도 핍박도 수없이 반복해서 받고 듣고 해야 하는 것들의 연속입니다. 이를 반복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똑같은 일상의 패턴을 가지고 지루하게 사는것 같아도 여전한 방식으로 충성되게 살아내는 것이 가장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최고의 삶입니다.
적용)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해서 참아야 할 일은 무엇이며, 몇번이나 참았고 몇 년이나 참아 내었습니까?
3. 전도할 때 양육이 필요합니다.
안디옥에서와는 달리 이고니온에서는 오래 있어 말씀을 증거합니다. 하루를 머물러 있어도 충분할 수 있지만 십년, 이십년을 있어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와 비방이 난무하는 이 적대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최적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올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 하려면 양육이 필요했습니다.
이 곳 이고니온에서 이미 허다한 무리가 믿었음데도 그들이 오래 있어 말씀을 증거한 것은 양육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양육은 사도바울 선교의 큰 특징은 보여 줍니다. 교인수가 많다고 하여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파송했던 안디옥교회에서도 바울과 바나바가 1년 동안이나 수고하여 가르치니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안디옥교회는 배움이 있게되니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 구제를 했고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게도 되었습니다. 더 큰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신앙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양육이 없는 전도는 미완성의 전도이며, 오직 양육을 통해서만 전도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 주님이 직접 증언하시는 능력의 말씀이 전해지니 편이 갈려 졌습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사도들과 함께한 주님이 편과 유대인과 함께한 사탄의 편으로 나뉘었습니다. 또 다시 사탄이 자기 백성으로 박해를 하였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양육을 받았습니까?
4. 돌로치면 도망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기와 반박과 비방과 악감에 이어 모욕하며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치려고 합니다. 마침내 사도들에 대한 박해의 시도가 공권력을 동원한 조직적으로까지 진행 되었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이 얼마나 큰 위기감을 느꼈는지를 반증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쫓겨나고, 또 이고니온에서는 스스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도망하였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옥문이 열려도 도망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명을 위해서는 수치를 무릅쓰고 도망가듯 피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그 때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박해에 맞서서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양육합니다. 그러면 응당 박해가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박해가 오면 도망하여 발길이 닿는 그곳에서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를 박해가 새롭게 시작되고, 그러면 또 도망하여 그곳에서 전도를 합니다. 전도와 박해와 배척이 순교하는 그날까지 계속 되는데,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괴로움에 지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외로운 길입니다. 또 슬픈길이기도 하지만 설레임도 있습니다. 쾌락을 쫓아 살면 순간적인 즐거움은 있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끝이고 영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살면 그 끝에는 영생이 있고 이 땅에서도 늘 기쁨이 있습니다.
적용) 영벌의 쾌락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영생의 제자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무엇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기도제목]
허준
1.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말씀을 받아 내죄를 회개하고 표적과 기사의 사명을 담대히 전할수 있도록
2. 똑같은 일상을 똑같이 하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말씀을 적용해 영을 세워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수 있도록
3. 운동꾸준히 할수 있도록
4. 목장이나 유아부 감사함으로 섬길수 있도록
5. 코로나가 종식될수 있도록
6. 유아부 5세반 아이들 코로나 가운데 잘 인내하며 회복할수 있도록
7. 신교제의 용기를 가질수 있도록
남동훈
1. 온순한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2.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3. 구하고 노력하는 일에 해답을 얻기를
4. 동료들과도 협업 잘 할 수 있기를
5. 종합검진 잘 받도록
6. 신교제 하도록
박정준
1. 교만한마음들지않고 항상순종할수있는 마음 가질수있기를
2. 추운날씨 건강잘챙길수있기를
3. 교회 목장 유아부 잘섬길수있기를
이진국
1. 나태해 지지 않고 생활예배 지킬 수 있도록
2. 모든 일의 시작을 기도로 할 수 있도록
3. 주신 QT말씀 가지고 하루를 살도록
4. 대학원 수업 신경 쓸 수 있도록
5. 회사 가오픈 후 자리 잘 잡을 수 있도록
6. 신교제, 신결혼
이인성
1 주어진 시간 귀하게 쓸수 있도록
2 시간 잘 지키기
이광명
1. 분별 잘 하여 중요한 것을 택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