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녹취
* 설교 제목: 성령의 큰 권세
* 설교 본문: 사도행전 8장 25-40절
*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님
온라인예배 6주차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어디로 나간 것 같아서 그립습니다. 인터넷 설교가 좋아도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가 없으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죠? 전시 상황이지만 단톡방에서 나눔하는 구조가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Great라는 수식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다이나믹하게 일어난다는 겁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는 권세입니다.
두 사도가 어떤 주의 말씀을 전했죠? 교회가 부흥해도 성직 매매, 사이머니를 경계했죠.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한 생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빌립을 전심으로 쫓아다니며 흉내를 냈지만 시모니즘이 교회를 망칩니다. 시몬이 직분 참 좋아했는데, 돈이 아니고 성령이 있어야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가 없는 사람이 직분을 받으면 금과 함께 교회도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처럼 교회가 부흥할 때 시모니즘이 판을 친다는 경고를 했습니다. 24절까지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야 시모니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기까지도 도망왔잖아요. 시몬을 물리치고 부흥하고 있는데 주의 사자가 일어나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더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가사는 폐허의 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해로 흩어졌는데 핍박도 없는데 힘든 곳으로 가게 하십니다. 27절에 말씀대로 일어나서 가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순종의 결과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스바 여왕과 솔로몬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세운 나라가 에디오피아라고 합니다. 이방인 개종자 1호는 베드로가 전도한 고넬료라고 칭하잖아요. 반쯤 유대인이라고 이 에디오피아 사람을 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기 지키러 내시가 예루살렘에 온 겁니다. 간다게는 여왕이라는 뜻입니다. 내시는 국고를 맡았으니까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큰 권세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내시라고 써 있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명기 23장 1절은 고자를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에디오피아 2인자가 예루살렘까지 절기 지키러 가서 성회에 못 들어갔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느라고 못 들어간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자가격리를 하라고 하는데 신천지가 특별히 안 지키는 모습을 봅니다. 그 사람들은 말씀 400구절이나 외워야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다는데... 말씀을 지켜야 의미가 있습니다.
내시도 경건한 유대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좋지도 않은데 광야 길을 오는데 말씀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레 안에서 얼마나 사모하면 읽겠습니까. 골치가 아플텐데요.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라면 큰 소리나는 티비 앞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졌는데 준비된 사람들은 사마리아인, 내시입니다. 남편의 병원 개업으로 어쩔 수 없이 흩어져서 병원에서 전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100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요. 병원 이름을 나보러 지으라고 해서 할렐루야 산부인과로 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뭐라고 해서 그렇게 못 지었습니다. 내 믿음이 허접했을 텐데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아기 낳으면서 병원비도 깎아야 하는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들이라 전도가 잘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유대인의 피가 흘러도 간다게의 큰 권세를 가져도, 혼혈이고 고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성경에서도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성경에서 인정하는 무시받는 사람입니다. 고자가 되어서 권세를 다 가져보니 고독한 겁니다. 저는 이런 사람 보면 참 체휼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된 심령입니다. 우리 때문에 유대인들이 수고하는 것 같습니다.
(29절) 26절에 주의 사자가 성령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명령하십니다. 수레에 가까이 밀착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 고관대작의 수레에 밀착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예민한 인도를 받으면 준비된 심령에 가까이 가게 하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주시니 전도의 성공률이 높습니다. 계속해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내려왔는데 그곳에서 또 남쪽으로 또 내려가라는 겁니다. 우리가 큰 권세를 갖는 것은 말씀의 의도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겁니다. 민감한 인도를 받지 못하면 이기적인 욕심대로 시몬처럼 죄에 순식간에 발목이 잡힙니다. 조주빈은 자기 대상은 약점이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고집의 인도함 받고 떠나야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고 일어나서 가야할 불편한 광야는 어디입니까?
