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5 주일예배
사도행전 9:1-9
<성령의 회심>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에게는 거듭남과 회개가 동시에 일어나서 회심이라고 한다.
1. 무섭고 가치 없는 열심을 게 낼 때가 많습니다.
1-2절 살기를 가진 위협이 여전히와 합해져서 지속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는 뜻인데 야수가 헐떡거리며 적의로 가득차서 살기로 숨을 내뿜고 들이마시고의 뜻. 사도들이 옥에 갇혔을 때 공회는 교법사인 가말리엘의 권고대로 교회를 박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게 하나님의 역사면 있을 것이고 아니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울이 생각하는 율법은 신명기에 십자가에 달린 죄인은 저주받은 자인데 어떻게 구원자가 될 수가 있는가. 자기는 하나님을 율법과 율법을 지키기 위한 계명을 다 지키고 있기에 죄가 없다. 자기 구원은 자기가 하는 것이지 흠이 없기에 예수 스데반과는 격이 다르다. 스데반의 소리는 살기가 등등한 만큼 개소리인 것. 다메섹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수리아의 매우 큰 도시. 그 유대인 중에 상당수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 같으니 사울이 무의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했다는 것. 사울이 생각할 때는 유대교를 믿어야 하는데 기독교를 믿다니 가만 나두면 안 되겠네 확신이 있는 것. 길 도자가 뜻하는 way? w를 대문자로 쓴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은유고 예수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기에 생명의 길을 속한 사람들을 잡아와도 그들의 생명은 보존 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사울이 율법만 능통한 게 아니라 히브리어 헬라어 다 능통하고 베냐민 지파의 다소시 출신이니까 똑똑한 헬라파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열심보다 앞서가게 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지한 열심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적극적인 훼방이 된다. 강이 범람하면 징벌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망한다. 무지한 열심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스데반을 죽였다. 구별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였다. 얼마나 대단한 열심히 사람을 죽였는가. 가치 없고 어리석은 열심인 것.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남녀를 막론하고 예수 믿기에 결박당하는 것은 좋은 일. 남녀를 막론하고 박해할 때는 남녀차별이 없지만 주의 일 할 때는 남녀차별이 있다. 창세기에는 비분리 접속사를 써서 남녀가 처음에는 분리가 안됐는데 죄가 들어온 이후에 분리가 되었다. 성령이 임해야 원래대로 복구가 돼서 차별이 없어지는 것인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면 남녀차별이 있는 것. 지역감정이 있다. 해결책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회심을 해야지 분리가 없는 것. 지역감정에서 벗어나려면 교회마다 성령의 회심이 일어나야 한다.
적용) 나의 어리석은 무가치한 열심은 무엇인가?
그것이 사람 죽이는 열심이라는 것을 아는가?
죄인인가? 죄인을 잡는 의인인가?
2. 내가 예수를 박해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회심은 인격의 변화까지 온 것을 말하는데 개종이라는 단어로 쓰인다. 사울은 유대교를 잘 믿어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이 사람은 개종을 해야 하는 것. 3절 빛은 26장 13절에는 정오의 빛. 정오의 빛은 사막에서는 너무 강렬해서 살인적인 빛.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런 빛인데 그 빛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추었다. 예수님의 영광의 큰 빛이 사울에게 비춰진 것인데 광채를 넘어 사람이 보면 죽는 빛. 죽음에 속한 자는 빛을 보면 두려움. 주님의 빛은 뜨겁고 거룩하고 무서움. 그 빛이 믿음의 분량대로 다가오는 것. 그러니 사울도 9장에서는 빛을 봤다고 하고 26장에서는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봤다고 빛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주님 만난 의미가 달라진 것. 주님 만난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달라진 것. 사울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지 않았지만 스데반이 죽을 때 생명의 빛이신 에수님이 스데반을 영접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인자의 영광의 보던 스데반을 보고 기억했을 것. 빛은 바로 인자의 영광. 인자의 영광이 스데반의 얼굴을 비추며 성령의 얼굴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것을 들었다. 편안한 얼굴로 의탁하는 얼굴을 사울이 본 것. 설교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마지막 장면을 본 것. 빛이 강권적으로 사울에게 임한 것. 뜻을 몰라도 그 자리에 있어서 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강권적으로 빛이 임했는데 사울이 그 빛을 받아낼 수준이 못 되는 것. 무섭고 죽을 것 같으니 땅에 엎드려졌다. 4절 엎드려져는 굴복하다는 의미. 그의 모든 것이 엎드러졌다. 사울아 사울아 두 번에 걸쳐서 녹아지게 부르셨다. 어찌 교회를 잔멸하던 사울을 이렇게 까지 다정하게 부르실 수 있는가. 내가 회심하려고 찾아 헤매지도 않았고 주님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자기와 다르다고 죽이려고 했던 악질이었다. 이는 그래서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이다. 교회를 핍박했는데 예수님을 핍박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것을 나를 핍박한다고 하셨다. 5절 그는 하나님을 핍박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굳게 굳게 믿었다. 성도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핍박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 사울이 교회를 박해할 것을 주님은 미리 예견하셨다. 바울은 자기 믿음으로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교회를 박해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빌립보서 3장 6절에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다. 주님이 온전하지 못한 나를 정하여 부르시고 데리고 가시는 것.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빛과 소리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사울은 주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인데 예수가 그리스도다가 안 믿어지니까 이상한 소리만 한다. 옳고 그름으로 도덕적인 얘기만 한다. 틀렸으면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는 것.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박해했던 사울 입에서 주여가 저절로 나오는 것. 예수님이 인정이 되었다. 나는 죽고 구속하신 예수님이 살았다. 실명의 아픔 가운데 주여가 되었다. 사울이 빛을 보고 광채에 압도당하고 자기를 사울아 하고 불러주시니 마음이 녹았다. 한 순간에 사울의 신학과 가치관이 다 무너졌다.
