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통치
사도행전 7:9~16
주권이 주권이 되려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요셉을 통해 최고 강대국 바로의 총리를 하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은 성령의 통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시기심을 겪어내야 합니다.
9절 :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우리가 믿음의 한계단씩 떠날때마다 사건도 감동도 주십니다. 그래서 전도의 열매를 맺을때 우리가 가장 감동되기에 주님의 길을 갈수 있는 것입니다. 7장 2-8절까지가 아브라함의 구속사라면 2-16절까지는 창세기의 구속사입니다. 7장 전체는 구약의 구속사 입니다.
지금 율법과 구속사에 관한것을 스데반이 변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선레를 맺으시고 할례를 표징으로 주셨습니다. 이 할례를 이스라엘은 마치 선민의 표식으로 여기며 구원의 근거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할례의 주인이신 창조주 예수님 마저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까지가 아브라함의 구속사 입니다. 여기다 살을 붙인게 신구약 66권입니다. 구속사는 성경 어디를 봐도 이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12지파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야곱이 12아들을 낳았습니다. 힘든가운데 영적자녀가 주렁주렁 맺게 하시니까 이번에는 시기를 겪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방땅에서 종살이 하게 될것 이라는 사실은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면서 부터 시작됨으로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이어 요셉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시기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한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요셉과 함께 계셨다고 표현을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형들이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시아. 그런데 이것을 메시아 꿈으로 알지 못한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스데반이 이 요셉을 예로 든 것은 요셉의 고난과 영광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특히 구약을 읽을때 그리스도를 발견할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시기로 시작했는데 그것이 민족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구속사라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역사이기에 이 세상의 성공사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 입니다. 시기가 있어서, 없어서 좋은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어서 형들의 시기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받아도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단의 괴롭힘, 자기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그런데 이왕이면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험입니다. 최고의 상급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괴롭힐때 이것이 승화가 되어 영적 자녀를 많이 낳는 성령의 통치를 할 확률이 많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 :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죄가 있어 매맞고 참으면 칭찬이 없다는 것은 죄 값으로 매를 맞는데 무슨 칭찬이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괴로운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남들을 괴롭힙니다. 내가 괴로와도 남들을 괴롭힐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요셉이 미숙하며 시기를 유발했습니다. 시기를 겪어내야 하지만, 유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형들도 요셉도 해석을 할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것을 합리화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형제들에게 시기를 합니까? 시기를 당합니까? 시기를 유발합니까?
2. 종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10절 :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요셉을 건져내셨을뿐 아니라 영애로운 자리로 세우셨습니다. 영적으로도 이런 통치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사장과 부하가 바뀌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아랫자리에서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안믿는 사장을 통치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세상 좋아해서 애굽에 종노릇하러 갔지만 지나서 보니 제가 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비결은 종노릇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노릇을 잘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던지, 머리가 좋든지, 완전히 바보든지, 이 세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바보는 종노릇하다가 끝날것 같아도 열등감으로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조금 하다가 내가 하는것 알아달라며 생색을 내다가 결국은 종노릇을 못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종노릇을 잘하니까 온 지방과 나라의 통치자로 세우실 뿐만 아니라 온 교회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여기까지 오며 많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의로 타의로 사단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저의 알량한 도덕성과 신앙인격을 드러내야 하니 자꾸 제 속에서 너같은데 뭘해 하는 사단의 참소가 있었습니다. 진짜 문자적인 시기도 있었습니다. 사명이 아니면 감당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마지막이라 생각되었기에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제가 종노릇 한 경험이 너무나 유익했기에 여기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차례차례 사건이 오고 감동도 주시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도 구원받고, 진정한 영의 직분이 주어져서 문자적으로도 담임목사가 되었지만 영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사건들을 교통정리하면서 해결하는 통치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환란에서 건짐받는 것은 종노릇 잘하는 것과 동의어 입니다. 동의가 되십니까?
종노릇 잘해서 통치자가 된 경험이 있나요?
3. 험악한 인생을 살아봐야 합니다.
