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8. 25 주일예배>
일시 2019. 8. 25 3부 예배
찬양 내 모습 이대로 ┃ 주가 지으신 이 날에 ┃ Everyday(날마다) ┃ 주의 집에 거하는 자 ┃ 하늘의 나는 새도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
말씀 열왕기상 22장 41-53절
설교 김양재 목사님
아합이 왕으로서의 권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은데 사사건건 하지말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니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건축 밖에 없으니까 건축으로 위용을 자랑하겠다고 곳곳에 성읍을 건축하고 상아궁까지 지었지만 그 건축한 치적은 그 죄악의 6장에 비해서 딱 1절에 지나갔어요. 그런데 우리는 치적도 없는데 자랑 할 그 한 절도 없지 않을까요?
환경이 겸손 할 뿐이라는 것이 다시금 깨달아지면서 내가 아합의 환경이라면 늘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다 죄인인데 아합을 너무나 경멸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세속적으로 아합의 부귀가 부러운 똑같은 사람들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마찬가지로 부부가 똑같기에 이세벨이 누가 내 남편을 힘들게 하냐, 내가 엘리야도, 나봇도 다 죽여주겠다. 라고 하죠. 물론 아합을 이해한다고 아합에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아요. 아합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고 불쌍한 대상이죠. 이런 것은 세상은 당최 모르는 일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열왕기상을 맺으며, 남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을 주로 다루면서 열왕기상의 열왕기는 반성문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죄 많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은 여섯 장을 다뤘는데 여호사밧은 열절만 다루네요. 역대기는 하나님의 족보를 다루었기 때문에 역대기에는 여호사밧의 얘기가 17장부터 네 장이나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반성문인 이 열왕기를 보면서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8대 왕 아하시야는 다룬다고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오늘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과 악한 왕, 선한 리더십과 악한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을 다섯 가지로 보겠습니다. (41-50)
선한 왕이 되려면 첫째로,
1) 믿음의 부모가 중요합니다.(41-42)
왕이라고 했지만 리더쉽이라 보면 되겠죠.
(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여호와가 심판하신다라는 뜻의 재판관처럼 여호사밧은 공적과 과오가 정확하게 기록되었어요. 히스기야, 요시야 왕과 더불어 3대 성군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왜 성군일까요? 역대하에도 병행 본문이 나오는데요.
역대하 20장 29-30절에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이런 평강을 누리게 된 것은 여호사밧의 정치, 군사력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방의 나라를 두렵게 함으로 두렵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것이고, 잊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어떻게 잊지 않을 수가 있죠? 남유다 왕이 새로 등극 할 때는 마치 공식처럼 어머니/모친의 이름이 나오죠. 가족관계가 소개가 되요.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폭력과 살인을 통해 왕위가 계승이 되는 북이스라엘은 공식처럼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믿음은 가족이/특히 부모가/또 어머니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 줍니다. 이 얘기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똑같이 왕의 자녀로, 왕이 되었잖아요. 환경이 똑같은데 왜 여호사밧은 믿음이 좋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까 외가 쪽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그의 아버지 실히는 왜 이름이 나왔을까? 그 (앗수바) 아버지 실히는 창 던지는 자 라는 뜻이에요. 여호사밧의 외할아버지는 당시에 이름이 난 무인가문의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딸 아수바는 이름의 뜻이 이상해요. 버려짐, 파멸 이라는 뜻이에요. 이런 이름은 짓기도 어려운 이름인데, 성경에서 이름의 뜻이 참 중요하다고 했어요. 이름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아버지의 나라사랑 때문에 딸이 버려진 것 같은 마음으로 파멸 당한 것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요?
수요예배 본문이 고린도후서 1장 8-9절인데요.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수요예배 때 이번주 강사님은 이 본문으로 정신질환을 다루면서 문자적으로 조현병을 앓고 있거나 식구들일 수 있다고 했어요. 혹시 아수바가 이렇게 '살 소망까지 끊어져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믿으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거에요. 이런 단어 하나를 생각하면서 저는 항상 실날 같은 가능성을 보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아합과 다른 점이 바로 이 절망을 맛본 어머니의 기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스카이캐슬 엄마와 같은 이세벨이 결국 집안을 멸망으로 이끌어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아수바처럼 버려진 것 같으나 여호와 앞에 오게 되어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여호사밧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아수바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살 소망이 끊어져서 자신에 대해 절망했기 때문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여호와 앞에 서게 되었어요. 외할아버지까지 성경에 언급이 되는 것으로 봐서 구속사적으로 믿음으로 해석을 잘한 이 명가를 이룬 가문이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해석이 중요한 거에요.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버려지고 파멸 당한 것 같은 아수바가 3대 성군 여호사밧의 어머니가 되었어요.
