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1. 24 주일예배>
일시 2019 11. 24
찬양 한숨을 바꾸셨네 ┃ 왕 되신 주께 감사하세 ┃ 기뻐해 ┃ 온 땅의 주인 ┃ 주님 내 안에
광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분별이 어렵습니다.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습니다. 분수령적 오늘이 되게 하십니다. 오기만 하면 최고.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갈등을 겪어야 자기를 보게 됩니다. 1. 띵크포럼 2. 까마귀 택배 3. 성평등 조례 개정 서명 동참.
성령의 표적
본문 사도행전 5:12-16
설교 김양재 목사님
여러분도 여러 표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목자님은 아내가 너무 화나게 해서 곡예운전을 했는데 살려주셨대요. 아버지를 3년 만 더 살게 해달라고 했는데 살려주셨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 두려움으로 인해 교회가 정화되니 도리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호호 불어가십니다. 이 무서운 두려움을 주시더니 이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이번에는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어떻게 표적이 나타나는지 봅시다.
첫 째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12)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지만 사도들로 인한 성령의 두려움이 진리임을 확증해주시기 위해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표적들은 사도들을 통한 성령충만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한 사탄충만이 충돌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4장에서 앉은뱅이 고치고 사도들은 잡혔다가 성령의 기도로 풀려났잖아요. 그때 성도들이 위협함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4장 30절에서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자신들의 손을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기사가 일어났을까요?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통한 것이 아니라 어부출신 제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로 인하여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깐 그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당장 옥에 가둡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또 풀어주고 또 성령의 권능의 설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 약속을 하셨죠. 주님이 생전에 제자로 만든 자들은 천명이 채 안 됐어요. 과연 그 약속대로 사도들은 주님보다 더 큰 역사의 수 만명의 신자들을 얻는 역사를 일으켰죠. 이처럼 주님의 복음은 세계 만방에 퍼져야 하는데 이걸 주님이 다 하실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 복음전파를 위하여 성령을 주셨어요. 이 성령을 받고 나가니깐 주님의 권능과 성령의 능력을 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힘을 실어 주셔야 했습니다.
이 성령의 표적은 사도들의 부지런한 손, 깨끗한 손, 따뜻한 손으로 미완료 과거시제로 계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부지런함이 무조건 열심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요. 율법적인 의로움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무조건 얼마나 힘들었냐고. 따뜻하게 대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사도들의 손은 회개의 손✋이었습니다. 쇠말발굽이 나를 찔러서 어찌할꼬 하는 이런 회개의 손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곳곳에 불화가 있다고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잖아요. 그때 상처와 미움에서 벗어나 회복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에 이끌려서 과거의 나를 보라고,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어요. 나를 혼나는 엄마와 아빠가 있어요. 이러면 나의 상처와 미움을 남 탓으로 돌리고 상처 쫓는 기도만 받기를 원하는 것은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는 오래 계속되는 불화가운데서 성령이 효과적으로 나를 비춰주니깐 남 탓이 아니라 내 죄를 심각하게 직면하고 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기쁨이 안식이 없는 것을 느끼며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시는 거에요.
성령의 설교의 주제인 예수님을 빼면 성령의 사역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표적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Sign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표적이 지시하는 바인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병 나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번 에스겔 18장 남 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탓을 하는 굳은 마음을 가졌다고 했잖아요. 부드러운 마음인 새 마음, 새 영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내 탓인 회개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나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고자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럴 때 내가 성령을 받았으면 효과적으로 나를 계속 진리의 성령으로 나를 비춰주시는 거에요. 그러면 그것이 마누라 탓, 남편 탓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악에 직면하게 되는 거에요. 나도 제가 착하고 믿음 좋고만 부르짖고 있다가 시댁과 남편에게 오랫동안 연단을 받으니깐 그때 이제 나는 맨날 착하고 이러다가 그냥 지옥갈 뻔했잖아요. 남도 속고 나도 속는 나의 믿음이잖아요, 그런 고난이 오래 계속되니깐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는 나의 악에 직면하게 되는 거에요. 내가 정말 치사하구나. 나도 악하구나. 나도 미워하구나. 나도 싫은 사람이구나. 나도 교만하구나. 나도 똑같구나. 내 죄를 심각하게 직면하고. 다른 사람의 죄악과는 비교가 안 되는 내 속의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쁨과 안식이 없는 거에요. 진정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으로부터 오는 것과 내 속으로 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거에요. 너무나 괴로우니깐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죠.