- 돈이 없으면 약점도 묻히는데, 돈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어서 드러날까 두려운 약점은 무엇입니까? 거꾸로 말하면 내가 약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고 높은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2.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이사야를 열심히 읽는데 깨닫고 있냐고 빌립이 내시에게 질문합니다. 의문의 불변사가 있어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의미를 모르고 읽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빌립이 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시를 무시해서 물어보는 게 아닙니다. 이혼하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말씀이 이해되냐고 물어보는 것은 이혼하겠다고 하니까 물어보는 거죠.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깨닫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할 수만 있으면 알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칼빈이 말하는 두 가지 선물을 하나는 성경이고, 나머지 하나는 성경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그렇게 잔멸하던 성경박사 사울은 성경을 잘 알아도 빌립한테 가르쳐달라고 했겠습니까.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너무 크니까 수치심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시가 읽던 이사야 구절이 나옵니다. 이사야에서 너무 유명한 메시야 예언이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에 옷이 벗겨져서 공정한 재판도 못 받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이 구절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예수 시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예수의 죄로 인함이라고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한 것도 다 예수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 이야기로 읽지 않고 도덕과 윤리로 읽으니까 깨닫지를 못합니다. 구속사로 들어도 고난이 없으면 이 말씀 자체가 듣기 싫은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옆에서 보았지만 그분이 메시야인줄 모릅니다. 겪어봐도 예수님을 모릅니다. 그런데 내시가 큰 권세가 있음에도 풍요 속 곤고함을 경험하니까 성령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빌립은 선지자가 말한 사람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라고 내시에게 말해줍니다. 빌립에게도 성령이 임하고 내시에게 전달이 되니까 그가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 어디에도 뚜렷하게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구태여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초대교회가 이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너무 아는데 세상의 박사는 모른다고 계시록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사야 구절로 시작해서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했습니다. 이 글에서 시작해서 이 대상의 정체가 예수 그리스도고 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수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잘 들었죠. 내시가 이 이야기에 특별히 반응했을까요? 오래된 학자도 아닌데요. 인간에게는 기복적인 것이 있어서 다녀오면 잘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갔을 수 있죠. 그러나 내시에게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준 거죠. 내 이야기로 들은 겁니다. 70km나 되는 거리를 계속 성경을 읽으며 왔을 겁니다. 성경에 고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자가 되어서 총회, 성회에도 참석을 못하는데, 이사야에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니 고자도 차별 없이 영원한 성전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명시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영원히 잘 살 것 같아도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성회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여자로서 무시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예수님을 개미 집에 가둘 수 없듯이 이미 내시는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고자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내 간증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타인의 간증을 객관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잔멸하고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함으로 바울로 변했습니다. 권세 있는 내시를 만나도 계시록을 봐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면서 도덕과 윤리 교과서로 읽으면 안 됩니다. 그 본문으로 시작되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합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인줄 알고 학벌과 성공이 그리스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죽을 것 같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내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가지고 설교를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고 어떤 사건을 봐도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천하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4.19 묘지를 가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십자가에 비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어떤 것도 일원론입니다.
3. 사라지는 권세입니다.
내시가 얼마나 기뻤는지 이해가 되세요. 내시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외로웠을 그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말을 못해도 이런 문제들이 곳곳에 있을 거예요. 거기서부터 예수로 연결이 되면 해석이 되어서 해결이 됩니다. 기적같이 광야에서 물을 만난 것입니다. 광야에서 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내시는 유대교 법도 잘 압니다. 빌립 집사에게 세례 받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습니다. 열등감이 없는 겁니다. 세례를 딱 받았는데 에디오피아에 돌아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을 겁니다. 큰 권세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큰 권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하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북부 아프리카 지방까지 전파하는 공로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37절은 (없음)인데 킹 제임스 버전에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경에 없으면 없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왜 없게 했을까 생각했을 때 빌립한테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사도한테 세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며 믿으면 합당하니라라는 구절(킹 제임스 성경에는 살아있는 구절)이 형식화되면 안 되기 때문에 없애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그 다음에는 세례 문답을 만들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성령이 그 내시 위에 내리셨으며 천사가 빌립을 이끌어갔다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 말도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다 정도로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성령 세례를 왜 따로 받게 했는지는 말씀 드렸어요. 빌립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빌립도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내시에게 세례를 줌으로서 진정한 성령 세례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복음에 통일성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복음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 통일성이 흘러내려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곱 사람 중 하나였지만 빌립이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빌립이 세례를 주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집사 시절 30대부터 곳곳에 집회를 많이 하러 다니고 영접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세례를 줬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곳곳에 흩어져 교회로 돌아가 김양재 집사한테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 그 교회 목사님은 이상하게 받았다고 생각하겠죠? 때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한 사람도 세례를 준 적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세례를 줄 수도 있었겠죠.