[적용해 보세요]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 나는 어떤 부모인가요? 또 어떤 자녀인가요? 스카이캐슬의 이세벨인가요? 버려지고 파멸 당한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하고 여호와 앞에 서게 된 아수바 인가요? 여러분들이 어떤 죽을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 가운데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여러분도 아수바가 되어서 여호사밧의 어머니가 될 줄 믿습니다.
선한 왕 두 번째는,
2)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43)
(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과 정직을 행하는 것이 같다고 하세요. 정직히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정관사가 붙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인 규례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인생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바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곁에 항상 머물러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인생과 이 세상은 정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서라면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에 속해야 해요. 여호와 앞에서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예배공동체 앞에서, 예수 믿는 식구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를 생각해 보세요. 분쟁이 없는 공동체, 집이라고 해서 꼭 좋은 공동체는 아닙니다.
# 부목사님 부부가 한 해 동안 열심히 싸웠는데, 초등학생 아들이 중재자가 되어서 쫓아다니며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지 참아!, 그러면 안 되지 둘 다 목자인데, 목자가 어떻게 말하는지 내가 다 들어보겠어.'라고 하는데 아이가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겠어요?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에서 들었겠죠. 교회 공동체도 있고, 식구 공동체도 있겠죠. 같은 예수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 자체가 정직히 행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거예요. 싸워도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거예요.
혼자서 정직하다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의로움이 되어서 남을 찌르죠. 결국 정직하다는 것은 내가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정직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고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은 알아듣지 못하죠. 여러분 목장에 들어가셔야 해요. 혼자서 정직하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세요.
이런 정직함으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아사의 조부 르호보암과 부친 아비암은 산당을 세우고 남색 하는 자들을 허용했죠. 그들은 아합 못지않은 악을 행했어요.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왕들의 퀄리티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 인 것이죠. 그런데 아버지 아사는 이것을 다 헐어버리고 우상 숭배자인 모친의 위를 폐했어요. 대단한 것이죠. 아사의 길은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으며 이 개혁의 길을 갔다는 거예요.
역대하 17장 6절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셨다고 해요. 크게 용맹한 군사를 백 만을 두게 되었는데요. 왕권을 대리하여 일 하는 용사가 백 만이나 되도록 여호사밧이 얼마나 종교개혁을 간절하고 철저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사방에 두려움을 주셔서 그동안 우리를 아무도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실력이 쌓였는지 공격을 받네요. 어머니의 역량으로 아합과는 다른 부자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부자들도 이렇게 경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집에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습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무시하며 혼자 정직합니까? 서로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렇게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는데, 성경은 여호사밧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기록을 했어요.
그래서 선한 왕 세 번째는,
3)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습니다. (43)
(43 ...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 시대 기브온 산당에서 (성전 짓기 전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은 후에는 이 성전에서만 예배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천번제를 드려본 후에 너무 이스라엘 나라가 부귀영화를 누린 것을 보았잖아요? 그러니깐 이 산당을 포기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를 포기를 못하는 거에요. 그러다보니깐 고질적인 범죄의 온상이 되었어요. 아사를 비롯하여 아사랴, 요담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도 이 산당을 다 폐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우리는 믿어도 다윗보다 솔로몬을 너무 좋아해. 솔로몬제과, 솔로몬 은행. 그냥 솔로몬 이름만 써도 돈이 들어올 거 같애.
