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8
열왕기상 22:29-40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흉한 말씀도 길한 말씀도 여호와의 말씀이면 믿어도 안 믿어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18장(진실로 너희에게~이루리라),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참을 만큼 참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고 하신대로 듣지 않는 아합을 심판하십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변장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29-30절)
(29절) 아합은 거짓의 영에 꾀여 자기욕심으로 스스로 팔려나가는 영적장애자로 그 옆에는 최고라고 말하는 이세벨이나 거짓선지자들이 연호를 합니다. 세력과 돈이 있으면서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한마디라도 반대를 하는 사람과는 놀지 못합니다. 두 번이나 전쟁에서 승리했고 100만대군의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형제나라 여호사밧의 지원과 명분이 있기에 미가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명분이 있어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29절, 31절 말씀을 보면 아합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방나라 아람왕과 같이 이스라엘왕으로 언급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아합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갖춘 것 같아도 마지막에 하나님의 사인이 없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려고 이 전쟁을 치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400명에게 묻고 미가야에게 물었어도 들을 마음이 전혀 없는 아합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목장에서 처방 할 때 들으면 하나님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셔서 믿음과 재물을 주시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듣는다는 것은 그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묻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렵습니다. 되거나 안 되거나 붙거나 떨어지거나 말씀을 묻고 가면 말씀대로 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되는 것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아합은 열심히 물었지만 듣지 않고 끈질기게 자기 고집대로 하면서 찾아낸 방법이 사기 치는 변장입니다.
(30절)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총 지휘권을 맡기지만 미가야의 예언이 걸렸습니다. 시편 7장12절(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예비하셨도다), 모든 것을 가져도 회개하지 않으면 매일 등골이 서늘합니다. 하나님이 활을 당기시고 계시기 때문에 인생이 두려운 것이고 두려움을 잊으려고 목이 마릅니다. 아합은 자신이 변장하고 여호사밧을 변장시키는 것이 엄청난 계략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합에게 이 전쟁은 이겨도 져도 무관합니다. 이기면 길르앗 나못을 얻는 것이고 지면 여호사밧의 죽음으로 유다를 접수 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아합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변장하였기에 죽을 일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꾀를 읽지 못해 아합의 왕복을 입었을까요? 아합이 죽는다는 미가야의 예언을 들었기에 아합이 죽는다고 했지 나는 죽는다고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릇된 긍휼로 입었을 것입니다. 또한 운명공동체를 얘기한 여호사밧이기에 전쟁을 나가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한번 꾀면 계속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도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듣지 않고 아합과 전쟁에 나가는 여호사밧을 통해 우리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여호사밧은 사돈이기에 믿고 싶었고 강대국 아람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했기에 아합의 전략이 맞다고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지만 묻고자 한 여호사밧의 연약함을 감싸 안으신 것 같습니다. 미가야가 홀로 고생의 떡과 물을 먹으며 감옥에 갔는데 아합과 같이 출전하는 것을 보니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는데 너무 슬퍼 눈물이 납니다. 어떻게 여호사밧이 미가야의 말을 안 듣고 아합과 같이 나갈 수 있을까요? 여호사밧은 말씀의 위력을 몰랐을까요? 여호사밧의 개혁이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 되지 않는 다면 여기까지 인가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믿음의 분량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둘이 같이 전쟁에 나갔지만 다르게 대하십니다. 아합은 변장을 해도 심판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결국 속수무책으로 죽습니다. 모든 관계가 개인도 나라도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변장들을 합니다. 말도 감정도 옷도 자리도 외모도 다 변장을 하고 이기기 위해서 아비 마귀에서 난 사람이 거짓의 영으로 무엇인들 변장 못하겠습니까? 여호사밧도 아합에게 넘어간 변장이잖아요! 서로 속이며 다 넘어갔습니다. 변장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으려면 오직 말씀으로 정공법으로 나가야 합니다.
Q.여러분이 이기기위해서 변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척, 있는 척, 배운 척, 예쁜 척, 아는 척... 중 어디서 변장을 합니까?
