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9. 15 주일예배>
아버지의 마음
일시 2019. 9. 15
말씀 누가복음 15:20-24
설교 진재혁 목사님 (케냐 선교사)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1. 기다리시는 아버지
2. 달려오시는 아버지
3. 우리를 회복시키는 아버지
말씀후 찬양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기도제목
우리 같이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마음이 아버지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 뜻 되길. 나의 온 몸이 아버지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오늘 아버지 마음 나를 향해 주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잃어버린 동생, 집나간 동생 주님 없이는 소망이 없는 이 세상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 마음 주시고 아버지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아버지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아버지 심장이 고동이 뛰는 곳에 우리의 고동이 뛰길. 아버지의 발걸음이 움직이는 곳에 우리의 발걸음이 향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가운데 주옵소서. 우리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은혜, 우리가 무엇이간대 주의 품꾼의 하나로써 부족한 우리를 자녀 삼고 영접하시고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축복하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사랑 앞에 나아갑니다. 아버지 우리를 받아주시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으로 집 떠나간 동생, 주님 알지 못하는 영혼들. 세상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 되도록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 우리의 마음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가게 하시고 그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사랑 나누는 하나님 자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9. 9. 15 목장예배>
주님 보시기에 어여쁜 한수진 목장
일시 19. 9. 15
장소 서울대입구역 탐탐
참석 한수진, 우지현, 조예진, 이은영
나눔오늘은 모처럼 목장 식구들과 교회에서 멀리 멀리떨어진 곳에 나가 나눔을 했습니다. 실은 목장식구들집과 가까운곳.^^ 매번 교회 오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예배는 물론 목장예배까지 참석 해준 식구들에게 감사를. 편하게 나눔한 자리라 이런 저런 나눔하다가 기도제목도 못 나누고 헤어졌네.... 곧 청년부 일대일 양육 훈련이시작되는데 우리 지현이 예진이가 양육 받을 수 있도록 환경허락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 이번 주 특별히 수요예배 말씀이 너무 와닿아서 녹취하다가울컥. 다시 양육 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양육을 받지 않은 성도나 받은 성도에게도 너무나 은혜인 설교였던 것 같다. 들어 봤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눔.
<19.9. 18수요예배>
하나뿐인 내 완전한 자
본문 아가서 6:1-12
설교 박은주 초원지기님
아가서는최상의 노래를 뜻합니다. 아름다운 노래, 사랑에게 관한 최고의 노래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비 여인의 순결한 사랑을 주제로 담은 것으로 연가 형식. 풍부한 은유, 다양한 상징, 온갖 수사법이 담긴 노래 중에 노래입니다. 아가서는 또한 교회에 대한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의 메시아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을 한다고도 합니다. 아가서 내용인 솔로몬과 술람비 여인의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연합의 모형으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고 교회를 신부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이 아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첫 번째 명절인 유월절에 낭독되기도 하였으며 특별히 유대인은 아가서의 가치를 특별히 인정해서 잠언을 성전 마당에 전도서를 성전에 비유, 아가서를 지성소에 비유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하나님이 드러내는 아가서의 가치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특별한 사랑과 연합입니다. 특별히 오늘 6장은 신랑은 신부가 자신의 하나뿐인 내 완전한 존재라며 신부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오늘 하나뿐인 내 완전한 자라는 제목으로 나눠보겠습니다.
1.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오직 주님께만 집중합니다. (1-3절)
아가서 5장에서 말한 대로 신부는 문 여는 것을 더디했기에 신랑을 떠나가게 하여 신부는 신랑을 찾기 위해서 거리를 나갔지만 찾지 못하고 겉옷까지 벗겨지는 수치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신부는 신랑을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자랑하면서 찾으려고 합니다. 신부는 자기가 신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5장이 끝이 납니다.
그리고 6장이 시작하면서 사랑스러운 신랑이 어디로 갔는지를 너와 함께 찾자는 예루살렘 딸들에게 술람미여인은 신랑은 자신의 동산으로 가서 나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그 신랑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이미 아가서 새벽 큐티 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아가서에 기록된 술람미 여인은 우리를 의미하고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의미합니다.
1절입니다.