제가 4대째 모태신앙인데 우리 아들을 낳으면서 솔로몬 왕같은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몇 천년이 지나도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거에요. 유다보다는 우리는 요셉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 마찬가지인 겁니다. 이를 폐할 자가 없어요. 백성들에게 침투해 있는 인본적이고 기복적인 지금으로 말하면 막 급할 때는 하나님만 부르짖다고 조금만 먹고 살만해지면 우리는 필요한 게 많아서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죠. 조금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되는 거에요. 예외가 없어서 우리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이 노도(怒濤)와 같이 몰려오는 것이에요. 눈에 보이는 산당을 제거하는 것은 본질적인 종교개혁이 아닌 것이죠.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안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요셉 같이 총리도 되고 지도자도 되고 여자도 많이 얻고. 이게 너무 부러운 거에요. 이런 것이 이방 풍속을 따르는 것인데 여호사밧이 그 산당을 종교개혁 하다가 절반의 성공으로 개혁이 철저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아버지 아사의 길로 개혁하는 것으로 돌이키지 아니했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맞아요. 또 산당을 폐하지 않아서 돌이키지 않았다와 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원어는 같은 동사입니다. 같은 동사를 사용해가지고 이제 여호사밧이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의 원상인 산당을 폐하지 않았음이 같은 비중이라는 것이에요. 그만큼 내가 여호와께로부터 떠나지 않고 아사 아버지 한 개혁을 돌이키지 아니할라고 애를 써도 돌이키지 않는 것만큼 산당 예배를 폐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에요. 이해가 되세요? 왜 이렇게 기복을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 본능이기에. 본능이 가르치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산당예배를 드린다는 거죠. 뭘 개혁한다는 것은 너무너무 힘든 것이에요.
# 제가 글을 읽었어요.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그대로 쓰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 개독 중에 대형교회 목사들 신상을 털어야 한다. 지금 어떤 후보를 터는 것처럼 털면 먼지 안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슈화시켜야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전략을 읽었어요. 읽는 순간 저는 먼지가 많이 날 것이라서 걱정이 너무 되는 거에요. 먼지나면 다 말했습니다. 먼지 날 때 너무 놀라지 마시고 먼지가 많이 나면 물을 뿌려주세요. 그러니깐 작은 것이라도 개혁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거에요. 그러니깐 뜨신 밥 먹고 이런 얘기를 하겠어요. 그러니깐 정말 산당을 폐한다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모든 것을 페한다는 것은 왕들이 잘못합니다. 특별한 왕들만 합니다. 미리미리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요새 갑자기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라고 무시하다가 쳐다도 안보다가 이러는가.
오랜 관행이 너무 많이 있을 거에요. 회사에서 직급별로 하청업체에서 받는 것이 관행이라면 나혼자 안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받아서 상납을 해야 하고 나도 아랫사람에게 받아야 되는 구조라면 나혼자서 안 받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게 악어의 사슬이라고. 내가 하나님을 믿고 돌이키려고 하는 것과 이런 악어의 사슬을 폐하는 것이 너무 똑같이 어렵다는 거에요. 구속사가 바로 이겁니다. 말씀으로 나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내가 폐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그래서 날마다 회사를 가도 내가 선한 게 하나도 없어. 이것을 절감하는 거잖아요. 이게 바로 여호와 앞에서 바로 선한 것입니다. 맨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여호사밧도 돌이키고 폐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데 너무 절감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에게 좋은 얘기만 하고 편안하게 천국 갈 건데. 성경은 항상 내 얘긴 거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회사 생활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마음은 원이로되 회사만 가면 어떻게 계약할지 감이 안 잡혀. 그러니깐 쉰소리 했다가 쫓겨나고 쫓겨나면 분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깐 이렇게 폐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에요. 그러니 교회만 오면 눈물이 나오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 뜻대로 못 살아가지고. 나는 선한 게 하나도 없다. 이런 생각 안하겠어요? 이게 어떻게 말로 되겠어요. 개혁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에요. 그렇게 정직히 행했는데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는 거에요.
[적용해보세요] 내가 나를 개혁하고 돌이키고자 하지만, 나를 폐하지 못하는 그만큼의 산당은 무엇입니까? 관행이라고 포기하는 거는 뭡니까? 목사님은 강단에서 설교만 하지 뭘 알겠는가. 뭘 알겠어요. 그래도 제가 몰라도 얘기하는 거죠.