성령님은 나를 직면하는 것을 통해서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세요. 그런데 미움과 상처에 골몰해서 좁게 기도만 하면 거기에 부모, 형제, 남탓, 하나님 탓이 되는 거에요. 이것이야말로는 회개의 손 보다는 기적의 손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죠. 절대로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지 못하는 거에요. 하나님께선 사도들을 통해서 이 부드러운 마음에 그리스도의 새 영으로 인도하여 내 탓을 하게 되는 나를 보게 하는 거에요. 이것을 사도들을 통하여 민간의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하는 것. 그러면 이제 주 안에서 깨끗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한 회개의 리더쉽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돌아와서날 도울 수 없어요. 내 안에 내 악을 직면했을 때 예수그리스도께 갔기 때문에 이 악을 직면하니깐 너도 이 고난 가운데 아내 욕, 남편 욕 하지말고 네 죄를 봐라. 이렇게 돼서 나오는 것이죠. 사도들은 대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리더쉽을 맛보게 된 거에요.
주님의 제자들도 그렇지만 교회는 담임목사 이상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훌륭한 목사님을 만나 평신도인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나고보니 정말 표적이고 기사입니다. 이제 우리들 교회도 만인제사장 시대에 평원, 초원, 마을, 목자를 통해서 성령의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나를 양육시키는 분은 띵크 양육자이건 마을이건 초원이건 평원이건 그 리더쉽들의 손을 통하여 개인마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초원마다 평원마다 회사마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손을 통하여.
#목장보고서에요. 선택적 함묵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동안 학교에서 지금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가 있어요. 최근에 4학년 과정 중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당연히 말을 안하죠. 숨기지 말고 공동체 기도 나눔에 올리라고 목장에서 처방을 했어요. 부목자가 순종해서 공동체에 아들의 아픈 내용을 적어올리는 적용을 하고 교회 공동체와 목장 식구들이 함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발표 날짜가 되어서 집에서 발표할 내용을 많이 준비해가죠. 그러고 나서 한마디도 안하죠. 4년 동안 그랬어요. 그런데 이 날 기적같이 말을 했는데 딱 한마디 했어요. 그 한마디는 2019년 이 한마디에요. 그런데 이 한마디에 부모는 기도응답의 감사와 함께 너무나 울었다는 거에요. 목장 식구도 다 울었다는 거에요. 2019년 한 마디해서요. 이것이 진정한 표적과 기사가 아닐까 싶어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은 그래서 부지런합니까? 깨끗합니까? 따뜻합니까? 물론 회개로 인한 것이죠. 이게 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손들이죠.
성령의 표적이 일어나면
두 번째는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야 합니다. (12)
(12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성령의 두려움을 안겨주는 사도들의 카리스마와 영적 권위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대규모 개종을 가져왔어요. 다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비결을 물었을 거에요. 성령의 강한 역사로 인해 지도자들이 잡아가두었을 때
4장 40절에 보면, 성령 공동체 식구들이 한 데 모여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합심하여 기도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유무상통하는 것이 어려운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한 마음이 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있는 자, 없는 자, 배운 자, 안 배운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 기적이에요.
#코이노니아 사역
한 부목자님이, 제가 지금 양육을 받아야 하는데 양육자로 섬기고 있어요. 이건 핍박은 아니고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분의 어려움은 동반자들이 저보다 너무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서요. 이게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이분은 건설현장과 정수기 일을 함께하고 있는데 우리들 공동체에 있으니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늘 언제나 한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들이 잡혀갔을 때 이 공동체에서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네가 어부인데 뭘 알겠어. 잡혀 갈 줄 알았어. 학교를 제대로 나왔나? 이러면서 마음이 나뉘었다면 초대교회는 무너졌을 것이에요. 정말 안 그럴 거 같습니까? 우리는 너무 상처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좀 거칩니다. 그런데 대단한 분들은 교양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그걸 인정해야죠? 그래야 하나가 되어 가죠. 내가 믿음이 있다고 돈 있으면 다냐? 스펙 있으면 다냐? 다다! 이런 생각을 해야죠. 그런 분들이 왜 여기 오겠어요. 믿음이 왕노릇한다고 믿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됩니다. 항상 평균케 되셔야 합니다.
