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1-10
<성령의 기적>
성령 충만하여 방언이 터지니 성령의 설교가 이어지고, 유대인들이 반응하여서 성령의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성령의 공동체는 방언, 신유,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목장에서 하는 일은 교제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을 살려야 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것이 성령의 기적이다. 성령의 기적이 무엇인가?
1. 여전한 방식의 기도이다.
1절) 날마다 구원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시고 백성의 칭송받을 때 베드로가 성전에 올라갔다. 사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성령의 공동체는 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진실한 기도를 하니 기적이 나타났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도구가 되게 한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그런데 성전에 올라갈 새 라는 의미는 계속 올라갔다는 미완료 과거 이다. 초대교회 인들은 유대교 예배와 자신들의 예배 등 두 번의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3000명의 성도를 가르치려면 얼마나 바빴겠는가? 그래도 즐거움과 설렘의 성령의 선물을 주어졌으니 괜찮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성령의 가르침대로 기도하는 인격은 담대하게 문제를 풀게 하신다. 그런데 그날 여전하게 올라가다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신다.큐티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그 자체가 기적이 되게 하셨다.
적용: 우리의 기도시간은 어떤가? 무시로 하는가? 정해놓고 하는가? 내용은?
2~3절)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되니라는 매우 구체적인 표현이다. 개혁 한글은 앉은뱅이라고 되어있다. 행4:22 보면, 그 때 46세 됐다고 한다. 40여 년간 굳어진 뼈가 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메고 오고 성전 문에 두는 것과 구걸하는 일이 미완료 과거를 반복 사용해서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앉은뱅이의 환경과 앉은뱅이
미문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인 명소의 성소의 입구이니 통행인이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구걸하기에는 목이 너무 좋았다. 여기서 영적으로 생각해보자. 거룩한 성전 앞에서 물질을 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이 앉은뱅이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은 등 뒤로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일어나게 하고, 일어나는 것은 다 포기했다. 손은 움직일 수 있는데 걷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나는 못해 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오면 좋아하고, 도움이 없으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자타 공인하는 앉은뱅이였다.
세상에 요구하는 것도, 끊지 못하는 것도 구걸이다. 술, 담배, 여자 모든 중독 세상에 대해 구걸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줘야 하지 않아 하면서 맡겨 논 것처럼 달라고 하는 것이 구걸이다. 그리고 나면서 앉은뱅이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영적 앉은뱅이이다.
적용: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게 무엇인가? 교회를 뒤로 하고 날마다 세상에 구걸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도 못 오고, 와준다고 생색을 내지 않는가?
2. 급한 일 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이다.
4절)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주목한 것이다. 성전 미문 앞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경험한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준 깊은 애정과 관심에 대해 놀라웠을 것이다.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다가갈 때 복음에 대한 열정보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먼저이지 않을까? 그런데 앉은뱅이는 육적인 것만 구걸하고 있다. 돈 통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 전부다 돈 통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 교회를 왔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상관이 없다. 무엇을 얻을까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성전에 아름다운 미문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안 된다. 교회를 왔는데 말씀이 안 들리면 앉으나 서나 무엇을 얻을까 걱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그냥 왔다는 것이 변화를 일으켰다. 오다보니 베드로를 만났다.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 만났다.
적용: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 타인? 내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 모습도 인정하지 못한다.
기도하고 돕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둬야 할까? 구원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사마리아 비유에서 제사장도 제사 때문에 쓰러진 사마리아 인을 도와주지 못했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행위로만 보면 안 된다. 기도시간이 임박한 베드로와 요한은 섬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서 섬겨야 할 것이 생각난다.
기도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그 뒤로 가면 기복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 영혼 구원이 중요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한가? 베드로와 요한은 이때는 도와주는 것을 선택했다.
적용: 우리는 기도하겠는가? 구걸하는 자를 돕겠는가? 급한 일을 하겠는가? 중요한 일을 먼저 하겠는가?
3.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6~7절) 불구인 몸을 향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 자신이 아무것도 없어도 끊임없이 줄 것만 있는 자가 되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는 것이다. 나사렛의 이름을 붙인 것은 나사렛의 이름을 많은 이들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님이 부활승천해서 영광스러운 곳으로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는 장애인도, 천한 사람도 나사렛 예수를 높이신 하나님께서 살리신다. 지금부터 계속해서 걸으라는 것이다.
일어나라는 것은 계속해서 걸으라, 즉, 지속적으로 걸으라는 것이다. 이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발과 발목이 힘을 얻도록 그리고 말씀이 들어가도록 해줬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며칠 더 연명할 수 있게 하신 대신에 스스로 경제적 행위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는 자립신앙을 갖기 위해서 돈 몇 푼 주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할 일이 있다.
적용: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걷는가? 은과 금의 힘으로 걷고 싶은가?
4. 찬송의 기적이다.
8절) 모든 백성이 걷는 것과 찬송함을 보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고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 찬송했다. 성령의 기적 중 하나님 찬송이 가장 큰 기적이다.
자신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적 까지 변화했음을 전인적인 치유를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난 것만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 진도는 안 빼신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쉽지만 성령의 기적이어야 한다. 내가 앉은뱅이였다는 것도 기뻐하게 된다.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성전 미문에 데려다 준 사람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이런게 진정한 찬송이다.
성전에 들어가면서 여기서 제일 중요하다. 예배의 회복을 의미한다. 성전에 들어가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찬송하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은금을 공급하는 자가 아니다. 구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회는 누구도 따라 갈수 없는 복음 자체가 선포되어야 하고, 죽어지는 것이 (참된 worship) 있는 곳이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에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 직업이 없어졌다. 앞으로 40년 정도의 훈련이 또 필요하기에 다시 구걸이나 할래 이렇게 되게 쉽다. 하지만 구원의 일을 처방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찬송하는 기적의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기적을 성령의 공동체에서 허락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완전한 처방이 어디 있는가? 오늘 본문도 앉은뱅이의 일상의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 40년 이날 간증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전에 들어왔기 때문에 성령의 기적이 일상의 기적으로 보게 되었다.
<기도제목>
이소정
1. 진로의 인도하심
2. 여전한 방식으로 일상 잘 살아내도록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신정화
1. 감사와 기쁨이 있는 한주가 되길
2. 하나님께 솔직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것
3. 가족구원 (그리고 가족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도록)
4. 온전한 신교제 이어가길
박재인
1. 목장과 초등부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춰 열심을 다해 섬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