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핍박
날짜 : 2019.12.01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본문 : 사도행전 5:17 - 32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서 폭발적으로 부흥할때가 가장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항상 그런 위기의 때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이미 시작이 되었으니까 한적한 곳으로 갈수도 없지 않겠는가?
이때 성령은 어떻게 도우시나 보았더니 핍박으로 도우시는것을 오늘 볼수가 있다.
늘 배가 부르면 배가 산으로 갈수 있다. 그래서 오늘 성령의 핍박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1.교회 안 권력의 시기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지난주 16절에 병든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받은 그 때에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것이 아니고
도리어 시기질투가 일어나서 핍박이 일어났다.
다함께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나머지인 감히 상종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더 심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잡아 죽이고자 하는 무리가 바로 교회안에 있었다.
성령으로 가득찬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념했다면
이 시기심으로 가득찬 종교 지도자들은 이 생명을 살리는 자들을 죽이는 일에 전념했다.
시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중대한 범죄이다.
전부 그런것은 아니지만,
헬라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문장 서두에 나오는 단어가 가장 강조되는 단어고,
그 다음에 중요한 단어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단어다.
그런데 이 구절은 원어를 보면 일어나서가 먼저 나오고
가득하여가 마지막에 나온다.
일어나서 는 일어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남성 단수 주어를 가진다.
그래서 바로 대 제사장이 일어나서 시기가 가득했다는 게 가장 강조적인 부분이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사람이 대제사장 이라는 것이다.
사두개인은 부활교리를 믿지 않고 대제사장을 동조하는 무리가 되었다.
한마디로 로마를 등에 업고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다.
이 땅에서 잘 사니 당연히 부활이 싫은 것이다.
대제사장 안나스 가문은 반세기 동안 대제사장을 배출해 내니까
부활이 싫을만도 할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좋았겠지만 예수님 죽이고도 이렇게 계속 잘사는 그들은
영원히 지옥백성이지만 이땅에서는 참 분별이 안될 것이다.
정말 우리는 이땅에서 분별하기가 어렵다.
나는 선을 처음 보고 정식으로 집안사람들 다 알고 결혼을 했지만은
대학교때 소개 받았던 사람이 있다.
잘 모르고 소개해줘서 잠깐 만났는데
왜 만났냐면 학벌이 굉장하였다.
내가 굉장하다고 하면 굉장한 것이다.
두세 번쯤 만났었는데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여러가지로 우리 남편보다 훨씬 낫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전에 내가 사느라고 인생이 바뻤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많은 호감을 표시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하고 안 만났다.
그러고도 여러차례 연락이 오곤 했었는데
그게 많지가 않아서 내가 이렇게 기억을 한다.
그런데 근래에 그 사람이 무슨 회장님 아들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놀랐다 그때 그얘기를 했으면 얘기가 달라졌을텐데.
정말 충격이 좀 되었다.
우리 남편은 자가용을 가지고 와서 부자티를 냈는데
그 사람은 거꾸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혀 몰랐었다. 잠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면 오늘날 목사는 백퍼센트 안됬겠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이 이렇게 쓰셔야 하니까 고르고 골라서 저에게 짝을 지어 주신것 맞고
결혼은 백 퍼센트 잘했다고 생각을 한다.
자, 재미 있었습니까?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기쁨에 열광한 여인들이
무심코 다윗을 칭송하는 심중의 말을 하였는데
이것이 다윗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사무엘상 18장 8절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말고 무엇이냐 하고
하면서 사울이 불쾌해 했다고 한다.
10절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 댐으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이 사울의 시기심으로 인하여서
막 악령이 들어서 막 정신없이 떠들었다고 하니까
이때 사울을 입원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왕이기 때문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것이다.
왕이 아니어도 집집마다 입원을 해야 하는 부모형제가 많이 있다.
그런데 손도 못대는 집들이 있다.
더구나 권세와 돈이 있으면 더더욱 아파도 손을 대지 못한다.
오늘 대제사장에게 권세가 있고,
시기가 가득하니 이게 독한 시기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독한 시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병든 열심이 있다.
시기의 뿌리는 열등감이다.