(1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아가서에서 예루살렘 여인이란 예루살렘에 거주하나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여인들이 신부를 향해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라고 합니다. 어여쁜 자인 신부는 내가 아는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 신부가 자기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 상세히 묘사하며 자랑하는 말을 들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우리가 너와 함께 신랑을 찾겠다고 합니다.
왜 예루살렘 여인들이 너와 함께 신랑을 찾으려고 할까요? 이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의 신부된 신실한 신자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자기들도 주님을 가까이 따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시고 그 주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가에 인생에 가장 중요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는지 그 주님을 찾고자 합니다. 신랑의 말을 함께 듣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2절입니다.
(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신부로 비유된 교회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향기로운 꽃밭은 은혜로운 환경을 비유하는 것으로 은혜로운 교회를 말하고 백합화 꺾는구나는 진실한 신자들의 믿음과 덕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말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동산 안에서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주님의 모습을 알게 되니 신부는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3절입니다.
(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이 말씀은 사랑과 연합의 표현으로 정말 많이 말씀입니다. 마치 드라마 속에 나오는 낭만적인 대사 같고, 가장 사랑스러운 고백 대사 같습니다. 아가서 2장 16절에도 나오는 이 표현은 단지 순서만 바뀌고 있습니다. 2장에는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6장에는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로 되어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님께 속하였던 것으로 표현이 바뀌고 있습니다. 두 남녀의 사랑표현 이런 닭살이 어디있겠냐고 이런 사랑고백을 인간은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술람비 여인의 솔로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확신에 찬 사랑으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의 고백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이 말씀은 진실한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고백으로 표현된 교회는 자기와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일치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 말씀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에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함이이다.
이렇게 교회와 그리스도가 일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함 받은 신자는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놀라우신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 저희 부부는 지난 7월초부터 한달 동안 캐나다 목회자 일대일 양육을 위해 캐나다 켈거리를 다녀왔습니다. 3주 전에 캐나다를 가는 것이 확증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항공권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 주에 팔과 다리에 물집 잡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처방해주였습니다. 캐나다 가기 전까지 물집이 잡힌 부분에 통증이 있어 캐나다 가서 아프면 양육을 지원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떠나는 날 7월 3일 큐티인 본문인 고린도전서 말씀으로 바울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나타낼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게 했고 하나님께서 나타내주신 것을 내 지혜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내주심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는 말씀을 주져서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모두에게 중보를 요청하고 출발했습니다.
사실 사역보고와 주신 은혜는 주강사인 아내가 하는 게 훨씬 직접적인 은혜가 있을 텐데 옆에서 바로 보고 듣고 느끼게 하신 저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객관적으로 보고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목회자씽크 양육은 아내가 대장, 주강사이고 저는 강의 보조 및 지원으로 담당 할 일은 강의 녹취, 강의장 세팅, 목사님 도서 판매 연락 및 확인 예약, 운전, 짐을 간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양육 강의는 저보다 아내가 훨씬 나은 것을 알았기에 아무 부담 없이 편하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힘든 강의 하는 아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저는 상대적으로 너무 편하게 녹취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캘거리에 도착하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양육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작년에 캘거리 목회자세미나를 하셨을 때에는 80명 이상 목회자가 모이셔서 이번에 양육에 많은 목회자 분이 모일 거라 생각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4교회 목사님 사모님 부부만
