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1. 10 주일예배>
일시 2019. 11. 10. 3부 예배
찬양 #은혜로다 #나 주앞에 서서 #우리 주 안에서 노래 하며 #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 #사람을 살리는 노래 #나 주님의 기쁨이 되기 원하네
광고 1. 추수감사절 전도축제 다음 주!!! 마을별 초청 기도 많이 할 수 있도록, BMW데이 2. 11/14 수능 붙회떨감 기도회가 저녁 7시 반에 있음. 3. 성평등 조례 개정을 위해 4. 판교트램 설치.
암송 신명기 20장 1절 말씀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성령의 두려움
본문 사도행전 5:1-11
설교 김양재 목사님
결혼 전부터 우리들 교회를 다니고 엮이는 가정에 대해서 해석이 다 되었어요. 그래서 이 남편을 우리들 교회에서 잘 만나서 결혼을 하고 보니깐 초대교회 마음이 싹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환경과 가운데 주님 만난 것은 감사하지만은 변하지 않는 환경이 지겹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십일조도 안 한답니다. 요즘 초대교회를 넘어서 중대-말대 교회까지 가는 사람도 있어요.
성령의 공동체는 은혜가 있지만 이 땅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 은혜로 영적전쟁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보호하셨지만 사랑의 하나님만 알면 안 되고 공의의 하나님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이도 쥐새끼 때 못 잡으면 돼지가 되고 나서는 못 잡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는 이때에 하나님이 무서우신 분이라는 것도 알려주셔야 이제 영적 질서가 잡히기 때문에 성령의 두려움을 이제 알려주십니다.
성령의 두려움은
첫 째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1-6)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지난 4장 37절이 이 5장의 배경구절인데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소유를 팔았는가 이 동기가 중요합니다. 성령의 은혜 공동체 중심에 바나바가 있죠. 바나바의 이름은 요셉인데 사도들은 밭을 팔아 가져 온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나중에 보면 안디옥에서 큰 무리를 가르치며 대단한 권위자가 되는 것을 봅니다. 그는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고 회개하고 돌이킨 지체의 믿음을 돕고자 함이었는데 이 공동체에 바나바가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네요.
아나니아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고, 삽비라는 청옥(靑玉)이라는 뜻이고 아름답다는 뜻을 지닙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이는 선남선녀였는데요, 이들이 바나바가 너무 존경을 받으니깐 경쟁심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굉장히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쌀을 이렇게 바쳐도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교회를 위해서 구제를 위해서 이렇게 땅 팔고 집 팔아 본 적 있습니까? 이 사람들을 나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맹렬한 질투로 인해서 우리도 존경 좀 받아보자. 우리도 땅 그것 좀 팔아보자. 여기까지도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돈을 보니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아내와 둘이 마음에 기쁨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둘이 이렇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시야. 하면서 얼마를 감추었는데 누가 알겠어? 그래서 감추었는데.
3절에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런데 이것을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분별을 딱 했어요. 예수 믿고 가장 큰 성령의 은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하러 온 사람에게 네가 사탄이 가득하구나! 그러면서 땅 값을 감췄네. 하면서 도사처럼 말을 했습니다. 충만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초대 교회 안에서 사탄이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알 수 있는 게 성령이 충만하다고 사탄이 어디 간 것이 아니고 사탄도 성령도 같이 역사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성령이 올라 가 있을 때에는 성령이 충만하고 조금 낮아져 있을 때에는 사탄이 충만 한 것입니다. 날마다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물리쳐야 하는데요, 그런데 팔 때는 성령의 은혜로 판 것 같은데 돈을 보니깐 순식간에 사탄이 성령을 무찔렀어요.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을 속였어요. 참 어렵죠.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 직 후에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와 같습니다. 가롯 유다도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때는 은혜가 있었을까요?
하나님은요, 아나니아의 땅에 하나도 관심이 없으세요. 그리고 아나니아보고 땅 팔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도 참 그래 본 적이 없는 거 같네요.
