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소수> 사도행전 11장 19-22
소수 인권이 온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팔복이 좁은 길인만큼 예수를 믿는 길도 소수의 길입니다. 어떤 소수는 좋은 소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성령의 소수가 될 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의 몇명이 바로 그런 소수 입니다.
1.소수의 여전한 편견이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 때에는 베드로가 성령의 변명을 하고 성령이 내려오신 바로 그 때인 것 처럼 보이기에 그들은 이미 이방인을 전도하는 것에 편견이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예전부터 큐티를 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해서 큐티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큐티하면 나중에라도 답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글이기에 원어를 안다고 마음에 잘 깨달아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나면 도움이 됩니다. 성령을 받고 원어와 영어로 본문을 해석해보니 한글번역이 그 때에는 이제 그러므로 라고 해석되어야 함을 알게됐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일어난 일이 소문으로 퍼져, 이제 그러므로 이방인에게 주저없이 선교하게 된것입니다.
당시 인구 50만명의 대도시였던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에서 유대인은 2만 5천명에서 5만명에 불과했으나 이 사건 이전에 유대인들은 오직 유대인들을 대상으로만 전도했습니다. 이것은 해외 아웃리치를 갔는데 지역 한인들에게만 선교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차별하고 동족애만 따지는 것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는 또 벤야민 지파를 미워하여 없애고자 했던것도 사실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빙자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평생 말도 안되는 차별합니다. 성령은 계속해서 편견의 문제를 다루어 가십니다. 이번주에는 정면을 돌파하는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여러분의 입으로 나누어보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정치이야기 종교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는 일원론입니다. 결코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요즘 열왕기서를 보면 말해줄사람이 예레미야와 에스겔 뿐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조공하고 의지하다가 앗수르에 복속되어 나라를 잃게 됩니다. 남유다의 멸망도 가까워 옵니다. 선지자는 왕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잘 하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과거를 잊고 또 애굽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면서 선지자가 정치에 관여했다고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집니다. 선지서를 보면 끊임없이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족속을 보고 기가 찹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기에 마지막까지도 돌아오라고 끌려가서 말씀을 전하는 에스겔과 남아서 전하는 예레미야 그리고 끌려가서 총리가 되어 돕는 다니엘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눈물겹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이라도 가망이 없는 일은 없습니다.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처럼.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늦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늘 말씀으로 인도받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지만 지금은 훨씬 덜 자유해진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나라가 있으나 자유가 없는 북한을 다른 나라 보듯이 보면 안됩니다. 남녀차별이 심한 대구에서 자란 제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남녀차별과는 비교도 안되는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떄문에, 여자가 역할로서 남자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고, 성경대로 복종해야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여자들이여 차별받으니 남자가 되고 싶으면 성을 바꿔라-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은 성경에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들 교회는 가정중수와 말씀묵상이 핵심가치이기 떄문에 가정과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이 법을 반대합니다. 뉴질랜드는 80프로 이상이 기독교였던 나라지만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난 후기독교인이 20프로로 줄어들며 나라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성목사로서 남성들을 세워주며 집에서도 남편을 세워주고 죽음에 이르는 순종을 하라고 외치며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교회가 인권의 사각지대입니까? 개척후에 수많은 가정이 살아나고 청년이 많은 교회에서 이혼한 부부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30년동안 잘 지키면 어떤가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제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외치지만 하나님은 상상할 수도 없이 이렇게 큰 교회의 리더가 되게하셨습니다. 이시대에 이렇게 이야기를 할 여자 목사가 필요하셨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흩어진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어디가나 소수였지만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이제는 우리들교회까지 뒤덮었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유대인들이 이제 소수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그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고향 백성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엄청난 육적축복을 허락하십니다. 노벨상도 타고 부자도 많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돌아오지 않듯이 우리 옆에도 피해 소수, 엘리트 소수의 편견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는 탐관오리의 부정 부패로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자유가 들어와서 발전을 했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베니게는 지금의 레바논입니다. 레바논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해방이 되었지만 그 나라를 감당할 실력이 없어 나라가 부정부패로 얼룩져 최근 폭발사고까지 났습니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위로 차 방문하자 다시 프랑스가 통치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하루 새에 6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이렇게 될 수 가 있습니다.
적용질문- 내속에 여전한 피해의식, 엘리트 의식으로 인한 꼬인 편견을 또 나누어 보세요.
2.무명의 극소수가 편견을 철폐합니다.
흩어진 자들 중에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도 소수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극소수 몇사람만 이방인에게 주예수를 전파했습니다.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하지 않고 주 예수를 전했다고 합니다.시저가 왕이던 시절에 주예수가 왕이라는 것을 전하는 것은 목숨을 건 전도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한 아주 유명한 교회인데 이곳을 개척하는 영광은 베드로가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직접들은 땅끝까지 전하라는 명령을 베드로는 지키지 않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졌어도 다시 돌아옵니다. 고넬료에게도 가라고 하는 말을 여러번 듣고 갑니다. 무슨말을 해도 우리의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넘으면 사마리아가 있고 사마리아를 넘으면 땅끝이 있지만 베드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의 개척자는 무명의 몇사람으로 기록됩니다. 베드로와 몇사람에 대해서 묵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물론 베드로에게 땅끝은 안디옥이 아니고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제사장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되는 것은 일단 덮어두고 될것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인 베드로는 밖에 나가본 일이 없어서 나가기가 힘이들지만 헬라파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해외파 유대인이 됩니다. 헬라어를 하는 무명의 몇사람과 다르게 베드로는 헬라어를 모르고 배타적인 편견도 하늘을 찌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렇게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안돌아 오는 가족이 땅끝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은 하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신실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며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끝,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습니다. 여자목사가 감히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것이 웃기지 않는가 하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학교수는 로마서에 있는 동성애에 대한 구절을 보고, 바울의 곁에 성소수자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썼겠는가, 이것은 바울이 가진 시대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라느말을했습니다. 바울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왜 없었겠습니까, 너무 많아서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바울이야 말로 목을 내놓고 이야기 하는 소수입니다. 황제도 동성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신학자가 소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것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편견이 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명의 몇사람이 이 무서운 편견을 철폐하고 안디옥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대인과 사도들이 안된다 못간다 그들과는 밥도 안먹는다하며 이방인들은 무시했지만, 무명의 몇사람은 헬라인과 먼저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복음부터 전한것이 아니라 말부터했습니다 친하게 지낸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고향 언어를 십분 이용하여 말부터 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할 때는 고향이 좋습니다. 이런것들이 무서운 편견을 철폐할 수 있습니다. 자기 확신은 문제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은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적용질문-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가정과 회사에서 신앙고백으로 살고있습니까?
