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4 성령의 표적 (행5:12-16)
여러분들, 여러 가지 표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목자님은 아내가 너무 화나게 해서 곡예 운전을 했는데 살려주셨대요. 아버지를 3 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했는데, 또 살려주셨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을 통해 교회가 정화되니 도리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호호 불어 가십니다. 이 무서운 두려움을 주시더니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이번에는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어떻게 표적이 나타나나 봅시다.
1.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12절)이에요.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그러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지만 사도들로 인한 성령의 두려움이 진리임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런 표적은 사도들을 통한 성령 충만과 또 아나니아 삽비라를 통한 사탄 충만이 충돌할 때 어찌해야 하는 지를 보여 주십니다.
4장에서 앉은뱅이 고치고 사도들은 잡혔다가 성령의 기도로 풀려 났잖아요. 그때 성도들이 위협함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4장 30절에서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자신들의 손을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근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지금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지금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기사가 일어났을까요?
성령의 역사는 그 예루살렘 교회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통한 것이 아니라 그 어부 출신 제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었어요. 그니까 성령의 강한 역사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까 그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당장 옥에 잡아 가두었지요.
하나님은 그들을 또 풀어주시고, 다시 또 성령의 권능의 설교를 하게 하셨어요.
예수님 당시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 라고 약속을 하셨죠.
예, 주님이 생전에 제자로 만든 사람들은 천 명이 채 안 됐어요. 그런데 과연 그 약속대로 사도들은 주님보다 더 큰 역사인 수만 명의 결신자를 얻는 역사를 일으켰죠.
이렇게 주님의 복음은 세계만방에 퍼져야 하는데, 이걸 주님이 다 하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 성령을 주셨어요. 그니까 이 성령을 받고 나가니까 주님의 권능과 성령의 능력을 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힘을 실어주셔야 했어요, 그러니까. 이 성령의 표적은 사도들의 부지런한 손, 깨끗한 손, 따뜻한 손을 통하여서 그 미완료 과거시제로 계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부지런함이 무조건 열심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구요, 율법적인 의로움이 깨끗함을, 의로움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무조건 얼마나 힘들었냐고 하는 따뜻하게 대하라는 이런 것도 아니에요.
사도들의 손은 회개의 손이었어요.
그니까 이 쇠말발굽이 나를 찔러서 어찌할꼬 하는 이런 회개의 손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곳곳에 이렇게 불화가 있다고, 그 다음에 죄의 유혹이 다 도사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에 상처와 미움에서 벗어나서 그 회복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막 성령에 이끌려서 갑자기 과거의 나를 보라고.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어요. 나를 혼내는 엄마와 아빠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은 상처와 미움을 남 탓으로 돌리고. 이렇게 상처 쫓는 기도만 하기를 원하고 받기만 원하는 것은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는 그 오래 계속되고 있는 불화 가운데서 성령이 효과적으로 나를 비춰주시니까 그것이 남 탓이 아니라 내 죄를 이제 심각하게 직면하고 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기쁨이, 안식이 없는 것을 느끼며 이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에요.
성령님은 우리를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니까 성령의 설교의 주제인 예수님을 빼면 성령의 사역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표적은 그 기적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싸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에요.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표적이 지시하는 바인 예수를 믿지 않으면 병 나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주 에스겔 18장도 남 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탓을 하는 굳은 마음을 가졌다고 했잖아요.
그니까 이 부드러운 마음인 새 마음 새 영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이고 그것은 내 탓이 나의 회개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그니까 이제 나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요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거든요. 예, 그럴 때에 성령이, 내가 성령을 받았으면 효과적으로 계속 진리의 성령으로 나를 비춰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마누라 탓 남편 탓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악에 직면하게 되는 거예요.
그니까 제가 착하고 믿음 좋고 공부 잘하고 이것만 부르짖고 있다가 시댁과 남편에게 오랫동안 연단을 받으니까, 그때 이제 나는 맨날 착하고, 고난이 없었으면 착하고....... 이러다가 그냥 지옥 갈 뻔 했잖아요. 나도 속고 남도 속는 나의 믿음이잖아요.
근데 그런 고난이 오래 계속되니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악에 직면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참 치사하구나. 내가 악하구나. 나도 미워하는구나. 나도 싫은 사람 있구나. 내가 교만하구나. 이걸 이제 내 죄가 똑같구나.
그래서 심각하게 직면하고. 그러니까 이제 다른 사람의 죄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내 속에 있는 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은 기쁨과 안식이 없는 거예요. 이 진정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은, 남으로부터 오는 것하고 내 속으로부터 시작되는 건 큰 차이가 있는 거예요. 너무 괴로우니까 예수님께 나가는 거죠.