마음을 다 같이하여 많이 나오는 구절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주목을 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야 겠죠. 예수님이 오셨던 이 공동체는 최고의 공동체 이기 때문에 이때는 정말 한 마음이 되었어요. 그래서 일사분란하게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한 뜻을 품었습니다. 초대교회 표적과 기사는 베드로 설교로 행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도들의라고 했기 때문에 사도 공동체도 있고 우리 또 백성공동체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죠. 세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솔로몬 행각에서 와서 유대인들이 보고 놀란 거죠. 이렇게 한 마음이 되는 사람은 모이기를 기뻐합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한 뜻을 품었어요. 그래서 대천덕 신부님은 생전에 성령에 대해서 성경을 표방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인 교리는 성령의 코이노니아 사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고 그러셨어요.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보면,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구절에서 여섯 가지를 보여주는데요. 성부, 성자, 성령, 속성인 사랑과 은혜와 코이노니아를 보여주신 거에요. 교통하심. 코이노니아는 성령의 열매, 은사, 지혜, 성화 그 밖에 어떤 것보다 우선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코이노니아를 갖다 넣었는데요. 샬롬, 호산나처럼 이것도 원어로 코이노니아로 쓰여져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을 17개 단어로 번역을 해놨다고 하는데 코이노니아가 그렇게 중요한 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이 공동체가 너무 중요한 거. 그래서 이 코이노니아가 비싼 값을 지불한다는 거에요.
코이노니아는 결코 진공강 속에서 가르칠 수가 없대요.그것은 삶이기 때문에 이론으로 가르칠 수 없는 성부, 성자, 성령, 사랑, 은혜, 코이노니아. 성령의 교통하심/교제. 교회의 표적과 기사를 원한다면 믿는 것이 중요하고 믿음 위에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한 마음을 다하니깐 믿음 위에 한 마음 한 뜻이 중요한대요.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나가니깐 한 마음의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타적인 목적 즉, 구원을 위해서 참 두려워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고자 할 때 표적과 기사를 많이 주셨어요.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한 마음 한 뜻의 표적과 기사가 풍성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성도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납니다가 우리들 목회자 세미나의 표어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16년 지나고 나서 보니깐 초대교회 같다는 생각이 좀 듭니다. 그렇습니까?
[적용해보세요] 한 마음이 안 되는 곳은 어딥니까? 가정입니까? 목장입니까? 회사입니까?
#간증입니다. 감추인 곳이 성령의 두려움으로 드러나게 하신다고 했는데 패역한 자녀인 제가 돌에 맞아 죽을 인생인데 살려주시고 나의 음란의 죄패, 처녀가 임신하고 낙태한 것을 숨기고 목사와 결혼하고 나의 죄의 징벌로 남편의 동성애가 드러나서 성읍 장로들 앞에 우리들 공동체와 목욕탕목회자 세미나 간증을 통해 우리 부부의 음란이 끊어지는 은혜를 주시고 나의 수치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공동체를 통해서. 코이노니아. 정말 성령의 공동체를 통해서 자기의 모든 것이 성령이 조명해주셔서 악이 드러나 살리고 계십니다.
성령의 표적
세 번째는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십니다. (13-14)
믿음으로 함께 하는 자가 있어도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함께하는 자가 있는데 그 나머지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나머지는 상종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요, 믿는 사람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상종한다는 이 말은 아교풀로 붙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주 강력해서 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진짜 믿음이면 아교풀로 붙인 것 같이 상종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 나머지가 있다고 하잖아요. 교회를 나와도 나머지가 있어요. 상종하지 않는 나머지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 감히라는 표현을 써잖아요. 감히 상종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를 모두 보았는데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는 가지않겠다는 것이에요. 이 얘기는 교회 다니면서 볼 거 다 보지만은 성령이 임하지가 않으니깐 엄청난 간증을 들어도 그 표적의 목적인 예수님임이 믿어지지 않으니깐 주께로 나아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이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고 있으니깐 그 사람은 기적이 안 일어나요. 무엇을 해도 기도응답이라는 이딴 얘기를 안 해요. 본인이 주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깐. 안 믿고 있으니깐.
