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6.21
본문 : 사도행전 10:23-29
제목 : 성령의 만남
1.성령의 만남은 의외의 만남입니다.
23절) 자기 주인인 고넬료를 칭찬하는 성령의 소개를 하인들이 너무 잘하니 베드로가 감동받아서 가기로 하고 난 후 이튿날이다. 베드로의 결단과 실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고넬료 일을 보고할때 베드로가 여섯 형제를 데리고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어떤 형제들이 여섯형제로 보고 있다.
이들은 욥바에서 다비다가 살아나는 것도 보고 베드로가 무두장이 집에서 유숙하는 것도 본 베드로의 유대인 제자 정도로 볼수있다. 그들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갔다가 후에 예루살렘 교회까지 가서 고넬료 일에 증인이 된 사람들이다. 베드로가 능력을 행한 것도 들었고 고넬료의 하인들이 고넬료를 칭찬하는 것도 다 들었다. 또 그렇게 하룻길을 걸어서 온 하인들을 배려해서 하루 무두장이 집에서 유숙하게 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고 어우러져 존경하고 따라갔다고 생각한다.
24절) 어떤 형제와 베드로가 같이 갔는데 고넬료 집에 가보니 고넬료의 가까운 친척,친구들과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 된다. 누구 옆에 있는지는 참 중요하다. 이방인 공동체를 전도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들은 2000년 넘게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주인공이 되었다.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성령의 만남을 가지면 아무리 가진것이 없어도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에 열등감이 없어진다. 이런 사람들은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다.
## 내가 만난 의외의 성령의 사람은? 목장에서 의외의 사람이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나요?
2.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만납니다.
24-25절) 드디어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난다. 기다리더니 는 보통 기다림이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긴 인내와 간절한 기다림을 말한다.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함께 기다렸다.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하인들을 보낸 후 9절 이튿날, 23절의 이튿날, 24절의 이튿날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무작정 복음을 듣게하고자 이 모든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기다렸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목장을 해도 이런 기다림으로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는 예배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은 먹고 살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장 간절해지지 않는다. 고넬료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대단한 것이다.
베드로의 말씀을 너무나 사모하는 것도 있지만 베드로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런 겸손한 모습으로 그 많은 사람을 먹여가며 재워가며 기다렸다. 온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사모함이 참으로 축복인 것 같다.
## 여러분도 기다리나요? 목장에서 목장에서 모아 기다리나요?
고넬료가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노예가 주인에게 엎드릴때하는 행동.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일어난 일이고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인데 또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엎드렸다는 것이다. 겸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잣대로 자신을 측정하여 발견할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함이 없는 겸손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 위선이다. 위장된 교만에 불과하다.
죄를 모르는 사람과 노는건 정말 힘들다. 진짜 경건한 사람은 자유하고 재밌다. 그러나 죄를 모르는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
고난이 와도 내가 잘 살아내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내게 고난이 오는 것이 축복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유대인들은 불만인 것이다.
사소한 것을 배려 못하는 것은 작은일이 아니다. 이게 콩깍지가 껴서 사모할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불신결혼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고넬료는 세밀하게 치밀하게 배려하며 만남을 준비했다. 모든 예배와 사람과의 만남도 이렇게 준비하면 하나님이 와주실 것같다.
## 메시아를 기다리듯 사모하고 배려하며 기다리는 것은?
## 예배가 사모되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입니까?
3.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 만난다.
25절) 고넬료가 발 앞에 절을 하니 본인도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라고 일으킨다. 베드로는 주 앞에서 베드로와 고넬료가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수장이고, 중풍병도 고쳤고 앉은자도 일으켰고 죽은 자도 살려냈으니 교만할수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이 높아지면 그곳이 죽음의 자리인것을 알아야 한다. 두손, 두발 들어도 내가 저 상대방을 설득못합니다. 아무것도 할수 있는게 없어요. 이것이 성화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만남이 아니면 인간의 말로는 아무것도 안된다. 우리가 할수있는 것은 눈물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높은 자리는 영원히 살자리가 아니라 내려와야할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인은 죄인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 남들이 환호해줄때 그곳이 죽음의 자리고 독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4.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법 위의 상위법입니다.
27-29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때 그 땅의 문화인 우상숭배를 철저히 못하게 하셨다. 혼인이나 어떤 계약관계도 맺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멸하고 무시받게 하셨다. 이 모든 편견과 차별이 나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셋팅이다. 근데 유대인들이 이걸 확대 해석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업신여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생활방역을 했다.
그런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을 들어간 것은 조롱과 수치를 자처하는 것이었다. 유대인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 조차 베드로를 무시하면서 비난한다.
근데 베드로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얘기한다. 위법인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환상을 보면서 문자적으로만 고기를 먹지말라고 하면 위험하다. 정확하게 자기부인과 십자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싫은게 아니라 위법이다. 그런데 베드로도 어찌할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고 나가려고 하니까 베드로같은 선구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전세계적으로 복음이 나갈수 있으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반감없이 받아드려서 이곳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초청으로 보였기에 사양하지 않고 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 알고 왔지만 다시한번 베드로가 무슨 일로 불렀느냐 물어본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속 확인해야 한다.
이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 쉬워졌다. 소수인권이 보장되야 한다고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다면 입양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권리는 보호받지만 그 아이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자를 엄마로 부르고, 여자를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 그 아이들은? 그러다가 마음 안맞으면 이혼도 하고 재혼도 하는데 그럼 아이들은 누가 키우는 건가요? 이건 윤리, 도덕과 양심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다. 하나님이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죄. 인권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오단이목장 기도제목>
단이:
- 독립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 나만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우선으로 두고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유빈:
- 말씀 듣기
- 매일 기도하기
- 홍콩에서 별탈없이 좋은 경험과 일 많이 하고 돌아올수있도록
수연:
- 동성애와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 허락하신 사건을 말씀으로 묻고 해석하며 갈수있도록
-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삶이 정돈될수 있도록
- 동생들이 주님을 만날수있도록
하영:
-큐티와 기도 하도록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도록
-학기 마무리 잘하고 방학동안 나태해지지 않도록
미경:
-큐티 할 수 있도록
-상담 잘 받을 수 있도록
지인:
- 큐티와 기도로 하루 시작할 수 있도록
- 학기 잘 끝마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