적용) 어떤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는가? 박해 당하고 있는가?
3. 영적 소경에 대한 자각입니다.
6절 내가 예수님을 박해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곧바로 회개와 거듭남이 다 이루어진 사람이기에 금세 사명으로 가는 것. 씩씩거리고 사람 죽이려던 사람에게 일을 맡긴 것. 사도 바울에게 곧장 일거리를 줬다. 4절은 사울이 들은 소리인데 같이 가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서 있었다. 7절에는 같이 가던 사람들이 들은 소리. 소리가 안 들렸으니 말을 못 하는 것. 원어에 보면 4절은 voice 7절은 sound 사울은 하나님 음성을 들었는데 같이 가던 사람들은 물리적인 소리만 들었다. 사울에게만 말씀하셨다. 같이 둘러서도 들리는 사람이 있고 안 들리는 사람이 있다. 음성을 못 들으니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수가 없다. 영적 자각이 없는 것.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가서 영접도 못 시키는 것. 자전거를 이론으로 아무리 알아도 내가 한번 타봐야 한다. 바로 이것이다. 8-9절 주님을 만난 첫째 증표는 살기 등등했던 그가 주님을 영광을 바라본 후에 소경이 된 것인데 영적 소경임을 깨달으라고 육적 소경을 만드셨다. 자기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심. 사울도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눈을 떴는데 보지 못하고가 두 번 나오는데 가장 무서운 것이 영적 소경. 영적 소경으로 끌려가야 아픈 사람들을 체휼하게 되는 것.
살기등등한 눈매가 온유해지라고 장님을 만드셨다. 은혜를 받으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남들은 안다. 자기만 모른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박해했는지를 남들은 아는데 자기만 모른다. 위대한 선교사가 되려면 눈멀고 다리 부러져야 하고는 아니지만 워낙 바울처럼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은 눈이 멀고 다리가 부러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듣는 사람은 그런 일이 없을 지라고 믿는다. 일평생 아무 일이 없이 미리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는 일을 또 주신다. 아무거나 하나님이 맡겨주시면 되는 데 내가 정하려고 한다. 그렇게 이제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는 눈이 먼 사울에 순종을 할 때 그 다음 진도를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
적용)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A
조금도 실수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와 내 열심으로 살기등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율법과 율법을 지키기 위한 계명들을 다 지키고 있기에 나는 죄가 없다 생각하는 사울처럼 내가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하려고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기에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의로 가득차서 판단하고 정죄한다. 나의 열심이 의가 되어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보면 무시하고 정죄하는데 이것이 사람 죽이는 열심임을 보게 하신다. 스스로를 의인이라 착각하며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내가 예수님을 박해하는 죄인이자 영적 소경임을 깨닫지 못하니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것 같은 환경으로 장님의 때를 허락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회심함으로 눈이 먼 사울의 때에 잘 순종하고 주님의 손에 질질 잘 이끌려 사명으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B
코로나 19사태로 우리지점이 휴업이 시작되고 4/1부터 휴직이 시작되었다. 얼떨떨하지만 휴가받은것 같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는데, 월급이 반밖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참씁쓸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열심으로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고 했던 것 같다. 이것이 사람 죽이는 열심이라고 하셨는데, 휴직중에도 온전히 좀 내려놓고 쉬는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뭔가 하려고 하는 내 열심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또, 월요일에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가 참 많이 변해있었다. 사랑의 교회로 교회를 옮기시면서 성경학교를 다닌다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물어보니 어떤 여자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이 아빠가 목사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행색이 이게 뭐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얼굴에 점도빼고, 살도빼고, 구두도 사고, 옷도 샀다고 하면서... 사랑의 교회 성경학교도 그 분 덕에 가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마음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빠가 불쌍했는지 또 이렇게 만나주시려고 하시는가 싶다가도, 결국 또 여자야? 하는 아빠를 또 무시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
아빠 앞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아빠도 대형교회 출석이 처음이고 공동체 생활이 처음인 만큼 잘 나누고 갔음 좋겠다고, 나도 공동체 만나서 참 신앙생활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엄마도 시간되면 만나러 가자고 이야기 했다. 옛날같으면 아빠가 내 말을 무시했을텐데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아빠가 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용서하지 못했더라. 니 엄마 살아있을때 한 번 만났어야 했는데 지금 그게 참 후회스럽다. 시간이 되면 한 번 가자 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아빠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적용] 휴직기간에 아빠 한번 더 만나기, 20일이 엄마 기일인데 그 전에 꼭!
[기도제목]
임지민:아빠의 성경학교 훈련이 헛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박혜림:눈이 먼 사울의 때에 혈기내지 않고 순종할 수 있도록
일과 포폴 준비에 내 열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