선한 왕 네 번째는 산당을 폐하지 못하니
4)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44-45)
(44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화평은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남북은 그동안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아비얌과 여로보암, 아사와 바아사의 일평생, 일생 계속 전쟁이 계속 됐었잖아요. 그런데 여호사밧과 아합에 의해서 그 평화적 일시적 관계가 수립되었으니깐 이거 정치 얼마나 잘한 것입니까? 지금으로 말하자면 노벨평화상을 양쪽에 줘야 될 일 아닙니까? 그때가 여호사밧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율법으로 백만 대군을 길러내니깐 여기까지 좋았는데 이때가 남북이 모두 부귀영화가 극에 달한 시기였어요. 그런데 여호사밧도 그 환경에 가니깐 예외가 없네요. 바로 그 이 후에요.
역대하 18장 1절에
(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나오잖아요. 군사적 경제적 이유로 결혼동맹을 맺은 거에요. 이 정략 결혼은 아람과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구요. 전적인 은혜로 여호사밧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아합은 죽었잖아요. 그런데 자신은 남쪽 방언 소리를 질러서 주여잉~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잖아요. 좋은 사람은 남쪽 사람이에요.
그래가지고 역대하 10장 2절을 보면,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
아주 여호사밧이 시치미를 떼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대요. 선지자 예후가 나가서 왕이 악한 자를 돕는 것과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돕는 것이 가하나이까! 진노가 임할 거.라고 하면서 왕이 그래도 아세라 목상을 없이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기에 그것은 선한 일로 보겠다.고 두 가지 얘기를 다 했습니다. 아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혼인 동맹을 맺은 거라는 거죠. 여호사밧의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한 거에요. 이 결혼으로 인해 남유다의 북이스라엘 우상숭배를 비롯한 모든 불법들이 흘러들어왔어요.
역대기 21장을 보면.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한 사람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안 드릴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지도자. 오늘 선한 왕, 악학왕. 우리는 선한 왕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는데 아달랴 하나가 시집을 가서 불법이 흘러 들어왔어요. 더 나아가서 아합의 딸인 아달랴는 유다의 아들과 손자까지 남자는 다 죽여 버리고 자신이 여왕이 되는 엄청난 살육으로 남유다의 다윗 왕조가 끊어져서 예수님이 못 올 뻔한 가장 큰 위기를 초래한 그 짓을 여호사밧이 한 것이죠. 여호사밧의 죄보다 더 큰 죄는 이 세상에 없어요.
일평생 전쟁을 해도 전쟁이 있었던 때가 더 나았어요. 누구와 평안하는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백성이 산당에서 분향하는 것도 여호사밧을 보면, 폐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는 거에요. 속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결국 여호사밧은 아합보다도 훨씬 더한 만고의 죄인이라는 거에요. 비교할 수 없는 죄인이 여호사밧이이라는 거죠. 여러분들이 옳고 그름으로 그 부부를 보고 나라를 보시면 안된다는 거지요.
45절이에요.
(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는냐)
여호사밧의 치적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족보에 올라갔다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에 이 열왕기에는 반성문 쓰는 것이니 언급을 안 합니다. 역대하에는 써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신앙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말씀 운동을 일으켰고 백만대군 만들었고 전국에 재판제도와 지방제도를 정비한 성군입니다. 그런데 여기 특히 그가 부린 권세 얘기가 나옵니다. 이 권세. 권세로 전쟁을 했대요. 구약성경에서 총63회 나오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권세를 얘기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여호사밧이 그만큼 강력한 권세를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절대권력에서 보면 절대권력은 왕으로 하여금 여호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백성들을 탄압하는 부정적인 뜻을 다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리하는 여기 왕에게도 절대 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쟁한 것을 부각시킨 이유는 이 절대 권력으로 미가야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합과 동맹해서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죽을 뻔 했잖아요? 이 절대 권력으로 선지자를 무시하다가. 그런데 회개하고 나서 또 절대 권력으로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모압과 암몬을 정벌했습니다. 똑같은 전쟁 같지만 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가장 선하게 쓰면 최고가 된다는 거에요. 이 세상 최고의 리더쉽은 이타적인 독재자라고 하잖아요. 두바이에 왕이 10년 안에 최고의 빌딩들을 다져놓은 것은 왕이 지으라고 하면 뚝!딱!뚝!딱! 지어지거든요. 우리는 하나 지으려면 3년 몇날 회의를 해가지고. 여기저기 허가 받고 해야하니. 민주주의가 꼭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똑같은 전쟁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절대 권력을 주시는 것은 백성을 위해 쓰라고 절대 권력을 주는데 그게 조금 잘못되면 하나님 사랑하시는데 자기가 죽을 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겼어요. 어떤 전쟁도 하나님이 그렇게 권력을 주실 땐 전쟁의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전쟁의 주인이 내가 되면 안된다는 거에요. 아합도 자기가 주인이 되어 죽었잖아요. 정말 치우침 없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다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적용해보세요] 일시적인 평화를 위해서 치명적으로 실수한 것은 무엇입니까? 혼인입니까? 동업입니까? 안가야할 모임입니까?