예수를 믿으니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내 탓을 하니 이게 부드러운 마음이고 굳이 나를 죽인 원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수님의 공의를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실천하게 되잖아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면 내 탓이니깐. 다른 사람의 오장육부 더러운 것보다 내 속에 오장육부 더러운 것이 더 보이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의 악을 보는 것보다 내 속의 악을 보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에요. 그래서 찔려서 어찌할꼬?하는 거에요. 이런 회개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깐 나를 괴롭히는 원수를 하나님 옆에 올려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에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게 되는 거에요.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 그래서 믿는 자가 다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역사를 이루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주께로 나오는 자가 많게 되는 것이죠. 이 얘기는 그 사람들이 적대적이었다기 보다는 뒤에서 칭송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불신자들에게 조차 칭송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그런데 이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라가고 싶은데 대제사장들이 이 사도에게 너무 적대적이잖아요. 잡아 가두잖아요. 그러니깐 우리가 생각하기엔 대제사장이 최곤데 저 어부가 아무리 어쩌구 저쩌구 해도 오래 갈까? 적대적이잖아요.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 임했던 두려움도 한 몫하잖아요. 이 끝, 저 끝. 감히 상종하지 못하지만 뒤에서 칭송은 했다는 거죠. 대제사장이 이상하지만 대제사장은 권세가 있잖아요. 그러고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쪽도 보니깐 앉은뱅이가 일어났죠. 유무상통하죠. 헌금 떼어먹고 죽었다해도 다들 요동함이 없어. 한 마음으로 순종을 하고 표적과 기사를 보이고. 다들 이혼도 안 하고. 죽지도 않고 이러니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든 욕할 수는 없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만 끼고 거룩거룩하게 보여서 누가 칭송을 하겠어요? 인정하고 싶지않지만 적용을 너무 잘하는 거에요.
칭송해도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싫어. 내가 누리고 싶은 게 많으니깐 한 마음이 되었으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것이 같은 방향이잖아요? 그러나 이 사람들은 같은 마음이 안되니깐 상종이 안되는 거에요. 아무리 표적이 행해지고 간증이 행해져도 이런 사람들은 아교풀 같은 지체가 없어요. 그러고 이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사랑해서 말해줄 지체가 없어요. 왜냐하면 듣기 싫어하니깐 듣지를 않으니깐. 매일 좋은 소리만 해주는 거에요. 맨날 유리그릇처럼 다루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니깐 말씀이 안들리니깐 자기에 싫은 소리 조금도 해주면 안되니깐 인간적으로 끼리끼리 찾고 있는 사람 끼리, 배운 사람 끼리끼리. 지역 색으로 끼리끼리. 당한 사람 끼리끼리. 분한 사람 끼리끼리 찾게 되고 결국 믿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 얘기는 같은 교회있지만 교양있게 대하지만 평행선을 달리고 막이 있습니다. 끼리끼리니깐 서로 그것을 몰라요.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 안 받은 사람 보면 막이 있습니다. 거리가 있고 감추어야 하니깐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압니다. 이 시대도 특별한 관심과 결단력이 없이는 사도들의 집단에 가까이 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결국 이 말 저 말해도 그들의 특징은 주께로 나아가기가 싫은 거에요. 이 세상이 좋은 거에요. 그러나 너무 이적을 베풀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을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었어요.
# 제가 왜 이렇게 깨닫냐면 저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이런 게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여집사가 큐티를 하니깐 지금 여자 목사이고 저를 좋아해도 한국교회에서 여자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있으니깐 저와 같이 하기가 힘들 수 있겠죠. 이런 모델이 없었으니깐. 큐티 모임에 왔던 분들도 저를 보면 제가 어떻게 감히 목사님과 하겠어요. 저는 그 수준이 못 돼요라고 들을 때가 있는데 이 구절이 나오네요. 칭송하는데 감히 상종하기는 싫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에요. 건물도 없고 우리 집에서 하는데. 게다가 여자목사인데 어떻게 왓겠어요. 처음 아무도 거의 안왔어요. 천여명이 큐티모임을 했는데 정말 안 왔습니다. 그러나 오지는 못해도 뒤에서는 칭송을 했다고 봅니다. 호의를 가지고 칭송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 거죠. 제가 30여년 큐티모임을 했기 때문에 지나간 사람도 많고 보고 싶은 분도 많은데 해외집회에 가거나 여러 집회에 가면 큐티 모임에 왔었다고. 굉장한 리더쉽들을 발휘하고 계신 것을 볼 때 감사를 드려요. 유대임 모임과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달라도 한 참 달랐기 때문에 문화 충격이 있어서 함께 하기에는 부담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도 우리들교회에 오면 문화충격이 있잖아요. 충격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대답하지 말고 아직 충격중에 있는 분들은 대답해 보세요. 아직도 충격이 있나요? 생각해보세요. 목장에서 자기 얘기를 오픈 하는 것이 충격이잖아요. 기존에 나이가 많을수록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는 거에요. 왜 안하던 것을 하는가. 우리들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감히 상종하지 못하지만 뒤에서 칭송했다면서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홍종일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설교가 있었어요. 목사가 말씀을 바로 전했는데도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말씀없이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거죠. 목사가 한 사람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 구절을 강해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이라면 받아야한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서있는 한 위대한 신앙 전통위에 서있는 한 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선한 동기를 의심하는 대신에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줘야 한다.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은 기도다. 예배시간에 설교자가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느냐보다 어떤 설교자가 설교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설교는 강단위에 서기전에 이미 80%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목회자가 참된 권위를 갖는 것은 소중하다.