그런데 베드로는 4절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하면서 도리어 아나니아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물었습니까? 그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죠. 하나님 것인데 왜 하나님이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은 공동번역으로 읽어보면 팔기 전에도 그 땅은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요? 어찌하여 당신은 그런 마음을 품었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요. 이렇게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요,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하나님은 기적과 은혜만 주시지 거짓말 하면 무섭게 다루신다는 것을 몰랐죠. 하나님은 아나니아의 땅이 아니라 아나니아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아나니아도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으면서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어요.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늘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념하시길 바래요.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서 결정하는 것을 모든 돕는 대상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자녀 때문에 돈 때문에 우상이 되어서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서 결정하는 것을 돕는 것이죠. 그런데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등장해서 경건의 모양이 있기 때문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가짜가 더 진짜 같아요. 노력을 하니깐. 그러나 사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없기에 드러납니다. 사탄이 가득할 때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괴로움이 일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약간의 부정과 거짓이 개입되었을지라도 그 목적과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니냐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바나바는 부유했지만 이제 고향 그브로에 있는 땅이니깐 지금 예루살렘에서는 그 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잖아요. 그 큰 땅을 팔아서 다 바쳤다는 이런 의미이고 아나니아는 거기에 비해 오늘 소유를 바쳤다고 했지만 3절에서는 이것을 땅이라고 했기 때문에 소유의 일부인 조그만 밭떼기를 팔아서 그것도 일부만 바친 것이죠.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차이가 있는 섬김이었는데요, 그러나 여기에서 액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닌 것이에요. 분석을 하다보니깐 처음부터 그렇게 진심으로 바친 게 아니었어요. 아나니아가 일부를 드리고 전부를 드렸다고 속인 것, 이게 거짓이라는 거에요. 아니나아가 베드로에게 가서 제가 팔고 보니깐요, 너무 쓸모 있는 일이 많아서 제가 욕심이 생겨서 반만 할께요. 그러면 누가 뭐라 합니까? 그런데 전부를 드렸다고 거짓말은 한 것이죠.
여기서 감추다는 말은 여호수아 7장에 아반의 외투사건이 나오며 감추었다라고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나서 아이성을 정탐하라고 했는데 그런데 무엇을 정탐하지? 여리고성에서는 한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깐 걸어서 13바퀴 돌고서 소리 지른 것 외에는 한 것이 없잖아요. 그런데 막상 이기니깐 자만심이 생겨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여리고에서는 돌기만 해도 60만 명이 다 나가서 한 명도 안 죽었으니깐 아이성을 우숩게 보고 3천 명만 내보냈는데 거기서 36명이 죽은 거에요. 성도에게 사소한 전쟁은 없습니다. 제일 위험한 때가 승리의 순간이에요. 초대교회에 역사가 기적, 권능이 강하게 임하니깐 이 초대교회에 안일함이 생겼어요.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어떤 작은 유혹도 이길 수가 없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은 학교만 붙으면 하나님께 다 드린다고 해놓고. 결혼만 되게 해주시면, 건강만 낫게 해주시면 그래놓고 결혼이 되고 학교가 붙고 건강하게 되면은 딱 내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생기는 거에요. 취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내가 다 노력해서 된 것 같아서 내가 감추고 취해서 놀고 싶고 내가 가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부분이 생겨요. 그래서 여호수아 7장 1절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아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데 내가 생색내고 감춰놓고 놀고 싶어요. 자! 아이들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목자도 내려놓고 가고 싶은 곳이 많아요. 그래서 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겉으로는 주의 일에 시간과 재물을 다 바쳤다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너무 열심히 다 바쳤고 헌신했으니깐 나는 쉬어야 해.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속해 있는 재산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는 이 권세를 사탄에게 내려줌으로써 그 안에 거짓을 두고 말게 된 것입니다.
5절에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엎드려져가 먼저 나왔죠.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혼이 떠났대요. 완전 심판입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가 된 것입니다. 듣고는요, 그가 듣고 있을 때 듣자마자 베드로의 말이 선포되자마자 아나니아가 곧 바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혼 이 떠났다는 것은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3번 썼는데 모두가 심판에 따른 형벌의 죽음을 가리킬 때 이 동사를 썼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한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어서 이것이 바로 성령의 두려움이라는 것이에요. 헌금 안 해서 or 헌금했다가 감추었다가 죽었네. 이게 아니고 오! 하나님은 살아계시네 and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네. 이런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는 거에요. 그러니깐 우리도 감추는 것이 한 둘이겠어요? 누가 바치라고 안 했는데 서원기도하고는 병만 고치면, 내가 결혼만 하게 해주면 그냥 사업만 이기게 해주면, 아이가 학교만 잘 들어가게 해주면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많아요? 다 감추고 있잖아요? 여러분 다 죽어야 해요? 그러면 이 본문 설교가 너무 기분이 나쁘죠. 그래서 이 강해설교는요, 기분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본문 따라 가는 것이니깐...
