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36-47
<성령의 선물>
지난주 설교는 정확하게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설교하는 본문이었다.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높아지셔서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셨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설교를 하니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고 하신다. 받기만 하면 되는데 오늘 성령의 선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 찔림을 받아야 한다.
행2:36~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찔려....' 무슨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는가?
오순절에 성령에 임하신 사건은 미리 약속 되어 있었던 사건이다. 베드로가 성령의 설교를 잘 들리게 전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이 예수를 바로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빌라도가 판결해서 병사들이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 이스라엘, 네가 죽였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을 나와 상관없이 여기다가 내가 못 박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구속사이고 이 구속사가 들려야 찔림을 받게 된다.
헬라어의 찔림: 청중이 진정성을 가지고 깊이 있게 반응했다.
무식하고 겁도 많은 베드로였지만 성령의 붙잡힌바 되니 놀라운 말씀의 전도자가 되었다. 이는 베드로의 능력보다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님 설교이고, 백성들의 마음을 찔렀다. 성령의 말씀을 찔림 받는 것은 가장 큰 성령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속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가 다 드러나서 찔렸다는 것이다. 내 속의 미움, 시기, 질투, 음란을 가지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교양 있게 변장을 해도 하나님께서 다 감찰하시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내시기에 찔림을 받는다. 육적으로도 병든 사람이 잘 걸어간다면 영적으로도 인간은 100% 죄인이라 어두운 세상에서 잘 살아갈수록 이 세상에서 익숙해서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수치와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찔러 쪼개니 수치스러움을 자발적으로 느낀다. 이것은 분명 아프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죄 때문에 기꺼이 애통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 이것이 권능이고 기사고 표적이다.
적용: 성령의 말씀에 찔림을 받는가?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에 괴로워하는가?
2. 어찌할꼬 하며 묻는다.
내 속에 사단이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깨닫고 어찌할꼬가 나와야 한다. 영광을 내가 다 받고 수치와 조롱을 예수님께 돌린다는 것은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다. 피고름을 보고 부끄러워서 어찌할꼬가 된다. 성령이 없으면 잘못이 보이지 않는다.
불신자와 신자 사이에는 신자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신자중에서도 믿음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매사에 나는 잘못이 없어 라고 하면 이것은 성령의 선물을 못 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형제여 하면서 간절하게 묻기 시작한다.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 하면 목장에서 묻게 된다. 요한1서에서 주님을 보고 듣고 만지는 사람은 공동체의 사귐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돈, 명예가 떨어져야 어찌할꼬 한다. 교양, 체면을 가장하고 교회를 다녔는데, 돈 떨어지고, 숨을 곳이 없어진다. 그때서야 어찌할꼬 한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직면해서 단지 돈이 없다는 것 보다 추하고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올라간다.
적용: 우리는 돈이 없어서 어찌할꼬 하는가? 성령의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 하는가?
3. 회개이다.
34절) 베드로는 어찌할꼬하는 너희에게 회개하라고 했다. 회개하여 각각 세례 받고 죄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한다. 세례 받고 죄사함을 받는가? 죄사함 amprarr 세례인가? 물세례는 그리스도의 외적인 고백으로 성령의 역사도 분명 있다. 이 모든 일은 회개, 세례, 죄사함 선물이 순서로, 무작위로, 동시다발 적으로 올 수 있다. 믿음의 분량이 달라서 그럴 수 있다. 처음에 구원받고 돈, 건강, 자녀 주시면 이게 구원인 줄 안다. 그런데 이미 이루어 진 구원이 있고 (예수 믿고 입으로 시인한 것)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구원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사명 때문에 온 인생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그리고 감당 못하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내가 세상을 뛰어넘는 끝없는 회개를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서 세상에 목매고 있는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내가 세상에 목매고 있으면 안 된다. 이것을 떠나야 하는데 내가 분량이 안돼서 세상을 떠나지 못한다. 회개를 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베드로는 이 설교를 유대인들에게 하였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찔림 받고 믿음을 고백하는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물세례를 넘는 세례이다. 나는 인정한다고 고백하는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출교 당할 수 도 있었다. 그러니 하라는 대로 다했는데 내쫓긴바 받으면 알지 못했던 기쁨이 이 성령의 선물로 증표로 주신 것이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아무리 고난과 조롱이와도 전혀 알지 못했던 기쁨이 생긴다. 전 세계로 복음이 퍼져 나가야 하니 사명 감당하라고 이 성령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이들은 이미 찔림 받아 어찌할꼬 한다는 것은 회개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성령의 설교는 너희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설교이다. 유대인들이 원했던 것은 이 세상의 임금 메시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루어주시지 않자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런데 진정한 회개를 하면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 설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본능이 죽을 때 까지 연결될 것이다. 세상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도해야 하는데 내가 세상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회개해서 예수를 믿었는데 계속적인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이 세상에 내 방식,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세례, 즉 죽으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상관도 없어 보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내가 못 받았다는 것을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이 회개는 본질적인 회개이다.
