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따르니라'(예수님의 개취) 누가복음 527-39 신승윤목사님
청년 큐페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끊어내지 못한 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목사가 되었으니 이제는 죄 짓지 않은 척 포장지로 죄를 덮었습니다. 그렇게 상담하고 부서 사역했습니다. 그렇게 변한지 알았는데 아직도 누리고 대우받고 싶은 마음을 인정이 되는 데도 계속 끊어내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아서 힘든 분들 많이 계시죠. 그 마음 그대로 두면 끝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변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때 내가 어찌할꼬 어찌해야합니까 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나를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나를 구하러 오신것이 아니라 온전하지 않은 나를 구하러 오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때부터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는 삶을 살게하십니다. 이런 제자를 그냥 부르셨을까요? 아닙니다. 다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있고 호불호가 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호불호에 갈렸습니다. 어떤 사람을 예수님이 부를까요? 예수님의 제자 스타일은?
1. 나의 죄 때문에 고민합니다.
고민하는 백성은 레위인입니다. 세리로써 일을 합니다. 민주주의를 호위한다는 명목안에 식민지를 대상으로 세금을 걷습니다. 힘으로 죽이나 돈으로 죽이나 똑같지만 그걸 감추기 위해 명목을 만들어 걷는데 걷는 사람이 세리입니다.
당신 이스라엘 백성은 세금을 많이 냈기에 세리를 싫어했습니다. 세리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통용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리는 미워해도 그 앞에서 뭐라 할 사람들은 없었기에 그렇게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세리는 나 하나냐? 너희가 내 자리에 있으면 안그럴것 같으냐..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언제 어느때에 생겼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레위의 양심이나 선한마음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훝날 사도로 세우시기 위해 예수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내 죄를 알고 적용하는 것은 내가 도덕적이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판단과 정죄하지 말아야 될 이유입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못하니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때 중풍병자가 낫고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님과 만납니다. 죄를 고민하고 있을때 예수님이 부르시고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는 주님을 따라 나설때 세상에서 잃은 것을 보게 하지 않으시고 주실 영광을 보게하십니다.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나를 나의 삶을 비관하면서 나는 안돼 나는 자격도 없어 하면서 죄 가운데 머물고 싶어하는 나의 욕심입니다.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라는 말이 걸리시나요? 그렇다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 이 말씀에 집중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죄인임을 알게되어 앉아있을때 주님이 찾아와주시고 주님이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해주십니다. 내 죄 때문에 진심으로 고민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적용할때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 찾아와주십니다. 죄의 고민이 말씀을 듣게 되는 첫 걸음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세리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죄사함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은 죄의 고백을 중요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로워서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 비방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천국잔치가 열리는 현장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기도의 응답 시대의 사명 영원의 등불 ...그렇게 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고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없는 아내의 집안을 정죄하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려 할때 처가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되고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사모의 믿음을 보는 간증을 하게 하셨는데 하지 못하는 사모를 정죄했습니다. 그 끝은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상대를 허물을 판단했던 그 시간이 다시 저에게 돌아왔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회개의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의원이 병든자에게 필요한 것임을 말씀하셨듯이 회개가 되지 않고 적용이 하기가 싫어도 내 죄 때문에 속상해하고 한탄하는 것 그 마음을 버리면 안됩니다.
적용질문: 지금 앉아 있는 곳에서 고민해야 할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2. 선택과 집중을 합니다.
