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8. 18. 열왕기상 22:29-40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서론.
오늘 말씀은 흉한 말씀이든 길한 말씀이든 여호와의 말씀은 그대로 이뤄진다는 말씀.
우리가 날마다 말씀읽고 적용하고 큐티하는 것은 천하를 얻은 것과 같다. 그러나 교회를 다녀도 천하를 못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인 아합을 위해 하나님은 오능 심판하신다.
- 변장을 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거짓의 영에 꾀임받고 팔려가는 영적 사람이 되었다. 거짓선지자들도 동반하게 된다. 아합의 한번도 반대하는 사람과는 놀지 않는 자기 중심성을 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가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아합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지말라는 것은 하지말아야하는데 이런 역할 모델이 필요했기에, 아합이 쓰인다. 세상은 욕심이 전공이기에 아합이 모델로 쓰였다.
오늘 북이스라엘의 왕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남유다만 언급되는 이유도 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이방의 왕과 똑같지 말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날리신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백성이라, 마지막 하나님의 사인이 없으면 안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되기에 이 전쟁도 결국 하게하시고 치신다.
400명에게 묻고 미가야에게 물었어도 아합에게는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본다. 목장에서 듣기 싫은 말이라도 듣고 가는 것에서 기름부음받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듣는 마음이 있으면 그래도 행할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눔/ 아내가 힘들게 육체 노동 한다. 백수남편은 아파트를 청약 하자고 하고, 그 청약금은 아내가 다 갚아야 하기에 아내는 절대 안된다고 했음. 완전 노동하는 아내 상대로 이혼을 해서라도 청약을 넣겠다하니 순종을 아무리할려해도 갚을려니 아찔해서 도저히 안되겠음. 목장에서 묻고가자하니 결사반대로 안한다고 함.
우리는 있어도 없어도 붙어도 떨어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묻고가야 한다. 잘먹고 잘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중요하다.
아합의 방법 : 변장이다.
30/ 여호사밧에게 총 책임을 맡기는 척 하지만 사실은 미가야의 말이 걸려서 이렇게 변장하는 것.
회개하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것이 두려워 지는 법. 아합은 욕심에 꾀여 변장을 하고 변장을 시킨다음 엄청난 계략을 짰다고 생각 했을 것. 아합의 생각 = 이겨도 져도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이기면 길르앗 나봇 탈환이고 져서 여호사밧이 죽으면 유다를 접수 할 길이 생기는 것. 져도 이겨도 좋을 계략을 짰다. 자기는 일반 병사로 변장했기에 자기가 죽을 케이스는 못했기에 이렇게 자기 꾀 중에 죽었다.
여호사밧은 이 꾀를 믿어서 이 변장을 순순히 수긍했을까? 내가 왕복 대신 입으면 죽지 않을까 했을까. 곧 그릇된 긍휼로 입었을 수 있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을 정도로 영적인 그는 이제와서 전쟁에 같이 못 나가겠다 하기가 곤란해진 탓에 ㅡ 운명공동체가 되었으니 ㅡ 물려가게 된 것. 이렇게 믿음 좋아도 미가야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합과 한 패가 될 수가 있다.
다 듣고도 아합과 한 패가 되어 같이 나간 것. 사돈이 되었으니 믿고 싶은 것. 또 아합은 좋은 전쟁가니까 분별이 안되어 묻고자 한 여호사밧의 연약함을 하나님은 감싸안았다. 그래도 미가야는 홀로 감옥에 가는 것 까지는 좋으나 여호사밧이 진짜 마지막 믿을 맨이었을텐데,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어서 미가야는 진짜 혼자 된 것 같이 되버렸다.
그렇다면 여호사밧은 개혁의 사람이다. 믿음의 분량은 엄청나 아합과는 달라보이지만, 하나님은 같이 나아가게 한다.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말도 감정도 변장을 한다. 자리를 변장하기도. 이기기 위해서 거짓으로 변장을 한다. 여호사밧마저도 넘어가는 변장이다. 변장을 안하려면? 오직 말씀. 항상 모든 사건은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말씀에 의거해야.