선한 왕 다섯 번째는,
5) 마지막 경계로 U턴하는 사람입니다. (46-50)
45절에서 최종 평가가 끝났잖아요. 여호사밧은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끝나야 되잖아요? 여기에 추신이 달렸어요. 몇 가지 더 추가하고 있는데 여호사밧이 선한 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를 썼습니다.
(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이게 또 영광에 달할 때 남색하는 자들을 절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끝날 때 마지막에 이것을 여호사밧이 개혁했다는 거에요. 남색하는 자, 카드셋이라는 이말은 거룩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남색하는 자들이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거룩한 제사를 주관하기 때문이었어요. 음란, 성행위가 우상숭배자들에게 거룩한 종교의식이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깐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동성애 큐어축제에서 검은 사제 옷을 입고 음란한 옷차림을 하면서 행진을 하는 사진 보셨잖아요? 아사가 남색하는 자들을 그때까지 못 쫓아냈던 것 같아요. 이 일이 너무 힘든 일인데 결국 해냈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호사밧이 성군인 거에요. 진짜 개혁하기 힘든 남색이 있는 거에요. 이 일을 하려면 정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건가.
47절서부터 50절까지 보면
(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에돔은요, 이삭의 두 아들 중에 하나인 야곱의 형, 에서의 별명이었어요. 알다시피 약속의 자녀와 상관없는 그곳에서 여호사밧은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솔로몬이 산당 예배의 히로인이잖아요.) 솔로몬의 영광을 그것을 되찾기 위해 배를 만들었어요. 무역이 성행했잖아요. 금을 구하려고 배를 만들었는데 에돔 수도 에시온게벨에서 파선을 했어요. 에돔도 약속의 자녀가 아닌데 우리가 그렇게 실수를 해요. 그런데 이 배를 누구와 함께 만들었다고 했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함께 만들었다고. 아합이 죽었는데 계속 교제를 하고 있는 거에요.
역대하 19장 2절에 예후에게 아합과의 교제를 엄청나게 질책을 받고 2차 개혁을 했는데요. 20장 37절에는요. 엘리에셀이 이것을 또 경고했습니다. 심히 악을 행하는 아하시야가 교제를 했기 때문에 네 배를 파선시킬 것이다. 분명이 그렇게 나와있어요. 그렇게 경고를 받았는데도 사람은요, 파선하기전에는 돌이키지 않더라구요. 망하기 전에는 안 돌이키기더라구요. 한 번 맺은 관계를 얼마나 끝어내기 힘든지 몰라요.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이고. 아합의 딸은 여호사밧의 며느리잖아요. 서로 피가 섞이지 않았을까요? 그가 개혁을 하면서도 이것을 끊을 수가 있겠어요. 다 삼촌이고 고모고. 이것을 보니깐 여호사밧이 끊을 수 없는 게 이해가 거에요. 이게 너무나 또 슬펐어요.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성군도 안되는 게 있구나. 하나님, 여호사밧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두 나라가 만든 배를 파선시키는 거에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주시면서. 이때 경고를 들었었잖아요. 들었던 경고의 말씀을 여호사밧은 생각해낸 것이죠.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깐 이때 깨닫고 아하시야가 다시 배를 만들어서 가자고 했을 때 이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남색하는 자를 쫓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악한 아하시야의 구제를 중단한 거에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해보니깐 중단한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아시겠죠? 아합의 딸 며느리가 있는데. 거기 다 손주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끊겠어요. 왕인데. 바로 이점이 마지막에 선한 왕으로 남게 된 최고의 비결입니다. 인생은요, 여호사밧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록이 49절입니다.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아까 45절 전까지는 이 땅에서 평화하였더라로 끝날 뻔했는데 이 평화를 끊었다는 것이죠.