진정한 성령의 설교는 죽는 경험이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나서도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오늘, 어저께 주님을 고백해서 세례를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내가 세례 받고 구원 받은 것 맞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다. 그리고 내 몸이 기억하는 죄가 안 없어진다. 결국 내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죄를 보게 하신다.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인 성령의 설교이다.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깨끗함, 거룩함을 위해서다. 즉, 성령의 선물은 결국 거룩이다. 날마다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은 이 구원에 속한 나를 보면서 애통하면서 찔림 받고 거룩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성령의 선물을 강력하게 받아야 할 수 있다. 물세례를 받고 닝닝하다면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힘들었다. 사자 밥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해석이 안 된다. 그런데 성령의 설교가 꿰뚫고 들어왔다. 고난이 축복이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성령의 설교는 회개나 죄사함으로 나아간다. 물세례 받고 난 후에 성령께서 더 강력하게 붙을 수 있다. 강한 역사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적용: 우리들의 회개는 입으로 하는 회개 인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회개?
4. 3000명 속에 들어가는 공동체의 축복이다.
39절) 성령의 약속은 시대를 초월해서 우주적이고 국적과 인종간의 차별 없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든다.
40절) 패역한 세대에서 받으라고 한다. 베드로가 패역한 세대와 하나님 나라를 비교하면서 여러 말로 확증한다. 베드로의 간증을 통해서. 내가 유다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 나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회개하였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다 내 눈으로 보았는데도 부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나의 수치스러운 죄를 오픈하고 죽은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채워서 살아나게 하셨다.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아픔을 받는 것이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할 때,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 좋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나 때문에 힘들면 내가 죽인 것을 알아야 한다. 찔림 받고 이 사람들이 어찌할꼬, 반응이 나와야 한다.
120명 공동체의 3000명의 새 신자가 왔다. 어떻게 3000명이 세례를 받는가? 4:4 5000명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숫자가 의미가 없어지니 기록을 안했다. 2000년 동안 먼 곳 까지 폭발적인 부흥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움으로 전파된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지시니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죽고자 하면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3000명은 자기의 억울함을 풀러 온 사람도 아니고 미워서, 아파서, 지겹다고 온 사람도 아니다. 이 3000명은 성령의 설교로 인해 찔림 받고 어찌할꼬 하면서 온 사람들이다. 이 공동체는 진정 성령의 선물 공동체 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회개하는 3000명만 보신다.
적용: 우리는 통회하고 자복하는 3000명 속에 들어갈 것 같은가? 누구에게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겠는가?
<기도제목>
이소정
- 성령의 선물 받기를 간구하는 한주 되도록
- 이직의 인도하심
- 명절 잘 보낼 수 있도록
이소라
- 성령이 부어질 때 받기를
신정화
-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 아가서 말씀이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길
-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성령세례와 회개), 가족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길
박재인
- 성령으로 회개하는 방법 알려주시길
- 작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