참여하셨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지 아니한 이유 중에 하나가 담임 목사님 여자 목사님 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내가 여자라서 차별이 있다라고 하셨을 때도 그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듣는데 설마 출신, 성별을 따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드러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서 수치를 당한다고 하신 말씀과 여자라서 더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이번 양육에서 제가 감당할 부분은 녹취부분이었습니다. 아내의 강의가 목사님 반, 사모님 반으로 나뉘어 일주일에 목사님 반은 3시간씩 두 번의 강의와 사모님 반은 6차례 1시간 강의시간을 녹음하고 녹취하면서 저는 일주일 내내 전체 일대일 강의를 두 번을 들었습니다. 녹취를 하면서 저의 하루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이 나는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초원님께서 이미 앞부분을 해주셨기에 목사님 반은 4과부터 시작했습니다. 양육 강의와 더불어 여자 목장과 부부목장도 우리들 교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 함께 나누고 보고서를 썼습니다. 저는 말씀을 녹취하려면 말씀에 집중 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나누고 해석하고 적용할까라는 생각으로 녹취의 시간은 제게 다시 양육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씽크 양육을 수년 전에 받았는데 아내의 강의가 마치 처음 듣는 강의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롭게 들려지며 여전히 남겨두었던 불순종의 고집과 제 속의 숨겨진 마음을 찔렀습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우리들 교회에서 예배와 목장에 잘 참석하고 양육 잘 받고 매일을 큐티로 말씀 무장하고 가면 그 받은 양육으로 간증도 하고 설교도 하고 목장인도도 전도도 상담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들 교회에 붙어 있어 말씀을 듣고 양육을 받고 큐티를 하니 정말로 간증도 설교도 목장 인도도 상담도 할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 막힘이 없이 되는 것이 신기했고 실력이 되어 열매가 맺는 것을 캐나다 양육 시간을 통해 보았고 직접 경험하게 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해주신 평신도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받은 훈련이 엄청나고 품위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몰랐는데 캐나다에서 양육하는 동안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하는 아내를 통해 예배와 목장에서 말씀을 듣고 큐티를 한 것이 얼마나 귀하게 사용되고 말씀을 통한 권위와 지혜가 생기는 지를 주님께 집중해서 말씀을 전하는 아내와 양육을 들으시는 목사님, 사모님을 통해 옆에서 부족해서 녹취하는 제게 직접, 분명히 보게 하셨고 깊은 울림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나는 자는 나를 위 해 일해주는 신랑을 알고 신랑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지를 고백하는 말씀을 통해 알려준 것처럼 성령님께서 양육시간에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양육을 시작하면서 강사가 여자이고 게다가 사역자도 아닌 평신도인 아내가 목사님과 사모님을 양육하니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육하는 동안 강사인 아내에게 말씀의 담대함이 있게 하셨고 양육을 받는 목사님, 사모님께서도 양육시간과 숙제를 통해 말씀의 순종하여 내 죄를 보게 해달라는 기도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받은 우리를 위하여 향기로운 꽃밭,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 구나를 보여주시며 분명히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적용질문 드리겠습니다.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나와 주님의 관계는 주님이 내 안에 내 안에 주님이 있는 하나로 된 연합된 관계입니까?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관계인가?
2. 주님께 사랑받고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4-9절)
다시 솔로몬은 술람비 여인을 깊은 칭찬을 합니다. 신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자기 신부가 하나뿐인 존재라며 그녀의 마음을 순결함으로 다시 칭송합니다.
4절입니다.
(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디르사는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것으로 세겜에서 떨어진 도시로 이스라엘 수도입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여쁨이 디르사 같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마입니다.. 예루살렘 같이 곱고는 진실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이 예루살렘처럼 뛰어나다고 칭찬합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 같다는 것은 술람비 아름다움이 사람 마음을 이끄는 강한 매력을 지녔다는 것인데 신부로 비유된 교회의 위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원수들과 더불어 전쟁하였으며 마침내 교회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5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공동번역에는 나에게서 눈을 돌려달라고 눈이 부시어 쳐다 볼 수 없구나 그대 머리채는 길르앗을 내리닫는 염소 떼라고 되어있습니다. 번역처럼 당신의 눈은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과 사랑으로 신부를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교회와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내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같고는 아가서 1장의 말씀과 같이 머리털이 길다는 뜻입니다. 목축하기 좋은 길르앗에 자란 염소는 털이 길다고 합니다. 당시 여자가의 머리가 길게 가지는 것이 순종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했는데 신부의 긴 머리는 도덕적인 것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6절입니다.
(6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표준 새번역에는 그대의 이는 털 깎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떼 같구나 저마다 짝이 맞아 빠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되어 있는데 이는 술람비 여인의 윗니와 아랫니가 잘 마쳐져 고르고 하얀 것이 한쌍의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순결과 질서 정연함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7 너울 속의 네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석류는 더욱 아름다움과 같이 주님에 대한 신자의 아름다움을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뺨이 한 쪽 석류같다는 것은 신자의 중심에 있는 믿음, 사랑, 소망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자는 기쁨이 충만하며 그 얼굴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8-9절.