6절에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일반적인 장례절차도 없이 시신을 싸고 나가서 묻었다는 거에요. 동정의 여지도 없다는 거에요. 세 시간 만에 아내가 돌아왔는데 아내도 알지 못하는 장례를 치뤘어요. 비참 그자체라는 것이죠.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성령을 속이고 감추면서 가고 싶고 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을 때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령의 두려움이 임한 적이 있습니까? 아후 내가 가도 되나? 놀아도 되나? 자랑질 해도 되나? 이런 성령의 두려움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성령의 두려움은
두 번째 외식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1-2)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감춘 행위를 아내와 더불어 그 아내도 알더라, 9절에는 둘이 어찌 함께 꾀하여 라고 3절이나 나오는 것입니다. 찰떡궁합인 아내가 조력자가 되어 도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아내들이 많이 모였는데 부인이 되어 알고 있어야 될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부 간에 행복해야 합니다. 구약에 에스더서를 보면 충신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간신 하만이 부인 세레스와 둘도 없는 찰떡궁합인 거에요. 이세벨도 아합이 포도원을 갖지 못해 안타까워하니깐 딱! 찰떡궁합이 되어서 이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죠. 정말 좋은 남편과 부인이라면 부인으로서 남편의 일에 1) 저 사람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가, 2)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나, 이런 것을 점검해야 하는데... 지금 이제 감춘 것을 둘이 다 알았다고 하잖아요. 이때 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 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배경이 외식이었어요. 이들은 청옥처럼 아름다워서 비교와 시기심을 나타낼 정도로 외식을 프로 수준을 행했어요.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너무 잘 아는데 예수님의 출신이 그들의 외식을 빛내줄 출신이 아니잖아요. 나사렛 출신 목수인 것이 너무 용납이 안되어서 이를 갈았잖아요. 바리새인은 구별되었다는 뜻이에요. 별명이 열심당일 정도로 열심히 믿고 부활을 믿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좋은데 여행을 가고 시장을 가고 이래도 기도시간만 되면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니깐 사람들이 다 칭찬해요. 그렇게 추앙을 받다 보니깐 이제 외식을 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외식하는 것보다 없는 데에서 외식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보여주십니다. 그 감춘 마음은 사람들에게 금새 보여지지 않잖아요.
우리들 교회는 밖에서 외식할까요? 안에서 외식할까요? 교양 있고 말씀 들어 놓은 게 많아가지고 없는 데서 외식하겠죠?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어가고 아는 게 많다보니깐 안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배울수록 외식이 늘어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외식주의자들이 가는 길이 예수님 죽이는 거에요. 그래서 외식의 끝판왕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잖아요. 예수님 당시에 새리, 창기, 난쟁이, 삭개오. 겉모습도 지질한 사람들은 무식해서 외식이 뭔지 몰라요. 물질이 없으면 안 그러는데 물질이 생기니깐 감추게 되었어요. 하여지간 물질 있는 게 사탄의 밥이에요. 물질이 있으면서 관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부자가 천국 가는 것)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부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어떤 부인인가, 남편인가 생각해보시길 바래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건 화평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했어요. 예수 잘못 믿는데 그렇게 화평하게 사는 것 이상한 것이에요. 어떨 때는 복종의 언어를 써야 하지만 아내와 남편이 사탄의 노릇을 하고 있다면 눈물을 흘리고 말씀의 검을 대할 때가 있어야 하는 거에요. 내가 예수 믿어도 모든 게 달라지지 않잖아요.