질투도 시기와 같은데 열등감은 다른 사람이 내가 이루지 못하고
원하던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을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기의 단점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비웃음을 당할 때
또, 비판을 많이 받고 심한 벌을 받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주었다고 생각할 때
거기에서도 질투가 생길수가 있다.
시기와 질투는 부부관계에서도
의처증과 의부증으로 나타는 가장 무서운 병이다.
자신을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공동체를 망친다.
우리들 교회 목자 자매가 각각 홀로살고 있는데
나이가 저보다 많기도 비슷하기도 하고
언니가 의처증 남편때문에 인생을 힘들게 살다가.
드디어 15년동안 혼자서 살았다.
우리들 교회 개척할때 와서.
남편이 다 망해서 노숙자 신세가 되었는데
그나마 조그만 아파트가 재개발인가 재건축이 되어서
다시 합치게 되었다.
이 의처증을 복음으로 통과를 했다고 한다.
정말 기적이다.
동생도 요즘 혼자 살다 언니네 집을 보니
언니와 형부가 깨를 볶고 있다는 거다.
그것이 너무 시기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데에서도 시기가 날 수가 있다.
치매끼가 있는 엄마를 혼자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언니가 미운것이다.
이해타산이 없으면 다들 축복하지만
이렇게 자기 이해타산에 직접 걸리면 자매도 시기가
가득차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말러(Margaret Mahler)는 시기심을 이렇게 정의한다.
- 나는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책을 태워버리고 싶다.
이것이 바로 시기심의 실체이다.
그러니까 사무엘상18장 12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그러니까 이렇게 시기해 하면서도 이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운 그 다윗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것을 스스로 안다.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 자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두려운 것이다.
시기심의 끝에 두려움이 또 있다.
대제사장과 패거리도 시기가 가득해서 이제 기득권에 침해가 되면
옥에 잡아가두고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을 하고 그러면서도
이제 뒤에 26절인가 보면
돌로칠까 두려워하고 적극적인 기쁨과 자유함은 하나도 없고
그저 오직 부정적이고 깎아내리고 의심하고
삶이 시기와 질투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시기와 질투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광적으로 한 것이다.
그들은 성도의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끝에 돈이 있다고 했다.
돈이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었다면 마구 기뻐해줄텐데
이미 그들의 기득권 으로 인해 어떤 펙트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도 당파라고 했듯이 그런 자들도 동류가 있어서 패거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도들보고 패거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 권세가 대단하기에 부러워 하고 두려워 한다.
그래서 옥에 가두었다고 했는데 원문을 보면 사적감옥이 아니고 공적 감옥을 의미한다.
갇혀서도 경비와 감시를 철저히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본문을 보고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다른사람 다른 자녀가 잘되는 꼴을 못보고 시기질투하며 안 그런척 한다.
배울수록 안그런척 하는것에 달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지 못할 감옥에 가둬두고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 아니겠는가?
우리도 사도들이 아닌 이 대제사장 처럼
절대 내려놓고 싶지 않은 그런 기득권이 있다.
건드리면 큰일날 기득권들이 있다.
내가 가야할 자리를 누가 뺏는다면 시기가 가득해서 잡아넣고 싶을 것이 있다.
자 이제부터 생각해보자
여러분 가운데에도 여러분 앞에서 어떤 목원이 와서
전에 목자가 지금 목자보다 훨씬 나으신데요?
전의 목자는 너무 잘 들어주셨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기분이 어떠할까?
앞에서 얘기해도 기분이 나쁘고 뒤에서 이야기해도 기분이 나쁠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사도들인가? 대제사장 인가?
바로 나는 사도가 아니고 대제사장과 그 패거리인 것이다.
대제사장과 그 패거리에 속하는 것이다.
또, 김초원이 박초원보다 설교를 아주 잘하더라고?
그러면 박초원은 들을때 어떻겠는가?
부목사들 앞에서 어떤 성도가
아우 저는요 아무개 목사님 설교가 제일 좋아요~
그럼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뭐 나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것들이 우리 가운데 있는데
내가 참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그 사람을 놓쳤을까?