바리새인은 말 할 것이 없어 율법을 앞세워서 말합니다. 너희는 왜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데 취하였냐고합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와 있는 자들에게 금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금식하면서 문제 해결과 기도응답이 된 사람이 있을것입니다. 기도원에 스스로 들어가서 갇혔는데 바닥에 지나가는 지렁이가 라면 같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골방 안에 귀뚜라미가 들어와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와 친구가 되서 이런 저런 애기를 했습니다. 진짜 그렇게 보냈습니다. 나의 이불과 양말을 건내 봤어요?ㅎ 저 같은 경우에는 진짜 한마디 기도할때 들렸으면 됐어요. 너 목사 맞다! 그렇게 들리면 .. 내 소명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가 목사가 맞는지 듣고싶었는데 결국 듣지 못했지만 금식도 필요하지만 이 본문에서는 이 때에 금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하십니다. 예수님은 금식과 율법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어울리셨습니다. 말씀을 길로 놓고 회개하며 가는 청년들. 그러나 방황하며 흔들리는 것이 청년의 특징이기에 그 과정이 있습니다. 떄로는 부모의 빚을 대신 갚고 동생의 사기사건과 사고를 책임지는 청년도 있으며 직장과 교제에서 되지 않고 공동체에서도 상처받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방황하는 청년들과 함께 하며 사명 감당하게 하소서 했는데 정말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지 못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를 사역자들도 같이 보는데 불만과 상처를 쏟아 내다가도 큐티와 주일 말씀으로 자신을 보고 깨닫고 돌이키는 청년들을 봅니다.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은 경건하고 구별되게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확실한 것은 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고난과 상처와 실수안에서도 말씀을 직면하고 살기위해서 주신 말씀에 집중을 합니다. 청년의 최고의 강점하나! 고난이 끊이지않고 욕심을 내려 놓지 못해도 말씀에 집중하고 매달리는 청년 공동체입니다. 모두가 동일할까요? 그 말씀을 선택하고 집중할까요? 아니죠 붙어만 가라는 말만 듣고 말씀이 길고 어렵다고 졸고. 자신이 죄인인게 당연한거고 나는 위로를 받아야한다고 그 마음으로 빠지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년들은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음란에 빠지고 넘어질때 전화가 옵니다. 어떤 형제는 당당하게 안마시술소 앞입니다! 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저 들어갈까요 말까요? 합니다. 실제로 잡으러가기도 하고 큐티 하라고도 하고 했습니다. 가려면 가지 왜 물어보냐 하니까 병 걸리면 어떡해요? 저 취직했어요 하는데 뭐 같아서 다음날에 나왔어요. 세번이나 반복합니다. 당해야할 것 당하고 받아줘야 할때도 있습니다. 신교제가 왜 이따위냐고 교회에서 사람 죽이게 생겼다고 합니다. 각자 따로 3시간씩 상담하고 가는데 알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합니다. 그래놓고 다음날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쪽쪽거립니다. 이분들도 각자의 선택과 집중을 합니다. 더 깊이 나가지 않고 사역자들을 붙잡고 교회에 붙어가는 것이 최선의 집중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집중하게 되고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사역자들의 기쁨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합니까??
3.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형식과 율법에 집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비유해주십니다.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새 부대에 대해서도 비유해주십니다. 새 옷을 입고 새부대에 들어가는 것이 지경이 넓어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고쳐야 할 점 작정하고 결단하고 하는 것이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데 되지 않는것을 포기하지 않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대는 부대로 옮겨 담아야합니다. 담아내는 나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낡은 부대든 새 부대이든 담지 못하면 부대는 부대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역할과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합니다. 포도주와 새 부대를 포기 하지 말아야합니다. 가장 적합한 환경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변하고 있다면 상대가 변하고 내가 변해가길 기대하며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도박을 했습니다. 돈을 벌어도 도박을 하려고 벌었습니다. 그 행위를 멈춘 후에도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시간과 돈을 버리고 삶의 목적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비단 도박만이 아니라 죄와 낙심가운데 변하지 않음을 내 탓이라고 여기고 술이나 마시고 원망하며 거기 그 자리에 있게 합니다. 포기하고 싶고 그냥 싸우고 비방하는 것을 나두고 싶고 왜 미워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하기 싫어합니다. 익숙해져가니 내가 뭘 포기해야하고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미워하고 다투면서 그냥 그렇게 살라고 말합니다. 중독과 미움은 전혀 다른 장르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기 머무르게 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담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하니 되는 일이 없고 변하지 않아도 나의 역할을 포기 하지 않고 일어나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내가 변화되는 비결은 어떤 상황이든 말씀을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내가 새부대가 되기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씀을 붙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나?
기도제목
고광훈
바쁜일상중에도 말씀 묵상 잘 할수 있도록
아버지와 동생의 신앙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불규칙 생활습관이 개선 될수있도록 아침에 운동하기
장주영
큐티 잘 할수 있도록
너튜브 보는 시간 줄이도록
신교제/신결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원도연
말씀이 잘 들릴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됬는데
사업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잘 사용될수 있도록 말씀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기도
윤석준
1. 동생 건강회복
퇴원했는데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빨리 회복 할 수 있게
2.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하는데 있어서 첫 관리자 프로젝트라 잘 못하기도 하고 빨리 끝내야 하는데 여러가지 큰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내일까지 끝내서 주일에 교회 갈 수 있게
3. 이사를 해야 하는데 매물이 없어서 전전긍긍 하고 있습니다 집근처로 좋은집이 나올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