처음엔 구원을 받지만 우리에게는 이루어가야 할 성령 충만이 있습니다. 처음 성령받기 위해 예루살렘 떠나지 말라고 하다가도 나중에는 땅 끝까지 가야 하는데 맨날 기다리겠다고 기다리는 것 밖에 모릅니다. 제가 남편이 못 나가게 하니깐 내가 교회도 순종해서 안 나가야지. 목장도 순종해서 안 나가야지. 이러면서 10년 20년 30년이 되어도 가족이 안 돌아오고 있는데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다고 순종을 우상삼아서 그대로 있어야겠어요? 구원의 길로 떠나야죠. 잠시 후에 지옥길이 기다리고 있는데. 나의 거룩을 위해서 아픔이 있는데요, 그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면 교회만큼 외식과 가식이 드러나는 곳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으면서 이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인지 아세요? 이 종교인들이 교회에 모여 있으면 정말 염증이 나죠. 끊임없이 문제가 나고. 큐티로 날마다 우리를 점검을 하니깐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오늘 저녁에 가서 말씀보고 아침에 말씀을 보니깐 그저 하루가 못 가서 회개하고 만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소망이 있지, 선한 사람 하나 없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뭐 특별하겠어요. 특별한 거 하나도 없고 특별히 죄 많은 사람이 많죠. 그게 특별합니다.
에스더서에서 하만과 세레스, 아합과 이세벨. 믿음이 없으면 찰떡궁합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몰라요. 교회에 나간다고 다 믿음이 있나요? 아나니아도 초대교회에 속한 사람이었잖아요. 십자가 믿음으로 함께가 아니면 정말 결말이 비참한 거에요. 다윗은 미갈 초대 임금 사울의 딸과도 그냥 책망했어요. 미갈이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서 춤을 추다가 바지춤이 내려간 다윗을 교양없다고 멸시했죠. 미갈의 교양으로 어디서 저렇게 바지춤을.. 외식의 끝판왕 미갈. 정죄를 했습니다. 아브가엘은 남편이 부자여도 남편 때문에 애통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순종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순종 하되 내 태도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지 않도록 진리의 그릇인 우리 태도가 예뻐야 하지만요, 이 속에서 진리는 타협하면 안 되는 이런 본질이 있어야죠. 본질은 오더하고 이야기는 기분 나빠하니깐 절대로 안해야지 이러면서 그렇게 평생가면 누구를 전도하겠습니까? 내가 예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예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재혼 부부는요, 믿음이 생기면서 이 아내가 헌금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한 가정으로 합하지 못하고 십일조를 각각하고 있었대요. 목장에서 가정의 머리가 남편이니깐 대표로 남편만 하는 게 어떠냐? 더군다나 재혼가정이니깐. 이제까지 결혼 전부터 제 이름으로 꼬박꼬박 십일조를 했었는데 남편에게 위임하는 것 같아 힘이 빠지고 질투의 감정이 들었대요. 재물이 남편에게 다 옮겨가는 기분이 들었대요. 너무 허전해서 다른 헌금으로 전환해 보았지만 완전 기복과 습관인 것이 깨달아졌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내 것은 내 것이었어요.
# 부목자의 나눔. 직장에서는 예전부터 너랑 아내가 풀 뜯어 먹는 곳(목장)에 가서 너무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차피 네가 삽질은 안하지 부동산을 사든 대출을 받던 이자를 내던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아내 앞에서 쓸 데 없는 말 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은 그렇다. 이런 나눔을 하니깐 목자님께서 부목님은 10년 동안 노다지 부동산 분양권 이야기만 한다. 그러니깐 부목자님은 또 저는 20년, 30년 계속 할지 모른다. 내가 그 나눔을 안하면 교회를 옮긴 거다.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만 제 신혼 때 목자님도 집사님이 예언한 시세가 맞았는데요. 최고에요. 하시면서 다른 교회로 옮기셨다. 목원이 부목자님이 정말 위태로워 보인다고 하니깐, 부목자가 저는 목장에 사모하고 기쁜 마음으로 온다. 그런데 목자님보다 권찰님이 믿음 있는 목장이 훨씬 안정감 있고 좋다 하니깐. 그럼 믿음의 기준이 뭐냐 물어보니깐. 