11절 :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절 :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절 :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온땅에 흉년이 같이 들어야 합니다. 흉년이 들지 않았다면 형들은 결코 애굽에 갈일이 없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겸손한 환경이 겸손한 것입니다. 종노릇도, 형들이 무릎을 꿇는일도 다 드러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 흉년 때문에 야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바로에게 드러난것은 요셉이 아니고 야곱인 것입니다. 요셉의 친속의 대표 야곱. 요셉이 흉년에 대비할수 있었던 것은 야곱의 하나님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중심은 더욱 험악한 인생을 겪어낸 야곱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당. 요셉은 이 야곱을 소개하기 위해서 형들의 시기로 인하여 애굽에 가서 총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역사가 구속사 인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야곱이 세계최고 강대국의 바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면서 야곱이 축복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개념입니다. 야곱 = 험악한 인생. 그런데 바로에게 나아갔는데 바로가 야곱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야곱이 오히려 바로를 불쌍히 여기며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험악한 삶을 살지않으면 가능하지 않는것입니다. 바로를 축복하는 사람은 총리가 아니라 험악한 삶을 살아온 야곱입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산전수전을 겪는다면 누구든 축복할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 지려면 요셉이 팔려가고 흉년이 와 먹을것이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있어도 없어도 될 일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방이 애굽이고 바로 나의 환경이구나.. 성경을 읽고 걸어가면 있어야 하는 일이구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아무리 종노릇하더라도 내게 리더쉽을 반드시 주시고 통치의 개념이 들어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노릇만 하게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통치의 개념이 있습니다. 학벌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통치의 개념은 철저히 이타적인 개념입니다. 이타적인 독재자가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이타적인 결정권자가 결정을 해서 빨리빨리 결정을 해서, 두바이에는 최고의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건축학도들이 프랑스 파리보다 두바이를 간다고 합니다. 왕정에서 이런일이 있는데, 간혹가다가 이런 사람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험악한 인생이 부끄럽습니까?
험악한 인생으로 축복해 주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4. 매장지 신앙이 확실해야 합니다.
14절 :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절 :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스데반은 애굽으로 흉년이 와서 갔습니다. 일흔다섯명이 완전히 기근의 위기에서, 이 죽음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짐받은 자들이었다는 것을 강조를 합니다. 거기 사람을 보통 일반 명사로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영혼, 생명, 목숨을 뜻하는 단어의 복수형을 사용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영혼 일흔 다섯만 갔다는 이야기 입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데, 가나안 땅만이 성지가 아니고 이세상 전부 가나안, 애굽, 매소포타미아 전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땅임을 스데반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민의식을 계속 깨뜨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6절 :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야곱에 애굽에서 죽었지만 아들들에게 자기 장례를 가나안 땅에서 치뤄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50장에 보면 그 유언대로 말할수 없이 화려한 장례식을 요셉이 야곱아버지를 위해서 치뤄주었습니다. 요셉이 총리이니 애굽의 고관들이 이 믿는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장례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천국가는 길, 전도한것입니다. 이 장례식을 위해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막벨라굴과 야곱의 세겜은 다른 무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산 무덤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막벨라굴은 아브라함이 400냥을 주고 산 매장지 입니다. 세겜은 야곱이 100냥주고 산곳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야곱이 막벨라굴에 묻혔다고 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야곱이 (요셉이 야곱의 직계자손) 사놓은 세겜땅에 먼저 들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게 아브라함이 산 세겜에 바치라고 하니까 이것은 스데반이 아브라함과 야곱을 섞어서 아브라함이 사놓은 세겜의 무덤이라고 표현을 한것은 영적매장지 본향을 의미하기 때문에 스데반이 정말 약속의 땅에 대해서 정말 안타깝고 깊게 묵상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은으로 주고 산 최종목적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묻힌 막벨라굴이 그럼 어디냐 하면 바로 여기가 사라의 매장지 인것입니다. 스데반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부다 본향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3장에 헷족속이 그냥 쓰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돈 내고 사겠다' amprarr '그냥 써라-' amprarr '돈 내고 사겠다'고 반복되며 한장 내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반드시 값을 치뤄야 합니다. 