내시 한 사람 구원하려고 성령님이 오늘 본문 곳곳에 바쁘게 등장하십니다. 성령님이 제일 바쁘십니다. 성령님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성령의 역사가 긴박하게 일어나는가를 나타냅니다. 일이 끝난 후에 빌립을 이끌어가셨습니다. 이끌어가다라는 단어 뜻 중에 파계의 위험에서 구하셨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빌립이 한 일이 아니라 성령님이 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빌립이 혹시 이 일로 떠내려갈까 봐 이끌어가셨다는 겁니다.
내시는 빌립과 헤어지는 슬픔을 압도하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홀로서기가 금세 되어서 기쁘게 그 길을 간 겁니다. 누비아, 나일 계곡에 있는 에디오피아에서 2/3 이상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아마 내시의 열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은 정말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편 68편 31절에 구스인이 등장합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는 이 시대에 시편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봅니다.
아소도는 바울이 9장부터 복음을 전하는 지역입니다. 빌립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도록 밑밥을 깔아뒀다는 것을 아시죠? 빌립은 집사잖아요. 구제하면서 재정을 공개했잖아요. 빌립은 길을 닦아주고 다 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빌립이 정말 멋집니다. 예수님을 도왔다던 12사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큰 권세를 가졌습니다. 베드로와 빌립은 자리 차이가 엄청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본 사람이고, 빌립은 교회에서 청소하는 사람이죠. 자리가 겸손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상급인 인생을 빌립이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큰 권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데반과 빌립이 이 권세를 잘 보여줬습니다. 대단한 큰 권세 가진 자를 전도했는데 눈깔사탕 하나 안 받고 딱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파계될까 봐 성령님이 이끌어가신 것입니다. 사마리아도 흩어졌는데 전도했고 가장 실력자 시몬도 전도했고 시몬이 주는 돈도 거절했고 이제는 에디오피아 실세를 전도했는데 두 나라의 왕을 전도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얼마나 교만하겠습니까. 스데반과 빌립은 스타인데, 정말 스타가 되게 하시느라고 사라지게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내가 한 일의 공로를 상사에게 넘길 수 있을까요?
- 내 자리가 낮아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을 큰 권세로 생각합니까? 만년 쫑!이라고 생각합니까?
2. 목장 나눔
* 목자
가. 나눔 질문: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고 일어나서 가야 할 불편한 광야는 어디입니까? / 돈이 없으면 약점도 묻히는데, 돈이 있어 드러날까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나. 나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에게 남동생의 전 여친에게서부터 연락이 왔었다. 남동생의 전 여친은 남동생이 자기에게 1년간 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가고 연락을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동생이 열심히 저축하면서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 방법을 연구하다가 내가 예수를 어떻게 믿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겉으로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하며 어디서든 인정받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나의 실상이 드러날까 봐 염려했다. 돈으로 치장하고 빚도 내서 써보면서 남자친구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다가 가족에게 이 모습이 들통나자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이런 나도 만나주신 하나님이 남동생이라고 못 만나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사건을 통해 가족의 죄는 곧 내 죄고 믿는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여전히 돈에 목숨을 걸고 있는 내 모습을 말씀에 거울로 비춰보게 하신다.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할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한다.
35절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처럼, 사실 당장 어떻게든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이 내가 내 동생에게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이 천만원의 빚에서 해결되는 것보다 지금 이 고난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이 슬픔을 덮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말씀의 빌립처럼 동생이 걷고 있는 광야로 즉시 내려가, 동생이 앉은 시끄럽고 불편한 병거에 가까이 다가가 이 천만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너를 구원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고 내 동생이 돈으로부터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작정하여 예수님을 전해야 겠다. 돈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내 동생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최고의 축복의 사건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다. 적용:
- 내 동생에게 내 간증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겠습니다.
- 내 동생에게 큐티책을 선물하겠습니다.
- 동생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매일 구원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부목자
가. 나눔 질문: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고 일어나서 가야할 불편한 광야는 어디입니까?