남편이 부목자고 아내가 목자면 베스트에요. 알았어요? 남편이 목자고 아내가 마을이면 더 베스트. 남편이 마을이고 아내가 초원이면 더더 베스트. 남편이 초원이고 아내가 평원이면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는 베스트. 저도 우리들 교회 목장 10년 차인데 이것이 거꾸로 된 가정이 뭔가 불안하다. 우리들 교회가 아내가 바로서서 남편을 바로 세우는 교회가 아닌가. 저는 목장 편성표 나오기 무섭게 목장에 권찰님이 누군가! 이것부터 본다. 결론은 내 자신이 변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배우자가 바로 서고 내가 붙어 가면 나는 몸도 맘도 편한데 내가 바로서고 배우자가 수고하면 내 몸이 얼마나 고되겠다. 이 부목자는 말이죠, S대를 나와서 지치지 않고 부동산 분양권 타령을 하면서 아직도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영도 시험하고 목자도 아내도 날마다 시험 들게 공격을 하시고 그런데 줄기차게 목장을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10년을 나오고 있어요. 이분에게 성령의 두려움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병원도 가보기를 처방합니다. 이 정도는 될지 싶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부부 간에 찰떡궁합이라서 모든 것을 같이 공모합니까? 공모라는 것은 안 좋은 얘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가치관이 달라서 성령의 두려움 때문에 매사에 갈등이 있습니까? 그 갈등이 몇 프로 입니까? 이 갈등은 높은 게 좋은 거에요? 낮은 게 좋은 거에요? 여러분의 외식은 백분율로 몇 점입니까? 자신이 매기는 점수와 상대방이 매기는 점수를 다 한 번 나눠보길 바래요.
성령의 두려움
세 번째는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내십니다. (7-11)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원어에는 7절 앞이 대문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드문 일인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문맥이 완전 바뀌었는데도 그녀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평소와 똑같이 예배를 드리러 딱 온 거에요. 사단이 가득차서 개념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세 시간 뒤에 일을 몰라서 악을 행하는데 담대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보고 방주 지으라고 홍수 오니깐 피하라고 하셔서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데 배라고 하면 어디서 짓겠어요? 물가에서 짓잖아요? 조선사가 다 물가에 있잖아요? 홍수가 오면 피해야 하니깐 산에서 짓잖아요. 사람들이 웃겨서 말을 안 듣는 거에요. 그러고는 뭔가 학벌, 돈을 쫙 보여주면서 믿으라고 해야겠는데 노아가 한결같이 되는 일 없이 120년을 주렁주렁 보여주는 게 없으니깐 아무도 못 갔어요. 자기 식구들 밖에 방주에 못 갔어요. 홍수나서 멸한다고 해도 3시간 뒤를 모르기 때문에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8절에,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아나니아는 그 사실을 말할 기회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삽비라에게는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줬어요. 그러니깐 삽비라가 아나니아보다 더 악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한 번 기회를 줬는데.
9절에,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결국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주의 영을 시험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패역을 가리키는 거에요. 이 근본적인 기복이 뭘 얘기해도 없어지지 않아요. 이들이 주의 영을 시험했다는 것. 이것은 성령을 속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 성령을 속인 행위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보여주시고. 더불어 초대교회에 성령이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너무 강력하니깐 딱 죽었어요. 그 자리에서.