그니까 성령님은 나를 직면하는 걸 통해서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세요. 근데 상처와 미움에 골몰해 가지고 그냥 쫓기 기도만 하면 늘 거기에 부모 형제가 있기에 남 탓, 부모 탓, 하나님 탓이 되는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회개의 손보다는 기적의 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지요. 절대로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이 부드러운 마음에 그리스도의 새 영으로 인도하여 내 탓을 하게 되는 나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기사와 표적과 일어나게 하는 거. 예, 그러면 이제 주안에서 따뜻하고 깨끗하고 부지런한 회개의 리더쉽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니까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돌아와서 내가 남 도울 수 없어요. 내 안의 악을 직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 갔기 때문에 나도 이 고난가운데 악을 직면하니까 너도 이 고난 가운데 남편 욕, 아내 욕 그것만 하지 말고 니 안의 죄를 봐라 이 얘기가 이렇게 돼서 나오는 거지요.
그래서 사도들을 통하여 이 성도들은 대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리더쉽을 이렇게 맛보게 된 거예요.
주님의 제자들도 그렇지만 교회는 담임 목사 이상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훌륭한 목사님들을 만나 평신도인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나고 보니 정말 표적이고 기사입니다.
이제 우리들교회도 만인 제사장 시대에 평원 초원 마을 목자들의 손을 통하여 성령의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양육시키는 분은 THINK 양육자이건 목자이건 마을이건 초원이건 평원이건, 그 리더쉽들의 손을 통하여 개인마다 집집마다 목장마다 마을마다 초원마다 평원마다 회사마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손을 통하여.
목장보고예요)
선택적 함묵증(選擇的 緘默症,selective mutism은 어떤 상황에서는 말을 잘하는데도 특정한 장소 또는 상황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선택적 함구증이라고도 한다.)으로 초등학교 4학년 동안 학교에서 지금까지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은 아이가 있어요. 최근에 4학년인데 4학년 과정 중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있어요. 여러 가지 날씨와 이런 변화. 그랬는데 그걸 이제 이 아이가 또 당연히 말을 안 하지요. 그래가지고 그걸 숨기지 말고 공동체 기도 나눔에 올리라고 목장에서 처방을 했어요. 근데 이 부목자가 순종해서 공동체 나눔에 아들의 아픈 내용을 올리는 적용을 하고 교회 공동체와 목장 식구들이 함께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발표 날짜가 되어서 집에서 늘 발표할 내용을 많이 준비해 가지요. 그러고 가서 한 마디도 안 하지요. 4년동안 그랬어요. 그런데 이날 기적같이 말을 했는데. 딱 한 마디를 했어요. 그 한 마디는 2019년 이 한 마디예요. 그런데 이 한마디에 부모는 기도응답에 감사와 함께 그냥 너무너무 울었다는 거예요. 목장식구도 다 울었다는 거예요. 그 아이가 2019년 한 마디 해가지고요.
이것이 진정한 표적과 기사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은 그래서 부지런합니까, 깨끗합니까, 따뜻합니까?
이거 물론 회개로 인한 거지요.
이게 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손들이지요.
성령의 표적이 일어나면 두 번째는,
2.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야 합니다.
12절 하)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성령의 두려움을 안겨주는 사도들의 카리스마와 영적 권위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대규모 개종을 가져왔어요.
다들 와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비결을 물었을 거예요.
성령의 강한 역사로 인해 지도자들이 잡아 가두었을 때 4장 30절에 보면 성령 공동체 성도들이 함께 모여,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하고 합심하여 기도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유무상통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는 한마음이 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니까 있는 자 없는 자, 배운 자 안 배운 자가 하나 된다는 것이 기적이에요.
한 부목자님이) 제가 지금 양육을 받아야 되는데 양육자로 섬기고 있어요. 이건 핍박은 아니고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어려움은 동반자들이 저보다 너무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서요. 이게 얼마나 힘든 지 아십니까?
이분은 건설현장과 정수기 일을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들 공동체에 있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늘 한마음 한뜻의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근데 이제 사도들이 잡혀갔을 때 이 공동체에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베드로 사도가 어부인데 뭘 알겠어. 우리와 정서가 다르다니까. 잡혀갈 줄 알았어. 학교를 제대로 나왔나. 대제사장 가문이길 하나.
이러면서 마음이 나뉘었다면 초대교회는 무너졌을 것이에요.
정말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너무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니까 다들 오면, 우리가 다른 교회라고 하지만, 그러니까 상처받고 그래 가지고 굉장히 있잖아요, 베드로 사도들처럼 거칠어요. 그런데 이 대단한 분들은 굉장히 교양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를 인정해야지요? 인정해야지요. 그래야 하나가 되어서 가지요.
그러니까 내가 믿음이 있다고,
돈이 있으면 다냐? 스펙 있으면 다냐?
다다.
이런 생각을 해야죠.
아우 그런 분들이 여기를 왜 오겠어요?