적용/ 이기기위해서 변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척. 배운 척. 아는 척. 중에 무엇입니까?
- 병거를 의지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0/ 아람 왕이 오직 이스라엘 왕과만 싸우라 했음.
여호사밧이 소리를 꽥 질렀다. 온 병력이 그가 아합이 아닌 것을 보고 돌렸고 한 사람이 무심코 날린 활에 맞았던 아합.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해서 왕이 병거에 붙들려 싸우다 피가 나 병거의 바닥에 피가 고였다고 한다. 아합은 전쟁에 뭐가 그렇게 자신 있었을까? 뭐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도 병거에 붙들린 아합. 지금의 미사일과 탱크에 해당하는 병거. 그 대단한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사령관을 32명이나 등용시켜, 특공부대로 만들어 오직 아합만 쳐라 하고 전쟁에 나간 아람.
마지막까지 병거 병거 하다가 파 묻혀 죽은 아합. 그 병거의 노련한 사람들에 죽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간절하게 회개하라고 회유하셨지만, 마지막까지 병거를 하나님자리에 두었던 아합. 그 많은 실수는 겸비함때문에 한번씩 다 봐주셨던 하나님. 전쟁 없는 삼 년 이후에도 끝까지 믿은 아합은 마음을 돌리지 않고 심판을 결국 받고 만다. 그릇된 긍휼로 벤하닷을 놓아주었더니 지금 벤하닷에게 죽는 아합. 사탄을 우습게 보면 사탄의 밥이 된다.
얼마든지 벤하닷을 이길 수 있을거라고 아합은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 우린 다 아비마귀에게서 낫기때문에, 무서워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이 구속사다. 그렇게 사람이 무서운데, 누구를 치리하고 그럴 수 있을까. 성경을 보면서 모든 전쟁은 사람을 믿어서 온 것임을 정말 깨달아야겠다. 언제나 나를 배반할 수 있다는 생각속에서 이타적으로 나가야 한다.
적용/ 내가 의지하여 자다가도 부르는 병거는 무엇입니까?
32/ 고도의 훈련을 받은 32 장수는 일시적으로 왕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달려오는데,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연약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릇되게 각기 제 길로 간다.
여호사밧은 유다 최고 성군인데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소리를 꽥 질렀다고 하고 내용은 없다. 소리 지르다는 절박한 상황 속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외침을 의미한다. 다행히 역대하 본문에는, 이 때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그들을 감동시켜 그를 떠나가게 하셨다 했다. 그때 개입하시는 하나님.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가능성을 본다. 표적이 되면 즉, 누구든 살아남을 수 없다. 온 나라가 여호사밧이 표적이 된 상황이고, 아합을 도와주러 나갔지만 죽게 생긴 것. 여호사밧으로부터 그들을 꾀어냈다. = 자신들의 표적이 아니다. 분명 아람의 왕은 분명 아합만 죽이라 하니 장수들도 너무 열심히 봤던 것. 딱 깨닫게 한 것.
가만히 있는데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신 것보다 여호사밧이 급할때 주여! 한 마디 했지 않을까. 한 소리를 해도 그게 남쪽 말이다. 온 세계가 처들어와도 하나님이 막아주시려면 막아주실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가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자리에 없기에. 자기가 스스로 지켜야 하기에 그렇다. 자기 진영을. 그러므로 차별금지법까지도 그렇다. 자기가 법을 바꿔서라도 진영을 지킨다.
하나님이 막아주고자 함 =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ampne 포스트 모더니즘.