그런데 제 속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기득권이 있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나는 그사람이 정말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내가 외모... 외형적인것들이 분별이 하나도 안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땐 정말 저의 이런 기득권 이런것이 아니라 고생을했어서 그럴 법도 되었다.
또, 내 책이 구속사를 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늘 그렇지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언제 순위가 올라가나?
내가 이기고 이겨서 대학도가고 출강도 했는데
나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성경을 볼때마다
나는 베드로 사도가 아니라 대제사장 편에 서서 적용이 되는것이다.
우리들 교회는 그동안 모든것을 알리면서 왔다.
교인 총 수도 헌금도 설교도 처음부터 클릭 수를 개수 해왔다.
도데체 여자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무시를 할까? 인정을 할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구원의 총수에 들어가라고 개수를 한 것이고
그 다음에 과연 교회때문에 교회를 한것이 아니고 말씀 묵상때문에 교회를 한 것인데
큐티 설교를 듣고 여러분들은 살아났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들을까?
이것 때문에 처음부터 이 모든것을 개수를 하였다.
많아져서 하는게 절대로 아니다.
첫 주일부터 이 모든것을 개수하였다.
나의 힘을 다 내려놓게 하시느라고
내 속에 기득권을 빼내느라고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성령님이 도우셨다.
자, 여려분 가운데 질투는 나의 힘을 외치면서 여기까지 온 분이 많지 않을까요?
그 힘으로 아무리 잡아 가두어도 하실일을 다 하니까
누가 나를 잡아 가두던지간에 내 속에는 이쪽 저쪽 세력이 다 있다.
대제사장의 세력도 있고 사도들의 세력도 있는데 날 잡아가둬도
하나님은 하실일을 다 하시니까 잘 갇혀 있기 바랍니다.
적용
여러분이 절대로 내려놓지 못하는 기득권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시기와 질투를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촌이 논을 샀는데 배가 아프세요? 한탕 먹을 생각에 배가 고프세요?
고프기 바랍니다.
성령의 핍박 두번째는
2.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핍박을 주십니다.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이렇게 명령을 하셨다. 잘 갇혀있으니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끌어 내었다.
지난번에 갇혀있을때는 그냥 풀어주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옥에서 끌어냄으로 예수님의 다른 능력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항상 때에 맞게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핍박도 받지만 분명히 구해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목적이
너희는 가서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목적이다.
끌어내어는 속박과 고통에서의 구원을 가르킨다.
그리고 끌어내어 니까 강제성이 보인다.
그러니 때가 되면 주님은 출애굽을 시키신 것처럼
사명이 있는 인생은 옥문을 열고 끌어내실 때가 있는것이다.
남편의 옥문 아내의 옥문 자식의 옥문 회사의 옥문 취업의 옥문에서
끌어내 주실때가 있다.
여러분이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하는 사명이 있다면
때가 차면 끌어내 주신다. 사도들도 감옥의 속박에서 빠저 나오게 하신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명이다.
입시의 옥 가난의 옥에서 구출해 주셨는데
제가 시댁의 옥에서 걸레질 하고 있을때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나
이게 나의 주제가 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나.
이생각 할때는 이혼이나 자살따위 등을 생각했지만은
제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사명이 생겼다.
그래서 제가 기도원에 가서 회개를 하고 편지를 쓸때
이 구절을 썼다고 그랬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연단시키고자 고난을 주시는것 같아요.
그런데 연단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게 하고자 이 고난의 옥에서
나의 악을 직면하게 하신다고 한다.
그러니 그때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을 통해서
드디어 나의 악을 직면하고
18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쫒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말씀을 통해 내가 사랑이 하나도 없어서 두려워했구나 이것을 깨닫고
이렇게 시댁에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나는 분가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안했고
편지에도 제가 너무힘들어서 저를 내보내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제가 저를 용서하시라고
저는 사랑받는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가 되겠다고
생명의 말씀으로 편지를 썼다.
그렇게 여러분들 정말 쉽지 않은 지혜이고 타이밍이다.
제가 그렇게 편지를 딱 쓰고 회개를 하니까
생각못한 그때 시댁의 옥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 한겨울에 분가를 했다.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제가 편하라고 분가를 시켰겠는가?