10절입니다.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나니)
그녀 역시 즉시 당장에 심판이 즉각적으로 집행되었다는 거에요. 엎드러져-먼저 망하고 혼이 떠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영혼이 갑자기 죽었다는 게 아니고 그들의 죽음이 어떤 애도도 받지 못한 비참한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장례식도 못 치루고. 아내도 없이. 그냥 땅에 묻었습니다. 세 시간 만에 젊은 사람들이 와서 묻고. 이것은 심판이다. 계속 이것을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레위기 10장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여호와의 불이 그들을 태워서 죽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그 당시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 모든 것을 정비하는 시작이고. 초대교회도 이게 시작이니깐 이렇게 다뤘어요. 이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서는 머리를 풀고 옷을 찢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슬퍼하지말라는 거에요. 오직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슬퍼하라고 하셨어요. 이게 뭡니까?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각자 회개하라는 거지, 나답과 아비후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죄 짓고 간 그 사람들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거에요. 아이성에서도 36명 죽은 것이 너무 슬픈 게 아니라 36명 죽어서 200만 명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라는 거에요. 이게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지 이렇게 해석을 하는 거에요. 진짜 승리하기 위해서 성령의 두려움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수고하신 사건이라는 거에요. 이 두명이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천국 갔는지 안 갔는지 그런 얘기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깐 11절에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 때도 다 크게 두려워하고 삽비라 때도 다 크게 두려워하고. 원문은 큰 두려움을 주어로 사용해서 이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 사건은 두려워하고 찔림을 받으라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차원이에요. 처음 교회라는 용어가 쓰였는데 이 교회의 틀을 갖추어 갈 때 이런 일벌백계가 필요했습니다. 요즘에 이런 세례와 성찬과 치리가 다 사라진 이 땅에서 우리들 교회가 처음부터 치리를 행했기 때문에 정말 자유로운 교회이지만 성령의 두려움이 있는 교회라고 생각돼요. 여리고에 들어 갈 때도 시작할 때 외투를 훔친 아간을 진멸하고 거기를 아골 골짜기로 만들었죠. 나답과 아비후도 여호와의 불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이 사건을 주셨는데 양심에 화인(禍因) 맞은 심령은 전혀 내 이야기로 듣지 않아서 오늘도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니깐 어떻게 헌금을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일 수 있냐가 너무 이상하고 기분이 나쁘고 오늘 괜히 왔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춘 게 얼마나 많습니까? 서원하고 감춘 것. 하나님 달라고 하시지 않았는데 하나님 이거 해주면 다 드릴께요. 달라고 하지 않고 감춘 것들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내 죄를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면서 내가 죽어야 할 것인데 대신 죽어줬구나 이렇게 회개를 해야 되겠는데 무조건 무서워! 헌금 안해서 죽였대. 기복적으로만 보니깐 성경이 하나도 와닿지를 않아서 헌금을 내면서 복 빌어달라고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소유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아까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두 번 다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태는 성경에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그와 같은 일들을 행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심판이 안 오나요? 우리는 여전히 헌금을 떼어놓고 헌금하라고 하면 불평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심판이 왜 안오나요? 계속 하나님께서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속 참고 참고 참다가 마지막 심판할 날이 나가오나니 여러분들이 속인 것을 왜 모르겠어요. 속에 숨소리까지 다 아십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헌금했나 다 아십니다. 하나님 참아주고 계십니다. 마지막에 심판하실 때 너무 무서운 심판인 것을 미리 롤모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속이고 있으면 백수가 문제가 아니고 속이면 이렇게 되는 구나.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라고 주신 본문 인 것이죠. 속이면 안되는구나.
[적용해보세요] 다른 사람의 심판을 보고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 심판 받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저 사람 꼴 좋다가 아니고. 성령의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 너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 한 목자님이 목장에서 나눈 것을 취합해보았습니다.