인생은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여호사밧이 돌이켰다는 것이 중요해요. 여호사밧이다윗 성에 장사된 건축복이었어요. 생각할수록 남편의 마지막이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도 그렇게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는 돌이키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과 한 번 하기, 미안하다고 한 번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잘못했으면 돌이켜야 하는데 이 돌이키는 것이 죽은 자 살리는 것보다 어려워요. 위대한 일입니다. 누구는 평생 잘못했다는 얘기를 열 번을 안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택자가 아니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여호사밧은 택자이고 선한 왕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여호사밧이 나라를 말아먹는 큰 실수를 했음에도 선한 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이라도 돌이키고 회개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떤 큰 범죄를 지고 얼굴을 들 수 없는 죄를 졌다해도 회개만 하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죄가 아무리 크다 한들 여호사밧보다 더 큰 죄는 없어요. 의도 했던 안했던 그의 죄는 하나님 나라를 끊어지게 할 그런 죄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아달랴가 와서 자기 아들들을 다 죽였습니다. 손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고 남색을 끊고 우상을 섬기는 아무리 내 친척, 할아버지라도 아하시야를 끊어야 되는 거에요. 거기에 쾌락이 있겠죠. 제물이 어른거리겠죠. 그 어마어마한 배가 그때 그당시에는 굉장한 손해였는데.
[적용해보세요] 이제는 허락하지 않아야 할 교제,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로인해 하나님이 애써 막아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게 제가 13년 동안 문밖출입을 못했는데, 여러분의 간증을 듣고 그러면 제가 빽도 없고 뭐도 없는데 제가 직장이라도 나가고 학교라도 나갔으면 천프로 이혼을 했고 다 망가졌을 것 같아요. 제가 뭐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여자들이 가는 길이 뻔하잖아요. 어떻게 나를 문밖출입을 못하게 했을까? 그건 하나님의 흠 없는 완벽하신 성실하신 셋팅이었다고. 생각이 되는 거에요. 나도 여러분 환경이었으면 똑같이 당했을 것이에요. 어머 나도. 똑같이 당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아합이래도 그랬을 거 같아요. 여호사밧이래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구속사적인 거잖아요. 생각해보니깐 정말 하나님이 나를 막아주신거에요. 애써 막아주신 거에요. 그렇게 강력한 게 아니었으면 나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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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로 왜 선한 왕인가를 봤어요.
두 번째는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야(51-53)
(5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
아하시야가 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여로보암의 길대로 악을 행했대요. 그 길은 바알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시기를 아버지 온갖 행위처럼 하였더래요. 아하시야의 전체 코멘트입니다. 여호사밧은 치적도 많고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지만 선한 왕이라고 칭함받는데 아하시야는 조상의 말도 잘 듣고 아버지 엄마 말 잘 듣는, 조상신을 너무 잘 섬기는 착한 어린이어요. 사건이 하나도 없어요. 아하시야가 자발적으로 바알에게 엎드림으로 바알의 맨끝은 돈이라고 소유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했는데 종이나 다름없이 바알을 떠받쳤다는 것을 의미해요. 죄책감도 없이 고의적이고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기에 여호와의 진노를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요.