그런데 믿음이 왕 노릇 한다고 믿음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아무렇게 대해도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항상 평균케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게 굉장히 마음을 다 같이하여. 자주 나오는 구절은 읽을 때마다 지나칠 구절이 아니에요. 아주 주목을 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야겠지요.
예수님이 오셨던 이 시기의 공동체는 최고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때는 저희가 한마음이 되었어요. 그래서 일사불란하게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한뜻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는 베드로의 설교 하나로 행해진 것 같지만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라고 했듯이 사도 공동체도 있는 거고, 우리 또 이제 이 백성 공동체도 한마음 한뜻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세상이 보여 주지 못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이때 보여줬어요.
그니까 솔로몬 행각에서, 와서 유대인들이 이걸 보고 놀란 거죠.
이렇게 한마음이 되는 사람들은 모이기를 기뻐합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말씀 듣기를 즐겨 하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한 뜻을 품었어요.
그래서 대천덕 신부(미국 이름은 루벤 아처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3세이다. 1918년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2002년 한국에서 사망하였다. 성서와 성령에 의한 회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음주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사회 정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신학자로 평가받는다.)님은 생전에 성령에 대하여 성경이 표방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교리는 성령의 코이노니아 사역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예, 이 구절에서 여섯 가지 단어를 보여 주는데요,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거기의 속성인 사랑과 은혜와 코이노니아를 보여 주신 것이에요.
교통하심 예, 코이노니아는 성령의 열매 은사 지혜 성화 뭐 그밖의 어떤 것보다 우선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지금 코이노니아를 이렇게 넣었는데요.
그러니까 샬롬 호산나처럼 이것도 원어로 코이노니아로 그냥 쓰여져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거를 무려 열일곱 개 단어로 번역을 해놨다고 하는데, 그니까 코이노니아가 그렇게 중요한 거. 마음을 합해서 하나로 모이는 이 공동체가 너무 중요한 거, 예. 그래서 이 코이노니아는 비싼 값을 지불한다는 거예요. 코이노니아는 결코 진공관 속에서 가르칠 수 없대요. 그거는 삶이기 때문에 이론으로 가르칠 수가 없는,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사랑 은혜 코이노니아, 예! 성령의 교통하심, 교제.
교회의 표적과 기사를 원한다면 그니까 믿는 거이 중요하고 믿음 위에 한마음이 되는 것이 믿는 사람이다 마음을 같이 하니까요. 믿음 위에 한마음 한뜻이 중요한데요.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가니까 이렇게 한마음의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이타적인 목적, 즉 구원을 위해서 참 두려워할 일이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고자 할 때에 도리어 표적과 기사를 많이 주셨어요.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면, 한마음 한뜻의 표적과 기사가 풍성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성도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납니다.가 우리들 교회 목회자 세미나의 표어입니다. 우리들교회가 16년 지나고 나서 보니까 초대교회 같다는 생각이 좀 듭니다.
그렇습니까?
적용해 보세요.
한 마음이 안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가정입니까, 목장입니까, 회사입니까?
간증이에요)
감추인 것이 성령의 두려움으로 드러나게 하신다고 했는데 패역한 자녀인 제가 돌에 맞아 죽을 인생인데 살려주시고 나의 음란의 죄패 처녀가 임신하고 낙태한 것을 숨기고 목사와 결혼을 하고 나의 죄의 징벌로 남편의 동성애가 드러나서 성읍 장로들 앞에 즉, 우리들 공동체와 이 목욕탕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간증으로 우리 부부의 음란이 끊어지는 은혜를 주시고 나의 수치가 다른 사람 살리는 약재료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공동체를 통해서, 그죠? 코이노니아. 정말 성령의 공동체를 통해서 자기의 모든 것들이, 성령이 조명해 주셔서 내 악이 다 드러나서, 지금 우리를 살리고 계십니다.
성령의 표적은 세 번째는
3.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십니다.
근데 믿음으로 다 함께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13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니까 인제 함께하는 자가 있는데 그 나머지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나머지는 상종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요, 예.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이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 상종한다는 이 말은 아교풀로 붙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주 강력해서 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니까 진짜 믿음이면 이렇게 아교풀로 붙인 것 같이 상종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나머지가 있다잖아요. 이렇게 지금 믿는, 믿는다고 하는. 교회 나와도 이 나머지가 있어요. 상종하지 않는 나머지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 감히라는 표현을 썼잖아요. 감히 상종하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를 모두 보았는데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는 가지 않겠다는 것이에요.
이 얘기는 교회 다니면서 볼 거 다 보지만은 성령이 임하지가 않으니까, 엄청난 간증을 들어도 그 표적의 목적인 예수님이, 목적이 예수님인 것이 믿어지지를 않으니까 이렇게 주께로 나아가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의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기적이 안 일어나요. 그래서 뭐를 해도 기도응답이다 이딴 얘기를 안 해요. 본인이 주께로 지금 나아가지를 못하니까, 왜냐하면 안 믿고 있으니까.