제 특기가 사기 치는 것입니다. 아내가 하지 말라는 것을 몰래 사서 택배로 회사에 몰래 보낸 적도 있고 저는 간이 작아서 주식을 사서 크게 삔땅을 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아내가 무섭기 때문이에요. 제 별명이 삼척동자라고 없는데 있는 척, 모르는데 아는 척 등 척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있었습니다. 아내도 그렇게 아는 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우리들 교회 오니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니기 힘들다는 교회라고 생각이 드는 게 나눔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아내를 만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반대를 해주는 아내가 있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하게 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 피우다 들키고 고스톱하다가 치리 받은 게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셋팅이면서 더 붙어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처럼 척하면서 가면을 쓰고 편하게 다닐 수 없고 나눔을 너무 많이 하는 게 힘이 듭니다. 이분도 대단한 스카이 출신입니다. 저는 최근에 묻지 않고 집을 욕심으로 사면서 힘들어졌는데 친구가 무이자로 돈 빌려준 것을 하나님께 묻지 않다보니 곤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가 차도 많은데 안타는 고급차를 저에게 넘긴다고 하는데 제가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는데 차키와 인감증명을 보내면서 찻값을 안줘도 되고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천천히 주라고 하는 거에요. 아내에게 얘기하니깐 똑똑한 아내가 목장에 물어보세요. 그런데 저는 내키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할 수 없이 목장에게 나눴네요. 이 친구를 너무 의지하니 하나님이 이 사건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목장에서 나누니 목자님이 이 목장에서 처방하시는 내용을 들어보세요. 한 목원이 갑자기 내 핸드폰을 본 아내가 저를 깨웠어요. 제가 얘기 안했던 대출, 카드, 리볼빙 문자를 보고 깨운 거에요. 급여 외에 가끔 고객에게 업종을 잘 소개시켜주면 일정부분 수수료가 나와 그것으로 빚을 갚아나갈 생각이었는데 그게 쉽지 않고 이번에 아내가 알게 된 거에요. 마이너스 대출, 카드 대출에 결혼 전에 받은 대출까지 이자만 내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환할 거라는 생각은 있지만 계속 이자만 내다보니 계속 커져만 가고 부담이 되고 있었는데 (이제 자기가 하는 업종소개 해주는 것이 안 되는 거죠.) 목장에서 얘기하려고 했지만 못하고 아내에게 들킨 거 잖아요. 목장에게 미리 얘기한 거 하고 새벽에 미리 들킨 거 하고 하늘과 땅 차이에요. 아내가 너무 실망이 커서 이래서 이혼을 하는 구나. 저는 사기 결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깐 조금 전에 이 사기 친 목자님께서 이렇게 처방하시는 거에요. 저도 그랬지만 아내 편하게 해준다고 괜찮은 척 감당하지 못할 것을 하다가 커져서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말하는 것이 남자에요. (자기 얘기를 하는 거죠) 여자들은 투명함을 원하는데 제가 비슷하게 바람피우다 들켜서 자다 깼는데 이분도 (새벽에 들키셨어요.) 아내가 자기를 내려찍으려고 기타를 들고 서있더래요. 그때 눈이 딱 떠졌다는 거에요. 문자가 들킨 게 축복이었던 거 같고 안 드러났으면 더 커졌을 거 같습니다. 집사님도 더 커지기 전에 드러난 것이 축복이고 이제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 분 아내가 제가 차를 팔고 친정어머니께서 목돈을 주셨는데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이 마이나스 대출, 카드 대출, 결혼 전 대출까지 내가 갚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그러면 다 이혼을 하라고 하겠죠. 그러니깐 남편이 6개월 만 시간을 주면 깨끗하게 갚겠다고 했고 직장도 옮기고 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들켰다고. 이때 SOS를 치니깐 천사목자님이 나타나셔서 제가 적용했던 것이 습관이 안 고쳐져서 아내에게 공인인증서를 주니깐 모든 게 드러났어요. 그때 적용으로 한 달에 50만원으로 살겠다고 해서 아내에게 받아서 쓰겠다고 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도와준다고 하는 건지 제가 대학교 때 과 선배가 경마장에서 200만원을 따고 오니깐 엄마가 다음에 또 가라고 해서. 지금은 폐인이 되어서 아직도 경마장에서 살고 있다고. 이런 목자도 필요하네요. 딱 알맞은 맞춤 목자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처방을 해주는 거에요. 남자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여자가 받고자 하는 사랑과 다른데 남자는 허세를 부려서라도 해주고 싶은데 여자가 원하는 것은 이 사람을 믿고 평생 살 수 있나. 이 마음인 거에요. 지금은 경제권을 아내에게 완전히 내주는 적용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적용을 할 때에는 무섭게 칼같이 과감하게 하는 게 좋아요. 목자님도 꼭 그렇게 하세요. 칼 같이, 무섭게 적용하세요. 남자는 죽을 때 까지 허세를 떨다 죽는다고 해요. 저도 안되는 부분 이니깐 부부를 붙여주신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남편에 대해서 아내는 돈 만 갖다 주면 가만히 있는 다는 거죠. 그 나눔에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고 월급만 가져다달라고 한 대요. 이런 아내의 이기적인 모습에 남편이 상처를 받으신다는 거에요. 나에게 돈만 갖다줘, 나가서 무엇을 하건 돈만 갖다 달라고 한다는 거에요. 이거 완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아니에요? 아까 부목자 부부도 돈만 가져다 달라고 한 대요. 그니깐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근절이 안 되는 거에요. 둘이 똑같기 때문에. 함께 똑같이 깨어서 더불어 감춰놓고는 잘 먹고 잘 살 것 같지만 바람이나 피우고 도박이나 하는 거죠. 어쨌든 이렇게 이 부부가 여기 목장에 와서 이렇게 얘기하고 살아나니깐 성령의 두려움이 임한 것 아닐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주의 영도 시험하고 성령도 속이고 외식하며 속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동체에 속해서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씩 가지를 쳐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남편을 사기 친 목자님이 얘기를 해주니깐 그 누구 얘기도 안 듣다가 범털이 얘기를 하니깐 개털이 듣잖아요. 