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박해
본문: 행12:1-4
설교: 김양재 목사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악하고 흉흉한 세상에서 박해가 일어나곤 한다. 신앙생활 하며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가? 초기에는 그럴 수 있다.
성도에게 박해는 있는 사건이다.
성령의 박해는
1. 세속 정치의 박해를 받아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힘들 때였다. 성령의 부조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을 도와주러 왔지만, 그 때 본 것은 흉년보다 힘든 박해였다. 헤롯 왕 중 한 명인 아그리파 1세는 선지자를 죽였고,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한 집안이었고 헤롯 왕이라고 하면 박해한 왕들을 의미한다. 로마 황제와 친분이 두터워 로마가 통치하던 시절, 재위 중이던 유대왕의 자리를 찬탈한다. 정통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율법은 잘 지켰다. 같은 맥락으로 지지율을 위해 유대인의 골치거리인 기독교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골치거리인 이유는 예수님을 죽였다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스스로의 교만으로 파멸을 자초한 했지만 기독교의 부흥을 보니 앓던 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헤롯 왕이 이걸 해결해준다고 하니 반가웠을 것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의 숙원이었던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세운 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무너진다. 헤롯 가문의 뒤에는 사탄이 있음을 아는 것이 성령의 박해라고 깨닫는 것이다. (고난과 핍박을)성령의 박해로 받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걸 알고 침착하게 받아내야 한다. 우리도 세상에서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세상 사람들과)서로 다를 게 없다. 믿는 쪽이 십자가 지고 감당하는 것이 맞다.
Q. 어떤 세속 정치의 박해를 받고 있습니까?(헤롯 왕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박해한 것처럼) 부부 회사도 돈도 이해타산, 정치적일 수 있다.
2. 한 줄 순교의 상도 허락하십니다.
과거의 가롯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자살 했을 때는 즉시 빈자리를 매꿨는데, 야고보는 그렇지 않았다. 가롯 유다는 사도였지만, 사명을 다하지 못했고 야고보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했다. 사도직은 항존직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세상에서의 사도의 직책과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이 다했다면 제자의 자리를 인간적인 의미로 채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열심히 살았으니 잘 되는 모델로 나를 써달라고 기도했더니, 마태복음에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신다. 배움이라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 위함이라고 한다. 주님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는가라고 묻는데 베드로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그들은 고난의 세례를 받고, 순교를 했다.
야고보는 첫 번째 순교로,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돌보라는 의미로 순교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보고 아시는 것이다. 섭리로 우리의 삶을 관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열심은 십자가로 정리되어야 한다.
스데반처럼 멋지게 야고보처럼 한 번에 순교하는 것도 천국에서는 다르지 않다. 대단한 것만이 순교가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혈기를 부리지 않는 것도 순교이다. 남편이 산부인과 의사로 낙태를 했다고 회개는 했지만, 남편이 나에게는 잘못했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헤롯 왕이 나에게 칼을 들이민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했다고 했기 때문에 자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 줄로 순교한 것 같이 남편이 순교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교만한 내가 목사가 될 정도의 큰 고난이었는데, 둘 다 천국을 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과를 했으면 하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라는 말인 듯)
죽었다는 이 한 줄로 기록된 야고보의 죽음은 세상의 어떠한 상보다 큰 상이며, 이것이 한 줄 순교의 상이다.
Q. 배우자가(애인이) 관계의 끝이라고 할 때 뭐라고 할 것인가? 예수를 믿기에 기쁘게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3. 불의를 기뻐하는 동족의 박해도 받아냅니다.
헤롯은 국민의 뜻이라 하며 자신의 뜻을 이룬다. 야고보를 죽이자 지지율이 껑충 뛰었는데 그러니 베드로도 잡아 죽이려고 한다. 유월절에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끝나는 시기에 맞추어 죽이고자 베드로를 가둔다.
의를 알고 따르는 것에 자유가 있다. 이것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헤롯과 유대인의 박해를 성령의 박해를 받아내려면 자유를 알아야 한다. 진리를, 진정한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정권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것을 자유라고 매도 한다.
CS루이스는 인간을 설계 하실 때 자유가 가장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유는 하나님 조차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고, 죄를 묻는 것이다. 이에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 의존하는 것 말고는 자유가 없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자유를 우리들만의 해석으로 조지 오웰의 1984의 빅브라더와 같은 사회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자유라는 말이 재멋대로 할 수 있다 등으로 멋대로 해석되곤 한다. 자유의 반대 개념을 억압이라고 말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좋은 목표를 향해서 가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이 분은 억압하지 않고 뭐든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자유를 충동이 지배하는 삶이 아닌, 구원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고 했다.
세상에 자유가 주는 창의성 보다 큰 것은 없는 것 같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며 자유를 위해 애쓴 것이 헤롯 왕이다. 자유를 모르고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을 보며 이를 모르는 것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이 구속사이다. 진정한 자유를 알기에 야고보는 승리자이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보고 박해를 잘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박해를 잘 받아내는 비결일 것이다.(박해를 통해서 더욱 부흥한 것을 의미)
Q. 자유의지로 남을 깎아내리는 것에 기뻐합니까?
기도제목
목원A: 회사에서 기독교가 박해받는 이 시기에 지혜롭게 아이템을 선별해 낼 수 있는 눈과 귀를 허락하시고,
차별금지법 관련 기사 쓸 때 지혜주시길
주6일 일하는 것이 버겁지만 때론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시길
목원B: 코로나로 인해 업무가 많아졌는데 체력 주시기를
신교제
목원C: 눈 다래끼 없어지기를
다이어트 건강하고 지혜롭게 할수 있기를
아르바이트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를
큐티 매일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