그니까 예수를 믿으니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내 탓을 하니 이게 부드러운 마음이고, 그리고 이제 나를 죽인 원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예수님의 공의,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실천하게 되잖아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면, 내 탓이니까. 내 악이 얼마나 더러운가, 다른 사람의 오장육부 더러운 거보다 내 속의 오장육부 더러운 게 더 보이지 않겠어요. 그니까 다른 사람의 악을 보는 것보다 내 속의 악을 보는 건 너무 아픈 일이에요. 그래서 찔려서 어찌할꼬 하는 거예요. 이런 회개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원수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게, 이게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에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이 주께 나오는 거예요.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 그래서 이제 믿는 자가 다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역사를 이루어 주는 거죠. 그래서 주께로 나오는 자가 많게 되는 거죠.
그니까 이 얘기는 그 사람들이 적대적인 얘기라기 보다는 그러고는 뒤에서는 칭송했다고 그랬잖아요, 백성이 칭송 했어요.
불신자들에게 조차 칭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근데 이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라가고 싶은데 대제사장이 사도들을 너무 적대적이잖아요. 막 잡아 가두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대제사장이 최곤데 저 어부, 어부가 아무리 어쩌구저쩌구 해도 저게 오래 갈까? 이런 생각이 있고. 적대적이잖아요.
그런데 또 이쪽에 보면 아나니아 삽비라에게 임했던 그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 하잖아요. 그니까 이끝 저끝 예, 감히 상종은 못하겠지만 뒤에서 칭송은 했다는 거죠. 대제사장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대제사장은 권세가 있잖아요. 그리고 오랫동안 내려오던 전통이 있잖아요.
근데 이쪽도 보니까 앉은뱅이가 일어나지, 그 대단한 재산을 유무상통하지요. 헌금 떼 먹고 죽었다 그러는데도 다들 요동함이 없어 한마음으로 순종을 하고, 표적과 기사를 보이고. 뭐, 다들 이혼도 안 하고 죽지도 않고 이러니까. 따라가기가 너무 힘든, 욕할 수는 없는, 그러나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만 끼고 거룩거룩하게 보여서 누가 칭송을 하겠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적용을 너무 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칭송은 해도 가까이 하시는 너무 싫어. 내가 누리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
한 마음이 되었으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것이 같은 방향이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같은 방향이 안 되니까 상종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표적이 행해지고 간증이 행해져도 이런 사람들은 아교풀 같은 지체가 없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사랑해서 말해 줄 지체가 없어요. 왜냐하면 듣기 싫어하니까, 듣지를 않으니까. 그러니까 맨날 좋은 소리만 해주는 거예요. 맨날 유리 그릇처럼 다루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말씀이 안 들리니까, 자기한테 싫은 소리 조금이라도 해주면 안 되니까, 인간적으로 끼리 끼리만 찾고. 있는 사람끼리만 찾고, 배운 사람끼리 끼리끼리, 지역, 지역색으로 끼리끼리, 당한 사람 끼리끼리, 분한 사람 끼리끼리. 이렇게 찾게 되고 결국 믿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 얘기는 같은 교회에 있지만, 교양있게 대해지만 평행선을 딱 달리고, 그리고 보면 딱 막이 있어요. 근데 끼리끼리니까 그걸 서로 몰라요. 근데 성령 받은 사람이 안 받은 사람을 보면 막이 딱 있거든요. 거리가 있고 절대로 감추어야 되니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 거를 성령 받은 사람은 알잖아요.
이 시대에도 특별한 관심과 결단력이 없이는 이 사도들의 집단에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죠. 결국 이말 저말 해도 그들의 특징은 주께로 나아가기가 싫은 거예요. 이 세상이 좋은 거예요.
그러나 너무 이적을 베풀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을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또 없었어요.
예, 제가 이거 왜 이렇게 깨닫냐 하면, 저도 마찬가지잖아요.
저도, 사도들도 이런 게 처음이었을 거 아니에요? 이게 이렇게 좌악 내려오다 예수님 부활하시고 나서.
저도 여 집사가 막 큐티를 하니까 또 지금은 여자 목사이고. 저를 좋아해도 한국 교회에서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있으니까 저와 같이 하기가 힘들 수 있겠죠. 예, 이런 모델이 없었으니까.
큐티 모임에 왔던 분들도 저를 보면,
제가 감히 어떻게 목사님과 같이 하겠어요. 저는 그 수준이 못 돼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여기 요렇게 이 구절이 나오네요.
칭송하는데 감히 상종하기는 싫은, 정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죠. 건물도 없고 우리 집에서 하는데, 게다가 여자 목사인데 어떻게 왔겠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그렇게 거의 아무도 안 왔지요. 제가 천여 명의 큐티모임을 했는데 정말 안 왔어요.