2. 병거를 의지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1-33절)
(31절) 아합은 나가지 말라했는데 고집부리면서 변장까지 해서 나갔습니다. 아합은 무엇이 그렇게 자신 있어서 나갔을까요? 병거 때문입니다.(31절~35절까지 병거 명시) 그 당시 병거는 지금의 미사일이나 탱크에 해당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아람왕은 대단한 병거를 다룰 줄 아는 지휘관 32명에게 이스라엘왕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아합이 끝까지 병거를 하나님 보다 더 위에 놓고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며 전쟁에 나갔더니 입이 벌어질 정도로 병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지휘관들이 이스라엘왕만 노리며 달려듭니다. 결국 병거를 마지막까지 하나님 자리에 놓아 둔 아합은 병거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돈 좋아하다가 돈에 파묻혀 죽었어요. 병거지휘관들 손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마지막까지 아합이 병거를 하나님 자리에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합의 가장 큰 죄입니다. 그동안의 잘못들을 아합의 겸비함으로 다 용서해 주셨는데 끝까지 믿은 것이 병거라고 합니다. 욥은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겼는데 아합은 사단이 이긴 것 같습니다. 병거가 최고라는 거짓의 영으로 꾀인 아합을 하나님이 막고자 했지만 결국 심판받게 되었습니다. 죽기직전까지 병거 얘기만 나옵니다. 결국 아합은 그릇된 긍휼로 벤하닷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벤하닷에 의해 죽임당합니다. 사단을 우습게보면 사단의 밥이 됩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과거 자신에게 목숨 구걸한 것! 형제여 라고 외친 것! 만을 기억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Q.여러분들이 의지하여 자다가도 부르는 병거는 무엇입니까? 내가 죽기 직전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병거는 무엇입니까?
(32-33절) 지휘관들이 아합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 한사람을 향해 달려듭니다. 여기서 누가 살아날 수 있나요? 이때 여호사밧이 일촉즉발 상황에서 '주여'라고 소리 지릅니다. 32절 소리지르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외침을 의미합니다.
병행구절 역대하 18장31절(여호와께서~떠나게 하신지라),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이 입혀준 대로 입고 나갔다가 죽을 일만 남았는데 여호와께서 지휘관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호사밧으로 부터 그들을 꾀어내어 여호사밧이 표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여호사밧의 주여 한마디가 남쪽나라 말로 억양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주여 우린 연약 합니다 찬송을 부르며 나는 할 수 없다고 주님만을 불러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마지막 주여! 한마디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돕고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잘나서 주여를 외치지 못하고 자신이 우상단지를 섬기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부유해져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사악한 아합과 짝 한 것 때문에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것과 짝한 것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4절(죄에~받지 말라),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 세상과 잘 지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하여 심판이 임할 때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심판받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Q.여러분은 급할 때 무슨 소리를 지르겠습니까? 주여!!
3. 무심코 당한 일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4-36절)
(34절) 무심코(한글개역: 우연히, 원어: 흠이 없는 완벽한 상태, 온전함, 성실함) 한 것이 하나님의 완벽한 셋팅이라고 합니다. 한 병사의 목적 없이 쏜 화살이 아합의 갑옷 솔기 틈새를 맞혔습니다. 무심코 쏜 화살이 하나님의 흠이 없는 완벽한 셋팅이며 세상은 우연히 없습니다. 우연히 만난 것 같아도 심판도 구원도 하나님의 흠 없는 온전하심의 결과입니다. 잘못 만났다고 아무리 외쳐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으냐는 자유의지지만 그에 따른 구원도 심판도 하나님의 흠 없는 온전하심입니다.
(35절) 심각한 부상 또한 완전하신 하나님의 셋팅입니다. 아합의 상태는 하루 동안만 살 수 있는 부상으로 맹렬한 전투 속에서 탈출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거바닥에 고인 피는 아합의 죽음을 비참하게 묘사해줍니다. 전쟁에서 승리만 하다가 하지 않아도 될 전쟁을 나가서 안 되는 것이 구원과 심판을 향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36절) 일반병사로 변장한 아합의 죽음인데 백성들의 전의가 상실됩니다. 마치 최종목적이 아합의 죽음 같습니다. 목적달성이 되어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것 같지 않나요? 17절, 28절 미가야의 말씀처럼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고 평화롭게 귀환합니다. 내가 죽어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되는 인생은 되지 말아야합니다. 나 한사람이 죽어 열매 맺는 것과는 다릅니다. 똑같이 죽어도 영육간의 죽음이 다른 것 같습니다.