그렇게 제가 16년 동안 설교를 해왔는데 설교 한 번 잘 못하면 매도해야 할까요? 제가 더 신뢰를 받아야 되는 거죠. 아직 80%설교한 것이 안되니깐 한 번 설교를 할 때 신뢰를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거죠. 한마디로 저를 신뢰하지 않으면 설교 한편으로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거에요. 그것은 내 탓이에요. 내 탓. 여러분의 탓이 아니고 제 탓. 알았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제가 바로 서있을 수 있도록. 아멘? 아멘!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를 뒤에서 칭송하는 것 같습니까? 뒷 담화하는 것 같습니까?
성령의 표적
네 번째는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게 하십니다. (14-16)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 나머지는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상종하는 자가 더 많기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남녀의 큰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믿는 무리가 계속하여 더하여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 생명의 열매가 있으면 전염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 나오는 자가 아닌 교회에 나오는 자가 아닌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아졌다는 거에요. 다들 부담을 가지고 쳐다본다해도 진정한 주의 공동체는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아멘. 나를 다 욕만해도 이상한 사람이고 다 칭찬만해도 이상한 사람이고. 상종하는 사람이 50이면 주께로 나오는 사람이 50인이면 맞아요. 하나더 많으면 그렇게 모두가 욕하거나 모두가 칭찬하면 이상한 거에요. 이 말이 맞습니다. 믿는 자들 속에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여자를 따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여태까지 믿는 사람 중에 남자만 언급했잖아요? 그런데 회개와 믿음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잖아요. 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와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감히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왜 상종하는 자가 없냐면 제가 이상한 남편과 살라고 하면 그냥 맨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남편과 사냐고 막 뭐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쪽에선 살 수업다 이혼해라 그게 쉽잖아요. 그러면 저를 상종하지 않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나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와 살라고 하면 구속사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떠나는 사람이 있어도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를 더 많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욕한 사람들 생각하면 채워질 수가 없는데 너무 놀라운 표적과 기사였습니다. 정말 십자가를 부르짖고 예수님만 부르짖고 고난이 축복이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얘기는 정말 하지않은 것 같은데 그러니 처음부터 그 상종하기 싫은 나머지는 언제나 있어서 지금까지도 제 마음이 곤고합니다. 그런데 표적을 항상 보여주셔서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는 역사가 매 주일 일어났습니다. 둘이 싸우면 항상 결론은 제 욕을 합니다. 우리들 교회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수 없는 일에 제가 시달립니다. 이게 사업이 아니고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애통해하는 거에요. 그리고 사명이 아니면 제가 욕을 먹고 가야할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날마다 나머지가 저한테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제가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종하기 싫어하는 나머지가 항상 있어요. 어두움이 어둠 속에 빛이 비춰주니깐 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복음이 확실할수록 더합니다. 마음이 항상 곤고했어요.
말씀묵상을 한다는 것은 삶을 나눈다는 것이고. 공부가 아니기에 날마다 나누다보니깐 결국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적용을 듣고 주께로 나오는 놀라운 표적을 보게 된 것이죠. 남편 한 사람 구원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목숨걸고 기도했기에 지난 주 추수감사절에도 수많은 분들이 오셔서 영접을 하셨는데 그게 저의 힘이 아니잖아요. 정말 이거는 성령의 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제가 아는데 전도대회 때마다 한 번도 지나가는 것 없이 수많은 분들이 영접기도를 하신 것은 전적인 표적입니다. 그때마다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는데요.