너무 맞는 목장이에요. 정말 가고 오는 오픈 속에 싹트는 우리의 목장과 믿음이라고나 할까요?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두려움은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내게 합니다. 외식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내게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해서 감추는 것이 너무 많아 두렵지만은 성령의 두려움이 생기면은 세상에서는 두려움을 안 느낀다는 거에요. 오늘 신명기 20장 1절이 암송구절이에요.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성령의 두려움을 가질 때 이 땅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때문에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위로를 드리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의 찬양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너무 위로가 되었던 찬양ㅠㅠ)
기도제목
우리가 가고 싶고 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령의 두려움이 임하도록 기도하시길 바래요. 부부간의 성령의 두려움이 같이 임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심판을 보고 이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렇게 엄청난 즉사를 당할 수 있는 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아나니아 삽비라 같은 부부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보게 해달라고. 죽을 죄인데 우리를 살려주고 계시고 유예 기간을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다 회개하도록. 나라를 위해서 차별금지법,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오늘 특별히 수능을 보는 아이들이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주님, 성령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성령의 은혜로 이렇게 날마다 가지만은 높고 높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가면서 당연히 넘어질 때도 많고 낙심할 일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한데도 제가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왜 내가 넘어지는가, 왜 내가 상처를 받는가하면서 그 높고 높은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가리운 것이 아닌가 하면서 너무나 두려워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오늘 성령의 두려움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역시 가면서 넘어질 때마다 주님 저는 백프로 구원 때문에 넘어지면 좋겠지만 아직도 감추는 것이 많아서 참으로 두렵습니다. 백프로 구원을 위하여서 넘어지면 좋겠지만 아직도 제가 자존심의 문제, 피해의식의 문제 아무것도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저에게 이런 두려움이 인간적인 두려움인지 성령의 두려움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주님 그래서 정말 불쌍히 여겨달려고 기도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정말 부족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갈수 있도록. 제가 넘어짐도 하나님이 다 선히 여기시는 그래서 저의 두려움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올바른 두려움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는 두려움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두려움을 정말 기쁜 두려움으로 바꿔주시길 기도합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서 양성평등이 성평등으로 바뀌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시고. 낙태법이 통과되지 아니하며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수능 볼 때에 성령의 두려움이 임하여서 아무 두려움 없이 치룰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11. 10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2019. 11. 10. 4- 6:30!!
장소 3층 테라스
참석 한수진, 이지민, 우지현, 조예진, 이은영 모두 출첵!
나눔 오랜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나눔을 했습니다. 성령의 두려움 말씀 가운데 그동안 감추어둔 우울증과 불면증, 괜찮은 척들에 대해서 나눠주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질병과 가족의 질병으로 두려움, 우울과 상처들이 있는데 서로 만져주고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울고 웃느라 나눔을 못 적었네. 다음엔 간단하게라도 나눔도 적어 올릴 수 있도록.

목장 간식? 꿀맛 닭강정(수진), 생활의 달인 전통과자(예진).핸드메이드샌드위치(지민)먹는 게 남는 거?
기도제목입니다.
지현이 어머니 치료 방향이 잘 인도되어 질 수 있도록.
지현이 준비하는 취업시험들 열심히 준비하고 붙회떨감! 특별히 붙회할 수 있도록!!!
예진이 오빠가 전도축제에 와서 말씀과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예진이 턱관절 치유를 위하여 (26, MRI 검사-12/4 결과)
지민이 대학원 시험 무사히 잘 볼 수 있도록.
은영이 아버지 적혈구, 백혈구 수치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은영이 일 자리 한 주도 열심히 잘 분별하며 구할 수 있도록. 아무거나 안 돼.
수진언니 11/15-18일 여행을 가는데 찔림이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