Q.우연히 무심코 재수가 없어서 만났다고 아직도 원망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완벽한 성실하심이라고 생각합니까?
4.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7-40절)
(37-38절) 아합의 시신이 사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최대의 전리품은 상대 적국의 왕이나 장수입니다. 아합이 왕복을 입고 있었다면 시신이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병사로 위장한 것은 아합이 살기위해 꾀를 낸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 꾀도 시신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아합만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말씀대로 된 인생이 얼마나 대박 난 인생인지 모릅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와 아합을 환영하려 하는데 피에 엉겨 붙은 시신을 사마리아 못에서 씻는 모습과 개들이 피를 핥아먹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같이 그대로 되었더라 를 전율하며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20장42절 벤하닷을 살려주었기에 목숨을 대신하리라, 17절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리라, 21장 19절 아합의 피를 개들이 핥으리라 말씀 모두가 사실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한 선지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하는데 세우는 것이 얼마나 불행임을 볼 수 있습니다.
(39절) 상아궁은 오므리 왕족부터 아합왕 시대가 최고의 번영시대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최고의 정치를 한 왕이지만 아합의 숱한 죄악들은 16장부터여섯장에 걸쳐 나오는데 치적은 오늘 39절 한 줄로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인간들의 평가는 다릅니다.
(40절) 아합이 말씀대로 심판 받았음에도 조상들과 함께 잤다고 합니다. 함께 자다는 말이 천국에 갔다고 들릴 수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나답, 엘라, 시므리 같은 왕들은 조상들과 함께 잤다는 말이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반역의 왕족 시작으로 선한 왕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왕들 중 조상과 함께 자는 왕이 몇 명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그나마 아합은 이방왕들과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방왕들은 가책이 없어 권세 있으면 다 가지고 다 죽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미가야, 나봇의 포도원, 엘리야를 열렬히 미워하면서도 묻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엘리야를 가장 괴롭히며 엘리야를 불세출의 선지자로 자리매김하는데 가장 수고한 공로자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정체성이 생기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사람은 부 할수록 거짓 아비마귀에 속하기 때문에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믿음을 가지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안 되는 아합을 보면서 하나님나라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합이 너무도 부럽기 때문에 아합 같은 모델이 우리를 위해 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성취를 보여준 것입니다.
Q.예수 믿는 사람이 최고야 라고 하십니까? 안 믿어도 착하면, 공부 잘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행함을 최고로 생각합니까?
[기도제목]
은우
연봉협상 계약서 말씀 인도 받도록
삶과 회사 하는 일에 사명과 소명 받도록
허락하신 시간과 장소 안에 주님 경영 의지하고 날 살펴 달라는 기도하도록
전시준비 말씀 의지하며 잘 끝낼 수 있도록
돕는 배필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외 출장이 자주 있는데 영육간에 지치지 않도록
민주
계획하는 것들 말씀으로 인도받을 수 있도록
가족건강
주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누리를 평강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예선
해결이 아니라 말씀에 해석 받도록
앞서 나가지 않고 주님과 동행 하도록
말하기 전에 생각하며 경계 지키도록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주시도록
시간들 잘 보내며 평강 누리도록
두려운 부분 주님께 위로 받고 잘 나누며 성령님 도움 받도록
은실
가족구원
내 죄 보고 말씀 보며 정죄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것들 잘 예비 될 수 있도록
은혜
생활예배와 시간들 잘 보낼 수 있도록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 경영 하시도록
말씀에 약속 받고 영육간에 건강 하도록
현경
수치 잘 감당하고 제자리 지키며 갈 수 있도록
가족들과의 사건·상황들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고 건강하게 분리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마음 주시도록
이상한 상황이 우연히 온 일이 아니라 주님의 경륜인 것 알고 평강 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