그 다음에는 더 기가막힌 남편의 옥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댁에 있으면 성경을 못 보니까
성령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경이라도 편하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성경을 정말 열심히 봤다.
전도를 정말 열심히 했다. 제가 우리아들 유치원 보내면서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도 전도를 정말 열심히 했다.
그때 전도받은 엄마들 중에 개인적으로
전도를 200명이나 한 제자도 생겼다.
그러니까 만나기만 하면 성경보고 전도하고
저는 확실히 그때로 부터는 정말 한걸음도 뒤로 안빠지고
이렇게 저의 거룩은 양이 차지 않았지만은
전도와 말씀묵상은 계속 했던것 같다.
이제 이 명령을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 오라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이 사도들을 처리하는 이 사안이 너무도 중대해서
유대 대제사장과 그 일당은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원로들까지 다 모집을 했다.
부하들은 이들 공회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아가지고
사도들이 갇힌 옥으로 달려갔는데 없는거였다.
다시 영문도 모른채 돌아와서 이걸 설명하지만
부하들이 생각할때 옥문이 단단히 잠겨있었고
간수들이 계속해서 그 문을 지켰음에도
실제로 감옥 내부에 사도들이 없자 얼마나 당황 했겠는가?
주의 사자를 통해서 감옥을 빠져 나온 것은
29절에도 언급한것 처럼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빠져 나온것이다.
그렇다면 왜 주님의 사자가 지난번에 그냥 풀어주더니
지금은 이렇게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을까?
그러면 또 우리는 이땅에서
이렇게 이제 구원을 통해서 좋은 모양이 되야 되는데
만약에 정상적으로 간수들을 제치고 나오게 되면
사도들이 탈옥한 죄수들이 되지 않겠는가?
나중에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하나님은 항상 백프로 옳으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시는 것이다.
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그당시를 보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자급이다.
모든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그들이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을 못하니까
여기서 인정해야 될 사도들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계속 일이 꼬여가는 것이다.
사실 그 사도들과 대제사장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익을 구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다.
이 제사장과 패거리들은 너무 꼬여버려서
이미 정상적인 생각은 주고 받을수가 없다.
우리가 한번 저 때문에 제 설교 어딘가에
마음이 꼬이게 되면 그 다음에는 제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제 설교가 요즘 은혜가 안된다고
어떤 이단으로 간다는 자매가 있어서
다른곳도 아니고 이단으로 간다고 하니까
제가 어제밤에 급히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들에게 무슨말을해도 한번 꼬여버리니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들으니까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이 너무도 쉬운데
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끝이 없는 분쟁이 이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할때 말씀이 안들린다.
그것을 한번 생각해 봐야한다. 왜 말씀이 안 들리는지를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더라
사도들은 자기 생각이 없다. 즉시 순종해서
새벽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 그러는데
풀려났으면 바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그것때문에 잡혀갔었는데
그런데 새벽에 가서 전했다고 한다.
새벽에 가서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같은 시간에 이쪽에서는 거의 잡아죽일 회의를 하고 있는것이다.
한쪽에서는 계속 가르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잡아죽일 궁리만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도들은 즉시 잡혀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르친다.
그때마다 순종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정말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가 맞다.
생명의 말씀을 가르쳤더니 즉시 잡아오라는 말씀이 또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이 생명의 말씀을 가서 전하라
그래서 전하러 갔더니 지금 또 금새 잡으로 왔다.
18절에도 옥에 가뒀더니
19절에는 끌어내시고 또 다시 잡아오라고 해도
23절 처럼 아무리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섰어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으니까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27절에 또 끌려가는 것이다.
우리였으면 이럴 것이다. 하나님 지금 장난해요?
아니 가져갈것 주지나 말지
그러니까 우리가 애써서 임신이 됐을 때 유산을 하면
아니 데려갈것을 왜 주셔요 이렇게 되는 거다.
이런 질문이 인생의 곳곳에서 생길수가 있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도 나를 잡아 넣으실수도 꺼내실수도 있는 분이시다.