(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솔로몬이 아가서 쓸 때에는 처첩을 많이 두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는 그의 말년이라고 짐작합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이르러 처첩을 두지 않았던 처음 시절 술람미 여인만을 참된 아내로 사랑했던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나의 비둘기는 순전하며 두려움이 많은 것으로 표현하였는데 순결하게 살아야된다는 것을 표현 한 것 같습니다. 비둘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가서 비둘기 눈 표현은 목사님께서 설명하셨는데 비둘기는 곁눈질을 못한다고 당신 외에는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절기의 눈을 가진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비둘기의. 아름다움, 순결함, 무저항을 상징하는 은혜입은 영혼으로 여겨집니다.
완전한 자는 이 세상에서 신자들의 인격은 불안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뿐이구나는 인자들의 수요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결한 신자들 대표로 한 사람을 일러 말한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낳은 자는 이스라엘 교회를 비유합니다.
이처럼 아가서 6장 4절에서 9절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그중에서도 완전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술람비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술람미 여인 한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사랑입니다. 오히려 주변의 다른 여인들도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녀가 복된 여인임을 칭찬합니다. 이처럼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어 신부를 불러주시고 하나뿐인 존재로 귀하게 여겨주고 계십니다.
저도 일대일 양육을 받을 때 양육을 양육 프로그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받아온 양육 프로그램처럼 시간을 보내고 간단히 숙제를 하고 내 일정에 맞추어 적당히 출석을 하면 잘 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 양육을 시작하니 엄청난 숙제로 힘이 들었고 주제 큐티는 아무리 짜내어도 할 말이 없었고 특별히 독후감은 시간이 부족하고 또 매일 큐티하느니라고 정신이 없었고 내 죄를 보아야만 한다는 말에는 모든 것이 뒤흔들렸습니다. 특별히 과제물을 제출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양식을 표시할 때에는 늘 긴장을 했습니다. 양육을 받는 것은 누가나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께서는 더 시간이 부족하고 한국 생활과는 다르기에 여러 가지 문제와 다른 환경으로 양육을 받으시는 것이 절대 쉽지 않으십니다.
힘이 들고 어려운 가운데 양육 3주차가 되니 숙제가 너무 많아 할 시간도 부족하고 생활을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 일도 해야 하니 정말 힘들다고 사역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너무 힘이 들다고 했습니다. 양육 숙제를 해야 하니 온 몸에 힘에 부친다고 다음 기회에 해야할까하는 생각도 하셨다고 합니다. 너무 힘이 드셔서 양육시간에 가서 더는 못하겠다고 통보할 작정으로 오셨다는 사모님도 계셨습니다. 4주차가 되는데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왜 자꾸 내 죄를 보라고 하는지 나는 정결하게 살고 있는 거 같은데, 이런 내게 죄 보는 거 강요하는 것 같아 더 힘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차례나 힘이 든다고 하셨던 목사님과 사모님들께서 담임목사님 설교녹취, 주제큐티, 독후감, 매일 큐티를 나누시면서 자신의 죄를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성경공부, 교육 프로그램 하나 더 배우려고 오셨다는데 양육이 되어갈 수록 자신의 모습과 죄에 직면하게 되니 자신의 말씀에 더 몰두하시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오픈에 서로 위로하며 또 못 알아 들으면 자신이 깨달은 만큼 구속사를 설명해주시니 회개가 되시니 또 목사님들께서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해외에서 목회를 하신다는 것, 게다가 이민사회에서 자신의 죄를 오픈하고 나눈다는 것은 자칫하면 가쉽이 되기 쉽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들 수 있으니 자신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육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숙제의 양은 많아져 갔지만.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에 복된 자임을 알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 모든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아름답다고 하신 말씀처럼 양육을 받는 자나 하는 자 모두를 향해 아름답고 복된 자라고 불러주신 깊은 은혜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숙제가 달라지고 누구에게도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하게 되시고 오직 말씀에 의지해서 나눔이 되시니 양육시간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두 번의. 양육 과정을 녹취하느라 움직임 없이 듣는 동안 처음에는 말씀에 질렸는데 갈수록 말씀이 저의 깊은 곳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번 양육에서 참석하지 못한 목사님 사모님,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큐티의 실제와 큐티의 적용을 강연하는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의 하반부를 강사 보조인 저에게 감당하라는 주 강사인 아내에게 완강히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제가 큐티 적용과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 준비를 위해 이제까지 간증한 부분을 정리하고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준비를 했고 나가서 간증과 적용을 시작했는데 간증을 하면 할수록 정해진 원고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생각지 못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회사가 잘 운영되고 성과가 잘 나오니 잘 되는 모습으로 교회에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고 성공을 위해 돈과 타협하며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승인했고. 