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9일, '성령의 증언' (행 10:39-48),김양재 담임목사님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허물어야 했다. 선민의식을 버려야 했고, 설득 소개 만남으로 깨달아 드디어 화평의 복음을 증언하게 된 것이 행 10:43까지의 이야기다. 화평은 전쟁 같은 곳에서 죽어지고 가불처럼 낮아지고 마귀의 눌림으로 고쳐져서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화평이다. 그 복음 전한 예수님이 전한 대로 사셔야지 그 복음이 진짜이다.
1.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39-40절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 특히 죽임당하시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사 나타내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한다. 여러분이 죽고 나서 여러분의 모든 행한 일의 증인이라며 증언해준다면 여러분은 어떤 증언을 받을 것 같은가? 그것이 멀지 않다.
지난 주 설교한 초원님 이야기
파출부 하면서도 시골에서 보내주신 곡식 채소등을 자기가 힘들 때 가져다 주셨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된 이야기인데 이렇게 나타내 주실 날이 있다. 그분이 없지만 줄 것만 있는 인생 같다. 그분이 저에게도 재활용품에서 가져다 주신 것이 여러벌이라 제가 입고 있는 것이 있다. 남편이 나무에 매달았지만 사흘만에 살리셔서 시간이 걸렸지만 수넴여인처럼 집도 생기고 초원지기로 높이시고 나타내주셨다 생각한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그들이 나무에 달아죽였다. 신 21:23에 따르면 사람이 범죄하여 처형당했을 경우에 그 시체를 나무에 달아 경계의 표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며 십자가의 표현이 아닌 나무라는 표현을 쓰며 예수님의 죽음이 저주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저주같아도 이 저주같은 삶을 주님이 먼저 살아주셨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우리가 그것보다 더 힘들겠는가.
팔복의 말씀을 성령으로, 성령의 깨닫지 못함으로 깨닫지 못하니 가난하지 않고 온유하지 않고 청결하지 않고 화평이 없다. 그러나 깨달으면 복을 한가지 씩 받아 가며 화평의 복 까지 누리고 마지막에는 팔복을 누리게 된다. 이 8번째 복이 박해, 핍박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박해의 복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다. 그러니 박해가 완전한 복 맞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다르다. 진짜 화평을 누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박해를 받을 수 있다.
본 회퍼는 목사인데도 39살에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해서 사형당한다. 그런데 3주 후에 나치가 무너진다. 그러나 결국 화평케 하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주 안에서 평화와 나무에 달리는 박해는 같은 단어이다. 화평하니 하루가 두려운 박해를 잘 해석하고 하루가 새로운 것 처럼 또 화평이 임한다. 이것이 주님의 신비이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신앙 때문에 온갖 고문 당하며 감옥에서 14년간 있었다. 거기서 성경을 보다 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365번 나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성경에는 화평과 평화라는 단어가 400번이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마다 365번의 두려움이 있어도 화평으로 두려움을 덮어주시는 것을 믿는다.
증인은 순교자와 어원이 같다. 이 원어의 뜻은 수면으로 돌멩이를 던졌을 때 파장이 퍼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인하면서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면 내 증언 한마디가 저절로 일파만파 퍼져서 증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아무나 말한다고 성령의 증언이 되는것이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지체들이 이방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비유나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직 처음부터 예수만을 증언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 부터 시작했다. 자기가 앉은뱅이 고치고 기적을 베푼 것 자랑하지 않았다.
항상 내 인생 통해 나무에 달린 것, 부족 수치 죄악부터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이다. 그래서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셨는데 마음대로 환경을 짜집기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목장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니 예수님의 증인의 증언으로 써 주시는 것이지, 자신을 감추거나 과장하려고 하거나 포장하려 하면 쓰실 수 없다.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이다.
