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1-11 <성령의 두려움>
변하지 않는 환경가운데 주님만난건 감사하지만
성령의공동체는 은혜가 있지만 이땅은 공중권세 잡은 자의 세상이기에 그 은혜로 전쟁을 해야합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면안되고 공의 하나님도 알아야합니다. 교회가 시작되는 이때에 하나님이 무서우신 분이라는것도 알려주셔야하고 영적질서가 잡혀야 되기때문입니다.
1.성령을 속이고 감춘것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바나바이름은 요셉인데 밭을 팔고 들고온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나중엔 안디옥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대단한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고 삽비라는 청옥이라는 뜻이었고 겉으로는 아름다운 선남선녀였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를 질투하여 땅을 팔고 선교하고자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땅을 팔고 돈을 보니 마음이 바뀌어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예수믿고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것을 아는것입니다. 베드로가 얘기한 가득하다는 충만하다는 얘기와 동일한데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에서도 사탄이 충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사탄이 어디로 가는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물리쳐야 합니다. 순식간에 물질을 보고 성령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의 땅에 관심이 없으시고 땅 팔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땅이 그대로 있을때에 네 땅이 아니며 그대로 할 수 없더냐고 도리어 물었습니다. 하나님것인데 왜 하나님이 달라고 하겠습니까? 팔기전에도 그 땅은 당신것이고 판후에도 당신것이 아니오? 당신은 사람을 속인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속인것이오. 기적과 은혜의 하나님만 알았지 거짓말을 했을때 무섭게 다루신다는것을 몰랐어요.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사람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 돈 때문에 우상이되고 내가 나의 주인이되어 결정하는것을 돕게됩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변장하기 때문에 경건의 모양을갖추고 노력을하기에 더 진짜같아 보입니다. 사실 바나바는 원래 부유했지만 고향 구브로에 있는 땅이니까 예루살렘에서는 그 땅이 있는지도 모를텐데 그땅을 다 바친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소유의 일부인 땅을 팔았고 그것도 그 중에 일부만 바친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일부를 드리고 전부를 드렸다고 속인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감추다는 아간의 외투사건과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여리고가 함락되고 나서 아이성을 정탐하라고했는데 여리고에서 한게 없다보니 정탐을 할게 없었습니다. 성도에게 사소한 전쟁은 없습니다. 제일위험할때가 사실 승리할때입니다. 초대교회의 역사가 권능이 일어나니까 안일함이 생긴것입니다. 내 육체속에는 선한것이 하나도 없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학교만 붙으면 하나님께 다 드린다고하고 결혼만 되게 해주시면 건강만 낫게 해주시면 그래놓고 이루어지면 내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생기고 자랑하고 싶고 취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1절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놀러가고 싶지만 겉은로는 주의 일에 시간과 재물을 다 바쳤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말이 선포되자마자 아나니아의 혼이 떠났다는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는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정했기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경외심을 가지게 할 수 있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는것입니다. 우리도 감추는게 한둘이 아닙니다. 누가 바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서원기도하고는 바치겠다고 한게 얼마나 많아요. 6절에 일반적인 장례절차도 없이 시신을 싸고 나갔다는것은 일말의 동정의 가치도 없다는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속이고 감추면서 가고 싶고 놀고싶고 자랑하고 싶을때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령의 두려움이 임한적이 있습니까?
2.외식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감춘행위를 3절이나 나옵니다. 찰떡궁합인 아내가 조력자가 되어 도왔다는것입니다.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지만 정말 좋은 남편과 부인이라면 부인으로써 남편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신앙생활이 어떤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한사람이라도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배경이 외식이었습니다. 외식을 프로수준으로 행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열심당이라는 별명이있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외식하는것보다 없는데서 외식하는게 더 무서운것입니다. 우리들교회는 밖에서 외식할까여 안에서 외식할까요
말씀이들어가고 아는게 많다보니 배울수록 외식이 늘어나는걸 알아야합니다. 외식주의자들이 가는길이 예수님 죽이는겁니다. 외식의 끝판왕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잖아요. 겉모습만 봐도 초라한 난쟁이 창녀 들은 배우고 가진게 없어서 외식도 할 수 없습니다. 좌우지간 물질이 있는게 사탄의 밥이 됩니다. 예수 잘 못 믿는데 화평한것은 사탄에게 종노릇하는것입니다. 복종의 언어를 써야 하지만 때로는 말씀의 검으로 다루어야 할때가 있습니다. 순종을 우상삼아서 그대로 있어야겠습니까? 교회같이 외식과 가증이 드러나는곳이 없습니다. 종교인들이 교회에 모여있으면 염증이 나고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납니다. 교회나간다고 다 믿음이 있나요? 십자가 믿음으로 함께가 아니면 결말이 비참한것입니다. 아나니아도 초대교회의 일원이었던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순종이아니라 진리안에서 순종해야 하지만 진리는 타협하면 안되는 본질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쁜 태도를 보이는것도 진리를 전하기위해서해야하는것입니다.
부부간에 찰떡궁합이라서 무엇을 공모합니까? 믿음의 가치관이 달라서 갈등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외식은 백분율로 몇프로입니까?
3.주의 영을 시험한것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홍수가 나서 망한다해도 3시간뒤를 모르기때문에 악에 담대한것입니다. 삽비라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어요. 그러니까 삽비라가 아나니아보다 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결국 주의영을 시험한것입니다. 하나님에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패역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속인자들의 하나님의 심판은 성령을 속이는 행위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보여주시고 초대교회에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고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녀역시 즉시 당장에 심판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그 누구의 애도도 받지못한 비참한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심판이다 이걸 계속 얘기해주는것입니다. 나답과 아비유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앞에서는 슬퍼하지 말라는것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치신불로 슬퍼라하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각자의 회개를 하라는거지 죄짓고 간 그 사람들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것입니다. 아이성에서도 36명 죽은게 슬픈게 아니라 200만명 살리기위해 36명 죽일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다 크게 두려워 했다고 했는데 이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찔림을 받으라는것입니다. 교회의 틀을 갖추어 갈때 일벌백계가 필요했습니다. 이런말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주었는데 양심에 화인맞은 심령은 하나도 내 얘기같지가 않아서 어떻게 헌금한 사람을 죽일 수 있냐며 기분 나빠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면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대신 죽었구나 하면서 회개해야하는데 헌금했는데 죽었데 하면서 내거를 아까워하면서 드리는 여전히 기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그럼 왜 심판이 안오나요? 하나님이 계속 참고 계십니다. 속에 숨소리까지 다 알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헌금했는지도 다 알고 계시는데 마지막때 심판이 임하는것입니다.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라고 주신 본문입니다. 속이면 안됩니다.
*다른사람의 심판을 보고 성령의 두려움을 보고 내가 회개해야할것은 무엇입니까?
11월10일 기도제목
소미
1.어두운생각을 무너뜨리는 선포기도할수 있길
2.식생활과 운동 다시 시작할수 있길
정희
1.말씀과 기도로 무장할 수있길
2.믿지않는 엄마와 남자친구의 가정이 구원될수 있길
3.결혼식과 집이 구원의 장소가 되길
4.남자친구와 제가 죄고백과 구원의 확신이 생기길
5.새벽예배 드릴수 있길.이번주에 나가길
수지
1.매일큐티로 말씀 놓지않길
2.썸남과 정리할 수 있길
3.하나님이 주신 주어진 시간을 잘 쓸수
4.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