나. 나눔:
임용고시 합격하고 첫 발령 받아 5년을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엄청 힘들었었다. 개교한 지 6개월 밖에 안 된 학교였고, 집에서 버스를 타고 꽤 먼 거리를 가야했다. 온통 모든 것이 새 물건 새 건물이었지만 새로 조성된 동네다 보니 동네 분위기가 혼란스러웠고, 투기 지역으로 유명해지니 정말 돈으로 인해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실상으로 보는 것 같아 학교 자체에 정이 다 떨어졌었다.
전근을 갈 때가 되자 새로 옮기는 학교는 동네 분위기도 안정적이고 소위 말하는 학군이 좋은 곳으로 가서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발령은 근거리 배정이 원칙인데,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좋은 학교라고 소문난 학교들이 많았기에 내심 그런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발령이 난 곳은 집에서 꼬박 25분을 걸어서 가야하는 산골짜기 학교였다. 마을버스가 딱 한 대 서는데 그마저도 내가 사는 곳과 노선이 상관 없어서 정말 지름길도 없이 딱 25분을 걸어서 가야하는 곳이어서 발령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첫 인사를 가는 날, 학교에 올라가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마을버스가 산을 타는 걸 보고 한직으로 좌천되는 어느 회사원의 심정이 이해가 될 듯했다. 도착해보니 30년이 훌쩍 넘은 학교는 어딜 봐도 오래된 흔적이었다. 이 학교에 먼저 근무하신 선생님들의 말씀으로는 분명 서울에 있는 학교였지만 학교 실태는 지방에 있는 어느 학교랑 다름이 없다고 하셨다. 다문화 가정도 많고, 아동학대를 의심할 정황도 많이 보게 되고,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지난 학교에서도 그렇게 굴렀는데 여기와서도 편하게 지내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드니 생색이 올라오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왜 보내셨을까 싶었다. 집에서 더 가까운 학교 중에 좋은 학교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곳에 내가 와야할 이유가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4월 중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있는데,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이 상당히 떨어지는 이 동네에서 어떻게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오늘 말씀에서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더욱 열악하고 황폐한 가사 땅으로 가라는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생각났다. 발령은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라고 하면 가야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학교로 갔지만 빌립처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로든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앞서 경험하신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이 학교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바로 준비된 심령들이 아닌가 싶었다. 공교육 현장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맘껏 소리칠 수는 없지만, 준비된 심령을 가진 에디오피아 내시 같은 그 한 사람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큰 권세가 내게 있기를 소망한다.
다. 적용:
- 학교에 출근하면 1분이라도 성령님이 가라고 하신 그곳이 여기라면 이곳에서 해야할 일을 마땅히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 목원1
- 나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상황이라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온통 청소 아니면 이해 안 되는 잔소리뿐이다. 내가 밖에서 가져온 빵이 상해서 버리겠다고 하는데, 음식을 어떻게 상하게 만들 수 있냐며 혼자 분노에 가득차셔서 성질내시고 다음날이 되도록 밥도 안 먹고 씩씩거리셨다. 매일 아빠가 산에서 꽃이나 버섯 같은 걸 따오고는 혼자 감탄하면서 엄마가 꽃을 사와서 키우는 건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고 욕하는 모습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옆에서 엄마가 아빠 기분을 맞춰주고 예배도 잘 지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정말 많이 말씀과 멀어지고 둔해짐을 느꼈다. 간혹 보는 말씀에서 잘 짓밟히라고 하는데 전보다 그런 말씀이 더 거부감으로 다가오고 평소 죄라고 생각했던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씀을 보는 게 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것 같아서 솔직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3. 기도 제목
* 목자:
1. 남동생이 빚 문제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2. 남동생의 빚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인도해주시길 3.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영육의 강건을 허락해주시길
* 부목자:
1.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요. 마음에 평강을 허락해주시고,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없기를 2.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들교회 온라인예배를 같이 드리는 엄마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이 한 말씀을 듣고 나누는 가족이 되어가는 것에 진전이 있기를 3. 영육이 모두 나태해지기 쉬운 상황 속에서, 생활 예배의 끈을 더욱 조여 영적으로도 깨어있고 육적으로도 성실하게 하루 할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 목원 1:
1. 아빠에 대한 내 분노가 사그라들 수 있기를
2. 나의 옳고 그름으로 아빠의 모습이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기를
3. 말씀 한 주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고 묵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