이걸 믿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걸 믿는데 대제사장은 믿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꽉 차있다. 배드로를 잡아 넣어야지만 될거 같은 것이다.
따라오는 감정이 시기 질투 두려움 다 따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성전 맡은자와 부하들은 주의 사도들을 체포할 수가 없는 거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지금 이 부하들을 돌로 칠까봐
13절에 지금 백성들은 사도들과 교회를 칭송하였다.
16절에는 다 나음을 입고 실제적으로 많은 영적 육적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사도들을 만약에 강제적으로 끌고가면 지금 다 돌로 칠 기세다.
그러니까 체포할 수가 없다. 가실까요? 이렇게 동행을 요청했는데
사도들은 이때 또 순순히 응해서 가는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억지로 한 것이 없다.
성도들은 가자하면 가고 있자하면 있고 그래야지
안돼, 이건 가야돼, 안해, 절대 이런이야기 쓰면 안된다.
절대 안돼, 절대 안가 이런것은 없다.
그래서 백성들을 굉장히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백성들 때문에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사도들이 반항하지않고 순순히 그들의 요구를 따른 것은
이미 그들이 경험한것처럼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보호하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7절 3번째 체포전에 이 지도자들을 보면
사도들을 두려워 한다기보단
사도들이 배푼 이적을 본 백성들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표적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다른사람 도우며 열매를 맺어가면
그것이 나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가는 것이다.
결국 나를 도울 사람이란
제가 이렇게 목욕탕 세미나에도 목사님들 보고 하는 얘기가
장로님들이 돕는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살아난 한사람이 나를 돕는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나 때문에 살아난 사람 한사람이 있으면
그사람이 목사님을 도우실 것이다.
내가 지나온 인생을 생각할 때에도
정말 보잘것이 없고 이래도 나때문에 살아난 한사람이
늘 나를 결정적일때 도와주었다.
그래서 저는 간증할것이 참 많다.
점점 확신을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것 같다.
생명걸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돌보신다.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의 힘이 세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들 두려워 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이세상에 두려움이 없겠는가?
하나님이 점점 차지하는 것 만큼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인데
물론 저도 아직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종류가 좀 많이 달라졌다.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도
그들도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것이다.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적용
생명의 말씀을 전하려고 여러분의 옥에서 꺼내주신 일이 있는가?
꺼내주신 일은 무엇인가? 그래서 지금 잘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 유명한 초대교회의 김익두 목사님의 성령의 세례 설교중에 나오는 설교이다.
예수의 원수는 미신자보다 신자중에 많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보다 성경을 잘 아는자 중에 있는것입니다.
제가 불 세레를 받으니 아내가 잘못할때에
전에 같으면 완력으로 제지했을 것이나
이제는 아내를 향하여 울게되었습니다.
교인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눈에서 눈물이 흘러서
견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던 나의 마음에 불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것이 성령인거지 미신처럼 성령을 생각하지 말라
이런 긴 설교가 있었습니다..
자기 영광을 받으려고 성령을 구하지 말것이다.
세례 요한은 성령 받았기 때문에 목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원색적으로 사도바울도 성령받음으로 모든고생 핍박 환란
끝으로 죽음까지 당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도 성령 받음으로 목이 떨어지게 되었고
주로 이분은 목이 떨어지게 된다고 이렇게...
베드로도 성령 받은 것으로 시험을 당하고
죽음의 쓴 잔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고통이 옵니다 죽음이 옵니다.
그렇지만 성령받은 사람은 이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에 기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결론은 성령받고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할렐루야.
성령의 핍박 3번째는
3.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에 당하는 것입니다.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이제 생각해 보자 분명히 지금 감옥에서 사라졌다.
그러면 사도들을 만나자마자 어떻게 거기서 나왔냐 물어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 기적을 하나도 안 묻고 왜 법정에서 하지말라는것을 했냐
왜 권세에 굴복했냐 묻는다.
이들은 사람이 살아난거 이런거 관심이 없다.
어찌하든 사도들을 죽이는게 인생의 목적이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너희에게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을 명령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심기에 거슬렸기에
이 이름이라고 폄하해서 말한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고 십자가의 이름이다.