39절에 예수님이 죽임 당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이 하늘의 이야기라 하는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것을 나에게 적응하라고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증언이다. 그러니 성경이 나와 상관이 있어야 한다. 성경이야기만 한다고 성경만 가지고 설교한다 하면 안된다. 그래서 죽임당하는 이야기와 솔직한 나눔이 매 주일 퍼진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목자님 나눔
화를 낼 것 같지 초원님이 아내와 싸운 나눔
이렇게 치열하게 싸운다. 그래도 이렇게 싸우다 보니 초원지기까지 되셨다. 이분이 새가족의 이혼을 막으려고 법원에 동행했다고 한다.
성령의 증언을 하려면 하늘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날마다 죽어라 그 나라의 언어인 성경을 읽히니 소통이 되어 결국 목회가 쉬워졌다. 땅의 언어로 잘 풀어주니 교회가 자기 이야기로 들리니 신기하게 부흥이 되었다.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주신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다시 살리사 나타내셨다고 하는, 높이신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빌 5:6-11
내가 죽어지면 그 후에는 이런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제가 그렇다. 집순이가 목사가 되어 여러분을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학력없고 파출부 십년간 되어도 초원지기가 되고 설교하는 것이 영광스러워 보이는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에게 나타날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신다.
적용) 여러분 옆에는 성령의 증인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증언을 해줄 것 같은가? 여러분은 주로 하늘의 언어를 쓰는가 땅의 언어를 씁니까?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서 씁니까? 근본적으로 두려움이 많습니까? 화평이 좀 더 많습니까?
2.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41절
어찌 주님이 나를 택하셨나 생각하면 답이 없다. 할말이 없다.
천종원 판사 이야기 - 중학교때 친구와 똑같이 가난했는데 친구는 조직폭력배이고, 자기는 왠 은혜로 공부해서 판사되었나 싶다.
예수 믿는 것이 어렵지만 전 믿었다. 왠 은혜이겠는가? 주님의 은혜이다. 특별한 은총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 믿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10대국에 들어가며 점점 믿는 것이 어려워지고 믿게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주님을 전하려 해도 다들 배척한다.
우리들 교회도 우리끼리는 너무 좋지만 친척들 만나면 안 통하고 안타까운 분들이 많다. 저도 30년 넘게 쉼없이 전하려고 했다. 애통이 넘쳤다. 어떻게 그랬을까? 저는 제 생명 대신 남편을 데려갔기에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그래도 역부족이다. 다음세대가 이 일을 해야 한다. 애통하면서 기도해야 할 줄 믿는다.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있다.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베드로는 실제적이라고 하면서도 병 고치고 옥문에서 끌어내주셨다고 한다.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하며 주님께서 나타내주셔서 제자들이 음식 먹어주셨다고 하는 것을 첫번째로 전한다. 이것을 부활의 증표로 실제적이라고 전하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병 고치는 이야기 보다 같이 음식 먹으면서 주님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이야기를 하려면 나 같은 자에게 나타나주셨다고 감격하며 증언한다. 나 같은 죄인이 목장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많다. 그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수 없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목장이 재미없는 이유는 그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붙어있으면 수지 맞는다. 성령의 은혜로 주님이 오셔야 한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과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증인의 자격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구역 목장 모임 주님 이야기로 꽃을 피운 일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어 보인다. 공동체에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 식구들 이야기 처절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슬픈 일도 기쁜 일로 변한다. 이것이 신비이다.
딸로 인해 나무에 매달려있는 초원님의 이야기 ampndash 딸이 남자 셋과 놀러갔다온 이야기
아무리 내가 화평하려고 애써도 그건 내 마음대로 안된다. 이 일은 택한 사람들에게만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안들리는 사람들은 예배도 잘 안들어온다. 그래서 주일 노는 날로 생각해서 여러 일로 보내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장예배 드리면 보여지는 것이 있으니 그렇게 못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할 만큼 주일 성수를 중요하게 가르치셨는데, 부활의 주님이 보이지 않으니 들로 산으로 가자고 하며 노는 날로 생각하면 떠내려 가게 된다. 단정히 성실히 주일 성수하시고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는데, 우리 교회가 기복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아서 믿음이 없으면 너무나 자유하다.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말씀이 중요한 말씀이다. 목장에 와서 믿음 없는 사람들은 밥먹은 것만 기억난다고 한다. 요즘 시대에 일주일에 한번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다들 죽임 당하고 살려주셨기에 권능의 증인들이 많아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고난 당한 사람들에게 감사하셔야 한다. 그러나 없는 돈에 빚져가며 대접하는 것은 허세이다. 성령이 다 아신다. 목장식구들도 목자가 있는지 없는지 다 안다. 뭐든지 진심으로 하면 된다.