그도 공동체가 있어요. 교회를 안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 공동체가 아니면 바알 공동체에요. 싸워도 예수 공동체여야 정직한 것을 알려줄 텐데 조상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여로보암이고 아버지는 아합이고 어머니는 이세벨이고 누이는 아달랴. 최고의 로얄패밀리지만 정직을 가르쳐줄 공동체는 아닌 거에요. 천국이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는 예수 공동체인데 교회를 나간다고 다 예수 공동체는 아니라는 거에요. 너무 바알 공동체도 너무 많다는 거죠. 바로 3-4대의 저주가 바로 이런 걸 의미해요. 이렇게 해서 아달랴의 모든 3-4대의 이름들이 마태복음 계보에서 빠졌어요. 로얄 패밀리일수록 고질적인 우상숭배에서 끊어지기가 너무나 힘든 거에요. 이 말은 내가 엄마 아부지 말 잘 듣다가 내가 지옥에 갔다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금송아지 숭배하는 돈신, 맘몬신,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 위에 돈을 놓고 섬기는 것이죠. 53절에 그 아버지 온갖 행위같이 했대요. 아합은 억울하지 않겠어요? 모두 이세벨이 충동질 한 것인데. 그런데 책임 아합에게 묻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속인자보다 속은자가 더 나쁘다는 거에요. 아담과 하와때도 책임을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남자는 얼마나 얼마나 책임을 지는 가장으로서 믿음의 책임을 지는 역할을 해야 되는지 몰라요. 우리 아내가 그랬다고 하지만 이 땅에서 역할을 주셨어요. 이처럼 성도는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 가냐에 따라 삶의 마지막 날 여호와 앞에서 그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계승할 수가 있어?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은 모반과 살인이 계속도어 왕조가 없어졌잖아요. 그런데 이 오므리 왕조가 계속 내려가고 있잖아요. 그것은 왜그랬겠어요? 아합이 한 번 겸비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잖아요. 기억나시죠? 네 죄를 다음 시대로 유보하겠다고. 하나님은 조금이라도 회개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고 아합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아합 가문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악행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약속하심 바를 이루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지만 딱 2년 밖에 안됩니다. 조상, 아버지, 엄마 말 잘 듣다가 엄마 앞에서 짝짝꿍하다가 지옥갔다는 거에요. 정말 말 잘 듣다가 지옥 갔어요. 이처럼 우리가 한 절씩 읽어가다보면 가치관이 달라지는 거에요. 성경을 순서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설득시키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해석이 많이 돼요. 북이스라엘은 말씀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세벨처럼 임금을 딸을 좋아하고 부잣집 딸을 그렇게 좋아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허투루 여기고 그러는 거죠.
# 그래서 정말 여호와 앞에서 악한 아하시야 집 같은 집안 얘기 하나를 들려 드릴께요. 나눔에서 본 것입니다. 회사 창업주가 집안이 풍비박살났다는 소식을 들었대요. 암으로 작년에 작고하셨는데 처음에는 그 분의 삼촌이 목사님이라서 예배를 드렸대요. 그런데 몇 달 안되서 더 이상 교회를 안나가겠다고 한 것은 목사이신 삼촌이 날마다 헌금을 강요한다고. 교회는 돈이다라고 해서 교회를 안나갔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분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회사 여직원과 재혼을 했는데 회사 상장 이후에 직원들에게 주기로한 주식까지 다 챙겨서 이제 상장 할 때 25억에 회사를 팔고 갔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는 그것으로 자식들이 잘 살까? 궁금했다는 거에요. 결국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그분의 딸은 재산을 보고 미국으로 시집을 갔는데 집안이 풍비박살이 나니 이혼을 했다네요.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지키려고 미국에 있던 애인과도 헤어지고 돌아왔는데 그 재혼녀인 여직원은 회사명의를 돌려주시는 대신 대출을 하고 도망가서 회사가 빚더미에 놓이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깐 홀시어머니 집 사드린다고 하면서 자기 명의로 그돈까지 다 빼서 살아졌기 때문에 결국 아들은 빚더미에 나앉고 그 어머니는 거리에 내쫓게 되고. 그래서 이제 그분이 나눔하기를 이것이 다 하나님의 공의라 생각하면서도 그분이 아프실 때 제가 한번이라도 찾아가지 못했는데 그 때 큐티책을 들고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움이라기 보다는 쌤통이다라고 아내와 나눔했다는 거에요. 저는 그분의 재산 240억이 어떻게 되었나가 더 궁금했다는 거에요.
초원님이 이런 처방을 하네요. 240억도 간단히 날아가 버릴 것 같은데요. 세금으로 나가고 도둑에게 감사헌금하고 강도에게 건축헌금하고 다 사라져버릴 거 같다고. 이 창업주의 길이 아하시야 길과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말 믿음도 없는데 다 아비 마귀에게서 나온 부모 말 잘 듣다가 예수없이 지옥으로 가는 평탄한 아하시야 같은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죄를 지었어도 마지막에 회개하는 여호사밧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리더쉽은 믿음의 부모가 중요하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요. 그러나 마지막 징계로 유턴하는 사람이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에요. 여호와 앞에서 악한 리더도 부모책임이에요.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말 잘 들으면서 돈신 섬기면서 그 지옥을 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악한 아합도 선한 여호사밧도 악한 아하시야도 우리 모두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들인 거에요.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어야지 되겠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께요.