15절에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이런 행한 표적과 기사로 말미암아 심지어 사람들이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 지나도 치료될 것을 믿고 나왔어요. 불신자들조차 병자들을 데리고 나와 침대와 요에 누이고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이길 바랬는데요, 이것은 문자적으로 읽으면 교주가 따로 없잖아요?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용해서 병고침만 행해서 무리를 일으킨 경우만 많이 있는 거에요. 초대교회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일까 바라는 것은 전폭적인 신뢰를 의미하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도들에게 신유의 은사를 강력하게 행사하셨어요. 맨 처음에 예수가 들어갈 땐 가난 하잖요. 가난 할 때는 말씀을 모르잖아요. 병이 나져야 되는 거에요. 성경은 믿음의 분량대로 읽히게 되어있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영적 소경이 무서워요? 육적 소경이 무서워요? 예? 크게! 다들 영적 소경이 나이스하고 잘 나가고 이럴 때 누가 그를 불쌍히 여기겠어요. 이 땅은 육적 소경만 불쌍히 여기잖아요. 그것은 잠깐이잖아요.
요한복음 9장에 너희가 본 다고 하기에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보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것, 이게 훨씬 큰 죄악이고 우리는 육적인 병만 낫기를 원하잖아요. 그렇지만은 맨 처음 개발도상국 우리나라처럼 빈곤한 나라에게는 병고침 역사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걸로만 예수님을 보일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것이나 ampndash 혈루병 여인,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만져 병이 나은 경우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절대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종류별로 장르별로 수준별로 성령의 나라로 입문했지만 갈 길이 너무 먼 거에요. 그때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 다른 줄 믿습니다.
16절,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이렇게 병고침을 받아요. 물론 모든 병은 병원에서 고쳐야 돼요. 초대교회에는 의료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병자들이 많이 몰려왔잖아요.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질병을 다 가리킨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은 것처럼 복음 전파를 위해서 치유의 능력이 매우 강력했음을 알 수가 있죠. 주변 성읍사람들 까지 모여 드는 것을 보니깐, 사도행전 1장 8절에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되리라한 주의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보여지죠? 조금씩 지경이 넓어지고 있잖아요. 60평생, 70평생 살아도 내 아파트에 옆 지체 밖에 몰라. 그러면 되겠어요? 그러면 되겠어요? 내가 예수를 믿는데.
우리들 교회는 지경이 넓어지도록 6개월만에 한번씩 목장이 바뀌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들만 친하게 지내도 어마어마하게 지경이 넓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목장 바뀔 때마다 끼리끼리. 그 목장 갈 생각하면 지금부터 해골이. 나는 교회를 떠나겠어. 이러지 마시고 6개월 마다 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훈련받으시면 그게 선교 훈련이에요. 외국가면 내 얘기 많이 해요. 회사가도 내 얘기 많이해요. 아이들도 대학가서 전도할 수 있어요. 목장이 6개월마다 바뀌는 게 여러분들 최고 잘사는 훈련이에요. 그러니깐 그거가 지경이 넓어지는 비결이니깐 바뀌는 목장에 순종해주시고 목장에만 순종 잘 하고 가도 최고에요.생각해보세요 내가 목장 바뀔 때마다 불평하고 있나. 순종하고 있나. 그걸 가지고 프로테이지를 한 번.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복음은 점점 지경이 넓어지고 있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좁아지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 싫어하면 좁아지는 거에요. 알겠습니까? 이렇게 교회 하라는 대로 하면 선교훈련, 전도훈련이 다되는 거에요. 맞지 않습니까? 우리들 교회 교인이 어디를 가도 선교사에요. 외국에 가도 선교사, 직장에 가도 선교사.
