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승범, 박수동, 이세혁, 김경오
우리들교회 판교 채플 6층
1. 기다리시는 아버지 입니다. 더 웨이팅 파더. (20절,창3:9)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삽니다. 그가 궁핍합니다. 곤비합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을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아버지의 품을 떠났다는 것이 그의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궁핍하고 피골이 상접한 그가, 어느 날 아버지의 집을 생각합니다. 이때, 돌아오는 그 길 가운데.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집 근처에 와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이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 이렇게 말씀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가 아들을 향하여 달려갔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그 시간에.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볼 수 있었을까? 그 순간부터 찾고 있고. 떠나간 그 방향에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던. 성경은 중요한 단서를 하나 더 추가시키십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프롬 파 디스턴스. 멀리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 갈 때. 아마 의기양양했을지도 모릅니다. 금의환향. 비단 옷에. 그런데 다 잃어버립니다. 피골이 상접합니다.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을 수 없는 탕자의 모습을 보십시요. 살, 빠졌을까요? 머리는 어땠을까요? 옷은? 한 마디로 옆에 있었어도. 알아볼 수 없었을 이 탕자의 모습을. 아버지가 측은히 여겨 달려, 갈, 수 있었던 이유? 언제 돌아올까? 떠나간 그 방향을 향해서.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그 아담을 향해 질문합니다. 아담, 훼어 아 유? 너 진짜 잘 숨었니? 못 찾겠잖아, 라고 질문하시는 걸까요? 부끄러워 숨었던 아담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주님! 아니, 숨어있고, 두려워하고 있고, 불안해하고 있고, 수치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찾고 계세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거기에 생명이, 평강이,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아버지는 우리를 향해서 기다리고 찾고 계시다는 겁니다.
케냐에 있었을 때. 그때 우리 아이들이. 여섯 살, 두 살, 네 살 이었어요. 예배 중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화장실은 여전히 케냐 식이었고. 멀리 떨어져서. 황량한 가운데 있는 화장실이었어요. 이제 화장실에 아들을 집어 넣습니다. 빨리 일하고 예배 가자.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아빠, 거기 있어? 아빠 여기 있지? 당연히 기다리지. 빨리 해~ 아빠 거기 있어? 아, 아무데도 안 가. 당연히 거기 있지. 아빠 아직도 거기 있어? 속에서 저도 뭔가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한 마디 호통을 치려는 순간! 갑자기 평소에 암송했던 성경구절이 생각나면서. 내가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리라. 그렇게 얘기하고 난 다음에 제가, 놀랬습니다. 아~ 이 말씀의 뜻이 이런 것이구나~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에 있는 그 아들을 향해. 너는 내 것이라고 기다리시며 찾으시며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 우리를 붙잡으시고. 내가 놓는 그 순간에서도. 찾으시고 붙잡으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더 웨이팅 파더~ 하나님이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찾으십니다. 힘들지? 어렵지? 외롭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 인생의 힘든 곳에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찾으시고 손을 내미시며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아버지십니다. 더 러닝 파더~ (20절,빌2:6-8)
뛰기 시작합니다. 이 아버지는 잘나가는 아버지였을 겁니다. 아들이 눈에 띄는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체면도, 사람의 평가도, 판단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아들만 보입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향해 뛰어가는 거리가 훨씬 더 큽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뛰어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그냥~ 뛰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십시요. 빌립보서 2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러엏게 겹쳐 보이면서.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하늘의 모든 특권을 다 내려놓으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모든 영광과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그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 뛰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미국의 초등학생, 존이란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 선생님은 면담을 요청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름 내내 겨울 날 준비를 했고. 아주 추운 겨울이 왔다?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되는 것인가를. 숙제를 선생님이 내주었다는 겁니다. 한 그룹. 베짱이는 굶어 죽었다. 또 한 그룹. 나눠먹고 추운 겨울을 잘 지냈다. 그런데 좐은. 선생님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답을 써냈다는 거에요. 자기의 모든 것을 베짱이에게 나눠주고 개미는 굶어 죽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러엏게 십자가를 그려놓았다는 겁니다. 제 안에, 그런 스투핏 한 개미는 존재하지 않아.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가져. 죽기까지. 그냐앙. 우리를 위하여 달려오시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 기다리시는 아버지 달려오시는 아버지. 그 다음은~
3.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아버지십니다. (눅15:1-2,25절,29절,고전13:1)
그런데 한 번 슬로우 모션으로 생각해보십시요. 뛰어오는 아버지를 보면서. 탕자가 입을 열어. 아버지~ 하는 순간. 아버지의 입술이 아들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헬라어 성경은 복수입니다. 영어는 매니 키쓰쓰. 얼굴 전체에 그냥 뽑뽑뽀뽀. 한 마디 말을 하기 전에. 가장 좋은 옷이 어디있겠어요? 좋은 옷 준비해 놨겠어요? 아버지의 옷입니다. 아버지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손에 가락지를 끼워 아들을 상징하게 합니다. 먼지 투성이의 그 발에 신을 신겨줍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가장 좋은 음식은 소고기였습니다. 송아지 고기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작은 잔치가 아니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까요? 이웃들이 참석하지 않았을까요? 중앙에 누가 앉아있을까요? 아버지. 그 옆에 누가 앉아있을까요? 탕자. 공동체의 회복을! 보십시요. 회복시키시는 아버지. 그냥 목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며. 아버지의 마음을 봅니다.