한 문제로 회사를 분란에 빠지게 했고, 불의의 돈을 회사성장을 위해 사용한 것을 정당화하면서도 회사성공과 돈을 우상으로 두는 것을 모르고 알면서도 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회개되고 마음에 찔렸던 것은 목장과 교회에서 묻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물으라고 묻고 듣고 가라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교회 따로 생활 따로 말씀 따로 직장 생활따로의 저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원고에도 없는 저의 악한 모습을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던 것이 간증하던 중에 계속 생각이 나니 회개를 하느라 정해진 시간도 맞추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지고 내려오면서 내가 왜 이러지? 큐티세미나를 망쳤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내는 당신의 간증을 처음 듣는다고 일부분은 당연히 당해야 할 수치라고 당신을 힘들게 했던 직원들을 찾아가 사과를 해야 할 거 같다고. 그렇게 말씀이 들린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회개가 된다고 하니 은혜가 되었다고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양육시간에 양육을 들으시는 목사님 교회의 청년 자매가 큐티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제 간증을 듣고 젊은 자매가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의 아버지께서 저와 비슷한 일을 하셨고 성품도 성향도 많이 비슷하고 또 저와 같은 고난과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힘들게 하고 거친 아버지가 싫었고 그러다보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상처를 받으셔서 교회도 잘 안 나오시는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하고만 교회에 나오면서 아버지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말씀을 듣고 회개가 되니 사고하고 용서하는 적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깊은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겠다고. 그리고 교회를 나오시다가 상처를 받아 지금 나오시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꼭 기도 부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자매는 저희가 캘거리를 떠나기 전날 찾아오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한참 동안을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내 사랑하는 자여, 완전한 자여, 하나뿐인 자여, 아름답고 복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캐나다에 있는 한 달 반 가까이를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식사, 큐티, 양육 준비, 양육, 녹취, 식사 점심저녁준비, 식사하고 피드백 하고 강연 준비하고 녹취 정리하고를 한 달 반동안 했습니다. 캘거리를 가기전 아내가 저에게 한 말은 이번 캐나다 양육시간에는 제발 싸우지 말자는 거였습니다. 제가 잘 삐쳐서 삐치면 며칠이고 말을 안 하는 쌩 까는 것을 잘 합니다. 삐쳐서 사역에 방해된다고 삐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이 넘는 시간 우리에게도 주님의 양육의 시간이 되게 하자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목회자 세미나 씽크 양육동안 다투지도 삐치지 않았다. 정말 싸운적도 없었지만 양육 시간 동안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내가 너무 아름답고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캐나다 가는 동안 웃음이 없던 동안 양육 동안은 아내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한달 반 동안 떨어지지 않고 말씀 듣고 준비하고 살았던 동안은 저에게 주신 상급, 천국의 시간이었습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과 옥시토신은 결혼하고 3달 만 분비되고 게다가 같은 사람을 향해서는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수준을 아시고 캐나다에 있는 동안 도파민, 옥시토신을 엄청나게 부어주셨던 것 같았습니다. 저희 새벽설교를 들은 사역자님께서 어떻게 하면 금슬이 좋아질까요? 물으셨는데 한 달 반 동안 함께 말씀 전하고 준비하는 시간 보내라고 해줬습니다. 한 달 동안 오직 하나뿐인 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게 하신 축복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아가서를 준비하면서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을 향한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구나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습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께 사랑받는 오직 하나뿐인 존재임을 아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내 사랑하는 자라는 고백을 들으십니까? 오직 하나뿐인 자라고 고백을 하십니까?
3.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10-12절)
(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솔로몬이 계속 신부의 아름다움을 아침 빛, 달 , 해, 군대 같다고 최고의 찬사로 이야기 합니다. 신랑으로 비유되신 예수님께서 교회로 비유된 신부를 칭찬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아침 빛, 달과 해, 술람미 여인의 성결의 덕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하늘과 땅에 비추는 아침 빛처럼 신선하며 탁월하며 아름다우며 달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고 해처럼 흠이 없고 밝고 깨끗하다고 합니다. 빛은 순결하며 하나님만 사랑하는 신자의 특징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신명이 눈과 같이 밝아져서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아침 빛과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악이 가득한 어두운 세상이 빛과 없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신부는 또 깃발을 세운 군대와 같이 당당한 여자 표현은 4절에도 나오는데 깃을 높이 든 군대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신부로 비유된 교회의 위엄, 당당함을 의미합니다.