말씀후 찬양 시선★
기도제목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은 말할 감이 안되서 이렇게 짧으네요. 우리도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과는 말할 것도 많고 통한게 많아 좋은데요, 이런 악한 사람 만나면 숨이 막히고 재미가 하나도 없고 날마다 우리 부모 최고만 부르짖으니 위화감만 생기고 진짜 매력이 하나도 없어요. 바로 그것이에요. 너무 착한 사람인데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보고 우리는 성품이라고 하죠. 죄를 많이 지었어도 여호와 앞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보고 우리는 믿음이라고 해요. 주홍같이 붉은 죄도 주님의 시선으로 보면 다 선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이렇게 나는 어떤 엄마인가 회개를 하고. 버려지고 파멸당한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한 것 같은 이 아수바라면 내가 죽음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부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공동체에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공동체를 좀 나가게 해달라고. 나 혼자 정직하다는 것에서 좀 빠져나가게 해달라고. 내가 나를 개혁하고 돌이키고자 하지만, 그렇게 폐하지 못하는 그만큼의 산당이 있다는 것을 내가 좀 알게 해달라고. 아무리 부족해도 주님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우리 집안을 보고 교회를 보고 나라를 보고 그렇게 해서 구원의 시선으로 보게 해달라고. 오늘 주홍 같은 죄에도 우리 마지막에 하나님께 돌아오면 선한 왕으로 인정해주실 그 하나님께 그 주님께 내가 나아오길 원한다고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4대 째 모태신앙이라 교회에서 살았지만, 믿음의 부모도 주셨는데 저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못햇습니다. 공동체가 귀한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힘들었는데 제가 아무도 나눌 지체가 없었습니다. 공동체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혹독하게 참으로 책임을 물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최고라고 그렇게 가면서 가정중수를 외치고 가면서 내가 그것을 돌이키고자 하는 만큼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나를 직면한다는 것이 여호사밧을 봐도 얼마나 어렵다는 것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산당을 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이 모든 것을 내 옆에 식구들이 알고 있는데. 내가 온전해서 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사밧이 온전해서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까지도 회개하면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니 위로가 됩니다.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그날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때 내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돌이키길 원합니다. 회개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정말 끊어지지 않는 남색과 아하시야를 끊을 수 있도록. 돌이킬 뿐만아니라 이처럼 유턴할 수 있도록 은혜위에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너무나도 버려진 것 같고 파멸 당한 것 같은 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면, 죽음 가운데 살려내시는 그 하나님을 부르기 위한 하나님의 콜링인줄을 믿사오니 이 하나님을 믿고 나와서 믿음의 부모가 되어서 어머어마한 여호사밧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여 그 자리를 인정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자리매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여호와 앞에서 다 선한 리더가 되며 부모가 되며 상사가 되며 모든 리더쉽들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부모님 잘 모시는 것 중요하지만 우리 부모님 예수 믿게 아버지 하나님, 그것이 가장 큰 기도제목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우리 가치관을 바꿔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8. 25 목장 예배>
여호와 앞에서 한수진 목장
일시 19. 8. 25 4-6
장소 3층 테라스
참석 한수진, 우지현, 이지민, 이은영
나눔 한 주 근황과 적용질문 가지고나눔 했습니다.
A : 큐티와 기도가 부담스러워요. 그러나 공동체는 참 좋아요. 목사님 말씀이 익숙해졌다.
(목자, 너의 은사는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싫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말씀이 들려서 정말 기쁘다. 박수!!!)
B : 폐하지 못하는 산당, '내가 부모님의 피해자라는 생각' 구혜선- 안재현 사건을 보고 변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 이라는 게 많이 느껴졌다.
(목자, 믿음의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다윗성에 장사시키기위해서 하나님 돌이키는 마음 주실 것이다.)
금주 기도제목
은영 관계에서 있어서 끊어낼 것과 앞으로 삶에서의 아웃리치에서 해야할 것들 적용 잘 할 수 있도록.
지민 한 주 일 성실히 할 수 있도록.
지현 성실하게 큐티와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9/2 어머니 검사결과 나올 때까지 평안한 마음 주시길. ☆어머니 교회 등록 하실 수 있도록
수진 생활예배 잘 드리고 말 예쁘게 하는 주 보낼 수 있도록.
을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