예수의 이름이 영향력이 있는것은
예수님의 이름에 인격이 있고 영향력이 있고
잘 사셨고 잘 죽으셨기 때문이다.
내 이름에 예수님의 인격이 들어가기를 원해야 한다.
그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니까 복음이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되고
이 사람 예수님 십자가 희생의 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대적해서 죽였다.
예수이름을 가르쳐서 우리에게 죗값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그들 스스로 실체를 드러냈다.
예수님을 죽여놓고 왜 나보고 죽였다고 하냐고 반론을 한다.
그런데 진짜로 죽였다. 그래놓고는
왜 우리한테 예수님 죽였다고 죗값을 돌리냐 이러는 것이다.
그들의 반박논리는 공감되는것은 하나도없다
이세상이 다 그렇다 정치가 그렇고 재판이 그렇고
인본적인 논리가 죄에 대해서 인정을 안하니까
기득권을 침해당하면 못할것이 없는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이 세상 모두는 죄를 지어놓고 왜 죄없는 나보고 그러냐
나는 죄진적 없다 이것이 주제가 다 모두가 그렇다.
아니 그게 아버지 때문이지 왜 나 때문이야.
다들 하나님이 불공평하고 내가 공평하다고 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말라고 그랬어도 아무리 반박을 해도
예수님이 내조하시는 자와 아닌자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사람보다 하나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는 것을 지시할때는
하나님께 순종하기위해 인간적 공의에 불순종하는것이 마땅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믿는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는
질서에 순종을 해야한다.
적용
우리가 순종해야할 책임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할때에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세상 권의에 순종한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불순종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뜻이라고 하면서 불순종을 밥먹듯 하는 여러분들 되시면 안된다.
그러니까 교통 질서 신호 잘지켜야 되는데
이 설교를 앞두고 이렇게 정말 제일 안되는게
사람이 아무도없으면 빨간불에 급히 오기도 한다.
너무 괴롭다. 천국갈때 책임을 물으실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눈물이 나는데
저 때문에 안하겠네 이렇게 늦어 질 때가 많이 있다.
항상 저는 설교를 하니까 모든게 중요한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제가 이렇게 한다.
네번째 성령의 핍박은
4.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당해야 합니다.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이사람 예수의 피를 왜 우리에게 돌리고자 하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아유 그럼요 우리가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그러지 않고
맞다 너희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얼마나 지금 분하겠는가?
그런데 이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세상의 살인죄로는 해당하지 않는게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좋아할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신 이유는 31절에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이제는 회개하고 찔림을 좀 받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사함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을 죽인자들에게도 지금 또한 사랑의 구원이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을 듣고 회개해야하는데
백성중에선 찔려서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났지만
지도자들은 들을수록 강팍해져 갔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아직 때가 안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이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지금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돌아오고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영적 교만이다.
자기가 대제사장 이라는 것이다.
가까운사람 교회안의 직분자들이
열심이면서 가장 무서울수 있다.
결과적으로 총리인 요셉의 후손이
가장 가까운 유다의 후손들을 가장 괴롭힌 족속이 된 것이다.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러니까 이 일은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를 왕과 구주로 높이신일에 관한 설교이자
말씀을 가리키시는 것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인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는 그 말씀을 지금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제사장의 권의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효과적으로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증인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주신 성령이 한 성령이기 때문에
모두 증인이다.
성령받은것은 그러므로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믿음은 순종과 동의어 이다.
성령은 순종으로 나타난다.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이 그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효과적으로 복음의 증인 역활을 감당해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담대한 삶을 살게 될것이다.
적용
지금 누군가에게 핍박받는 모습을 옆에 사람들이 보고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줄수 있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핍박을 받고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전하는 복음은 진짜야 증인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기다리면서 그 길을 가야 한다.
공동체 고백
우리는 교단이나 나라보다 당장 내 옆에 남편 아내 자녀가 가장 힘들다.
우리가 툭까놓고 지금 남편이 아내가 다 죽인다 그러는데
나라 걱정하게 생겼는가?
이분은 아내를 핍박하는 남편 목자님이다.