여러분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는 목표가 있으니 성실히 살면서 믿음이라 착각한다 근데 먹고 살만하면 노예가 되어 더 높이 올라가야 하기에 비교되고 기쁨이 없어진다. 살면서 기쁨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도 기쁨이 없으면 내가 왜 사나 그런다. 어느 정도 집을 마련할 때까지는 기쁨이 있다. 월급 400될 때 까지는 기쁨이고 그 이상 넘어가면서 기쁨이 없다고 한다. 많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적용)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가장 기쁨인가? 기쁨의 종류가 이 세상 것이면 잠시 후에 바뀔 것이다. 같이 떡을 떼며 교제하는 목장이 기쁨입니까 억지로 합니까 귀찮습니까?
3.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42절
우리가 실질적으로 주님을 봤기에 실질적인 전도를 명하신다. 목장에서 실제적으로 음식을 먹고 기쁨을 누렸으면 전도를 명하신다. 특별히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라 하신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신다. 제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듣고 죽을 뻔 했다 살 뻔 했다 한다. 그 능력이 목장에게도 흘러 넘쳐서 결국 다 살아나게 되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구원을 이미 받았으면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짜 믿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제 엘리사는 하사엘에게 길한 것 흉한 것 다 예언해주었지만 벤하닷 왕에게 전할때는 반드시 왕이 살아나리라 예언을 받고 왔다고 한다. 누가 죽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니 심판 이야기 하면 시드기야 처럼 미가야 선지자의 뺨을 때리며 죽도록 듣기 싫어한다. 쥐가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수채구멍에 머리를 넣고 있으면 고양이가 안쫓아오는가? 산채로 먹힌다. 그러니 고양이가 온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국보다 지옥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해 주셨다.
왕하 8장애 모든 것을 가진 수넴 여인도 기근이 와서 엘리사가 모두가 무시하는 블레셋으로 피난가라고 한다. 기근이지만 블레셋은 무시가 된다. 근데 집과 전토 다 버리고 가라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심판의 예언인가?
저 또한 수넴 여인처럼 집도 있었다. 근데 망해서 주의 일을 한 것이 아닌 것이 은혜였다. 지나고 보니 조금이라도 먹을 것 있으면 떠나든지 내려놓든지 주의 일을 하지 않는다. 저도 제가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다. 왜냐면 과부 자체가 기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가,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에게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근데 가고 보니 그들이 저의 증인이 되어 증인이 양산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7/17년 큐티 선교회 정식으로 출범된지 20주년 된 날이 왔다.
제가 과부가 되었다. 그 때 강사 등 할 것이 많았다. 저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근데 블레셋으로 가라고 했다. 무시하고 힘든 사람에게 가라고 했다. 그래서 피난 간 것 처럼 힘든 사람들과만 이야기했다. 그러니 망한 것 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세상은 스펙을 좋아하는데 내 옆에는 힘든 사람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블레셋, 시공간을 넘어 나의 안녕과 쾌락을 버리고 심판같은 장소와 사람에게로 가라고 했다. 그것도 말씀대로 하루 하루 사니까 제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모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들으니 저절로 구별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저에게 이 과부의 기근의 때에 도리어 힘든 사람을 섬기게 하신 것이 이 교회를 주시고 또 회복의 지름길이었다 생각한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나갔으면 돈 버리고 몸 버렸을 거라 생각한다. 힘든 사람과 살려니 힘드니 하루하루가 새로워서 말씀을 붙들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하나님이 늘 심판을 전해주실 때 알게 해주시고 하루 하루 살게 해 주신 은혜라 생각한다.