그러나 오지는 못해도 뒤에서 칭송은 했다고 봅니다.
호의를 가지고 칭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거리를 딱 두게 되는 거죠. 제가 30여년 큐티 모임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참 지나간 분들도 많고 보고 싶은 분들도 많은데, 뭐 해외 집회에 가거나 또 여러 집회에 가며는 큐티 모임에 왔었다고, 그리고 또 굉장한 리더쉽들을 발휘하고 계신 걸 볼 때 감사를 또 드려요.
하여튼 유대인 모임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달라도 한참 달랐기 때문에 이제 문화 충격이 있어가지고 함께 하기에는 부담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우리들교회 오면 문화 충격이 있잖아요, 그죠?
있지요?
자, 충격에서 벗어나신 분들은 대답하지 말고 아직도 충격 중에 있는 분들은 대답해 보세요. 아직도 충격이 있나요?
아직도 충격이 있어요? 근데 왜 이렇게 맨 앞에 앉아 계세요?
무슨 말인지를 모르시는 것 같애.
그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교회에 와서 막 이렇게 목장에서 자기 얘기들을 오픈하는 게 이게 굉장히 충격이잖아요. 근데 기존에, 이게 나이가 많을수록 굉장히 이상해 보이는 거예요. 왜 안하던 걸 하는가.
그래서 우리들교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이렇게 싶습니다.
감히 상종하지 못하지만 뒤에서 칭송했다 그러면서 예, 이케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우리 홍종길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설교가 있었어요.)
목사가 말씀을 바로 전했는데도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둘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말씀 없이 살던지, 그렇지 않으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죠.
목사가 한 사람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 구절을 강해 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받아야 한다. 그것이 성도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는 한, 또 위대한 신앙의 전통에 서 있는 한, 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선한 동기를 의심하는 대신에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해줄 수 있는,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은 기도다.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느냐 보다 어떤 설교자가 설교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설교는 강단에 서기 전에 이미 80 프로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목회자가 참된 권위를 갖는 것은 소중하다.
예, 그렇게 예, 제가 이 16년 동안 설교를 해왔는데, 설교 한 번 잘못하면 여러분들이 매도해야 될까요? 여기까지!
그러니까, 예. 제가 이제 더 신뢰를 받아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직 그 80 프로 설교한 것이 안 되니까, 한번 설교할 때 이케 또 신뢰를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거죠. 한 마디로 저를 신뢰하지 않으면 설교 한 편에도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그것은 내 탓이예요. 내 탓! 여러분 탓이 아니고, 제 탓!
알았죠? 그니까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제가 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를 뒤에서 칭송하는 것 같습니까, 뒷담화 하는 것 같습니까?
성령의 표적 네 번째는,
4.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게 하십니다.
14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 나머지는 감히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상종하는 자가 더 많기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남녀의 큰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 미완료과거형으로써 믿는 무리가 계속하여 더하여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생명의 열매가 있으면 전염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나오는 자가 아닌, 교회에 나오는 자가 아닌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아졌다는 거예요. 다들 부담을 가지고 쳐다본다 해도 진정한 주의 공동체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니까 나를 다 욕만 해도 이상한 사람이고, 다 칭찬만 해도 이상한 사람이고, 상종하는 사람이 50이면, 주께로 나오는 사람이 51이면 맞아요. 하나 더 많으면. 그렇지, 그렇게 모두가 칭찬하고 모두가 욕하면 거 다 이상한 거예요. 이 말이 맞습니다.
믿는 자들 속에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던 여자들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전까지는 믿는 자들 속에 남자만 언급했잖아요. 근데 회개와 믿음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도 이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와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감히 상종하는 자가 없어도, 왜 상종하는 자가 없냐 하면, 제가 이상한 남편하고 살려고 하면, 그냥 맨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남편하고 사냐고 저한테 막! 그냥 합니다.
그러면은 다른 쪽에서는,
그거 살 수 없다. 이혼해라 그러면, 그게 쉽잖아요. 그렇게 되면 저를 상종하지 않죠. 그래서,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어요.
이번에 나라 문제도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말이 안 되는 남편, 이렇게 이제 또 아내, 뭐 자녀. 살라그러면 이게 이렇게 구속사 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그래서 그렇게 떠나가는 사람이 있어도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를 더 많게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들 교회가 됐습니다. 그 욕한 사람들 생각하면 도저히 이렇게 채워질 수가 없는데 너무도 놀라운 표적과 기사였습니다. 정말 십자가를 부르짖고 예수님만 부르짖고, 고난이 축복이라고 외쳤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얘기는 정말 하지를 않은 것 같은데, 그러니 처음부터 상종하기 싫어하는 그 나머지는 언제나 있어서 지금까지도 제 마음이 너무나도 곤고합니다.