정말 교회를 나오기도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운동장에서 몇년을 있다가 그 다음에 이제 나오기도 했는데
처음부터 왔었는데 워낙 오래되었으니 그냥 할 수 없이
미안해서 억지로 목자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아내를 핍박을 한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판단하고 핍박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 않은가?
그래도 정말 할수 없어서 목자가 되었다.
할수 없어서 목자를 드렸다.
오늘 목자모임에 제가 들어가는데
그럼 저한테 큐티한편 씩을 내야한다.
이분이 큐티를 보냈다.
신명기 28장 36절에서 57절 질문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당하는 고난이
나의 불순종인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결혼을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합니까?
본인의 질문이다.
그래서 이제 어려서 가난했고
한번도 풍족한 적이 없어 늘 주신것에 만족이 안 되었다.
그래서 올해 말씀을 들어서 또 제물을 우상 삼았다.
믿지 않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누구는 믿지 않아도 잘 사는데
나는 믿어도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없어 보인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은 돈이기에
아내에게 돈벌어 오지 않고 무슨 봉사냐고
무시와 조롱을 주고 내가 편하자고 문제가 생기면
이혼하자고 입에다 말을 달고 산다.
세상 유혹에 잘 넘어가고
믿음은 뒷전이고 돈이 생기면 웃는 저의 모습이 있다.
결혼을 행복에 올려놓고 보니
아내에게 교회는 무슨 교회 돈벌어 오라고
아내에게 막말을 하고 상처주고
내가 편하자고 이혼하자는 말이 자주 나오고
아니 잘난것도 없이 이렇게 맨날 이혼하자고 그러느냐
아휴 우리 아내님이 얼마나 훌륭하신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을 하다보니
나도 죽고 가족도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목사님이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하시는 것이
화가 나면 전혀 생각이 안났다가
제 정신이 들면 이해가 되는 수준이다.
내가 살아야 가정이 살아난다 하셨는데
아직 제가 믿음으로 서있지를 못하고
알지 못하는 나라의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니
아내가 믿음으로 서 있어도 제가 방해를 하는 가해자 인 것이다.
치사한 욕심과 돈 우상으로 인해
전혀 아내를 배려하지 못한 남편임이 인정이 되었다.
아내와 싸운 사건을 부부 목장에서 나누었고
부목자님의 처방이 아이를 붙잡고 이혼하겠다고 말한 부분에서는
권찰에게 사과를 하라 그래서 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목장 카톡방에 이틀에 한번씩 돌아가며 큐티 나눔을
올리는 숙제를 부목자님이 내줘서 하고 있다.
여러분 우리 목장에 목자님 이상하면 이렇게 부목자님이 기도해 줘가면서
숙제도 내 드리고 그래서 우리는 목자도 부목자도 다 똑같은 한 성령이다.
이제는 이혼이라는 말은 안하기로 적용하고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잘 해석받고 중보기도 받으며 살아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분은 아내도 너무 용모 비하를 많이 하시고
그다음에 정말 들을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그렇지만 이분이 교회를 나왔지 않는가?
그리고 양육을 받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렇게 숙제를 해서 내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회개를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이 분한테 목자를 임명하면서
제가 공개적으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우리들교회도 영치가 몇명이 있는데
그중의 한명이 집사님이라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해도 못알아 듣기 때문에
자신은 화도 안나고 또 죄가 없다고 한다.
모든것이 아내 탓인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집사님의 아내 집사님은 계 탓다.
남편이 믿음이 없는데 이렇게 제가 읽어줄 줄은
상상이 제일 안되는 사람것을 오늘 읽기로 하기로 했는데
왜냐하면 핍박을 저도 받아야 되니까
집사님이 막 몇 십년 묵은 체증이 오늘 내려갈 것 같은
계탄 날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집사님이 이렇게 숙제 해줘서 너무 참 귀엽고 이쁘고
그렇게 그냥 욕을 먹으면서도 우리 교회를 나오는게 어디인가?
누구는 오늘 떠난다 그러는데
이게 낫지 않은가? 그저 교양있게 떠나는 것 보다는
영치라는 말 들으면서도 붙어있으면
우리가 같이 천국가지 않을까요?
할렐루야, 최고라고 생각한다.