마 7:21
권능은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매사에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것이 심판이다. 자존감과는 다르다.
주님이 너희 중 나를 팔자가 있다고 하니 다른 제자들은 내니이까 하는데 유다만 입맞춤을 하면서 안팔 것 처럼 행동했다. 자기 확신이 참 무섭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같은 말이다. 심판과 구원이 다른 말이 아니다. 성경말씀 보며 이야기 하는 것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구원의 말인 것이지 심판의 말이 아니다. 때마다 적용이 다를 뿐이다.
적용) 여러분은 심판의 말 같아 보이는 공동체의 처방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화가 납니까?
4. 죄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43절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왜 그리 중요한가?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멸망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원인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죄사함 받는 것은 구원 받는 것과 같다. 그 죄사함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전도를 해도 희생으로만 하면 기쁨이 없어서 오래 하지 못한다. 심판의 말은 누구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전하겠는가? 죄사함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죽을 노릇이다. 그래서 금수가 교양과 매너로 치장해도 기쁘기 어렵다.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는데 금그릇을 인간의 힘으로 못 무너뜨린다. 그러니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보배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교만하다.
C.S 루이스는 교만을 지옥 뿌리에서 올라오는 악을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다른 죄는 벼룩에 비하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말 금그릇이 말씀이 잘 안들린다. 금그릇보다 보배인 예수가 보여야 하는데 깨져야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했는데 죄가 아니라 하니 어떤 죄 보다 큰 죄이다. 금그릇이 깨어져야보배인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깨어지지 않고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고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없다. 죄사함 없이는 아무 증언도 할 수 없다. 죄시함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아무도 못살리고 처방도 안된다.
세상에서 인간관계 문제가 80%이다. 죄 문제 해결 없이는 인간관계 문제 해결도 없다.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관계 문제가 해결되고 이것이 해결되어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다. 거꾸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 문제가 해결된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되어 화평이 있다.
적용) 본질적인 최고의 악이 교만이라 생각하나? 음란 폭력 사기 외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교만하다 생각하는가 겸손하다 생각하는가?
공동체 고백
언젠가 나의 행한 일을 증언해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때를 생각해서 행위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스트레스일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순교하신 것이고, 성도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루하루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성령의 증인이 되지 않고서는 성령의 증언을 절대 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성령의 증인이 되어야지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고 하늘의 이야기를 땅의 언어로 해주어야지만 그것이 성령의 증언이 될 줄 믿는다.
말씀맺음
성령의 증언은 죽임 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의 증인으로 증언 해야 한다. 택하심 증인, 즉 주님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니까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죄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가장 큰 선물은 화평 후의 박해의 선물이라고 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상이 큼이라 하셨다. 그래서 하루하루 산다.
[기도제목]
*이지현
1. 엉망이었지만 대표님께 드린 큐티인과 간증을 성령의 증언으로 여겨주시고, 유종의 미의 관계회복이 일어나길
2. 내 환경에 감사하며 부끄러움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도록
3.말씀과 기도가 하나가 되도록
4. 건강한 습관이 자리잡도록
*김교희
1. 말씀으로 해석 받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2. 주어진 환경을 회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고 받아들이며 살도록
3. 엄마 목장 정착, 동생 구원
4. 생활예배, 특히 기도생활 꾸준히 하도록
5. 교통사고 통증이 잘 낫도록
6. 신교제 신결혼
*안무옥
1. 아빠 폐 조직검사 수술과 이후 경과 위해서, 통증 감해 주시기를
2. 금요일 엄마 수술 위해서
3. 부모님 수술 일정과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주시도록
*백서윤
1. 말씀 보기를 사모 할 수 있도록
2. 가족 구원과 건강
3. 물질의 복 받을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