3. 주의 손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몇명의 극소수는 태생이 겸손하여서 이름을 올린다고 했을 때 안된다고 손사레를 쳤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올리는것을 왜 반대했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베드로를 제치고 자기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송구하게 여겼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일년동안 가르친 베드로와 성경을 기록한 누가는 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마 거론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모양입니다. 환난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것이 워낙 많아서 그런것이 상관 없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데 자신들같은 무지랭이가 베드로사도를 제치고 어떻게 이름을 올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셔서 주이 손이 함께 하신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가장 큰 상은 하나님 자체입니다. 주의 손이 전하는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상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이름없는 그들이 전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영논리의 끝은 합하여 잘살자-보다는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의 끝은 모두가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역감정은 인간의 편견에서 생겨난 것이고 진영논리는 상대를 이기려고 시작된 것입니다. 실제적인 이방선교는 이들에 의해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시기에 베드로가 죽은 자를 살리고 고넬료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늘같이 추앙을 받는 이 때에, 전세계에 가장 찬란한 교회가 되는 안디옥의 개척을 베드로의 이름으로 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름없는 성도들에게 그 영광을 넘기겼습니다. 모든것을 주의 손이 하셨습니다. 내가 한것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고넬료는 이미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헬라인에 대한 복음을 전하려면 가슴이 막막합니다. 그러나 이 몇몇성도들은 너무나 이 세상을 다 살아보아서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 전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혁명적인 이방인 전도의 사도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이 무명의 성도 몇사람이 안디옥 교회를 개척합니다. 바울은 와서 가르쳤을 뿐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입니다.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 흩어지게 되니 또 있는자리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가 소수였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으나 흩어지면 흩어지는 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17년동안 수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있는자리에서 수치를 오픈하며 성령의 변명을 다 하면서 왔습니다. 몇몇의 극소수가 이 징한 차별을 철폐했다고 하는데, 우리들교회도 늘 간증자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가정마다 주예수가 전파되었습니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수이지만 큐티간증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초병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무명의 성도처럼 주의 손이 함께하시면 성령의 소수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들인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와 회사와 나라가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적용질문-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이 땅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기도제목
이미선
1. 자기 확신을 버리고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갈 때 회피하지 않고 공동체에 묻고 잘 직면해 갈 수 있도록
2. 아빠 엄마와 잘 분리될 수 있도록 미워하지않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길
3. 관계에 있어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이 말씀으로 잘 해석되어 영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도록
4. 신결혼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5. 육적 건강( 위가 재발하지않고 치료되길)
6.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배할 수 있는 참 자유를 회복할 수 있길
7. 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가 정상화되고 낙태법 차별금지법의 악법이 통과되지 않길
한보화
1.나를 불안을 잘 알고 인정하며 나누고 갈 때 말씀으로 인도함받고 점점 평안하게 되길.
2.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만 구할 수 있도록 인정 중독에서 자유함을 주시기를.
3:학업과 사업에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기도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한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도록 체력과 지혜 주시길.
4.목장중보와 가족구원, 목보 말씀정리 잘 쓸 수 있도록.
5.신교제와 신결혼을 준비하는 마음주시길
6.코로나와 비 피해의 재난에서 구해주시고 이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손연정
1. 오빠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관계가 회복되길
2. 어머니 아버지 눈과 귀가 밝아지고 지금 듣는 성경공부들 가운데 은혜충만하시길
3.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말에 귀를 기울이되 분리되고 분별된 삶을 살 수 있게
4. 목장의 기도제목들이 응답될 수 있게
5. 물난리와 코로나로 인한 인재를 위해...
6. 주님이 주신때를 기다리며 정결한 신부가 되길
조민정
1.성령충만,지혜충만, 영혼육의 강건함, 명철함과 분별력 부어주시길 주님과 친밀한 교제 나눌수 있도록
2.가족구원, 가족들 영혼육의 강건함
3.대체교사 남은 기간동안 아이들과 즐겁고 안전하게 보낼수 있도록
4.주님이 계획하신 나의 길을 알고 순종하며 나아갈수 있도록(직장),
좋은 타이밍 놓치지 않도록
5.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날수있도록, 서로 알아볼수있길..
6.코로나19와 폭우가 멈춰지고 피해입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삶이 잘 복구되어 평안해 질 수 있도록
고은희
1. 매일큐티
2. 가족구원과 목장 기도중보
3. 코로나가 종식되고 백신이 빨리 개발될수있길. 낙태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않기를
4. 더이상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기를. 물리적피해가 빨리복구되길. 구원의 사건이 되길
5. 이번주동안 내가 가해자, 변하지않은 편견을 잘 묵상할수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