그런데 표적을 항상 보여주셔서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는 역사가 매 주일 일어났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둘이 싸워도 항상 결론은 제 욕을 해요. 우리들교회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그래서 정말 수도 없는 제가, 거기에 시달려요. 근데 이게 사업이 아니고 영혼 구원이기 때문에 정말 제가 애통하는 거예요. 그러고 사명이 아니면 내가 욕을 먹고 갈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날마다 이렇게 그 나머지가 있어요. 여러분은 제가 왜 이렇게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 상종하기 싫어하는 나머지가 항상 있어요. 이게 어떻게, 어두움이, 어둠 속에 복음이 들어왔는데, 빛을 비춰주니까, 그게 왜 충돌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복음이 확실할수록 그게 인제 더한 거죠.
마음이 항상 곤고했어요.
말씀 묵상을 한다는 것은 삶을 나누는 것이고 공부가 아니기에 날마다 나누다 보니까 결국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적용을 듣고 보고 주께로 나오는 이 놀라운 표적을 보게 된 것이죠.
그니까 남편 한 사람 구원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목숨 걸고 기도했기에, 지난주 추수감사절에도 수많은 분이 오셔서 영접를 하셨는데, 그게 저의 힘이 아니잖아요. 이건 정말 성령의 힘이라는 거를 여러분들이 아시고, 제가 아는데. 근데 전도대회 때마다 한 번도 그냥 지나감이 없이 수많은 분들이 영접 기도를 하신 것은 전적으로 이건 성령의 표적입니다. 그때마다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는데요.
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그러니까 이런 행한 표적과 기사로 말미암아 심지어 사람들이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 지나 보아도 치료될 것으로 믿고 나올 정도가 되었어요. 그니까 불신자들조차 병자들까지 데리고 나와서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이기를 바랐는데요. 이걸 문자적으로 읽으면 교주가 따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용해서 병고침만 행해서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초대교회에 베드로 그림자 덮일까 바란 것은 정말 전폭적인 신뢰를 의미하고 그 당시 복음전파를 위해서 사도들에게 신유의 은사도 강력하게 허락하셨어요. 왜냐하면은 맨 처음에 예수가 들어갈 때는 다 가난하잖아요. 가난할 때는 이 말씀을 모르는 거예요. 그때는 병이 나 져야 되는 거예요. 성경은 믿음의 분량대로 읽게 되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영적 소경이 무서워요, 육적 소경이 무서워요?
그러나 다들 영적 소경이 너무 나이스하고 잘 나갈 때 그 사람을 누가 불쌍히 여기겠어요? 다들 이 땅에서는 육적 소경만 불쌍히 여기잖아요. 근데 그건 잠깐이잖아요.
요한복음 9장에,
너희가 본다고 하기 때문에 죄가 그저 있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보지 못했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것, 이것이 훨씬 큰 정말 죄악이고. 그런데 우리는 육적인 병만 낫기를 원하잖아요. 그래서. 그렇지마는 맨 처음에 개발도상국, 우리나라 같이 빈곤한 국가는 기적의 병고침의 역사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걸로만 예수님을 이렇게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것이나, 그때 병이 나았잖아요. 열두 해 혈루증 여인이요. 또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통해서 병을 나음 받은 경우를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신유의 은사를 부정하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종류별로 장르별로 수준별로 사발을 벗어나서 성령의 나라로 입문했지만 갈 길이 멀은 거예요, 멀은 거. 그니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다른 줄 믿습니다.
16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은 다 이렇게 병고침 받아요. 모든 병은 병원에서 물론 고쳐야 돼요. 초대교회 당시는 의료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병자들이 많이 몰려 왔잖아요. 근데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질병을 다 가리킨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도 다 나음을 얻으리라는 것처럼 복음 전파를 위해서 그때 치유의 능력이 매우 강력했음을 알 수가 있지요. 그리고 주변 성읍 사람들까지 모여드는 걸 보니까, 사도행전 1:8에,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되리라 한 주의 약속의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보여지죠. 조금씩 지경이 넓어지잖아요.
그러니까 60평생 70평생 살아도 내 아파트에 내 옆집 사람밖에 몰라. 그러면 되겠어요? 내가 예수를 믿는데. 그런데 우리들 교회는 지경이 넓어지도록 6개월 만에 한번씩 목장이 바뀌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도 어마어마하게 지경이 넗어지는 거예요. 근데 목장 바뀔 때마다 끼리끼리,
어우 난 그 목장 갈 생각하면 지금부터 해골이 복잡해. 나는 교회를 떠나겠어. 이러지 마시고 6개월마다 다른 데 가서 그거를 이렇게 하시고, 맨날 다른 사람한테 복음 전하는 거 훈련 받으시면 그게 선교 훈련이에요. 외국 가면 내 얘기 맘대로 해요. 회사 가도 내 맘대로 해요. 아이들도 대학에 가서 전도할 수 있어요. 목장이 6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게 여러분들 최고로 잘 사는 훈련이에요.