포풀려 나무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죠. 큰 포풀려 나무에. 약속한 그날에. 기차를 타고 그 역에 가까이 갑니다. 정말 아버지가 나를 용서할까? 그 역전 앞에 있는 큰 포풀려 나무를 볼. 큰 포풀려 나무에 흰색 천이 걸려 있었나요? 큰 포풀려 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에 흰색 천이 걸려 있던데요? 아버지는 아들이 혹시나 못 보고 지나갈까봐. 모든 나무에 흰색 천을 걸어 두었던 것이죠. 다 필요없다, 돌아오기만 해라. 다 용서됐다, 이제는 괜찮다! 제발 돌아와라! 어떤 분은 그렇게 썼더라구요. 너 안 오면 나 죽는다! 돌아오라.
저는 모태신앙으로 쭉 자랐습니다. 교회를 빠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퀴즈를 하면 1등. 장년들이 하는 성경퀴즈에 나가서 3등을 하고 냄비를 탄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사실은 늘 얘기하고 있지만. 느껴지지 않던. 중학교 3학년 때. 성찬식을 하면서. 피부로 기잎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예배가 끝나자 마자 소나기가 엄청나게 와서. 저는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그냥 견딜 수가 없었어요. 비가 막 오는 쪽으로 그냥 밖을 향해 뛰어 나간 것을 생각합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가 얼마나 오는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쏴아아~ 하는 소리에. 그때 중학교 3학년. 하늘을 향해서 비를 맞으며 했던 첫 번째 말을 기억합니다. 왜? 왓? 내가 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예수님 날 위해 왜 죽으셨죠? 제 자신을 생각해볼 때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수 년 안에. 내가 너희를 먼저 사랑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여러분. 오늘 그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 어떤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이렇게 탕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해피 엔딩으로 얼마나 좋을까. 저는 그 아래 25절 맏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항상 탕자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데. 성경을 보니까. 큰 형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종이 이야기합니다. 당신 종이 죽었다 살아와서. 형이 그 얘기를 듣고. 니가 왔냐~? 라고 하면 참 좋겠는데. 성경은 말합니다. 저가 심히 노하여. 집 나갔다 돌아왔는데.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히 노하여 들어가기를.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식사하는. 못마땅해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런 자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런 마음을 알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준비되었다 하는 그들이 정작!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펀치 라인은. 25절에 보니까. 누구 밭이었을까요? 아버지의 밭이었을 거에요. 29절.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우리 말로 하면 효잡니다. 좋은 신랑감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아들입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열심이 있고. 봉사를 하고. 수고 하고. 명을 어김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 아버지의 마음.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래서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할 수 없었던 큰 아들의 마음을 봅니다. 탕자 뿐만이 아니라. 아니, 정작 집 안에 있었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아버지의 마음에 함께 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마음에 동참할 수 없었던 집 안에 있는 탕자. 이 아버지의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니 동생 어디 있어? 니 동생 찾아와. 니 동생 지금 어떻게 지낼까? 그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단기선교로 있을 때. 이프 유 어. 너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너의 행동은 희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느끼는 것은 기쁨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우리의 행동은 희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아픔이 아니라 기쁨일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사랑장.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천사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와우. 이런 사람 얼마나 놀라운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이 어디있어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라. 아버지의 마음.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니 동생 어디있어? 니 동생 찾아와.
저희 지구촌 교회에 부임할 때. 꽤 많은 기자들이 그렇게 질문했는지 기억합니다. 몹시 불편한 표현이었어요.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했기에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안 좋은 곳, 안 좋은 데에 갈지라도. 비전을 다 이루었다고 나가려고 하십니까? 아니요. 비전을 다 이루기 위해서 나가려고 합니다. 열방을 위해서. 측은히 여겨. 달려가 얼싸안고 입을 맞추고. 아버지의 마음.
선교사로 나갈 때. 그때 가장 큰 기도제목은 애들이었어요. 어린 애들이 안 좋은 환경에. 힘든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면 어쩔까. 그 당시 한창 히트쳤던 디즈니 영화가 라이언 킹이었어요. 다시 리메이킹 돼서 요즘에 나왔지만. 그 심바가 케냐 말. 히스왈리어로 사자, 란 뜻이에요. 저희 아이들이 그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야! 너희들 심바를 보고 싶니? 케냐에 심바가 많~다~ 그랬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빨리 케냐가자고 난리였습니다. 떠나기 전에 예방 주사를 맞아야 했어요. 일곱 대. 애들은 다섯 대. 왜 주사 맞아야 되냐고? 케냐에 나쁜 병균들이 많아서. 왜 케냐 가야 되냐고 제게 질문합니다. 순간 몹시 당황, 합니다. 그건, 하나님이 가라고 그러셨기 때문이야. 애들은 주사 다섯 대를 맞고. 병원에서 주는 캔디와 초콜렛을 먹고 다시 기뻐졌어요. 제가 해준 말을 마치 엄청난 진리를 가르쳐주는 큰 아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뜨거운 두 가지 기운이. 하나는. 아빠로써 너무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속에서 눈물이 터져나옵니다. 또 한 쪽에. 저를 다독거려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래, 하나님이 가라 그러셨기 때문이야. 아버지의 마음.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네 동생 어디있어? 찾아와~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오늘 이 아버지의 마음 앞에 깊이 잠기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언제나 설교 타이핑에 열심이신 승범이형 감사합니다.
참석인원이 적어 오붓하기도 하지만 모두 목장 식구들 모인지 오래되어 아쉽기도 합니다.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