비록 여호사밧이 경솔히 아합과 같이 전장에 나섰어도 마지막에 주여 한 마디로 사랑으로 지켜주신 하나님. 내가 남편이 갈때 아무도 안타깝지 않고 목사님만 안타까웠음. 아무도 복음을 전할 실력도 기도도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펄펄 혼자 뛰니 야단도 맞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여 한 것에 들어주신 것 같다. 아합은 바로 그것을 안했다. 우상을 섬기고 섬기는 현재를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부요하기에, 하나님 부르는 것을 잊어버렸다. 내가 섬기는 것을 모른다. 어쨋든 여호사밧은 아합과 같은 사악한 사람과 동행하여 이런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즉 성도들도 오히려 세상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짝하는 것을 분별없이 하기도 한다. = 교회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왔다. 못할 이유 무엇이 있나.
불신과 이혼을 막는 것에 단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짝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적용/ 급할 때 무슨 소리를 지르겠습니까?
- 무심코 당한 일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4/ 우연히 = 무심코 같은 뜻. 흠이 없는 완벽한 상태라는 뜻도 원어에는 있다. 그냥 활을 쏘았는데 활에 맞은 아합. 그 병거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데, 갑옷과 갑옷 사이 이음새 틈으로 맞았다. 병거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합의 솔기를 맞출 확률은 거의 불가능. 그런데 이 상태로 맞았다 = 하나님의 세팅같다. 하려면 하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기다려주셨지 예뻐서 놔두신 게 아니다. 하나님의 흠 없는, 성실하심의 결과다.
내가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일을 벌림은 하나님의 세팅이다. 잘못만났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이 세팅이다. 자유의지에따라 순종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하나님 주권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
전쟁이 너무 맹렬하여 붙들려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또한 우연이 아니다. 피가 고였는데, 아주 비참한 모습을 묘사한다. 아합이 생각하기에는, 갑옷 솔기로 맞았는데, 심장에 맞으면 즉사겠지만 복부나 이쯤 맞아서 탈출만 하면 지혈이 가능했을텐데 하루종일 피를 흘리다 할 수 없이 아람 사람과 전쟁하게 하셔서 저녁되서는 죽은 것.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봇을 생각하진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합은 강팍하니 그 동안 되는 일만 있다가 안 나가야 할 전쟁에 나가서 되는 일이 어보게하심 = 하나님의 성실하심.
36/ 각기 본향으로 가라 아합이 죽자마자 백성들의 사기가 죽어버렸다. 얼마나 백성들에게 전쟁때문에 고생시켰는지 보인다. 17-28절 처럼 미가야의 말씀처럼 되어버린 것을 본다. 같은 본향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영과 육으로 다른 얘기다. 내가 죽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너무 편안하대 ampne 내가 죽어져야지.
적용/ 우리의 만남이 무심코 만났고 재수없게 만났다고 아직도 원망합니까?
우리의 만남은 완벽하신 성실하신 하나님의 세팅이다.
-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과 같이 됩니다.
아합은 심판했다. 사마리아로 시신이 돌아오게 하심은 하나님이 하심. 적국 왕의 시신은 최고의 전리품일텐데, 하나님은 아합의 꾀대로 시체를 가져오므로 이스라엘은 지키신 지혜로우신 하나님. 이 하나님 지혜를 누가 따라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동행하는 것은 엄청난 백이다. 여호사밧은 살려주시고, 아합은 아합만 딱 처단하시고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시신을 또 갖고오게 하심.
창기들의 목욕탕은 일종의 공공장소인데 피가 엉겨붙고 개들이 핥는 모습 모두 보게한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를 보며 전율하며 봤을 것.
니가 벤하닷 살려줬으니 벤하닷 대신 죽을거다. 아합의 피를 개들이 핥으리라. 등 동시에 하나님 말씀대로 읊은 선지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본다. 왕을 그렇게 세워달라더니 이게 얼마나 불행해진 것인지 볼 수 있다.
그가 행한 모든 일 = 오므리 왕부터 최고 번영의 시기를 보냈던 아합. 16장부터 6장동안 아합의 숱한 죄악. 또 정치잘했다는 치적 = 오직 건축. 딱 한 줄 나온다. 상아궁 지었다.