그러니까 그거가 벌써 지경이 넓어지는 비결이니까, 이제 바뀌는 목장에도 정말 순종해 주시고 목장에만 순종 잘하고 가도 최고예요. 할렐루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목장 바뀔 때마다 불평하고 있나, 순종하고 있나. 그걸로 한번 프로테이지를 한번, 몇 점. 백 점 중에서!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의 복음은 점점 지경이 넓어지고 있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좁아지고 있습니까?
싫어, 다른 사람 싫어. 이러는 거는 좁아지는 거예요. 아셨습니까?
이렇게 그냥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선교 훈련, 전도 훈련 그냥 다 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우리들교회 교인이 다 어디로 가면 선교사에요. 외국에 가도 선교사, 직장에 가도 선교사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형의 권면으로 우리들 교회에 등록을 했어요. 하지만 골고다 언덕 같은 삼성역 앞 길, 비교불가의 긴 예배 시간. 그 위성 예배 등을 탓하며 교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목장 모임에 소홀했습니다.
사실 저희 가정은 모두가 교회에 붙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극심한 조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누나 때문이에요. 17년 전에 시작된 누나의 조현병은 2-3년을 주기로 계속 찾아왔고 한 번 증상이 발현될 때마다 옆에 있는 가족들이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여러 목사님이 안수 기도를 하며 예수의 이름을 외쳤지만 소용없었고, THINK 양육과 양육교사 과정을 통해 내 고난을 해석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많았습니다.
또다시 귀신들린 사람의 형상으로 옷을 찢고 뛰어다니는 누나의 모습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거냐며 하나님 비난을 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저녁 큐티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제게 물으셨어요.
얘야, 니가 말하는 선하심으로 따진다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점이 되어 이 땅에 오심과 그 잔을 옮겨 달라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어도 결국 죽기까지 자기를 쳐 복종하신 예수님의 희생은 그럼 그 선하신 일이냐?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이제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 때 저에게 회개의 영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는 오직 구원이 기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착한 병이 있고 태생이 긍정적인 제가 겉보기에는 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가치관을 따르는 포장된 교인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예배와 수련회를 가고 눈물을 쏟았어도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누나의 참혹한 환경을 통해 벼랑 끝으로 몰리니 그제야 내가 무너지고 내 완악함을, 그니까 누나의 병으로 내 완악함을 보게 된 거예요. 그 힘든 환경이 계속 되니까 내 완악함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도 남 탓 하시겠습니까? 누구 탓 하시겠습니까?
예, 그 환경은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시기 위한 너무나도 계획된 정말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고자 내 옆의 식구들이 수고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고자 내 옆의 모든 환경과 식구들이 수고하는 거예요. 저 병이 언제 나을까, 저 인간, 저 인간, 잡아 죽일 저 인간 하지 말고, 잡아 죽일 내 더러움, 내 악! 이거를.
근데 이 청년이 지금 깨달았잖아요, 그죠? 너무 힘드니까 이거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 이 환경이 벼랑 끝으로 몰리니 내가 무너지고 내 완악함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은 이 가정 환경을 두고 다시는 불평하지 않겠다는 기도와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나왔고, 우리 가족 모두 구원만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청년부 애 간증이에요.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여전히 지옥을 살고 있었겠지만, 해달별이 떨어지는 가정환경을 구속사의 시각과 말씀 묵상으로 해석을 하게 되니까, 잘 통과, 극복이 아니고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거 언어들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잖아요. 나를 위해 울어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까, 교회 마당만 밟던 제가 환경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지금 찬양팀도 섬기고, 기쁨으로 교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대요.
누나가 나으면 기쁘게 출입하게 되겠습니까? 내 죄를 봐야 기쁨과 안식이 있는 거예요. 누나의 죄하고 내 죄는 내 죄가 훨씬 가까이에 있잖아요. 내 오장육부가 여기 있잖아요.
이거를 보고 깨끗하게, 깨끗한 손으로, 부지런한 손으로, 따뜻한 손으로 이거부터 다 없애려면 내 죄를 봐야되는 거죠.
우리 가족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한마음으로 회개하고 거룩을 이루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바로 이게 표적이에요. 병이 하나도 안 낫는데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죄를 보고 찔려서 안타까워 어찌할꼬! 그리고 구원만이 소망이 됐어요.
그리고 사명으로 나가서 기쁨으로 교회를 오고 이 골고다 언덕길 같은 삼성길이 이제 기쁨의 찬양의 길이 됐고, 그 그냥 예측 불가 비교불가의 예배 시간이 즐거워졌고.
이게 그니까, 이게 누나가 수고하지 않으면 예배가 즐거워지냐구요. 그니까 내 옆에서 수고하는 식구들은 힘든 식구들이 아니라 나의 거룩을 위해 수고하는 너무 공로자들이라 이겁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내 탓 니 탓 그냥, 아니 내 탓은 해야죠. 니 탓, 누구 탓, 목사님 탓, 이렇게 맨날 목사님 탓을 해야 되겠어요?