11절입니다.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솔로몬의 아내되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솔로몬과의 결혼 전에 술람미 여인은 거무스름하고 개달에 장막 같은 볼품없는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신랑과 신부에게 포도를 던져준다고 합니다. 포도의 단단한 껍질 때문에 포도 안에 단단하게 얽혀있는 모양 때문에 결혼생활의 화합의 상징으로 포도를 생각하고 결혼식에 던져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우리와의 관계는 이처럼 단단하게 연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호도 동산은 왕이 늘 내려와 쉬고 여러 나무의 과실나무가 있는 휴양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어느 날 골짜기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포도나무 순이 돋았는지 석류나무에 꽃이 피었는지를 알아보려고 이 호도 동산에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귀한 신부로서 솔로몬이 모는 수레 가운데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왕궁의 한 병거에 실려 왕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힘으로 왕비가 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이 자신을 발견해서 자기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 위치에 올라갔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고백하며 밝히고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신랑과의 결혼이 자신의 의도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이 자기를 선택해준 결과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은혜를 술람미여인은 마음 속에 두고 솔로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신부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 같습니다. 더욱이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할 때, 주일 날 목사님 말씀을 듣고 나면 오늘 목사님 말씀은 내가 아닌 아내가 꼭 들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아이들도 들으라고 집에 가던 도중 캐나다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말씀 꼭 들으라고 오늘 말씀은 내가 아니라 당신과 아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제게 그렇게 말씀이 들리지 않고 제 죄도 보지 못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고집이 강합니다. 아직도 옳고 그름도 잘 따집니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내편이 아니면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생존의 마음이 늘 있습니다. 전투 모드에 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우리들 교회 와서 회개하고 많이 내려놓아졌다고 했지만, 깊은 속마음에 가진 제 악함을 보게 하셨고 제 감정의 요동을 보게 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양육 받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들에게 저희 부부가 지내온 이야기들과 말씀이 들리지 않는 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강의 시간과 목장에서 남편은 아직도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얼마나 안 되는 사람인줄 아느냐고 다중인격에 다혈질에 아이들을 보내고 감추는 이상한 성격, 성질도 나쁘다는 이런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나누니 목사님과 사모님들의 큐티와 적용이 달라졌습니다.
그 목사님과 사모님의 나눔과 회개기도 중에 자신이 얼마나 지식의 틀에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나는 너와 다르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살았는지를 큐티도 자신의 틀안에 가두려는 자신의 완고함을 보았다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알고 이제 기브온처럼 진실함의 흉내를 내지 않도록 기도 부탁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께서는 교회의 분란 있게 하는 성도들을 쫓아내는 것이 교회의 유익이라고 생각한 것을 진심으로 회개한다고 하셨습니다. 한영혼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내가 지금 돌이켜보니 알았다고. 자신이 받은 띵크 양육이 자신의 최고 선택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한 사모님도 고난이 많으신 만큼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많으셔서 매일 캘거리를 떠나고 싶었는데 이번 씽크 양육으로 자신의 고난 해석되고 100%옳으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고.
2004년 잔느교 책을 볼 때 화가 나서 던져버렸는데 목사님의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를 읽고 21세기에 다시 나타난 잔느부인이라면서 이것이 구속사임을 알게 되니 충격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모님께서는 성령 충만이 말씀 충만인 줄 몰라 성령집회 가서 박카스 한 병 먹고 힘내는 것이 성령충만 인줄 알아 이번에도 박카스 한 병 먹으러 왔는데 박카스 안 먹어도 말씀이 나를 조명 비추듯 비춰주니 알 수 없는 은혜로 성령이 잠잠히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주셨습니다. 양육이 끝나가면서 큐티는 모든 관점에서 주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고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간수가 자신의 전체를 흔드는 지진으로 깨진 것처럼 자신도 잠자고 있던 자신을 깨우는 지진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양재 담임목사님께서 큐티를 침 튀기며 자랑하실 만 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솔직한 나눔을 하고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전심으로 서로를 권면하며 말씀에 집중하면서 나눔을 하신 적은 사역자님들도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변화는 주일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가 받은 카드에 다음과 같이 써있었습니다.