내가 공짜를 좋아했다가는 발목을 잡힙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땅을 준다고 했는데 창세기 15장에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땅을 주시겠다고,.. 그런데 아브라함 당대에는 땅을 하나도 주시지 않았고 400년이 지난 후에 이뤄졌습니다. 천천히 이루어 졌습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인줄 알고 오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등기를 하겠다고 돈주고 산것입니다. 사단은 '그냥 써~'하고 말했지만.. 아브라함은 돈을 주고 샀습니다. 이 땅에 이정표를 박는 것이기에 사단은 계속애서 방해를 합니다. 만약 그냥 썼다면, 400년후에 이땅이 아니야- 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혼인신고, 호적을 지키는 것인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땅을 지킨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자 얻어들이고 아들낳고 사느라 사라를 뒷방 늙은이 취급을 했습니다. 사라는 약속의 땅에서 죽었습니다. 헤브론 약속의 땅. 이게 가장 잘한건데, 아브라함은 사라의 속을 썩였습니다. 구브라를 첩으로 들여 아들을 6명이나 낳았습니다. 사라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자기는 아이를 하나 나을까 말까 하다가 이삭하나 낳았는데.. 사라가 이것을 보고, 이삭 결혼하는 것도,.. 남편 사랑도 못받고.. 박복하지요. 그런데 이 사라가 죽고나서 아브라함이 깨달았습니다. '약속의 땅이구나..'
매장지의 이야기가 너무나 중요하기에
23장 20절 :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 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확정되었더라'. 값을 치르고 샀습니다. 25장에 아브라함이 죽습니다. 이삭에게는 자기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삭에게 약속의 땅.. 동쪽 땅으로 가게 하고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기에 가장 별볼일 없었던 이삭만이 영적자녀 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을때가 되어서야 깨닫고 알려주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돌아오고 이삭을 하나 건졌습니다. 이삭외의 아들들이 너무나 잘났기에 이삭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분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기 진전에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매장지가 이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이 땅은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400년이 지난 후 약속의 땅은 후손들에게 미미해졌습니다. 요셉이 기근을 해결하고 걱정이 없자 가나안땅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400년이 지나도 이스라엘 백성이 기억하는 사람은 요셉밖에 없습니다. 성공한 총리.. 요셉의 역할은 해골입니다. 애굽이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역할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오기 위해 요셉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죽어도.. 총리, 총리 요셉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이 400년 후를 내다보고 해골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 역할을 했지만 바로를 축복한 것은 야곱이었습니다. 내가 돈으로 값주고 살것은 오직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돈을 남겨주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갔을때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남겨 주었어도 그것이 자식들을 위해 값을 치룬 은 400냥인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통치는 시기를 겪어내야 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게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글 겪을때 종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험악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난한, 흉년의 험악한 인생도 살아봤기에.. 다 생각해서 나누었던것을 기억하며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매장지 신앙. 보여지는게 있어서 하는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눔만 꿈벅꿈벅 뜨던 이삭이 .. 영적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은뒤.. 또는 400년 뒤를 바라보고 여러분의 적용이 숫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적용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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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정수석
ampbull 수련회를 갈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말씀처럼 매장지를 구입한것처럼 수련회비 입금할수 있도록
ampbull 화요일 직장 이사님과 보직변경으로 협의를 할 예정인데 지혜롭게 잘 대화할수 있기를, 만일 여기까지라면 잘 인도해 주시길.
ampbull 신교제, 신결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길
안성진
ampbull 원주에서 하던 일이 끝나가는데, 안다치고 일 끝까지 마무리 잘하고, 쉬는기간 없이 일할수 있도록 다음일도 허락해주시길
ampbull 여자친구를 더 이해할수 있기를, 여자친구도 저를 더 이해해줄수 있기를
신용홍
ampbull 대표와의 채무 관계에서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를 소원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할수 있기를
ampbull 연봉많이 받을수 있길
ampbull 수련회에 첫 조장으로 가게 되는데, 아직 누군지 모를 조원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방해되지 않도록, 섬길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