아니 왜 여러분 싸우는데 맨날 내 탓이라고 그래. 거 목사님 좀 갖다 끼워넣지 좀 말아요.
이야 말로 성령의 표적과 기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령의 표적은,
첫째,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입니다.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십니다.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게 하십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리라
오늘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이 표적이, 기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찬양)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게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게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기도제목)
우리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게 해다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손이 되어서 이제 다 찾아가게 해달라고.
한 마음이 되는 가정과 목장과 회사가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되고 또 나에게 그런 지체가 있게 해달라고.
참으로 믿음으로 한 방향을 쳐다보는 이런 공동체 도 이렇게 모든 가정 다 되게 해달라고.
나를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도 칭송 받는 사람이 좀 되게 해달라고.
혹시라도 뒷담화를 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고 또 인정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여러분의 복음이 그냥 이 사소한 일에 순종하고 이렇게 가면 지경이 넓어질 것인데 우리 목장, 또 개편 이 모든 것에 좀 순종하게 해달라고.
저절로 지경이 넓어지실 텐데 지경이 좀 넓어지게 해달라고.
차별금지법, 낙태법 통과되지 않고,
나라가 분열되지 않도록 우리 다 주님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설교자는 설교하기 전에 이미 80 프로가 결정이 되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신뢰받는 설교자는 어떤 설교를 하더라도 이제 그걸 신뢰를 한다고 하는데,
제가 신뢰받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이제 아직도 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원 때문에 이렇게 걸어가는데 저는 언제쯤이면 이렇게 다 신뢰를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깨끗한 손, 부지런한 손, 따뜻한 손으로 그 기사와 표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 성령의 표적이 예수 그리스도 자체, 하나님 자체, 그걸 알려드려야 하는데, 제 속에 세상의 표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신뢰를 받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 날마다 두렵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가는데 제가 신뢰를 받지 못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렇게 나뉘어 진다면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이렇게 드는데.
주님!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정말 좋은 설교는 많이 모이는 설교가 아니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설교인데, 그런 변화시키는 정말 그런 것은 이미 진공관 속에서 코이노니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기 때문에 때마다 누구보다도 제가 쇠 말발굽으로 제 가슴을 쳐서 어찌할꼬 하는 저의 속의 죄를 보기를 원합니다.
누가 저를 힘들게 해도 그 사람의 죄 보다는 제 속이 가깝지 않습니까? 제 속의 오장육부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아직도 못 보는 부분들이 있어서 너무도 애통합니다. 좀 더 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주님. 저를 세워 주셔야 되겠나이다.
주님. 저를 세워 주십시오. 제가 서 있어야 이 성령의 표적이 일어날 터인데 저의 이런 아버지 하나님, 깨끗한 손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가정과 이 모든 공동체 지체마다, 아버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교풀 같은 지체가 곳곳에 많아져서 힘들어서 아버지 하나님, 정말 사각지대에 있는 성도가 없도록 다 찾아가셔서 주님의 따뜻한, 그 주 안에서의 따뜻한 손으로 위로하여 주시옵시고, 그래서 성령의 표적으로, 이미 내가 성령 받았으면 성령을 몇 번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받았으면 하나님이 진리의 성령으로 사건을 통하여서 우리를 견인해 가실 것입니다. 반드시 영광된 그 나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여러분 성령은 한 번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받은 성령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속의 불평을 내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표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차별 금지법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원하고, 나라의 분열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성령의 표적이 기사가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기도제목>
김밭 기도제목
1. 매일 말씀보며 모든 것에서 내죄를 잘 보고 겸손히 주신 환경에 감사하며 순종하며 잘 나아가길
2. 야식 안하고 건강하게
3. 가족 구원
신지연 기도제목
1. 아버지에 대한 제마음이 한 마음이 되지않고 따뜻한 손으로 섬기지못하고있어요.
마음문이 잘열리지않는데 서로 한마음이 될수있도록..
가정 가운데 성령의 표적을 볼수있기를
2. 건강을위해서..
3. 가족의 구원
4. 신결혼
신정은 기도제목
1.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자존감, 신앙 회복
2. 자꾸 피곤한데 체력관리 잘 하도록
3. 목장을 위해 기도하도록
4. 가족들의 신앙과 건강회복
5. 회사에서 내 할일 잘 하도록 지혜주시길
6. 신교제, 신결혼
오지현 기도제목
1. 학교가 부장을 서로 안하고 일 안하려 하고 힘든 학년 안하려고 해서 불안정한데, 불안해하지 않고 안식누리도록
2. 열등감, 피해의식, 자기연민, 비교불행에서 벗어나고 주님과 온전히 친해지도록
3. 가족구원,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