박수로 격려해달라.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핍박은 교회 안 권력의 시기로 일어날 수 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주신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에 이제 당하는 것이다.
성령의 핍박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당해야 한다.
오늘 이제 성령의 핍박하니까 여러분들이 막 무섭지 않은가?
그래서 제가 오늘은 굉장히 기쁜 찬송을 이제 부르려고 하는데
어떤분이 글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제가 설교할때마다
날마다 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목사님이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목사님이 암에 걸렸다고 했는데
암이 걸린 날은 설교를 어떻게 했나
궁금해서 이것을 막 찾아 봤다는 거다.
그랬더니 암걸린 날은 한 방울도 눈물을 안 흘리더라는 거다.
그것을 보고 우리 목사님이 진짜구나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핍박에 기쁘게 할렐루야 부르세
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할렐루야
기도제목
성수
1.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천주
1. 예배할때, QT할때 말씀 잘 들을 수 있게
2. 매일매일 QT 할 수 있게
3. 항상 아침 일찍 잘 일어나서 운동 빼먹지 않기
4.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가질수 있도록
5. 신교제 할 수 있도록
6. 어떤 일이든 내 기준대로 정해서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7. 참 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8. 누군가에게 받기를 바라기보다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9. 어머니 운동 꾸준히 해서 건강해지셨으면
10. 정욕의 기도가 아닌 말씀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동현
1. 우리들교회에서 처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로뎀나무에서 머물러 잇지 않도록
2. 회사에서 경계를 넘지 않고 자기 역할에 충실하도록
3. 형 전도를 위해 기도, 두려워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4. 적당한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준선
1. 나와 맞는 직장 구할 수 있도록
2. 어머니가 더 건강할 수 있도록
3. 하루에 한번씩은 꼭 기도할 수 있도록
4.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5. 내가 사랑하는 동생 이은석이 주님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6. 아무리 고난이 찾아와도 믿음이 견고한 욥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7. 무력감을 이길 수 있도록
영훈
1. 하나님 처음 사랑했던 사랑 회복할 수 있게. 큐티규칙적으로 할수있게
2.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게 (내 죄보면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잘 망가질 수 있도록)
3.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 찾을 수 있게
4. 믿지 않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5. 친밀감 공감이 어려운데 목장에서 회사에서 부서에서 잘 훈련받을 수 있도록
6. 유치부 교사직분 잘 감당할 수 있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게
7.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먼저 연락할수 있게
8. 상대방이 편해서 마치 다 받아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말길 상대방을 배려해 가면서 말할때 한번 생각하고 말할수 있게 되길
9. 표현을 잘 할수있도록
호진
1.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속에 있도록(주일예배, 목장예배 등)
2. 큐티할때, 설교를 들을때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내려주소서
3. 왼쪽 손과 팔의 근력이 향상되고 조심하도록
4. 머리 속이 맑아지며 적성 검사 잘 준비하고 운동 잘 배우고 실력이 향상되도록
5. 재취업 준비중인데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말씀으로 인도함받도록, 잘 적응하며 계속 다닐 수 있도록
6. 아버지께서 건강하시고 구원 받으시도록, 형의 건강과 구원, 형의 신교제와 신결혼, 어머니께서 발을 다치시고 작년 어깨 수술 받으셨는데 건강하시고 믿음이 견고해 지시도록
7. 아버지와 형의 마음 속에 남겨진 믿음의 씨앗과 어머니의 믿음을 바라보며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섬길 수 있도록
8. 신교제를 위해 잘 준비되도록(신앙, 경제력, 성품 등)
병덕
1. 우리가족 모두 하나님 안에서 화목할수 있도록
2. 지금 있는 내 역할과 자리에 순종하고 인내할 수 있도록
3. 매일 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도울수 있도록
4. 십일조와 헌금을 드릴수 있도록
5. 인간관계에 있어 성숙할 수 있도록
6. 취업길을 하나님께 기도로 물으면서 갈 수 있도록
7. 쉬는 동안에 수요예배를 꾸준히 갈 수 있도록
8. 아프신 할머니 요양원에 계시는데 꾸준히 찾아뵐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