#공동체 고백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형의 권면으로 우리들 교회에 등록을 했어요. 하지만 골고다 언덕과 같은 삼성역 앞길. 비교불가의 긴 예배시간. 위성예배를 탓하며 교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거짓말을 밥먹듯하며 목장모임에 소홀했습니다. 사실 저희 가정은 모두가 교회 붙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극심한 조현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누나 때문이에요. 17년 전에 시작된 누나의 조현병은 2-3년 주기로 계속 찾아왔고. 한 번 증상이 발현될 때마다 옆에 있는 가족들이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이 안수하며 예수이름을 외쳤지만 소용없었고. 띵크 양육과 양육교사 과정을 통해 내 고난을 해석했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많았습니다. 또 다시 귀신들린 형상으로 옷을 찢고 뛰어다니는 누나의 모습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는 것이냐며 하나님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큐티하는 저녁 하나님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얘야 네가 말하는 선하심으로 따진다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점이 되어 오신 것과 그 잔을 옮겨달라고 땀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어도 죽기까지 자기를 쳐 복종한 예수님의 희생은 선하신 일이냐?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님 십자가 사건도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때 저에게 회개의 영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는 오직 구원이 기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착한 병이 있고 태생이 긍정적인 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잘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포장된 교인이었을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예배와 수련회를 가고 눈물을 흘렸어도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누나의 참혹한 환경을 통해 벼랑 끝으로 몰리니 그제야 제가 무너지고 내 완악함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힘든 환경이 계속 되니깐 내 완악함을 보게 되는 거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도 남탓 하시겠습니까? 누구 탓 하시겠습니까? 그 환경은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시기 위한 너무나도 계획된,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고자 내 옆에 식구들이 수고하는 거에요.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자 내 옆에 모든 환경과 가족이 수고하는 거에요. 저 병이 언제 날까? 저 인간, 잡아 죽일 저 인간 하지 말고 잡아 죽일 내 더러움, 내 악! 청년이 지금 이것을 깨달았잖아요. 너무 힘드니깐 이것을 깨달았어요. 환경이 벼랑 끝으로 무너지니 내가 무너지고 내 완악함을 보게 될 수 있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은 이 가정환경을 두고 다시는 불평하지 않겠다는 기도와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나왔고 우리 가족 모두 구원만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청년부 아이의 간증이에요)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여전히 지옥을 살고 있었겠지만 해달별이 떨어지는 가정환경을 구속사의 시각과 말씀 묵상으로 해석을 하게 되니깐 극복이 아니고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들이 다 달라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깐 교회 마당만 밟던 제가 환경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찬양팀도 섬기고 기쁨으로 교회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대요. 누나가 나으면 기쁘게 출입하게 되겠습니까? 내 죄를 봐야 기쁨과 안식이 있는 거에요. 누나의 죄보다 내 죄가 훨씬 더 가까이 있잖아요. 내 오장육부가 여기 있잖아요. 이것을 보고 깨끗한 손으로 부지런한 손으로 따뜻한 손으로 이거부터 없애려면 내 죄부터 봐야 되는 거죠. 우리 가족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거룩으로 이루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바로 이게 표적이에요. 병이 하나도 안 나았는데도 내 죄를 보고 찔려서 안타까와 어찌할꼬? 구원만이 소망이 되었어요. 그리고 사명으로 나가서 기쁨으로 교회를 오고 이 골고다 언덕 같은 삼성길이 이제 기쁨의 찬양의 길이 되었고 예측불허의 비교불가의 긴 예배시간이 즐거워졌고. 누나가 수고하지 않으면 어떻게 예배가 즐거워지냐구요. 내 옆에서 수고한 식구들은 힘든 식구들이 아니고 나의 거룩을 위해 수고해주는 공로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내탓, 니탓. 아니 내탓은 해야죠. 네탓, 누구탓, 목사님 탓. 목사님 탓을 해야겠어요? 왜 여러분 싸우는데 내탓이라고 해요. 이야말로 성령의 표적과 기사라고 생각됩니다.