하나님의 평가는 인간들의 평가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그가 자매, 그의 아내 이세벨이 대신 왕이되니라
조상들과 같이 잤다는 것은 또 뭘까? 생각해보면, 나닷 시므리 같은 왕은 조상들과 함께 잤다는 말이 없다. 북 이스라엘은 선왕이 하나도 없어 반역으로 시작했는데, 조상들과 함께 자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래도 이방 국가와는 본질이 그래도 다르기 때문. 이방에서는 권세가 최고. 인간 생명은 아무래도 좋은 이방 왕조.
아합은 미가야를 너무 미워해도 매번 데려와서 흉한 예언을 또 듣긴 듣는다. 또 물어보고 또 미워하고 또 흉한 말 했다고 또 근심한다. 식음을 전폐한다. 보통나라는 딱 죽여버리고 나봇의 땅 가져올텐데, 아합은 그렇지 않았다. 850개 바알 우상을 하루 아침에 엘리야때문에 죽어지니 가만히 있기도. 벤하닷과 싸울때도 결국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엘리야는 자기에게 보기만 하면 흉한예언을 해대니 아합은 괴로웠다. 즉 아합은 수고한 공로자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경륜과 슬픔을 알았다. 이 땅의 제사장으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 아합도 잘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이에 아합을 잘 살게하니 하나님이 없어지고. 딜레마다.
사람이 부할 수록 거짓아비에 속하다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아합도 살리고 이스라엘 살려볼려니까 끊임없이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살기에 아합이 너무 수고했다. 하나님도 수고하시고, 불쌍하고 아합도 수고하고 불쌍하다.
'구별되게 살기가 너무 어려운 우리다.'
아합보고는 이 세상 왕으로는 하나도 야단 맞지 않을 것으러 야단 치신다. 왕으로서 취할 권리도 하나님은 태클을 건 셈이다. 엘리야 미가야는 질그릇이라 환경이 겸손하여 잘난 것도 없다. 아합으로서는 역할 모델일 뿐. 아합이 너무 묵상되면서 불쌍했다. 그 환경에서 아합처럼이라도 살 사람이 정말 희박하다.
이 땅의 모든 왕들은 그냥 죽여버린다. 이런 아합왕은 벤하닷과는 비교도 안되는 왕이 맞다. 그래서 호호 불어가면서 계속 아합을 인도해보셨던 하나님. 하루를 피 흘려가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마지막엔 애국을 했다. 마지막엔 회개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상들과 함께 잤다는 말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적용/ 그래도 이 땅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최고야가 됩니까?
행함 ampne 예수 믿는 것. 천지차이다. 반만년 우리나라도 예수 믿어 잘되었어도 이제 예수 믿지 못하게 될까 우려가 된다.
서로 미워하기보다 구원때문에, 성경을 읽자. 문자적으로 성경을읽지 말자.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대로 된일이라. 수치를 당해도 말씀대로 된일이라 되야겠다.
결론.
변장을 해도 심판이 임한 아합. 무심코 당한 일도 죽었고.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과 같이 되었다. 우리 가치관은 예수가 왕노릇 하는 것.
[기도]
2019. 8. 18. 기도제목
박영준
- 큐티를 할 수 있도록.
- 마음 편하게 잘 쉴 수 있도록.
- 혼전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조동민
- 사소한 것으로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안식
- 대구 가는 동안 섬기는 기회가 되도록.
- 한 주 동안 기억 잘 해서 목장에 물을 수 있도록.
- 제 안의 우상들을 정리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길태수
- 한 주 회사에서 작은 것이라도 순종 할 수 있도록.
-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큐티 적용 할 수 있도록.
- 취업사이트 후기로 마음을 채우기보다 온전히 주어진대로 준비하고, 하나님이 준비가 될 수 있도록.