두 분 집사님께. 내 인생이 전부인줄 알고 다른 신앙 선배님들의 삶의 이야기 하나님이 두분의 구원을 위해 각각 행하신 일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생은 그런 고난을 통해 내 죄를 보고 그런 인생을 구원해준 예수님을 만나고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구속사이구나. 참으로 질 그릇 안에 담긴 보배만을 자랑하며 사는 인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제가 부러워했던 인생을 사신 두 분들인데 그 안에 저와 같은 고난과 아픔이 다 있으셨다니 참 별 인생이 없구나. 내 인생보다 좋아보였던 타인의 인생을 향한 부러움과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부러움도 사라졌습니다. 정말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계획과 승리가 믿어져서 감사만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서 선택하신 최고급 맞춤형이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감사합니다. 큐티 시간에서 두 분의 인생을 활짝 나누어주신 것 저희 교회에 와서 설교해주신 것도 목회자 양육 때 저희 목사님을 혼내주시며 제대로 가르쳐 주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지난 주 설교가 얼마나 정직했는지 설교가 어찌나 성령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써주셨습니다.
사모님들께서도 목사님의 설교가 진정성이 담기고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신 그 은혜로 우리는 택함을 받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가니 귀한 자리로 인도하신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이번에 캐나다에 다녀오면서 가장 들리게 하신 말씀은 삶은 구원 이상도 구원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캘거리 전과 후가 나뉜다고 아내에게 얘기했고 아내도 이 말을 인정하고 동의합니다. 양육을 마치는 날인 7월 31일에는 고린도전서 15장 51-58절에 헛되지 않는 수고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님께서 모든 양육에 함께 하셨고 인도해주신 것을 보여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지난 5월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던 목사님 한 분께서 이번 캘거리 목회자 양육에 참여하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올 10월에는 꼭 목회자 세미나에 참여하시라고 가서 보는 것과 아닌 것은 천양지차이가 난다고 참석을 권하셨습니다.
술람미 여인처럼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고백처럼 절 나를 인도해주고 구원해주신 분도 말씀을 들리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양육 주강사였던 아내가 목사님께 쓴 보고서 안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 같이 결국 구속사를 이룬 것처럼 저도 이혼하고 싶어 도망간 캐나다 도피가 저희 부부에게 구속사를 이루게 해주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세팅과 인도하심, 그 사랑하심은 그 비교할 것이 없으십니다. 사랑은 어떤 즐거움보다 뛰어납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 기쁨이라고 하시니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오늘 말씀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가 되어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복된 자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적용 드리겠습니다, 나를 사랑해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이것이 값없이 주는 은혜임을 인정하십니까?
기도제목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기도제목입니다. 나를 사랑해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의 사랑에 순종해 가길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양육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말씀으로 주시는 나의 큐티를 하루도 빠짐없이 습관적으로 매일 하도록 기도합시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목회자 일대일 양육을 받으신 목사님과 사모님, 그 교회들이 큐티가 잘 정착하고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말씀의 사모함이 넘치고 육적으로도 채워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목사님의 양육과 방송, 문서 사역에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씀으로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사랑만이 전부인줄 알아 세상 사랑과 자랑만을 찾고 있는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 것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눈물이 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님 안에 내가 있는 연합을 기쁨으로 누리게 하시고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복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 주신 말씀대로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나라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국론이 하나가 되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애통함으로 섬기고 양육해주시는 김양재 목사님의 영육을 강건케 해주시고 목사님의 저서와 방송, 문서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진정한 개혁이 곳곳에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님께도 말씀이 임하는 은혜가 넘치도록 하여 주옵소서. 지금 진행되는 신학생 일대일 양육과 제 11회 목회자 세미나에도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며 큐티로 귀한 시간이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특히 캐나다 캘거리에서 목회자 일대일 양육을 받은 목사님, 사모님과 그 교회에 큐티가 자리 잡게 하소서. 육적, 영적 축복이 넘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19. 9. 18 수예 가는 길 :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