성령의 표적은, 말씀을 맺습니다.첫째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입니다.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십니다.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게 하십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리라. 오늘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기도제목
우리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손이 되어서 다 찾아가게 해달라고. 한 마음이 되는 가정과 목장과 회사가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되고 나에게 그런 지체가 있게 해달라고. 믿음으로 한 방향을 쳐다보는 이런 공동체, 모든 가정 되게 해달라고. 나를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도 칭송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혹시 뒷담화를 들었다 해도 그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고 인정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여러분의 복음이 그냥 사소한 일에 순종하고 가면 점점 지경이 넓어질 것인데 우리 목장 개편 이 모든 것에 순종해달라고. 지경이 넓어지실 텐데 지경이 넓어지게 해달라고. 차별 금지법,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고 나라가 분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주님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설교자는 설교하기 전에 이미 80%가 결정이 되어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신뢰받는 설교자는 어떤 설교를 하더라도 신뢰를 한다고 하는데 제가 신뢰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직도 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구원 때문에 걸어가는데 저는 언제쯤이면 신뢰를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깨끗한 손, 부지런한 손, 따뜻한 손으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성령의 표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자체를 알려드려야 하는데 제게 아직도 세상의 표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세상에 신뢰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 날마다 두렵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가는데 제가 신뢰를 받지 못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나뉘어진다면 전적인 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주님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좋은 설교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설교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설교인데 그런 변화시키는 그런 것은 이미 진공간 속에서 코이노니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이기 때문에 때마다 누구보다도 제가 쇠말굽으로 어찌할꼬? 하는 제 속에 죄를 보기를 원합니다. 누가 저를 힘들게 해도 그 사람의 죄보다는 제 속이 더 가깝지 않습니까? 제 속에 오장육부가 얼마나 더러운지 아직도 못 보는 부분이 있어서 애통합니다. 좀 더 보게 도와주시옵시고. 저를 세워주셔야겠습니다. 주님 저를 세워주십시오. 제가 서있어야 성령의 표적이 일어날텐데. 깨끗한 손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이 모든 공동체 지체마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고 아교풀 같은 지체가 곳곳에 많아져서 힘들어서 아버지 하나님 사각지대에 있는 성도가 없도록 다 찾아가주셔서 주님의 그 따뜻한 손으로 위로하여 주옵시고. 성령의 표적으로 이미 내가 성령 받았으면, 성령을 몇 번 받는 게 아니라 이미 받았으면 진리의 성령으로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견인해 가실 것입니다. 반드시 영광된 나라로 인도해가실 것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은 한 번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받는 성령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실 것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우리 속에 불평을 내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성령의 표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참으로 차별금지법, 낙태법 반대가 통과되지 않기를 원하고. 나라의 분열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성령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11. 24 목장 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2019. 11. 24. 4-6:30 비가 내림.
장소 휘문고등학교 식당
참석 한수진, 우지현, 조예진, 이은영
나눔 오늘은 휘문에서 예배드린 목장언니를 만나기 위해 휘문으로 출동. 판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빗길을 뚫고 골고다 언덕 휘문고에서 목장모임을 가졌습니다. 판교채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목자언니 생일 파티와 함께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날씨도 장소도 모임도 참 스페셜했습니다.
A. 죄를 보는 것이 어려웠다. 양육 주제 큐티 가운데 내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부분에서 내 옳음이 주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죄인 것 같다. 진로와 가족을 내 옳음으로 관리하고 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 안되는 게 보니 하나님 내 죄를 보게 한 것 같다.
(목자 : 붙어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오늘 성령의 표적은 지현이가 죄를 보게 된 것 같다)
B. 영적인 순환기, 우리들 교회는 엄마와 떨어져 지면서 스스로 서있게 만든 교회인 것 같다. 양육에서 깊은 나눔을 하고 있다.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지만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만하지 않고 감사의 마음이 들었고 오빠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에 감사가 느껴졌다.
(목자 : 택자라면, 하나님이 이끌어 가주실 것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아닌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다. 또 아교풀 같은 지체들을 붙여주시도록. 기도의 지경이 넓어질 것이다)
#목장스케치#
11월 18일 생일이었던
수진언니 생일축!!하!!잔치
성령의 불 내려주소서

목자님^^
사랑해, 축복해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한수진 목장 일동
# 기도제목입니다.
지현
내 힘 빼고 하나님이 인도하심대로 이끌어주시는 것 기다릴 수 있도록.
엄마 치료문제, 습관이 되어서 힘을 쓰기 전에 큐티했으면 좋겠다.
힘을 써야할 취업, 진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새언니 오빠 가정의 구원을 위해.
아빠와 엄마 사이가 좋았다 안 좋았다 하는데 내 힘을 뺄 수 있도록.
하나님 저희 가정 지켜주실 수 있도록.
예진
검사결과를 위해 12월4일/ 턱관절 치료가 완치가 되었으면.
이 악무는 습관이 고쳐질 수 있도록.
언니의 출산 예정일 2주 남았는데 아이 건강하게 낳을 수 있도록.
오빠의 믿음을 위해, 함께 믿음 행할 수 있도록.
은영
우리 가족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품는 한 마음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직장에 잘 붙어 갈수 있도록.
수진
생활예배 회복. 부지런한 손의 생활예배.
남자친구 등반하였는데 목장에잘 정착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